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사모님의 좌충우돌 신혼 일기의 모든 챕터: 챕터 151 - 챕터 160

1428 챕터

제151화 장난을 치다

성연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이다.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앞서 진행하던 무진의 1차 치료 과정이 아직 덜 끝난 상태인데 지금의 현 상태가 유지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적당한 운동이 필요했다.결국 일어난 성연이 무진을 뒤로 살짝 밀었다. “뒤로 좀만 가요.”방안에서, 휠체어를 타지 않는 무진이 성연의 말을 따라서 살짝 뒤로 물러섰다.자세를 취한 성연이 하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주 느린 동작으로.몇 분 후, 동작을 마친 뒤 무진을 바라보며 확인했다. “기억하셨죠?”기억하긴 했다. 모두 간단한 동작들이니까.하지만 아리송한 표정의 무진이 말을 끌었다.“근데 이거…….”무진의 뚱한 표정을 본 성연이 냉소를 지었다.“아저씨, 이 동작들 우습게 생각하지 마세요. 다리 회복에 정말 효과가 좋아요. 다른 사람은 가르쳐 주지도 않는다고요…….”겉보기에는 느릿느릿한 것이 노인들의 스트레칭 자세와 비슷했다.정말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는 동작에, 무진이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지었다.“꼭 해야 돼?” 그래도 강씨 집안의 장손으로서 체면이 있지.“물론이죠, 제가 가르쳐 드린 것들 중에 틀린 것 있었어요? 봐 봐요, 이 동작은 하체의 근육과 뼈를 모두 스트레칭 할 수 있어요. 아저씨의 굳은 다리 근육을 풀어주는 데 이만한 운동이 없어요.”성연이 이치에 맞는 소리들만 읊었다.“다른 방법은 없어?” 여전히 체면을 내려놓지 못한 무진이 주저했다.“없어요. 하든 말든 마음대로 하세요. 어차피 내 다리도 아닌데요 뭐…….” 살짝 기분이 상한 성연이 눈을 흘기며 자리를 뜨려 했다.의사들이 가장 싫어하는 환자가 바로 이런 비협조적이면서 의사를 못 믿는 이들이다.무진이 바로 성연의 손을 잡았다. “미안, 바로 할게.”성연은 한숨을 돌렸다. 이 또한 그를 위해서다.그의 이런 투정은 지금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가던 걸음을 멈춘 성연이 고개를 돌려 그가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처음해보는 동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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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2화 나름 일가견이 있다

한 세트의 스트레칭 동작을 다 끝낸 무진은 다리가 천근만근 같이 느껴져 들어올리는 것조차 힘들었다.다리를 살짝 움직여 보니 왠지 이전보다 훨씬 느려진 듯했다.성연이 흘깃 보더니 설명했다.“정상이에요. 굳었던 근육이 이완되어서 그런 거에요. 지금 바로 침 맞고, 다시 약욕을 하면 최고의 효과를 볼 수 있어요.”성연은 바로 창고에 가서 무진에게 쓸 약을 조제하기 시작했다.시간이 늦어 집사와 고용인들 모두 각자 방으로 돌아가고 없었다.다른 사람을 귀찮게 할 수 없으니 자신이 직접 할 수밖에 없었다.약을 한쪽에 놓고 무진을 눕힌 성연이 침을 놓기 시작했다.천천히 침을 놓는 성연에게 무진이 갑자기 물었다.“피곤해?”갑작스러운 질문에 어리둥절했지만, 곧장 퉁명스럽게 대답했다.“그럼 안 피곤하겠어요?”하루 종일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게임 좀 하려고 만반의 준비를 했었는데, 이렇게 산통을 깨다니…….마음속에서 갑자기 짜증이 확 올라왔다.하지만 그저 속에서 담아둘 뿐, 100억원이나 되는 ‘거금’을 받고 입을 싹 닦을 수는 없을 터.100억, 물론 그녀한테는 새 발의 피에 불과했다.“고생이네.” 무진의 입에서 서늘한 음성이 흘러나왔다.그의 음성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낮고 묵직하니 듣기 좋은 음성이 불쑥 귓가에 닿으니 성연의 귀가 간질거렸다.무진의 얼굴, 목소리, 몸매까지 모두 성연에겐 최고로 느껴졌다.무진을 보며 설레는 마음을 들킬 뻔했다.얼굴이 점차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 성연은 일부러 앙칼진 말투로 부끄러움을 감추었다.“의사가 진찰할 때 말을 아껴야 하는 거 모르세요? 만약 침을 잘못 놓기라도 하면 어쩔거에요? 저는 책임 못 져요.”하얀 피부에 피어오른 홍조가 귓바퀴까지 번지며 아주 선명했다.성연이 부끄러워하는 것을 알아차린 무진이 가볍게 웃었다.눈을 크게 뜬 성연이 무진을 노려보았다. 무진은 별일 없는 듯 침착하게 눈을 감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은침을 다리에 놓고 성연은 욕조에 약재를 넣고 물을 받기 시작했다.약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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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3화 뒤탈은 없다

