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 Chapter 751 - Chapter 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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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1화 모든 걸 끝내다 

‘도준 씨인가?’ 권하윤은 얼른 눈을 감고 자는 척했다. 병실 바닥에 복도의 불빛이 흘러 들더니 남자가 그 빛을 밟으며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분명 볼 수 없었지만 하윤은 지금 들어온 사람이 바로 민도준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때문에 계속 온 몸의 힘을 빼고 자는 척했다. 우선 도준의 태도를 보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해야 했으니까. ‘도준 씨가 이번 일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면 나한테도 기회가 있을 거야. 하지만 만약 충격을 받지 않았다면…….’ “됐어. 자는 척 그만해.” 갑자기 가까워진 목소리에 하윤은 깜짝 놀라 무의식적으로 눈을 떴다. 도준은 어느새 침대 옆까지 다가와 두 팔로 침대를 짚은 채 하윤을 바라보고 있었다. 계획이 틀어지자 하윤은 약 2초간 멍하니 있다가 끝내 막 잠에서 깨어난 척 연기했다. “저, 지금 어디 있죠?” 도준은 하윤을 빤히 바라봤다. 그러고는 하윤이 겁을 먹자 그제야 두 글자를 내뱉었다. “병원.” 도준은 의자에 앉으면서 병실 안 분을 켜자 눈부신 불빛에 하윤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다가 불빛에 적응하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물을 따르고 있는 도준의 모습이 보였다. 맑은 액체를 유리 잔에 가득 담은 도준은 그것을 하윤에게 건넸다. “물 마셔.” 하윤은 도준의 마음을 알 수 없어 손을 뻗으려 했지만 도준은 그녀의 손을 피하며 마치 직접 먹여주려는 것처럼 행동했다. ‘왜 아무것도 묻지 않지? 대체 뭐 하려는 거?’ 하윤은 도준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도준은 움직이지 않는 하윤을 보더니 그녀의 목덜미를 잡고는 물을 먹였다. “입 벌려.” 확실히 목이 마른 터라 하윤은 물 한 컵을 단숨에 마셔버렸다. 물을 삼키는 소리는 조용한 공간에서 유난히 뚜렷하게 들렸다. 컵을 다시 테이블 위에 돌려놓은 뒤에야 도준은 자리에 다시 앉아 다리를 꼬고는 무서운 눈빛으로 하윤을 바라봤다. 마치 속을 꿰뚫어볼 것만 같은 날카로운 눈빛에 하윤은 저도 모르게 이불 속의 손을 꽉 그러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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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2화 한 번 믿어봐 

“그래.” 민도준은 별로 고민하지도 않고 동의했다. 모든 게 자기 뜻대로 되자 권하윤은 실감이 나지 않아 무의식적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목적을 달성하자 바로 나긋나긋해진 말투에 병실 안 분위기는 조금 풀어졌다. 도준은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 말을 이었다. “계속해 봐. 또 뭘 원해? 한꺼번에 말해.” ‘말하라고?’ ‘해원으로 가고 싶다는 걸 말해도 되나?’ ‘그럼 던 씨와 했던 약속은 말해야 하나?’ 하윤이 고민에 잠겨 있을 때 도준이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만약 지금 말하지 않으면 앞으로 다시 찾아왔을 때 이렇게 쉽게 동의하지 않을 거야.” 그 말에 하윤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다가 한참 뒤에 끝내 말을 꺼냈다. “저 해원으로 돌아가 아버지의 사건을 조사해보고 싶어요. 적어도 억울함은 풀어주고 싶어요.” 남자의 눈은 순간 어두워졌다. “내가 사람을 찾아 조사하는 거 도와주겠다고 했잖아. 꼭 혼자 가야겠어?” “네, 꼭 가야 돼요.” 하윤이 알고 있는 아버지에 관한 일은 거의 대부분 다른 사람의 입에서 들은 거다. 그러다 보니 자꾸만 멋대로 추측하게 되고 자기가 ㅏㄹ고 있는 게 아무리 많더라도 진실을 제대로 찾아내지 못했다. 더욱이 민도준이든 공태준이든 두 사람의 목적성이 너무 강해 하윤은 그 누구도 완전히 믿을 수는 없었다. 때문에 이번 기회에 직접 알아보고 싶었다. 그 답이 어떻든 하윤은 진실을 찾고 싶었으니까. 도준은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있던 금속 라이터 뚜껑을 튕겼다. “그 다음은?” 