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의 아내로 간택당했다의 모든 챕터: 챕터 921 - 챕터 930

2452 챕터

제921화

김서진은 아침 일찍 회사에 갔다. 오늘 중요한 회의가 몇 개 있어서 일정이 꽉 찬 상태였다. 그에 비해 한소은은 한가했다. 그녀는 며칠 쉬면서 결혼식을 준비할 예정이었다.이런 형식적인 것을 신경 쓰는 편은 아니지만 해야 할 바에 당연히 잘했으면 했다. 김서진이 바빠서 그녀가 모든 일을 도맡아 하기로 했다.웨딩드레스, 결혼식 식장, 필요한 준비물 등 이런 건 큰 문제가 없었지만, 그녀가 신경 쓰이는 건 초대장이었다.김서진은 아직 그녀를 가족에게 소개해 주지 않았고 김 씨 저택에 간 적도 없었다. 김서진도 이런 일을 거부해서 초대장을 보내야 할지, 보내면 누구에게 보내야 할지 그게 문제였다.요즘 일도 없고 전화도 없어서 너무 한가해서 그런지 오히려 몸살이 났다.점심이 돼서야 일어난 한소은은 머리가 무겁고 어지러웠다. 침대에서 내려올 때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시야도 흐릿하고 잘 보이지 않았다.억지로 세수하고 내려와 뭘 좀 먹으려 했는데 또 갑자기 기운이 빠지면서 입맛도 없어졌다. 열을 재보니 39도였다!'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한소은의 몸이 건강해서 지금까지 감기 걸리거나 열이 난 적이 너무나도 적었다. 한가하게 며칠 쉬었는데 오히려 열이 오른 게 뜻밖이었다.그녀는 물 한 잔 마시고 아예 드러눕고 말았다. 한잠 잘 생각이었는데 누군가 그녀의 방문을 두드렸다."부인님, 부인님……."도우미가 조심스러우면서도 집요하게 그녀를 불렀다."일어나셨어요?""……."한소은이 이마를 찌푸리며 나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무슨 일이에요?"중요한 일이 아니면 깨우지 말라고 분부했다. 그래서 아침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도우미가 그녀를 깨우러 올라 오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올라왔다는 건 분명 무슨 일이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밖에 부인님을 만나겠다는 사람이 있어요."도우미가 주춤하더니 소리 높여 말했다."사장님 할머니라고 하는데요."그리고 또 한 마디를 덧붙였다."참, 어제 오셨던 고모분도 계세요.""……."한소은은 소리 없이 두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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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2화

한소은은 이런 복잡한 관계에 대응하기 귀찮았지만 이미 그와 결혼한 이상 피하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앞으로 이런 일이 더 많을지도 모르는데 매번 그를 부르는 것도 좀 그렇다고 생각했다.자기를 무척 아끼고 지켜주고 싶어서 그랬다는 걸 알기에 더욱더 그와 함께 서 있고 싶었다. 혼자서 대응할 수 있다면 그의 발목을 잡지 않아도 되고 그가 자신을 걱정할 일도 없을 것이다.약을 먹고 물 한 잔을 마시고 나니 그제야 정신이 좀 든 것 같았다."부인님, 괜찮으세요? 병원에 안 가셔도 되겠어요?"도우미가 걱정스럽게 물었다.한소은이 고개를 저었다."무슨 먹을 거라도 있나요?""호박죽을 끓여 놓은 게 있어요. 아직 따뜻한데 드실래요?""먼저 준비해 주세요. 금방 내려갈게요."그녀가 말했다."참, 죽을 뜬 다음에 그 사람들을 들여보내세요.""네."도우미가 대답하며 나갔다.다리에 힘이 없어서 한소은은 한 손으로 테이블을 짚으며 일어섰다. 거울에 비친 얼굴이 조금 창백해서 생기 있어 보이려고 가볍게 화장했다.'오라고 해. 설마 날 물겠어? 호의로 왔으면 손님처럼 잘 대접하겠지만 악의를 품고 온 거라면 쫓아내겠어. 내 구역인데 행패를 부리게 놔둘 순 없지.'문밖의 김지영은 부채질하며 열을 식혔다.점심이라 햇빛이 쨍쨍했다. 이런 날씨에 밖에서 기다리니 견딜 수가 없었다. 김서진의 할머니는 이마를 찌푸리며 짜증 난 표정이었다."보셨죠? 어제 제가 이렇게 문전박대를 당했어요."김지영이 부채질을 하면서 말했다."거절 안 한 게 그나마 괜찮은 거예요. 근데 왜 이렇게 안 나오는 건지. 다른 사람이 저희 집안일을 들으면 얼마나 웃겠어요.""할머니가 손자 집에 왔는데 문도 안 열어주고 밖에서 기다리게 하는 게 어디 있어요. 서진이도 예전엔 예의가 있었는데 지금은 이 여자한테 홀려서 정말 갈수록 말이 아니에요!"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매우 불쾌해했다.어제부터 불만이 쌓여 왔다. 김서진의 할머니는 그녀의 말을 듣고 표정이 더 안 좋아졌다."그만 해. 덥지도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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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3화

