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 Chapter 871 - Chapter 880

1603 Chapters

제871화 해원으로 데려가다

권하윤은 방에서 나와 조심스럽게 물었다.“장욱 씨?”“쿵!”하지만 대답 대신 무거운 물건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그 순간 하윤은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직감이 들어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그저 조심스럽게 계단을 따라 내려가 상황을 확인할 뿐.그랬더니 장욱의 뒤에서 누군가 그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 목숨줄이 상대에게 잡히자 장욱은 고분고분 두 손을 들고 투항 자세를 취했다.곁눈질로 하윤의 위치를 확인한 장욱은 그녀에게 얼른 도망가라는 눈빛을 보냈다.하지만 총을 든 남자도 어느새 장욱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홱 돌렸다.이제 더 이상 방법이 없자 장욱은 얼른 소리쳤다.“당장 도망가요! 저는 상관하지 말고요. 다음 생에 봐요.”상대의 얼굴을 확인한 하윤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케빈 씨? 케빈 씨가 어떻게 강원에 있어요?”두 사람이 아는 사이라는 것을 확인한 장욱은 얼른 손을 내리며 자기 허리를 툭툭 쳤다.“이봐요 형 씨, 아는 사람이면 진작 말을 하지. 간 떨어질 뻔했잖아요.”케빈은 군말 없이 하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데리러 왔습니다.”“저를요?”하윤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저를 어디로 데려가려고요?”“해원이요.”장욱은 그 말을 듣기 바쁘게 버럭 소리쳤다.“이봐요, 형씨, 대체 왜 이러는 거예요? 내가 윤이 씨 얼마나 어렵게 설득했는지 알아요? 해원이라니? 미쳤어요? 죽으러 가라는 뜻이에요?”“민 사장님의 명령입니다.”케빈이 어두운 표정으로 대답했다.그 말을 듣는 순간 하윤은 고개를 홱 들었다. 심지어 두 눈에는 기쁨이 가득했다.“도준 씨 찾은 거예요? 혹시 많이 다쳤어요? 몸은 괜찮던가요?”하지만 케빈의 말은 하윤의 꿈을 산산조각 내버렸다.“아니요, 민 사장님은 바다에 빠져 생사를 알 수 없습니다.”“그런데 왜 도준 씨가 그렇게 말했다고 하는 거예요?”“민 사장님께서 전투기에 오르기 전에 만약 소식이 누설되면 사모님을 해원으로 대피시키라고 했습니다.”“…….”짤막한 한마디는 하윤의 마음은 뒤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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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2화 그런 거였어

권하윤이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케빈이 두 사람 쪽으로 걸어왔다.“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얼른 출발해야 합니다.”하윤은 케빈의 말에 바로 움직이지 않고 되물었다.“어떻게 가는데요?”“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갈 겁니다.”“네?”하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이럴 때일수록 종적을 감추는 게 좋지 않나?’장욱도 케빈의 말이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연신 그를 훑어봤지만 케빈의 손에 든 총을 보자 얼른 태도를 바꿔 어깨동무를 했다.“공항까지 가는 거 너무 번거롭지 않나? 우리 보스한테 전용기가 있으니 그거 타고 가요. 내가 전화 넣을게.”장욱이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찰나, 케빈이 그의 손을 붙잡았다.“아!”케빈에게 손목이 붙잡힌 채 끌려 가게 된 장욱은 하마터면 허리마저 삐끗할 뻔했다.“우리 남자 답게 말로 해결합시다!”케빈은 장욱과 시간 낭비를 하기 싫었는지 장욱을 끈으로 묶은 채 내동댕이쳤다.“사모님, 갑시다.”“그래요.”하윤은 케빈의 차가운 모습에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면서 위층을 바라봤다.“저 핸드폰 가져와도 되죠?”“네.”하윤은 얼른 위층으로 달려가 문을 잠그고 유선 전화로 한민혁에게 전화했다.아무래도 케빈 보다는 민혁이 더 믿음직스러웠기 때문이었다.“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 삐 소리 이후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왜 꺼져 있지?’너무 급한 상황인지라 하윤은 얼른 민시영에게 전화를 걸었다.“윤이 씨?”“시영 언니, 저 물어볼 게 있는데…… 혹시 케빈 씨가 믿을 만한 사람이에요?”“네?”뜬금없는 물음에 시영은 어안이 벙벙해졌다.“혹시 무슨 일 있어요?”“설명하지만 긴데, 케빈 씨가 도준 씨를 배신할 가능성이 있나요?”하윤의 말에 전화 건너편에서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한참 뒤, 지금껏 봐왔던 온화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분노만 남은 한 여인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케빈은 사실 처음에 민용재 쪽 사람이었어요. 제가 그런 일을 당할 때 문 밖에 있었고요.”“…….”그리 길지 않은 말에 하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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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3화 배신한 사람

