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애처가 대표님과 결혼했어요: Chapter 391 - Chapter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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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1화

하은설이 웃으며 말했다. “강한 척하는 건 여전하네?” 심유진도 입을 삐죽거렸다. “너도 나한테 시비 거는 건 여전하다?” 두 사람은 마주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좋다.”하은설의 말에 심유진도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게.”시간이 많이 흐른 만큼 두 사람 모두 많이 변했지만 그들의 우정만은 전혀 변함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있었다. 하은설은 집까지 차를 몰고 갔다. 그녀의 집은 소위 말하는 “농촌”에 위치해 있었기에 고층건물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주위에 보이는 집들은 모두 넓은 마당이 있는 작은 별장들이었다. 하은설의 집 역시 마찬가지였다. 몇 년간 차곡차곡 저축한 돈으로 마련한 집이었다. “경주 시중심에서 화장실 한 칸 살 정도의 가격이야.” 하은설이 얘기했다. 심유진은 이런 생활이 너무 부러웠다. 집안에 들어가니 주차장과 오락실, 헬스장까지 볼 수 있었다. 게임기나 운동기구 같은 건 심유진도 충분히 살 수 있었다. 그저 이 정도로 큰 집이 없을 뿐이었다. “집 값이 싼 게 장점이야.”하은설이 한숨을 쉬었다. “주변에 정말 아무것도 없거든. 마트나 병원 모두 여기서 몇천 킬로미터는 가야 돼. 저녁 8시만 돼도 길에 아무도 없어. 혼자 살 때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넌 모를 거야. 밤마다 누가 쳐들어와서 날 해치기라도 할까 봐 마음 졸였는데 이젠 네가 왔으니까.” 하은설이 심유진을 안고 볼에 입을 맞췄다. “이젠 무서워할 필요 없겠다!” 심유진은 자신을 데려온 것이 이 목적 때문이었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하은설은 자신의 옆방을 내어줬다. “원래는 손님방이었어. 혹시 친구들이 오면 이 방을 쓰게 했었는데 사실 쓸 일이 별로 없으니까 방에 딱히 뭐가 없어. 이불은 다 새 거로 갈아 놨으니까 이 방은 네가 마음대로 인테리어 해도 돼. 이젠 네 거야.” 심유진은 방을 꾸밀 기력도 없었다. 샤워를 끝마치고 침대에 눕자마자 심유진은 잠에 들었고 짐도 풀지 못했다. 하은설이 방에 들어와서 심유진을 깨워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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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2화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 이 정도는 먹어줘야 하는 거 아냐?” ”그건 그래.” 하은설도 납득이 가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다음날까지 이어졌다. 심유진은 여전히 하은설이 강제로 깨워야만 일어났다. 알람이 몇 번이나 울리는데도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은설이 불만스러워하며 말했다. ”네가 돼지야? 어제 온종일 잤으면서 밤에 잠이 와?” 시차에 적응하지 못할까 봐 같이 밤새 얘기나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정말 필요 없는 걱정이었다. 심유진이 하품을 하며 인정했다. ”나 진짜 돼지인가 봐.” 이 말을 하면서도 심유진은 몰려오는 졸음을 이겨내기가 힘들었다. 아침은 여전히 하은설이 준비했다. 토스트와 계란프라이, 베이컨, 그리고 우유 한잔이었다. 사실 아침 식사로 충분한 양이였는데도 심유진은 여전히 배가 부르지 않아 하은설 집에 남은 토스트까지 다 먹어 치웠다. ”너 진짜 좀 이상해.” 하은설이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오전에 볼일 다 끝나면 병원 가서 검사 한번 해보자. 아무 일도 없으면 좋은 거고 혹시 무슨 병이 있는 거면 빨리 치료할 수 있으니까.” 사실 심유진도 자신의 상태가 조금 달라진 걸 눈치챘다. 하지만 그저 환경이 달라지면서 생긴 변화일 뿐이라고 생각했기에 굳이 병원까지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하은설은 끝내 심유진을 병원까지 끌고 갔다. 심유진은 영어가 유창하지 않았기에 대부분 하은설이 의사와 대화를 했다. 의사가 뭐라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하은설이 놀란 표정을 하더니 복잡한 심정으로 심유진을 바라봤다. 심유진은 영문은 모르지만 굉장히 초조해졌다. “왜? 뭐라고 하시는데?” “너 혹시 이번 달에 생리 온 적 있어?” 하은설의 뜬금없는 질문에 심유진이 잠시 생각해 보더니 대답했다. “아직 없어.” 심유진은 일이 바쁜 데다가 야근까지 자주 했기에 생활패턴이 매우 불규칙적이었다. 그러니 생리 불순이 생기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는 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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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3화

