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러시아의 무르만스크였다.오로라 외, 사슴과 함께 찍은 셀카 사진도 있었다. 그는 검은색 패딩에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이마에 비집고 나온 앞머리엔 하얀 서리가 덮여 있기도 했다.장소월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예쁘네. 고마워.」고마워란 말엔 강용이 보내온 모든 풍경 사진을 봤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사실 이곳 무르만스크엔 강용 혼자만 온 것이었다. 그의 뒤에 세워져 있는 텐트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그는 열다섯 시간을 거쳐 이곳에 도착했고 그 과정에서 여행객들을 만났다.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강용, 밥 먹어.”(러시아 어)강용은 장소월에게서 온 문자를 확인한 뒤 호주머니에 핸드폰을 집어넣고는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설 연휴.전연우와 백윤서는 유리창 곳곳에 풍선과 예쁜 전구를 달아놓았다. 얼마 되지 않아 집안에서 설 분위기가 물씬 풍겨왔다.허리를 다쳤던 오 아주머니는 설 연휴에 맞춰 병원에서 장씨 저택으로 돌아왔다.하지만 이번엔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장소월도 오랜만에 집에서 쉬고 있었지만 이대로 빈둥거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가방을 메고 아래로 내려갔다.오 아주머니가 주방에서 걸어 나왔다.“곧 식사 시간인데 어디에 가려고요?”장소월이 대답했다.“자료를 찾으러 도서관에 가려고요.”“방학도 했는데 또 공부하려고요? 집에서 쉬어요. 만두가 곧 완성돼요.”“아가씨, 아가씨 앞으로 온 편지입니다.”도우미 한 명이 두꺼운 편지 봉투를 그녀에게 건네주었다.“지금도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있네요. 정말 신기해요. 그것도 러시아에서 보낸 거예요.”도우미의 말을 들은 장소월의 머릿속에 단번에 강용이 떠올랐다.장소월이 편지를 받아든 순간, 물건을 사러 갔던 전연우와 백윤서가 두 손 가득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도우미가 그들을 맞이했다.“도련님.”전연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거실로 시선을 돌렸다.장소월은 보지 않아도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예상할 수 있었다.이게 그의 새해 선물인가?오 아주머
장소월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순간 마음속에서 처음 느껴보는 따뜻함이 피어올랐다.기차 창밖엔 절경이 펼쳐져 있었다. 강용은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느리게 편집해 영상을 만들었다. 그녀가 편히 볼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장소월은 그가 보내온 영상을 모두 보았지만 그녀의 갈증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만약 지금 영상통화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다시 여러 차례 돌려보고 나니 어느덧 오후 3시가 되어갔다.그녀는 도서관을 나서며 강용에게 전화를 걸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연결되었다.“왜? 무슨 일이야?”장소월이 말했다.“강용, 네가 보낸 편지 잘 받았어. 고마워! 사진과 영상 모두 다 봤어. 정말 예쁘더라.”핸드폰 너머 강용의 목소리는 갓 잠에서 깨어난 듯했다.“그래. 알았어.”그의 대답은 아주 차가웠다.“다른 용건 있어? 나 잘 거야.”“편집하지 않은 원본 볼 수 있을까?”“무슨 요구가 그렇게 많아. 없어! 끊어.”그 말을 끝으로 강용은 전화를 끊어버렸다.장소월은 이런 일로 화를 내지 않았다. 그가 돌아온 다음 다시 얘기해보면 될 일이다.마지막 수업인 두 시간의 피아노 수업이 끝났다.집으로 돌아오는 길, 장소월은 문방구에 들러 사진을 보관할 사진첩을 구매했다.그때 돌연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송이는 바닥에 떨어진 뒤 이내 녹아내렸다.도우미가 그녀에게 전화해 집에 손님이 왔으니 빨리 집에 돌아오라고 말했다.장소월은 걸음을 재촉해 집에 도착했다.마당엔 익숙한 차가 세워져 있었다.이건...장소월은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평소 같지 않은 편안한 분위기를 느꼈다.거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도우미가 그녀를 반겼다.“아가씨.”강영수와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다.장소월은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도우미에게 건넸다.“제 방에 가져가 주세요. 조심하세요.”“네. 아가씨.”강영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왔어?”장해진이 못마땅한 목소리로 그녀를 책망했다.“설인데 무슨 수업이야!
