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한진수는 뒷산의 공터에 밭을 일구고 농작물을 심었다. 모든 일을 끝낸 뒤, 그는 읍내에 일을 찾으러 갔다.“윤희 씨는 집에서 푹 쉬어요. 너무 심심하면 엄마랑 같이 밖에서 산책 좀 해도 괜찮아요. 산밖에 없는 시골이라 남성 같은 대도시에 비교할 수는 없을 거예요. 한 달이 지나도 사람 하나 찾아보기 힘든 곳이니까요.”떠나기 전, 한진수가 고윤희에게 한 말이었다.고윤희는 한진수의 손을 잡고 말했다.“진수 씨, 나는 고독이 두렵지 않아요.”한진수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과거에 빛도 안 들어오는 방에 갇힌 적 있어요. 그렇게 몇 년을 갇혀 살았죠. 외로움에는 이미 적응됐어요.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당신과 같이 밖에 나가서 일하고 싶어요. 저녁에 퇴근할 때, 당신과 같이 집에 돌아오면 좋겠어요. 나는 배속의 아이한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고 싶어요.”고윤희는 간절한 눈빛으로 한진수를 바라보았다.한진수는 여자의 이런 갈망을 이해했다.많은 일을 겪고 그녀도 느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보다 자신이 강해져야 한다는 것을.임신한 몸으로 일을 시키고 싶지는 않았지만 한진수는 그녀의 결정에 동의했다.“좋아요. 그럼 같이 읍내로 가요.”“가기 전에 할 일이 있어요.”고윤희가 말했다.“무슨 일이요? 옷을 사고 싶으면 같이 사러 가요.”고윤희는 고개를 저었다.“세희 씨한테 돈을 빌렸으니 전화라도 한 통 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난 진수 씨와 평생 살기로 했으니 어떤 부담도 끼치기 실어요. 세희 씨한테 그쪽 일을 좀 해결해 달라고 부탁할 거예요.”한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그렇게 하루가 지난 뒤, 고윤희는 신세희에게 전화를 걸었다.“세희 씨, 나는 지금이 정말 좋아요.”고윤희가 온화한 말투로 말했다.“언니, 걱정하지 마요. 언제든지 돈이 필요하면 나한테 말해요.”신세희가 다급히 말했지만 고윤희는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우린 두 사람이에요. 손도 있고 발도 있어요. 평소에 돈을 많
며칠 사이에 구경민의 이마에는 주름이 생겼다.그는 몹시 지친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그냥… 서울에 있자니 재미 없어서 내려왔어요. 별장에 들리지 않고 바로 여기로 온 거예요. 윤희는….”신세희가 조금 전 고윤희와 통화했을 거라고 의심하지는 않았다.그냥 생각이 나서 여기로 온 것이다.고윤희가 정말 절박한 상황이 오면 신세희에게 연락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평소 고윤희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면 그건 신세희였다.“구경민 씨.”신세희는 목청을 가다듬고 그에게 말했다.“서울에서… 최여진 씨 만났어요?”구경민은 고개를 끄덕였다.“만났죠. 하지만 우린 완전히 끝났어요. 솔직히 헤어진지 10년도 더 됐잖아요. 난 그 여자랑 아무 상관도 없어요!”신세희는 고대를 끄덕여 주었다.“알아요, 알아요. 구경민 씨.”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말했다.“구경민 씨, 내 말 잘 들어요. 나는 최여진 씨가… 조금 과격한 행동을 했지만 그건 경민 씨를 사랑해서 그랬다고 생각해요… 그 여자가 윤희 언니를 때린 것도… 아마 사랑 때문일 거예요.”“지금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예요?”구경민이 눈살을 찌푸리며 신세희의 말을 잘랐다.“사실 구경민 씨… 윤희 언니는 줄곧 알고 있었어요. 두 사람이 오래 같이 생활하기는 했지만… 구경민 씨는 언니를 사랑하지 않았잖아요. 그거 언니도… 아마….”신세희는 마음을 굳게 먹고 또박또박 말했다.“윤희 언니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구경민은 멍한 표정이었다.“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지 않으니 이제 찾을 필요도 없잖아요. 각자 삶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신세희가 말했다.“아니! 윤희는 나를 사랑해요! 사랑한다고요!”“하지만 당신은 언니를 사랑하지 않잖아요!”구경민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윤희 어디 있는지 알죠? 알고 이러는 거죠?”구경민은 신세희의 옷깃을 잡고 반복해서 물었다.“그건 정말 몰라요, 경민 씨. 언니가 어디 있는지 알면 내가 가장 먼저 찾아갔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 생
