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뒤, 경주 시내에 검은색 벤츠 차량 한 대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넓은 차량 안에는 한 여인과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타고 있었다. 여인은 깔끔한 단발머리에 명품 브랜드의 신상을 입고 노트북을 쳐다보며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옆에 앉아있는 남자아이는 깔끔한 흰 셔츠에 나비넥타이, 반짝거리는 가죽구두를 신은 멋쟁이 꼬마 신사였다. 아이가 창밖을 내다보며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풍경을 감상했다. “엄마, 여기가 엄마 고향이야?” 옥구슬 같은 목소리에 심유진이 업무를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맞아.” “하늘이 유럽보다 훨씬 맑아!” 심유진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유럽에서 일자리를 찾았다. 거기는 높은 건물들이 많아 이렇게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드물었다. “그러게.”심유진도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눈빛에 어둠이 깔려 있었다. 몇 년간 돌고 돌다 보니 결국은 또 이곳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얼마나 이곳에 있을지는 몰라도 이번에는 그 사람들이랑 더 이상 엮이는 일이 없었으면 했다. 한 시간 만에 회사가 마련해 준 거처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심유진은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심장이 점점 빠르게 뛰고 두려움이 밀려왔다. 여긴 허태준과 같이 살던 그곳이었다. “엄마!” 작은 손이 심유진을 붙잡자 그녀는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 “왜 그래?” 심유진은 억지로 웃어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올라가자.” 다행히도 이 아파트는 전에 살던 아파트와 조금 떨어져 있었다. 하나는 정문과 가깝고 하나는 옆문과 가까웠기에 주민들끼리 마주 칠일도 드물었다. 심유진은 그나마 안심했다. 심유진은 캐리어를 한 손으로 끌고 나머지 한 손으로 남자아이의 손을 잡았다. “별이 배 안 고파?” 별이라는 이름은 하은설이 지어준 태명이었다. 타로 카드에서 본 별이 생각나 지은 이름이었다. “엄청 배고파.” “뭐 먹고 싶어? 배달시켜줄게.” 일이 너무 바빠서 심
그래서 있어야 할 물건들은 다 있었다. 가구들이 조금 낡긴 했지만 심유진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일이 바쁘니 그냥 집에 돌아와서 잠이나 잘 뿐, 딱히 쓸 일도 없을 것 같았다. 심유진은 우선 침실에 이불을 깔아 두고 가져온 옷들을 옷장에 정리해 두었다. 별이는 옷을 나르며 혼자 꽤나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정리가 끝나자 마침 배달음식도 도착했다. 심유진은 식사를 하며 하은설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화면에 하은설의 얼굴이 나타나자 별이가 신나서 하은설을 불렀다. “이모!”하은설은 별이의 얼굴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별아! 우리 아들! 이모가 너무 보고 싶어.” “이모 울지 마!”별이가 당황해서 심유진에게 도움의 눈길을 보냈다.“울면 끊을 거야.”심유진은 울먹거리며 심유진을 째려봤다.“아들 데려가 놓고 이젠 대화도 못하게 하는 거야?”“출장 가 있느라고 챙겨줄 수가 없으니 나보고 데려가라 한 사람이 누군데?”하은설이 정말 바쁜 게 아니었더라면 심유진도 별이를 여기까지 데려오지 않았을 것이다. 별이는 이미 그쪽에서의 생활에 적응했고 친구도 많이 사귀었다. 헤어지는 것이 슬프긴 해도 별이까지 원래의 생활을 포기하고 여기에서 새로 시작하라고 하기는 싫었다. 하은설은 시무룩해져서 사과했다.“별아, 이모가 미안해.”별이가 모니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괜찮아, 이모.”하은설은 또 울먹거렸다.“됐어. 너 출장 갔다 돌아오면 별이 다시 데려다주고 올게.”별이가 심유진에게 물었다.“그럼 엄마는?”“엄마는 여기서 일 해야지.”심유진의 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몇 년 더 지나서 우리 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쯤 되면 엄마도 돌아갈 거야.”심유진은 회사의 파견을 받아 대한민국에 첫 킹 호텔의 총지배인을 맡게 되었다. 사실 회사에서 제의했을 때 심유진은 이 기회를 거절했었다. 겨우 이 도시에서 벗어난 만큼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회사에서는 여러 번 설득했고 일을 잘 마무리하면 본사로 돌아와 승진시켜 주겠다고까지 얘기했다