장소월은 오늘 기분이 꽤 좋았다. 그녀는 주방에 들어가 앞치마를 맨 뒤 냉장고에서 식자재들을 꺼내 직접 밤 케이크를 만들 준비를 했다.오 아주머니가 다가왔다.“제가 도울까요?”장소월이 거절했다.“아니에요. 몇 번이나 해봤으니 할 수 있어요. 아주머니도 바쁘잖아요.”“그래요. 무슨 일이 있으면 절 불러요.”“네.”밤 케이크는 그리 어려운 음식이 아니다.그때 백윤서가 들어와 바삐 돌아치는 장소월을 보며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소월아, 너 언제부터 밤 케이크를 만들 줄 알았던 거야? 나한테 가르쳐주면 안 돼?”“이것도 오 아주머니한테서 배운 거예요. 배우고 싶으면 내가 레시피를 보내줄게요. 어렵지 않아요.”“좋아! 아니면 지금 옆에서 네가 만드는 것을 볼까? 난 저분들의 대화를 알아듣지 못하겠어서 여기로 왔어. 내가 거들어줄까?”“그럼 일단 이 그릇을 씻어줘요. 이미 반은 완성했어요. 조심해요.”“그래.”백윤서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매를 거둬 올리고 물 온도를 체크했다.“소월아, 강 대표님은 어떻게 알게 된 거야? 널 좋아하는 게 내 눈에도 보여.”장소월은 고개를 떨구고 푹 삶아진 밤을 열심히 으깨고 있었다. 그녀는 대답 대신 다른 질문으로 화제를 돌렸다.“올림피아드 팀은 어때요? 내가 다닐 때 고 선생님이 주신 문제집은 너무 어려워 아직도 절반 밖에 못 풀었어요.”백윤서가 대답했다.“괜찮아. 하지만 1반 공부 열기가 너무 뜨거워 매일 문제를 푸는 것 외엔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여유가 없어.”그녀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풀지 못하는 문제는 고 선생님이나 오빠한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는데 요즘 오빠가 귀가 시간이 늦어 그대로 두고 있어.”“너 내가 네 자리에 들어간 것 때문에 날 원망한 적 없어? 나 때문에 올림피아드 팀에 들어가지 못한 거잖아.”장소월이 고개를 저었다.“언니를 왜 원망하겠어요. 승자는 생존하고 패자는 탈락하는 거, 그게 1반의 방식이에요. 성적만 좋으면 그 누구도 뭐라 하지 못하죠. 어디든 길이 있
강영수가 한입 베어 물고는 말했다.“맛있네.”이 모든 건 장해진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었다. 강씨 저택에서 머물렀을 땐 대부분 강영수가 그녀를 챙겼었다.“예전 집에선 이렇게 잘해주지 않았었잖아. 오늘은 왜 이렇게 친절해?”그녀를 바라보는 강영수의 눈동자에 사람을 빨아들일 듯한 깊은 바다의 소용돌이가 일렁였다.누가 봐도 순수하지 않은 눈빛이었다.강영수가 말한 집이란 물론 강씨 저택이다.장소월은 이런 상황을 겪어본 적 없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대충 얼버무렸다.“여긴 우리 집이고 넌 손님이잖아. 당연히 잘 대접해줘야지. 얼른 먹어. 식으면 맛없어.”이번 식사는 장소월의 인생에서 가장 긴 식사였다. 장장 두 시간이나 지속되었으니 말이다.사람들은 이미 적잖게 취해 있었다. 장해진은 귀중하게 보관해두었던 몇천만 원짜리 와인과 위스키를 가져왔고 세 사람은 모든 술을 깡그리 마셔버렸다.장해진은 너무 취해 방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강영수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한다. 의사 선생님이 말하길 그가 다리 병증을 완전히 회복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려야 한다고 했다. 비 오는 날이면 또 고질병이 발작하기 때문에 절대 과음을 해서는 안 된다.저녁 아홉 시.장소월은 강영수를 부축해 소파에 앉혔다. 은경애가 오 아주머니가 만든 해장국을 가져왔다.“오빠, 오빠도 술을 많이 마셨으니 해장국 먹어요.”“됐어. 난 방에 돌아가 잘 거야. 너도 일찍 쉬어.”백윤서가 듣기에 전연우의 목소리는 조금 차가웠다. 심지어 그녀를 보는 눈빛까지도 평소처럼 부드럽지 않았다.장소월 때문일까?하지만 오빠는 장소월을 좋아하지 않는다.이는 그녀 또한 알고 있는 사실이다.예전 장소월이 전연우를 좋아하는 마음에 갖은 미친 행동을 할 때에도 그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아마... 그녀가 잘못 생각한 거겠지!“알았어요. 오빠.”조금 전 밥상에선 큰 계약이 체결되었다. 그런데 왜 기뻐하지 않는 걸까?장해진과 전연우는 술자리에서 일을 성사시키는 베테랑이나 다름없었다.장소월이 해장
