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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 왕비의 모든 챕터: 챕터 291 - 챕터 300

3038 챕터

제 291화

“나가보거라. 오늘 짐이 말한 것은 다섯째와 잘 의논해 보거라.” 명원제가 말했다.원경릉은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명원제의 말을 곱씹을수록 그녀의 마음속엔 의심의 싹이 올라왔다.그날 저녁, 원경릉과 우문호는 부부로서 침전에서 해야 할 일은 제쳐두고 명원제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분석하기 시작했다.“부황은 왜 내가 자식을 낳는데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야?” 원경릉이 물었다.우문호는 그녀를 두 팔로 안고서 손가락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돌돌 말았다.“왜 그런 것 같은데?”“부황이 너를 태자로 책봉하려는 거 아니야?” 원경릉이 추측했다.우문호는 고개를 저으며 “그럴 리 없어. 부황께서는 올해 내게 실망도 많이 하셨고, 나에겐 늘 냉담하신거 너도 잘 알잖아.”라고 말했다.“그 공주부 사건은 나 때문에 그런 거잖아……. 그 사건 이전엔 부황께서 너를 중시하지 않았어?”“음……. 태자로 책봉되려면, 장남이거나 황후가 낳은 아들이어야 해.”우문호가 말했다.“현비가 낳은게 뭐 어때서?”원경릉이 물었다.우문호는 빙그레 웃으며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너는 내가 어질고 선한 재목이라고 생각해?”“아니!” 원경릉은 그의 말을 단칼에 부인했다. “선한건 모르겠고! 네 충성심과 용맹함은 내가 인정하지!”우문호는 두 손으로 뒤통수를 감싸고는 생각했다.‘정말 부황이 나를 염두에 두고 있는 걸까?’“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태자가 되고 싶어?”원경릉이 물었다.우문호는 웃으며 “싫다고 말하는 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태자가 되면 그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라고 말했다.원경릉은 침상에 엎드려 팔꿈치에 턱을 괴고 그를 보았다.“내 생각엔 말이야, 부황께서 태상황님의 마음을 캐고 계신 것 같아. 아무래도 태상황님께서는 너를 많이 아끼시잖아. 게다가 초왕비인 내가 태상황님의 마음을 얻기도 했고…….”이 말을 들은 우문호가 그녀를 쳐다보며 “그럼 네 말은 부황이 나를 태자로 책봉하려는 게, 어쩔 수 없이 태상황의 뜻에 순종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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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92화

“그건 너 혼자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지, 그건 우리와 아이가 연이 닿아야 하는 거야.”그가 장막을 치자, 바람에 촛불이 꺼졌다.“오늘은 좀 쉬면 안 될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원경릉이 우문호에게 말했다.“쉬는 건 죽어서 쉬면 돼.”우문호는 그녀가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달려들었다.침전이 한순간에 달아올랐다.다음 날, 손왕 부부가 초왕부를 방문했다. 우문호는 일을 마치고 돌아와 손왕과 거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원경릉은 손왕비와 뜰에서 산책하고 있었다.손왕비의 얼굴이 어딘가 모르게 근심이 있는 것 같았다.“손왕비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원경릉이 손으로 자신의 허리를 두드리며 손왕비를 쳐다보았다.“별일 아닙니다.”손왕비가 그녀를 보며“그나저나 허리는 괜찮습니까? 왜 두드립니까?”라고 물었다.“괜찮습니다.”원경릉은 손을 거두며 대답했다.손왕비는 원경릉이 왜 그런지 알겠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아, 지금 좋을 때죠. 저도 다 겪어봤습니다.”“손왕비님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저는 그저 피곤할 뿐입니다!”원경릉이 멋쩍은 표정으로 대답했다.“어휴, 알겠어요!”손왕비는 손가락을 뻗어 앞에 있는 돌의자를 가리켰다.“저기 앉죠! 힘드니 좀 쉽시다.”원경릉은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자리에 앉자 손왕비는 갑자기 원경릉에게 “듣자 하니, 초왕비가 다섯째가 주명양(周明陽)과 혼인을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하던데.”라고 말했다.“예, 제가 들이지 말라고 했습니다.”손왕비는 깜짝 놀라서 “감히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손왕비는 제손으로 직접 손왕의 첩을 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래도 그럴 수는 없습니다. 왜 제 부군(夫君)을 다른 여인과 나눠가져야 합니까?”“다 그렇게 합니다.”손왕비가 조용히 말했다.“아무리 그래도 저는 싫습니다.”“초왕비가 싫다고 하는 게 무슨 소용 있습니까? 초왕비가 나서지 않는다면 다른 누군가가 나서서 다섯째의 첩을 준비할 것입니다. 차리리 부인인 내가 직접 고르는 게 낫지!”“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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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93화

