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명이 힘없이 웃으며 대답했다.“역시 세희는 똑똑하구나. 네 눈을 속일 수 없겠어.”“난 괜찮아요. 이해할 수 있어요. 그래도 친척이잖아요. 친척이 친척을 보러 오는데 뭐라 할 수는 없죠. 게다가 우리 엄마랑은 상관없는 일이고요.”잠시 숨을 고른 신세희는 간절한 눈빛으로 서준명에게 물었다.“오빠, 이 일을 엄마한테는 비밀로 해줄 수 있어요?”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엄마가 그 집 사람들을 가족으로 인정하기는 싫어하지만 그래도 어릴 때 무시당하고 차별당하던 안 좋은 기억이 있잖아요. 그냥 먼 친척집 딸이 자기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걸 보고 어떤 심정이었겠어요? 친딸인 자신은 항상 외면당했는데….”“나도 알아.”서준명이 말했다.“고모가 많이 상처받은 거 알아. 나한테도 고모는 한 명뿐이야. 내 고모는 네 엄마야. 네 엄마한테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을 생각이야. 할아버지나 아버지를 만나달라고도 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고마워요, 준명 오빠.”“이제 만두 먹으러 가자.”그날 식사는 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끝마쳤다.식사가 끝나고 오후에는 가볍게 산책을 했다. 아이는 외할머니의 안방에서 낮잠을 잤고 서준명은 정원을 정돈한다며 잡초를 뽑았다. 부소경은 사람을 불러 장모님의 피아노를 다시 세팅했다.신세희는 엄마의 춤 연습을 도왔다.그렇게 오후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저녁식사는 여전이 이곳에서 먹었다.하지만 서진희가 피곤할 것을 고려해 신세희 부부는 저녁만 먹고 작별인사를 했다.물론 서준명도 함께였다.대문을 나선 신세희는 서준명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준명 오빠, 엄마를 자주 찾아와 줘서 정말 고마워요. 엄마도 자식이 둘이나 생긴 것 같다며 좋아하셨어요.”“걱정하지 마. 난 끝까지 고모를 돌볼 거야.”“오빠가 좋은 사람인 건 알아요. 선희 씨는 내가 어떻게든 설득해 볼게요. 오빠를 위해서가 아니라 선희 씨를 위해서요.”서준명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고마워.”“조심히 들어가요.”“그래,
갑자기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윤희 언니도 그렇게 생각할까?“그 여자가 자처한 거잖아요.”신세희가 말했다.“물론이지!”서준명도 웃음을 터뜨렸다.“나도 나중에 알았어. 그 여자 해외로 돌아다니면서 구경민 대표 돈을 펑펑 써댔다면서? 그러면서 태도는 어찌나 거만했는지. 몇 년을 떠나 있었으면서 돌아오면 자기 자리는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했나? 사람을 바보로 아나 봐. 이제 자기 잘못을 알았으니 울어야지.”신세희는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속으로 묵묵히 고윤희를 위해 기도했다.‘언니, 잘 살아 있어줘요. 꼭 그래야 해요. 구경민은 평생을 두고 언니한테 속죄하며 살아야 할 거예요. 돌아오면 언니를 여왕처럼 모시겠죠! 언니 괴롭히던 사람들 꼭 밟아줘요!’깊은 밤, 신세희는 꿈에서도 고윤희 걱정을 했다.“임신한 몸으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그 모습을 바라보는 부소경은 가슴이 아팠다.그녀가 이렇게까지 고윤희를 걱정하는 이유가 자신이 겪었던 일들과 고윤희가 지금 겪는 일들이 너무 비슷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임신한 몸으로 방랑 생활을 하는 게 얼마나 힘든 걸 알기에 그녀는 이렇듯 고윤희를 걱정하고 있었다.신세희는 얼마나 힘들었을까?부소경은 그 느낌을 제대로 알 수는 없었다.그는 아내를 품에 꼭 안고 그녀의 머리를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 했다.남편의 품에 안긴 신세희는 다시 악몽을 꾸지 않고 편안하게 잠들었다.월요일.신세희는 활력이 넘쳤다.유리를 유치원에 데려가는 길, 그녀는 고소정과 또 마주쳤다.물론 이제 그 여자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고소정은 자신의 아빠가 누군지 모른다. 그녀는 엄마의 성을 따랐고 그건 그의 딸 고상은도 마찬가지였다.고소정을 본 신세희는 싱긋 웃는 것으로 인사를 대체했다.하지만 고소정은 여전히 일관된 차가운 얼굴이었다.마치 넌 부자고 나는 독립적이고 자존심 강한 사람이니 너 같은 사람이랑 상종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신세희는 신경 쓰지 않았다.남편과 오래 함께하면서 그의 침착하고
