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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4화

Author: 차라
“보호자분의 의견은요?”

전연우가 어두운 눈빛으로 장소월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전연우를 원망하며 분노하는 대신 아무 일도 아닌 듯 평온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 아이 뜻대로 해주세요.”

대답을 마친 전연우는 마음이 복잡해져 자리를 박차고 문을 나섰다.

서철용은 은은한 웃음을 지은 채 분노하며 멀어져가는 전연우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그가 이미 말하지 않았던가, 전연우는 분명 후회할 거라고 말이다.

서울 최고 미인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여자아이를 옆에 두고 있는데, 속세를 떠난 스님이라고 해도 마음이 동요하지 않을 순 없을 것이다.

그게 전연우라면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몇 년이 지났음에도 여자를 손에 넣지는 못한 듯하다!

두 사람이 병원에서 나왔을 때 날은 이미 거의 어두워져 있었다.

장소월은 점심에 갖고 나왔던 우유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약을 우유에 넣었었다니.

우유와 관련된 음식이라면 죽을 때까지 입에도 대지 않을 것이다.

전연우는 집에 돌아가는 길 내내 침묵으로 일관했다. 차 안에 감도는 무거운 분위기에 답답해진 장소월은 바람을 쐬러 창문을 열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창문이 닫혀버렸다.

“날이 추워 찬바람을 맞으면 안 돼. 감기 걸려.”

장소월이 고개를 숙이고 반질반질한 자신의 손톱을 만지작거렸다.

“아버지한텐 알아서 숨겨줄 거지?”

“뭐 사실 큰일도 아니야. 난 결혼 생각도 없으니까. 혼자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는 것도 좋은 것 같아.”

“늙어서 몸을 움직이지 못하면 실버타운에 가면 되지. 죽으면 시신을 수습해주는 사람도 있고...”

돌연 전연우가 브레이크를 밟고 차를 멈춰 세웠다.

“그래서... 너 날 미워하는 거야? 장소월... 너한테 무슨 미워할 자격이 있다고!”

장씨 성을 가진 사람은 전부 죽어야 마땅하다.

장소월은 그를 바라보며 차분히 말했다.

“그럼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난 이미 한 번 죽었어. 그럼에도 여전히 증오가 남아있다면... 전연우! 나도 이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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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1394화

    강용은 자신의 자리를 뺏기자 눈에 띄게 불쾌해했다. 장소월은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얼굴에 드러내는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내가 할게. 너는 좀 쉬어.” 강용은 장소월이 하던 일을 빼앗았다.장소월은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 손이준과 함께 있는 것이 불편했기에, 흔쾌히 그에게 일을 넘겨주기로 했다. “소금은 조금만 넣어. 현아 짠 거 잘 못 먹어.”“알았어.”이제 한가해진 장소월이 강용에게 물었다.“방 청소해 줄까?”강용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대충 치워주면 돼.”“그래.”강용은 성격이 깔끔한 편이라 방 청소하는 데 큰 힘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소현아에 비해 훨씬 수월했다.장소월은 소파에 누워 잠들어 있는 소현아를 깨웠다. 소현아는 비몽사몽한 상태로 장소월을 따라 위층으로 올라갔다. 깨끗하게 정리된 침대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의 침구 세트를 본 그녀는 잔뜩 신이 난 듯 장소월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고마워, 소월아.”“됐어. 얼른 쉬어. 밥 다 되면 깨워줄게.”소현아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약간 울적한 표정으로 말했다. “소월아, 나 방금 엄청 무서운 꿈 꿨어. 강지훈이 내가 몰래 도망친 걸 알고 엄청 화냈어. 날 잡아서 가둬놓고 다시는 바깥에 나가지 못하게 하더라고.”“소월아, 나 강지훈은 만나고 싶지 않은데, 부모님이 너무 보고 싶어.”장소월은 침대 옆에 걸터앉았다. 사실 그녀는 이토록 걱정에 잠겨 있는 소현아의 모습은 별로 본 적이 없었다. 소현아는 만날 때마다 마냥 즐거워만 보였는데... 아무래도 북경 감옥에 있는 동안 고생을 많이 했던 모양이다.“괜찮아, 현아야. 여긴 강지훈이 없잖아. 너무 걱정하지 마. 그 사람이 널 붙잡아가는 일은 없을 거야. 부모님이 보고 싶으면, 전화하면 되잖아.”소현아는 걱정스러운 듯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지난번에 몰래 전화 해봤는데, 강지훈이 우리 집에 있는 것 같았어. 소월아... 나 부모님한테 무슨 일이 생겼을까 봐 너무 무서워.”“강지훈은 항상 날 괴롭히기만 해.”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1393화

