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 나가자고 한 게 누군데, 지갑도 안 가지고 나옵니까?” 원경병이 화를 냈다.원경릉이 화장품 가게 주인을 보며 “외상 되나요……?” 라고 물었다.“예, 예, 당연히 됩니다. 초왕비 맞으시죠? 얼마든 외상으로 해드리겠습니다.”가게 주인이 두 손을 삭삭 비벼가며 원경릉에게 말했다.이 말을 들은 원경병은 신이 나서 연지 두 개와 눈썹먹을 집어 들었다. 가게에서 나온 원경릉은 마차를 타고 어제 우문호와 갔던 허름한 거리를 찾아갔다. 민생은 그녀가 관여할 바가 아니나, 열악한 의료를 보니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그녀는 생로병사는 누구나 겪게 되는 것이기에 나라가 잘 굴러가려면 의료의 기강이 잘 잡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우문호가 말하길, 의학을 배운 후에 모두 돈이 되는 개인 의료관을 차린다고 하는데, 이는 당연한 일이다.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먼저 자신과 그 가족이 잘 먹고 잘 살아야 남을 돌볼 여유가 생긴다. 그렇다면 조정에도 현대(现代)처럼 전문적으로 의학을 가르치는 교육 기관을 두고 매년 각지로 의사를 보내면 되지 않을까?하지만 조정에서 돈을 들여 교육 기관을 운영하지 않을 것이다. 교육 기관을 만들려면 건물을 짓고, 의학을 가르칠 교수를 구하는데 큰돈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기껏 돈을 들여서 의학을 가르쳐 놨더니 졸업 후에 혜민서의에 가기 싫다고 하면? 지금까지 들인 공이 모두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의학이라는 어려운 학문을 배우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니, 아니다. 배우려고 하는 사람은 분명 있을 것이다. 의학을 배우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유한 집의 자제들이다. 의학을 배우려면 돈도 시간도 많이 들기 때문에, 평범한 집안에서는 이를 감당할 수 없다.‘만약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도 의학을 배울 수 있다면?’순간 그녀의 머릿속에는 어린 거지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가난한 아이들에게는 의학이 한줄기의 빛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간단히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 아이들은 대부분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 의학을 배우기 전에 일
원경병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원경릉에게 바깥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내일 주명취가 성 밖에 막사를 펴고 거지들에게 죽을 끓여 나눠준다고 합니다. 그저께는 기왕비는 아픈 몸을 이끌고 청화사(清華寺)에 가서 밤새 수해를 입은 백성들의 명복을 빌었습니다.”“기왕비가 아픈 몸을 이끌고 거기까지 갔다고? 하루 종일 무릎을 꿇고 있었으면 병이 더 악화됐을 텐데?”원경릉이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원경병에게 물었다.“그렇다니까요, 그래서 황제께서 기왕비에게 약까지 달여 보냈다고 하던데…….”원경병이 말을 잠시 멈추고 원경릉을 바라보며 “아니! 저도 알고 있는 소식을 초왕비는 하나도 몰랐던 겁니까?”