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순결을 가져간 남자가 내 남편?의 모든 챕터: 챕터 1261 - 챕터 1270

2823 챕터

제1261화

신세희는 평소에 수진 엄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에 말투가 곱게 나가지 않았다.“수진 어머니, 제가 오늘 좀 지각했거든요. 큰일 아니면….”“유리 엄마, 나도 저번 사건이 있은 뒤로 유리 엄마가 우리를 싫어하는 거 알아요. 하지만 내 인격을 걸고 약속할게요. 우리가 과거에 안하무인인 사람이었던 건 맞지만 우린 단톡방에서 명품 자랑 같은 건 일체 하지 않아요. 육아 경험을 의논했을 뿐이죠.”신세희는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수진 엄마가 계속해서 말했다.“나도 그 사람 억지로 우리 단톡방에 가입하라고 강요한 적 없어요. 자기가 원해야 같이 어울리는 거죠. 그런데 수진이가 어느 날 집에 와서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고상은이라는 친구가 유치원에서 우울해 보인다고 했어요.”“우리는 그냥… 상은이 엄마랑 소통을 좀 해보고 싶었어요. 혼자 애 키우는 엄마가 얼마나 힘든 걸 알기에 같은 여자로서 도와주고 싶었을 뿐이라고요.”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수진 엄마를 보자 신세희는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죄송해요. 제가 뭔가 오해를 했나 보네요.”“괜찮아요, 유리 엄마.”수진 엄마가 웃으며 말했다.“유리 엄마가 좋은 사람이라는 건 다 알죠. 내가 노파심일 수도 있겠지만 상은 엄마는 지나치게 차가워요. 유리 엄마도 살가운 성격은 아니지만 두 사람은 완전히 달라요. 최근에 상은이가 전학을 왔잖아요. 그 아이… 온지 일주일도 안 돼서 유리랑 아주 붙어 다닌다고 하더라고요.”신세희는 조용히 수진 엄마를 바라보았다.수진 엄마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냥 그렇다고요… 조심해서 나쁠 건 없잖아요. 애들이 친해지는 거야 뭐라고 할 수 없죠.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유리 엄마도 유리 잘 챙겨요.”말을 마친 수진 엄마는 시간을 확인하고는 작별인사를 했다.“사실… 나도 요즘 직장을 구했거든요. 이만 가볼게요.”신세희는 멀어지는 수진 엄마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수진 엄마가 해줬던 말 때문에 며칠 전 백화점에서 민정아와 엄선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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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2화

구서준은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준명이한테 친척은 정아 씨랑 공주님밖에 없죠.”“장난하지 말고요!”신세희가 곱지 않게 그를 흘겼다.“숙모님, 그래도 내가 상사거든요? 일 안 해요?”구서준이 생글생글 웃으며 되물었다.신세희는 그제야 자신이 지각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그녀는 곧장 뒤돌아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로 들어서려던 신세희는 다시 걸음을 멈추고 미심쩍은 표정으로 물었다.“준명 오빠 다른 친척 없는 거 맞아요?”“확실해요!”구서준이 대답했다.신세희는 그제야 시름이 놓였다.‘그래, 서 씨가 한두 명도 아니고. 내가 예민했던 거야.’그렇게 그녀는 이 일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그리고 일에만 몰두했다. 오후에 아이를 데리러 유치원에 가야 했기에 일정이 빠듯했다. 요즘 밀린 업무를 처리하느라 눈코뜰 새 없이 바빴다.그렇게 일주일 동안 신세희는 유치원에서 고상은 엄마를 마주치지 못했고 그녀에 대한 기억은 점차 흐려졌다.어차피 그녀와 별로 접점이 없는 사람이었다.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차갑고 솔직한 사람일 뿐이다.눈 깜짝할 사이에 일주일이 지나갔다.그날은 주말이었고 엄선희는 야외로 캠핑을 나가자고 제안했다. 마침 남성에 있던 구서준도 바로 그 제안에 동의했다.물론 민정아도 두 손 들어 찬성했다.하지만 신세희는 약간 미안한 얼굴로 친구들을 바라보았다.“나는 시간 안 될 것 같아. 다음 주로 미루는 게 어떨까? 이번 주에 엄마가 댄스 클럽에 가입하시기로 했어… 사실 우리 엄마가 피아노 잘 치고 그림도 잘 그리지만 엄청난 몸치시거든.”“그런데 해보고 싶다고 하셔서 마침 시간 되니까 같이 연습하자고 했어. 이런 때라도 응원해 드려야지.”신세희가 웃으며 말했다.평생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져본 적 없는 엄마였다. 이 나이에 하고 싶은게 생겼다는데 당연히 지지해 줘야 했다.“그럼 가지 말자. 집에서 서준 씨랑 데이트해야지.”민정아가 말했다.엄선희도 어깨를 으쓱했다.“나도 됐어. 엄마랑 뜨개질이나 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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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3화