    월이는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조용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 평화도 잠시, 양념을 만들던 장소월은 시커멓게 변해버린 밀가루 반죽을 입에 넣고 있는 월이를 발견했다.“월아, 안 돼!”장소월은 재빨리 뛰쳐나가 월이의 입안에 있던 밀가루 반죽을 꺼내 쓰레기통에 버렸다.“강용, 냉장고에 뭐 먹을 거 있나 봐 봐. 배고픈 것 같으니까 뭐라도 좀 줘야겠어.”강용은 손에 묻은 밀가루를 털고 냉장고에서 오이 하나와 삶은 감자 하나를 찾아냈다.강용은 감자를 꺼내 전자레인지에 살짝 데운 후 휴지로 감싸서 전해줬다. 평소 같았으면 분명 투덜거렸을 텐데, 오늘은 말없이 그녀의 말을 들어주었다.“여기.”장소월은 감자를 건네받아 월이의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 “많이 먹으면 안 돼. 탈 날 수도 있으니까 꼭꼭 씹어 먹어. 조금만 기다리면 밥 먹을 수 있어.”월이는 정말 배가 고팠는지 한입 크게 베어 물려고 했지만 그 작은 입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결국 입가에 침만 잔뜩 흘리고 말았다. 그 귀여운 모습에 장소월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장소월의 눈에 강용의 얼굴 군데군데 묻어 있는 하얀 밀가루가 들어왔다. 아까 만두피를 밀 때 실수로 묻은 듯했다. 장소월은 손을 뻗었지만 키가 닿지 않았다. “머리 숙여 봐.”강용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머리를 숙였다.하지만 그때, 남자 한 명이 얼음장같이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며 문 앞에 서 있었다. 손이준은 빨래한 옷을 쾅 하고 거칠게 바닥에 내던졌다.그 소리에 소파에 누워 쉬고 있던 소현아까지 깜짝 놀라 깨어났다. 그녀는 입가에 묻은 침을 닦으며 눈을 떴다가 아무 일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장소월은 강용의 얼굴에 묻은 밀가루를 닦아주며 말했다. “됐어.”“오빠, 오셨어요? 수고하셨어요.” 장소월은 강용에게 말했다. “빨래 너는 거 좀 도와줄 수 있어?”강용은 기분 좋게 걸어가며 말했다.“그렇게 하지, 동생.”강용도 장소월이 곧 생리를 시작할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1392화

