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팰리스 클럽.꼭대기 층의 룸에 자리잡고 앉은 강일헌이 와인 한 잔을 손에 들고 가볍게 흔들었다.낭창낭창한 허리의 여성을 품에 안고 있는 폼이 꽤나 호방해 보인다.그때, 룸 입구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강일헌이 품에 안고 있던 여성을 밀어내며 말했다.“베이비, 먼저 가 있어. 잠시 뒤에 갈게.”“사장님.”그의 팔을 끌어안은 여성이 끈적하게 붙어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결국 강일헌이 가슴에다 카드를 한 장 찔러주자 그제야 마지못해 떨어졌다.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검은 옷 차림에 마스크를 쓴 남자가 들어왔다.강일헌을 보고 마스크를 벗은 남자가 품 속에서 상자 하나를 꺼내 건넸다.“이게 네가 원하던 물건이야.”상자에서 약병을 꺼내 흔들어 보던 강일헌이 뚜껑을 열었다. 안을 들여보니 검정색 알약 몇 알이 들어 있었다.일반 약과 별 다른 게 없어 보였다.의심스럽다는 시선으로 눈앞의 남자를 힐끔 쳐다본 뒤에 물었다.“이게 정말 네가 말한 것처럼 신묘하다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안이 중대해. 만약 일이 틀어지면, 사정 봐 주지 않을 거야.”남자가 강일헌의 어깨 위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우리가 어떤 사인데? 내가 너를 속일 거라 생각해? 안심해. 구입 후에 문제가 생기면 찾아와.”남자의 말을 들으며 자신이 원하던 효능임을 재차 확인한 강일헌은 약을 건네어 받은 즉시 최대한 빨리 강상철에게 갖다 주었다.앞에 놓인 알약을 보던 강상철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냉소를 지었다.늦은 저녁, 병원 안.성연이 편히 잠자지 못할까 걱정이 된 안금여가 사위 조승호에게 자신의 침상 곁에 침상 하나를 더 놓아 달라고 요구했다.어차피 병실도 충분히 넓어서 침상 하나를 더 들여도 상관없긴 했다.안금여 옆의 침상에 누운 성연은 할머니를 지키며 달게 잤다.간밤 아무 일도 없었다.다음날 아침.의료용 카트를 밀며 안금여 병실로 향하던 간호사가 복도에서 실수로 한 중년 남성과 부딪혔다.간호사와 부딪힌 남성이 바로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안금여가 약을 먹은 그날 오후, 이상 증세가 나타났다.성연은 할머니에게 평소 좋아하던 음식들을 준비해 주었다.할머니가 잘 소화할 수 있도록 주방에 부탁해서 음식을 더 부드럽게 조리하게 했다. 테이블을 가져다 침상에 올린 후, 할머니의 식사 시중을 들었다.그런데 안금여는 식사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먹었던 음식을 모두 게워내었다.“우욱, 우욱, 우욱.”성연이 얼른 등을 두드려 주며 물었다.“할머니, 괜찮으세요? 어디가 안 좋으세요?”안금여는 지금 말을 나눌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 위 속의 음식을 토해 내는 도중에 전신 경련이 일어나면서 주변이 온통 더러워졌다.성연은 조금도 꺼리는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보기 드물게 아주 잠시 당황스러운 기색을 띠었다가 이내 침착함을 되찾았다.성연이 안금여의 맥을 짚어 보았다.요 며칠 안정되었던 맥박이 지금은 흐트러진 듯 보였다.뭔가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얼른 벨을 눌러 조승호를 불렀다.안금여를 진찰해 본 조승호는 심각한 상태임을 즉시 알아차렸다.간호사를 불러 안금여를 응급처치실로 옮겼다.성연은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응급실 앞에서 기다렸다.응급실로 옮길 때 이미 무진과 운경에게 연락해서 현재의 상황을 간단하게 알려 두었다.손건호가 미는 휠체어에 앉아 다가온 무진의 안색은 다소 침중한 빛을 띄었다.“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성연이 고개를 저었다.“모르겠어요. 분명히 아침에는 말짱하셨어요. 어떻게 식사를 하시다가 이렇게 되셨는지 모르겠어요.”“아침에 무슨 이상한 점은 없었어?”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멀쩡하게 잘 지내시다가 아무런 까닭 없이 이렇게 되셨을 리는 없을 터인데.심장이 안 좋은 것 말고 할머니에게서는 다른 어떤 합병증도 발견하지 못했었다.이런 증세가 있었다면 병원에 있는 요 며칠 진작 검사했을 것이다.발병의 상황도 평소와는 달랐다.“이상한 점은 없었어요. 모두 평상시와 같았어요. 아침에 약을 드셨어요. 입맛이 좋으셔서 죽 한 그릇을 더 드셨어요.” 성연이