신세희는 흥분한 나머지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언니… 윤희 언니…. 언니 맞죠?”수화기 너머로 온화한 고윤희의 목소리가 전해졌다.“세희 씨, 그냥 이 말 전하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빌려준 돈 2년 좀 지나야 갚을 수 있을 것 같아요.”신세희는 즉시 눈물을 흘렸다.“그런 말 하지 마요. 언니….”방랑 생활을 할 때도 이렇게 울어본 적 없었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아이를 임신하고 지방에서 의지할 곳 하나 없이 사는 느낌이 어떤 건지 신세희는 알고 있었다.그건 지옥 같은 날들이었다.“나는… 생각보다 잘 지내고 있어요.”고윤희가 오히려 신세희를 위로했다.“언니… 돌아와요. 내가 언니를 보살필게요.”고윤희는 단호하게 그녀의 말을 잘랐다.“세희 씨, 난 잘 지내고 있어요. 평화롭고 평범하게….”고윤희의 말은 사실이었다.최소한 살 곳은 해결했다.그녀와 한진수는 고향으로 돌아가 한진수 소유의 시골 땅에서 거처를 마련했다.주광수가 그들을 놓아준 뒤로 두 사람은 택시를 갈아타며 50만원이라는 큰 돈을 들여 힘겹게 고향에 도착했다.한진수의 고향은 산으로 둘러싸인 시골마을이었다.그들의 집은 산기슭에 위치한 헌 기와집에다 거미줄이 잔뜩 쳐져 있었다.다행히 집 안에 쓰던 이불이 남아 있었다.집으로 돌아온 첫날, 고윤희는 이불을 깨끗이 빨아 햇빛에 말렸다. 한진수는 집 안팍을 깨끗이 청소했다.하루 사이에 사람이 살 수 있는 거처가 마련되었다.그날 밤, 고윤희는 한진수 어머니 옆을 지켰고 한진수는 산을 올라갔다.날이 거의 밝을 때쯤, 한진수는 꿩 두 마리를 잡아 집으로 돌아왔다.그들은 아침 시장에 가지고 나가 팔아서 10만원 정도를 마련했다.한진수는 그 돈으로 쌀 20kg와 밀가루, 기름, 야채를 샀다.그날 그들은 드디어 따뜻한 밥과 채소, 그리고 한진수 어머니가 직접 만든 만두를 먹을 수 있었다.밥을 먹으며 고윤희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윤희 씨, 친구한테 빌린 돈으로 농기구를 장만할까 하는데… 어떻게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한진수는 뒷산의 공터에 밭을 일구고 농작물을 심었다. 모든 일을 끝낸 뒤, 그는 읍내에 일을 찾으러 갔다.“윤희 씨는 집에서 푹 쉬어요. 너무 심심하면 엄마랑 같이 밖에서 산책 좀 해도 괜찮아요. 산밖에 없는 시골이라 남성 같은 대도시에 비교할 수는 없을 거예요. 한 달이 지나도 사람 하나 찾아보기 힘든 곳이니까요.”떠나기 전, 한진수가 고윤희에게 한 말이었다.고윤희는 한진수의 손을 잡고 말했다.“진수 씨, 나는 고독이 두렵지 않아요.”한진수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과거에 빛도 안 들어오는 방에 갇힌 적 있어요. 그렇게 몇 년을 갇혀 살았죠. 외로움에는 이미 적응됐어요.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당신과 같이 밖에 나가서 일하고 싶어요. 저녁에 퇴근할 때, 당신과 같이 집에 돌아오면 좋겠어요. 나는 배속의 아이한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고 싶어요.”고윤희는 간절한 눈빛으로 한진수를 바라보았다.한진수는 여자의 이런 갈망을 이해했다.많은 일을 겪고 그녀도 느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보다 자신이 강해져야 한다는 것을.임신한 몸으로 일을 시키고 싶지는 않았지만 한진수는 그녀의 결정에 동의했다.“좋아요. 그럼 같이 읍내로 가요.”“가기 전에 할 일이 있어요.”고윤희가 말했다.“무슨 일이요? 옷을 사고 싶으면 같이 사러 가요.”고윤희는 고개를 저었다.“세희 씨한테 돈을 빌렸으니 전화라도 한 통 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난 진수 씨와 평생 살기로 했으니 어떤 부담도 끼치기 실어요. 세희 씨한테 그쪽 일을 좀 해결해 달라고 부탁할 거예요.”한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그렇게 하루가 지난 뒤, 고윤희는 신세희에게 전화를 걸었다.“세희 씨, 나는 지금이 정말 좋아요.”고윤희가 온화한 말투로 말했다.“언니, 걱정하지 마요. 언제든지 돈이 필요하면 나한테 말해요.”신세희가 다급히 말했지만 고윤희는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우린 두 사람이에요. 손도 있고 발도 있어요. 평소에 돈을 많
며칠 사이에 구경민의 이마에는 주름이 생겼다.그는 몹시 지친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그냥… 서울에 있자니 재미 없어서 내려왔어요. 별장에 들리지 않고 바로 여기로 온 거예요. 윤희는….”신세희가 조금 전 고윤희와 통화했을 거라고 의심하지는 않았다.그냥 생각이 나서 여기로 온 것이다.고윤희가 정말 절박한 상황이 오면 신세희에게 연락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평소 고윤희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면 그건 신세희였다.“구경민 씨.”신세희는 목청을 가다듬고 그에게 말했다.“서울에서… 최여진 씨 만났어요?”구경민은 고개를 끄덕였다.“만났죠. 하지만 우린 완전히 끝났어요. 솔직히 헤어진지 10년도 더 됐잖아요. 난 그 여자랑 아무 상관도 없어요!”신세희는 고대를 끄덕여 주었다.“알아요, 알아요. 구경민 씨.”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말했다.