손건호는 마음속으로 생각하던 의문을 보스에게 물었다.무진은 말을 아꼈지만 할머니의 마음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여러 해 전, 부모님이 비행기 사고로 돌아가셨다…… 그 비행기 사고는 상당히 수상쩍었다. 그날은 화창한 날씨였었다. 의심스러운 기상 조짐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비행기가 추락했다.비행기에서 생존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비행기 추락사고를 조사하고자 해도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 지 막막했다.그 후에도 어린 무진이 여러차례 크고 작은 사건사고에 목숨을 위협받는 일들이 발생했다. 그러자 다시는 가족을 잃는 고통을 겪고 싶지 않았던 안금여가 무진을 뒤로 숨겼다. 누군가의 위협으로부터 무진을 지키기 위해서.그는 강씨 집안의 장손이었다. 강씨 집안은 100년 전부터 줄곧 장자, 장손이 그룹을 계승하는 불문율을 지켜왔다.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와 부모님이라는 방패를 잃어버린 어린 무진은 계속해서 일부 사람들의 ‘화살 받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겉으론 별 문제 없어 보이는 강씨 집안이었지만, 사실 언제나 보이지 않게 본가를 압박하는 존재가 있었던 까닭에.하지만 이제 무진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둘째, 셋째 할아버지 강상철과 강상규의 암중세력이 생각보다 커서 한꺼번에 제거하려면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할 뿐.게다가 그들을 쳐 내야 할 이유는 많지만, 아직까지는 저 둘을 건드려서는 안된다.확실한 증거를 확보한 후, 강상철과 강상규가 다시는 재기하지 못하도록 잔당세력까지 뿌리를 뽑을 때까지는.물론 가장 시급한 문제는 무진의 신체적 문제.안금여의 가장 큰 걱정거리이기도 하다!아마 자신이 죽기 전 무진에게 향후 발생할 모든 잠재적 위협을 제거하고 싶을 터이다.큰 키에 다부진 몸의 무진은 꼿꼿한 자세로 침대 옆에 서 있었다. 피바람이 부는 전장에서 잘 벼린 칼날처럼 반짝였다.다만 아직 이러저러한 이유로 칼날을 숨기고 힘을 비축하고 있는 중이다. 조용히 기다리다 때가 되면 칼을 뽑을 것이다.할머니 안금여와 고모 강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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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4화 한창 클 나이