살아 있는 새우만 봐도 겁이 나서 목을 움츠리는 여자였다.하지만 그녀는 그가 새우 요리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까다로운 그의 입맛을 알기에 식당에서 요리한 새우나 냉동 새우는 쓰지도 않았다. 그녀는 항상 직접 해산물 시장으로 가서 신선한 새우를 샀다.그러고는 집으로 돌아와 두려움을 참으며 새우를 하나하나 직접 손질했다.그녀는 그를 위해 수많은 희생을 했다.그런데 사랑하지 않는다니?아무도 듣지 못했지만 구경민은 그녀의 입에서 사랑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너무 일상적으로 들어서 밥 먹었냐는 인사처럼 들릴 정도로 많이 들었다.그래서 그녀가 했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는지도 모른다.고윤희는 줄곧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경민 씨,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아. 난 그냥 당신 집 가정부일 뿐이야. 나를 그렇게 생각해도 좋아.”그리고 그는 그 말대로 정말 그녀를 가정부처럼 생각했다.밖에서는 훌륭한 파트너, 집에서는 요리 잘하는 가정부, 침대에서는 누구보다 정열적인 요부.구경민은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걸음을 돌렸다.신세희가 그의 등뒤에 대고 말했다.“경민 씨, 괜찮은 거죠?”구경민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신세희는 남편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녀의 말이라면 항상 옳다고 하던 남편이 처음으로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당신 고윤희 씨 사는 곳 알지? 알면 알려줘. 경민이 이대로 두다가는 정말 미칠지도 몰라.”“내가 언니 사는 곳을 그 사람에게 알려주면 언니의 지금 생활이 깨지잖아요. 평화로운 생활을 위해 언니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알아요?”부소경은 고개를 저었다.“나도 오늘 경민이한테 말했어. 윤희 씨가 정말 돌아오기 싫다고 하면 절대 강요하지 말라고. 어쨌든 경민이가 먼저 내쫓았잖아. 그러니 연락처를 경민이한테 줘. 끝을 맺더라도 두 사람이 만나서 해결해야지.”잠시 고민하던 신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그것도 나쁘지 않네요! 아내와 자식을 잃은 고통을 직접 느껴봐야죠!”그녀는 고윤희의 연
“세희 씨, 나예요!”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남자가 다급히 말했다.자세히 다가가서 보니 온갖 오물을 뒤집어쓰고 몸을 웅크린 남자는 다름 아닌 구경민이었다.남자는 상당히 지친 얼굴로 고개를 들고 그녀에게 말했다.“세희 씨, 또 실패했어요.”“경민 씨?”구경민은 처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침부터 찾아와서 많이 놀랐죠?”“윤희가 또 숨어버렸어요. 마지막으로 신호가 잡힌 곳이… 공동묘지였어요.”신세희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산을 샅샅이 뒤졌는데 잡초랑 묘지 말고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 흔한 멧돼지 한 마리 안보이더라고요. 사람은 더 말할 것도 없어요.”신세희는 그제야 놀란 가슴을 가라앉혔다.구경민이 고윤희를 만나서 상황이 더 악화되는 게 아닐지 줄곧 걱정했던 그녀였다.신세희는 부소경을 불러 잔뜩 취한 구경민을 부축해서 거실 소파에 눕혔다.방금 잠에서 깬 신유리는 구경민 앞에 다가가더니 놀려대기 시작했다.“경민 삼촌은 정말 불쌍해.”“너도 그렇게 생각해? 나도 그렇게 생각해!”“불쌍하긴 한데 점점 더러워지고 있어. 먼지가 잔뜩 묻은 곰인형 같아.”구경민은 할 말을 잃었다.“삼촌, 윤희 이모 쫓아낸 거 후회하지? 그러게 왜 그랬어? 윤희 이모랑 같이 있을 때는 그렇게 깔끔하고 옷도 잘 입었는데 윤희 이모 사라지니까 아주 거지 같아. 전혀 잘생기지 않았어. 늙고 병든 영감 같아.”말을 마친 신유리는 코끝을 살짝 찡그렸다.“냄새 나잖아. 술만 마시지 말고 좀 씻어. 술 냄새에 퀴퀴한 냄새에 아주 못 봐주겠어. 저기 밥 빌어먹는 거지보다 더 더러워.”구경민은 아이의 독설에 반박하지 못했다.항상 모두의 존경만 받던 구경민이 언제 이런 대우를 받아봤을까?그는 고개를 들고 자신을 하찮은 듯이 바라보는 아이를 쏘아보았다.그런데 갑자기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한 달.그는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을 모두 동원했다.하지만 여전히 고윤희를 찾지 못했다.그를 떠났을 때 그녀는 이미 임신한 상태였다.아마 지금쯤 2개월 차였다.배는 좀 나