“하지만 절대 그럴 필요 없어... 나한테 뭘 해주지 않아도 넌 내 최고의...”친구야!마지막 세 글자가 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을 때, 밖에서 거대한 폭죽 소리가 들려왔다. 금빛 찬란한 빛이 어두운 밤하늘을 수놓았다.오색찬란하게 피어나는 불꽃이 강영수의 준수한 얼굴을 밝혔다. 그는 멍하니 창밖의 광경을 바라보았다.장소월은 몸을 돌려 다 하지 못한 말을 삼켜버렸다. 그녀의 머릿속에 오부연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됐어. 다 나으면 말하자.“먼저 해장국을 마시고 폭죽 보러 갈래?”강영수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좋아.”남원 별장 후원 나무 아래에서, 두 사람은 나란히 의자에 앉아 고개를 들고 밤하늘에서 펼쳐지는 불꽃놀이를 즐겼다.“난 어렸을 때부터 이곳에 앉아 불꽃놀이를 보는 것을 가장 좋아했어. 그래서 매일 불꽃놀이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예전엔 항상 오 아주머니가 나와 함께...”강영수의 문신이 새겨진 손이 저도 모르게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사실 난 오래전에 널 봤었어.”“오래전? 언제?”장소월이 그를 쳐다보았다.장씨 저택 뒷마당 맞은 편이 바로 강영수의 별장이었다. 불빛 하나 없이 텅 빈 곳이라 밖에서 보면 고독과 어둠에 짓눌려있는 유령의 집 같았다.강영수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3년 전, 내가 가장 어두웠던 시절, 너무 힘들어 숨쉬기 조차 힘들 때였어. 물소리밖에 들리지 않던 적막한 내 방에 네 웃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어. 그날도 아마 설날이었지...”“넌 정말 잔뜩 신이 나 웃고 있었어. 대체 뭐가 널 그토록 기쁘게 만들었는지 호기심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내다봤어.”“넌 인형 하나를 끌어안고 하루종일 인형과 말을 하고 있더라고. 네 엄마가 남겨준 인형 같았어.”“매일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학교에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 난 늘 네가 마당에서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어...”3년 전 그는 몇 차례나 자살 시도를 했었다. 그날도 자신의 목숨을 끊으려 유리 조각으로 팔목을 긋고는
그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못 하는 게 없지.”서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강한 그룹의 대표인 강영수다. 장소월은 그가 다시는 무너지지 않기를 바랐다.“소월아... 너 계속 내 옆에 있어 주면 안 돼?”강영수가 그녀를 빨아들일 듯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장소월은 당황스러움에 어쩔 줄을 몰랐다.“나 지금도 계속 네 옆에 있잖아?”“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잖아.”장소월은 알아듣지 못한 척 의문스러운 얼굴로 물었다.“뭐라고?”강영수가 손을 뻗어 그녀의 긴 머리를 어루만졌다. 이어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손가락으로 그녀의 아름답고 매혹적인 얼굴을 쓸어내린 뒤 아래턱을 살짝 들어 올렸다. 장소월은 점점 더 그의 깊은 눈동자에 빠져들어갔다...그가 천천히 가까이 다가가 손으로 장소월의 눈을 막았다. 그녀의 입술에서 차갑고 부드러운 남자의 입술이 느껴졌다.장소월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고 머릿속은 온통 백지장이 되어버렸다. 남자가 격렬히 그녀의 입술을 탐했다.두 사람의 호흡이 엉키며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바닥에 그려진 두 그림자가 친밀히 서로를 끌어안았다.오늘 밤의 달빛은 평소보다 더욱 은은하고 부드러웠다.강영수는 이미 십여 분 전 술이 깼지만 진봉은 강영수를 데리러 이곳에 왔다. 음주운전은 위험할뿐더러 하면 안 되는 것이니 말이다.장소월이 얼어붙은 손을 호호 불며 현관으로 들어왔다. 도우미들도 모두 퇴근해 희미한 불만 켜져 있었다.은옥매는 아직 의자에 앉아 아래턱을 괴고 애써 졸음을 참고 있었다.장소월이 걸어가 그녀의 등을 두드렸다.“아주머니, 이만 들어가 쉬세요.”은경애가 깜짝 놀라며 일어섰다.“어머, 어머... 오셨네요.”“전 올라갈게요. 얼른 들어가세요.”“네.”장소월은 복도 난간을 잡고 생각에 잠겼다. 조금 전 대체 왜... 그녀는 응당 그를 밀어내야 했다...하지만 강영수의 그 말 때문에 마음이 약해졌었다.알고 보니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를 구했던 것이다