하윤은 순간 멈칫했다. “그 다음이라니요?” “답을 찾아내면 그 뒤에 뭘 하려고?” ‘만약 아버지의 죽음이 도준 씨와 관련이 있다면 어떻게 하지?’ 이 질문은 너무 잔인해 그런 가능성을 조금만 생각해도 무너질 수 있다. 하윤은 이 일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상상이 가지 않았다. 매번 이런 생각만 떠오르면 하윤은 일이 이 지경까지는 아닐 거라고 자기 암시를 했었다. 그러지 않으면 자기를 꽁꽁 싸맨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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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3화 마음이 식다 

솔직하게 말한 뒤 권하윤은 민도준을 빤히 바라보며 그의 반응을 기다렸다. 하윤은 도준이 자기와 던이 만난 걸 알았으니 자기의 계획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속여서 의심을 사기 보다는 솔직히 말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아니나 다를까 하윤의 말을 들은 도준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걸 인지하는 순간 하윤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도준이 자기를 가둬 두지 않아도 여전히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에 숨이 막혔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기에 하윤은 태도를 누그러뜨렸다. “저 일부러 속이려던 게 아니에요. 제가 공태준과 만나는 걸 도준 씨가 싫어하니까 던 씨한테 도움을 청한 것뿐이에요.” 도준은 천천히 입꼬리를 올리며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나를 위해서 그렇게 선택했다? 음, 확실히 전보다는 나아졌네. 전에는 도망칠 생각만 하더니 이제는 내 마음도 생각해줄 줄 알고. 이건 뭐 칭찬이라도 해줘야 하나?” 하윤은 도준의 비아냥거리는 말투를 참지 못하고 눈을 들어 그를 바라봤다. “도준 씨가 제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알고 있는데 제가 도망칠 수나 있겠어요?” 약한 모습을 드러낸 채 동정을 유발하던 하윤의 눈에는 원망도 섞여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새장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새 같았다. 그저 새장 안에 갇혀 있기 싫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전에 이 새장이 자기를 위해 얼마나 많은 비바람을 막아줬는지 잊은 그런 새 말이다. 하윤도 말을 내뱉고 난 뒤 자기의 말이 도준을 이용할 대로 이용하고 버리겠다는 뜻으로 들릴 수 있다는 걸 알아챘다. 하지만 자기가 마치 범인처럼 갇혀 감시를 당한다는 생각만 하면 평정심을 되찾기 어려웠다. 도준은 울렁거리는 가슴을 짓누르는 하윤을 보더니 정서를 알 수 없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억울해? 나를 이젠 견딜 수 없어서 자살로 피하려 한 거야?” 하윤은 울컥했는지 ‘네’라고 대답하고는 도준을 노려봤다. “도준 씨랑 있는 매일이 숨막혀요. 죽은 거랑 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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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4화 전화가 끊기다 

권하윤은 끝까지 예의를 지키지 못했다. “던 씨, 사람들은 보통 전화를 하면 목적부터 말해요. 지금처럼 빙빙 에둘러 말하지 않고.” 던은 하윤의 어조에서 불쾌함을 눈치채고는 헛기침을 해댔다. “그게 사실은 제가 시윤 씨 남편분과 대화를 나눠 봤거든요. 그래서 상황을 알고 싶어서요. 만약 해원으로 가는 계획에 변화가 있다면 저도 스케줄 변화가 필요해요…….” ‘대화를 해봤다’는 말을 듣는 순간 하윤은 순간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대체 언제…… 뭐라고 말한 거예요?”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가 만난 것부터 다음주 월요일에 해원에서 합류하기로 한 것까지 모두 사실대로 말했으니까.” 하윤은 던의 말을 듣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 났다. 심지어 뒤로 갈 수록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따라서 자기가 도준 앞에서 어떻게 연기를 했었는지 떠오르자 하윤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아니, 이건 쪽팔린 것도 쪽팔린 거지만 도준을 오해했다는 사실에 당황해 났다. 