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윤은 강일구가 포장해온 조찬을 들고 식탁 앞에 걸어가 내려놓았다가 잠시 고민하더니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그는 하예정에게 따뜻한 대추차를 끓여주었다.“아침을 직접 만드는 줄 알았더니 포장해왔네?”야유에 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태윤은 굳이 고개 돌리지 않아도 할머니가 오셨다는 걸 알 수 있었다.그는 보는 척도, 대꾸도 안 했다.“뭐 끓여? 향이 완전 진하네?”이때 어르신이 안으로 들어와 뚜껑을 열어보다가 바로 닫았다.“난 또 진도라도 뺀 줄 알았더니.”어르신은 하찮은 표정으로 손자를 두어 번 노려보다가 밖으로 나가려 했다.전태윤은 굳은 얼굴로 끝내 변명에 나섰다.“난 이미 최선을 다했어요.”사실 어젯밤에 기회가 있었지만 타이밍이 너무 안 맞았다.“마음, 마음부터 저격하란 말이야. 예정이 열 손가락이 텅 비어있는 게 안 보여?”전태윤은 할 말을 잃었다.사실 그도 마음을 저격하려고 모진 노력을 해왔다.반지를 진작 두 개 사서 몇 번 끼고 다니기도 했으나 그건 단지 성소현이 마음을 접게 하기 위해서였다.하예정의 반지는 아직도 보관만 하고 있을 뿐 미처 건네지 못했다.“나한테 오래된 다이아몬드 반지가 있어. 네 할아버지가 생전에 산 거야. 우리 부부가 함께 끼려고 샀는데 네 할아버지가 산 반지가 워낙 많았어야지. 이 할미는 하루에 하나씩 껴도 다 못 끼겠더라. 어떤 다이아몬드 반지는 보석함에 넣어두고 한 번도 껴보지 못했어. 계속 거기 두는 것도 공간만 차지하니 그냥 너 줄게. 네가 알아서 해.”어르신의 보석함엔 온갖 진귀한 장신구들이 들어있다. 다만 어르신은 결혼반지만 줄곧 끼고 다닌다. 남편이 나중에 엄청 많은 다이아몬드 반지를 사줬지만 그녀는 여전히 결혼 때 끼던 반지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고마워요, 할머니.”전태윤은 할머니의 보석함에 들어있는 물품들이 웬만한 주얼리 가게보다 값지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대부분 골동품 같은 진귀한 액세서리였으니까.그의 부모님 세대는 부부마다 할머니가 선물하신 커플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
전태윤은 도련님으로 커오면서 이날 이때까지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꼬집혀본 적이 없다.‘아파, 아프다고!’“할머니 깨셨어요?”하예정이 침대에서 내려오며 그에게 물었다.할머니가 깨시기 전에 방으로 돌아가려는 모양이다.“깨셨어.”“이렇게 빨리요?”이제 막 달아가려던 그녀가 걸음을 멈췄다.“그럼 나 이렇게 나가면 할머니께서...”“우린 부부야.”전태윤은 그녀가 자꾸 뭔가를 숨기려 하는 모습이 싫었다.하예정이 웃으며 답했다.“그래요, 우린 부부니까 당당하게 나가야죠. 할머니도 보시면 기뻐할 거예요. 우리가 결혼 뒤에 줄곧 각방을 써서 나한테 얼마나 핀잔을 두셨는지 모르죠?”전태윤이 어이없다는 듯 그녀를 쳐다봤다.실은 그도 할머니만 생각하면 저절로 고개를 내젓게 된다.물론 지금은 감사의 마음이 더 많다. 할머니의 핀잔이 아니었다면 그도 하예정과 결혼하지 못했을 테니까.“방에 가서 옷 갈아입을게요. 오늘 뭐 먹고 싶어요? 아침은 내가 차려줄게요.”“아침 사 왔으니까 할 거 없어.”하예정은 그를 힐긋 쳐다보다가 밖으로 나갔다.전태윤은 짙은 표정으로 생각했다.‘방금 그 눈빛 뭐지? 아침 사 온 게 그렇게 이상할 일인가? 해가 서쪽에서 뜰 정도냐고?’“할머니, 굿모닝.”