김서진의 할머니는 단단히 마음먹고 위세를 떨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집안에는 한소은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마를 찌푸리며 물었다."그 계집은 어디 있는 거야?"부인이 아닌 계집이라고 한소은을 불렀다. 이건 그녀를 이 집 주인이라고 인정 안 한다는 뜻이었다.도우미가 우물쭈물하며 말했다."부인님께서 편찮으셔서……."때마침 계단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한소은이 내려온 것이다.그 소리를 들은 김서진의 할머니와 김지영이 고개를 들자 여유로운 걸음으로 내려오는 한소은을 발견했다.그녀는 한동안 출근을 안 했기에 집에서 편안한 대로 입었다. 거기에 오늘 아파서 머리도 자연스럽게 풀고 있었다.어깨까지 내려온 머리카락은 그녀의 걸음을 따라 찰랑거렸고 열이 난 탓에 그녀의 행동은 아주 느렸다. 그래서 연약한 미인 같은 느낌이 들었다.김지영은 그녀의 미모에 놀랐다. 액세서리 가게에서 본 적이 있지만 그땐 거리가 너무 멀었고 또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전혀 주의 못 했다. 오늘 자세히 보니 그녀의 외모는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웠다.'어쩐지 서진이가 단단히 홀렸더라.'그리고 어제 김서진이 문 앞을 가로막고 들어오지도 못하게 한 수치를 생각하니 화가 나서 표정이 좋지 못했다."흥!"김지영이 턱을 들어 올리며 어른 행세를 하였다.계단에서 내려와 소파에 앉은 한소은은 담요를 어깨 위에 걸치며 부드러운 말투로 도우미에게 말했다."따뜻한 물 한 잔 주세요."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눈앞의 두 사람을 쳐다보지도 않았다.김서진의 할머니가 이런 무시하는 태도를 어떻게 참겠는가. 그녀가 지팡이로 바닥을 탁 치며 차갑게 말했다."네가 한소은이야?""맞아요. 누구시죠?"한소은이 고개를 들며 시선을 피하지도 않고 똑바로 바라보았다.그녀가 이렇게 침착할 줄 몰랐다. 그러자 할머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내가 누군지 몰라? 나 서진이 할머니야!""그러세요."그녀가 알았다는 듯 덤덤하게 대답했다. 다른 표정도 없었고 공소하게 할머니라고 부르지도 않았다.옆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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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4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간 건 그녀 마음의 상처였다. 그런데 오자마자 그녀의 상처를 들쑤시자, 한소은이 이마를 살짝 찌푸렸다."제가 알고 있는 건 남을 존중해야 존중받는다는 거예요. 이렇게 무턱대고 찾아와서 신분도 모르는데 어떻게 인사를 드리죠?""그럼 지금은 알았잖아!"김지영이 말했다."그런데도 인사 안 해?""두 분이 일방적으로 한 말이에요. 진짜인지 가짜인지 제가 어떻게 알아요?""너……."김지영은 그녀가 일부러 이러는 걸 보고 너무 화가 나 그녀의 뺨을 갈기고 싶었다. 그러자 김서진의 할머니가 손을 들며 그녀를 진정시켰다."말장난은 그만하지. 내가 서진이의 할머니인지 아닌지는 너도 잘 알고 있을 거야. 너랑 말장난하려고 오늘 온 게 아니야. 이 한마디만 하지. 김씨 가문에 들어오려면 내 동의를 받아야 한다. 서진이가 허락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내 동의를 받는 게 가장 중요해."한소은이 가볍게 웃었다.그녀가 전혀 긴장한 기색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웃자, 김서진의 할머니가 눈을 가늘게 떴다."뭘 웃는 거야? 내 말을 안 믿어?""아니요. 그저 할머니께서 제 뜻을 잘못 이해하신 것 같아 웃는 거예요. 전 김씨 가문에 들어갈 생각이 없어요.""김서진과 결혼할 생각이 없다는 거야?"그녀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제가 서진 씨랑 결혼하는 거랑 김씨 가문에 들어가는 거랑 아무 상관 없는 것 같은데요. 전 그저 김서진, 이 사람과 결혼하고 싶은 거예요. 김씨 가문에 들어갈지 말지는 관심 없고 신경도 안 써요. 할머님의 허락은……."여기까지 말한 한소은이 뜸을 들이며 웃었다."죄송하지만 별로 받고 싶지 않네요. 제가 할머니랑 평생 사는 것도 아니잖아요.""……."김지영이 그녀가 한 말에 놀라서 할 말을 잃었다.'이 계집애가 감히 엄마한테 이런 말을 해?'전에 김지영의 시어머니도 이렇게 겁을 주었었다. 그때 김씨 가문이라는 후원이 있었음에도 아무 말 못 했었다.'지금 뭐라고 한 거야? 엄마랑 평생 사는 게 아니라고? 이게 누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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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5화