무진은 무덤덤하게 말했다.“있긴 하지…… 명의 고학중을 찾을 수만 있다면…….”무진의 말을 들은 손건호는 일순 입을 다물었다. 고학중은 신출귀몰해서 그 정체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아직도 없었다. 오랜 기간 해외에 거주하고 있다는데 그를 찾기 란 그야말로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는 격이었다.게다가 돈을 많이 준다고 해서 치료를 맡는 것도 아니었다.성질이 괴팍한 고학중은 오로지 자신의 기분에 따라 치료 여부를 결정했다.그에게는 신분과 권력도 중요하지 않았다.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억만금을 줘도 환자를 치료하지 않는다고 하니. 반면 마음이 내킬 땐 한 푼도 받지 않고 치료해 주기도 한다고.적잖은 권세가들이 그의 치료를 원했지만 억지로 요구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아부하기에 급급했지.몇 해전, 강씨 집안에서도 무진을 치료하기 위해 다양한 루트를 통해 그를 수소문했었다.하지만 어디에서도 그의 종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즉 ‘불가능’하다는 얘기였다.그러니 무진이 한 말은 하나 마나 한 얘기였다.침묵을 지키던 손건호는 보스를 위로하고자 입을 달싹거렸지만, 어떤 말로 위로를 해야할 지 몰라 그냥 입을 다물었다.무진도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시간을 확인한 무진이 곧바로 방에서 나와 성연의 방 앞으로 가 노크했다.“송성연, 너 학교에 가야지…….”그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제야 성연은 부시시 일어나 아침을 먹으러 내려왔다.졸린 눈을 반쯤 감은 채 아침은 먹는 둥 마는 둥.잠에서 덜 깬 모습 그대로.아침 식사가 끝난 후 학교로 출발했다.무진의 차로 학교까지 이동하는 동안.성연은 차안에서 꾸벅꾸벅 졸았다.왼쪽 창문에 기대어 있다가차체가 흔들리면서 몸도 덩달아 오른쪽으로 기울어졌다,그리고 무진의 어깨에 안착.자신이 아닌 다른 신체의 따뜻한 기온에 깜짝 놀란 성연의 눈이 번쩍 뜨였다.곧 자세를 가다듬는가 싶더니 얼마 버티지 못하고 다시 스르르 잠이 들었다.잠결에 또 무진에게 몸을 기대는 성연.졸음을 참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듯했지만 천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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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5화 송성연을 죽도록 미워하다

당당한 성연의 말에 할말을 잃은 손건호.하마터면 잊을 뻔했다.작은 사모님은 아직 미성년자라는 걸.아직 몸이 자라고 있다는 게 맞았다.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무진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성연의 정수리를 살짝 두드렸다.“계속 자. 학교에 도착하면 깨워 줄게.”고개를 끄덕인 성연은 무진의 품에 안겨 계속 잠을 청했다.무진의 품은 편안했다.학교에 도착하자 무진이 낮은 소리로 깨웠다.선잠을 자고 있던 성연은 바로 깨어났다. 차에서 내린 성연이 무진에게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한 뒤, 교실로 향했다. 연신 하품을 하면서.한 편.모 삼류 고등학교.송아연이 새로 편입한 학교다.북성에서 그다지 좋은 학교가 아니었다.학생들 태반이 서민 계층의 자녀들로, 단체복은 고사하고 교복도 없었다. 각자 후줄근한 평상복 차림에 학습 분위기도 꽝이었다.여기저기 낙서 천지인 교실 벽은 지저분하기 그지없었다.환경도 별로 좋지 않았다.여학생들은 진한 화장에 피어싱에, 알록달록 염색 두발까지. 촌스러운 옷차림은 마치 90년대 하드 록 스타일을 연상케 할 정도다.이전에 다니던 귀족 고등학교, 북성남고와는 비교가 안 되었다. 강씨 집안은 아연에 대한 징계를 풀었다.강씨 집안이 입김을 넣지 않았다면 이런 삼류 고등학교조차도 편입이 불가능했을 터.흰색 원피스를 입고 교실에 앉아 있는 송아연은 이곳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걸핏하면 상스러운 욕도 서슴지 않고 뱉는 아이들.이 모든 것들이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 아연이다.꼿꼿한 자세로 앉아 같은 반 아이들의 장난치는 모습을 보는 그녀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그저 책상을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있을 뿐이다. 살구색의 책상은 이전에 다니던 북성남고와 비슷했다.하지만 이전 학교에 비해 천박하기 짝이 없는 아이들로 인해책상 위는 온통 낙서 자국들과 칼로 새겨진 글자들이다.그것도 중2 아이들이나 쓸만한 유치한 말들.눈 앞에 펼쳐진 장면을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던 성연은 깨달았다.‘북성남고와는 하늘과 땅 차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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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화 분함을 참을 수가 없어

