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하셨네요! 축하드려요!” 심유진은 하은설을 바라보며 눈을 흘겼다. “나 몰래 무슨 수작이라도 부렸지.” 하은설이 손을 저으며 억울해했다. “나 아니야! 이분 용하시다니까 안 믿네.” “앞으로 밝은 미래가 있겠네요. 행복한 연애도 하실 거고요. 배속의 아이가 앞으로 나아갈 동력이 되어줄 거예요. 당신을 정확한 방향으로 인도할 거고요.” 타로술사가 마지막 카드를 뒤집었다. “좋은 일들이 곧 생길 거예요. 구사일생하는 동시에 옛 애인이랑 다시 마주치겠네요. 그러니까 당신이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그 사람이랑 결국 함께하게 될 거예요.” 타로술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심유진은 뒤도 안 돌아보고 밖으로 나갔다. 하은설은 재빨리 돈을 지불하고 그 뒤를 쫓았다. “왜 그래?” 하은설의 물음에 심유진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사기 쳐서 돈이나 뜯어먹는 가게에 1초도 더 있고 싶지 않아.” “그런 가게 아니야!” 하은설은 여전히 타로술사를 신임했다. “내가 전에 왔을 때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다 맞췄어. 진짜라니까? 그리고 내가 아는 사람들도 이 집이 엄청 용하다고 난리야.” “저렇게 두리뭉실하게 얘기하는데 당연히 용하다고 착각할 수 있지. 그리고 사람은 저도 모르게 저런 예언에 자신의 미래를 끼워 맞추게 돼있어. 원래 사주도 비슷한 개념이잖아.” “그럼 네가 임신한 건 어떻게 알았겠어? 그리고 뭐가 두리뭉실하다는 거야. 네 전애인이라면 두 명밖에 없는데 한 명은 죽었으니 허태준밖에 없잖아.” 심유진은 차마 자신도 허태준이 생각나 당황해서 가게를 빠져나왔다고 얘기할 수 없었다. 그리고 사실 타로술사의 말에 설득되고 있었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 타로술사는 사실 허태준을 떠나면 안 된다는 말을 돌려서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유진아.” 하은설이 심유진의 손을 잡더니 머뭇거리며 말했다. “이 아이... 낳는 게 어떨까?” 심유진은 이 상황이 우스웠다. “고작 타로술사가 한 말들 때문에 아빠가
심유진은 놀랍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친구로 지냈으면서도 친구가 미래에 대해 어떤 계획들을 세우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당시에 이미 좋은 직장에 취업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유학을 선택한 것도 다 엄마아빠가 결혼을 재촉하는 게 싫어서 그런 거였어. 엄마아빠는 맨날 싸우면서도 이럴 때만 의견이 딱 맞더라.” 하은설은 대구 사람이었고 대구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도 주말에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매번 방학 때마다 가장 늦게 집에 가고 가장 빨리 돌아오는 것도 하은설이었다. 심유진은 나중에야 하은설은 사실 이혼 가정이고 부모님 모두 새 가정을 꾸리셨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심유진은 하은설이 결혼을 거부하는 것도 가정환경의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결혼하지 않을 거야. 너도 봤다시피 나 혼자서도 엄청 잘 살고 있어. 하지만 아이는 키우고 싶어. 그리고 그 아이가 네 아이면 더 좋을 것 같아.” 심유진은 잠깐 흔들렸으나 다시 이성을 부여잡았다. “잘 생각해 봐, 이 아이의 아빠는 어쩌면 강간범일 수도 있어.” “하지만 아이 엄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인걸. 그리고 굉장히 훌륭한 사람이고. 난 너를 믿고 나 자신도 믿어. 아이가 나쁜 길로 빠져들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너...” 심유진이 한숨을 쉬었다. “며칠만 더 생각해 볼게.” “그래, 좀 더 생각해 봐.” 차에서 내리고 하은설이 또 얘기했다. “아 맞다, 아까 네가 나가고 나서 타로술사가 얘기하길 근래에 헤어진 지 오래된 가족이나 친구를 만날 거라고 하더라? 그리고 그 사람이 귀인이니까 꼭 아껴주라고 했어.” “거짓말!” 심유진은 이쯤 되니 타로술사가 정말 사기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헤어진 지 오래된 가족이나 친구가 어디 있어.” “그러니까 오래 못 보거나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사람이겠지.” “없어.” 심유진이 단칼에 잘라서 얘기했다. 굳이 얘기하자면 한 번도 만난