“허튼소리 하지 마!”전연우는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려 침대에 던졌다. 그 바람에 그녀의 머리가 침대 머리에 강하게 부딪혔다. 옅게 빛나는 달빛이 남자의 건장한 몸집을 비췄다. 그는 외투를 벗어 던지고 그녀의 몸을 짓눌렀다.“불꽃놀이 좋았어? 나도 네 기억을 되살려줄까?”장소월은 손을 짚고 일어나려 했으나 종아리가 눌리는 바람에 다시 누워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또다시 뜨거운 키스를 퍼부었고 이어 그녀의 목을 사정없이 깨물었다.“너 질투해? 전연우! 네가 무슨 자격으로 질투하는 거야? 오늘 아빠가 너한테 한 말 잊지 마! 너도 나랑 강영수가 이어지길 바라는 아빠의 생각을 읽었잖아! 강영수한테 들키는 게 두렵지도 않아? 그때가 되면 강씨 집안은 물론이고 아빠도 널 용서하지 않을 거야! 똑똑히 알아둬. 넌 지금 일시적인 충동 때문에 네가 공들여 쌓은 탑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걸!”그가 몸을 들어 올리고는 어두운 눈동자로 그녀를 응시했다. 이어 그의 얼굴에 악마같이 잔혹한 미소가 걸렸다.“그래서 뭐? 지금 하려는 것이 내가 원하는 일에 전혀 방해되지 않는데?”그 순간 그는 그녀를 거칠게 몰아붙여 고통스럽게 눈물을 흘리며 살려달라고 빌게 하고 싶었다.하지만 아직 붙잡고 있는 한 가닥의 이성이 그 충동을 억눌렀다.몸 안에 들끓는 욕망을 분출하는 방법엔 오직 삽입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수백 가지의 방식으로 그녀의 몸을 끊임없이 탐할 수 있다.그는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힘으로 그녀의 목을 조르고 귓가에 속삭였다.“강영수와 잤다는 말이 내 귀에 들어오면 3일 내내 침대에서 내려오지 못할 줄 알아. 난 한다면 하는 사람이거든!”“전연우... 넌 쓰레기야.”그녀는 힘껏 그의 어깨를 깨물었다.남자가 통증에 얼굴을 찌푸렸다.두 시간 뒤...장소월의 피부는 온천이라도 한 듯 온몸이 붉어져 있었다. 그녀는 분노 어린 눈으로 침대 옆에서 바지를 입고 있는 남자를 쏘아보았다.전연우는 확실히 자신의 욕구를 만족했다. 하지만... 장소월은 온몸에 힘
“전연우! 그런 말을 하는 게 부끄럽지도 않아?”“착하지.”욕실 안에서 한 시간을 넘게 출렁인 끝에 드디어 그녀도 만족을 얻었다. 이어 남자가 온몸이 나른해져 욕조에 기대어 있는 장소월을 안아 물에서 꺼내고는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주었다.장소월은 이불 속에 들어가 침대 중앙에 누웠다.그녀는 밤새 몸이 너무 뜨거워 이불을 박찼다. 하지만 시원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또다시 뜨거운 화로를 끌어안은 것처럼 달아올랐다. 그럼에도 너무 피곤해 움직일 수 없어 그대로 잠들었다...다음날 새벽, 부드러운 햇살이 커튼 틈 사이로 쏟아져 들어왔다.침대 옆 인기척을 느낀 장소월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안으로 파고 들어가 다시 잠을 청했다.전연우는 옷을 입으며 둥둥 부어오른 이불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러시아에서 출발해 서울에 도착하는 비행기가 여덟 시에 착륙했다.아홉 시, 강용은 비행기에서 내린 뒤 병원으로 향했다.병원 로비에 꽃집이 있어 꽃 한 다발을 사 들고 입원 병동으로 걸어 들어갔다.15층에 도착하자 간호사가 다가와 말했다.“도련님.”“깼어요?”“아직이요. 환자분은 오늘 새벽 네 시에 잠드셨어요.”강용이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일 보세요.”“네. 도련님.”심유는 시시때때로 발작하는 병을 앓고 있다. 최근 날이 추워진 탓에 하룻밤 사이에 쓰러진 것이다.소식을 들은 강용은 곧바로 비행기를 타고 돌아왔다.그는 병실로 들어가 꽃다발을 내려놓고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잠시 후 소파에 누우니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들었다.얼마가 지났을까, 옆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그녀가 깨어났다.심유의 창백하고 허약한 얼굴을 본 강용이 자리에 일어나 앉았다.“언제 깼어요?”가디건을 걸치고 부드러운 긴 머리를 늘어뜨린 심유의 모습은 영락없는 귀부인이었다.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그의 옆에 앉아 바닥에 떨어진 담요를 주워 그의 다리에 덮어주었다.“조금 전에 깼어. 널 걱정시켰네. 그냥 늘 앓던 고질병일 뿐이니 앞으론 이렇게 급히 돌아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