그녀는 확실히 성생활을 오랫동안 안 했다. 하은설은 심유진의 손을 잡고 진지하게 물었다. “이 아이 낳을 거야?”“아니!”심유진의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를 낳을 수는 없었다. 자신이 겪었던 비극을 아이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은설이 심유진의 선택을 의사에게 전달했다. 의사 선생님의 얼굴에서 웃음이 점차 사라지더니 아쉬움만 남았다.“수술 날짜는 빠른 시일 내에 잡겠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더 자세한 검사가 필요해요.”한 시간 가량의 검사를 마친 후 의사가 얘기했다. “지금 상태로는 당장 수술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심유진은 약을 잔뜩 처방받았다. “일단 몸상태부터 회복하고 일주일 뒤에 다시 검사하러 오세요. 그 사이에 정말 아이를 낳지 않으실 건지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네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심유진과 하은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 안은 너무 조용해서 서로의 숨소리까지 들릴 지경이었다. 한참 지나 하은설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이를 안 낳는 게 맞는 것 같아. 이제야 새 인생을 살아보려고 하는데 아이한테 잡혀 있을 수는 없지. 게다가 낳는다 하더라도 온전한 가족의 사랑을 줄 수 없잖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심유진은 아이를 낳을지 말지에 대해서는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그저 아이 아빠가 누구일지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시간을 계산해 보면 병실에서 병간호를 해주던 그때 임신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이상하게 몸이 쑤시긴 했는데 설마 밤중에 누군가 허태준의 병실에 들어가 그런 짓을 했던 걸까? 어떤 일이 있었던 간에 이제 심유진은 증거를 댈 수도 없었다. “시내에 타로점을 봐주시는 분이 있는데 진짜 용하대!” 하은설이 일부러 화제를 돌렸다. “이따 같이 가서 운세나 한번 보자.” 심유진은 이런 걸 잘 믿지 않았지만 하은설이 기대하는 듯하니 그냥 한번 체험이나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동의했다. 시내는 확실히 흥성흥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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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4화

심유진은 몰래 도망가려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하은설이 신속하게 그녀를 자리에 앉혔기 때문이었다. 심유진은 타로술사와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테이블 우에는 촛불과 타로 카드밖에 없었다. “나랑 가장 친구, Shen이에요.”하은설이 타로술사에게 심유진은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왠지 음산한 목소리에 심유진은 또 조금 무서워졌다. “안녕하세요.” 심유진이 억지로 웃으며 인사하자 타로술사가 타로 카드를 손에 들며 말했다. “어떤 타로를 보시겠어요?” 하은설이 대신 대답했다. “해외에서 여기로 온지 얼마 안 됐어요. 이제 과거는 잊고 새 출발을 할 생각인데 앞으로 일이 순탄하게 풀릴지 좀 봐줘요.” 타로술사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카드를 테이블에 깔고 심유진에게 다섯 장 뽑으라고 했다. 심유진은 딱히 이 타로점을 믿지 않았기에 대충 다섯 장 뽑아서 내밀었다. 그중 첫 장을 뒤집은 타로술사가 걱정 어린 눈길로 심유진을 보며 말했다. “얼마 전에 잘못된 선택을 하셨군요.” 얼마 전이라는 말은 매우 애매한 단어였다. 1분 전이 될 수도 있고 한시간 전이 될 수도 있고 한 달 전이 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사람은 일생 동안 수많은 틀린 선택들을 하는 법이다. 심유진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하은설은 굉장히 불안해 보였다. 타로술사가 두 번째 카드를 해석했다. “아마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일 거예요.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지만 이것 또한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죠. 감정상에서는 굉장히 타격을 받았음에도 여전히 사랑을 놓지 못했군요. 비록 지금은 눈앞에 많은 시련들이 있지만 다 이겨내고 나면 앞길이 평탄할 거예요.” 지금 심유진의 상태와 비슷했다. 사랑을 아직 놓지 못했다는 말만 빼고. 그 말 때문에 심유진은 타로술사가 하는 말들이 들어맞는 것은 그저 우연의 일치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 카드는 가장 최근의 사랑이 당신의 도피로 인해 끝난다고 알려주네요. 상대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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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5화