“구경민 씨, 내 말 잘 들어요. 나는 최여진 씨가… 조금 과격한 행동을 했지만 그건 경민 씨를 사랑해서 그랬다고 생각해요… 그 여자가 윤희 언니를 때린 것도… 아마 사랑 때문일 거예요.”“지금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예요?”구경민이 눈살을 찌푸리며 신세희의 말을 잘랐다.“사실 구경민 씨… 윤희 언니는 줄곧 알고 있었어요. 두 사람이 오래 같이 생활하기는 했지만… 구경민 씨는 언니를 사랑하지 않았잖아요. 그거 언니도… 아마….”신세희는 마음을 굳게 먹고 또박또박 말했다.“윤희 언니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구경민은 멍한 표정이었다.“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지 않으니 이제 찾을 필요도 없잖아요. 각자 삶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신세희가 말했다.“아니! 윤희는 나를 사랑해요! 사랑한다고요!”“하지만 당신은 언니를 사랑하지 않잖아요!”구경민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윤희 어디 있는지 알죠? 알고 이러는 거죠?”구경민은 신세희의 옷깃을 잡고 반복해서 물었다.“그건 정말 몰라요, 경민 씨. 언니가 어디 있는지 알면 내가 가장 먼저 찾아갔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 생
살아 있는 새우만 봐도 겁이 나서 목을 움츠리는 여자였다.하지만 그녀는 그가 새우 요리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까다로운 그의 입맛을 알기에 식당에서 요리한 새우나 냉동 새우는 쓰지도 않았다. 그녀는 항상 직접 해산물 시장으로 가서 신선한 새우를 샀다.그러고는 집으로 돌아와 두려움을 참으며 새우를 하나하나 직접 손질했다.그녀는 그를 위해 수많은 희생을 했다.그런데 사랑하지 않는다니?아무도 듣지 못했지만 구경민은 그녀의 입에서 사랑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너무 일상적으로 들어서 밥 먹었냐는 인사처럼 들릴 정도로 많이 들었다.그래서 그녀가 했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는지도 모른다.고윤희는 줄곧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경민 씨,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아. 난 그냥 당신 집 가정부일 뿐이야. 나를 그렇게 생각해도 좋아.”그리고 그는 그 말대로 정말 그녀를 가정부처럼 생각했다.밖에서는 훌륭한 파트너, 집에서는 요리 잘하는 가정부, 침대에서는 누구보다 정열적인 요부.구경민은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걸음을 돌렸다.신세희가 그의 등뒤에 대고 말했다.“경민 씨, 괜찮은 거죠?”구경민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신세희는 남편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녀의 말이라면 항상 옳다고 하던 남편이 처음으로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당신 고윤희 씨 사는 곳 알지? 알면 알려줘. 경민이 이대로 두다가는 정말 미칠지도 몰라.”“내가 언니 사는 곳을 그 사람에게 알려주면 언니의 지금 생활이 깨지잖아요. 평화로운 생활을 위해 언니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알아요?”부소경은 고개를 저었다.“나도 오늘 경민이한테 말했어. 윤희 씨가 정말 돌아오기 싫다고 하면 절대 강요하지 말라고. 어쨌든 경민이가 먼저 내쫓았잖아. 그러니 연락처를 경민이한테 줘. 끝을 맺더라도 두 사람이 만나서 해결해야지.”잠시 고민하던 신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그것도 나쁘지 않네요! 아내와 자식을 잃은 고통을 직접 느껴봐야죠!”그녀는 고윤희의 연
“세희 씨, 나예요!”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남자가 다급히 말했다.자세히 다가가서 보니 온갖 오물을 뒤집어쓰고 몸을 웅크린 남자는 다름 아닌 구경민이었다.남자는 상당히 지친 얼굴로 고개를 들고 그녀에게 말했다.“세희 씨, 또 실패했어요.”“경민 씨?”구경민은 처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침부터 찾아와서 많이 놀랐죠?”“윤희가 또 숨어버렸어요. 마지막으로 신호가 잡힌 곳이… 공동묘지였어요.”신세희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산을 샅샅이 뒤졌는데 잡초랑 묘지 말고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 흔한 멧돼지 한 마리 안보이더라고요. 사람은 더 말할 것도 없어요.”신세희는 그제야 놀란 가슴을 가라앉혔다.구경민이 고윤희를 만나서 상황이 더 악화되는 게 아닐지 줄곧 걱정했던 그녀였다.신세희는 부소경을 불러 잔뜩 취한 구경민을 부축해서 거실 소파에 눕혔다.