“허나 지금은 초왕비가 너무 좋습니다. 비록 내가 초왕비 말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초왕비가 그렇게 말해주니 마음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습니다.”손왕비가 웃으며 말했다.원경릉은 그녀를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손왕 내외를 배웅한 후, 우문호는 원경릉을 데리고 회왕부로 향했다. 원경릉은 늘 그래왔듯 회왕의 상태를 확인하고 약을 주고 안부 인사를 마친 후 밖으로 나왔다.“우리 바깥으로 구경나가자!” 원경릉은 이곳에 온 뒤, 한 번도 바깥 구경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우문호는 그녀의 손을 잡고 한가로이 걸었다.녹주와 서일이 그들의 뒤를 느릿느릿 따라왔다.원경릉은 북당(北唐)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이렇게 밖에 나와보니 북당은 번화했던 시기임에 틀림없다. 그 둘은 길모퉁이 구멍가게부터 시작해서 정미소, 보석가게, 비단가게, 의관을 파는 곳, 심지어 수의를 파는 가게까지 들여다보았다. 녹주는 왕비가 제정신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하다 하다 죽은 사람의 옷을 파는 곳까지 들여다보다니!하지만 원경릉은 처음으로 밖에 나와 실제 북당 사람도 보고 구경을 하는 것이 매우 기뻤다. 수의를 만드는 곳에 들르니 겉과는 다르게 안에는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원경릉이 하나를 집어 가격을 보니 그녀의 예상을 뛰어넘는 비싼 가격이었다.“이렇게 팔면 누가 사? 평범한 사람은 살 엄두도 안 나겠어!”“이건 부자들한테만 파는 거야. 살아있을 때 못해준걸 죽어서라도 해주려고 하는거지.”이 말을 듣고 원경릉이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비싼 비단 옷을 입고 있었다.“경중(京中)은 정말 번화하구나. 가난해 보이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우문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거리에 물건을 사러 온 사람들은 모두 부유한 집안의 사람들이야.”“아 그래? 그럼 다른 곳으로 가보자.”“가지 마, 이 근처나 걷다가 들어가자.”“나는 다른 곳도 가볼래!”원경릉이 말했다.그러자 서일이 원경릉에게 “왕비님, 이곳이 경중에서 가장 번화한 곳입니다. 여기 외에는 구경할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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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94화