라고 말했다.원경릉은 쓴웃음을 지으며 “내가 소식이 좀 느려.”라고 말했다.그녀는 원경병이 말해주지 않았다면, 수해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것이다.“수해가 난 곳이 어디야?” 원경릉이 물었다.“그것도 모른단 말이에요? 듣자하니 외곽의 작은 마을이라고 해요.”“나중에 우문호에게 물어봐야겠다.” 원경릉이 말했다.원경병은 흠칫 놀라 그녀를 보더니 눈썹을 치켜세우며 “왕비. 초왕의 존함을 그냥 부릅니까?”라고 물었다.“응, 그게 왜?” 원경릉은 동생의 물음에 대충 대답을 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온통 수재를 입은 마을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만약 부친께서 들으셨으면, 언니는 맞아 죽었을 수도 있어요.”원경병이 말했다.원경릉은 웃으며 “못 듣지, 내가 부친을 왜 만나.”라고 말했다.“그래도, 지금은 언니를 때리지는 못할 겁니다.”원경병은 어깨를 으쓱하며 “요즘 부친께서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매번 손님을 데리고 집으로 오시는데, 그때마다 저를 불러서 인사를 시킵니다.”라고 말했다.“무슨 손님? 이전에 만난 적이 있는 사람들이야?” 원경릉이 물었다.“만난 적이 있겠습니까? 근데 대충 짐작은 갑니다.” 원경병은 귀찮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원경릉은 휙 고개를 돌려 원경병을 보았다.“설마 네 혼인 때문인가?”원경병은 하늘을 보며 “그 이유 말고
원경릉은 웃으며 동생을 보았다.“나랑은 상관없지만, 백성들에게 좋은 일이라면 그것만으로도 기뻐할 가치가 있지 않아?”“초왕비가 말하는 게 무슨 가치인지는 모르겠네요. 내가 이득 볼 것도 없는데”원경병은 언니의 가치관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뭐가 좋다는 거지.“그것이 민생(民生)이다.”원경릉이 말했다. 원경병은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무언가 낌새를 챈 듯 눈을 반짝이며 언니를 바라보았다.“초왕비는 황태자비가 되고 싶군요! 그게 아니라면 이럴 이유가 있겠습니까?”원경릉은 그런 동생을 보고 웃음이 터졌다.태자비가 되는 것은 원경릉이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우문호가 태자 책봉을 받는다면 모를까. 만약 우문호가 태자가 되지 않거나, 태자에 관심조차 없다면 원경릉에게도 딱히 관심없었다.다음날, 원경릉은 동생을 데리고 성문 밖으로 나갔다.성문 밖 넓은 공터에는 천막이 쳐져 있었고, 큰 가마솥 아래에는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쌀이 익어가는 향기에 오랫동안 흰쌀죽을 먹지 못한 가난한 백성들과 걸인들이 순식간에 모여들었다.주명취가 아직 도착하지 않아서 그런지 가마솥 뚜껑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배고픈 사람들이 가마솥 주위를 둘러쌌고, 멀리 사는 사람들도 소문을 듣고 찾아와 순식간에 공터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하지만, 가마솥 개수를 보아하니 모인 사람들이 다 먹을 수 있을 만한 양이 안될 것 같았다.‘사람이 많아질수록 나눠주는 쌀죽의 양은 점점 줄어들텐데.’ 배가 고파서 쓰러질 것 같은 걸인들이 죽을 쑤고 있는 사람에게 다가갔다.“나으리, 언제쯤 죽을 먹을 수 있습니까?”“뭐가 그렇게 급해? 다들 기다리고 있는 거 안 보여? 한 시간 더 기다려!”죽을 쑤는 사람이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한 시간이나 더 기다려야 한다고요? 그럼 쌀이 더 뭉그러져 미음이 될 텐데”사람들은 웅성거렸다. 죽 쑤는 사람은 그들의 말을 무시하고는 장작을 몇 개 뱄다. 그러자 불길이 약해지더니 죽이 끓던 것이 서서히 멈췄다.이 상황을 본 원경릉은 의아