반호영이 전달한 뜻은 명확했다. 공 들여서 찾지 않으면 절대 찾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하지만 모든 정력을 반호영에게 쏟아 그를 억지로 끌어낸다면 폭탄 장치를 실행할 것이다.압박을 가하면 자폭한다는 뜻이었다.“수백억의 대가를 주고 구한 폭탄이야. 중동 쪽에서 유명한 암시장에서 구매했대.”신세희는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도대체 뭘 하려고 그런 짓까지 벌일까요?”그녀가 기억하는 반호영은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이성적이고 선을 지키며 사랑을 할 줄 아는 남자였다.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달라졌다.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으면 이렇게 처절하게 누군가를 해치려는 걸까?신세희는 깊은 한숨이 나왔다.“어떻게 할 거예요?”그녀가 남자에게 물었다.“추격을 멈추기로 했어.”“하지만 그렇게 하면 본가 쪽을 자꾸 들쑤시고 다닐 텐데요.”“그건 그 인간들이 자처한 거야!”부소경이 차갑게 말했다.“만약에….”“만약 그 자식이 당신이랑 유리한테 접근하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테지만 다른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어.”부소경의 말투는 담담했다.어머니가 낳은 또 다른 아들. 부소경도 그가 무척 신경 쓰였다.하지만 반호영은 이미 미친 것 같았다.만약 반호영이 선을 넘지 않고 얌전히 군다면 회사 지분이라도 떼서 줄 생각이었다.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었다.하지만 만약 그가 다 같이 죽자고 덤빈다면 봐줄 생각이 없었다.신세희는 남자의 머리를 살며시 품에 안았다.남자가 무슨 일을 하든 그만의 기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해줄 수 있는 건 그런 남자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일뿐이었다.“이제 자요.”그녀가 부드럽게 말했다.“그래.”그날 밤, 신세희는 남자를 부드럽게 안아주었다.이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지, 얼마나 아파했을지 그녀도 알고 있었다.아무리 얄미워도 핏줄이었다.부소경에게는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자요, 여보. 내일 나랑 같이 엄마 집에 가요. 엄마가 춤 연습을 얼마나 했는지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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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4화

