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갑지 않았지만 고가령은 부친의 사촌동생이었고 어릴 때부터 사이가 아주 좋았다고 들었다. 그런 그녀의 딸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서준명도 계속 짜증을 부릴 수는 없었다.잠시 고민하던 서준명이 입을 열었다.“고모님이 본가에 전화하셨어?”소정이라는 여자는 잔뜩 신이 난 목소리로 대답했다.“네, 했어요. 할아버지는 전화를 받지 않으셨고 외삼촌이 전화를 받더라고요. 오빠도 알잖아요. 외삼촌이 엄마를 많이 예뻐하신 거. 맞죠?”서준명은 할 말을 잃었다.“외삼촌은 엄마가 전화하니까 본가로 오라고 하셨어요. 10분 있으면 도착해요.”“소정아… 그건 좀….”하지만 말을 마친 상대는 전화를 끊어버렸다.서준명은 고모네 집에서 하룻밤 자고 갈 생각이었다. 고모가 해준 밥도 맛있었고 고모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그의 할아버지도 그가 이렇게 하기를 바라고 있었다.물론 그의 아버지도 그랬다.아버지가 했던 말씀이 기억났다.“준명아, 네 할아버지가 고모에게 못할 짓을 많이 하셨지만, 나도 네 고모를 반갑게 맞아준 적이 별로 없어. 네 고모를 어릴 때 몇 번 만난 적은 있는데 만날 때마다 싫은 티를 팍팍 냈거든.”“아빠는 성인이 되고 나서야 알았어. 그 아이가 내 친동생이란 사실을 말이야. 그러니까 준명아. 시간 날 때 고모한테 가서 말동무라도 해드려. 알겠니?”서준명은 간절한 아버지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그게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그에게 바라는 것이었다.서진희가 그를 진짜 가족으로 받아들여야 얼어붙었던 그녀의 마음을 천천히 녹일 수 있고 언젠가는 할아버지를 가족으로 인정할 수 있다.할아버지는 고모가 집으로 돌아온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서준명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지시를 착실히 따랐다.하지만 그가 보기에 고모는 지금 충분히 행복해 보였다. 서씨 가문과 연관된 일이 아니면 고모가 슬픈 표정을 짓거나 화를 내는 일은 없었다. 매번 고모를 볼 때면 서준명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나중에 그는 고모가 행복할 수만 있다면 할아버지를
고소정은 멈칫하더니 이내 눈시울이 붉어지며 말했다.“오빠! 왜 말을 그렇게 해요? 우리가 오는 게 반갑지 않으면 지금 당장 돌아갈게요!”잠시 숨을 고른 그녀가 또 말했다.“그리고 여기가 오빠 혼자 사는 집도 아니잖아요? 우린 외할아버지랑 외삼촌, 숙모님을 뵈러 왔어요! 오빠 만나러 온 게 아니라고요! 그래도 반갑다고 문앞까지 나와서 기다렸는데!”서준명은 흠칫하다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미안해. 내가 요즘 기분이 별로 안 좋아서 실수했네.”그러자 고소정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상은이가 외삼촌은 어떻게 생겼냐면서 친구 아빠들보다 더 잘생기지 않았냐고 기대해서… 그래서 같이 마중 나온 건데….”서준명은 그제야 고소정의 손을 잡고 선 어린 아이를 바라보았다.아이는 고개를 들고 서준명을 바라보더니 울먹이며 말했다.“외삼촌….”서준명은 가슴이 녹아 내리는 것 같았다.그는 자세를 숙여 아이를 품에 안으며 말했다.“너 몇 살이니?”“외삼촌, 저 올해 여섯 살이에요. 고상은이라고 해요. 저번 주에 한 번 왔었는데 외삼촌이랑 증조외할아버지를 못 만나서 서운했어요. 선물도 준비해 왔는데….”서준명은 깊은 죄책감을 느끼며 아이에게 물었다.“그랬어? 그 선물 아직도 유효해?”“그럼요.”“외삼촌이 한 번 봐도 될까?”“네!”아이는 흔쾌히 대답하고는 서준명의 품에서 벗어나 자신이 가지고 다니는 가방을 열었다.그러던 아이가 갑자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왜 그래, 아가?”서준명이 물었다.“사탕이 못 생겨졌어요….”고상은은 형태가 약간 변형된 사탕을 서준명에게 건네며 말했다.일주일이나 가방 속에 있었던 사탕은 이미 녹아서 구깃구깃해진 상태였다.하지만 그 사탕에는 ‘할아버지 행복하세요’라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그는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끼며 고소정에게 고개를 돌렸다.“그게… 미안해. 내가 밖에서 좀 힘든 일이 있어서 실수했네.”“괜찮아요, 오빠. 우린 가족이잖아요. 스트레스 받는 일 있으면 언제든 나한테 말해요! 밖에서 모르는