주명취 성문 위에 서있는 원경릉 자매를 보지 못했다. 그녀는 시녀와 파자(婆子)의 부축을 받으며 앞으로 나왔다. 그녀가 도착했는데도 불구하고 죽을 쑤던 하인들은 죽을 나눠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주명취 옆에 있던 파자가 앞으로 나와 죽을 기다리고 사람들에게 소리쳤다.“곧 쌀죽을 나눠줄 테니 다들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제왕비님께서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나눠줄 고기만두를 준비했으니, 고기 만두가 도착하면 죽과 함께 받아 가시오!” 고기만두라는 소리에 여기저기서 기쁨의 함성이 들렸고,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초조함과 불안감이 사라졌다.좀 더 기다리자 마차가 줄줄이 천막 안으로 들어왔고, 귀부인들과 소녀들이 하인들의 부축을 받아 마차에서 내렸다. 그들은 가마솥 근처로 걸어와 주명취와 인사를 나누었다. 원경릉은 그 무리에서 주명양과 주명봉을 제외하고는 한 명도 알지 못했다. 그녀는 녹주를 보며 “다들 누굽니까?”라고 물었다.녹주가 한참을 쳐다보더니 “살구빛 비단 옷을 입은 귀부인 외에는 쇤네도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살구빛 비단 옷을 입은 부인은 누구입니까?”원경릉이 물었다.“제왕비의 어머니인 주 대부인(大夫人)입니다.”녹주가 답했다.원경릉은 눈을 가늘게 뜨며“저 안에 두 명은 아는 사람인데, 저기 색동 비단 옷을 입으신 분은 소요공(逍遙公)의 며느리인 양부인이네요. 근데 다른 분들은…….”라고 말했다.“못 알아보겠습니까? 예친왕비(睿親王妃)와 홍등 군주(紅燈郡主)잖아요.”원병릉이 말했다.원경릉은 깜짝 놀란 듯 “그래?”라고 말했다.원경릉은 건곤전에서 예친왕비를 만난 적은 있지만, 태상황의 병을 치료하는데 정신이 팔려 그녀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홍등군주는 예친왕의 딸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한 번도 본 적은 없었다.‘주명취가 황실에서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이 쇼를 하는 거였구나.’마차에서 내린 부인들은 하나같이 모두 조정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었다.원경릉은 성문루(城門樓)에서 주명취가 부인들에게 예의를
구휼 배급소 상황원경병은 주명양의 적수가 못됐다. 두 사람의 시선이 교차하자 원경병은 이내 무너져서 시선을 피하며 씩씩거리길: “주씨 집안엔 멀쩡한 사람이 하나도 없네.”주씨 집안엔 멀쩡한 사람이 없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게 원경병이 주명양을 증오하는 이유는 아니었다.원경병이 주명양을 증오하는 이유는 주명양이 안하무인으로 사람을 무시해서다.그리고 주명양은 그럴 만한 미모와 집안이기도 하다.원경병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주명양의 원하는 대로 거침없이 행동하는 모습을 질투했다.마침내 호빵이 도착했다.취사병이 큰 소리로, “죽을 나눠주겠습니다. 차례로 줄을 서세요.”아무도 줄을 서지 않았다.모든 사람이 일제히 따끈따끈하게 막 가져온 고기 호빵을 향해 달려들었다. 