별이는 한참 달래서야 겨우 진정했다. 별이는 밥을 먹고 알아서 씻고는 방으로 들어가서 잠을 청했다. 나이에 비해 별이는 많이 성숙했다. 심유진과 하은설 모두 일이 바쁘고 출장도 잦다 보니 유치원 때부터 별이는 독립성이 강했다. 심유진은 지친 몸을 이끌고 소파에 앉아 다시 하은설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은설이 물었다. “별이는 자?” “응.”심유진이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안 가겠대.” “좀 기다려봐. 며칠 지나면 현실을 받아들일 거야.” 하은설은 별이와 함께 있은 시간이 심유진보다 길었기에 별이의 성격에 대해서도 더 잘 알았다. “그러길 바라야지.” “넌 언제부터 출근하는데?” 하은설이 물었다. “내일.” 심유진은 이미 호텔 각 부문 책임자들에게 내일 아침 9시에 회의에 참석하시라고 메일을 보내 놓은 상태였다. “벌써?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시차 적응도 안 됐을 텐데.” “괜찮아.” 심유진은 이미 야근에 익숙해져 있어서 낮이나 밤이나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하은설이 항상 몸관리에도 신경 쓰라고 잔소리를 했지만 심유진은 전혀 듣지 않았다. “뭐가 괜찮다는 거야. 너 거울 좀 봐. 다크서클이 얼마나 심한 지.”하은설은 답답했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심유진이 담담하게 말했다. “화장 좀 두껍게 하지 뭐.” 하은설은 당장이라도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서 심유진을 강제로 재우고 싶은 욕구를 간신히 참았다. “근데 너 괜찮아?””뭐가?” 심유진이 질문의 뜻을 이해하지 못해 한번 되묻자 하은설이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그러니까... 경주로 돌아간 거 말이야. 괜찮아?” “나쁘지 않아.” 심유진이 웃으며 말했지만 하은설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무슨 일 있으면 꼭 나한테 말해. 경주에 있기가 너무 힘들면 바로 돌아오고. 어차피 퇴사해도 내가 충분히 너랑 별이 먹여 살릴 수 있어.” 하은설의 당당함에 심유진은 웃음이 터졌어. “알겠어.”그렇게 한참 얘기를 나누다가 시간
심유진도 마찬가지였다. 여형민은 진작에 대구로 돌아간 줄 알고 있었다. “출장 왔어요. 며칠 후에 다시 돌아가요.”심유진이 웃으면서 가만히 잡힌 손을 빼냈다. 여형민의 반짝이던 눈이 풀이 죽는 것이 보였다.“그렇군요.”여형민의 시선이 별이에게로 향했다. 아직 어린아이지만 오관이 심유진과 꼭 닮아 있었다. 여형민은 번뜩 떠오르는 생각에 별이를 가리키며 놀라서 물었다.“혹시 유진 씨 아들이에요?”심유진은 침착하게 대답했다.“제 친구 아들이에요. 제가 친아들처럼 보살피고 있고요. 엄마가 한 달 동안 출장을 가서 지금은 제가 맡는 중이예요. 근데 갑자기 출장을 오게 돼서 결국 데리고 왔네요.”여형민은 그 말을 조금 의심했다. 친구 아들이라기에는 둘이 너무 닮아 있었다. 심유진은 더 이상 이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저는 살게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심유진이 자리를 뜨는데 여형민이 다급히 쫓았다.“아직도 원래 살던 곳에 사세요?”“아니요, 회사가 새 거처를 마련해 줬어요. 옆 아파트에 살아요.”여형민은 조금 실망한 것 같았다.“저녁 식사는 하셨어요? 식재료도 산 김에 집에 가서 뭐라도 해 먹으려고 하는데 같이 가실래요?”심유진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했다.“이미 먹었어요.”“그럼...”여형민은 계속 얘기를 나눌 명분을 찾느라 머리를 굴렸다.“뭐 더 사시려고요? 제가 들어 드릴까요?”“아니요.”심유진이 또 한 번 거절했다.“시리얼만 사면 돼요. 하나도 안 무거워요.”심유진은 시리얼을 카트에 담고 그대로 계산대로 갔다. 사실 살 물건이 많았지만 여형민을 따돌리기 위해서는 나중에 다시 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형민은 심유진이 자신을 피하고 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지 대신 계산을 해주고 짐을 들어줬다.“가시죠, 데려다 드릴게요. 날이 어두워져서 두 분이서 돌아가시기엔 위험해요.”심유진은 드디어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했다.“형민 씨.”“전 더 이상 전에 알던 사람들이랑 엮이고 싶지 않아요. 어떤 뜻인지 아시겠죠
