강영수가 한입 베어 물고는 말했다.“맛있네.”이 모든 건 장해진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었다. 강씨 저택에서 머물렀을 땐 대부분 강영수가 그녀를 챙겼었다.“예전 집에선 이렇게 잘해주지 않았었잖아. 오늘은 왜 이렇게 친절해?”그녀를 바라보는 강영수의 눈동자에 사람을 빨아들일 듯한 깊은 바다의 소용돌이가 일렁였다.누가 봐도 순수하지 않은 눈빛이었다.강영수가 말한 집이란 물론 강씨 저택이다.장소월은 이런 상황을 겪어본 적 없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대충 얼버무렸다.“여긴 우리 집이고 넌 손님이잖아. 당연히 잘 대접해줘야지. 얼른 먹어. 식으면 맛없어.”이번 식사는 장소월의 인생에서 가장 긴 식사였다. 장장 두 시간이나 지속되었으니 말이다.사람들은 이미 적잖게 취해 있었다. 장해진은 귀중하게 보관해두었던 몇천만 원짜리 와인과 위스키를 가져왔고 세 사람은 모든 술을 깡그리 마셔버렸다.장해진은 너무 취해 방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강영수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한다. 의사 선생님이 말하길 그가 다리 병증을 완전히 회복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려야 한다고 했다. 비 오는 날이면 또 고질병이 발작하기 때문에 절대 과음을 해서는 안 된다.저녁 아홉 시.장소월은 강영수를 부축해 소파에 앉혔다. 은경애가 오 아주머니가 만든 해장국을 가져왔다.“오빠, 오빠도 술을 많이 마셨으니 해장국 먹어요.”“됐어. 난 방에 돌아가 잘 거야. 너도 일찍 쉬어.”백윤서가 듣기에 전연우의 목소리는 조금 차가웠다. 심지어 그녀를 보는 눈빛까지도 평소처럼 부드럽지 않았다.장소월 때문일까?하지만 오빠는 장소월을 좋아하지 않는다.이는 그녀 또한 알고 있는 사실이다.예전 장소월이 전연우를 좋아하는 마음에 갖은 미친 행동을 할 때에도 그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아마... 그녀가 잘못 생각한 거겠지!“알았어요. 오빠.”조금 전 밥상에선 큰 계약이 체결되었다. 그런데 왜 기뻐하지 않는 걸까?장해진과 전연우는 술자리에서 일을 성사시키는 베테랑이나 다름없었다.장소월이 해장
“하지만 절대 그럴 필요 없어... 나한테 뭘 해주지 않아도 넌 내 최고의...”친구야!마지막 세 글자가 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을 때, 밖에서 거대한 폭죽 소리가 들려왔다. 금빛 찬란한 빛이 어두운 밤하늘을 수놓았다.오색찬란하게 피어나는 불꽃이 강영수의 준수한 얼굴을 밝혔다. 그는 멍하니 창밖의 광경을 바라보았다.장소월은 몸을 돌려 다 하지 못한 말을 삼켜버렸다. 그녀의 머릿속에 오부연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됐어. 다 나으면 말하자.“먼저 해장국을 마시고 폭죽 보러 갈래?”강영수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좋아.”남원 별장 후원 나무 아래에서, 두 사람은 나란히 의자에 앉아 고개를 들고 밤하늘에서 펼쳐지는 불꽃놀이를 즐겼다.“난 어렸을 때부터 이곳에 앉아 불꽃놀이를 보는 것을 가장 좋아했어. 그래서 매일 불꽃놀이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예전엔 항상 오 아주머니가 나와 함께...”강영수의 문신이 새겨진 손이 저도 모르게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사실 난 오래전에 널 봤었어.”“오래전? 언제?”장소월이 그를 쳐다보았다.장씨 저택 뒷마당 맞은 편이 바로 강영수의 별장이었다. 불빛 하나 없이 텅 빈 곳이라 밖에서 보면 고독과 어둠에 짓눌려있는 유령의 집 같았다.강영수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3년 전, 내가 가장 어두웠던 시절, 너무 힘들어 숨쉬기 조차 힘들 때였어. 물소리밖에 들리지 않던 적막한 내 방에 네 웃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어. 그날도 아마 설날이었지...”“넌 정말 잔뜩 신이 나 웃고 있었어. 대체 뭐가 널 그토록 기쁘게 만들었는지 호기심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내다봤어.”“넌 인형 하나를 끌어안고 하루종일 인형과 말을 하고 있더라고. 네 엄마가 남겨준 인형 같았어.”“매일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학교에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 난 늘 네가 마당에서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어...”3년 전 그는 몇 차례나 자살 시도를 했었다. 그날도 자신의 목숨을 끊으려 유리 조각으로 팔목을 긋고는
