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입맛 없어요.”“종일 아무것도 안 먹고 물도 안 마셨는데 입맛이 없다니, 당신이 얼마나 걱정되는지 알아? 애들도 다 당신 눈치만 보고 있어. 둘째는 당신 기분이 안 좋은 걸 알고 바로 달려왔어.”이들에겐 세 자녀가 있는데 맏이는 듬직하고 성숙한 편이지만 둘째는 집에 머무르는 성격이 아니다. 막둥이는 가장 사랑받고 있는 성소현인데 얼마 전까지 전태윤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다가 이제 겨우 정상으로 돌아왔다.“다이어트 하는 셈 치죠.”이경혜가 침대에 누웠다.“나 잘래요.”성문철은 하는 수 없이 그녀의 뜻을 따랐다.입맛이 없다니 계속 다그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이경혜는 고집이 참 센 편인데 딸아이가 그 점을 쏙 빼닮았다.전태윤이 좋다고 수년간 쫓아다니면서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말려도 포기하지 않더니 결국 직접 당하고 나서야 마음을 접었다.밤새 부부는 아무런 대화가 없었다.다음날, 부슬비가 내려 안 그래도 쌀쌀한 아침이 더욱 춥게 느껴졌다.전태윤이 먼저 깨어났다.옆에 누운 하예정은 새벽에 추웠던지 무심코 그의 품에 쏙 안겨 몸을 녹였다.고개 숙여 귀여운 그녀를 쳐다보는 전태윤의 눈빛이 한없이 부드러워졌다. 눈 뜨자마자 사랑하는 여자가 옆에 누워 있는 걸 보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고 달콤했다.그는 하예정을 몇 분 동안 빤히 쳐다보다가 살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잠이 깰까 봐 살금살금 침대에서 내려와 커튼을 열고 창밖을 내다보았다.비가 내려 하늘도 음침한 게 조깅은 무리일 듯싶었다.전태윤은 잠깐 서 있다가 걸음을 옮겼다.십 분 후, 그는 방에서 나와 곧게 주방으로 갔다가 일 분도 채 안 돼 다시 되돌아왔다.발코니에서 강일구에게 전화를 걸자 곧바로 통화가 연결됐다. 전태윤은 목소리를 내리깔고 분부를 내렸다.“강일구, 호텔 가서 조찬 3인분 포장해와.”“네, 알겠습니다.”강일구는 공손하게 대답하고 도련님이 전화를 끊자마자 호텔로 출발했다.도련님께서 발렌시아 아파트를 고른 게 참 다행이었다. 호텔과 회사가 그리 멀지 않
최신 업데이트 : 2024-10-29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