심유진은 깜짝 놀라 쇼핑백도 떨어트릴 뻔했다. “왜 쫓아와요?” 심유진은 찔리는 구석이 있으니 더 화를 냈다. “네?” 여형민은 억울하다는듯 말했다. “따라온 거 아니에요. 제 친구도 이 아파트에 사는데 밥이나 한끼 얻어먹을까 해서 왔죠.” 심유진은 여형민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단번에 알아챘다. “집에서 요리할 생각이라면서요.” 여형민이 빈 장바구니를 보여주며 말했다. “아무것도 못 샀어요. 집에도 먹을 게 없고요.” 심유진이 그 말을 믿을 리가 없었다. 그녀는 별이의 손을 잡고 방향을 돌렸다. “안 산 물건이 있어서 이만 가볼게요.” “잘됐네요, 저도 이 참에 가면 되겠어요.” 심유진이 발걸음을 멈췄다. “그만해요. 마트 안 갈 거고 사실 이 아파트에 안 살아요.” 심유진이 여형민을 바라봤다. “연기 그만하고 제대로 얘기해요. 왜 따라오는 건데요?” “집까지 안전하게 모셔다 드리려고요.” 여형민은 진지해보였다. “그래요.” 심유진은 더이상 벗어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형민은 이제 아예 대놓고 따라왔다. 집 앞에 도착해서 심유진이 말했다. “고마워요, 이제 가보세요.” “네.” 하지만 여형민은 움직이지 않았다. “먼저 들어가세요. 별이도 안녕!”여형민이 별이를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 별이도 얼떨떨해서 그 인사를 받았다. “안녕히 가세요.” 심유진과 별이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여형민은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유진씨가 돌아왔어. 애도 한 명 데리고.”여형민 때문에 심유진은 우유와 시리얼밖에 못 샀다. 별이에게 거하게 한상 차려주려던 계획도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심유진은 우유를 시리얼에 붇고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가져왔다. “오늘은 이것밖에 없네.” 심유진이 미안해하며 말했다. “내일 엄마가 맛있는 거 사줄게.” 별이가 한 숟가락 크게 퍼먹으며 말했다. “이것도 맛있어!”그 사랑스러운 모습에 심유진은 별이의
열정적인 인사에 심유진은 조금 놀랐다. 별이도 당황스러운지 심유진의 옷자락을 잡고 뒤로 숨었다. 심유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하세요.” 심유진은 별이의 손을 잡고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호텔로 들어섰다. “혹시 호텔에 키즈 코너가 있나요?” 심유진이 부팀장에게 물었다. “있습니다. 직원을 시켜서 도련님 모시고 가라고 할까요?” “그럼 부탁드릴게요.” 부팀장이 직원을 불렀다. “도련님 데리고 키즈 코너로 가세요. 다치지 않게 잘 보살펴 드리고요.” “알겠습니다.” 심유진이 별이를 넘기면서 당부했다. “누나랑 놀고 있어. 무슨 일 생기면 엄마한테 연락하고.” 별이가 의젓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킹 호텔은 5성급 호텔이었기에 각종 시설이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었다. 키즈 카페만 해도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게다가 호텔 손님들은 무료로 이용 가능했다. 별이는 미끄럼틀도 타고 블록놀이도 하다가 다른 아이들이 엄마아빠랑 범퍼 카를 타는 모습을 부러운 눈길로 쳐다봤다. “타고 싶어?”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별이는 고개를 들었다. “삼촌? 여긴 어떻게...” 여형민은 양손으로 무릎을 짚으며 허리를 숙였다. “지나가는데 별이가 저걸 엄청 놀고 싶어 하는 게 보이더라고.” 여형민이 범퍼 카를 가리키며 말했다. “별이만 괜찮으면 삼촌이랑 같이 할까?” 별이의 눈에 기대가 가득했다. 하지만 엄마가 여러 번 신신당부했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낯선 사람이랑 얘기하지 말고 낯선 사람이 준 음식도 먹지 말고 따라가서도 안돼.” 하지만 이 아저씨는 낯선 사람이 아니지 않을까? “저희 엄마 친구예요?” 별이가 여형민에게 물었다. 어제 삼촌이 친구라고 얘기하는 걸 들은 기억이 있었다. “엄마가 누군데?” 여형민이 일부러 물었다. 심유진이 별이에게 어제 한 거짓말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기에 별이도 딱히 아무런 의심 없이 얘기했다. “어제 저랑 같이 있던 그 사람이