우문호의 얼굴에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왜 그래?” 그녀가 물었다.우문호는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그냥 기운이 없는 것 같아.”사실 우문호는 황실의 사람으로서 백성들이 잘 보살펴야 하는 의무가 있다. 하지만 그의 역량은 아직 이에 미치지 못했다. 원경릉은 그가 말하지 않아도 그의 눈빛에서 백성들을 불쌍하게 여기는 그의 진심이 느껴져 안타까웠다.길의 끝에는 의료관이 있었다. 그 입구에는 줄이 길게 서있었으며, 누추한 옷차림으로 거리에 드러누워있는 환자들이 여기저기에서 보였다. 그들이 풍기는 악취 때문에 파리들이 들끓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어? 다른 의료관으로 가면 되잖아.”원경릉이 물었다.서일은 웃으며 “왕비님, 다른 의료관을 이들이 감히 어떻게 갑니까.”라고 말했다.“감히라니? 정부에서…… 운영하는 그런 의료관이 없나?”“있어, 혜민서의(惠民署醫)라고.”우문호가 답했다.“혜민서의도 비싸?”“경중에는 혜민서의가 딱 두 곳밖에 없어. 운 좋으면 서너 달, 어떤 이들은 진료를 받기 위해 1년도 줄을 서서 기다린다.”우문호의 말에 원경릉은 깜짝 놀랐다.“혜민서의가 두 곳밖에 없다고? 경도(京都)가 이러게 큰데 두 곳에서 이 많은 환자를 어떻게 처리해?”“경중에는 시내 곳곳에 개인 의료관이 있어. 하지만 비싸서 일반 사람들은 못 가지.”우문호가 말했다.“도대체 무슨 이유로 조정(朝廷)에서는 의료관을 더 세우지 않는 거야?”“의사가 없다.”우문호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인파 속을 빠져나와 그녀에게 천천히 설명했다.“어렵게 의술을 배웠으니 다들 직접 의료관을 차려 큰돈을 벌고 싶어 하지, 누가 혜민서의에서 돈 없는 사람들을 치료하고 싶어 하겠는가?”“그럼 중병을 앓고 있어서 밖에서 줄도 못 서고, 돈이 없어서 의료관도 못 가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일이 원경릉을 보며 “어쩔 수 없죠. 민간요법이라도 해보고, 안되면 죽는 수밖에 없죠.”라고 말했다.서일의 말을 들은 그녀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그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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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95화

“조모님의 건강은 어때?”원경릉이 동생에게 물었다.“그냥 여전하시지, 좋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았습니다.”원경병이 말했다.“이틀 후에 조모님을 뵈러 가야겠다.”자매는 마차에 올라탔다. “왕비님 어디로 가십니까?” 마부가 물었다.원경릉은 녹주를 바라보며 “녹주, 어제 우리가 갔던 곳은 어디였죠?”라고 물었다.“흥평거리입니다.”녹주가 대답했다.“흥평거리로 갑시다.” 원경릉이 마부에게 말했다.마차는 청석판으로 된 길을 지나 왕부거리를 빠져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가 멈추었다.“왕비님, 도착했습니다.”마부가 말했다.원경릉은 장막을 걷고 밖을 보았다. ‘내가 행선지를 잘 못 말했구나…….’거리에는 부유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원경릉은 가난한 사람들이 있는 거리에 가려고 했는데, 자신이 행선지를 잘 못 말했다는 것을 깨달았다.“언니, 여기 연지를 파는 가게가 있습니까? 저 오늘 탕진할겁니다!”원경병이 원경릉의 손을 이끌었다. 원경릉은 하는 수없이 동생과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원경병은 오랜만에 외출인지 들떠 보였다.자매는 향훈(香薰)을 파는 가게에 들러 향훈 몇 개를 사고 화장품 가게로 향했다. 그곳에 들어가니 주명취와 두 명의 소녀가 연지를 고르고 있었다. 그들은 뒤에는 나이가 지긋한 노복(僕婦)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모습이 굉장히 위엄 있어 보였다.주명취는 가게에 들어오는 원경릉을 보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미소를 지으며“초왕비, 여기서 뵙네요!”라고 인사를 했다.“그러게요. 제왕비” 원경릉이 답했다.주명취가 초왕비라고 부르는 소리에 옆에 있던 두 소녀가 모두 고개를 들어 원경릉을 보았다. 주명취의 왼쪽에 서있던 소녀는 백합이 수놓인 주름치마를 입고 있었다. 양 갈래로 땋은 머리에 옥으로 된 비녀를 꽂고 있는 소녀는 피부가 도화지처럼 하얗고, 입술을 붉은 장미와 같은 것이 멀리서 봐도 아름다움이 뿜어져 나왔다.오른쪽에 있는 소녀는 걸친 옷이나 장신구가 왼쪽에 있는 소녀보다는 고급스럽지는 못 했지만,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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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96화