이 말은 너무 심했다. 김지영은 숨을 들이마시며 속으로 역시 엄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하는 말마다 뼈를 때렸다.그녀의 엄마 말이 맞았다. 여자들이 재벌 집에 시집간 목적이 뭐겠는가. 돈과 권력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이를 낳는다 해도 아무것도 얻을 수 없고, 이혼해도 결국 사람도 돈도 잃게 될 거라고 미리 알려주면 아마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만약 그녀의 시어머니가 그녀에게 이런 말을 했다면 그녀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아니나 다를까 한소은이 침묵했다. 김서진의 할머니는 속으로 의기양양하면서 틀림없이 그녀를 놀라게 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조금 이상했다.이때 한소은이 입을 열었다."할머니, 참 고생 많으셨어요.""????""???"'이 계집애가 미쳤나? 아니면 잘 보이려고 이러는 거야? 인상이 좋아지면 내가 허락할 줄 알고?'"김씨 가문에 몇십 년 있으시면서 그저 도구에 불과하셨다니. 이 나이에 아무것도 없다는 게 정말 안쓰럽네요! 저러면 안 될 것 같아요. 다행히도 전 제 사업이 있어서 가진 게 하나도 없는 게 아니네요."그녀가 감격하며 말했다. 그리고 김서진의 할머니를 동정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김지영은 심지어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왜 엄마가 도구에 불과하다는 거야? 분명 걔를 두고 한 말인데. 알아들은 거야 못 알아들은 거야?'하지만 김서진의 할머니는 이해가 빨랐다. 그녀가 자기 말을 빌려 반격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김씨 가문의 가규에 따라 며느리는 아이를 낳아도 재산을 가질 수 없다고 했는데 한소은이 지금 김서진의 할머니를 연상한 것이다. 김서진의 할머니를 평생 김씨 가문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재산도 아이도 모두 잃은 여자라고 생각했다.김서진의 할머니는 화가 나서 열불이 났다."이 교활한 게!""할머니께서 그러셨잖아요. 제가 잘 못 이해 한 건가요?"한소은이 눈을 깜빡이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할머니는 어이가 없었다. 자기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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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6화