고소정이 20대 중반이라는 걸 미리 알지 않았더라면 눈앞의 여자를 고작 40대 초반으로 생각했을 것이다.여자는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온몸에서 흐르는 귀티를 보니 전혀 생활고를 겪은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녀에게서는 알 수 없는 우월감이 넘치고 있었고 이로 보아 해외에서 전혀 고생하지 않은 티가 났다.서준명은 자신의 고모가 떠올랐다.서진희 역시 서씨 가문의 핏줄이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차별과 모욕을 받으며 이 집에 발도 들이지 못했다.태어났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욕을 먹었고 음악을 사랑했지만 돈이 없어 공부를 포기한 사람이었다.그녀는 오랜 방랑 생활을 했다.두 여자는 다 남자를 잘못 만났지만 서진희는 눈앞의 이 여자처럼 운이 좋지 않았다.눈앞의 중년 여자는 남자를 잘못 만나 아이까지 낳았지만 그녀의 뒤에는 강대한 경제적 지원이 뒷받침해 주었다. 그녀는 여전히 해외에서 편안하게 살았다.하지만 서진희는 달랐다.쫓기듯 먼 시골로 가서 남편과 밤낮 가리지 않고 일을 했지만 사람들의 괴롭힘을 당했고 감금까지 당했다.사랑하는 딸에게 행복한 생활을 줄 수 없을 것 같아 딸을 남편에게 보내고 스스로 방랑 생활을 선택했다.극심한 차이 때문에 서준명은 꺼졌던 분노가 다시 치밀었다.그는 약간 냉랭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했다.“네.”그러고는 고가령을 쳐다도 보지 않았다.“준명아, 이분도 네 고모야. 아빠의 사촌 여동생이고.”아버지는 그에게 태도를 주의하라고 경고하듯 말했다.서준명은 약간 딱딱한 목소리로 인사했다.“안녕하세요.”고가령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서준명에게 말했다.“준명이는 고모가 낯설지? 고모는 어릴 때부터 네 아빠랑 친남매처럼 같이 자랐어. 네 아빠가 날 엄청 아꼈거든. 집에 맛있는 거 있으면 전부 나한테 줬을 정도니까.”이런 말을 하는 고가령의 얼굴에는 어느새 우월감이 자리잡고 있었다.태어나서부터 귀하게 자란 사람만 가지는 우월감.서준명은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준명아, 고모는 어릴 때부터 여
고가령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친구가 참 많았는데 어떤 친구를 말하는 거야?”“초등학교 친구도 많고 대학교에도 많았어. 애들이 나랑 친구가 되고 싶어서 다가오다 보니… 누굴 말하는 거지?”서준명은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그냥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고모의 어린 시절이 궁금해서요!”“그랬구나. 사실 어릴 때는 고민이 별로 없었어. 주변에서 알아서 다 해줬거든.”고가령은 그때 그 시절을 회상하듯 감상에 젖었다.서준명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먹을 불끈 쥐는 것으로 분노를 참았다.고개를 들자 아버지의 애원하는 듯한 눈빛이 보였다.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는 있었다. 누가 뭐래도 아버지에게는 사촌여동생이었다.서준명은 어쩔 수 없이 분노를 집어삼켰다.다행히 고가령도 계속 떠들지는 않았다.서준명이 불쾌해 한다는 것을 눈치챈 걸까?아니면 이 집에서 자신이 환영 받지 못한다는 것을 느꼈던 걸까?고가령은 점심도 먹지 않고 작별인사를 했다.그들을 문밖까지 바래다준 서준명은 불쾌한 얼굴로 부모님에게 말했다.“두 분이 응대할 수 있었잖아요. 꼭 저를 불러야만 했나요?”“고모랑 오붓하게 만두나 먹으려 했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웠나요?”아들이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건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그의 어머니는 다급히 다가와서 아들을 위로했다.“준명아, 너를 집으로 부를 생각은 없었어. 소정이가 너 꼭 보고 싶다고 전화한 거야. 우리도 저 사람들을 일주일이나 피했어. 계속 피할 수는 없는 거잖아?”부친도 한숨을 쉬며 말했다.“사실 가령 고모가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잖아. 어릴 때 우리 집에서 같이 자란 것도 사실이고. 네 할머니가 딸을 잃고 힘들어할 때 가령 고모가 옆에서 기쁨을 줬어.”서준명은 그런 말을 듣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죄송해요, 아버지.”그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고소정이었다. 서준명은 보자마자 짜증이 치밀었다. 핸드폰을 부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어머니가 옆에서 그를 달랬다.“전화 받