화분을 들고 있던 서준명이 멈칫했다.“갑자기 왜 이런 질문을 했을까? 세희 너… 뭔가 발견한 거라도 있어?”신세희는 가슴이 철렁했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아니에요. 오빠가 주말마다 엄마 집에 내려오니까 우리 말고 다른 친척은 없는 것 같아서요.”그녀는 일부러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서준명은 안도의 숨을 내쉬고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그 친척 얘기가 나오니까 머리가 아파.”신세희는 잠시 주저하다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물었다.“왜 그래요, 오빠? 설마 정말 다른 친척이라도 있어요?”서준명이 웃으며 대답했다.“있지. 우리 엄마도 아는 친척이야. 고모랑은 유치원 동창이라고 들었어. 사이가 꽤 가까웠다고 했는데 고모 신분을 알고는 고모를 우리 집에서 내쫓았지.”신세희도 그 이야기를 들은 적 있었다.어린 시절 서진희에게는 아주 가깝게 지내는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서진희가 사생아라는 사실을 알고 바로 절교했다고 했다.그리고 서진희가 서씨 가문 저택에 오는 것까지 반대했다.아마 기억이 맞다면 그 친구의 이름이 고가령이었을 것이다.고씨!고상은도 고씨였고 서씨 성을 가진 할아버지와 친척 사이라고 했다.아마 우연은 아닐 것이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서준명을 바라보았다. 서준명은 화분을 내려놓고 입구 계단에 걸터앉더니 그녀에게 말했다.“사실 할아버지는 건강이 안 좋은 게 아니라 그 친척을 피하겠다고 서울로 가신 거야.”“네?”놀란 신세희가 되물었다.서준명은 약간 피곤한 말투로 대답했다.“사실 다 할아버지 잘못이지 뭐. 나한테는 사촌고모인데… 그러니까 우리 할머니 언니의 딸이야. 어릴 때부터 우리 할머니 옆에서 컸거든. 우리 할머니가 딸을 잃었잖아. 그래서 그 고모를 딸처럼 키웠어.”“물론 할아버지도 고모를 예뻐하셨지. 이름이 고가령일 거야.”신세희는 이미 아는 이름이었기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고가령의 아버지는 모 기업의 임원이었다. 평범한 가정보다는 풍족하게 살았지만 서씨 가문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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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5화

하지만 고가령은 낙태를 선택하지 않았다.아이가 태어날 때, 재벌 남자친구가 그녀에게 말했다.“내 아이가 맞다면 200억을 주지! 아이를 두고 멀리 떠나! 내 아이를 너 같이 더러운 여자 손에서 키우게 할 수는 없으니까!”“만약 내 아이가 아니라면… 미안하지만 그냥 내 눈앞에서 꺼져줬으면 좋겠어!”분노한 고가령은 울며 남자에게 하소연했다.“그 방에 들어가라고 한 건 당신이었잖아!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그러자 남자친구가 비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그냥 놀이상대니까 들여보냈지. 딱히 신경 쓰고 싶지 않았거든. 하지만 내 아이의 엄마라면 얘기가 다르지!”굴욕적인 상황에서 고가령은 친자검사를 진행했다.하지만 실망스럽게도 아이는 남자친구의 핏줄이 아니었고 그녀에게는 보상금마저 주어지지 않았다.아이 아빠를 찾을 수도 없었다. 마치 세상에서 사라진 것 같았다. 남자친구에게 물어서야 알았다. 그 남자는 도박에 손을 잘못 댔다가 도박꾼들에게 맞아 죽었다고.고가령은 진퇴양난의 처지에 처했다.해외에서 남자를 잘 만나 출세해서 돌아갈 생각이었다.그런데 졸업장은 고사하고 애까지 딸린 미혼모가 되었으니 가족들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그녀가 도움을 요청할 가족은 서씨 가문밖에 없었다.서씨 가문에서는 그녀에게 적지 않은 금전적 지원을 해주었다.워낙 큰 기업이었기에 매년 고가령에게는 20억에 달하는 생활비가 주어졌고 고가령은 딸과 함께 해외에서 편안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그렇게 20년이 지났다. 고가령도 해외에서 안정된 직장을 찾았고 그녀의 딸도 명문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고가령의 삶은 완벽하다고 볼 수도 없었지만 비참하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최소한 돈 때문에 고생은 하지 않았다.그런데 20여년이 지난 뒤, 고가령은 갑자기 귀국하고 싶어졌다. 돌아오기 전, 그녀는 유일하게 남은 가족인 이모부에게 전화를 걸었다.고가령의 이모부가 바로 서씨 어르신이었다.“이모부, 너무 보고 싶어요. 생신 잔치도 차려드리고 싶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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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6화