그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못 하는 게 없지.”서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강한 그룹의 대표인 강영수다. 장소월은 그가 다시는 무너지지 않기를 바랐다.“소월아... 너 계속 내 옆에 있어 주면 안 돼?”강영수가 그녀를 빨아들일 듯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장소월은 당황스러움에 어쩔 줄을 몰랐다.“나 지금도 계속 네 옆에 있잖아?”“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잖아.”장소월은 알아듣지 못한 척 의문스러운 얼굴로 물었다.“뭐라고?”강영수가 손을 뻗어 그녀의 긴 머리를 어루만졌다. 이어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손가락으로 그녀의 아름답고 매혹적인 얼굴을 쓸어내린 뒤 아래턱을 살짝 들어 올렸다. 장소월은 점점 더 그의 깊은 눈동자에 빠져들어갔다...그가 천천히 가까이 다가가 손으로 장소월의 눈을 막았다. 그녀의 입술에서 차갑고 부드러운 남자의 입술이 느껴졌다.장소월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고 머릿속은 온통 백지장이 되어버렸다. 남자가 격렬히 그녀의 입술을 탐했다.두 사람의 호흡이 엉키며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바닥에 그려진 두 그림자가 친밀히 서로를 끌어안았다.오늘 밤의 달빛은 평소보다 더욱 은은하고 부드러웠다.강영수는 이미 십여 분 전 술이 깼지만 진봉은 강영수를 데리러 이곳에 왔다. 음주운전은 위험할뿐더러 하면 안 되는 것이니 말이다.장소월이 얼어붙은 손을 호호 불며 현관으로 들어왔다. 도우미들도 모두 퇴근해 희미한 불만 켜져 있었다.은옥매는 아직 의자에 앉아 아래턱을 괴고 애써 졸음을 참고 있었다.장소월이 걸어가 그녀의 등을 두드렸다.“아주머니, 이만 들어가 쉬세요.”은경애가 깜짝 놀라며 일어섰다.“어머, 어머... 오셨네요.”“전 올라갈게요. 얼른 들어가세요.”“네.”장소월은 복도 난간을 잡고 생각에 잠겼다. 조금 전 대체 왜... 그녀는 응당 그를 밀어내야 했다...하지만 강영수의 그 말 때문에 마음이 약해졌었다.알고 보니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를 구했던 것이다
“허튼소리 하지 마!”전연우는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려 침대에 던졌다. 그 바람에 그녀의 머리가 침대 머리에 강하게 부딪혔다. 옅게 빛나는 달빛이 남자의 건장한 몸집을 비췄다. 그는 외투를 벗어 던지고 그녀의 몸을 짓눌렀다.“불꽃놀이 좋았어? 나도 네 기억을 되살려줄까?”장소월은 손을 짚고 일어나려 했으나 종아리가 눌리는 바람에 다시 누워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또다시 뜨거운 키스를 퍼부었고 이어 그녀의 목을 사정없이 깨물었다.“너 질투해? 전연우! 네가 무슨 자격으로 질투하는 거야? 오늘 아빠가 너한테 한 말 잊지 마! 너도 나랑 강영수가 이어지길 바라는 아빠의 생각을 읽었잖아! 강영수한테 들키는 게 두렵지도 않아? 그때가 되면 강씨 집안은 물론이고 아빠도 널 용서하지 않을 거야! 똑똑히 알아둬. 넌 지금 일시적인 충동 때문에 네가 공들여 쌓은 탑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걸!”그가 몸을 들어 올리고는 어두운 눈동자로 그녀를 응시했다. 이어 그의 얼굴에 악마같이 잔혹한 미소가 걸렸다.“그래서 뭐? 지금 하려는 것이 내가 원하는 일에 전혀 방해되지 않는데?”그 순간 그는 그녀를 거칠게 몰아붙여 고통스럽게 눈물을 흘리며 살려달라고 빌게 하고 싶었다.하지만 아직 붙잡고 있는 한 가닥의 이성이 그 충동을 억눌렀다.몸 안에 들끓는 욕망을 분출하는 방법엔 오직 삽입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수백 가지의 방식으로 그녀의 몸을 끊임없이 탐할 수 있다.그는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힘으로 그녀의 목을 조르고 귓가에 속삭였다.“강영수와 잤다는 말이 내 귀에 들어오면 3일 내내 침대에서 내려오지 못할 줄 알아. 난 한다면 하는 사람이거든!”“전연우... 넌 쓰레기야.”그녀는 힘껏 그의 어깨를 깨물었다.남자가 통증에 얼굴을 찌푸렸다.두 시간 뒤...장소월의 피부는 온천이라도 한 듯 온몸이 붉어져 있었다. 그녀는 분노 어린 눈으로 침대 옆에서 바지를 입고 있는 남자를 쏘아보았다.전연우는 확실히 자신의 욕구를 만족했다. 하지만... 장소월은 온몸에 힘