이제 오전 수업 하나가 끝났음에도 아연은 참을 수가 없어 그냥 도망쳤다.이 학교의 학생 관리는 비교적 느슨한 편이었다. 교문을 나서려 하자 경비원이 형식적으로 손을 내밀어 앞에서 막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아연이 거짓말로 몸이 아파 선생님에게 귀가 허락을 받았다고 하자, 바로 통과시켜 주었다.학교를 나선 아연은 지체없이 택시를 잡아타고 괴상한 학교를 벗어났다.집에 도착한 아연은 아빠 송종철을 보자마자 분함을 못 참고 울기 시작했다. 얼마나 쓰레기 같은 학교인지, 또 학생들은 얼마나 무서운지, 송종철에게 울며불며 하소연했다.송종철의 소매를 잡아당기는 아연의 얼굴은 온통 눈물 범벅이었다.“아빠, 나 정말 그 학교 못 다니겠어. 다른 더 좋은 데로 갈래.”아연의 말을 듣는 송종철의 안색도 좋지 않았다.임수정은 더 마음이 아렸다. 어릴 때부터 이날 이때까지 원하는 대로 다 가지며 귀하게만 자란 아연이가 어떻게 이런 분통 터지는 일을 겪어야 하는지?남편 송암종을 바라보며 졸랐다.“여보, 얼른 방법을 찾아봐요. 저런 학교에서 학위를 받으면 뭐해요?”사실 그녀는 강씨 집안이 어린 여자아이 하나 무에 그리 신경 쓰랴 생각하고 희망을 가졌었다.그런데, 강씨 집안이 이런 삼류고등학교를 아연에게 배정해줄 줄 누가 알았겠는가?강씨 집안이 이렇게 했을 때는 체면도 신경 쓰지 않겠다는 거지. 어린 여자아이를 겨냥해서 치졸했다는 안 좋은 소문이 외부로 나가도 괜찮다는 거야?어찌할 방도가 없기는 매한가지인 송종철이 이를 갈며 말했다.“지금 성연에게 가서 부탁하는 것 말고 무슨 다른 방법 있어?”강씨 집안이 아연을 처벌한 이유가 성연을 건드렸기 때문이 아닌가?역시 문제는 송성연인 것이다.성연이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강씨 집안에 어떤 말이든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성연밖에 없었다.성연이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겠다고 한마디만 해준다면 강씨 집안이 계속 자신들을 힘들게 하겠는가?방법은 이것뿐이다.하지만 이 말을 들은 아연이 격렬한 반응을 보이며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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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7화 가장 완벽한 희생양

성연은 오늘 또 학교에서 잠을 자거나 게임을 하는 것 외에 하는 일 없는 멍청한 하루를 보내었다. 이제 선생님들은 그런 성연을 봐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수업이 끝난 후,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내일은 주말이어서, 병원에서 할머니 안금여 곁에 있을 작정이었다.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안금여는 성연이 처음으로 호감을 가지게 된 사람이다.안금여 또한 성연을 옆에 앉혀 두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성연을 보자마자 안금여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성량이 왔구나. 매일 네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단다. 병원에는 이 할머니와 함께 이야기할 사람이 없구나.” 안금여가 성연을 반기며 자신의 병상 옆에다 앉혔다.성연도 웃으며 인사했다.“할머니, 수업 끝나자마자 왔어요. 내일은 주말이라 하루 종일 같이 있을 수 있어요.”“아이고,고마워라.” 곁에 성연이 있으면 다른 사람은 필요 없는 안금여가 바로 귀찮다는 듯이 딸 운경에게 말했다.“내일 성연이 여기 있을 테니, 너희들은 올 필요 없다.”괜히 사람이 많으면 성연이 불편하게 여길까 오히려 걱정이다.운경도 별 다른 의견이 없었다.아무튼 안금여는 성연을 좋아했다. 성연이 안금여를 즐겁게 하니, 몸도 빨리 회복될 수 있었고.하지만, 분명 사람을 쫓아내는 기색이라 운경이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엄마, 자기 딸을 그렇게 미워하기예요?”“너는 내가 말도 못하게 하지 않니? 너도 한 번 생각해 봐라. 성연이 말고 너희들 중 누가 나 같은 노인과 함께 시간을 보내겠니?” 안금여가 짐짓 책망하는 투로 코웃음을 쳤다.“네, 네. 엄마 말씀이 다 맞아요. 지금 바로 가 드릴게요. 더 이상 여기서 방해되지 않도록요.”운경은 어투는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는 듯했다.안금여의 이런 모습은 확실히 늙은 아이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내 곁을 지킬 시간도 없으면서 쫓아낸다고 나를 탓할 생각이니?”안금여 역시 지지 않고 한마디 했다.“그래요. 이제 그만 갈게요.” 어쩔 수 없다는 듯 운경이 대답했다.저리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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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8화 아직도 아프신가요