운경이 먼저 소리를 높여 남편 조승호에게 물었다.“무슨 약물인데? 먹으면 어떤 부작용이 있는데?”묻는 운경의 목소리는 계속 미세하게 떨렸다. 왠지 마음속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무진을 한 번 돌아본 조승호가 시선을 운경에게 돌리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아마도…… 치매가 오지 싶어.”운경이 두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커지더니 이내 눈앞이 캄캄해지며 하마터면 정신을 잃을 뻔했다. 간신히 벽을 짚고서야 아래로 주저앉던 몸을 가까스로 지탱했다.화가 난 조승호를 쳐다보았다.“어떻게 된 거야? 원래 멀쩡하셨잖아? 약도 당신이 처방했잖아? 그런데 왜 이렇게 된 건지 설명 좀 해봐!”운경은 정말 초조해 죽을 지경이었다.눈앞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남편이었지만 조금도 마을 써 줄 여유가 없었다.조승호가 얼른 말했다.“내가 처방한 게 아니야. 내가 어떻게 그런 약을 처방하겠어? 누군가 약을 몰래 들여와서 바꾼 게 틀림없어.”그도 바보가 아니었다. 여기는 그의 병원이었다. 주치의로서 안금여에게 다른 약을 처방할 마음을 먹었다면 절대 이런 방식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게다가 안금여가 평소 사위인 그에게 얼마나 잘해주었던가. 운경은 언제나 효녀였고, 조승호 역시 어쨌든 약을 쓸 사람이 아니었다.그러나 운경을 탓할 생각은 없었다.지금 운경이 얼마나 불안하고 정신없을 지 잘 아니까. 가까스로 호전되었다가 또 다시 이런 일이 생겼으니, 딸인 운경으로서는 당연히 견디기 힘들 것이다.“확실해?” 운경은 겨우 진정하기 시작했다. “고모, 고모부가 그러셨을 리는 없잖습니까? 고모부가 그러셨잖습니까? 누가 다른 약과 바꾼 것 같다고요.” 무진이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만약 조승호가 정말 손을 쓰고 싶었다면, 그럴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굳이 지금 이 때를 선택하지는 않았을 터.“고모, 할머님 아직 병상에 계세요. 고모와 고모부가 싸우는 건 원하지 않으실 거예요. 우리 모두 진정하도록 해요.” 성연도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정말 누군가 약을 썼다고 해도 고모부
묵묵히 옆에 서있던 성연은 한마디 꺼낸 이후로는 더 이상 대화에 참여하지 않았다.눈썹을 찌푸린 채 조승호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 생각했다. 어젯밤과 오늘, 한시도 눈을 떼지 않은 채 자신이 할머니 곁을 지켰었다.그리고 할머니는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만 해도 말짱했다. 그녀와 웃고 떠들면서. 약을 쓰기 가능한 시간대는 오늘 아침과 점심 시간 사이뿐.잠시 이 문제에 골몰해 있던 성연이 입을 열었다.“아침에 간호사 한 명이 들어왔어요. 제 생각엔, 아침 시간 할머님 병실을 담당했던 그 간호사를 고모부님이 불러서 당시 상황을 물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정해진 시간에 병실을 도는 간호사는 모두 기록이 남아 있을 터이니, 언제든 확인해 보면 누구였는지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고개를 끄덕인 조승호가 병동 스테이션으로 전화를 걸어 담당 간호사를 확인하고 불렀다.“원장님, 무슨 일이신가요?” 연락을 받고 응급실 앞으로 올라온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여러 사람이 둘러서 있는 것이 보였지만, 두리번거리지 않고 병원장 조승호에게만 시선을 맞추었다.“오늘 아침, 회장님께 드렸던 약은 어디서 꺼낸 겁니까?” 병원장의 위엄을 드러내며 서늘한 음성으로 물었다.병원에서의 경력이 오래된 노련한 간호사였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조승호가 장모 안금여에게 붙여주지 않았을 터였다.오전에 있었던 전 과정을 그대로 보고했다.“평소대로 약국에서 받은 약을 회장님께 드리고 혈압, 체온을 체크했습니다.”자신이 체크했던 항목들을 하나하나 열거했다.간호사의 대답에서는 평소와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병실 담당 간호사의 대답과 태도로 보아 이 일과는 무관한 듯했다. 답변을 다 들은 조승호가 담당 간호사를 다시 돌려보냈다.한편, 안금여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 유리를 사이에 두고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무진과 운경 모두 중환자실 앞을 지켰다.뒤따라 간 성연은 구석 한편에 서 있었다.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안금여를 바라보는 운경과 무진은 침