“임신하셨네요! 축하드려요!” 심유진은 하은설을 바라보며 눈을 흘겼다. “나 몰래 무슨 수작이라도 부렸지.” 하은설이 손을 저으며 억울해했다. “나 아니야! 이분 용하시다니까 안 믿네.” “앞으로 밝은 미래가 있겠네요. 행복한 연애도 하실 거고요. 배속의 아이가 앞으로 나아갈 동력이 되어줄 거예요. 당신을 정확한 방향으로 인도할 거고요.” 타로술사가 마지막 카드를 뒤집었다. “좋은 일들이 곧 생길 거예요. 구사일생하는 동시에 옛 애인이랑 다시 마주치겠네요. 그러니까 당신이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그 사람이랑 결국 함께하게 될 거예요.” 타로술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심유진은 뒤도 안 돌아보고 밖으로 나갔다. 하은설은 재빨리 돈을 지불하고 그 뒤를 쫓았다. “왜 그래?” 하은설의 물음에 심유진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사기 쳐서 돈이나 뜯어먹는 가게에 1초도 더 있고 싶지 않아.” “그런 가게 아니야!” 하은설은 여전히 타로술사를 신임했다. “내가 전에 왔을 때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다 맞췄어. 진짜라니까? 그리고 내가 아는 사람들도 이 집이 엄청 용하다고 난리야.” “저렇게 두리뭉실하게 얘기하는데 당연히 용하다고 착각할 수 있지. 그리고 사람은 저도 모르게 저런 예언에 자신의 미래를 끼워 맞추게 돼있어. 원래 사주도 비슷한 개념이잖아.” “그럼 네가 임신한 건 어떻게 알았겠어? 그리고 뭐가 두리뭉실하다는 거야. 네 전애인이라면 두 명밖에 없는데 한 명은 죽었으니 허태준밖에 없잖아.” 심유진은 차마 자신도 허태준이 생각나 당황해서 가게를 빠져나왔다고 얘기할 수 없었다. 그리고 사실 타로술사의 말에 설득되고 있었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 타로술사는 사실 허태준을 떠나면 안 된다는 말을 돌려서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유진아.” 하은설이 심유진의 손을 잡더니 머뭇거리며 말했다. “이 아이... 낳는 게 어떨까?” 심유진은 이 상황이 우스웠다. “고작 타로술사가 한 말들 때문에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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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6화

심유진은 놀랍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친구로 지냈으면서도 친구가 미래에 대해 어떤 계획들을 세우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당시에 이미 좋은 직장에 취업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유학을 선택한 것도 다 엄마아빠가 결혼을 재촉하는 게 싫어서 그런 거였어. 엄마아빠는 맨날 싸우면서도 이럴 때만 의견이 딱 맞더라.” 하은설은 대구 사람이었고 대구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도 주말에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매번 방학 때마다 가장 늦게 집에 가고 가장 빨리 돌아오는 것도 하은설이었다. 심유진은 나중에야 하은설은 사실 이혼 가정이고 부모님 모두 새 가정을 꾸리셨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심유진은 하은설이 결혼을 거부하는 것도 가정환경의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결혼하지 않을 거야. 너도 봤다시피 나 혼자서도 엄청 잘 살고 있어. 하지만 아이는 키우고 싶어. 그리고 그 아이가 네 아이면 더 좋을 것 같아.” 심유진은 잠깐 흔들렸으나 다시 이성을 부여잡았다. “잘 생각해 봐, 이 아이의 아빠는 어쩌면 강간범일 수도 있어.” “하지만 아이 엄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인걸. 그리고 굉장히 훌륭한 사람이고. 난 너를 믿고 나 자신도 믿어. 아이가 나쁜 길로 빠져들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너...” 심유진이 한숨을 쉬었다. “며칠만 더 생각해 볼게.” “그래, 좀 더 생각해 봐.” 차에서 내리고 하은설이 또 얘기했다. “아 맞다, 아까 네가 나가고 나서 타로술사가 얘기하길 근래에 헤어진 지 오래된 가족이나 친구를 만날 거라고 하더라? 그리고 그 사람이 귀인이니까 꼭 아껴주라고 했어.” “거짓말!” 심유진은 이쯤 되니 타로술사가 정말 사기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헤어진 지 오래된 가족이나 친구가 어디 있어.” “그러니까 오래 못 보거나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사람이겠지.” “없어.” 심유진이 단칼에 잘라서 얘기했다. 굳이 얘기하자면 한 번도 만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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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7화