“전연우! 그런 말을 하는 게 부끄럽지도 않아?”“착하지.”욕실 안에서 한 시간을 넘게 출렁인 끝에 드디어 그녀도 만족을 얻었다. 이어 남자가 온몸이 나른해져 욕조에 기대어 있는 장소월을 안아 물에서 꺼내고는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주었다.장소월은 이불 속에 들어가 침대 중앙에 누웠다.그녀는 밤새 몸이 너무 뜨거워 이불을 박찼다. 하지만 시원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또다시 뜨거운 화로를 끌어안은 것처럼 달아올랐다. 그럼에도 너무 피곤해 움직일 수 없어 그대로 잠들었다...다음날 새벽, 부드러운 햇살이 커튼 틈 사이로 쏟아져 들어왔다.침대 옆 인기척을 느낀 장소월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안으로 파고 들어가 다시 잠을 청했다.전연우는 옷을 입으며 둥둥 부어오른 이불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러시아에서 출발해 서울에 도착하는 비행기가 여덟 시에 착륙했다.아홉 시, 강용은 비행기에서 내린 뒤 병원으로 향했다.병원 로비에 꽃집이 있어 꽃 한 다발을 사 들고 입원 병동으로 걸어 들어갔다.15층에 도착하자 간호사가 다가와 말했다.“도련님.”“깼어요?”“아직이요. 환자분은 오늘 새벽 네 시에 잠드셨어요.”강용이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일 보세요.”“네. 도련님.”심유는 시시때때로 발작하는 병을 앓고 있다. 최근 날이 추워진 탓에 하룻밤 사이에 쓰러진 것이다.소식을 들은 강용은 곧바로 비행기를 타고 돌아왔다.그는 병실로 들어가 꽃다발을 내려놓고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잠시 후 소파에 누우니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들었다.얼마가 지났을까, 옆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그녀가 깨어났다.심유의 창백하고 허약한 얼굴을 본 강용이 자리에 일어나 앉았다.“언제 깼어요?”가디건을 걸치고 부드러운 긴 머리를 늘어뜨린 심유의 모습은 영락없는 귀부인이었다.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그의 옆에 앉아 바닥에 떨어진 담요를 주워 그의 다리에 덮어주었다.“조금 전에 깼어. 널 걱정시켰네. 그냥 늘 앓던 고질병일 뿐이니 앞으론 이렇게 급히 돌아오지
“뭐 볼 게 있다고요? 여전하겠죠 뭐.”강용이 껍질을 깎은 사과를 먹기 좋게 잘라 접시에 담고 포크를 꽂아 심유에게 건넸다. 자신은 자르고 남은 사과 씨 부분을 베어 물었다.“어찌 됐든 영수는 네 형이야. 명절이니 너도 집에 가야지.”“형은 예전에 살던 집에 갔어요.”그 말에 심유의 낯빛이 어두워졌다.강일주는 전부인과 이혼한 뒤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심유를 집에 들였다. 심유는 예전 시골 출신의 연극배우였다. 16살 때 시골에 내려와 학생을 가르치던 23살의 청년 강일주를 만났다.두 사람은 서로 한눈에 반했다.두 사람이 사귄 지 2년째 되던 해에 강일주는 서울로 돌아갔다.이후 심유는 3년 동안 그를 기다렸다. 그 사이에 강일주는 한 번 그녀를 보러 돌아왔었는데 그때 잠자리를 했고 3개월 후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약속했다.하지만 이후 강일주는 이미 다른 여자와 결혼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는 인씨 집안 아가씨와 3년 동안 결혼 생활을 이어오고 있었고 아이도 한 명 낳았는데 그 아이가 바로 강영수였다.강씨 집안에선 그녀와 강일주가 첫눈에 반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녀의 저급한 신분 때문에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또한 인씨 집안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그녀에게 거액의 돈을 줘 강일주와의 인연을 깨끗이 끊어내게 하려 했다.심유는 그 돈을 거절하고 혼자 실망감에 저려진 채 강일주의 곁을 떠났었다.하지만 그녀도 자신과 강일주 사이에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숨겼다.그들의 아이는 강영수보다 3,4살 더 어렸다.심유는 미혼모로 살며 온갖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견뎌냈다. 아름다운 미모로 남자를 꼬드기다가 처참히 버려진 꽃뱀으로 여겨 모두들 곱지 않은 눈초리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부모님들도 그녀를 집에서 쫓아냈다. 하여 그녀는 혼자의 몸으로 강용을 데리고 어렸을 때부터 살던 마을을 떠나 서울의 한 어촌에 자리 잡았다. 그곳에서 그녀는 매일 허드렛일을 하며 네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를 키워냈다. 하루하루 힘들게 입에 풀칠만 하면서 말이다.