    장소월은 월이를 집으로 데려와 의료 상자를 꺼내 바늘로 물집을 터뜨리고 물을 짜냈다. “아파?”월이는 침까지 흘리며 배시시 웃어 보였다. “아파, 엄마... 호호.”천진난만한 미소를 짓는 월이를 보며, 장소월은 머리를 다친 아이 같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휴지로 아이 입에서 흘러나온 침을 닦아내며 말했다. “우리 월이 정말 용감하구나.”“하지만 다시는 그런 위험한 일은 하지 마. 머리카락이 타서 하나도 안 예쁘잖아.” 장소월은 월이가 입고 있는 원피스에서도 불에 타서 생긴 커다란 구멍 하나를 발견했다.“이봐, 여기도 탔네. 벗어봐, 이모가 꿰매줄게.”약을 다 바른 후, 장소월은 월이를 안고 위층으로 올라가 옷을 벗기고 자신의 옷을 입혀주었다. 그러고는 바늘과 실을 가져와 옷을 꿰매기 시작했다.바느질 솜씨도 훌륭한 장소월이었다. 전생에 한가할 때면 수공업을 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장소월은 옷을 다 꿰매고 아이에게 입혀주었다.그녀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점심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손이준에게 또 신세를 질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는 이미 충분히 많은 도움을 주었다.“너 정말 사람 이렇게 피곤하게 만들어야겠어? 조금만 먹으라고 했잖아.”문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장소월은 들고 있던 물건을 내려놓고 밖으로 나갔다. 눈앞에 뜻밖의 화목한 장면이 펼쳐졌다. 강용이 어깨에 크고 작은 짐을 걸친 채 소현아를 부축해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현아야, 무슨 일이야?”강용은 한바탕 욕설을 퍼붓고 싶었지만, 간신히 참아냈다. “병이 나았다고 금세 또 돼지가 되어버렸어. 먹을 것을 사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발목을 접질렸어. 그건 그렇고, 어제 저녁 우리한테 밥 가져다주기로 했잖아. 왜 안 왔어?”장소월이 대답했다. “너무 피곤해서 나도 모르게 잠들었어.”“혹시 저혈당 아니야? 병원에 같이 가볼까?”장소월은 고개를 저었다. “안 그래도 돼. 현아는 괜찮은 거야?”강용은 이마를 짚었다. “저 얼굴 좀 봐. 어디 문제 있는 사람처럼 보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1391화

    장소월은 그릇을 들고 일어서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그녀는 부엌으로 가서 그릇을 깨끗이 씻었다. “오늘은 빨래도 해야 해서요. 그냥 집에서 기다릴 거예요.”손이준이 짧게 말했다.“마음대로 해요.”부엌을 다 사용한 후, 손이준은 깨끗하게 치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장소월은 위층으로 돌아가 소현아의 방을 정리했다. 소현아에겐 이불 속에 간식을 숨겨두고 밤중에 몰래 먹는 버릇이 있었다. 임신 중인 그녀를 위해 과자 섭취를 금지했지만, 이불을 들춰보니 아직 다 먹지 않은 과자 봉지가 놓여 있었다. 장소월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그녀는 침대 시트와 이불, 그리고 베갯잇까지 모두 새것으로 갈아 놓았다. 이곳은 경제 발전이 더딘 곳이라 세탁기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물조차 마음대로 쓰지 못했다.장소월은 세숫대야를 들고 공동 세탁실로 향했다. 평소 사람들로 붐비는 그곳이지만, 오늘은 웬일인지 아무도 없었다. 그녀가 소매를 걷어 올리고 땅바닥에 쭈그려 앉아 수돗물을 틀려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아이가 끌어안는 바람에 그녀는 하마터면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했다.“월아? 머리카락 왜 이렇게 됐어?”“불에 탔어요.”“뭐라고?” 또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에 장소월은 뒤를 돌아보았다. 아이 옆에 손이준이 물통을 들고 서 있었다. “이준 오빠? 빨래하러 오신 거예요?”“네.”장소월은 월이의 머리카락에서 불에 그을린 탄 냄새를 맡았다. “월아, 너 머리 왜 탄 거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나쁜... 나쁜 거 잡으려고... 몰래... 먹었어.”“무슨 뜻이야?”손이준은 물통에 물을 반쯤 채우고 그녀에게 설명했다. “쥐가 나타나서 월이의 과자를 먹어치웠어요. 잠시 다른 일을 하는 사이에 쥐를 잡겠다고 아궁이에 들어갔더라고요. 그 바람에 머리카락이 탄 거예요.”장소월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큰일 날 뻔했네요. 다른 곳은 안 다쳤어요?”“아파! 엄마... 호호.”월이는 조심하지 않아 뜨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1390화