전화를 끊은 고가령은 그 뒤에도 한참 흐느꼈다.차에서 그 모습을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던 고소정이 말했다.“엄마! 서준명이 우리한테 하는 거 못 봤어? 그리고 할아버지도! 엄마는 할아버지 그립다며 찾아왔는데 그분은 엄마한테 어떻게 했어? 그게 어떻게 오랜만에 딸을 본 아버지의 태도야!”고가령은 미간을 찌푸리고 딸을 잠시 쏘아보다가 말했다.“넌 아직 너무 어려! 세상 살아가는 법을 그렇게 몰라서야. 그렇게 해야 여기 온 목적을 달성하지!”고소정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이 엄마가 누구야? 난 그냥 네 이모할머니의 조카딸일 뿐이야. 고씨라고! 서씨가 아니라.”“저 집에서 나와 혈연관계가 있는 사람은 내 이모, 그러니까 네 이모할머니뿐이야. 그런데 그분은 돌아가신 지 오래됐잖아. 그 집 사람들은 우리를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게 당연해.”고소정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엄마에게 쏘아붙였다.“그러니까 싫어하는데 왜 그렇게 빌빌대야 하는 거냐고!”“그러지 않으면 우린 뭘 먹고 살아? 거리에서 방랑 생활이라도 할 거야?”고소정은 할 말을 잃었다.“엄마가 들고 있는 명품백, 그리고 옷들, 네가 들고 다니는 백과 옷, 네 직장과 신분 모두 저 집에서 준 거야. 어떻게든 저 가문의 배경을 이용해서 괜찮은 남자를 만나야지. 엄마는 네가 엄마처럼 사는 거 절대 못 봐! 알겠어?”고소정이 어색한 얼굴로 말했다.“알았어, 엄마.”고가령은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엄마는 외국 남자를 선택해서 이렇게 된 거야. 그때는 국내에 나랑 어울리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거든. 그렇게 평생을 망쳤어.”“나중에 그런 생각이 들더라. 해외에서 무시당하며 사는 바에야 남성으로 돌아오는 게 낫겠더라고.”“남성에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잖아. 서씨 가문이라는 배경만 있으면 남성에서 어떤 남자든 네 남자로 만들 수 있어!”“난 너한테 미모를 줬고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 학력까지 줬어. 그리고 사람을 대할 때는 도도하고 자신감 넘쳐야 한다고 가르쳤지. 서씨 가문에서 우리
서준명이 힘없이 웃으며 대답했다.“역시 세희는 똑똑하구나. 네 눈을 속일 수 없겠어.”“난 괜찮아요. 이해할 수 있어요. 그래도 친척이잖아요. 친척이 친척을 보러 오는데 뭐라 할 수는 없죠. 게다가 우리 엄마랑은 상관없는 일이고요.”잠시 숨을 고른 신세희는 간절한 눈빛으로 서준명에게 물었다.“오빠, 이 일을 엄마한테는 비밀로 해줄 수 있어요?”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엄마가 그 집 사람들을 가족으로 인정하기는 싫어하지만 그래도 어릴 때 무시당하고 차별당하던 안 좋은 기억이 있잖아요. 그냥 먼 친척집 딸이 자기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걸 보고 어떤 심정이었겠어요? 친딸인 자신은 항상 외면당했는데….”“나도 알아.”서준명이 말했다.“고모가 많이 상처받은 거 알아. 나한테도 고모는 한 명뿐이야. 내 고모는 네 엄마야. 네 엄마한테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을 생각이야. 할아버지나 아버지를 만나달라고도 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고마워요, 준명 오빠.”“이제 만두 먹으러 가자.”그날 식사는 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끝마쳤다.식사가 끝나고 오후에는 가볍게 산책을 했다. 아이는 외할머니의 안방에서 낮잠을 잤고 서준명은 정원을 정돈한다며 잡초를 뽑았다. 부소경은 사람을 불러 장모님의 피아노를 다시 세팅했다.신세희는 엄마의 춤 연습을 도왔다.그렇게 오후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저녁식사는 여전이 이곳에서 먹었다.하지만 서진희가 피곤할 것을 고려해 신세희 부부는 저녁만 먹고 작별인사를 했다.물론 서준명도 함께였다.대문을 나선 신세희는 서준명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준명 오빠, 엄마를 자주 찾아와 줘서 정말 고마워요. 엄마도 자식이 둘이나 생긴 것 같다며 좋아하셨어요.”“걱정하지 마. 난 끝까지 고모를 돌볼 거야.”“오빠가 좋은 사람인 건 알아요. 선희 씨는 내가 어떻게든 설득해 볼게요. 오빠를 위해서가 아니라 선희 씨를 위해서요.”서준명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고마워.”“조심히 들어가요.”“그래,
갑자기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윤희 언니도 그렇게 생각할까?“그 여자가 자처한 거잖아요.”신세희가 말했다.“물론이지!”서준명도 웃음을 터뜨렸다.“나도 나중에 알았어. 그 여자 해외로 돌아다니면서 구경민 대표 돈을 펑펑 써댔다면서? 그러면서 태도는 어찌나 거만했는지. 몇 년을 떠나 있었으면서 돌아오면 자기 자리는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했나? 사람을 바보로 아나 봐. 이제 자기 잘못을 알았으니 울어야지.”신세희는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속으로 묵묵히 고윤희를 위해 기도했다.‘언니, 잘 살아 있어줘요. 꼭 그래야 해요. 구경민은 평생을 두고 언니한테 속죄하며 살아야 할 거예요. 돌아오면 언니를 여왕처럼 모시겠죠! 언니 괴롭히던 사람들 꼭 밟아줘요!’깊은 밤, 신세희는 꿈에서도 고윤희 걱정을 했다.“임신한 몸으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그 모습을 바라보는 부소경은 가슴이 아팠다.