강용이 말했다.“아버진 엄마를 보러 오셨어요?”심유가 따뜻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요즘 밤낮으로 내 옆에서 지켜줬어. 네 아버지도 이제 나이가 들어서 쉬어야 해. 그래서 내가 집에 보냈어.”“의사 선생님께서 저녁에 다시 검사하러 오셔. 별다른 문제 없으면 퇴원해도 된대.”“감히 엄마한테 잘해주지 않으면 가만 놔두지 않을 거예요.”“됐어. 얼른 가봐. 나도 아래에 내려가야겠어. 저녁엔 우리 용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줄 거야.”“간호사와 함께 가세요.”“알았어.”강용은 몇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오느라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 하여 심유의 침대에 눕자마자 곧바로 잠들었다.심유는 간호사와 함께 아래층에 내려가 참았던 기침을 터뜨렸다. 손에 들고 있던 하얀색 손수건이 피로 얼룩졌다.“사모님...”심유는 평온한 얼굴로 덤덤히 말했다.“고질병일 뿐이에요. 괜히 쓸데없는 걱정을 할 수도 있으니 용이한테는 말하지 말아 주세요.”“네. 사모님.”심유는 피가 묻은 손수건을 쓰레기통에 버렸다.장소월은 12시가 되어서야 잠에서 깨어났다. 영혼이 모두 빠져나간 듯한 모습이었다.어젯밤 일을 생각하니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역겨움이 밀려왔다.나쁜 자식!전연우는 새벽에 더럽혀진 침대 시트를 새것으로 갈았다. 장소월은 바닥에서 나뒹구는 시트를 주워 휴지통에 집어넣었다.하지만 만에 하나 다른 사람이 발견하고 이상한 생각을 할까 봐 다시 꺼내 더럽혀진 자국을 깨끗이 씻어낸 뒤 다시 던져넣었다.그때 은경애가 들어왔다.“아가씨, 입었던 옷을 저에게 주세요. 빨래하려고요.”“제가 할게요. 참, 아버지와 오빠는요?”이 아이는 왜 아직도 그 나쁜 놈에게 관심을 보이는 걸까?은경애는 자신의 속내를 숨기며 말했다.“어르신과 도련님은 장기를 두고 계십니다.”장소월이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제가 늦게 일어난 걸로 아버지가 화를 내진 않으셨어요?”“오늘 아침 식사를 할 때엔 별말씀 없으셨어요. 하지만... 이상한 일이 있었어요.”
장소월은 문을 잠그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엄격히 금지시키고 있었기에 몰래 그려야만 했다.30분 뒤,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그녀는 다급히 도구를 숨기고 문을 열었다.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본 순간 그녀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무슨 일이야?”전연우가 말했다.“내려와서 밥 먹어.”“알았어. 옷 갈아입고 내려갈게”그녀가 문을 닫으려는 순간 무언가 문에 끼어 내려다보니 전연우의 발이었다.“왜 이래?”“소월아, 오빠가 잠시 들어가서 앉을까?”그가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미쳤어? 곧 밥 먹는다며. 앉긴 뭘 앉아.”장소월이 그와 시선을 마주하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됐어. 마음대로 해.”그녀는 옷장에서 자주 입는 원피스를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 집엔 따뜻하게 보일러를 틀었고 스타킹도 신었으니 춥지 않을 것이다. 옷을 갈아입은 뒤 머리끈으로 머리를 묶고 귀 옆으로 몇 가닥의 머리카락을 내려놓았다.전연우는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그녀의 책을 한장 한장 펼쳐보고 있었다.그 모습을 본 장소월은 어이가 없었다. 저 연기하는 것 좀 봐. 볼 게 뭐가 있다고.오늘 전연우는 연한 색 스웨터를 입고 있었는데 성숙한 남자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또한 남성미 짙은 그의 뚜렷한 오관이 눈에 띄었는데 특히 인상 깊은 건 무수한 비밀을 담고 있는 듯한 그의 한 쌍의 눈동자였다.이런 사람은 자신의 속내와 욕망을 숨기는 데에 능하다.예전 장소월도 수많은 파티에 참석해 적지 않은 준수한 외모의 모델이나 연예인들을 만나보았다.그들과 비교했을 때, 전연우의 외모는 그리 빼어난 편이 아니다. 하지만 전연우에겐 그만의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전연우와 시선을 마주해본 사람이라면 그는 셀 수 없이 많은 경험을 해온 사람이라는 것을 단번에 느끼게 된다.그는 다른 사람이 갖고 있지 않는 살기를 풍기고 있어 사람들로 하여금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분위기 하나만으로 상대를 두려움에 떨게 할 수 있는 사람이다.이런 사람은 그 누구를 상대하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