하윤은 도준이 자기와 던이 만난 걸 알게 된 게 당연히 지금껏 자기를 감시해와서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어제 했던 말이 다시 떠오르자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이시윤 씨, 괜찮아요?” “괜찮냐고요? 제가 괜찮아 보여요?” 화를 풀 곳이 없자 하윤은 갈팡질팡했다. “왜 그걸 도준 씨한테 말한 거예요? 어쩜…….” 하윤이 던을 비난하려고 단어를 생각하고 있을 때 던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민 사장은 이시윤 씨 남편이잖아요. 그런데 남편한테 미리 말하지 않고 그 아내를 데리고 떠나면 그건 도피 아닌가요?” “…….” “만약 남편이 이상한 쪽으로 생각하는 게 걱정된다면 그것도 걱정할 거 없어요. 시윤 씨를 만나기 전에 이미 남편분한테 연락을 드렸으니까.” 던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마치 망치처럼 하윤을 세게 내리쳤다. 그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하윤은 대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고 손에 들고 있는 핸드폰마저 천근 만근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하윤은 애써 호흡을 가다듬고 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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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5화 냉대하다

연속 사흘 동안 권하윤은 민도준을 보지 못했다. 손목에 그은 상처가 깊지 않아 이제는 점점 아물기 시작했다. 하지만 심장 질환으로 복합적인 문제가 생길까 봐 의사는 매일 하윤을 검사하곤 한다. 그렇게 일요일이 다가오자 하윤은 끝내 참지 못했다. 하루 뒤면 월요일, 바로 던과 약속을 잡은 날이니까. 며칠 동안 하윤은 마치 유배당한 사람처럼 매일 의사, 간호사를 만나는 외에 가끔 디저트 배달을 하러 온 로건을 만나는 게 다였다. 하윤은 도준에게 전화하려 했지만 매번 전화는 연결이 되지 않았다. 몇 번이고 보낸 문자 메시지도 모두 그래도 묻히고 말았다. 이에 하윤은 도준과 이미 헤어진 사이인가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아니야. 도준 씨는 그냥 나를 떠나지 못하게 병원에 가둬 둔 것뿐이야.’ 하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간호사 한 분이 병실로 들어왔다. “퇴원 수속 끝났습니다. 차 준비해 드릴까요?” …… 차에 오르는 순간까지도 하윤은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로건이 고개를 돌리며 물어 왔다. “사모님, 집으로 모실까요?” 하윤은 약 몇 초간 머뭇거리다가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 문을 열기 전에 하윤은 도준이 안에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자 거실은 텅텅 비어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자 하윤은 점점 허전해졌다. 집에는 심지어 아주머니도 보이지 않았다. 조용한 공간에 적막이 흘렀다. 하윤은 주위를 맴돌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면 나 이제 자유인가?’ ‘이제 떠나도 되나?’ 하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눈앞이 흐릿해졌다. 이 모든 게 너무 갑자기 끝나 버린 탓인지도 모른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작별도 없이 심지어는……. 오해했다는 사과의 말도 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래, 이 원인일 거야. 그래서 이렇게 슬픈 걸 거야.’ 하윤은 생각을 정리하고는 다시 도준의 번호를 눌르고는 길게 이어지는 대기 소리를 들었다. …… “웅…… 웅…….” 테이블 위에서 울리는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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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6화 가인을 만나다 