서준명의 표정을 읽은 신세희는 가슴이 철렁했다.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이내 웃으며 대답했다.“오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이었어요. 어차피 그 고모님 딸이라면 혼기도 꽉 찼을 테고 남자를 만났겠죠? 결혼했을지도 모르고요. 그 남자와 아이를 낳았다면 아들이거나 딸이겠죠. 그냥 때려 맞힌 거예요.”서준명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세희 너 이렇게 장난스러운 애였어?”그러자 신세희가 대답했다.“그래요! 원래 장난끼도 좀 많은 애였어요.”서준명이 말했다.“걔 얘기는 하지 말자. 생각하면 짜증만 나. 사실 난 그 사촌고모님을 만난 적도 별로 없고 다 할아버지 시대의 일이니까. 그리고 8촌 동생은 한 번도 얼굴을 본 적도 없어.”잠시 고민하던 서준명이 또 말했다.“사실 세희야. 우리야 말로 진짜 혈연 관계야. 네 엄마는 내 고모이고 너는 내 사촌동생이지. 나한테 동생은 정아랑 너뿐이야. 다른 사람은 필요 없어.”신세희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들어가요. 엄마가 만두 만들어 주시기로 했어요. 가서 도와야죠.”“그래!”서준명은 다시 밝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물었다.“고모가 댄스 클럽에 가입 했다면서? 공연에도 참석한다던데?”신세희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사실 엄마는 춤을 출 줄 몰라요. 피아노만 칠 줄 알지 몸으로 하는 건 별로 못하거든요. 이번 주에 연습을 많이 했는지 모르겠네요.”“들어가 보자.”집으로 들어서니 서진희는 밀가루 반죽을 하고 있었다.옆에는 이미 만들어 놓은 만두소가 준비되어 있었고 반죽도 거의 다 되어가니 만두를 빚기만 하면 된다.“엄마, 이번 주에 춤 연습한다더니 좀 했어?”신세희가 물었다.“당연히 했지.”서진희가 잔뜩 들뜬 표정으로 대답하더니 밀가루 반죽을 내려놓고 두 손을 머리위로 들어올리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최근 들어 느낀 일이지만 신세희는 엄마가 참 활발한 성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아마 외할머니가 잘 가르친 덕분일 것이다.평생 외할아버지의 냉대만 받으며 자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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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7화

달갑지 않았지만 고가령은 부친의 사촌동생이었고 어릴 때부터 사이가 아주 좋았다고 들었다. 그런 그녀의 딸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서준명도 계속 짜증을 부릴 수는 없었다.잠시 고민하던 서준명이 입을 열었다.“고모님이 본가에 전화하셨어?”소정이라는 여자는 잔뜩 신이 난 목소리로 대답했다.“네, 했어요. 할아버지는 전화를 받지 않으셨고 외삼촌이 전화를 받더라고요. 오빠도 알잖아요. 외삼촌이 엄마를 많이 예뻐하신 거. 맞죠?”서준명은 할 말을 잃었다.“외삼촌은 엄마가 전화하니까 본가로 오라고 하셨어요. 10분 있으면 도착해요.”“소정아… 그건 좀….”하지만 말을 마친 상대는 전화를 끊어버렸다.서준명은 고모네 집에서 하룻밤 자고 갈 생각이었다. 고모가 해준 밥도 맛있었고 고모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그의 할아버지도 그가 이렇게 하기를 바라고 있었다.물론 그의 아버지도 그랬다.아버지가 했던 말씀이 기억났다.“준명아, 네 할아버지가 고모에게 못할 짓을 많이 하셨지만, 나도 네 고모를 반갑게 맞아준 적이 별로 없어. 네 고모를 어릴 때 몇 번 만난 적은 있는데 만날 때마다 싫은 티를 팍팍 냈거든.”“아빠는 성인이 되고 나서야 알았어. 그 아이가 내 친동생이란 사실을 말이야. 그러니까 준명아. 시간 날 때 고모한테 가서 말동무라도 해드려. 알겠니?”서준명은 간절한 아버지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그게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그에게 바라는 것이었다.서진희가 그를 진짜 가족으로 받아들여야 얼어붙었던 그녀의 마음을 천천히 녹일 수 있고 언젠가는 할아버지를 가족으로 인정할 수 있다.할아버지는 고모가 집으로 돌아온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서준명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지시를 착실히 따랐다.하지만 그가 보기에 고모는 지금 충분히 행복해 보였다. 서씨 가문과 연관된 일이 아니면 고모가 슬픈 표정을 짓거나 화를 내는 일은 없었다. 매번 고모를 볼 때면 서준명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나중에 그는 고모가 행복할 수만 있다면 할아버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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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8화

