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고를 받아 든 한소은은 손가락으로 연고를 조금 덜어 상처가 난 곳에 살살 발라주었다.사실 이 정도 상처는 김서진에게 있어서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최대한 가볍게 연고를 발라주려고 노력하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좋았다.처음에는 한소은이 호들갑을 떠는 거라고 연고를 바르는 걸 거절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연고를 바르고 시원한 느낌이 전해져 오자 더 이상 거절하지 않고 편하게 소파에 앉아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녀의 가느다란 손이 자기의 복부에서 미끄러지도록 내버려 두었다.그녀가 연고를 바르는 동안 시원한 느낌 외에도 무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조급한 느낌도 들었다.뜨겁고 조급한 느낌이 복부에서 솟아오르며 그의 입이 말라갔다.한소은은 온 신경을 집중해 그에게 연고를 발라주고 있었다. 마음속의 벅찬 감정은 많이 사그라들었지만, 감동은 여전했다. 그가 그 순간에 달려와 자기를 구해 줄 거라는걸 생각지 못했었다. 아무리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해도 그의 고모였고 그의 할머니였다. 그런데도 그녀를 위해 자기 앞에 막아섰고 그녀를 지켜내며 가족들과 얼굴을 붉혔다.그전까지 한소은은 다른 사람이 말하는 안정감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 자기를 이토록 아껴주고 지켜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안정감이라는 걸 몸소 느꼈다.연고를 다 바른 후 한소은은 느릿하게 연고 뚜껑을 닫으며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상처에 붕대라도 감아야 하는 게 아닌지 뒤로 돌아 그를 바라보던 순간 김서진이 그녀의 팔을 휙 잡아당겼다. 갑작스럽게 당겨지니 한소은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그에게로 픽 쓰러졌다.“상처에 닿지 않게 조심해요!”한소은은 간신히 한 손으로 소파를 짚으며 가까스로 그의 상처에 닿는 걸 피했다.“괜찮아요. 많이 다친 것도 아닌데요. 당신이 약까지 발라 줬잖아요.”김서진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안쪽으로 몸을 움직여 그녀가 자기 몸에 기대어 누울 수 있도록 했다.그가 무얼 하려는지 알아차린 한소은은 눕지 않으려 발버둥 쳤다.“가만히 있
맥없이 푹 늘어진 그녀의 모습에 걱정이 사그라지지 않는 김서진은 단호하게 말했다.“안 돼요. 그냥 감기라도 병원에 가서 진료받고 의사가 괜찮다고 해야 마음이 놓일 거 같아요. 지금 당장 병원으로 가요!”김서진이 고집을 부릴 때에는 아무도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아픈 데다가 기운이 빠질 대로 빠진 한소은은 자기를 가볍게 안아 들고 밖으로 나가는 김서진을 거부하지 않았다.그녀를 살포시 차에 내려두고 급히 차에 시동을 걸어 병원으로 향했다.조수석에 앉은 한소은은 말할 힘도 없어 그저 조용히 앉아 있기만 했다. 힘이 빠질 대로 빠진 그녀는 그저 잠만 자고 싶었다.겨우 실눈을 뜨고 운전석에 앉아 운전하는 김서진을 보며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정말 괜찮아요. 지금 좀 자고 싶은데 병원에 가지 말고 집에서 쉬면 안 돼요?”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소은은 가볍게 기침했다.“고집 그만 부려요!”김서진은 무서운 얼굴을 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보면 그녀가 당장이라도 죽는 줄 알겠다.“말 그만하고 물이나 마셔요. 금방 병원에 도착할 거니까 내말 말 들어요!”그러고는 그녀에게 물 한 병을 전해 주었다.그가 전해준 물을 받아 들고 가볍게 웃음 짓던 한소은은 갑자기 졸음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옆으로 몸을 돌려 김서진의 모습을 보던 그녀가 얼마 지나지 않아 졸음을 참지 못하고 잠들어버렸다.조용히 잠이 들어있는 그녀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 김서진은 웬일로 그녀가 잠자코 말을 듣는지 궁금해져 그녀를 슥 보았다. 피곤한 얼굴로 잠이 든 그녀를 보고는 차에 온도를 높이고 더욱 속도를 내 병원을 향해 달려갔다.병원으로 가는 내네 그녀가 아픈 것을 참고 자기의 고모와 할머니를 상대했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파왔다.자신이 이미 이런 자질구레한 일들을 잘 처리했고 그녀가 상처받지 않도록 잘 보호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피해 가지 못했다.그가 본가에서 나와 살던 몇 년 동안 본가를 그들이 살게 내버려 두고 매년 그들에게 준 돈은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럼에도