조사에 따르면 문제가 될만한 부분은 전혀 없었다.하지만 안금여는 지금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 나쁜 마음을 먹은 자에게 당한 것이 분명한 채로.무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운경은 끊임없이 눈물만 뚝뚝 흘렸다.‘그렇게도 당당하시던 분이 어떻게 이런 일을 당하신다는 말이야?’조승호가 티슈를 뽑아 운경의 눈물을 닦아주며 위로했다.“너무 힘들어하지 마. 최선을 다해 방법을 찾아볼 테니.”“어쩜 이런 법이 다 있어? 이렇게나 연세가 많으신데, 도대체 누가 그렇게 모진 마음을 먹을 수가 있다는 거야?”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이 엄마를 대신해 아프면 좋으련만. 그러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운경아, 우리 모두 가슴 아파. 지금 이 상황에서는 우리가 강해져야 해. 배후를 잡아내는 게 중요해. 안 그러면 어머님이 계속 안전상의 위협을 받으실 거야.”조승호가 운경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그녀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도대체 누구란 말이야? 단서가 전혀 없으니.” 운경이 목이 메인 소리로 말했다.“하늘의 법망은 관대한 듯해도 절대 악인을 그냥 두지 않는다고 했어. 누군가가 손을 썼다면, 반드시 증거가 남아있을 테니 조그만 기다려 봐.” 조승우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성연은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다. 좀 가라앉은 표정이었으나 슬픈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고개를 돌려 조승호를 바라보았다.“고모부님, 그 약 성분은 언제쯤 정확하게 알 수 있을까요? 할머님을 살릴 수 있겠지요?”“아직 검사 중이야. 구체적인 결과는 아직 알 수 없어.”뇌에만 영향을 주는 약인지, 조금 전 음식을 먹는 동안 안금여의 신체 지표가 정상으로 회복되어 이미 특실로 옮겨졌다.특실 또한 중환자실과 별다를 바 없었다.많은 간호사와 전문의들이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다.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돌발 상황을 위해 모두 대기중이었다.조승호의 말을 들은 성연은 고개만 끄덕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나 머리 속은 여러 생각들로 복잡했다
그러나 조승호의 예상 대로 안금여는 치매가 온 상태였다.“엄마, 나 기억해?? 내가 누군야? 무진이는 기억나, 엄마?” 안금여의 눈앞까지 달려간 운경이 자신과 강무진을 가리키며 연신 물었다.고개를 갸웃거리며 운경을 힐끔 본 안금여가 느릿느릿 고개를 돌려 자신의 손가락만 쳐다보았다.그리고 창밖을 향해 멍청하게 웃었다. 어딘가 멍한 얼굴로.마치 이제 막 세상을 처음 보는 것 같았다.“할머니, 물 드시겠어요? 물 좀 드세요.” 성연이 옆으로 가서 따뜻한 물 한 잔을 받아 안금여의 입 가까이 가져다 대었다.하지만 안금여는 그것이 무엇인지조차도 모르는 듯했다.물컵이 입가에 닿아도 마실 줄을 모르는 안금여를 보며 성연이 손가락 하나를 세우고 몇 개냐고 물었지만, 안금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도 몰랐다.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지는 말할 것도 없이.얼굴을 일그러뜨린 운경이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 ‘어쩌다 엄마가 이렇게 되었는지…….’이틀 전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다가 갑자기 이런 치매 증세를 보이니 모두 적응하기 힘들었다.이 상황을 지켜보던 손건호 또한 참지 못하고 눈살을 찌푸렸다.“도대체 누구길래, 이리 악독한 거지?”응급실 입구에 있을 때 운경 역시 같은 질문을 했었다.다만 한바탕 난리가 나고 어수선한 상황이라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었다.그런데 똑같은 질문이 또 언급되자 이에 다시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손건호의 말이 나온 순간, 병실의 공기가 얼어붙었었다.운경과 무진의 눈이 서로 마주쳤다.거의 동시에 두 사람의 마음속에서 하나의 대답이 떠올랐다.무진의 눈빛이 더욱 차가워졌다.강상철과 강상규를 제외하고 이렇게 할 수도 있는 인간이 또 누가 있단 말인가?마침 지금은 아주 중요한 시기였다.많은 지분을 손에 넣은 강상철과 강상규는 주주들의 지지까지 등에 업은 상태였다.만약 안금여만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면, 진즉 회장 자리를 차지했을 것이다.큰집 본가에서 회장직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안금여 한 사람뿐이었