    송시아를 처리했으니, 다음은 서철용 차례다.두 번의 삶의 기억을 가진 전연우는 잠시 그를 남겨두는 것에 나름의 목적이 있었다.전화가 끊어졌다.장소월은 마치 물에 빠진 듯, 몸이 둥둥 떠다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예전 그녀는 늘 깨어났다가 다시 잠들기를 수십 번 반복했었다. 오늘처럼 깊이 잠든 건 그야말로 처음이었다.평소에는 작은 소리만 들려도 깨어나기가 일쑤였는데...사실 전연우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우연히 옷장 속에 숨겨둔 약병을 발견했을 뿐이었다. 그 약이 우울증 치료제라는 것을 전연우가 모를 리 없었다.과거 장소월이 죽은 후, 전연우는 그녀가 쓰던 옷방에서 엄청난 양의 이런 약을 발견했었다.장소월은 그야말로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몸이 묘하게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시간을 확인하니, 겨우 아침 9시였다.옷을 갈아입던 중, 그녀는 침대 옆에 놓인 두 개의 약병을 발견했다. 혹시 어젯밤 실수로 수면제를 먹은 걸까? 하지만 옷장에서 약을 꺼냈던 기억은 꽤나 선명했다.어젯밤 어떻게 기절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방에서 나온 순간 아래층에서 소리가 들려왔다.‘왜 이렇게 일찍 돌아왔지?’음식 냄새를 맡은 장소월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음식을 만들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손이준이였다.“이준 오빠? 왜 여기에...?”손이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프라이팬 속 음식을 저으며 말했다. “어젯밤 어떻게 된 거예요? 갑자기 쓰러지더라고요. 혹시 어디 아픈 데라도 있는 거예요?”장소월이 하려던 질문을 그가 쏟아내자 이상하게 상황이 역전된 것 같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장소월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별일 아니에요. 저혈당 때문에 잠시 정신을 잃었던 것 같아요.”“그럼... 이건...”손이준이 말했다. “가게에 손님이 왔는데 가스가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잠시 여기 주방을 빌렸어요. 그 보답으로 점심은 내가 만들어줄게요.”장소월은 기억이 나지 않아 미간을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1389화

    그녀는 분명 아직 꽃다운 젊은 나이다. 하지만 스스로 쌓아 놓은 마음의 문턱을 좀처럼 넘지 못하고 있다.장소월은 약병 뚜껑을 열어 손바닥에 몇 알을 쏟았다. 살펴보니 약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보는 수밖에 없다.“뭘 먹고 있는 거예요?”남자가 앞치마를 두르고 손에는 요리 도구를 든 채 문 앞에 서서 말했다. 왠지 아까보다 얼굴빛이 더 차가워진 것 같았다.장소월은 재빨리 약을 삼키고 주머니에 쑤셔 넣은 후 아무 일 없다는 듯 말했다. “별거 아니에요. 고질병이 도져서 진통제 좀 먹었어요. 선... 아니, 오빠... 여긴 어쩐 일로 오셨어요? 무슨 일 있는 거예요?”손이준은 싸늘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소금이 없어서요.”그제야 장소월은 깜빡했다는 듯 말했다. “아, 맞다. 사 오려고 했는데 깜빡 잊어버렸어요.”“지금 사 올게요.”몇 걸음 내디뎠을 때, 약을 먹어서인지 갑자기 현기증이 느껴졌다.장소월은 비틀거리며 벽을 붙잡았다. 순간 손이준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몇 분 뒤, 그녀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손이준으로 위장한 전연우는 쓰러지는 장소월을 품에 안았다.더 이상 차갑지도, 냉담하지도 않은 전연우의 눈빛이었다. 그는 가면을 내려놓고 예전 같은 탐욕스럽고 강렬한 눈빛으로 품 안에 있는 여자를 바라보며 조심스레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소월아, 내 아내...”“정말... 보고 싶었어!”그 한마디에 장소월은 억지로 눈을 떴지만, 그저 단 한 순간이었을 뿐 곧바로 다시 정신을 잃고 쓰러져버렸다.전연우는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팔을 괴고 엎드려 그녀를 꼼짝 않고 바라보고 있었다.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누군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보스, 식사는 모두 준비되었습니다. 지금 가져다드릴까요?”전연우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나직이 말했다. “병원에 있는 놈들에게 내일 다시 오라고 전해. 오늘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1388화