잠결에 심유진도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으니 심유진도 여러 가지 불편함들을 감수해야 했다. 다행히 아이가 착해서 식탐이 많아지고 잠을 많이 자는 것 외에는 달라진 점이 많지 않았지만 배가 점점 불러오면서 움직이기가 많이 불편해졌다. 7월 중순, 심유진은 하은설이 다니는 학교에서 공부를 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8월에 정식으로 학교에 갔을 때 교수님은 심유진의 불러온 배를 보고도 전혀 놀라는 기색이 없이 몸 관리 잘하라는 당부의 말만 남겼다. 대학생활은 매우 충실했고 그렇게 바쁘지도 않았다. 교수님의 도움이 있어서가 아닐까 싶었다. 수업을 듣고, 팀플을 하고, 도서관에서 책도 좀 읽고... 이런 일상들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새해가 밝아왔다. 심유진의 출산예정일은 1월 말이었다. “조금만 더 늦게 태어나면 금돼지 아기일 텐데.” “돼지가 뭐가 좋다고.” “귀엽잖아! 근데 강아지띠 아기도 귀엽겠지? 둘 다 준비해야겠다.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좀 진정해. 금팔찌가 꼭 필요한 것도 아니고, 태어난 다음에 사도 똑같아.” 지난 9개월 동안 하은설은 이미 아기를 위한 방을 따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유아용품도 싹 다 구비해 놓았다. 옷, 신발, 기저귀, 분유... 이제는 하다하다 금팔찌까지 준비하고 있었다. “내 돈으로 내가 사주겠다는데 간섭하지 마.” 심유진이 구박해도 하은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심유진의 진통이 시작됐을 때 그녀는 교수님의 사무실에서 동기들과 논문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다. 진통은 갑자기 시작되었고 심유진은 배를 부여잡으며 신음소리만 냈다. 동기들은 다급히 그녀를 부축했고 교수님은 차로 병원까지 데려다주시고 하은설에게 연락했다. 하은설은 분만실에 따라 들어가고 싶었으나 심유진이 거절했다. 분만실에서 혼자 몇 시간을 견뎌 낸 후 심유진은 의사와 간호사들의 응원 하에 3.5키로에 달하는 건강한 아들을 낳았다. 아이 울음소리가 병실에 울려 퍼지자 심유진이 간신히 눈을 떴다. 눈물이 저도 모
5년 뒤, 경주 시내에 검은색 벤츠 차량 한 대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넓은 차량 안에는 한 여인과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타고 있었다. 여인은 깔끔한 단발머리에 명품 브랜드의 신상을 입고 노트북을 쳐다보며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옆에 앉아있는 남자아이는 깔끔한 흰 셔츠에 나비넥타이, 반짝거리는 가죽구두를 신은 멋쟁이 꼬마 신사였다. 아이가 창밖을 내다보며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풍경을 감상했다. “엄마, 여기가 엄마 고향이야?” 옥구슬 같은 목소리에 심유진이 업무를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맞아.” “하늘이 유럽보다 훨씬 맑아!” 심유진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유럽에서 일자리를 찾았다. 거기는 높은 건물들이 많아 이렇게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드물었다. “그러게.”심유진도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눈빛에 어둠이 깔려 있었다. 몇 년간 돌고 돌다 보니 결국은 또 이곳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얼마나 이곳에 있을지는 몰라도 이번에는 그 사람들이랑 더 이상 엮이는 일이 없었으면 했다. 한 시간 만에 회사가 마련해 준 거처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심유진은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심장이 점점 빠르게 뛰고 두려움이 밀려왔다. 여긴 허태준과 같이 살던 그곳이었다. “엄마!” 작은 손이 심유진을 붙잡자 그녀는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 “왜 그래?” 심유진은 억지로 웃어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올라가자.” 다행히도 이 아파트는 전에 살던 아파트와 조금 떨어져 있었다. 하나는 정문과 가깝고 하나는 옆문과 가까웠기에 주민들끼리 마주 칠일도 드물었다. 심유진은 그나마 안심했다. 심유진은 캐리어를 한 손으로 끌고 나머지 한 손으로 남자아이의 손을 잡았다. “별이 배 안 고파?” 별이라는 이름은 하은설이 지어준 태명이었다. 타로 카드에서 본 별이 생각나 지은 이름이었다. “엄청 배고파.” “뭐 먹고 싶어? 배달시켜줄게.” 일이 너무 바빠서 심