“그렇다면 도준 씨 명령으로 저를 데리러 왔다는 건 거짓말이라는 뜻이네요?”권하윤은 케빈의 무표정한 얼굴을 바라봤다.“도준 씨는 케빈 씨한테 이런 말 한 적 없는 거고.”케빈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그의 묵인에 순간 실망감이 몰려왔다.“그렇다면 도준 씨가 전투기에 오르기 전 케빈 씨한테 이번 일에 대해 당부했다는 것마저 가짜겠네요?”하윤은 케빈이 자기를 속였는지 아닌지는 관심 없었다. 그저 민도준이 사고를 당하기 전 자기의 상황을 미처 알고 있었는지 아닌지를 알고 싶었을 뿐,“네.”이미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아 이제 통증에 무감각해진 것인지, 아니면 너무 실망한 나머지 가슴이 그대로 죽어버렸는지 하윤은 그저 침묵했다.손톱이 손바닥을 파고 드는 듯한 고통에도 그저 눈시울만 붉힐 뿐이었다.“민혁 씨한테도 연락이 안 닿아요. 혹시 민혁 씨도 무슨 일 있는 거예요?”“한민혁 씨와 실험에 참여했던 사람들 모두 조사를 받고 있을 뿐, 아직 생명에는 지장 없습니다.”케빈은 모든 희망을 잃은 듯한 하윤을 보며 묵묵히 대답했다.민혁을 포함한 사람들 모두 이번 사건에 연루되었을 텐데, 케빈만 이곳에 멀쩡히 서있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말해준다.이에 다시 입을 열 때, 하윤은 분노를 억제할 수 없었다.“시영 언니한테서 들었는데 민용재 쪽 사람이라면서요? 혹시 지금도 그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거예요?”시영의 이름을 듣는 순간 깊이를 알 수 없는 케빈의 눈동자에 그리움이 흘러나왔지만 곧바로 침통에 의해 가려졌다.하지만 하윤은 그런 케빈의 마음까지 헤아려 줄 여유가 없었다. 며칠간 쌓인 슬픔과 절망이 한 순간에 분노로 이어져 목소리마저 갈라졌다.“이번 사고 케빈 씨가 낸 거예요?”또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돌아오지 않는 대답은 마치 하윤의 불붙은 마음에 기름을 들이 붙는 거나 다름없었다.순간 수도꼭지라도 틀어 놓은 것처럼 눈물이 그치지 않았고 갈라 터진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나를 이용해서 민혁 씨를 협박하려면 꿈 깨요. 저 케빈 씨 따라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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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4화 감금과 보호 사이