방금 잠에서 깬 신유리는 구경민 앞에 다가가더니 놀려대기 시작했다.“경민 삼촌은 정말 불쌍해.”“너도 그렇게 생각해? 나도 그렇게 생각해!”“불쌍하긴 한데 점점 더러워지고 있어. 먼지가 잔뜩 묻은 곰인형 같아.”구경민은 할 말을 잃었다.“삼촌, 윤희 이모 쫓아낸 거 후회하지? 그러게 왜 그랬어? 윤희 이모랑 같이 있을 때는 그렇게 깔끔하고 옷도 잘 입었는데 윤희 이모 사라지니까 아주 거지 같아. 전혀 잘생기지 않았어. 늙고 병든 영감 같아.”말을 마친 신유리는 코끝을 살짝 찡그렸다.“냄새 나잖아. 술만 마시지 말고 좀 씻어. 술 냄새에 퀴퀴한 냄새에 아주 못 봐주겠어. 저기 밥 빌어먹는 거지보다 더 더러워.”구경민은 아이의 독설에 반박하지 못했다.항상 모두의 존경만 받던 구경민이 언제 이런 대우를 받아봤을까?그는 고개를 들고 자신을 하찮은 듯이 바라보는 아이를 쏘아보았다.그런데 갑자기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한 달.그는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을 모두 동원했다.하지만 여전히 고윤희를 찾지 못했다.그를 떠났을 때 그녀는 이미 임신한 상태였다.아마 지금쯤 2개월 차였다.배는 좀 나
하지만 임신한 여자는 피곤함을 자주 느낀다고 했다.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많이 붓는다고 했는데 그녀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삼촌 때문에 우리 집 소파가 더러워졌잖아!”신유리도 최근 구경민이 싫었다. 그만 보면 짜증이 치밀었다.아픈 사람이 자신의 집 소파에 누웠다면 그게 누구든 이렇게까지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오히려 많이 아프냐고 걱정하고 돌봐줬을지도 모른다.하지만 구경민은 아니었다.고윤희가 구경민에게 쫓겨났다는 말을 들은 뒤로 아이는 구경민이 눈에 거슬렸다.“우리 집에서 나가! 당장 안 나가면 때릴 거야!”신유리는 허리에 양손을 얹은 뒤, 눈을 부릅뜨고 구경민을 향해 소리쳤다.금방 잠에서 깬 아이는 부스스한 머리에 사랑스러운 원피스 잠옷을 입고 어린아이 특유의 분유 냄새를 솔솔 풍기며 제딴에는 무섭게 보이려고 눈을 동그랗게 부릅뜨고 있었다.그 모습을 본 구경민은 생각에 잠겼다.만약 고윤희가 딸을 낳는다면 이 아이처럼 사랑스러울까?어쩌면 이 아이 못지 않게 성격이 사나울지도 모른다.하지만 그와 고윤희의 딸이라면 서울은 물론이고 남성에서도 성깔을 부릴 자격은 충분하다.하지만….“유리야, 삼촌 때려줘. 죽여도 좋아.”구경민은 눈을 감고 아이의 매를 기다렸다.하지만 아이가 손을 들기도 전에 신세희가 아이를 안고 방으로 돌아갔다.그에게 다가온 부소경이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 원래 이렇게 못난 놈이었어? 마누라 못 찾겠으니까 왜 자꾸 우리 집에 와서 사람 괴롭히고 그래?”말을 마친 부소경은 구경민을 부축해서 밖으로 향했다.문을 연 부소경이 고개를 돌려 신세희에게 말했다.“일단 이놈은 내가 데리고 회사로 갈게.”신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이날 아침도 신세희가 신유리를 유치원에 데려갔다.그리고 우연인지 유치원 앞에서 고소정을 만났다.여자는 통화 중이었는데 평소와는 다르게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좋아요. 고마워요, 오빠. 이렇게 큰 고객을 소개시켜 줘서 정말 고마워요. 이따가 점심이라도 같이 할래요?”고소정은 통
눈 깜빡할 사이에 신유리는 어느덧 18살이 되었다.벌써 대학교에 다닐 나이었다.그녀의 남편 부소경은 곧 쉰 살을 앞둔 사람이라 구레나룻이 하얗게 변해버렸다.그녀와 부소경 두 사람이 함께 파란만장을 겪은 시간도 어느덧 20년이 다 되어갔다.너무 빨랐다."영감."신세희가 그를 불렀다.부소경은 고개를 돌려 신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방금 날 뭐라고 불렀어?"신세희는 웃으며 대답했다."이제 영감 아니에요? 당신은 곧 50대이고 나는 이제 겨우 40대인데, 난 할멈이 아니지만 당신은 그냥 토종 영감이잖아요! 봐봐요, 당신 지금 구레나룻도 하얗게 변해버렸잖아요. 결혼식 날에 염색 좀 하는 게 어떨까 싶어요!""싫어! 난 남들이 나를 와이프밖에 모르는 남자라고 얘기하길 바란단 말이야! 그러니까 앞으로 나를 가꿔줄 생각은 절대 하지 마!"부소경은 자신보다 10살은 어려 보이는 와이프에게 말했다.하늘도 무심하지!신세희는 젊어서부터 지금까지 조금도 늙지 않았다!40대에 들어선 사람이 어찌 늙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하지만 부소경은 자신의 젊은 와이프를 보며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그는 와이프와 결혼식을 올릴 날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그리고 마침내 그날은 경치가 예쁘고 날씨가 맑게 갰으며 딱 좋은 기온에 바람도 없었다.그날 두 신인은 남성 최고급 호텔에서 더블 결혼식을 올렸다.결혼식에 참석한 사람은 모두 남성 및 글로벌 인사들이었다.신세희와 부소경, 엄선희와 서준명은 모두 친척이 적었지만 네 명의 친척 친구들을 모두 불러 모은 덕이 남성 호텔 마당은 사람으로 가득 찼다.두 신인 커플이 사람들의 시야에 나타났다. 비록 젊은이는 아니었지만 새로웠다.엄선희의 부모는 기쁜 마음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들의 엄선희가 또다시 돌아왔다.2년 동안 여러 번 수정을 마친 덕에 엄선희는 원래 모습과 거의 비슷할 정도로 돌아왔다. 엄씨 어르신과 엄씨 부인은 이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이번 결혼식의 모든 주최와 비용은 신세희와 부소경이 부담했다.엄