한소은은 깜짝 놀랐다. 이래 봬도 부잣집 사모님인 그녀들이 자기에게 이런 짓을 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무방비 상태였던 한소은이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 뜨거운 차를 받아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뜨거운 차가 그녀의 몸에 닿기도 전에 휙 하며 누군가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어머나......”김지영은 당황함에 눈을 크게 뜨고 한소은 앞에 막아선 사람을 바라보았다.그녀는 김서진이 다시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타이밍이 정말 기가 막혔다. 그가 돌아온 것도 모자라 한소은이 맞았어야 할 뜨거운 물을 곧이곧대로 모두 대신 맞아 버렸다. 그러고는 그녀를 등 뒤로 숨기며 아끼는 보물인것 마냥 보호했다.“서진아!”김서진의 할머니가 소리를 질렀다. 화가 나면서도 어찌할 수 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고모, 이제 그만 하세요!”김서진이 차가운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는 회사에서 회의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기 집안사람들이 어떤지 누구보다 잘 알던 그였기에 그녀가 홀로 이 사람들을 상대하게 둘 수 없었다.어제 고모가 문전박대를 당했으니 결코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 무슨 일을 벌일지는 예측 불가지만 손 놓고 당할 수는 없으니, 대비해야 했다.역시나 오늘, 고모가 할머니까지 모시고 그의 집으로 찾아왔다. 더욱 그를 놀라게 한 건 한소은이 순순히 문을 열어줬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 그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 보고를 했다. 혹시라도 그녀가 다칠까 걱정이 되어 전화를 받자마자 회사 일은 던져 두고 쏜살같이 집으로 달려 온 것이다.타이밍이 좋았다. 집으로 들어선 그 순간 그녀에게 물을 뿌리려는 고모를 보고 생각할 것도없이 그녀 앞에 막아섰다.“서진아......”김지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김서진을 불렀다. 한소은에게 뿌렸던 뜨거운 차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김서진의 몸에 뿌려졌다. 셔츠가 흠뻑 젖었고 어렴풋이 비치는 그의 피부는 뜨거운 물에 데어 빨갛게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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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7화

사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무서워 보였던 김서진의 할머니가 평생 유일하게 두려워했던 사람이 바로 자기의 남편이었다.김서진의 할아버지가 아직 살아 계셨을 때 할머니는 그에게 단 한 번의 대꾸를 한 적이 없었다. 김씨 집안의 모든 일은 남편의 말을 따라야 했고 제아무리 큰 며느리가 싫고 손자가 싫다해도 남편이 그들을 마음에 들어 하니 어쩔 수가 없었다. 김서진의 할아버지가 김서진을 가르치고 그에게 가업을 물려준다고 했었을 때 불만이 많았지만,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김서진의 할머니에게 발언권이 생겼다. 문득 생긴 권력에 모두 자기를 어르신으로 모시고 뜻을 거역하지 않으니 자기가 뭐라도 된 듯 모든 일에 참견하고 싶었다.하지만 그땐 김서진이 이미 성인이 된 후였고 그녀의 말을 잘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그녀는 더욱 이 손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김서진이 집에서 나가 따로 사는 것도 자기 눈앞에서 거슬리게 구는 것 보다 나을 듯 해 눈감아 주었다.하지만 그가 결혼하겠다고 웬 여자를 김씨 집안에 들이는 건 모른 척할수 없었다.오늘 그녀가 한소은을 찾아온 것도 그저 겁을 좀 주려고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예상 밖으로 김서진이 일찍이 돌아왔고 게다가 그녀 앞에서 한소은을 감싸고 도니 예전에 큰아들이 며느리를 감싸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러자 더욱 화가 났다.“김서진! 내가 네 할머니라는 거 잊지 마라!”몹시 노여웠는지 김서진의 할머니가 일어서며 그에게 호통을 치다시피 했다.“내 할머니라는 거 당연히 알아요. 그 외에도 나에게 어떻게 했는지 우리 집, 우리 가족에게 어떻게 했는지 다 기억하고 있어요.”김서진이 차갑게 말을 내뱉었다. “할머니, 나이도 많으신데 이제 그만 집에서 쉬시는 게 어때요? 김씨 집안에 자손이 많은 건 아니지만 어린 손자들이 재롱을 피우는 걸 보시면서 쉬셔도 돼요. 다른 일은 걱정하지 마세요.”김서진의 말을 들은 할머니는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의 말에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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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8화