권하윤이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몸이 묶인 채 차에 타 있었다.운전석에 앉아 있는 케빈을 본 순간 하윤은 화가 거꾸로 치밀었다.“이! 원우 씨와 장욱 씨는 어떻게 했어요?”“아무 짓도 안 했습니다.”“아무 짓도 안 했다고? 그럼 저는 어떻게 데려온 거죠?”케빈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돌려 뒷좌석을 확인하더니 표정을 굳힌 채 가속 페달을 밟았다.관성에 의해 의자 등받이에 내동댕이 쳐진 하윤은 손발도 묶인 탓에 백미러로 뒤쪽 상황을 살필 수밖에 없었다.뒤에는 차 두대가 따라붙었는데, 딱 봐도 케빈의 차를 쫓아오고 있었다.그 차를 확인하는 순간 케빈의 표정은 싸늘해졌다.“추형탁 쪽 사람입니다.”고속도로 위를 질주하는 세 대의 차량.이런 곳에서 손을 쓰기 쉽지 않기에 케빈은 사람이 한적한 골목을 보자 얼른 핸들을 꺾어 오솔길로 들어섰다.그러자 뒤쫓아오던 두 대의 차도 바싹 따라붙었다.그렇게 그 두대의 차는 모두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다가 사냥감으로 전락되었다.……바람에 나뭇잎이 떨어졌다.약 15분 뒤, 하윤과 케빈은 다시 큰길로 빠졌다.뒤쪽을 확인한 하윤의 안색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아직도 아까 봤던 잔인한 장면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하지만 그 덕에 케빈의 말에 대한 믿음이 조금 늘어나기는 했다.추형탁이 따라와서 피해야 한다는 건 케빈의 말이 맞았다.그렇게 두 사람은 얼마 뒤 공항에 도착했다.하윤은 꽁꽁 묶인 자신의 손목을 보며 입을 열었다.“이 상태로 저 비행기 태울 생각이에요?”사람이 많이 다니는 공항에서 하윤을 강제로 비행기에 태우는 건 아무리 케빈이어도 불가능했다.하윤도 자기 손에 묶인 끈을 풀어줬으면 하는 마음에 허리를 곧게 세웠다.“갈 생각이면 저 풀어줘요.”케빈은 시동을 끈 차를 공항 입구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세웠다.“우원준 씨가 사모님을 놓아준 것도 강원에 있으면 죽는 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하윤에게 그 말은 우습게 들렸다.“다른 곳에서도 도망치지 못하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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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5화 함께 있는 거나 다름없다

선실 문이 열리는 순간, 신선한 공기가 권하윤의 폐부로 흘러 들었고 등 뒤에서 승무원 두 명이 하윤을 슬쩍 막아서면서 뒷줄에 있는 승객과 하윤을 갈라 놓았다.더 이상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하윤은 안내 방송을 듣자마자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비행기가 착륙한 위치는 공항과 거리가 꽤 멀었기에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하지만 하윤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경찰차가 와서 연행할 테니까.전에는 그저 혐의만 있었지만 해원에서 도망치는 순간 도주 죄가 추가되어 하윤은 곧바로 경찰서로 연행되었다.……심문실의 불이 켜지자 하윤은 무의식적으로 눈을 감았다.이윽고 하윤의 맞은편에 앉은 경찰의 심문이 시작되었다.“수사 기간 왜 마음대로 해원을 떠났습니까?”“…….”“해원을 떠나 있는 동안 사건 수사에 방해되는 행동을 했나요?”“…….”“용의자 신분으로 수사 기간 마음대로 통제 구역을 벗어날 수 없으며 경고 전화를 받으면 곧바로 돌아와야 합니다. 지금 그쪽이 한 행동은 범죄 행위에 해당한다는 거 알고는 있습니까? 계속 묵비권 행사하면 구속할 수밖에 없습니다.”경찰의 강력한 태도에도 하윤은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하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또 설명해도 될지 알 수 없었다.아직 하윤이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만한 증거도 없는 마당에 많이 말할수록 실수를 범하기 쉬우니 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게다가 하윤이 혐의를 벗는다 해도 어떤 위험이 기다리고 있을 지 알 수 없었다.차라리 이대로 구속되는 게 낫지.……“찰칵.”하윤은 역시나 구치소에 수감되었다.구치소 안에는 하윤뿐만 아니라 약 열 댓 명 정도 더 있었다.심지어 아직 재판이 진행되지 않은 피고인이 있는가 하면 재판이 끝난 뒤 감옥으로 이송될 범인도 있었다.게다가 고작 사회 규범을 어긴 경범죄자도 있었다.하윤은 살인 혐의를 받고 있는 지라 수갑을 채워야 했다. 그 때문인지 구치소에 있는 사람들 모두 하윤을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봤다.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수군대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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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6화 약점