그녀가 이렇게까지 고윤희를 걱정하는 이유가 자신이 겪었던 일들과 고윤희가 지금 겪는 일들이 너무 비슷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임신한 몸으로 방랑 생활을 하는 게 얼마나 힘든 걸 알기에 그녀는 이렇듯 고윤희를 걱정하고 있었다.신세희는 얼마나 힘들었을까?부소경은 그 느낌을 제대로 알 수는 없었다.그는 아내를 품에 꼭 안고 그녀의 머리를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 했다.남편의 품에 안긴 신세희는 다시 악몽을 꾸지 않고 편안하게 잠들었다.월요일.신세희는 활력이 넘쳤다.유리를 유치원에 데려가는 길, 그녀는 고소정과 또 마주쳤다.물론 이제 그 여자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고소정은 자신의 아빠가 누군지 모른다. 그녀는 엄마의 성을 따랐고 그건 그의 딸 고상은도 마찬가지였다.고소정을 본 신세희는 싱긋 웃는 것으로 인사를 대체했다.하지만 고소정은 여전히 일관된 차가운 얼굴이었다.마치 넌 부자고 나는 독립적이고 자존심 강한 사람이니 너 같은 사람이랑 상종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신세희는 신경 쓰지 않았다.남편과 오래 함께하면서 그의 침착하고
신세희는 흥분한 나머지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언니… 윤희 언니…. 언니 맞죠?”수화기 너머로 온화한 고윤희의 목소리가 전해졌다.“세희 씨, 그냥 이 말 전하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빌려준 돈 2년 좀 지나야 갚을 수 있을 것 같아요.”신세희는 즉시 눈물을 흘렸다.“그런 말 하지 마요. 언니….”방랑 생활을 할 때도 이렇게 울어본 적 없었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아이를 임신하고 지방에서 의지할 곳 하나 없이 사는 느낌이 어떤 건지 신세희는 알고 있었다.그건 지옥 같은 날들이었다.“나는… 생각보다 잘 지내고 있어요.”고윤희가 오히려 신세희를 위로했다.“언니… 돌아와요. 내가 언니를 보살필게요.”고윤희는 단호하게 그녀의 말을 잘랐다.“세희 씨, 난 잘 지내고 있어요. 평화롭고 평범하게….”고윤희의 말은 사실이었다.최소한 살 곳은 해결했다.그녀와 한진수는 고향으로 돌아가 한진수 소유의 시골 땅에서 거처를 마련했다.주광수가 그들을 놓아준 뒤로 두 사람은 택시를 갈아타며 50만원이라는 큰 돈을 들여 힘겹게 고향에 도착했다.한진수의 고향은 산으로 둘러싸인 시골마을이었다.그들의 집은 산기슭에 위치한 헌 기와집에다 거미줄이 잔뜩 쳐져 있었다.다행히 집 안에 쓰던 이불이 남아 있었다.집으로 돌아온 첫날, 고윤희는 이불을 깨끗이 빨아 햇빛에 말렸다. 한진수는 집 안팍을 깨끗이 청소했다.하루 사이에 사람이 살 수 있는 거처가 마련되었다.그날 밤, 고윤희는 한진수 어머니 옆을 지켰고 한진수는 산을 올라갔다.날이 거의 밝을 때쯤, 한진수는 꿩 두 마리를 잡아 집으로 돌아왔다.그들은 아침 시장에 가지고 나가 팔아서 10만원 정도를 마련했다.한진수는 그 돈으로 쌀 20kg와 밀가루, 기름, 야채를 샀다.그날 그들은 드디어 따뜻한 밥과 채소, 그리고 한진수 어머니가 직접 만든 만두를 먹을 수 있었다.밥을 먹으며 고윤희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윤희 씨, 친구한테 빌린 돈으로 농기구를 장만할까 하는데… 어떻게
눈 깜빡할 사이에 신유리는 어느덧 18살이 되었다.벌써 대학교에 다닐 나이었다.그녀의 남편 부소경은 곧 쉰 살을 앞둔 사람이라 구레나룻이 하얗게 변해버렸다.그녀와 부소경 두 사람이 함께 파란만장을 겪은 시간도 어느덧 20년이 다 되어갔다.너무 빨랐다."영감."신세희가 그를 불렀다.부소경은 고개를 돌려 신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방금 날 뭐라고 불렀어?"신세희는 웃으며 대답했다."이제 영감 아니에요? 당신은 곧 50대이고 나는 이제 겨우 40대인데, 난 할멈이 아니지만 당신은 그냥 토종 영감이잖아요! 봐봐요, 당신 지금 구레나룻도 하얗게 변해버렸잖아요. 결혼식 날에 염색 좀 하는 게 어떨까 싶어요!""싫어! 난 남들이 나를 와이프밖에 모르는 남자라고 얘기하길 바란단 말이야! 그러니까 앞으로 나를 가꿔줄 생각은 절대 하지 마!"부소경은 자신보다 10살은 어려 보이는 와이프에게 말했다.하늘도 무심하지!신세희는 젊어서부터 지금까지 조금도 늙지 않았다!40대에 들어선 사람이 어찌 늙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하지만 부소경은 자신의 젊은 와이프를 보며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그는 와이프와 결혼식을 올릴 날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그리고 마침내 그날은 경치가 예쁘고 날씨가 맑게 갰으며 딱 좋은 기온에 바람도 없었다.그날 두 신인은 남성 최고급 호텔에서 더블 결혼식을 올렸다.결혼식에 참석한 사람은 모두 남성 및 글로벌 인사들이었다.신세희와 부소경, 엄선희와 서준명은 모두 친척이 적었지만 네 명의 친척 친구들을 모두 불러 모은 덕이 남성 호텔 마당은 사람으로 가득 찼다.두 신인 커플이 사람들의 시야에 나타났다. 비록 젊은이는 아니었지만 새로웠다.엄선희의 부모는 기쁜 마음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들의 엄선희가 또다시 돌아왔다.2년 동안 여러 번 수정을 마친 덕에 엄선희는 원래 모습과 거의 비슷할 정도로 돌아왔다. 엄씨 어르신과 엄씨 부인은 이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이번 결혼식의 모든 주최와 비용은 신세희와 부소경이 부담했다.엄