엄선희는 자신의 아이를 껴안은 채 고개를 들어 친 엄마를 바라보았다.그 순간 마음이 벅차올랐다.감격과 억울함 때문에 그녀는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그녀는 엄마에게 달려가 품에 안겼다. 이윽고 엄씨 어르신도 두 모녀를 꼭 끌어안았다. 한 가족이 성공적으로 상봉했다.아니, 이제는 다섯 명이고, 서준명까지 더하면 총 여섯 명이었다.여섯 가족은 함께 부둥켜안고 있었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이들은 참지 못하고 그만 눈물을 마구 흘렸다.간호사도 눈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한참 지나서야 엄씨 어르신과 엄씨 부인은 엄선희를 놓아주었다."됐어, 얘야, 이제 집으로 들어가자. 우리 집으로!"나금희는 고개를 들어 엄선희를 바라보았다. 비록 원래 얼굴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그녀의 아이가 맞았다. 사오 년 전에 실종됐던 아이를 드디어 다시 만나게 되었다..그동안 엄선희는 희귀병을 앓게 되었지만 우연히 받은 치료 때문에 성공적으로 완치되었고 이로 인해 피와 혈액형이 바뀌게 되었다.엄선희는 죽을 운명이었지만 가짜 엄선희 덕분에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아무튼 그녀의 딸 엄선희는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행운아였다.4,5년 동안 겪은 고난, 그게 무슨 대수겠는가?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중에 파란만장을 겪어본 적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그 고난이 아이의 재산으로 될 이고 앞으로 아이는 이를 소중히 여길 줄 알고 아낄 줄 알며 모든 걸 알게 될 것이다.아주 좋았다.엄선희의 복귀에 엄씨 가문은 성대한 파티를 열었다.온 남성 사람들이 서준명의 아내가 돌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윽고 전해진 소식은 바로 얼마 지나지 않아 서준명과 엄선희가 성대한 결혼식을 올린다는 것이었다."이 일은 이미 남성 전체에 퍼졌어요. 결혼식은 대체 언제 할 것 같아요?"여유시간에 신세희가 장난식으로 엄선희에게 물었다.엄선희는 옆에 앉아있는 반명선을 보며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명선 씨가 내 얼굴을 다시 원상 복구시켜 주겠대요. 하지만 천천히 되돌리려면 2년은 걸린대요. 난
모든 일을 마치고 난 뒤 서준명은 갑자기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왜 그래, 아들?"서씨 부인은 이미 세 아들을 잃었고 남은 아들이라곤 서준명 한 명밖에 없었다. 그녀는 아들이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어머니, 그냥 운명이 장난치는 것 같아서요.. 모든 게 다 하늘의 뜻이었군요, 모든 게 다 하늘의 뜻이었어요!"서준명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했다.서씨 부인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왜 그러니, 얘야?"서준명은 울다가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어머니, 이제야 알겠어요. 하늘이 왜 엄선희 씨한테 사오 년 동안 이런 수고를 겪게 만들었는지 알 것 같아요. 하늘은 비록 그녀에게 잔인한 고문을 내렸지만 마지막엔 결국 해피엔딩을 선물했잖아요. 그러지 않았다면 진짜 죽은 사람은 우리 엄선희 씨 아니겠어요? 나의 엄선희를 살렸잖아요."아들의 말에 서씨 부인은 감격 어린 말투로 말했다."그래, 결국 마지막에 행운을 맞이한 사람은 바로 우리 엄선희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하느님도 아껴주시는 엄선희. 준명아, 빨리 선희를 데려와, 그동안 그 애가 얼마나 수고가 많았겠니."서준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몸을 돌리자마자 그는 두 아이를 발견했다."아빠, 우리 엄마를 데려오려는 거예요?"단이가 서준명에게 물었다.서준명이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미미가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엄마 안 데려오면 내가... 진짜 아빠 때릴 거예요!"미미는 점점 박력 넘치는 모습으로 컸다.게다가 오빠도 그녀의 편을 들어줬기 때문에 서씨 가문 마당에서 고양이랑 다투든 강아지랑 다투든 그녀는 줄곧 이기는 쪽이었기 때문에 미미는 자신이 천하무적이라고 생각했다.서준명은 웃으며 미미를 품에 껴안았다."아빠는 맞는 거 무서워해. 그러니까 미미가 아빠 때리면 아빠는 아파서 울 거야. 그래서 아빠가 미미 말에 따를거야. 오늘 당장 엄마 데려올게, 어때?"두 아이는 엄마를 데려온다는 말에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엄마를 데려오기 전에 먼저 할머니와 할아버