민시영은 한눈에 상황을 캐치하고는 여자의 손에서 차를 받아 들었다. “전에 탕비실을 책임지던 수영 씨는 어디 갔죠?” “수영 씨는 고향으로 돌아갔어요. 저는 새로 온 직원…… 서연이라고 합니다.” 이름을 소개한 뒤 서연은 도준을 힐끗 살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무런 반응도 해주지 않는 도준을 보자 서연은 실망한 듯 손에 든 차와 디저트를 테이블에 내려 놓았다. 서연이 나간 뒤 시영은 도준을 향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오빠가 회사에 더 있다간 아주 회사 직원 뽑는 기준이 미인 대회가 되겠어. 어제는 정연 씨가 새로 왔다더니 오늘은 또 서연 씨가 새로 오고. 사숙은 대체 어디서 저렇게 예쁘장한 애들을 구하는지 몰라.” 도준은 담배를 한 모금 들이켜더니 느릿하게 대답했다. “네 사무실 쪽도 만만치 않던데. 남자 비서만 4명 추가됐더라.” 그 말에 시영은 고개를 저었다. “난 오빠처럼 하고 싶은 대로 못하잖아. 숙부님이 그렇게 열성을 다해 사람을 밀어주는데 거절할 수 있어야지. 하나만 고르라고 했는데 다 괜찮아 보여서 다 받았어.” 도준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시영을 바라봤다. “즐길 줄 아네.” 스파이를 심었을 때 만약 한 명만 심는다면 당연히 시영만 감시할 텐데 여럿이 함께 있으면 시영뿐만 아니라 서로를 감시해야 한다. 사람이 많으면 한사람한테 떨어지는 게 적을뿐더러 모두 자기의 위치를 지켜내기 위해 서로를 경계하는 건 당연하다. 더욱이 4명의 비서가 할 일이 없을까 봐 시영은 일부러 밖에 나갈 때 매번 다른 비서를 데리고 나가기에 사람들마다 처하는 상황이 달라 보고할 때 소식도 혼란스럽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 방법을 오랫동안 사용할 수는 없기에 시영은 도준을 바라봤다. “대외 무역팀 물갈이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지훈한테 맡기는 건 어떨 것 같아?” “그건 나중에.” 시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시계를 확인했다. “나 저녁에 송씨 집안 사람들과 식사 약속 있는데 오빠도 얼굴 좀 비춰.” “송씨 집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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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7화 신경도 쓰지 않아 

권하윤은 회사로 오기 전 민도준을 만날지 말지 결정을 내리지도 못했다. 도준을 다시 보면 떠나기 싫을까 봐, 이 모든 걸 끝내기 싫을까 봐. 하지만 도준은 벌써부터 하윤이 없는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만약 예전이었다면 도준은 절대 다른 여자가 자기에게 접근해 오는 걸 허락하지 않았을 텐데, 특히 차에 앉게 하는 건 더더욱 불가능 했을 텐데. ‘이렇게 받아들였다는 건 이제 도준 씨의 마음 속에 네가 없다는 뜻일지도.’ ‘하긴, 남자들이란 원래 새것을 좋아하고 낡은 건 싫어하니까. 나만 바보처럼 오해한 것 때문에 속상해한 거였네.’ 하윤은 넋이 나가 몸을 숨기는 것조차 잊은 바람에 가냘픈 실루엣이 그대로 시영의 시선에 드러나고 말았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시영은 백미러에 비친 하윤을 보자 놀란 듯 입을 열었다. “오빠, 저 사람 형수 아니야?” 뒷좌석에 앉은 서연은 형수라는 두 글자에 놀라 시영의 시선을 따라 뒤돌아봤다. 이윽고 하윤을 보자마자 도준이 자기를 내쫓을까 봐 다시 도준에게 눈길을 돌렸다.  하지만 의외로 차를 세우려는 의도가 없어 보이는 도준을 보자 서연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보아하니 민 사장님과 사모님의 관계가 소문처럼 좋은 건 아닌가 보네.’ 시영은 도준이 하윤을 무시하는 걸 보자 두 사람 사이에 모순이 있다는 걸 바로 알아채고는 낮은 한숨을 쉬었다. “윤이 씨 몸도 안 좋은데 저러다 길에서 쓰러져 다른 사람이 주어 가기라도 하면 큰일인데.” 이 시각 백미러에 비친 하윤의 실루엣은 작다 못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작은 실루엣은 점점 점으로 변해 시선속에서 멀어졌다. 마침 퇴근 시간이라 주위에는 차 경적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런 길가에서 하윤은 마치 넋이라도 잃어버린 것처럼 멍하니 걸어갔다. 왜 여기까지 왔는지 와서 이런 장면을 봐야 하는지 스스로 화가 나고 서러웠다. ‘요즘 나 피해 다니는 걸 보면 답이 안 나오나?’ ‘아니다. 우리 사이에 걸림돌이 너무 많아. 차라리 더 이상 얽히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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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8화 애인? 