그날 밤.팰리스 클럽.꼭대기 층의 룸에 자리잡고 앉은 강일헌이 와인 한 잔을 손에 들고 가볍게 흔들었다.낭창낭창한 허리의 여성을 품에 안고 있는 폼이 꽤나 호방해 보인다.그때, 룸 입구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강일헌이 품에 안고 있던 여성을 밀어내며 말했다.“베이비, 먼저 가 있어. 잠시 뒤에 갈게.”“사장님.”그의 팔을 끌어안은 여성이 끈적하게 붙어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결국 강일헌이 가슴에다 카드를 한 장 찔러주자 그제야 마지못해 떨어졌다.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검은 옷 차림에 마스크를 쓴 남자가 들어왔다.강일헌을 보고 마스크를 벗은 남자가 품 속에서 상자 하나를 꺼내 건넸다.“이게 네가 원하던 물건이야.”상자에서 약병을 꺼내 흔들어 보던 강일헌이 뚜껑을 열었다. 안을 들여보니 검정색 알약 몇 알이 들어 있었다.일반 약과 별 다른 게 없어 보였다.의심스럽다는 시선으로 눈앞의 남자를 힐끔 쳐다본 뒤에 물었다.“이게 정말 네가 말한 것처럼 신묘하다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안이 중대해. 만약 일이 틀어지면, 사정 봐 주지 않을 거야.”남자가 강일헌의 어깨 위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우리가 어떤 사인데? 내가 너를 속일 거라 생각해? 안심해. 구입 후에 문제가 생기면 찾아와.”남자의 말을 들으며 자신이 원하던 효능임을 재차 확인한 강일헌은 약을 건네어 받은 즉시 최대한 빨리 강상철에게 갖다 주었다.앞에 놓인 알약을 보던 강상철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냉소를 지었다.늦은 저녁, 병원 안.성연이 편히 잠자지 못할까 걱정이 된 안금여가 사위 조승호에게 자신의 침상 곁에 침상 하나를 더 놓아 달라고 요구했다.어차피 병실도 충분히 넓어서 침상 하나를 더 들여도 상관없긴 했다.안금여 옆의 침상에 누운 성연은 할머니를 지키며 달게 잤다.간밤 아무 일도 없었다.다음날 아침.의료용 카트를 밀며 안금여 병실로 향하던 간호사가 복도에서 실수로 한 중년 남성과 부딪혔다.간호사와 부딪힌 남성이 바로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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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9화 정체불명의 약물

