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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3화

김서진의 할머니는 단단히 마음먹고 위세를 떨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집안에는 한소은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마를 찌푸리며 물었다.

"그 계집은 어디 있는 거야?"

부인이 아닌 계집이라고 한소은을 불렀다. 이건 그녀를 이 집 주인이라고 인정 안 한다는 뜻이었다.

도우미가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부인님께서 편찮으셔서……."

때마침 계단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한소은이 내려온 것이다.

그 소리를 들은 김서진의 할머니와 김지영이 고개를 들자 여유로운 걸음으로 내려오는 한소은을 발견했다.

그녀는 한동안 출근을 안 했기에 집에서 편안한 대로 입었다. 거기에 오늘 아파서 머리도 자연스럽게 풀고 있었다.

어깨까지 내려온 머리카락은 그녀의 걸음을 따라 찰랑거렸고 열이 난 탓에 그녀의 행동은 아주 느렸다. 그래서 연약한 미인 같은 느낌이 들었다.

김지영은 그녀의 미모에 놀랐다. 액세서리 가게에서 본 적이 있지만 그땐 거리가 너무 멀었고 또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전혀 주의 못 했다. 오늘 자세히 보니 그녀의 외모는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어쩐지 서진이가 단단히 홀렸더라.'

그리고 어제 김서진이 문 앞을 가로막고 들어오지도 못하게 한 수치를 생각하니 화가 나서 표정이 좋지 못했다.

"흥!"

김지영이 턱을 들어 올리며 어른 행세를 하였다.

계단에서 내려와 소파에 앉은 한소은은 담요를 어깨 위에 걸치며 부드러운 말투로 도우미에게 말했다.

"따뜻한 물 한 잔 주세요."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눈앞의 두 사람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김서진의 할머니가 이런 무시하는 태도를 어떻게 참겠는가. 그녀가 지팡이로 바닥을 탁 치며 차갑게 말했다.

"네가 한소은이야?"

"맞아요. 누구시죠?"

한소은이 고개를 들며 시선을 피하지도 않고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녀가 이렇게 침착할 줄 몰랐다. 그러자 할머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내가 누군지 몰라? 나 서진이 할머니야!"

"그러세요."

그녀가 알았다는 듯 덤덤하게 대답했다. 다른 표정도 없었고 공소하게 할머니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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