원경병 성격에 뺨을 맞고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그래! 쳤다 이거지? 내가 오늘 널 찢어발길것이야!”원경병이 고함을 치며 주명봉의 뺨을 후려갈겼다. 주명봉이 반격하려고 하자 주명취의 성난 목소리가 들렸다.“당장 멈추거라!”주명봉은 큰 언니의 호령에 깜짝 놀라 뒷걸음질은 쳤지만,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원경병을 노려보았다.주명취는 원경병을 째려보더니 시선을 옮겨 원경릉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초왕비, 우리 둘은 동서지간으로 한 집안사람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초왕비께서는 부디 제 동생의 말을 흘려들어주세요. 초왕비도 장녀로서 동생이 이런 소란을 피우면 알아서 제지를 해주셨어야죠. 보아하니 아직 시집도 안 간 처녀 같은데 오늘 이 일이 소문이라도 나면 그거야말로 큰일 아니겠습니까?”주명취의 교활함에 원경릉은 치가 떨렸다.“제왕비의 뜻을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제왕비의 동생이 먼저 초왕비인 나를 모욕하고, 제 누이동생에게 손찌검을 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나서서 훈계를 하고 싶지만, 저 아이는 제왕비의 배다른 동생이니 내가 뭐라 훈계할 수가 없네요. 제왕비가 저와 제 동생을 대신해서 저 아이를 잘 훈계해 주시지요.”주명취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알겠습니다. 초왕비께서도 누이동생 관리를 잘 하셔야겠습니다. 본심은 착하나 자칫 잘못해 소문이라도 돌면 혼삿길이 막힐까 걱정입니다.”이 말을 들은 원경병이 참지 못하고 나서려고 하자 원경릉이 그녀를 가로막았다.“제왕비, 그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 듯싶네요. 제왕비같은 사람도 좋은 집안으로 시집가지 않았습니까? 제 누이동생이 제왕비보다는 잘난 것 같으니, 제왕비께서는 배다른 동생이나 신경 쓰시지요.”이 말을 들은 주명취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초왕비는 어쩜 그리 저를 미워하십니까.”“제가요? 방금 제왕비께서 우리는 한 집안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제 말이 귀에 거슬리더라도 가족이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세요.” 원경릉은 부드러운 얼굴로 주명취를 보았다.이 상황을 지켜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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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97화

“밖에 나가자고 한 게 누군데, 지갑도 안 가지고 나옵니까?” 원경병이 화를 냈다.원경릉이 화장품 가게 주인을 보며 “외상 되나요……?” 라고 물었다.“예, 예, 당연히 됩니다. 초왕비 맞으시죠? 얼마든 외상으로 해드리겠습니다.”가게 주인이 두 손을 삭삭 비벼가며 원경릉에게 말했다.이 말을 들은 원경병은 신이 나서 연지 두 개와 눈썹먹을 집어 들었다. 가게에서 나온 원경릉은 마차를 타고 어제 우문호와 갔던 허름한 거리를 찾아갔다. 민생은 그녀가 관여할 바가 아니나, 열악한 의료를 보니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그녀는 생로병사는 누구나 겪게 되는 것이기에 나라가 잘 굴러가려면 의료의 기강이 잘 잡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우문호가 말하길, 의학을 배운 후에 모두 돈이 되는 개인 의료관을 차린다고 하는데, 이는 당연한 일이다.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먼저 자신과 그 가족이 잘 먹고 잘 살아야 남을 돌볼 여유가 생긴다. 그렇다면 조정에도 현대(现代)처럼 전문적으로 의학을 가르치는 교육 기관을 두고 매년 각지로 의사를 보내면 되지 않을까?하지만 조정에서 돈을 들여 교육 기관을 운영하지 않을 것이다. 교육 기관을 만들려면 건물을 짓고, 의학을 가르칠 교수를 구하는데 큰돈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기껏 돈을 들여서 의학을 가르쳐 놨더니 졸업 후에 혜민서의에 가기 싫다고 하면? 지금까지 들인 공이 모두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의학이라는 어려운 학문을 배우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니, 아니다. 배우려고 하는 사람은 분명 있을 것이다. 의학을 배우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유한 집의 자제들이다. 의학을 배우려면 돈도 시간도 많이 들기 때문에, 평범한 집안에서는 이를 감당할 수 없다.‘만약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도 의학을 배울 수 있다면?’순간 그녀의 머릿속에는 어린 거지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가난한 아이들에게는 의학이 한줄기의 빛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간단히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 아이들은 대부분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 의학을 배우기 전에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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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98화