엄선희는 자신의 아이를 껴안은 채 고개를 들어 친 엄마를 바라보았다.그 순간 마음이 벅차올랐다.감격과 억울함 때문에 그녀는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그녀는 엄마에게 달려가 품에 안겼다. 이윽고 엄씨 어르신도 두 모녀를 꼭 끌어안았다. 한 가족이 성공적으로 상봉했다.아니, 이제는 다섯 명이고, 서준명까지 더하면 총 여섯 명이었다.여섯 가족은 함께 부둥켜안고 있었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이들은 참지 못하고 그만 눈물을 마구 흘렸다.간호사도 눈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한참 지나서야 엄씨 어르신과 엄씨 부인은 엄선희를 놓아주었다."됐어, 얘야, 이제 집으로 들어가자. 우리 집으로!"나금희는 고개를 들어 엄선희를 바라보았다. 비록 원래 얼굴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그녀의 아이가 맞았다. 사오 년 전에 실종됐던 아이를 드디어 다시 만나게 되었다..그동안 엄선희는 희귀병을 앓게 되었지만 우연히 받은 치료 때문에 성공적으로 완치되었고 이로 인해 피와 혈액형이 바뀌게 되었다.엄선희는 죽을 운명이었지만 가짜 엄선희 덕분에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아무튼 그녀의 딸 엄선희는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행운아였다.4,5년 동안 겪은 고난, 그게 무슨 대수겠는가?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중에 파란만장을 겪어본 적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그 고난이 아이의 재산으로 될 이고 앞으로 아이는 이를 소중히 여길 줄 알고 아낄 줄 알며 모든 걸 알게 될 것이다.아주 좋았다.엄선희의 복귀에 엄씨 가문은 성대한 파티를 열었다.온 남성 사람들이 서준명의 아내가 돌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윽고 전해진 소식은 바로 얼마 지나지 않아 서준명과 엄선희가 성대한 결혼식을 올린다는 것이었다."이 일은 이미 남성 전체에 퍼졌어요. 결혼식은 대체 언제 할 것 같아요?"여유시간에 신세희가 장난식으로 엄선희에게 물었다.엄선희는 옆에 앉아있는 반명선을 보며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명선 씨가 내 얼굴을 다시 원상 복구시켜 주겠대요. 하지만 천천히 되돌리려면 2년은 걸린대요. 난
모든 일을 마치고 난 뒤 서준명은 갑자기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왜 그래, 아들?"서씨 부인은 이미 세 아들을 잃었고 남은 아들이라곤 서준명 한 명밖에 없었다. 그녀는 아들이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어머니, 그냥 운명이 장난치는 것 같아서요.. 모든 게 다 하늘의 뜻이었군요, 모든 게 다 하늘의 뜻이었어요!"서준명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했다.서씨 부인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왜 그러니, 얘야?"서준명은 울다가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어머니, 이제야 알겠어요. 하늘이 왜 엄선희 씨한테 사오 년 동안 이런 수고를 겪게 만들었는지 알 것 같아요. 하늘은 비록 그녀에게 잔인한 고문을 내렸지만 마지막엔 결국 해피엔딩을 선물했잖아요. 그러지 않았다면 진짜 죽은 사람은 우리 엄선희 씨 아니겠어요? 나의 엄선희를 살렸잖아요."아들의 말에 서씨 부인은 감격 어린 말투로 말했다."그래, 결국 마지막에 행운을 맞이한 사람은 바로 우리 엄선희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하느님도 아껴주시는 엄선희. 준명아, 빨리 선희를 데려와, 그동안 그 애가 얼마나 수고가 많았겠니."서준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몸을 돌리자마자 그는 두 아이를 발견했다."아빠, 우리 엄마를 데려오려는 거예요?"단이가 서준명에게 물었다.서준명이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미미가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엄마 안 데려오면 내가... 진짜 아빠 때릴 거예요!"미미는 점점 박력 넘치는 모습으로 컸다.게다가 오빠도 그녀의 편을 들어줬기 때문에 서씨 가문 마당에서 고양이랑 다투든 강아지랑 다투든 그녀는 줄곧 이기는 쪽이었기 때문에 미미는 자신이 천하무적이라고 생각했다.서준명은 웃으며 미미를 품에 껴안았다."아빠는 맞는 거 무서워해. 그러니까 미미가 아빠 때리면 아빠는 아파서 울 거야. 그래서 아빠가 미미 말에 따를거야. 오늘 당장 엄마 데려올게, 어때?"두 아이는 엄마를 데려온다는 말에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엄마를 데려오기 전에 먼저 할머니와 할아버