김서진이 거짓말을 한 게 뻔했다. 누가 업어갈 정도로 잠이 들었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게다가 차에서 병실까지 가는 내내 깨지 않았다는 건 더욱 말이 안 되었다.“자주 아프지 않았는데 갑자기 아프니 이렇게 심각할 줄 몰랐어요!”한소은은 살짝 몸을 움직여 보았다. 아직도 회복이 덜 되었는지 여전히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손에는 링거까지 맞고 있었다. “이건 해열제인가요?”이미 여러 개 비워진 링거병을 보며 한소은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니에요. 그건 영양주사예요. 의사가 당신 지금 아무 약이나 막 쓰면 안 된다고 했어요.”김서진이 물 한 잔을 따라 그녀에게 전해주었다. 세심하게 빨대까지 꽂아 그녀가 편하게 물을 마실 수 있게 했다.“의사가 왜 그런 말을 한 거예요? 혹시 내가 어떤 약에 알레르기 반응이라도 유발하나요?”한소은은 그의 말이 이해되지 않는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어려서부터 아픈 적이 열 손가락에 꼽을 만큼 적었고 이렇게 입원해서 링거까지 맞는 일도 거의 없었다. 게다가 어떤 약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는 건 전혀 알지 못했던 일이다. 이번에 입원하면서 알아낸 건지 한소은은 매우 궁금했다.“아니에요. 지금 당신 몸 상태가 조심해야 하는 시가라서 그래요. 게다가 의사가 영양실조라고 해서 영양주사를 맞고 있는 거예요. 당신 몸 상태가 조금 나아지면 몸조리 잘해야 한대요.”김서진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게 무슨 말이에요? 내 몸이 약을 쓸 수 없을 만큼 허약하다는 건가요?”어리둥절한 한소은의 표정을 보며 김서진이 가벼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녀가 따라준 물을 모두 마시자, 물컵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티슈로 그녀의 입을 살짝 닦아 주었다.조심스럽게 그녀의 시중을 들어주면서 김서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그녀를 보며 웃기만 했다.그가 지금 매우 기분 좋은 상태인 건 알 것 같다. 귀가 입에 걸릴 듯 웃는 그를 보며 한소은은 더욱 어리둥절했다.“도대체 왜 웃는 거예요? 당신 웃음이 조금 소름 돋는 건 알고 있
김서진은 그녀가 불안해한다는 걸 느끼고 확신에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정말이에요. 의사가 벌써 8주가 되어 간다던데 당신 몰랐던 거예요?”의사가 처음으로 임신할 경우 임신에 대한 지식도 적고 경험해 보지 않았던 일이기 때문에 바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했다고 김서진이 말했다.한소은은 그의 말에 납득했다. 확실히 뉴스에서 임신한 지 몇 개월이 되어서야 발견했다는 뉴스를 본 적 있었던 거 같았다. 하지만 조금만 자기의 몸에 신경을 썼더라면 전혀 눈치채지 못하진 않았을 것이다.김서진의 물음에 한소은은 미간을 찌푸리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러고 보니 두 달 가까이 생리를 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하지만 원래도 생리 주기가 불규칙했었고 그 두 달간 일이 많아 매우 바빴기에 그저 힘들어서 그런 거라고만 생각했었다.“나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 건 줄 알았어요.”“당신 정말 바보 같네요!”김서진이 긴 손가락으로 그녀의 콧등에 톡 하고 쳤다. 임신한 게 아니었다면 당장이라도 그녀를 혼내주고 싶었다.그녀는 자기가 임신한 줄도 모르고 아프면서 병원에는 가려 하지도 않고 또 그 두 사람이 난동을 피우는 것까지 다 받아주었다. ‘정말 자기 자신이 강철로 만들어진 거라고 생각하나 봐.’한소은이 의식을 잃고 김서진의 품에 안겨 병원에 왔을 때 진찰하던 의사가 깜짝 놀랄 정도로 열이 펄펄 끓고 있었다. 게다가 임신까지 확인되어 쓸 수 있는 약이 별로 없었다.“아참. 당신이 집에서 약을 먹었다고 했잖아요. 무슨 약인지 알아요?”김서진은 의사가 물었던 말을 기억하고 그녀에게 바로 물어보았다.“그냥 보통 해열제에요.”한소은은 그가 왜 이런 물음을 묻는지 알지 못하는 표정이었다.“어떤 해열제예요? 이름이 무엇인지 기억해요? 아기에게 영향이 갈지 의사가 확인해 봐야 한다고 했어요.”김서진은 그녀가 걱정할까 봐 일부러 뒷말을 흐리며 말했다.하지만 한소은은 바로 그가 하는 말의 중점을 콕 집어 물었다.“혹시 아기에게 부작용이 생길 수 있나요?”‘그래서