한껏 긴장한 얼굴로 잔소리를 해대며 바쁘게 옷의 단추를 푸는 한소은의 모습이 김서진은 마냥 귀여운 듯 바라보았다. 너무 급해 손이 말을 듣지 않는지 자기에게 화를 내는 그녀의 모습에 더는 참지 못하고 작게 웃음을 지어냈다.“뜨겁지도 않은 물인데 왜 이렇게 마음이 급한 거예요. 난 괜찮아요.”“이런 말 할 시간 있으면 혼자서 단추를 푸는 게 어때요? 많이 데이지 않았다고 방심하면 큰일 난다고요!”한소은은 이번엔 그의 아무렇지 않다는 태도에 화가 났다. 자기가 걱정하는 것도 모르고 몸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그가 내심 얄미웠다.“그럼, 정말 벗어요?”김서진은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느릿하게 단추를 하나둘씩 풀어나갔다.그저 단추를 푸는 행동이었지만 그의 기다란 손이 정교하게 만들어진 단추를 풀어 셔츠 밑의 피부를 드러내니 왠지 모르게 야릇하게 느껴졌다. 그 모습에 한소은은 갑자기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고 목이 타는지 꿀꺽 침을 삼켰다.“혹시......”그런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던 김서진이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놀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순간 느릿느릿한 그의 행동이 맘에 들지 않았는지 그녀가 그의 셔츠를 확 찢어 버렸다.한소은의 힘이 얼마나 셌는지 단추 몇 개가 떨어져 바닥에서 나뒹굴었다. 그의 옷은 그대로 너덜너덜하게 헤쳐졌다.장난을 칠 생각이었던 김서진이 말문이 막혀 멍해졌다.“이렇게 빨갛게 데었는데 뭘 꾸물거리는 거예요!”한소은은 조금 화가 난 목소리로 말하며 김서진을 소파로 끌고 갔다. 그러고는 사람을 시켜 화상 연고를 가져오라고 말했다.“화상 연고 좀 가져다줘.”“당신 지금......”김서진은 한 번도 한소은이 이렇게 화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새로운 그녀의 모습은 내심 그의 마음에 들었다.“아프지 않아요?”한소은의 온 신경은 모두 빨갛게 덴 그의 상처에 있었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자기의 몸에 상처가 생긴 것처럼 한껏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사실 무예를 연마할 때 한소은은 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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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9화