여자가 말한 목숨줄은 고치소에서 나눠주는 음식이었다. 껍질을 벗기지 않은 감자와 배추를 한데 섞어 만든 음식과 찐빵 하나.권하윤은 음식조차 넘길 수 없어 찐빵을 손에 쥔 채 작게 한 입 씩 베어 물었다.여자는 하윤이 음식을 제대로 넘기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고 싱긋 웃었다.“여기 금방 들어온 사람들은 다 자기처럼 그러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괜찮아져. 우리 사건은 커서 아마 곧바로 형이 내려질 거야. 그러면 감옥으로 갈 건데, 그곳은 여기처럼 사람이 많지 않아.”여자의 낙관적인 말에 하윤은 끝내 정신이 조금 들었다.“걱정되지 않나요?”여자는 그 말에 피식 웃었다.“걱정될 게 뭐가 있어? 여기서는 자고 싶을 때까지 자고 맞지 않아도 되는데 얼마나 좋아.”히죽거리는 여자의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눈가에 난 상처와 팅팅 부은 오른쪽 뺨은 여자의 지난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 지 그대로 설명해 주고 있었다.그런 여자의 낙천적인 모습을 보자 하윤도 더 이상 죽상을 하고 있을 수 없어 억지 웃음을 지었다.“그렇다면 다행이네요.”……그 후 며칠 동안, 하윤은 여자의 이름이 장옥분이고 해원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장옥분이 그 마을에 관해 말할 때 하윤은 왠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을 받았지만 순간적으로 떠오르지 않았다.며칠 동안 구치소에 있던 일부 사람들은 감방으로 옮겨졌고 또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기도 했다.매일 거의 잠도 자지 못하는 하윤은 가끔 잠이 들 때면 꿈에서 도준을 만나곤 했다.때로는 구조되어 자기를 데리러 온 도준을 만나기도 했고.때로는 도준을 끝내 찾지 못해 망망대해를 보며 엉엉 울고 있는 자신을 보기도 했다.그렇게 폐인처럼 연속 며칠을 지내던 어느 날 아침, 웬 젊은 여자가 구치소에 새로 수감되었다. 상황을 들어보니 여자애는 형에 불만을 품고 집행관들과 충돌이 있고 그 결과 또 재 심판 받게 되었다고 한다.장옥분은 사연 있는 듯한 눈빛으로 그 여자애를 바라보며 같은 말을 중복했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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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7화 딜을 하다

권하윤은 나지막한 소리로 위로를 계속했다.“걱정하지 말아요. 만약 제가 나가면 언니 딸 꼭 보살펴 줄 테니까.”똑 같은 처지인 하윤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솔직히 설득력이 없었다.하지만 장옥분은 큰소리 치는 하윤을 비난하기는커녕 그녀의 손등을 두드렸다.“자기도 인생이 고달팠을 텐데, 건강하게 버티고 있는 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해. 내가 도와줄게.”그때, 옆에서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중년 여성이 슬쩍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 들었다.“저 며칠 뒤면 풀려 나는데 언니 딸애 전화 번호가 뭐예요? 제가 언니 대신 꼭 말 전해 줄게요.”“저도 곧 있으면 나가요. 저도 언니 대신 딸애 돌봐 줄게요.”장옥분의 처지를 알게 된 사람들은 두려움에 떠는 대신 오히려 서로 위로의 말을 전했다.그러던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이시윤, 나와.”“…….”밖으로 나온 순간 하윤은 당연히 또 심문실로 끌려갈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면회실에 도착한 하윤은 외외로 낯익은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하윤은 의자에 앉아 맞은편에 앉은 남자를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봤다.“오랜만이네요, 아주버님.”“오랜만이네, 다섯째 제수씨.”민재혁은 증오의 눈빛을 한 채 태연한 척 인사했다.“아, 이제는 둘째 제수시라고 해야겠네?”이윽고 민재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아직 축하주도 마시지 못했는데 과부가 된 것도 모자라 이 꼴이 되었다니 참 안 됐어.”민재혁의 말도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음식도 제대로 먹지 않은 탓에 하윤의 낯빛은 창백하다 못해 거의 투명해질 지경이었고 옷 태가 살기는커녕 옷걸이에 옷을 걸어 둔 첫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하지만 하윤은 오히려 입가에 냉소를 지었다.“맞아요. 제가 어떻게 아주버님처럼 소탈한 태도를 취할 수 있겠어요? 저는 아버지의 죽음에 꿈쩍도 하지 않는 누구처럼 파렴치한이 아니거든요.”하윤의 도발에 민재혁은 대수롭지 않은 듯 미소 지었다.“제수씨, 충고까지 해준 사람한테 너무 쌀쌀맞은 거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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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8화 목숨을 부지할 부적