잠결에 심유진도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으니 심유진도 여러 가지 불편함들을 감수해야 했다. 다행히 아이가 착해서 식탐이 많아지고 잠을 많이 자는 것 외에는 달라진 점이 많지 않았지만 배가 점점 불러오면서 움직이기가 많이 불편해졌다. 7월 중순, 심유진은 하은설이 다니는 학교에서 공부를 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8월에 정식으로 학교에 갔을 때 교수님은 심유진의 불러온 배를 보고도 전혀 놀라는 기색이 없이 몸 관리 잘하라는 당부의 말만 남겼다. 대학생활은 매우 충실했고 그렇게 바쁘지도 않았다. 교수님의 도움이 있어서가 아닐까 싶었다. 수업을 듣고, 팀플을 하고, 도서관에서 책도 좀 읽고... 이런 일상들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새해가 밝아왔다. 심유진의 출산예정일은 1월 말이었다. “조금만 더 늦게 태어나면 금돼지 아기일 텐데.” “돼지가 뭐가 좋다고.” “귀엽잖아! 근데 강아지띠 아기도 귀엽겠지? 둘 다 준비해야겠다.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좀 진정해. 금팔찌가 꼭 필요한 것도 아니고, 태어난 다음에 사도 똑같아.” 지난 9개월 동안 하은설은 이미 아기를 위한 방을 따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유아용품도 싹 다 구비해 놓았다. 옷, 신발, 기저귀, 분유... 이제는 하다하다 금팔찌까지 준비하고 있었다. “내 돈으로 내가 사주겠다는데 간섭하지 마.” 심유진이 구박해도 하은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심유진의 진통이 시작됐을 때 그녀는 교수님의 사무실에서 동기들과 논문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다. 진통은 갑자기 시작되었고 심유진은 배를 부여잡으며 신음소리만 냈다. 동기들은 다급히 그녀를 부축했고 교수님은 차로 병원까지 데려다주시고 하은설에게 연락했다. 하은설은 분만실에 따라 들어가고 싶었으나 심유진이 거절했다. 분만실에서 혼자 몇 시간을 견뎌 낸 후 심유진은 의사와 간호사들의 응원 하에 3.5키로에 달하는 건강한 아들을 낳았다. 아이 울음소리가 병실에 울려 퍼지자 심유진이 간신히 눈을 떴다. 눈물이 저도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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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8화

5년 뒤, 경주 시내에 검은색 벤츠 차량 한 대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넓은 차량 안에는 한 여인과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타고 있었다. 여인은 깔끔한 단발머리에 명품 브랜드의 신상을 입고 노트북을 쳐다보며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옆에 앉아있는 남자아이는 깔끔한 흰 셔츠에 나비넥타이, 반짝거리는 가죽구두를 신은 멋쟁이 꼬마 신사였다. 아이가 창밖을 내다보며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풍경을 감상했다. “엄마, 여기가 엄마 고향이야?” 옥구슬 같은 목소리에 심유진이 업무를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맞아.” “하늘이 유럽보다 훨씬 맑아!” 심유진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유럽에서 일자리를 찾았다. 거기는 높은 건물들이 많아 이렇게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드물었다. “그러게.”심유진도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눈빛에 어둠이 깔려 있었다. 몇 년간 돌고 돌다 보니 결국은 또 이곳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얼마나 이곳에 있을지는 몰라도 이번에는 그 사람들이랑 더 이상 엮이는 일이 없었으면 했다. 한 시간 만에 회사가 마련해 준 거처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심유진은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심장이 점점 빠르게 뛰고 두려움이 밀려왔다. 여긴 허태준과 같이 살던 그곳이었다. “엄마!” 작은 손이 심유진을 붙잡자 그녀는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 “왜 그래?” 심유진은 억지로 웃어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올라가자.” 다행히도 이 아파트는 전에 살던 아파트와 조금 떨어져 있었다. 하나는 정문과 가깝고 하나는 옆문과 가까웠기에 주민들끼리 마주 칠일도 드물었다. 심유진은 그나마 안심했다. 심유진은 캐리어를 한 손으로 끌고 나머지 한 손으로 남자아이의 손을 잡았다. “별이 배 안 고파?” 별이라는 이름은 하은설이 지어준 태명이었다. 타로 카드에서 본 별이 생각나 지은 이름이었다. “엄청 배고파.” “뭐 먹고 싶어? 배달시켜줄게.” 일이 너무 바빠서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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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9화