연고를 받아 든 한소은은 손가락으로 연고를 조금 덜어 상처가 난 곳에 살살 발라주었다.사실 이 정도 상처는 김서진에게 있어서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최대한 가볍게 연고를 발라주려고 노력하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좋았다.처음에는 한소은이 호들갑을 떠는 거라고 연고를 바르는 걸 거절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연고를 바르고 시원한 느낌이 전해져 오자 더 이상 거절하지 않고 편하게 소파에 앉아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녀의 가느다란 손이 자기의 복부에서 미끄러지도록 내버려 두었다.그녀가 연고를 바르는 동안 시원한 느낌 외에도 무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조급한 느낌도 들었다.뜨겁고 조급한 느낌이 복부에서 솟아오르며 그의 입이 말라갔다.한소은은 온 신경을 집중해 그에게 연고를 발라주고 있었다. 마음속의 벅찬 감정은 많이 사그라들었지만, 감동은 여전했다. 그가 그 순간에 달려와 자기를 구해 줄 거라는걸 생각지 못했었다. 아무리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해도 그의 고모였고 그의 할머니였다. 그런데도 그녀를 위해 자기 앞에 막아섰고 그녀를 지켜내며 가족들과 얼굴을 붉혔다.그전까지 한소은은 다른 사람이 말하는 안정감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 자기를 이토록 아껴주고 지켜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안정감이라는 걸 몸소 느꼈다.연고를 다 바른 후 한소은은 느릿하게 연고 뚜껑을 닫으며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상처에 붕대라도 감아야 하는 게 아닌지 뒤로 돌아 그를 바라보던 순간 김서진이 그녀의 팔을 휙 잡아당겼다. 갑작스럽게 당겨지니 한소은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그에게로 픽 쓰러졌다.“상처에 닿지 않게 조심해요!”한소은은 간신히 한 손으로 소파를 짚으며 가까스로 그의 상처에 닿는 걸 피했다.“괜찮아요. 많이 다친 것도 아닌데요. 당신이 약까지 발라 줬잖아요.”김서진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안쪽으로 몸을 움직여 그녀가 자기 몸에 기대어 누울 수 있도록 했다.그가 무얼 하려는지 알아차린 한소은은 눕지 않으려 발버둥 쳤다.“가만히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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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0화

맥없이 푹 늘어진 그녀의 모습에 걱정이 사그라지지 않는 김서진은 단호하게 말했다.“안 돼요. 그냥 감기라도 병원에 가서 진료받고 의사가 괜찮다고 해야 마음이 놓일 거 같아요. 지금 당장 병원으로 가요!”김서진이 고집을 부릴 때에는 아무도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아픈 데다가 기운이 빠질 대로 빠진 한소은은 자기를 가볍게 안아 들고 밖으로 나가는 김서진을 거부하지 않았다.그녀를 살포시 차에 내려두고 급히 차에 시동을 걸어 병원으로 향했다.조수석에 앉은 한소은은 말할 힘도 없어 그저 조용히 앉아 있기만 했다. 힘이 빠질 대로 빠진 그녀는 그저 잠만 자고 싶었다.겨우 실눈을 뜨고 운전석에 앉아 운전하는 김서진을 보며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정말 괜찮아요. 지금 좀 자고 싶은데 병원에 가지 말고 집에서 쉬면 안 돼요?”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소은은 가볍게 기침했다.“고집 그만 부려요!”김서진은 무서운 얼굴을 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보면 그녀가 당장이라도 죽는 줄 알겠다.“말 그만하고 물이나 마셔요. 금방 병원에 도착할 거니까 내말 말 들어요!”그러고는 그녀에게 물 한 병을 전해 주었다.그가 전해준 물을 받아 들고 가볍게 웃음 짓던 한소은은 갑자기 졸음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옆으로 몸을 돌려 김서진의 모습을 보던 그녀가 얼마 지나지 않아 졸음을 참지 못하고 잠들어버렸다.조용히 잠이 들어있는 그녀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 김서진은 웬일로 그녀가 잠자코 말을 듣는지 궁금해져 그녀를 슥 보았다. 피곤한 얼굴로 잠이 든 그녀를 보고는 차에 온도를 높이고 더욱 속도를 내 병원을 향해 달려갔다.병원으로 가는 내네 그녀가 아픈 것을 참고 자기의 고모와 할머니를 상대했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파왔다.자신이 이미 이런 자질구레한 일들을 잘 처리했고 그녀가 상처받지 않도록 잘 보호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피해 가지 못했다.그가 본가에서 나와 살던 몇 년 동안 본가를 그들이 살게 내버려 두고 매년 그들에게 준 돈은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럼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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