죽기 직전까지도 가짜 엄선희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그녀는 두 눈을 똑똑히 뜬 상태로 자신이 바닥에 쓰러지는 것을 지켜보았다.그녀는 자신의 계획이 이대로 틀어질 줄 미처 몰랐다. 결혼식만 마치면 진짜 엄선희를 대신해 남성에서 상류사회를 누리는 서씨 가문 사모님으로 될 수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총살당하고 말았다.과연 누구일까?그녀는 이유를 알기도 전에, 울 틈도 없이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그녀의 아쉬움은 결국 그녀의 몸에 영원히 파묻히고 말았다.얼마나 억울했으면 심장이 멈췄음에도 불구하고 두 눈을 감지 못한 걸까?서준명도 깜짝 놀랐다.그는 원래 미란다 무리를 한꺼번에 쓸어버릴 계획이었기에 오늘 경찰들도 이들을 죄다 잡아갈 생각으로 온 것이었다. 하지만 서준명은 이 타이밍에 미란다가 암살당할 줄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범인은 대체 누구일까?서준명은 당황한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경찰들은 오늘 이곳에서 범인들을 완벽히 체포하려던 계획이었기에 츄리닝으로 무장한 경찰도 있었고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든 경찰도 많았다. 모두 미란다를 잡기 위해 출동한 경찰들이었다. 하지만 미란다 대신 미란다에게 총을 쏜 범인을 잡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차 안에 있던 구릿빛 피부 뚱보는 엄선희를 사살하려던 자신의 치밀했던 계획을 뚫고 이토록 많은 경찰들이 나타날 줄은 미처 몰랐다.그는 작전도구를 숨기기도 전에 경찰에게 그만 체포당하고 말았다.정말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미란다가 엄선희 얼굴로 성형하여 그녀의 신분을 도용한 사건은 우연히 발생한 총격 사건으로 인해 초라하게 마무리되었다.경찰은 구릿빛 피부 뚱보를 잡고 취조하고 나서야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는 해외에 있는 서준명의 세 형님이 엄선희를 죽이라고 보낸 사격수였다.이 남자는 남성에서 오랜 시간 동안 서씨 가문을 노리고 있었다.하지만 내내 엄선희를 발견하지 못했다.그러다가 어렵게 엄선희가 나타나 기회를 잡고 죽이게 되었으나 손쉽게 경찰에게 체포당하고 말았다.이게 대체 무슨 경우란 말인가!서준
두 여직원은 봉쇄형 유리차를 끌고 나왔다. 유리차 안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들어있었다. 다이아몬드는 유리를 뚫고 오색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가짜 엄선희는 홀린 듯이 반지를 바라보았다.주얼리샵 맞은편에 주차하여 망원경으로 지켜보던 구릿빛 피부 뚱보도 덩달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구릿빛 피부 뚱보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세상에! 저 여자를 얼마나 사랑하길래 저토록 비싼 반지를 선물하는 거야! 저 여자는 죽어 마땅해! 죽어 마땅하다고!"한편 주얼리 샵안, 서준명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가짜 엄선희를 바라보았다."내가 선물한 반지는 어때, 마음에 들어?"가짜 엄선희는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좋아, 여보 너무 좋아! 너무 마음에 들어!""이 반지는 원래 4년 전에 선물하려던 건데, 아쉽게 됐네, 그때는...""괜찮아, 여보. 지금도 마찬가지잖아? 비록 4년정도 늦게 선물 받았지만 결국 내 손에 끼워줬잖아. 이게 정말 최고 아니겠어?"가짜 엄선희는 기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말했다."빨리 껴봐, 보여줘!"서준명이 제촉하며 말했다."하하. 알겠어!"말을 마친 서준명은 반지를 꺼내 정중하게 가짜 엄선희의 손가락에 끼워주었다.그순간 가짜 엄선희의 마음은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두근거렸다.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나른한 기분이었다.서준명!남성 두 번째 재벌이자 남성 귀공자인 서준명이 드디어 그녀에게 값비싼 반지를 선물한다고?와! 그녀는 너무 행복했다!…그 순간 가짜 엄선희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그녀는 행복에 젖어 서준명이 그녀를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듣지 못한 게 아니었다.