밖으로 나온 하예정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할머니께 인사했다.“예정이도 굿모닝.”어르신이 자애로운 표정으로 말했다.“배고프지? 태윤이가 아침 일찍 깨어나 찬바람에 비까지 무릅쓰고 관성 호텔에 가서 조찬 포장해왔어. 네가 거기 음식 좋아한다면서?”하예정은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에 순간 마음이 따뜻해졌다.“저 음식 안 가려요. 길거리 토스트나 편의점 음식이라 해도 다 잘 먹어요.”할머니가 웃으며 말했다.“그런 것도 매일 먹으면 질려. 가끔 메뉴를 바꿔야지. 오늘 추워. 얼른 옷 갈아입고 외투도 하나 걸쳐.”하예정이 알겠다고 대답한 후 무덤덤한 척 방으로 돌아갔다. 방문을 닫자마자 그녀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띠리링...”이때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
“대추차 끓여놨어. 공복이니까 일단 텀블러에 부어줄게. 가게 갖고 가서 마셔.”하예정은 살짝 의외라는 듯 그를 쳐다봤다.‘지금 날 위해 대추차를 끓인 거야?’전태윤은 텀블러를 깨끗이 씻고 다 끓인 대추차를 안에 부었다. 그는 덮개를 꼭 닫은 후 봉투에 담아 그녀에게 건넸다.“꼭 마셔.”하예정은 봉투를 건네받고 그윽한 눈길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나 갈게요.”전태윤은 제자리에 서서 떠나가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어르신이 그런 손주 녀석에게 쏘아붙였다.“네가 좀 데려다주면 덧나?”“예정이 가는 길 알아요.”할머니는 할 말을 잃었다.관심할 줄도 알고 이제 막 칭찬하려 하는데 금세 뒤통수를 치다니. 할머니는 손주 녀석이 참 한심했다...“할머니, 아까 예정이가 날 바라보는 눈빛 보셨죠? 할머니가 없었으면 분명 나한테 입맞춤했을 거예요.”할머니는 말문이 막혔다.전태윤은 아쉬움만 가득 남긴 채 할머니 옆에 앉아 묵묵히 아침을 먹었다.“예정이가 두꺼운 외투 안 입은 것 같은데.”할머니가 불쑥 말했다.이에 전태윤이 담담하게 대답했다.“나중에 갖다 줄 거예요.”할머니는 흡족한 듯 그를 쳐다보았다.하예정은 급하게 나가면서도 언니한테 전화해 우빈의 상태를 묻는 걸 잊지 않았다. 언니가 휴가를 냈다는 말에 그녀도 더는 언니 집에 들르지 않고 바로 가게로 갔다.학생들의 등교 시간을 놓치니 가게 문을 열고 간단하게 청소만 할 뿐이었다. 밖에 비가 내려 문 앞에 진열대를 내놓지 않아서 가게 안이 더 비좁아졌다.하예정은 서재의 먼지를 꼼꼼하게 털었다.며칠 뒤면 학생들의 겨울 방학이 시작될 테니 그녀도 서점 문을 닫고 구정을 보내러 갈 예정이었다.“예정 누나.”익숙한 목소리가 그녀의 뒤에서 울려 퍼졌다.고개를 돌려보니 커다란 장미꽃 한 다발이 보였고 그 뒤에 꽃다발을 안은 김진우가 보였다.한동안 안 본 사이로 김진우는 몹시 수척해졌다. 수염도 깎지 않아 예전 같은 밝은 모습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하예정은 담담하게 쳐다보다가 고개 돌