죽기 직전까지도 가짜 엄선희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그녀는 두 눈을 똑똑히 뜬 상태로 자신이 바닥에 쓰러지는 것을 지켜보았다.그녀는 자신의 계획이 이대로 틀어질 줄 미처 몰랐다. 결혼식만 마치면 진짜 엄선희를 대신해 남성에서 상류사회를 누리는 서씨 가문 사모님으로 될 수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총살당하고 말았다.과연 누구일까?그녀는 이유를 알기도 전에, 울 틈도 없이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그녀의 아쉬움은 결국 그녀의 몸에 영원히 파묻히고 말았다.얼마나 억울했으면 심장이 멈췄음에도 불구하고 두 눈을 감지 못한 걸까?서준명도 깜짝 놀랐다.그는 원래 미란다 무리를 한꺼번에 쓸어버릴 계획이었기에 오늘 경찰들도 이들을 죄다 잡아갈 생각으로 온 것이었다. 하지만 서준명은 이 타이밍에 미란다가 암살당할 줄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범인은 대체 누구일까?서준명은 당황한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경찰들은 오늘 이곳에서 범인들을 완벽히 체포하려던 계획이었기에 츄리닝으로 무장한 경찰도 있었고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든 경찰도 많았다. 모두 미란다를 잡기 위해 출동한 경찰들이었다. 하지만 미란다 대신 미란다에게 총을 쏜 범인을 잡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차 안에 있던 구릿빛 피부 뚱보는 엄선희를 사살하려던 자신의 치밀했던 계획을 뚫고 이토록 많은 경찰들이 나타날 줄은 미처 몰랐다.그는 작전도구를 숨기기도 전에 경찰에게 그만 체포당하고 말았다.정말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미란다가 엄선희 얼굴로 성형하여 그녀의 신분을 도용한 사건은 우연히 발생한 총격 사건으로 인해 초라하게 마무리되었다.경찰은 구릿빛 피부 뚱보를 잡고 취조하고 나서야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는 해외에 있는 서준명의 세 형님이 엄선희를 죽이라고 보낸 사격수였다.이 남자는 남성에서 오랜 시간 동안 서씨 가문을 노리고 있었다.하지만 내내 엄선희를 발견하지 못했다.그러다가 어렵게 엄선희가 나타나 기회를 잡고 죽이게 되었으나 손쉽게 경찰에게 체포당하고 말았다.이게 대체 무슨 경우란 말인가!서준
두 여직원은 봉쇄형 유리차를 끌고 나왔다. 유리차 안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들어있었다. 다이아몬드는 유리를 뚫고 오색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가짜 엄선희는 홀린 듯이 반지를 바라보았다.주얼리샵 맞은편에 주차하여 망원경으로 지켜보던 구릿빛 피부 뚱보도 덩달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구릿빛 피부 뚱보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세상에! 저 여자를 얼마나 사랑하길래 저토록 비싼 반지를 선물하는 거야! 저 여자는 죽어 마땅해! 죽어 마땅하다고!"한편 주얼리 샵안, 서준명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가짜 엄선희를 바라보았다."내가 선물한 반지는 어때, 마음에 들어?"가짜 엄선희는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좋아, 여보 너무 좋아! 너무 마음에 들어!""이 반지는 원래 4년 전에 선물하려던 건데, 아쉽게 됐네, 그때는...""괜찮아, 여보. 지금도 마찬가지잖아? 비록 4년정도 늦게 선물 받았지만 결국 내 손에 끼워줬잖아. 이게 정말 최고 아니겠어?"가짜 엄선희는 기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말했다."빨리 껴봐, 보여줘!"서준명이 제촉하며 말했다."하하. 알겠어!"말을 마친 서준명은 반지를 꺼내 정중하게 가짜 엄선희의 손가락에 끼워주었다.그순간 가짜 엄선희의 마음은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두근거렸다.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나른한 기분이었다.서준명!남성 두 번째 재벌이자 남성 귀공자인 서준명이 드디어 그녀에게 값비싼 반지를 선물한다고?와! 그녀는 너무 행복했다!…그 순간 가짜 엄선희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그녀는 행복에 젖어 서준명이 그녀를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듣지 못한 게 아니었다.