원경병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원경릉에게 바깥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내일 주명취가 성 밖에 막사를 펴고 거지들에게 죽을 끓여 나눠준다고 합니다. 그저께는 기왕비는 아픈 몸을 이끌고 청화사(清華寺)에 가서 밤새 수해를 입은 백성들의 명복을 빌었습니다.”“기왕비가 아픈 몸을 이끌고 거기까지 갔다고? 하루 종일 무릎을 꿇고 있었으면 병이 더 악화됐을 텐데?”원경릉이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원경병에게 물었다.“그렇다니까요, 그래서 황제께서 기왕비에게 약까지 달여 보냈다고 하던데…….”원경병이 말을 잠시 멈추고 원경릉을 바라보며 “아니! 저도 알고 있는 소식을 초왕비는 하나도 몰랐던 겁니까?”라고 말했다.원경릉은 쓴웃음을 지으며 “내가 소식이 좀 느려.”라고 말했다.그녀는 원경병이 말해주지 않았다면, 수해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것이다.“수해가 난 곳이 어디야?” 원경릉이 물었다.“그것도 모른단 말이에요? 듣자하니 외곽의 작은 마을이라고 해요.”“나중에 우문호에게 물어봐야겠다.” 원경릉이 말했다.원경병은 흠칫 놀라 그녀를 보더니 눈썹을 치켜세우며 “왕비. 초왕의 존함을 그냥 부릅니까?”라고 물었다.“응, 그게 왜?” 원경릉은 동생의 물음에 대충 대답을 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온통 수재를 입은 마을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만약 부친께서 들으셨으면, 언니는 맞아 죽었을 수도 있어요.”원경병이 말했다.원경릉은 웃으며 “못 듣지, 내가 부친을 왜 만나.”라고 말했다.“그래도, 지금은 언니를 때리지는 못할 겁니다.”원경병은 어깨를 으쓱하며 “요즘 부친께서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매번 손님을 데리고 집으로 오시는데, 그때마다 저를 불러서 인사를 시킵니다.”라고 말했다.“무슨 손님? 이전에 만난 적이 있는 사람들이야?” 원경릉이 물었다.“만난 적이 있겠습니까? 근데 대충 짐작은 갑니다.” 원경병은 귀찮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원경릉은 휙 고개를 돌려 원경병을 보았다.“설마 네 혼인 때문인가?”원경병은 하늘을 보며 “그 이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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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99화