그래서 있어야 할 물건들은 다 있었다. 가구들이 조금 낡긴 했지만 심유진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일이 바쁘니 그냥 집에 돌아와서 잠이나 잘 뿐, 딱히 쓸 일도 없을 것 같았다. 심유진은 우선 침실에 이불을 깔아 두고 가져온 옷들을 옷장에 정리해 두었다. 별이는 옷을 나르며 혼자 꽤나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정리가 끝나자 마침 배달음식도 도착했다. 심유진은 식사를 하며 하은설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화면에 하은설의 얼굴이 나타나자 별이가 신나서 하은설을 불렀다. “이모!”하은설은 별이의 얼굴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별아! 우리 아들! 이모가 너무 보고 싶어.” “이모 울지 마!”별이가 당황해서 심유진에게 도움의 눈길을 보냈다.“울면 끊을 거야.”심유진은 울먹거리며 심유진을 째려봤다.“아들 데려가 놓고 이젠 대화도 못하게 하는 거야?”“출장 가 있느라고 챙겨줄 수가 없으니 나보고 데려가라 한 사람이 누군데?”하은설이 정말 바쁜 게 아니었더라면 심유진도 별이를 여기까지 데려오지 않았을 것이다. 별이는 이미 그쪽에서의 생활에 적응했고 친구도 많이 사귀었다. 헤어지는 것이 슬프긴 해도 별이까지 원래의 생활을 포기하고 여기에서 새로 시작하라고 하기는 싫었다. 하은설은 시무룩해져서 사과했다.“별아, 이모가 미안해.”별이가 모니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괜찮아, 이모.”하은설은 또 울먹거렸다.“됐어. 너 출장 갔다 돌아오면 별이 다시 데려다주고 올게.”별이가 심유진에게 물었다.“그럼 엄마는?”“엄마는 여기서 일 해야지.”심유진의 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몇 년 더 지나서 우리 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쯤 되면 엄마도 돌아갈 거야.”심유진은 회사의 파견을 받아 대한민국에 첫 킹 호텔의 총지배인을 맡게 되었다. 사실 회사에서 제의했을 때 심유진은 이 기회를 거절했었다. 겨우 이 도시에서 벗어난 만큼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회사에서는 여러 번 설득했고 일을 잘 마무리하면 본사로 돌아와 승진시켜 주겠다고까지 얘기했다
별이는 한참 달래서야 겨우 진정했다. 별이는 밥을 먹고 알아서 씻고는 방으로 들어가서 잠을 청했다. 나이에 비해 별이는 많이 성숙했다. 심유진과 하은설 모두 일이 바쁘고 출장도 잦다 보니 유치원 때부터 별이는 독립성이 강했다. 심유진은 지친 몸을 이끌고 소파에 앉아 다시 하은설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은설이 물었다. “별이는 자?” “응.”심유진이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안 가겠대.” “좀 기다려봐. 며칠 지나면 현실을 받아들일 거야.” 하은설은 별이와 함께 있은 시간이 심유진보다 길었기에 별이의 성격에 대해서도 더 잘 알았다. “그러길 바라야지.” “넌 언제부터 출근하는데?” 하은설이 물었다. “내일.” 심유진은 이미 호텔 각 부문 책임자들에게 내일 아침 9시에 회의에 참석하시라고 메일을 보내 놓은 상태였다. “벌써?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시차 적응도 안 됐을 텐데.” “괜찮아.” 심유진은 이미 야근에 익숙해져 있어서 낮이나 밤이나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하은설이 항상 몸관리에도 신경 쓰라고 잔소리를 했지만 심유진은 전혀 듣지 않았다. “뭐가 괜찮다는 거야. 너 거울 좀 봐. 다크서클이 얼마나 심한 지.”하은설은 답답했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심유진이 담담하게 말했다. “화장 좀 두껍게 하지 뭐.” 하은설은 당장이라도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서 심유진을 강제로 재우고 싶은 욕구를 간신히 참았다. “근데 너 괜찮아?””뭐가?” 심유진이 질문의 뜻을 이해하지 못해 한번 되묻자 하은설이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그러니까... 경주로 돌아간 거 말이야. 괜찮아?” “나쁘지 않아.” 심유진이 웃으며 말했지만 하은설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무슨 일 있으면 꼭 나한테 말해. 경주에 있기가 너무 힘들면 바로 돌아오고. 어차피 퇴사해도 내가 충분히 너랑 별이 먹여 살릴 수 있어.” 하은설의 당당함에 심유진은 웃음이 터졌어. “알겠어.”그렇게 한참 얘기를 나누다가 시간