김진우가 괴로운 표정으로 말했다.“나도 알아. 하지만 누나는 계약 결혼이라 조만간 이혼할 거잖아. 예정 누나, 나 누나 좋아해. 오래전부터 좋아하게 됐어. 아직은 날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거 알아. 나도 누나 찾아오지 않으려고 애써 참아봤는데 그게 마음처럼 안 돼. 하루에도 수백 번씩 누나 생각이 나. 머릿속엔 온통 누나의 웃는 모습뿐이야. 내가 누나를 아주 많이 사랑한다는 것만 알아줬으면 해.”그는 다시 꽃다발을 하예정에게 건네며 진지하게 물었다.“누나, 내게도 한 번 기다릴 기회를 주면 안 될까?”심효진이 진작 그를 설득도 해보았고 경고장도 날렸지만 김진우는 도저히 이대론 포기할 수 없었다.그는 정말 하예정이 진심으로 좋았다.그녀를 사랑했던 첫 순간에 고백하지 못한 걸 뼈저리게 후회했다. 만약 고백했더라면 어쩌면 커서 어른이 될 때까지 기다려줄 수도 있을 텐데, 낯선 남자와 초고속 결혼을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하예정이 꽃다발을 받더니 그를 스쳐지나 문밖의 휴지통에 가차 없이 내던졌다.그녀는 돌아서서 김진우에게 말했다.“진우야, 혼자 나갈래 아니면 내가 내쫓을까?”“누나!”김진우가 괴로운 비명을 질렀다.“제발 나한테 차갑게 굴지 마! 전엔 안 이랬잖아. 나한테 엄청 잘해줬잖아. 왜 이젠 칼날처럼 내 마음을 갈기갈기 찢냐고? 나 너무 괴로워. 마음이 너무 아프단 말이야. 누나, 내가 누나 남편보다 못한 게 뭐야? 우린 알고 지낸 지 십여 년이 됐어. 서로 모르는 게 없단 말이야. 왜 이런 날 선택하지 않고 그 남자랑 초고속 결혼을 했어?”이 문제에 대해선 심효진이 진작 설명했었다. 하예정은 줄곧 그를 남동생으로만 여겼었다고 입이 닳게 말했지만 김진우가 도통 받아들이지 않았다.그는 하예정의 남동생이 아니라 그녀의 남편, 그녀의 남자가 되고 싶었다.“난 항상 널 동생으로 봐왔기에 그렇게 잘해줬던 거야. 네가 그런 내 마음을 오해할 줄 알았다면 때려죽여도 잘해주지 않았을 거야.”십여 년 동안 알고 지내면서 그녀는 김진우가 커가는 모습을
“진우야, 난 이미 결혼했어. 남편과 혼인신고까지 마쳤다고. 비록 초고속 결혼이지만 인제 서로 감정도 생겼으니 내 남편 배신할 수 없어. 네가 정 뜻을 굽히지 않고 나랑 내 남편 사이를 방해하겠다면, 그래서 우리 부부가 잦은 오해를 빚게 만들겠다면 이건 그냥 너와 내가 수년간 쌓아온 정을 무너뜨리는 거나 다름없어. 그럼 나도 널 미워할 테고 원수로 볼 수밖에 없어.”김진우의 사색이 된 얼굴을 바라보며 하예정도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도 자신이 언제부터 그에게 여자로 보였는지 이해되지 않았다.김진우가 딴마음을 품을 줄 알았다면 그녀는 아마 때려죽여도 그에게 잘해주지 않았을 것이다.하예정은 심효진과 오랜 친구 사이로 지냈고 그녀 덕에 김진우도 알게 됐다. 김진우는 처음부터 그녀를 누나라고 불렀고 또 실제로도 그녀가 세 살 더 많아 늘 누나 역할만 해왔었다.그런데 정작...“진우야.”하예정이 살짝 온화해진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진우 넌 햇살처럼 눈 부신 아이야. 하지만 우린 어울리지 않아. 우리 앞으로 서로 보지 말자.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줄 거야. 오랜 시간이 흐르면 나 없이 못 살겠다는 그 마음도 서서히 변해갈 거야. 내려놓는다는 게 잃는다는 뜻만은 아니야. 오히려 새로운 걸 얻게 되지. 너만의 진짜 사랑을 말이야. 날 좋아해 줘서 고마워. 너한테 기회를 못 주는 날 용서해줘. 난 이미 내 남편을 사랑하게 됐어. 이번 생에 남편이 먼저 손을 놓지 않는 한 나 절대 이혼 안 해.”“내 마음이 워낙 작아서 그 사람만 채울 수 있어. 다른 누군가는 더는 들어올 공간이 없어. 앞으론 두 번 다시 오늘 같은 짓을 벌이지 마. 또 이런다면 그땐 진짜 문전박대하고 더이상 너 안 봐. 평생 너랑 연을 끊고 살 거야!”김진우의 몸이 휘청거렸다.하예정이 이렇게까지 잔인하게 나올 줄 꿈에도 예상치 못했다.그녀의 말이 김진우에게 얼마나 큰 타격을 주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누나...”하예정은 그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보냈다.한편 이때 멀지 않은 곳에 서 있