별이가 물을 마시려다가 멈칫했다.“전 아빠가 없어요.”별이 표정은 매우 담담했고 말투에서 아무런 슬픔도 느껴지지 않았다.“하지만 전 엄마가 두 분이나 계세요. 그래서 행복해요.”여형민은 그 말이 너무 가슴 아프게 느껴졌다,“그렇구나.”여형민이 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다가 별이가 딴 곳에 시선이 팔린 틈을 타서 손에 잡힌 머리카락을 지퍼 백에 담았다. 그들은 온 오전 함께 놀았다. 점심시간이 되자 여형민은 심유진이 곧 찾아올 것만 같아 별이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삼촌 갈게. 앞으로도 기회가 있으면 함께 놀자. 엄마한테 절대 삼촌이 왔다 갔다고 얘기하면 안 돼.”“왜요?”“삼촌은 아직 별이 엄마랑 화해를 못 했으니까.”“삼촌이 몰래 별이랑 논 걸 알면 삼촌한테 화낼 거야.”별이는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 여형민과 약속까지 했다. 차에 타자마자 여형민은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머리카락을 챙겼어. 연구실로 갈게.” 며칠 내내 심유진은 별이를 데리고 호텔로 출근했다. 역시나 하은설이 예상이 맞았다. 별이는 금방 호텔의 키즈 카페에 질려버렸고 유치원친구들을 그리워했다. 하지만 심유진이 유럽에 데려다주겠다고 할 때면 또 격렬하게 거절했다. “만약 정말 돌아가기 싫은 거면 얼른 유치원에 보내야겠어.”하은설과 영상 통화를 할 때 심 유진이 자신의 고민을 얘기했다.“하지만 사실 난 별이가 여기에 남지 말았으면 좋겠어.”유진이 본사에 돌아가려면 적어도 3년에서 5년 정도는 걸릴 것이다. 그때가 되면 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게 된다. 국내외의 교육은 차이가 매우 크기에 심유진은 별이가 적응을 하지 못할까 봐 걱정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국내의 이런 환경 하에서 아빠가 없는 아이라는 것은 놀림거리가 될 수 있었다. 비록 엄마가 사업에서 남부럽지 않은 성공을 거둔 사람이어도 말이다. 심유진은 별이가 이걸로 상처받기를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강제로 별이를 돌려보낸다면 별이도 싫고 너도 속상하잖아.”하은설은 심유진을 잘 알
“엄마, 나 이거 할래!” “엄마, 이거 재밌을 것 같아!”“엄마, 우리 저기 가서 줄 서자!” 별이는 굉장히 용감한 아이였다. 어떤 놀이기구든 다 타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별이에게는 겁도 많고 체력도 좋지 않은 엄마가 있다는 것이었다. 심유진은 별이와 함께 롤러코스터를 타고 내려온 뒤 어지럽고 속이 메슥거려 한참을 쉬어도 상태가 나아지지 않았다. 별이가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있자 심유진은 더더욱 미안했다. 심유진이 억지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별이 또 뭐 놀고 싶어? 엄마랑 같이 가자.”별이는 고개를 저으며 신유진을 앉혔다.“나 놀고 싶지 않아. 좀 앉아서 쉴래.”별이의 말이 진심인지는 몰라도 심유진은 그것이 자신을 배려해서 하는 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엄마 괜찮아.”“아니에요. 그냥 여기 계세요.”여형민이 어디선가 불쑥 나타났다. 심유진은 바로 별이의 손을 잡았다.“별아, 삼촌이랑 놀자.”별이는 여형민의 말에 매우 기뻤지만 심유진 때문에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심유진은 별이가 자신 때문에 재밌게 놀지 못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 잠시 여형민에 대한 의심을 거두기로 했다.“삼촌이랑 놀고 와. 엄마 여기서 잠깐 쉬고 있을게.”별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엄마 어디도 가지 말고 여기서 기다려야 돼.”별이가 신신당부를 하고 여형민을 따라갔다. 심유진은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갑자기 황당한 생각이 떠올랐다. 어쩌면 별이에게 새아빠를 찾아 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1시간 정도 지나서 별이와 여형민이 돌아왔다. 별이는 큰 솜사탕을 들고 짧은 다리로 재빨리 달려와서 심유진에게 안겼다.“엄마 이거 가져.”별이가 솜사탕을 건넸다. 너무 열심히 놀아서인지 별이는 얼굴이 빨개져 있었고 땀 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고마워.”심유진은 솜사탕을 받고는 휴지를 꺼내 별이의 얼굴에 맺혀 있는 땀방울을 닦아주며 말했다.“삼촌이랑 재밌었어?”별이가 망설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