고소정은 멈칫하더니 이내 눈시울이 붉어지며 말했다.“오빠! 왜 말을 그렇게 해요? 우리가 오는 게 반갑지 않으면 지금 당장 돌아갈게요!”잠시 숨을 고른 그녀가 또 말했다.“그리고 여기가 오빠 혼자 사는 집도 아니잖아요? 우린 외할아버지랑 외삼촌, 숙모님을 뵈러 왔어요! 오빠 만나러 온 게 아니라고요! 그래도 반갑다고 문앞까지 나와서 기다렸는데!”서준명은 흠칫하다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미안해. 내가 요즘 기분이 별로 안 좋아서 실수했네.”그러자 고소정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상은이가 외삼촌은 어떻게 생겼냐면서 친구 아빠들보다 더 잘생기지 않았냐고 기대해서… 그래서 같이 마중 나온 건데….”서준명은 그제야 고소정의 손을 잡고 선 어린 아이를 바라보았다.아이는 고개를 들고 서준명을 바라보더니 울먹이며 말했다.“외삼촌….”서준명은 가슴이 녹아 내리는 것 같았다.그는 자세를 숙여 아이를 품에 안으며 말했다.“너 몇 살이니?”“외삼촌, 저 올해 여섯 살이에요. 고상은이라고 해요. 저번 주에 한 번 왔었는데 외삼촌이랑 증조외할아버지를 못 만나서 서운했어요. 선물도 준비해 왔는데….”서준명은 깊은 죄책감을 느끼며 아이에게 물었다.“그랬어? 그 선물 아직도 유효해?”“그럼요.”“외삼촌이 한 번 봐도 될까?”“네!”아이는 흔쾌히 대답하고는 서준명의 품에서 벗어나 자신이 가지고 다니는 가방을 열었다.그러던 아이가 갑자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왜 그래, 아가?”서준명이 물었다.“사탕이 못 생겨졌어요….”고상은은 형태가 약간 변형된 사탕을 서준명에게 건네며 말했다.일주일이나 가방 속에 있었던 사탕은 이미 녹아서 구깃구깃해진 상태였다.하지만 그 사탕에는 ‘할아버지 행복하세요’라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그는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끼며 고소정에게 고개를 돌렸다.“그게… 미안해. 내가 밖에서 좀 힘든 일이 있어서 실수했네.”“괜찮아요, 오빠. 우린 가족이잖아요. 스트레스 받는 일 있으면 언제든 나한테 말해요! 밖에서 모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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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9화