하지만 임신한 여자는 피곤함을 자주 느낀다고 했다.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많이 붓는다고 했는데 그녀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삼촌 때문에 우리 집 소파가 더러워졌잖아!”신유리도 최근 구경민이 싫었다. 그만 보면 짜증이 치밀었다.아픈 사람이 자신의 집 소파에 누웠다면 그게 누구든 이렇게까지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오히려 많이 아프냐고 걱정하고 돌봐줬을지도 모른다.하지만 구경민은 아니었다.고윤희가 구경민에게 쫓겨났다는 말을 들은 뒤로 아이는 구경민이 눈에 거슬렸다.“우리 집에서 나가! 당장 안 나가면 때릴 거야!”신유리는 허리에 양손을 얹은 뒤, 눈을 부릅뜨고 구경민을 향해 소리쳤다.금방 잠에서 깬 아이는 부스스한 머리에 사랑스러운 원피스 잠옷을 입고 어린아이 특유의 분유 냄새를 솔솔 풍기며 제딴에는 무섭게 보이려고 눈을 동그랗게 부릅뜨고 있었다.그 모습을 본 구경민은 생각에 잠겼다.만약 고윤희가 딸을 낳는다면 이 아이처럼 사랑스러울까?어쩌면 이 아이 못지 않게 성격이 사나울지도 모른다.하지만 그와 고윤희의 딸이라면 서울은 물론이고 남성에서도 성깔을 부릴 자격은 충분하다.하지만….“유리야, 삼촌 때려줘. 죽여도 좋아.”구경민은 눈을 감고 아이의 매를 기다렸다.하지만 아이가 손을 들기도 전에 신세희가 아이를 안고 방으로 돌아갔다.그에게 다가온 부소경이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 원래 이렇게 못난 놈이었어? 마누라 못 찾겠으니까 왜 자꾸 우리 집에 와서 사람 괴롭히고 그래?”말을 마친 부소경은 구경민을 부축해서 밖으로 향했다.문을 연 부소경이 고개를 돌려 신세희에게 말했다.“일단 이놈은 내가 데리고 회사로 갈게.”신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이날 아침도 신세희가 신유리를 유치원에 데려갔다.그리고 우연인지 유치원 앞에서 고소정을 만났다.여자는 통화 중이었는데 평소와는 다르게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좋아요. 고마워요, 오빠. 이렇게 큰 고객을 소개시켜 줘서 정말 고마워요. 이따가 점심이라도 같이 할래요?”고소정은 통
신세희는 여전히 뚱한 얼굴로 대꾸했다.“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그녀는 고소정과 친절하게 통화했을 서준명을 생각하니 기분이 언짢았다.“세희야, 고마워! 드디어 선희 씨랑 화해했어!”서준명은 아이처럼 기뻐했다.신세희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축하해요, 오빠. 선희 씨한테 잘해요. 선희 씨 정말 괜찮은 여자거든요. 다른 여자들처럼 내숭도 없고 밝은 사람이에요.”“나도 다 알지.”서준명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신세희는 점심에 고소정과 밥을 먹을 거냐고 물어볼 생각이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었기에 급격히 화제를 돌렸다.“오늘 점심에 정아 씨랑 선희 씨랑 같이 밥 먹으려 했는데 안 되겠네요. 둘이 같이 데이트할 거죠?”“당연하지!”서준명이 말했다.“가요. 이제 일할 시간이에요.”그날 오전, 신세희는 물 먹을 시간도 없이 바쁘게 보냈다.점심시간이 돼서 민정아가 신세희를 찾아왔다.“세희 씨, 일 그만하고 밥부터 먹자. 계속 머리 숙이고 일만 하다가 디스크 걸리겠어. 가자, 선희 씨 불러서 밥 먹어. 오늘은 내가 살게.”신세희는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선희 씨는 안 돼. 오늘 데이트 있을 예정이야.”그러자 민정아도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난리를 떨었다.“뭐라고? 선희 씨가 우리 오빠, 아니 세희 씨 오빠… 아니지 우리 두 사람 오빠랑 화해한 거야?”신세희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무슨 호칭이 그래? 어쨌든 그렇게 됐어.”민정아는 그저 어색한 미소만 지었다.“가자, 초밥 먹으러. 정아 씨가 산다고 했지?”“당연하지!”“어쩌다가 오늘 먼저 밥을 사겠다고 나선 거야?”신세희는 민정아와 함께 밖으로 나가며 농을 걸었다.민정아가 웃으며 대답했다.“서준 씨가 월급 카드 줬거든. 처음에는 싫다고 했는데 본인이 극구 준다는데 안 받을 필요는 없잖아? 내 남자 월급이니까 내가 관리해야지.”“잘했어!”두 여자는 화기애애하게 웃으며 복도를 걸었다. “두 사람 어디 가?”복도에 기대고 서 있던 엄선희가 그들에게