그녀 자신을 엄선희라 생각하고 다닌 탓에 서준명이 그녀의 본명을 외칠 때에도 눈치채지 못했다.서준명이 또다시 물었다."미란다 씨, 행복해?""응? 당신..은..?"가짜 엄선희는 그제서야 서준명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자 순간 그녀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그녀는 겁에 질린 나머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홀 안 세 테이블에 빽빽이 앉아있던 사람들은 이 상황을 보고 깜짝 놀랐다.그들은 아직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는 눈치였다.왜 엄선희가 가자마자 경찰들이 몰려든 걸까?사람을 체포하러 온 게 아닐까?"아니에요, 형사님, 저희는... 남성 서씨 가문 도련님 서준명 씨의 친구들입니다. 서준명 씨 아내를 구해준 보답으로 집 두 채를 선물한다고 했는데, 혹시 잘못 찾아오신 건 아닌가요?"바로 그때 진미리가 용감하게 나서서 경찰들에게 물었다.아무도 진미리의 질문에 대답해 주지 않았다.몇몇 경찰들이 나서서 그들의 휴대폰을 몽땅 수거했다.한 명도 빠짐없이.진미리는 참지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저희는 서준명 씨의 친구예요. 서준명 씨는 남성에서 유명한 사람이잖아요. 당신들이 우리를 잡으러 왔다는 사실을 서준명 씨가 알면..."한 경찰이 차갑게 피식 웃으며 말했다."저희가 잡으러 온 것은 바로 서준명 씨 친구들인 당신들입니다!""네? 왜요?"진미리는 의아했다.사실 그녀는 법을 잘 알지 못했기에 자신의 여동생을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자신의 동생은 서준명의 아내와 똑같은 얼굴로 성형했고 서준명도 동생을 아내로 받아들였는데 이를 사기라 할 수는 없지 않은가?돈도 한 푼 뺏지 않았는데?게다가 살인 방화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신분만 도용했을 뿐인데, 아니, 서준명이 가짜 엄선희를 아내로 인정했으니 신분 도용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신분 도용도 아니었다.때문에 지금 진미리와 그녀의 공범들은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다.경찰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진미리를 바라보았다."자신이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어찌 당신도 모르나요?"진미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우리는 서준명 씨의 친구들이에요. 게다가 서준명 씨는 남성에서 유명한 사람이고요. 서준명 씨도 당신들이 우리를 잡으러 왔다는 사실을 아나요?""알죠, 서준명 씨가 신고했으니까!"진미리와 그녀의 동료들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들은 하나같이 동상처럼 굳
"2천억이라니! 서씨 가문 형제들과 완전히 등 돌리려는 셈 아닌가! 서준명이 엄선희를 저토록 사랑하다니! 저 여자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당장이라도 죽여버리고 싶어! 반드시 죽일 거란 말이야!"구릿빛 피부 뚱보가 공손한 태도로 서준명의 큰형에게 물었다."사장님, 명령만 내리세요! 저 여자를 어떻게 죽일까요! 지금 당장 없애버릴까요!""안돼!"서준명의 큰형이 다급히 말렸다."지금은 죽일 타이밍이 아니야. 보는 눈이 많아서 자리를 피하기 어려울 거야. 나한테 충성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는데 너까지 잃을 수는 없어. 밖에서 처리하고 발 빼기 쉬운 곳으로 골라. 지금은 아니야!"구릿빛 피부 뚱보가 곧바로 말했다."알겠습니다, 사장님. 사장님 말씀에 따를게요. 그럼 시끌벅적한 장소를 골라 저 여자를 죽여버릴게요!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통화를 마친 뒤 구릿빛 피부 뚱보는 은밀히 홀 안의 상황을 관찰했다.한편 서준명은 가짜 엄선희와 함께 사람들에게 술을 권하고 있었다.한 명 한 명 빠뜨리지 않고 모두에게 물었다.모두 전에 가짜 엄선희에게 도움을 줬던 사람들이었다.서준명은 전에 이 사람들에 대해 전부 조사를 마쳤었다. 사기조작단과 마찬가지였다!총 서른 명 정도였는데, 그중 절반이 넘는 사람들은 가짜 엄선희의 가족들이었다.오빠와 언니, 형수와 형부, 그리고 고모 일곱 명과 이모 여덟 명.남은 건 그녀와 오랫동안 함께 근무해 온 부하들이었다.서준명은 마음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정말 비겁하기도 하지!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모든 가족들과 친구들까지 동원하다니. 하지만 그들이 억울한 게 뭐가 있을까? 그들은 모두 가짜 엄선희가 계획한 사기단에 가담한 공범들이다.그들이 엄선희에게 입힌 피해는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그들은 그의 두 아이까지 해치려고 했다!서준명이 어찌 그들을 또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술을 한 바퀴 권하자마자 서준명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그는 곧바로 휴대폰을 떠내 연락을 받았다."여보세요, 누구시죠