약물의 전 성분을 다 훑은 조승호의 안색이 매우 좋지 않았다.그런 조승호를 옆에서 지켜보던 운경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왜 그래요? 응? 무슨 약이예요? 회복하실 수 있어요?”조승호가 눈썹을 찡그리며 대답했다.“신종 약물이야. 시중에서 전혀 본 적이 없어. 듣도 보도 못한 성분들이 다량으로 포함되어 있어. 해독할 방법을 찾으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병원장이 된 지도 여러 해가 되었는데 이토록 기괴한 약물은 처음 보았다.하지만 약효가 워낙 빠른데다 시중에서 유통되는 약도 아니다. 분명 음지에서만 암암리에 돌아다니는 걸 테다. 그만큼 근원을 찾기가 까다롭다는 의미이고.참으로 난감했다.하지만 지금 운경이 너무 혼란스러운 상태라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엄마가 그때까지 버티실 수 있을까?” 운경의 눈은 온통 붉었다. 눈가엔 눈물 자국도 남아 있었다. 갑자기 이런 일이 생기자 다들 마음이 힘들었다.속히 안금여가 회복되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으니.“최선을 다하겠다는 말 밖엔.”안금여의 이런 증상을 치료할 수 있을지 조승호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이런 약은 본 적이 없었다.“반드시 엄마를 낫게 해야 해요. 안 그럼 난 어떻게 하라고? 그리고 무진인…….”강씨 집안에서, 운경과 무진은 친 혈육으로 안금여 밖에 남지 않았다.“전문가들을 모아 팀을 꾸려 연구할 거야. 장모님 구할 수 있도록 내가 최선을 다할 테니, 당신은 너무 걱정하지 마.”운경을 달래는 한편 조승호는 이미 전화로 연락하며 팀을 꾸리기 시작했다.“고모부님, 필요한 거 있으시면 뭐든지 말씀하세요. 제가 돕겠습니다.” 이때, 무진 역시 이것저것 가릴 틈이 없었다.할머니만 고칠 수 있다면 무엇이든 다 내놓을 기세였다.‘할머니를 살아 계시게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그래.” 조승호가 진중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성연도 아까 검사 결과지를 보았었다. 결과지에 나와 있는 약 성분들은 그녀가 모두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치료 방법
무진이 강일헌을 만나러 병실 밖으로 나갔다. 손건호가 뒤에서 무진을 밀고 나오며 문을 닫았다.“무슨 일이야?” 무표정한 얼굴로 강일헌을 바라보는 무진의 눈빛이 얼음 송곳 같았다.강일헌은 무진이 아니라 병실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손에 서류를 든 채 꽁꽁 닫힌 문만 보다가 결국 시선을 무진에게로 돌렸다.손으로 탁탁 서류를 두드린 후 말했다.“이쪽에 긴급 문건이 있어서 말이야. 회장님이 서명해 주셔야 하는데 어쩌지? 내가 맡은 계열사 쪽에 회장님이 서명해 주셔야 할 서류가 아주 많거든.”강일헌이 여기 찾아온 목적은 자신만이 알고 있다.약이 효과가 있었는지 알아보기 위해.하긴, 안절부절 참지 못한 강상철이 낌새가 조금 보이는 듯하자 즉시 알아보라고 자신을 보냈다.마침 가지고 있던 서류를 핑계로 정당한 이유를 만들어서 온 것이다.그런데 저렇게 굳이 문을 꽁꽁 닫고 있는 걸 보니 외려 감추려고 한다는 게 더 뚜렷해 보인다.강일헌의 행동과 표정을 보던 무진의 눈이 점점 까맣게 물들었다.그 또한 이 프로젝트를 알고 있었다. 다만 이제껏 오지 않다가 하필 이제야 나타나?무진의 눈빛이 시릴 정도로 차가워졌다. 동시에 동공이 새카매지며 분노를 자제하듯 양손으로 휠체어 양편을 꽉 움켜 쥐었다.“할머님은 방금 잠이 드셨어. 서류는 여기에 두고 가.”‘이렇게 뻔히 보이는 수작을……. 다른 사람은 아무 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야?’강상철과 강상규 쪽은 이제 아예 노골적으로 나왔다.오늘 기필코 방문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기세인 강일헌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말했다.“소리 쳐 불러도 괜찮겠지? 고객이 아직 기다리고 있는데. 나는 기다릴 수 있지만, 고객을 기다리게 할 수는 없지 않아? 회장님 몸은 좋아지지 않았어?”말하면서도 시선은 계속 안금여의 병실 쪽을 향해 있었다.약효가 정말 제대로 작용한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회장의 몸이 아예 처음부터 좋지 않았는데, 저쪽 큰집에서 가짜 정보를 흘려 고의로 자신들의 시선을 흐리게 한 게 아닐까 하는.그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