애초에 감정 기초가 없이 낯선 사람끼리 초고속 결혼한 거라 더 조심스럽게 다뤄가야 평생 갈 수 있다.하예정이 차를 몰고 떠났다.김진우도 쫓아가고 싶었지만 가게에 아무도 없자 그냥 포기하고 가게를 지키며 그녀를 기다리기로 했다.하예정은 교문 앞 골목 입구에서 유턴하다가 성소현과 마주쳤다.두 차가 하마터면 부딪칠 뻔했다.동시에 급브레이크를 밟은 덕에 사고를 면했다.성소현이 도어를 내리고 욕설을 퍼부으려 했지만 하예정의 차를 확인하더니 곧바로 물었다.“어디 가요 예정 씨?”하예정은 마주친 자가 성소현일 줄 몰랐다. 조수석에 중년의 아름다운 여인이 앉아 있었는데 그녀의 엄마일 듯싶었다.하예정은 성소현 모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소현 씨, 나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 효진이가 감기 걸려서 병원 갔어요. 가게에 아무도 없으니 잠깐 가서 봐줄래요?”“예정 씨, 나... 알겠어요. 일단 볼일 보러 가요.”성소현은 엄마와 함께 찾아와 그녀를 데리고 유전자 확인 검사를 받으러 가려 했지만 착잡한 하예정의 표정을 보자 더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무언가 급한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그녀는 결국 하예정을 도와 가게를 봐주기로 했다.하예정은 다시 시동을 켜고 황급히 도로를 질주했다.출근 타임이라 차가 엄청 막히고 그녀의 마음도 점점 초조해졌다.마음 같아서는 로켓 발사로 전씨 그룹에 날아가고 싶었다.‘이럴 줄 알았으면 스쿠터 타고 출근할 걸 그랬어.’네 바퀴 자동차는 교통이 붐비면 정말 두 바퀴 스쿠터보다 못했다.차가 막힌 도로에서 전태윤에게 끊임없이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좀처럼 받지 않았다.문자를 보내도 답장이 없었다.이 기분은 너무나도 익숙했다.일단 그녀를 오해하고 화내기 시작하면 이런 식이었다. 전화도 안 받고 문자도 답장하지 않는다.전태윤은 질투한 게 틀림없었다.그가 가게에 도착했을 때 하예정이 마침 꽃다발을 휴지통에 버리고 김진우와 뭐라 말하더니 불쑥 내민 김진우의 손을 먼지털이로 툭 쳐버렸다. 그녀는 분명 전태윤에게 잘못
한편 전태윤은 짙은 얼굴로 그를 무시한 채 앞으로 스쳐 지나가더니 차가운 말투로 조 비서에게 분부했다.“임원들 전부 통지해, 회의 진행할 거야!”‘뭐지? 지진이라도 날 셈이야?’소정남이 속으로 구시렁댔다.“알겠습니다.”조 비서는 소정남보다 눈치가 빨랐다. 소정남은 주요하게 절친의 어두운 표정에 매우 놀랐다.전태윤은 사무실에 들어간 지 2분도 안 돼 다시 나오더니 회의실로 걸음을 옮겼다.이번엔 소정남도 따라갔다.회의실엔 아무도 없었다.오늘 원래 회의가 없었으니 말이다.다만 전태윤이 조 비서에게 명령하여 임원들을 전부 회의실에 불러왔다.이건 폭풍전야가 틀림없었다!전태윤은 회의실에 들어가 자리에 착석한 후 차가운 표정으로 임원들을 기다렸다.소정남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의자를 빼고 자리에 앉았다.“왜 그래 태윤아? 아침부터 누가 널 건드렸어?”그가 가까이 다가가 떠보듯이 물었다.“형수님과 싸웠어?”지난번 하예정과 트러블이 생겼을 때 바로 이 표정이었으니 말이다.회사 전체를 연 며칠 괴롭히더니 결국 어르신이 직접 나서서 부부 사이를 원만하게 화해시켰다. 