민재혁은 고개를 들어 주위를 훑어보더니 시선을 권하윤에게 멈췄다.“도피처로는 꽤 지낼만 하겠네. 그런데 그건 알아야지, 언젠가 햇빛을 볼 날이 올 거라는 거.”맞는 말이다.현재 조관성이 아직 완전히 직위를 박탈당한 게 아닌 데다, 해원에서 손을 썼다가 꼬투리라도 잡힐까 봐 아직은 몸을 사리고 있는 추형탁 때문에 지금은 그나마 상황을 늦출 수 있지만 조솬성한테 무슨 일이라도 있다면 이 곳도 더 이상 하윤을 보호하지는 못할 거다.하지만 하윤은 민재혁을 보며 비아냥거렸다.“추형탁은 아는지 모르겠네요. 아주버님이 겉으로는 자기와 손을 잡고 뒤에서는 이런 짓이나 꾸미고 있는 거.”하윤의 말에 민재혁은 여전히 얄미운 미소를 지었다.“그래도 제수씨인데 내가 설마 무슨 짓이라도 할까? 칩을 다른 사람 손에 넘기는 것보다야 나한테 넘기면 내가 제수씨 남은 평생 잘 살게 도울 수도 있는데.”민재혁의 같잖은 말에 하윤은 웃음만 나왔다.“내가 그 말을 믿을 거라고 생각해요?”“도준이 이미 목숨 부지할 수 있는 부적 적도는 준 거로 아는데. 이대로 죽으면 그 재산도 물거품이 된다는 거 잊지 말아야지.”‘재산…….’‘동림 부지를 말하는 건가?’그제야 하윤은 도준이 기어코 그 땅을 하윤의 명의로 바꿔 놓은 이유를 알았다.그것은 단지 재산일 뿐만 아니라 하윤을 지켜줄 부적이기도 하다.만약 도준이 언젠가 하윤을 보호해줄 수 없게 되면 그 땅을 이용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테니까.도준은 언제나 제멋대로이며 남의 목숨, 심지어는 자기 목숨마저 벌레 보듯 하는 사람이다.다른 사람 같으면 한번 길을 떠날 때마다 경호원을 줄줄이 데리고 다니겠는데 도준은 늘 로건만 데리고 심지어 가끔은 로건조차 데리고 다니지 않는다.그런데 그런 그가 하윤을 위해 보호막을 겹겹이 쳐준 거다.순간 눈시울이 시큰거려 눈물이 흘러내리려 했지만 하윤은 애써 참았다.“칩을 갖고 싶다고요?”민재혁은 하윤이 이제야 생각을 고쳤다고 생각했는지 환한 미소를 지었다.“그래.”“좋아요. 칩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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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9화 보석해 주다