원경릉은 웃으며 동생을 보았다.“나랑은 상관없지만, 백성들에게 좋은 일이라면 그것만으로도 기뻐할 가치가 있지 않아?”“초왕비가 말하는 게 무슨 가치인지는 모르겠네요. 내가 이득 볼 것도 없는데”원경병은 언니의 가치관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뭐가 좋다는 거지.“그것이 민생(民生)이다.”원경릉이 말했다. 원경병은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무언가 낌새를 챈 듯 눈을 반짝이며 언니를 바라보았다.“초왕비는 황태자비가 되고 싶군요! 그게 아니라면 이럴 이유가 있겠습니까?”원경릉은 그런 동생을 보고 웃음이 터졌다.태자비가 되는 것은 원경릉이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우문호가 태자 책봉을 받는다면 모를까. 만약 우문호가 태자가 되지 않거나, 태자에 관심조차 없다면 원경릉에게도 딱히 관심없었다.다음날, 원경릉은 동생을 데리고 성문 밖으로 나갔다.성문 밖 넓은 공터에는 천막이 쳐져 있었고, 큰 가마솥 아래에는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쌀이 익어가는 향기에 오랫동안 흰쌀죽을 먹지 못한 가난한 백성들과 걸인들이 순식간에 모여들었다.주명취가 아직 도착하지 않아서 그런지 가마솥 뚜껑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배고픈 사람들이 가마솥 주위를 둘러쌌고, 멀리 사는 사람들도 소문을 듣고 찾아와 순식간에 공터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하지만, 가마솥 개수를 보아하니 모인 사람들이 다 먹을 수 있을 만한 양이 안될 것 같았다.‘사람이 많아질수록 나눠주는 쌀죽의 양은 점점 줄어들텐데.’ 배가 고파서 쓰러질 것 같은 걸인들이 죽을 쑤고 있는 사람에게 다가갔다.“나으리, 언제쯤 죽을 먹을 수 있습니까?”“뭐가 그렇게 급해? 다들 기다리고 있는 거 안 보여? 한 시간 더 기다려!”죽을 쑤는 사람이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한 시간이나 더 기다려야 한다고요? 그럼 쌀이 더 뭉그러져 미음이 될 텐데”사람들은 웅성거렸다. 죽 쑤는 사람은 그들의 말을 무시하고는 장작을 몇 개 뱄다. 그러자 불길이 약해지더니 죽이 끓던 것이 서서히 멈췄다.이 상황을 본 원경릉은 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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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00화

주명취 성문 위에 서있는 원경릉 자매를 보지 못했다. 그녀는 시녀와 파자(婆子)의 부축을 받으며 앞으로 나왔다. 그녀가 도착했는데도 불구하고 죽을 쑤던 하인들은 죽을 나눠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주명취 옆에 있던 파자가 앞으로 나와 죽을 기다리고 사람들에게 소리쳤다.“곧 쌀죽을 나눠줄 테니 다들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제왕비님께서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나눠줄 고기만두를 준비했으니, 고기 만두가 도착하면 죽과 함께 받아 가시오!” 고기만두라는 소리에 여기저기서 기쁨의 함성이 들렸고,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초조함과 불안감이 사라졌다.좀 더 기다리자 마차가 줄줄이 천막 안으로 들어왔고, 귀부인들과 소녀들이 하인들의 부축을 받아 마차에서 내렸다. 그들은 가마솥 근처로 걸어와 주명취와 인사를 나누었다. 원경릉은 그 무리에서 주명양과 주명봉을 제외하고는 한 명도 알지 못했다. 그녀는 녹주를 보며 “다들 누굽니까?”라고 물었다.녹주가 한참을 쳐다보더니 “살구빛 비단 옷을 입은 귀부인 외에는 쇤네도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살구빛 비단 옷을 입은 부인은 누구입니까?”원경릉이 물었다.“제왕비의 어머니인 주 대부인(大夫人)입니다.”녹주가 답했다.원경릉은 눈을 가늘게 뜨며“저 안에 두 명은 아는 사람인데, 저기 색동 비단 옷을 입으신 분은 소요공(逍遙公)의 며느리인 양부인이네요. 근데 다른 분들은…….”라고 말했다.“못 알아보겠습니까? 예친왕비(睿親王妃)와 홍등 군주(紅燈郡主)잖아요.”원병릉이 말했다.원경릉은 깜짝 놀란 듯 “그래?”라고 말했다.원경릉은 건곤전에서 예친왕비를 만난 적은 있지만, 태상황의 병을 치료하는데 정신이 팔려 그녀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홍등군주는 예친왕의 딸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한 번도 본 적은 없었다.‘주명취가 황실에서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이 쇼를 하는 거였구나.’마차에서 내린 부인들은 하나같이 모두 조정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었다.원경릉은 성문루(城門樓)에서 주명취가 부인들에게 예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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