시연의 말은 이미 꺼진 불에 다시 기름을 부었다. 마치 도준을 걱정하는 듯한 시연의 말에 하윤은 머리가 찌근거렸다. 심지어 시영마저도 할 말을 잃고 백미러로 도준을 보며 자기도 최선을 다했다는 듯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서연은 하윤의 기분을 눈치채지 못한 듯 낮은 목소리로 말을 보충했다. “아니면 저 내릴게요. 민 사장님, 저 데려다 주지 않아도 돼요. 너무 번거롭잖아요.” 남의 속을 잘 헤아리는 듯한 한 마디에 하윤은 그야말로 생트집을 잡는 막무가내인 사람이 되어 버렸다.  하윤은 여기로 오기 전 도준에게 오해한 일에 대해 사과하려고 했지만 등 두에서 들려오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할 말을 잃었다.  더욱이 도준이 요즘 매일 이런 다정한 여자와 함께 보냈을 것을 생각하자 여기까지 찾아온 게 후회됐다. 도준은 핸들을 꺾으면서 옆을 힐끗 거리더니 화가 나 있는 하윤의 모습을 눈에 넣었다. 이윽고 무심한 듯 입을 열었다. “번거롭기는 해. 아니면 같이 식사하러 가는 건 어때?” 약 2초간 침묵이 흐르더니 서연의 얼굴은 이내 붉게 물들었다. 아직은 탕비실에서 잡일을 돕는 그녀로서 도준과 시영 같은 회사 중요 인사와 함께 식사를 한다는 건 꿈만 같은 일이었기에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저 절대 폐 끼치지 않겠습니다.” 서연의 기분은 날아갈 것만 같았지만 하윤은 답답하다 못해 당장 차에서 내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런 상황에서 하윤이 차에서 내리는 건 오히려 안 될 말이었다. 어쨌든 하윤은 여주인인 셈인데 그녀가 가면 다른 사람이 오히려 얕볼 수 있어 꾹 눌러 참았다. 사실 전에도 도준 곁에 여자들은 끊이질 않았다. 누구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신분에 사람을 홀리는 잘생긴 외모덕에 분명 뜨거운 불인 줄 알지만 불나방들이 덤벼들곤 했었다. 하지만 전에는 이처럼 답답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윤은 무릎 위에 놓인 손을 꽉 그러쥐었다. 그도 그럴 게…… 전에 도준은 한 번도 다른 여자가 자기한테 접근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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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9화 체면이 깎이다 

룸 안에는 송 대표와 송민우, 그리고 전에 권하윤에게 명함을 건넸던 여 부사장과 세일즈 매니저도 함께 있었다. 나머지 두 사람은 하윤을 보자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지만 서연을 보는 순간 그대로 굳어버렸다. 특히 서연이 중요한 직책을 가진 직원이 아니라는 걸 듣는 순간 표정은 묘해졌다. 하윤은 당연히 그들의 무얼 생각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모르는 척 연기했다. 그리고 그제야 하윤은 자기가 이 자리에 올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아챘다. 하지만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 때문에 저도 모르게 여기까지 와버린 데다 이미 식사가 시작되어 하윤은 더더욱 자리를 피할 수 없었다. 때문에 마치 억지로 무대 위로 끌려와 즉흥 연기를 펼치는 행인처럼 어색한 연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하윤의 자리는 당연히 도준의 옆에 배정되었다. 그리고 서연은 권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조심스럽게 도준의 반대편 옆자리로 다가갔다. “저 여기 앉으면 되나요?” 도준은 서연을 빤히 바라볼 뿐 제지하지 않았다. 주인공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송 대표도 당연히 뭐라 할 수 없어 자기 자리에 앉았다. 