고소정이 20대 중반이라는 걸 미리 알지 않았더라면 눈앞의 여자를 고작 40대 초반으로 생각했을 것이다.여자는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온몸에서 흐르는 귀티를 보니 전혀 생활고를 겪은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녀에게서는 알 수 없는 우월감이 넘치고 있었고 이로 보아 해외에서 전혀 고생하지 않은 티가 났다.서준명은 자신의 고모가 떠올랐다.서진희 역시 서씨 가문의 핏줄이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차별과 모욕을 받으며 이 집에 발도 들이지 못했다.태어났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욕을 먹었고 음악을 사랑했지만 돈이 없어 공부를 포기한 사람이었다.그녀는 오랜 방랑 생활을 했다.두 여자는 다 남자를 잘못 만났지만 서진희는 눈앞의 이 여자처럼 운이 좋지 않았다.눈앞의 중년 여자는 남자를 잘못 만나 아이까지 낳았지만 그녀의 뒤에는 강대한 경제적 지원이 뒷받침해 주었다. 그녀는 여전히 해외에서 편안하게 살았다.하지만 서진희는 달랐다.쫓기듯 먼 시골로 가서 남편과 밤낮 가리지 않고 일을 했지만 사람들의 괴롭힘을 당했고 감금까지 당했다.사랑하는 딸에게 행복한 생활을 줄 수 없을 것 같아 딸을 남편에게 보내고 스스로 방랑 생활을 선택했다.극심한 차이 때문에 서준명은 꺼졌던 분노가 다시 치밀었다.그는 약간 냉랭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했다.“네.”그러고는 고가령을 쳐다도 보지 않았다.“준명아, 이분도 네 고모야. 아빠의 사촌 여동생이고.”아버지는 그에게 태도를 주의하라고 경고하듯 말했다.서준명은 약간 딱딱한 목소리로 인사했다.“안녕하세요.”고가령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서준명에게 말했다.“준명이는 고모가 낯설지? 고모는 어릴 때부터 네 아빠랑 친남매처럼 같이 자랐어. 네 아빠가 날 엄청 아꼈거든. 집에 맛있는 거 있으면 전부 나한테 줬을 정도니까.”이런 말을 하는 고가령의 얼굴에는 어느새 우월감이 자리잡고 있었다.태어나서부터 귀하게 자란 사람만 가지는 우월감.서준명은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준명아, 고모는 어릴 때부터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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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0화

고가령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친구가 참 많았는데 어떤 친구를 말하는 거야?”“초등학교 친구도 많고 대학교에도 많았어. 애들이 나랑 친구가 되고 싶어서 다가오다 보니… 누굴 말하는 거지?”서준명은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그냥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고모의 어린 시절이 궁금해서요!”“그랬구나. 사실 어릴 때는 고민이 별로 없었어. 주변에서 알아서 다 해줬거든.”고가령은 그때 그 시절을 회상하듯 감상에 젖었다.서준명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먹을 불끈 쥐는 것으로 분노를 참았다.고개를 들자 아버지의 애원하는 듯한 눈빛이 보였다.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는 있었다. 누가 뭐래도 아버지에게는 사촌여동생이었다.서준명은 어쩔 수 없이 분노를 집어삼켰다.다행히 고가령도 계속 떠들지는 않았다.서준명이 불쾌해 한다는 것을 눈치챈 걸까?아니면 이 집에서 자신이 환영 받지 못한다는 것을 느꼈던 걸까?고가령은 점심도 먹지 않고 작별인사를 했다.그들을 문밖까지 바래다준 서준명은 불쾌한 얼굴로 부모님에게 말했다.“두 분이 응대할 수 있었잖아요. 꼭 저를 불러야만 했나요?”“고모랑 오붓하게 만두나 먹으려 했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웠나요?”아들이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건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그의 어머니는 다급히 다가와서 아들을 위로했다.“준명아, 너를 집으로 부를 생각은 없었어. 소정이가 너 꼭 보고 싶다고 전화한 거야. 우리도 저 사람들을 일주일이나 피했어. 계속 피할 수는 없는 거잖아?”부친도 한숨을 쉬며 말했다.“사실 가령 고모가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잖아. 어릴 때 우리 집에서 같이 자란 것도 사실이고. 네 할머니가 딸을 잃고 힘들어할 때 가령 고모가 옆에서 기쁨을 줬어.”서준명은 그런 말을 듣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죄송해요, 아버지.”그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고소정이었다. 서준명은 보자마자 짜증이 치밀었다. 핸드폰을 부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어머니가 옆에서 그를 달랬다.“전화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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