호빵은 김이 모락모락 나고 고기 냄새가 진동하는데, 며칠을 굶은 데다 아침부터 점심이 되도록 기다린 허기진 백성들이 줄이고 나발이고 설 리가 있겠는가?호빵을 하나라도 더 빼앗아서 위장에 집어넣기 바빴다.주명취가 사람들이 취사병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을 보고, 나와서 몇 마디 하며 백성을 위로하고자 했다.분명 주명취가 올 때 모두가 기뻐서 환호성을 질렀고 이것이 민심의 향방이며 백성들이 주명취를 존경하고 경애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당연히 주명취가 하는 말을 듣길 원할 것이다.주명취는 호빵 앞을 막아 서서 말을 하려고 하는데 떠밀려서 발이 삐끗하는 바람에 바닥에 쓰러졌다.“무엄하다!” 시위가 제왕비가 떠밀려서 쓰러진 것을 보고 황급히 달려와 제왕비를 민 사람을 한 손으로 끌어내고 끼어들어가는데 그 사람이 기우뚱하더니 뒤로 넘어지면서 찜기에 층층이 쌓인 호빵을 넘어뜨려 전부 바닥에 쏟아버렸다.“죽 배급을 잠시 멈춰. 죽 배급을 잠깐 멈추라고!” 시위가 취사병에게 소리치는데 이미 백성들이 한데 뒤죽박죽이 돼서 통제가 불가능했다.백성들은 배가 등가죽에 붙어 뭐 먹을 게 없나 눈이 등잔만한데, 호빵이 바닥에 떨어져 있고 배급도 잠시 중단한다는 소리에 참고 가만히 있을 사람이 어디 있겠
위독한 홍등 군주와 사람을 구하는 둘순식간에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수문장이 큰 소리로 호령하며 달려가, “어서, 어서 가서 도와라.”배급소가 무너진 것 자체는 심각하지 않지만, 거기엔 큰 솥 몇개에 뜨거운 죽이 있고 불도 아직 다 꺼진 상태가 아닌 게 문제였다.원경릉도 정신없이 같이 달려가며 손을 소매 안에 넣고 약상자를 꺼냈다.배급처 앞까지 달려와 약상자를 열어보니 대부분 지혈 거즈와 소독약, 몇 가지 응급약품이다.성문에는 사병 하나만 남겨두고 전부 와서 사람을 구했다.배급소 천막에 대략 오십 여명이 깔려 있는데 안으로 달려들어가고 싶었지만 못 들어간 사람들이 잠시 넋을 놓고 있다가 바로 수문장과 사람을 구하는 일에 참여했다.제일 먼저 구출해 낸 사람은 역시 주명취였다.왜냐면 소동이 일어날 때 주명취는 무의식 중에 달아나 배급소가 무너지던 순간 거의 바깥까지 도망쳐 나와서 한 발자국만 더 나오면 완전히 벗어날 참이었다.주명취의 상처는 심각하지 않고 그저 턱을 한 줄 크게 긁혔을 뿐이나 놀라서 넋이 나가 있었다.원경릉은 주명취에게 가서 지혈하고 소독해서 붕대를 감아주는 모든 동작이 2분 안에 다 끝냈지만, 주명취는 아직도 정신이 멍한 상태로 원경릉이 재빨리 다음 사람을 처치하는 것을 지켜봤다.처음 구해낸 사람은 대체로 경상이 많아서 병사들은 의원을 부르러 가고 경조부와 순찰 어사에게 알렸다.원경릉이 막 환자 한 명을 처치하자마자 수문장과 다른 병사 하나가 소녀 한 명을 들쳐 업고 오는데, 소녀는 전신이 피투성이로 머리와 손은 힘없이 늘어져 있고 숨은 곧 넘어 갈듯 깔딱거렸다.원경릉이 한 눈에 알아보고 벌떡 일어나, “어머, 홍등 군주예요. 죽었나요?”원경릉은 한 손으로 급히 겉옷을 벗어 바닥에 깔고 수문장에게: “어서 내려놓으세요.”수문장이 당황해 손발이 오그라드는데, 이 홍등 군주는 소요공이 불면 꺼질 세라 금지옥엽으로 아끼는 손녀였기 때문이다.홍등 군주는 발견 당시 그저 눈만 크게 뜰 수 있을 뿐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