모두가 자고 있는 탓에 그 누구도 하윤이 발버둥 치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점차 적어지는 산소에 눈앞에 환각이 생겨 나고 급기야 눈 앞이 하얗게 변하기까지 했다.‘안 돼, 이렇게 죽을 수 없어.’권하윤은 점차 발악을 멈췄다.“…….”그제야 하윤의 입과 코를 막고 있던 사람들이 눈빛을 교환하며 손의 힘을 풀었다. 하지만 그때, 하윤이 눈을 뜨며 힘껏 소리쳤다.“사람…… 읍…….”하윤의 위에 있던 사람이 재빨리 옷으로 하윤의 입과 코를 다 시 막았지만 잠깐 사이에 내지른 비명에 다른 사람들이 이미 깨어났다.“당신들 뭐 하는 거야?”장옥분은 심각한 상황에 얼른 큰 소리로 외쳤다.“여기 사람 죽여요! 빨리 오세요!”소리를 들은 교도관은 곧바로 현장에 도착해 일을 벌인 두 사람을 데려갔다.하윤도 피해자로서 당연히 조사실로 끌려갔다.솔직히 하윤은 자기를 죽이려 했던 두 사람을 전에 만난 적이 없고 심지어 두 사람이 수감되기 전 대화 한 번 나누어 본 적 없다.그런데 두 사람은 한사코 하윤에게 원한이 있어 홧김에 그런 일을 벌였다고 주장했다.결국 두 사람은 곧바로 감옥으로 연행되었고 하윤은 다시 원래 방으로 돌아왔다.장옥분은 다시 돌아온 하윤을 무척 걱정했다.“자기, 괜찮은 거야?”“괜찮아요.”하윤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그 두 사람 미친 거 아니야? 구치소에 와서도 사람을 해치다니…….”하윤은 자기가 잠자던 곳을 보며 서늘한 눈빛을 내뿜었다.두 사람은 미친 게 아니다. 하윤에게 경고하는 거지. 구치소에 있다고 한들 절대 안전한 게 아니라는 경고.지금 생각해보면 두 사람은 하윤의 목숨까지 노린 것은 아닌 듯했다.하지만 만약 생명이 위독해지면 하윤은 병원으로 이송될 거고 그러면 당연히 구치소에서 벗어나게 될 테니 놈들이 손쓸 기회가 더 많아질 거다.‘또 만재혁인가 보네. 나를 밖으로 몰아내려고.’한 번의 위기는 넘겼지만 하윤은 조금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미재혁은 한 번 실패하면 또 다시 시도할 테니까.이번에 행운이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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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0화 무사하기를 바라다

오랜만에 느끼는 따스함에 권하윤은 순간 멍해졌다. 하지만 다음 순간 코트에서 나는 깊은 우드 향을 맡았다.순간 실망감이 밀려왔고 얇은 코트가 마치 태산처럼 어깨를 짓누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공태준은 하윤의 초췌한 모습을 안쓰럽게 쳐다봤다.“괜찮아요?”하윤은 태준의 부축을 치하며 그를 빤히 쳐다봤다.“지금 나 꺼내 주는 게 설마 칩 때문이야?”태준은 하윤의 등에 손을 얹으며 문을 열었다.“저는 그저 윤이 씨가 무사하기를 바랄 뿐이에요.”쨍쨍 내리 쬐는 햇볕 아래, 신선한 공기가 얼굴을 스치자 달짝지근한 내음이 느껴졌다.오랜만에 느끼는 햇살 때문에 눈시울이 시큰거리며 눈물이 흘러내렸다.눈 앞을 막고 있는 문을 나서면 자유이자 모험이 기다리고 있었다.태준은 하윤을 재촉하지도 강요하지도 않고 대신 문을 받친 채 하윤의 선택을 기다려 주었다.태준의 이런 신사적인 모습에 하윤은 뜬금없이 웃음이 났다.‘나한테 선택의 기회가 있기는 할까?’사건에 새로운 진전이 있다면 언젠가 풀려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오늘은 태준이 왔다지만 내일은 또 민재혁이 올 수도 있었다.……구치소를 떠나는 차 안에서 하윤은 길가에 우뚝 솟은 건물들과 사람들을 관찰했다. 참으로 낯서면서도 익숙했다.하윤을 감싸고 있던 껍데기가 점점 벌어지면서 가장 연하고 부드러운 상처를 드러낸 채 시련을 이겨내라고 강요하는 듯했다.하윤의 옆에서 하윤의 옆모습을 바라보는 태준도 수많은 감정이 스쳐지나는 듯했다.그러다가 차가 어느 한 곳을 지날 때, 하윤은 갑자기 입을 열었다.“차 세워요.”운전석에 앉아 있는 이남기는 백미러로 태준을 힐끗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모습을 본 후에야 차를 길가에 세웠다.하윤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해변가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이것은 작은 해변가다. 갈라진 물줄기가 먼 곳으로 이어지는 바다.바다의 비린내가 섞인 바람이 자꾸만 하윤의 얼굴을 때렸다.“그날 시험 훈련을 하던 곳 여기 아니에요.”하윤도 알고 있다. 그저 도준과 조금이나마 가까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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