그래서 있어야 할 물건들은 다 있었다. 가구들이 조금 낡긴 했지만 심유진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일이 바쁘니 그냥 집에 돌아와서 잠이나 잘 뿐, 딱히 쓸 일도 없을 것 같았다. 심유진은 우선 침실에 이불을 깔아 두고 가져온 옷들을 옷장에 정리해 두었다. 별이는 옷을 나르며 혼자 꽤나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정리가 끝나자 마침 배달음식도 도착했다. 심유진은 식사를 하며 하은설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화면에 하은설의 얼굴이 나타나자 별이가 신나서 하은설을 불렀다. “이모!”하은설은 별이의 얼굴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별아! 우리 아들! 이모가 너무 보고 싶어.” “이모 울지 마!”별이가 당황해서 심유진에게 도움의 눈길을 보냈다.“울면 끊을 거야.”심유진은 울먹거리며 심유진을 째려봤다.“아들 데려가 놓고 이젠 대화도 못하게 하는 거야?”“출장 가 있느라고 챙겨줄 수가 없으니 나보고 데려가라 한 사람이 누군데?”하은설이 정말 바쁜 게 아니었더라면 심유진도 별이를 여기까지 데려오지 않았을 것이다. 별이는 이미 그쪽에서의 생활에 적응했고 친구도 많이 사귀었다. 헤어지는 것이 슬프긴 해도 별이까지 원래의 생활을 포기하고 여기에서 새로 시작하라고 하기는 싫었다. 하은설은 시무룩해져서 사과했다.“별아, 이모가 미안해.”별이가 모니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괜찮아, 이모.”하은설은 또 울먹거렸다.“됐어. 너 출장 갔다 돌아오면 별이 다시 데려다주고 올게.”별이가 심유진에게 물었다.“그럼 엄마는?”“엄마는 여기서 일 해야지.”심유진의 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몇 년 더 지나서 우리 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쯤 되면 엄마도 돌아갈 거야.”심유진은 회사의 파견을 받아 대한민국에 첫 킹 호텔의 총지배인을 맡게 되었다. 사실 회사에서 제의했을 때 심유진은 이 기회를 거절했었다. 겨우 이 도시에서 벗어난 만큼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회사에서는 여러 번 설득했고 일을 잘 마무리하면 본사로 돌아와 승진시켜 주겠다고까지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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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0화

별이는 한참 달래서야 겨우 진정했다. 별이는 밥을 먹고 알아서 씻고는 방으로 들어가서 잠을 청했다. 나이에 비해 별이는 많이 성숙했다. 심유진과 하은설 모두 일이 바쁘고 출장도 잦다 보니 유치원 때부터 별이는 독립성이 강했다. 심유진은 지친 몸을 이끌고 소파에 앉아 다시 하은설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은설이 물었다. “별이는 자?” “응.”심유진이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안 가겠대.” “좀 기다려봐. 며칠 지나면 현실을 받아들일 거야.” 하은설은 별이와 함께 있은 시간이 심유진보다 길었기에 별이의 성격에 대해서도 더 잘 알았다. “그러길 바라야지.” “넌 언제부터 출근하는데?” 하은설이 물었다. “내일.” 심유진은 이미 호텔 각 부문 책임자들에게 내일 아침 9시에 회의에 참석하시라고 메일을 보내 놓은 상태였다. “벌써?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시차 적응도 안 됐을 텐데.” “괜찮아.” 심유진은 이미 야근에 익숙해져 있어서 낮이나 밤이나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하은설이 항상 몸관리에도 신경 쓰라고 잔소리를 했지만 심유진은 전혀 듣지 않았다. “뭐가 괜찮다는 거야. 너 거울 좀 봐. 다크서클이 얼마나 심한 지.”하은설은 답답했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심유진이 담담하게 말했다. “화장 좀 두껍게 하지 뭐.” 하은설은 당장이라도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서 심유진을 강제로 재우고 싶은 욕구를 간신히 참았다. “근데 너 괜찮아?””뭐가?” 심유진이 질문의 뜻을 이해하지 못해 한번 되묻자 하은설이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그러니까... 경주로 돌아간 거 말이야. 괜찮아?” “나쁘지 않아.” 심유진이 웃으며 말했지만 하은설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무슨 일 있으면 꼭 나한테 말해. 경주에 있기가 너무 힘들면 바로 돌아오고. 어차피 퇴사해도 내가 충분히 너랑 별이 먹여 살릴 수 있어.” 하은설의 당당함에 심유진은 웃음이 터졌어. “알겠어.”그렇게 한참 얘기를 나누다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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