그녀 자신을 엄선희라 생각하고 다닌 탓에 서준명이 그녀의 본명을 외칠 때에도 눈치채지 못했다.서준명이 또다시 물었다."미란다 씨, 행복해?""응? 당신..은..?"가짜 엄선희는 그제서야 서준명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자 순간 그녀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그녀는 겁에 질린 나머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홀 안 세 테이블에 빽빽이 앉아있던 사람들은 이 상황을 보고 깜짝 놀랐다.그들은 아직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는 눈치였다.왜 엄선희가 가자마자 경찰들이 몰려든 걸까?사람을 체포하러 온 게 아닐까?"아니에요, 형사님, 저희는... 남성 서씨 가문 도련님 서준명 씨의 친구들입니다. 서준명 씨 아내를 구해준 보답으로 집 두 채를 선물한다고 했는데, 혹시 잘못 찾아오신 건 아닌가요?"바로 그때 진미리가 용감하게 나서서 경찰들에게 물었다.아무도 진미리의 질문에 대답해 주지 않았다.몇몇 경찰들이 나서서 그들의 휴대폰을 몽땅 수거했다.한 명도 빠짐없이.진미리는 참지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저희는 서준명 씨의 친구예요. 서준명 씨는 남성에서 유명한 사람이잖아요. 당신들이 우리를 잡으러 왔다는 사실을 서준명 씨가 알면..."한 경찰이 차갑게 피식 웃으며 말했다."저희가 잡으러 온 것은 바로 서준명 씨 친구들인 당신들입니다!""네? 왜요?"진미리는 의아했다.사실 그녀는 법을 잘 알지 못했기에 자신의 여동생을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자신의 동생은 서준명의 아내와 똑같은 얼굴로 성형했고 서준명도 동생을 아내로 받아들였는데 이를 사기라 할 수는 없지 않은가?돈도 한 푼 뺏지 않았는데?게다가 살인 방화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신분만 도용했을 뿐인데, 아니, 서준명이 가짜 엄선희를 아내로 인정했으니 신분 도용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신분 도용도 아니었다.때문에 지금 진미리와 그녀의 공범들은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다.경찰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진미리를 바라보았다."자신이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어찌 당신도 모르나요?"진미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우리는 서준명 씨의 친구들이에요. 게다가 서준명 씨는 남성에서 유명한 사람이고요. 서준명 씨도 당신들이 우리를 잡으러 왔다는 사실을 아나요?""알죠, 서준명 씨가 신고했으니까!"진미리와 그녀의 동료들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들은 하나같이 동상처럼 굳
"2천억이라니! 서씨 가문 형제들과 완전히 등 돌리려는 셈 아닌가! 서준명이 엄선희를 저토록 사랑하다니! 저 여자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당장이라도 죽여버리고 싶어! 반드시 죽일 거란 말이야!"구릿빛 피부 뚱보가 공손한 태도로 서준명의 큰형에게 물었다."사장님, 명령만 내리세요! 저 여자를 어떻게 죽일까요! 지금 당장 없애버릴까요!""안돼!"서준명의 큰형이 다급히 말렸다."지금은 죽일 타이밍이 아니야. 보는 눈이 많아서 자리를 피하기 어려울 거야. 나한테 충성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는데 너까지 잃을 수는 없어. 밖에서 처리하고 발 빼기 쉬운 곳으로 골라. 지금은 아니야!"구릿빛 피부 뚱보가 곧바로 말했다."알겠습니다, 사장님. 사장님 말씀에 따를게요. 그럼 시끌벅적한 장소를 골라 저 여자를 죽여버릴게요!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통화를 마친 뒤 구릿빛 피부 뚱보는 은밀히 홀 안의 상황을 관찰했다.한편 서준명은 가짜 엄선희와 함께 사람들에게 술을 권하고 있었다.한 명 한 명 빠뜨리지 않고 모두에게 물었다.모두 전에 가짜 엄선희에게 도움을 줬던 사람들이었다.서준명은 전에 이 사람들에 대해 전부 조사를 마쳤었다. 사기조작단과 마찬가지였다!총 서른 명 정도였는데, 그중 절반이 넘는 사람들은 가짜 엄선희의 가족들이었다.오빠와 언니, 형수와 형부, 그리고 고모 일곱 명과 이모 여덟 명.남은 건 그녀와 오랫동안 함께 근무해 온 부하들이었다.서준명은 마음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정말 비겁하기도 하지!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모든 가족들과 친구들까지 동원하다니. 하지만 그들이 억울한 게 뭐가 있을까? 그들은 모두 가짜 엄선희가 계획한 사기단에 가담한 공범들이다.그들이 엄선희에게 입힌 피해는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그들은 그의 두 아이까지 해치려고 했다!서준명이 어찌 그들을 또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술을 한 바퀴 권하자마자 서준명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그는 곧바로 휴대폰을 떠내 연락을 받았다."여보세요, 누구시죠