    장소월이 장을 보고 돌아와 보니 거실은 손이준의 손에 말끔하게 청소되어 있었다.“이러실 필요 없어요. 손님으로 오셨잖아요.”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장소월은 부엌으로 가서 물을 끓여 차를 우려냈다.“선생님, 차 드세요.”낯설고 거리감이 느껴지는 호칭에 손이준은 손에 들고 있던 먼지떨이를 내려놓고 말없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이어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부엌에 가서 장소월이 뭘 사 왔는지 살펴보았다.“왜 그러세요?”손이준이 덤덤하게 말했다. “다른 사람이 만든 음식은 입에 맞지 않아서요. 쌀 씻어 놔요. 물은 손가락 두 마디 높이로 붓고요.”장소월이 난처한 듯 만류했다.“이... 이러시면 안 되죠. 그냥 제가 할게요.”손이준은 냉정한 목소리로 정곡을 찌르며 말했다. “요리 나보다 잘해요?”장소월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선생님.”손이준은 고개를 숙여 채소를 다듬으며 말했다. “호칭이 너무 듣기 거북하네요. 그냥 이준이라고 이름을 부르던가, 아니면 오빠라고 불러요.”장소월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머뭇거렸다.“저보다 나이가 많으신 것 같으니... 그럼... 이준 오빠라고 부를까요?”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손이준은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마음대로 해요.”손이준은 누구에게나 차갑고 냉담하게 대하며 거리감을 유지하는 감정 없는 로봇 같은 사람인 듯했지만, 또 그렇게만 보기도 어려웠다.솔직히 오빠라는 호칭은 너무 친밀한 느낌이라 그녀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장소월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정말 그 사람이 아닌 건가?“왜 그렇게 보는 거예요?”그의 목소리에 장소월은 바로 고개를 들고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럼 부탁드릴게요.”장소월은 위층 방으로 올라가 닫혀 있는 옷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 나갈 때 분명 문이 열려 있었던 것 같은데...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1387화

    “나한테 하는 것처럼 똑같이 잘해줘... 어린아이 챙겨주는 것처럼 해도 돼, 응?”세 사람의 관계는 확실히 한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때문에... 평소 장소월은 소현아를 좀 더 챙기려고 노력했었다.하지만 강용은 워낙 솔직한 성격이라 장소월 앞에서는 소현아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았지만, 뒤돌아서면 감히 3미터 안으로 접근하지도 못하게 했다. 소현아는 그의 차가운 눈빛만 봐도 두려움에 떨곤 했었다.소현아가 강용과 함께 있기를 원한다는 걸 알지만, 장소월은 그녀에게 어떤 말도 해줄 수 없었다. 그저 강용이 소현아를 어린아이 대하듯 조금만 더 잘해주길 바랄 뿐이었다.“현아는...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일 뿐이야. 강용, 현아는... 우리 친구잖아.”강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앞으로는... 좀 더 잘해주도록 할게.”“그러니까 나 밀어내지 마.”장소월이 말했다.“꼭 약속 지켜줘.”“병원에 가서 현아 좀 보살펴줘. 강용, 내가 한 말 잊지 말고.”장소월이 핏자국을 지우려 위층에 올라가 보니 이미 누군가가 깨끗하게 치워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바닥은 물기 때문에 축축해져 있었다.장소월은 방에 가서 마른걸레를 가져와 바닥에 엎드려 물기를 닦아냈다.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피비린내가 사라지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돌아갔다.장소월은 방 안에 있는 화장실에 들어가 손을 씻었다. 그러다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계단을 내려갔다.“여긴 무슨 일로 오셨어요?”손이준은 빨간 과일이 담긴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바구니에서는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장소월은 그가 과일까지 들고 찾아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까 많이 놀라셨죠?”“앉으세요.” 장소월이 소파에 앉자, 손이준도 그녀 옆에 자리 잡고 앉았다. 장소월이 대답했다.“조금요. 그래도 아기가 무사해서 다행이에요.”“선생님 따님은요?”“자고 있습니다.”길 건너편 국수 가게에서 별이는 재갈처럼 물린 고무젖꼭지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칭얼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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