서준명의 말에 진미리는 쑥스러운 말투로 말했다."휴, 어떻게 매번마다 서준명 씨한테 신세를 지겠어요, 아무... 아무것도 아니에요.""어머, 언니, 어려운 일 생기면 언제든지 얘기 하세요. 제 남편은 남성에서 두 번째로 능력 있는 남편이에요. 못 하는 게 없다니까요."가짜 엄선희는 고개를 들어 애교 섞인 말투로 서준명에게 말했다."내 말이 맞지, 여보?"서준명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가짜 엄선희를 보며 말했다."자기 생각은 어때? 당신이 선택한 남편인데 틀릴 리가 있을까?""당연히 없지!"가짜 엄선희는 행복한 표정으로 서준명의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서준명은 가짜 엄선희를 품에 안자 순간 역겨운 기분이 들었다.이 가짜 엄선희는 확실히 진짜 엄선희와 아주 닮았다. 만약 이 엄선희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한 상태로 있었다면 서준명은 당연히 그녀를 그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진짜 엄선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하지만 진짜 엄선희라면 그에게 이런 요구를 건네진 않았을 것이다.엄선희는 태어날 때부터 공주님처럼 자라 고생한 적이 없지만 탐욕스러운 사람은 아니었다.엄선희는 돈에 아무런 개념도 없는 여자였다.게다가 사치품도 사지 않는 사람이었다.심지어 그녀는 아주 훌륭한 가정교육을 받고 자랐기에 단 한 번도 자신의 능력범위를 벗어나는 가격의 사치품에 손대지 않았다.서씨 가문에 시집와서도 그에게 이것저것 요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자신의 남편을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하는 짓도 절대 하지 않았다. 남편의 자금을 외부에 흘러 나가게 하는 것도 모자라 난감한 일까지 시키다니!엄선희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하지만 이 가짜 엄선희는 탐욕스럽기 그지 없었다!그럴수록 너무 괘씸했다!하지만 이럴수록 서준명은 더더욱 표정을 가다듬고 가짜 엄선희를 보듬어 주었다."여보, 이 사람들을 사심 없이 도와주는 걸로 봐서 전에 당신한테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맞지? 그럼 나도 고마움을 전해야지. 이분들이 없었다면 평생 내 아내를 보지 못하고 살 뻔했으니까
가짜 엄선희는 자연스럽게 동의했다.3일 후, 그들은 남성에서 가장 크고 호화로운 호텔에서 엄선희의 은인들을 초대해 연회를 베풀었다. 그들 중 일부는 외지에서 온 사람도 있었고, 남성 현지인도 있었다. 서준명이 사람들을 대충 살펴보자, 익숙한 중년 여성이 있음을 발견했다.그 중년 여성은 미루나와 같은 집에 살며 미루니에게 DNA 검사를 제안한 여자였다.서준명은 가짜 엄선희와 손을 잡고 그 중년 여성에게 다가갔다. "저를 아직 기억하십니까?”가짜 엄선희는 즉시 그 중년 여성을 소개했다."여보, 여긴 나한테 많은 도움을 준 언니 중 한 명이야. 이름은 진미리. 이 언니는 내가 유산했을 때를 포함해 항상 날 보살펴 줬어. 내 생각에는 이 언니에게 집 두 채는 드려야 할 것 같아!” 그러자 진미리라는 중년 여성이 즉시 손을 흔들었다. "아니요, 정말 괜찮습니다. 선희 씨를 돌봐주었던 것도 제 공덕의 하나라고 할 수 있죠. 절대 돈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니에요.” 진미리는 말을 하며 서준명을 바라보았다. “서준명 씨, 사실 저는 오랫동안 미루나에게 관심을 가졌어요. 나는 그 여자가 가짜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때 엄선희 씨는 일이 있어 남성에 오지 않았기에 준명 씨와 미루나가 마주치는 걸 정말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DNA 검사를 하라고 권한 거고요. 요즘은 DNA가 가장 정확하잖아요? 그러니 DNA 검사를 하고 나니 미루나가 가짜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잖습니까. 요즘에도 이런 사람이 있다니, 겉모습도 전혀 다르고, 닮은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데 억지로 남의 아내인 척하는 건 무슨 심보란 말입니까? 정말 말이 안 됩니다, 준명 씨와 선희 씨의 부모님 모두 현명하셔서 다행이지요. 그렇지 않았다면 그 미루나에게 정말로 당할 뻔했습니다. 그럼 선희 씨도 힘들어서 울다 지쳐 쓰려졌겠지요…” 진미리의 말을 들은 서준명은 침착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럼 집을 두 채 드리면 될까요?” 서준명은 이미 사람을 보내 확인을 마친 상태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