서준명의 말에 진미리는 쑥스러운 말투로 말했다."휴, 어떻게 매번마다 서준명 씨한테 신세를 지겠어요, 아무... 아무것도 아니에요.""어머, 언니, 어려운 일 생기면 언제든지 얘기 하세요. 제 남편은 남성에서 두 번째로 능력 있는 남편이에요. 못 하는 게 없다니까요."가짜 엄선희는 고개를 들어 애교 섞인 말투로 서준명에게 말했다."내 말이 맞지, 여보?"서준명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가짜 엄선희를 보며 말했다."자기 생각은 어때? 당신이 선택한 남편인데 틀릴 리가 있을까?""당연히 없지!"가짜 엄선희는 행복한 표정으로 서준명의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서준명은 가짜 엄선희를 품에 안자 순간 역겨운 기분이 들었다.이 가짜 엄선희는 확실히 진짜 엄선희와 아주 닮았다. 만약 이 엄선희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한 상태로 있었다면 서준명은 당연히 그녀를 그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진짜 엄선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하지만 진짜 엄선희라면 그에게 이런 요구를 건네진 않았을 것이다.엄선희는 태어날 때부터 공주님처럼 자라 고생한 적이 없지만 탐욕스러운 사람은 아니었다.엄선희는 돈에 아무런 개념도 없는 여자였다.게다가 사치품도 사지 않는 사람이었다.심지어 그녀는 아주 훌륭한 가정교육을 받고 자랐기에 단 한 번도 자신의 능력범위를 벗어나는 가격의 사치품에 손대지 않았다.서씨 가문에 시집와서도 그에게 이것저것 요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자신의 남편을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하는 짓도 절대 하지 않았다. 남편의 자금을 외부에 흘러 나가게 하는 것도 모자라 난감한 일까지 시키다니!엄선희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하지만 이 가짜 엄선희는 탐욕스럽기 그지 없었다!그럴수록 너무 괘씸했다!하지만 이럴수록 서준명은 더더욱 표정을 가다듬고 가짜 엄선희를 보듬어 주었다."여보, 이 사람들을 사심 없이 도와주는 걸로 봐서 전에 당신한테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맞지? 그럼 나도 고마움을 전해야지. 이분들이 없었다면 평생 내 아내를 보지 못하고 살 뻔했으니까
가짜 엄선희는 자연스럽게 동의했다.3일 후, 그들은 남성에서 가장 크고 호화로운 호텔에서 엄선희의 은인들을 초대해 연회를 베풀었다. 그들 중 일부는 외지에서 온 사람도 있었고, 남성 현지인도 있었다. 서준명이 사람들을 대충 살펴보자, 익숙한 중년 여성이 있음을 발견했다.그 중년 여성은 미루나와 같은 집에 살며 미루니에게 DNA 검사를 제안한 여자였다.서준명은 가짜 엄선희와 손을 잡고 그 중년 여성에게 다가갔다. "저를 아직 기억하십니까?”가짜 엄선희는 즉시 그 중년 여성을 소개했다."여보, 여긴 나한테 많은 도움을 준 언니 중 한 명이야. 이름은 진미리. 이 언니는 내가 유산했을 때를 포함해 항상 날 보살펴 줬어. 내 생각에는 이 언니에게 집 두 채는 드려야 할 것 같아!” 그러자 진미리라는 중년 여성이 즉시 손을 흔들었다. "아니요, 정말 괜찮습니다. 선희 씨를 돌봐주었던 것도 제 공덕의 하나라고 할 수 있죠. 절대 돈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니에요.” 진미리는 말을 하며 서준명을 바라보았다. “서준명 씨, 사실 저는 오랫동안 미루나에게 관심을 가졌어요. 나는 그 여자가 가짜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때 엄선희 씨는 일이 있어 남성에 오지 않았기에 준명 씨와 미루나가 마주치는 걸 정말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DNA 검사를 하라고 권한 거고요. 요즘은 DNA가 가장 정확하잖아요? 그러니 DNA 검사를 하고 나니 미루나가 가짜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잖습니까. 요즘에도 이런 사람이 있다니, 겉모습도 전혀 다르고, 닮은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데 억지로 남의 아내인 척하는 건 무슨 심보란 말입니까? 정말 말이 안 됩니다, 준명 씨와 선희 씨의 부모님 모두 현명하셔서 다행이지요. 그렇지 않았다면 그 미루나에게 정말로 당할 뻔했습니다. 그럼 선희 씨도 힘들어서 울다 지쳐 쓰려졌겠지요…” 진미리의 말을 들은 서준명은 침착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럼 집을 두 채 드리면 될까요?” 서준명은 이미 사람을 보내 확인을 마친 상태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