다친 주명양과 주명취우문호가 연속으로 안에서 사람을 몇 명 구출해 내고 배급처도 서둘러 치워지는 가운데 환자도 거의 처치가 끝나갔다.마지막으로 우문호가 한 사람을 안고 나왔는데 올리브색 옷이 찢어지고 더러워지고 머리가 풀어져 머리카락이 흐트러진 채로 얼굴을 덮고 있다.원래 그녀를 안고 나와 내려놓으면 그만이다.하지만 주 대부인이 깜짝 놀라 소리치며, “왕야, 이렇게 소녀를 안으시면 정절이 더럽혀집니다, 어서 내려놓으세요.”주 대부인은 상처를 입지 않은 유일한 행운의 소유자로, 배급소 천막에 깔린 사람은 전부 다쳤고 중상자도 몇이나 있는데 오직 그녀 혼자 털끝만큼도 다치지 않았다.주 대부인이 그저 평소처럼 말했으면 들은 사람도 많지 않고 모두 바빠서 신경도 쓰지 않았겠지만, 주 대부인도 지나치게 놀란 상태라 날카롭게 소리치는 바람에 모두의 주목을 끌고 말았다.원경릉도 쳐다 봤다.우문호의 머릿속에 ‘꽝’하고 일년 전 공주부에서의 장면이 갑자기 떠올랐다.우문호는 두 손에 힘이 빠지며 주명양이 그대로 우문호의 손에서 떨어져 내렸다.주명양은 죽은 듯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긴 머리만 바람에 날리며 아름답고도 창백한 얼굴을 드러냈다.우문호가 원경릉을 발견했는데, 그녀의 전신과 두 손과 얼굴에 피 칠갑을 하고 있다.우문호는 성큼성큼 걸어가 원경릉의 손에 무엇을 들고 있는지 신경도 쓰지 않고 끌어안으며, “어디 다쳤어? 심해?”원경릉은 고막이 터질 지경이다.“환자 치료하고 있어요, 내려 놔요!” 원경릉이 큰소리를 냈다.우문호는 그제서야 원경릉의 전신에 튄 것은 다른 사람의 피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마음이 놓였다.: “어, 하던 일 계속해. 난 다른 일 처리해야 해서, 조심해야 되는 거 알지?”주 대부인이 달려와 우문호를 막고, “왕야, 아이 상처를 치료하게 의원을 불러줘요, 애가 혼절했어요.”마침 혜민서의 의원이 와서 우문호는 한 손으로 의원 한 명을 끌어와, “가서 주씨 가문의 둘째 아가씨 상처를 좀 봐 드려.”말을 마치고, 사라졌다.주명양
제왕비와 꼬마 거지원경릉이 꼬마 거지의 상처를 닦아내는데 와서, 촉새처럼 나불나불 자신을 방해하는 제왕을 보고 근엄한 얼굴로, “만약 제왕비가 걱정되면 어서 입궁해서 어의에게 보이세요.”“우선 그녀부터 좀 봐줘요, 배를 다쳤을까 걱정입니다.” 제왕은 걱정이 되는 지 뒤를 돌아 멍한 눈빛의 주명취를 쳐다본다.주명취는 지금처럼 이렇게 정신이 쏙 빠지는 상황을 겪어본 적이 없는 모양이다.그리고 솔직히 어디를 다쳤는지도 모르겠다.원경릉이 고개를 돌려 주명취를 보고 담담하게: “전 산부인과 전문의가 아니라 그쪽은 잘 몰라요, 저 방해하지 마세요.”주명취는 이제서야 정신이 돌아왔는지 냉랭하게 제왕을 흘깃 보고, “난 괜찮아요, 왕야 제발 다른 말씀 하지 마세요.”그러나 주명취의 머릿속에 문득 어떤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아바마마께서는 이번에 반드시 책임을 추궁하실 텐데 만약 자신이 임신 했다면?이번 달 달거리가 며칠이나 늦어졌고 지난 이틀 일부러 고모를 만나러 입궁해서 겸사겸사 어의에게 맥을 짚었다.어의 말이 회임일 수도 있으나 아닌 것도 같다고 했다. 날짜가 너무 밭아서 정확히 진단을 내리기 어려우니 며칠 있다가 다시 맥을 짚기로 했다.주명취의 호흡이 갑자기 빨라졌다.만약 정말 회임 했다면 아바마마는 결단코 그녀에게 죄를 묻지 않을 것이다.원경릉은 제왕 부부를 상관하지 않고 계속 꼬마 거지의 상처를 치료했다.꼬마 거지는 땅바닥에 누워 얼굴은 비록 아픈 표정이지만 만족하고 있었다.호빵 두개를 주워서 한 입에 하나씩 배속에 싹 쓸어 넣었기 때문이다.꼬마 거지는 이렇게 배가 불렀던 적이 없었다.“아프니?” 원경릉이 상처에서 나무 가시를 뽑아내니 옆에 뜨거운 죽에 덴 화상이 넓게 있다. 더럽고 찢어진 바짓가랑이를 들어올리자 허벅지부터 무릎까지 죽에 덴 화상이 보인다.화상은 매우 아프다.꼬마 거지는 고개를 흔들고 호기심과 두려움의 눈빛으로 원경릉을 쳐다봤다.원경릉이 상처를 처치하고 화상연고를 바르기 시작했다.제왕이 이 장면을 보고 냉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