안금여가 약을 먹은 그날 오후, 이상 증세가 나타났다.성연은 할머니에게 평소 좋아하던 음식들을 준비해 주었다.할머니가 잘 소화할 수 있도록 주방에 부탁해서 음식을 더 부드럽게 조리하게 했다. 테이블을 가져다 침상에 올린 후, 할머니의 식사 시중을 들었다.그런데 안금여는 식사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먹었던 음식을 모두 게워내었다.“우욱, 우욱, 우욱.”성연이 얼른 등을 두드려 주며 물었다.“할머니, 괜찮으세요? 어디가 안 좋으세요?”안금여는 지금 말을 나눌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 위 속의 음식을 토해 내는 도중에 전신 경련이 일어나면서 주변이 온통 더러워졌다.성연은 조금도 꺼리는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보기 드물게 아주 잠시 당황스러운 기색을 띠었다가 이내 침착함을 되찾았다.성연이 안금여의 맥을 짚어 보았다.요 며칠 안정되었던 맥박이 지금은 흐트러진 듯 보였다.뭔가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얼른 벨을 눌러 조승호를 불렀다.안금여를 진찰해 본 조승호는 심각한 상태임을 즉시 알아차렸다.간호사를 불러 안금여를 응급처치실로 옮겼다.성연은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응급실 앞에서 기다렸다.응급실로 옮길 때 이미 무진과 운경에게 연락해서 현재의 상황을 간단하게 알려 두었다.손건호가 미는 휠체어에 앉아 다가온 무진의 안색은 다소 침중한 빛을 띄었다.“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성연이 고개를 저었다.“모르겠어요. 분명히 아침에는 말짱하셨어요. 어떻게 식사를 하시다가 이렇게 되셨는지 모르겠어요.”“아침에 무슨 이상한 점은 없었어?”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멀쩡하게 잘 지내시다가 아무런 까닭 없이 이렇게 되셨을 리는 없을 터인데.심장이 안 좋은 것 말고 할머니에게서는 다른 어떤 합병증도 발견하지 못했었다.이런 증세가 있었다면 병원에 있는 요 며칠 진작 검사했을 것이다.발병의 상황도 평소와는 달랐다.“이상한 점은 없었어요. 모두 평상시와 같았어요. 아침에 약을 드셨어요. 입맛이 좋으셔서 죽 한 그릇을 더 드셨어요.” 성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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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0화 다른 뜻은 없었다

운경이 먼저 소리를 높여 남편 조승호에게 물었다.“무슨 약물인데? 먹으면 어떤 부작용이 있는데?”묻는 운경의 목소리는 계속 미세하게 떨렸다. 왠지 마음속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무진을 한 번 돌아본 조승호가 시선을 운경에게 돌리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아마도…… 치매가 오지 싶어.”운경이 두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커지더니 이내 눈앞이 캄캄해지며 하마터면 정신을 잃을 뻔했다. 간신히 벽을 짚고서야 아래로 주저앉던 몸을 가까스로 지탱했다.화가 난 조승호를 쳐다보았다.“어떻게 된 거야? 원래 멀쩡하셨잖아? 약도 당신이 처방했잖아? 그런데 왜 이렇게 된 건지 설명 좀 해봐!”운경은 정말 초조해 죽을 지경이었다.눈앞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남편이었지만 조금도 마을 써 줄 여유가 없었다.조승호가 얼른 말했다.“내가 처방한 게 아니야. 내가 어떻게 그런 약을 처방하겠어? 누군가 약을 몰래 들여와서 바꾼 게 틀림없어.”그도 바보가 아니었다. 여기는 그의 병원이었다. 주치의로서 안금여에게 다른 약을 처방할 마음을 먹었다면 절대 이런 방식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게다가 안금여가 평소 사위인 그에게 얼마나 잘해주었던가. 운경은 언제나 효녀였고, 조승호 역시 어쨌든 약을 쓸 사람이 아니었다.그러나 운경을 탓할 생각은 없었다.지금 운경이 얼마나 불안하고 정신없을 지 잘 아니까. 가까스로 호전되었다가 또 다시 이런 일이 생겼으니, 딸인 운경으로서는 당연히 견디기 힘들 것이다.“확실해?” 운경은 겨우 진정하기 시작했다. “고모, 고모부가 그러셨을 리는 없잖습니까? 고모부가 그러셨잖습니까? 누가 다른 약과 바꾼 것 같다고요.” 무진이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만약 조승호가 정말 손을 쓰고 싶었다면, 그럴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굳이 지금 이 때를 선택하지는 않았을 터.“고모, 할머님 아직 병상에 계세요. 고모와 고모부가 싸우는 건 원하지 않으실 거예요. 우리 모두 진정하도록 해요.” 성연도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정말 누군가 약을 썼다고 해도 고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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