두 회사의 협력을 위해 송씨 가문은 충분한 성의를 보였다. 송씨 가문은 유명한 재벌가에 속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송 대표도 자수성가로 회사를 일으킨 사람이기에 회사가 다른 회사처럼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송 대표는 기술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매번 기술 혁신을 할 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한다면 창고에 있는 기계들은 그저 고철에 불과하게 된다는 것도. 솔직히 오늘 이 자리에서 송 대표는 도준의 옆에 앉으려고 했지만 서연 때문에 떨어져 앉게 되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서류를 회전식 테이블에 올려 놓고 빙 돌려 도준에게 건넸다. “민 사장님, 이건 저희가 작성한 계약서입니다. 한번 확인하세요. 문제가 있다면 저희가 수정하겠습니다.” 하지만 서류가 도준한테 가기도 전에 서연이 중간에 가로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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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0화 하윤의 체면을 봐주다 

송 대표는 얼른 품에서 펜을 꺼내더니 또 서연이 가로채기라도 할가 봐 빙글 돌아 직접 민도준에게 건네주었다. “펜 여기 있습니다.” 도준은 펜을 받아 들자마자 서류에‘슥슥’ 사인했다. 그 모습을 본 송 대표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그대로 기절할 뻔했다. 하지만 이내 흥분을 가라앉히고 서류를 받아 들고는 감사 인사를 했다. “이시윤 씨, 민 사장님, 감사합니다.” 하윤은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멍해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제지하려 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아니…… 왜 보지도 않고 사인해요?” 도준은 눈썹을 치켜 올렸다. “그러니까 열심히 보라고 했잖아. 본인이 안 봤으면서 내 탓처럼 말하네?” 하윤은 말문이 막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괜히 화를 내서 성깔을 부린 걸 후회하는 동시에 도준이 밑지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 이 해프닝 덕에 송 대표는 하윤을 신처럼 떠받들며 보살처럼 생겼다는 둥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는 둥 칭찬을 늘어놓았다. 게다가 하윤의 관상까지 분석하며 복이 가득하고 장수할 팔자라는 칭찬까지 해댔다. 심지어 송씨 가문의 다른 사람들조차 하윤을 마스코트인 것처럼 받들며 서연은 아예 병풍 취급을 해버렸다. 이게 달갑지 않았는지 서연은 이내 눈알을 굴리더니 테이블 위에서 찻주전자를 들어 제멋에 차를 따르기 시작했다. “민 사장님, 오래 말씀하셔서 목 마르실 텐데 물 차 좀 드세요.” 심지어 차를 따르기 전에 일부러 소매를 걷어 올리고 가는 팔을 드러내더니 몸을 한껏 숙인 채로 도준에게 차를 건네며 눈빛을 보냈다. 도준은 서연이 따라준 차를 받아 들더니 손가락으로 찻잔을 빙 돌리더니 입꼬리를 씩 올렸다. “차 따르는 거 좋아하나 봐?” 서연은 도준의 눈빛에 얼굴을 붉히더니 부끄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다면 자리에 앉을 필요도 없겠네.” 도준은 웨이터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여기 의자 빼고 손에 들고 있는 쟁반과 걸레 이 여자한테 넘겨요.” 서연의 얼굴은 일순 새하얗게 질렸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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