이 두 사람에게 있어서 갑자기 찾아온 아기는 정말 서프라이즈였다. 마치 하늘이 내린 선물 같았다.사실 저번 임신 소동이 있고 난 뒤 한소은은 김서진이 아이를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걱정을 했었다. 하지만 오늘 그의 반응을 보니 그런 걱정을 했다는 게 무색해질 정도로 그가 기뻐하는 것 같았다.역시 아기를 가지려 노력하는 것 보다 인연이 닿아 자연스럽게 생기는 게 맞는 일이다.“결혼식을 서둘러야 할 것 같네요.”한소은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얌전히 다시 누웠다. 어쩐 지 벌써 한 아기의 엄마가 되어 모성애가 가슴이 벅차도록 솟아나고 있는 것 같았다.임신했으니 이젠 잘 쉬어야 했다. 아기를 위해서라도 몸조리를 잘해야만 한다.“결혼식을 서두르는 건 좋은데 당신은 신경 쓸 거 없어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면 사람을 시켜서 하게 하면 되니까 당신은 어디도 가면 안 돼요. 알겠죠?”한소은의 눈에 비친 그가 명령하는 모습은 더없이 멋져 보였다. 한소은은 그가 자기를 걱정하는 걸 잘 알았기에 고분고분 머리를 끄덕였다.“알았어요!”——황도 노래방에서 김승엽이 한 손에는 술병을 쥐고 눈살을 찌푸렸다. 조용히 앉아 있는 여자를 보며 내심 생각했다.‘여기 온 지 반나절이 지났는데 왜 아무 말도 없는 거지?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걸까?’소문에 의하면 우씨 집안의 아가씨는 생각이 깊고 야망이 큰 여자다. 김승엽의 어머니도 진즉에 우해영의 성격이 좋지 않다고 했었지만, 그는 그녀가 이렇게까지 상대하기 어려운 줄 몰랐다.오늘 두 사람이 예의상 만나 함께 그다지 즐겁지 않지만 나쁘지 않은 식사를 했다. 하지만 우해영은 줄곧 머리를 숙이고 그에게 눈길 한번을 주지 않았다. 김승엽은 그녀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만약 이 결혼이 그녀와의 정략결혼이 아니고 두 집안이 얻는 이득이 없었다면 김승엽은 지금 옆에 앉아 고개만 숙이고 있는 여자가 자기와 선을 보러 나왔다는 걸 믿지 않았을 것이다.그럼에도 우해영이 가진 권력과 집안 배경, 그리고 자기를 지지
말이 끝나자, 김승엽은 크게 웃기 시작했다.정작 농담을 들은 우해영은 웃지 않았다.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듣지 못한 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정색하며 대답했다.“난 옆방으로 넘어가지 않았어요. 그리고 이 담을 뚫고 넘어갈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그녀의 말에 김승엽은 말문이 막혔다. 어디서 이런 이상한 여자가 나왔는지 궁금해졌다.‘우씨 가문이 이름 모를 섬에서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낸다더니 사회와 너무 동떨어져 그 집안사람들이 모두 머리가 이상해진 건가?’김승엽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지만 표현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순순히 그녀의 말에 순응했다.“맞아요, 당신 말이 맞아요. 해영 씨는 옆방으로 넘어갈 수 없어요. 내가 어리석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군요.”조용히 그의 모습을 보던 우해영은 나지막이 말했다.“당신은 어리석지 않아요.”크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그녀의 말은 한 글자도 빠짐없이 김승엽의 마음속에 박혔다. 앞서 못마땅했던 기분이 그녀의 말에 사르르 녹아버렸다.“그렇다면 우해영 씨는 내가 어떤 사람인 거 같아요? 당신 눈에는 내가 어때 보이나요?”“......”우해영은 말없이 입술만 오므렸다. 그의 물음에 어떻게 대답할지 고민하는 것인지 그저 대답하기 싫어서 입을 열지 않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그녀의 작은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김승엽은 그런 그녀에게 조금씩 빠져들고 있었다.성격이 답답하고 조금은 멍청해 보였지만 그녀의 얼굴만큼은 정말 예뻤다.‘다른 건 둘째 치고 얼굴 하나는 정말 이쁘네.’이 순간 김승엽은 성격이 괴팍하고 사나우며 재미가 없다는 그녀에 대한 소문을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이렇게 예쁜 얼굴에 자기를 도와줄 세력과 집안 배경까지 있는 여자와 평생을 함께하는데 그 정도는 참아 줄 수 있을 것도 같았다.지금 가장 중요한 건 그녀와 정을 쌓는 것이다. 농담 같지 않은 농담도 하고 그녀에게 모두 맞춰주고 있지만 정작 그녀의 반응은 담담했다.‘그렇다면 이 방법을 쓸 수밖에 없나?’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는 우해영