회사에 드리웠던 먹장구름도 그제야 말끔히 걷혔다.전태윤은 아무 말 없이 휴대폰을 꺼내 카톡을 열고 하예정이 보낸 문자를 읽었다.자신과 김진우는 아무 사이가 아니라는 그녀의 해명이었다.한편 그녀도 솔직하게 고백했다. 김진우가 좋아한다고 고백했지만 그녀가 단호하게 거절하며 마음을 접으라고 몇 마디 말했을 뿐이라고 했다.절대 남편에게 미안한 짓을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차기 연인을 찾는 것도 아니고 그럴 생각도 없으며 그녀에겐 오직 전태윤뿐이라고 거듭 강조했다!‘진우가 감히 예정이한테 고백을 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자식이 결혼한 유부녀란 걸 뻔히 알면서 고백했단 말이야? 이건 엄연히 나를 향한 도발이야!’“정남아, 우리 회사 김씨 그룹이랑 거래하는 업무 있어?”“본사는 없고 지사가 몇 군데 거래하고 있지.”“어느 지사야? 당장 차단시켜!”“뭐?”전태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전태윤은 아무 말이 없었다.“임원들 오기 전에 나한테 얘기해봐. 혼자 끙끙 앓지 말고. 계속 그렇게 참았다간 네 몸도 다치고 회사 직원들한테도 안 좋아.”전태윤이 폭발하면 아무도 감당할 수 없기에 소정남은 지금 회사의 앞날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내가 예정이한테 외투를 가져다줬을 때 김진우도 같이 있었어.”말문이 막혀버린 소정남은 한참이 지나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분명 오해일 거야. 태윤아, 가끔은 눈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야. 지난번처럼 답답하게 혼자 화내지 말고 형수님한테 설명할 기회는 줘야지.”“김진우가 예정이한테 고백했어.”소정남이 말했다.“이제부터 김진우는 내 우상이야. 매우 대담하고 용기도 갸륵해. 역시 김 대표님이 키워내신 훌륭한 후계자야.”전태윤이 째려보자 소정남이 코를 쓱 만지며 웃었다.“태윤이 너 제대로 질투하는구나. 이런 모습은 또 처음이야!”전태윤의 낯빛이 확 굳어졌다.“형수님이 김진우를 받아줬어? 두 사람 뭐라 했는데?”전태윤이 잠깐 침묵하다가 말을 이었다.“예정이 한 손에 빗자루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꽃다발을 들고나와서는 쓰레기통에 버리더라고. 그 후에 김진우랑 무슨 얘기 했는지는 못 들었어. 아, 그리고 김진우가 예정이 손을 잡으려 한 것도 봤어...”흥미진진한 상황에 소정남이 반짝이는 두 눈으로 다급하게 물었다.“그래 잡았어?”“아니, 예정이가 빗자루로 걔 손을 툭툭 치더라고.”“그래...”소정남이 말끝을 길게 늘어뜨리며 말했다.“못 잡았구나. 그런데 왜 질투해? 형수님이 김진우의 고백을 거절했다는 뜻이잖아.”전태윤은 정색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예정이 김진우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하예정도 그에게 수많은 해명 문자를 보냈다. 하지만 그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고 자꾸만 질투 났다.“태윤아, 너마저 형수님을 사랑하게 됐다는 건 형수님한테 그럴만한 매력이 있다는 거야. 네가 형수님을 좋아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형수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