심유진도 마찬가지였다. 여형민은 진작에 대구로 돌아간 줄 알고 있었다. “출장 왔어요. 며칠 후에 다시 돌아가요.”심유진이 웃으면서 가만히 잡힌 손을 빼냈다. 여형민의 반짝이던 눈이 풀이 죽는 것이 보였다.“그렇군요.”여형민의 시선이 별이에게로 향했다. 아직 어린아이지만 오관이 심유진과 꼭 닮아 있었다. 여형민은 번뜩 떠오르는 생각에 별이를 가리키며 놀라서 물었다.“혹시 유진 씨 아들이에요?”심유진은 침착하게 대답했다.“제 친구 아들이에요. 제가 친아들처럼 보살피고 있고요. 엄마가 한 달 동안 출장을 가서 지금은 제가 맡는 중이예요. 근데 갑자기 출장을 오게 돼서 결국 데리고 왔네요.”여형민은 그 말을 조금 의심했다. 친구 아들이라기에는 둘이 너무 닮아 있었다. 심유진은 더 이상 이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저는 살게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심유진이 자리를 뜨는데 여형민이 다급히 쫓았다.“아직도 원래 살던 곳에 사세요?”“아니요, 회사가 새 거처를 마련해 줬어요. 옆 아파트에 살아요.”여형민은 조금 실망한 것 같았다.“저녁 식사는 하셨어요? 식재료도 산 김에 집에 가서 뭐라도 해 먹으려고 하는데 같이 가실래요?”심유진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했다.“이미 먹었어요.”“그럼...”여형민은 계속 얘기를 나눌 명분을 찾느라 머리를 굴렸다.“뭐 더 사시려고요? 제가 들어 드릴까요?”“아니요.”심유진이 또 한 번 거절했다.“시리얼만 사면 돼요. 하나도 안 무거워요.”심유진은 시리얼을 카트에 담고 그대로 계산대로 갔다. 사실 살 물건이 많았지만 여형민을 따돌리기 위해서는 나중에 다시 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형민은 심유진이 자신을 피하고 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지 대신 계산을 해주고 짐을 들어줬다.“가시죠, 데려다 드릴게요. 날이 어두워져서 두 분이서 돌아가시기엔 위험해요.”심유진은 드디어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했다.“형민 씨.”“전 더 이상 전에 알던 사람들이랑 엮이고 싶지 않아요. 어떤 뜻인지 아시겠죠
심유진은 깜짝 놀라 쇼핑백도 떨어트릴 뻔했다. “왜 쫓아와요?” 심유진은 찔리는 구석이 있으니 더 화를 냈다. “네?” 여형민은 억울하다는듯 말했다. “따라온 거 아니에요. 제 친구도 이 아파트에 사는데 밥이나 한끼 얻어먹을까 해서 왔죠.” 심유진은 여형민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단번에 알아챘다. “집에서 요리할 생각이라면서요.” 여형민이 빈 장바구니를 보여주며 말했다. “아무것도 못 샀어요. 집에도 먹을 게 없고요.” 심유진이 그 말을 믿을 리가 없었다. 그녀는 별이의 손을 잡고 방향을 돌렸다. “안 산 물건이 있어서 이만 가볼게요.” “잘됐네요, 저도 이 참에 가면 되겠어요.” 심유진이 발걸음을 멈췄다. “그만해요. 마트 안 갈 거고 사실 이 아파트에 안 살아요.” 심유진이 여형민을 바라봤다. “연기 그만하고 제대로 얘기해요. 왜 따라오는 건데요?” “집까지 안전하게 모셔다 드리려고요.” 여형민은 진지해보였다. “그래요.” 심유진은 더이상 벗어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형민은 이제 아예 대놓고 따라왔다. 집 앞에 도착해서 심유진이 말했다. “고마워요, 이제 가보세요.” “네.” 하지만 여형민은 움직이지 않았다. “먼저 들어가세요. 별이도 안녕!”여형민이 별이를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 별이도 얼떨떨해서 그 인사를 받았다. “안녕히 가세요.” 심유진과 별이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여형민은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유진씨가 돌아왔어. 애도 한 명 데리고.”여형민 때문에 심유진은 우유와 시리얼밖에 못 샀다. 별이에게 거하게 한상 차려주려던 계획도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심유진은 우유를 시리얼에 붇고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가져왔다. “오늘은 이것밖에 없네.” 심유진이 미안해하며 말했다. “내일 엄마가 맛있는 거 사줄게.” 별이가 한 숟가락 크게 퍼먹으며 말했다. “이것도 맛있어!”그 사랑스러운 모습에 심유진은 별이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