홀로 노래를 마친 김승엽은 고개를 돌려 여전히 말없이 앉아 있기만 한 우해영을 한참 바라보았다. 결국 참지 못하고 김승엽이 먼저 입을 열었다.“우해영 씨, 혹시 내가 마음에 들지 않나요?”우해영은 그의 물음에 눈을 깜빡이더니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그녀가 거절하는 것 같지 않자, 김승엽은 그녀에게 조금 더 다가갔다.“그런 게 아니라면 내가 마음에 든다는 거군요. 그럼, 이 결혼 이대로 진행해도 되는 거죠?”김씨 가문이 이 결혼을 위해 많은 준비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씨 가문의 심드렁한 반응에 김승엽은 마음이 조금 급해졌다. 아무래도 우씨 가문을 넘보는 집안이 많았기에 김승엽은 하루라도 빨리 결혼을 진행 시키고 싶었다.사실 김씨 가문의 능력과 재력으로 이렇게까지 우씨 가문에 잘 보이려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김씨 가문의 권력은 모두 김서진 그 자식 손에 있다. 자기가 그의 작은 삼촌이라 해도 손에 쥐고 있는 실권이 별로 없었고 가질 수 있는 것도 많지 않았다. 그에 비해 명문가인 우씨 가문은 이런 그를 마음에 들어 할 리가 없다.그러나 아무렴 어떤가. 김승엽의 뒤에는 김씨 가문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김씨 가문의 모든 것을 물려받게 될 수도 있다. 우씨 가문도 이런 가능성을 보고 그를 선택한 것이다.“해영씨......”김승엽이 작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에 올리며 스킨십을 하려 했다. 이제 조금만 더 그녀와 가까워 지면 앞으로 아무 걱정 하지 않아도 될 거라고 생각했다.이런 생각을 하면서 김승엽은 그녀에게 더욱 가까이 몸을 붙였다.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어깨에 살짝 닿은 순간, 우해영이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펄쩍 뛰었다. 손에 쥐고 있던 와인잔이 엎어지면서 와인이 김승엽의 바지에 쏟아졌다.“죄송합니다!”갑자기 벌어진 일에 우해영의 얼굴에는 당황함이 가득했다. 반면, 그녀의 반응에 놀란 김승엽이 두 팔로 가슴 앞을 막으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우씨 가문이 고대 무술 가문이라는 건 누구나 잘 아는
말을 마친 우해영은 곧바로 몸을 돌려 나가려 했다. 그녀가 집으로 가려고 마음을 먹은 게 눈에 보여 김승엽은 더 이상 그녀를 막지 않고 따라갔다.“해영 씨!”주차장까지 따라 나간 김승엽은 한 손으로 그녀가 차 문을 열려는 것을 막아 나섰다. 우해영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더욱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느끼한 눈빛으로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본다.“혹시 내게 불만이 있는 건가요?”“아, 아니요.”우해영은 당황한 얼굴로 연신 고개를 저었다.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그녀의 눈을 본 순간 김승엽은 자기가 잘못 본 것이라고 생각했다.우씨 가문의 아가씨가 얼마나 맹렬하고 기세 높은지, 그녀 밑에서 일하는 두 킬러가 얼마나 무서운 건지는 이미 신물이 나도록 들었었다. 그렇게 사납고 무서운 여자가 자기 앞에서 이렇게 단순 무구한 눈빛을 할 수 있단 말인가?그것도 잠시, 김승엽은 그녀의 이런 모습이 납득이 갔다. 어쩌면 그녀가 싸움에 강한 여자일지 몰라도 감정 방면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숙맥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다른 방면에서 너무 뛰어나다 보니 온 신경을 거기에 쏟아붓느라 연애를 한 번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기 앞에서 이렇게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한 번도 누구와 연애를 한 적 없는 소녀가 이렇게 멋지고 품격 있는 남자를 보니 설레어서 긴장하는 게 맞지. 안 그러면 아까 왜 날 때리지 않았겠어? 분명 내게 반한 거야.’김승엽은 온종일 부자연스러웠던 그녀의 행동들이 모두 부끄러워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김승엽은 점점 자신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마 앞으로 내려온 잔 머리카락을 슥 넘기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불만이 없다면 내가 마음에 든다는 말이군요.”“아, 아니에요.”우해영은 너무 긴장한 나머지 침을 꼴깍 삼켰다.잡티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은 그렇다 할 정도로 미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매력이 있었다.“해영 씨, 난 당신이 좋아요. 아니, 사랑해요.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 난 당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