세 여자는 같이 근처 일식집에 도착했다.그들은 참치 초밥과 망고 초밥, 새우 초밥을 시키고 도수가 낮은 청주도 주문했다.그날 점심, 그들은 맛있는 초밥을 먹고 청주를 마시며 괜찮은 시간을 보냈다.“윤희 언니가 여기 없는 게 아쉽네.”엄선희가 말했다.“삼촌이 언니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 나도 숙모 보고 싶은데. 숙모님 없이 혼자 그 집에 시집 가려니까 나도 좀 부담돼.”“이번에도 아무런 수확 없이 돌아왔더라고. 윤희 언니는 돌아오기 싫은가 봐. 그게 아니라면 구경민 씨가 매번 실패할 리 없잖아.”신세희는 전보다 한결 편안한 표정이었다.엄선희와 민정아는 신세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엄선희가 물었다.“세희 씨, 윤희 언니 임신했다면서 안 돌아오면 애는 어떻게 할 거야?”“세상에 좋은 남자가 얼마나 많은데. 굳이 구경민 씨 아니라도 괜찮지 않겠어?”신세희가 웃으며 말했다.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계속해서 말했다.“자신의 곁을 몇 년이나 지킨 여자야. 그 동안 그 사람을 위해 낙태만 네 번을 했어. 몸도 성치 않은 사람을 내쫓은 건 그 사람이야.”엄선희가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렇긴 하네. 구경민 씨 참 지독한 사람이야.”“원할 때는 집에서 집안일 하고 잠도 같이 자고 했으면서! 필요 없으니까 집에서 나가라고? 웃겨!”“나라도 안 돌아오겠어! 세상에 남자가 구경민 한 명도 아닌데!”신세희는 두 친구의 말을 들으며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니까! 쫓겨난 사람이 왜 다시 돌아와? 나도 안 돌아와! 찾아와서 돌아와달라고 싹싹 빌어도 싫어! 배속의 아이가 그 사람이랑 무슨 상관인데?”엄선희가 가슴을 치며 말했다.민정아도 씩씩거리며 말했다.“삼촌은 고생 좀 해야 해. 평생 후회하라지. 자기 애가 다른 사람을 아빠라고 부르는 걸 알면 마음고생 꽤 할 거야!”평소에 술을 별로 입에 대지 않던 세 사람은 간만에 마시는 청주라 그런지 한 병을 비우자 조금 취기가 돌았다.그렇게 셋이 떠들고 있을 때, 신세희의 핸드폰이 울렸다.발신자를
신세희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누구요?”서준명의 목소리가 더욱 다급해졌다.“오빠가 일을 좀 잘못 처리했어. 그… 친척 동생 있잖아. 소정이라고… 금융회사에 출근하거든. 아버지를 어떻게 구슬렸는지 모르겠는데….”신세희는 고소정 세 글자를 듣자 불쾌감이 치밀었다.“어쨌든 우리 아버지한테 뭐라고 했는지 아버지가 내 명함을 그 여자에게 줬어. 그리고 걔가 내 명함 들고 F 본사에 찾아갔어. 투자 관련 상담을 하러 간다고는 하는데 좀 이상해.”그 말을 들은 신세희는 바로 전화를 끊고 달려나갔다.“세희 씨, 세희 씨!”엄선희가 뒤에서 그녀를 불렀지만 신세희는 벌써 문을 나서며 두 사람에게 말했다.“오후에 나 연차 좀 쓸게, 뒤처리 부탁해!”말을 마친 그녀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거리로 나온 신세희는 택시를 잡아 F그룹으로 향했다.신세희가 본사에 방문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대표 사모님이기는 하지만 대기업 돌아가는 상황에 관심이 없었다.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가 있었고 부소경은 뛰어난 경영능력을 갖춘 오너였기에 남자가 하는 일에 굳이 간섭하고 싶지 않아서였다.30분 뒤, 그녀는 F그룹 본사에 도착했다.자주 방문하지 않아서 그런지 그녀의 얼굴을 아는 회사 사람들은 극히 드물었다.신세희는 높은 하이힐을 신고 안으로 향했다. 안내데스크 직원이 그녀를 불러세웠다.“어떻게 오셨어요?”“부소경 씨 만나러 왔는데요.”하지만 직원은 단호한 표정으로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죄송하지만 아무나 우리 대표님을 만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예약은 하셨나요?”신세희는 담담한 표정으로 그 직원에게 말했다.“엄선우 씨한테 전화해서 신세희가 왔다고 하면 알 거예요.”그녀의 단호한 모습에 직원은 어쩔 수 없이 엄선우에게 전화를 걸었다.“엄 비서님, 여기 신세희라는 분이….”“당장 들어오라고 해!”엄선우가 말했다.잠시 당황한 표정을 짓던 직원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네, 엄 비서님.”전화를 끊은 직원은 공손하게 신세희의 앞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