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 291화

작가: 유애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2-09-17 20:00:00
“나가보거라. 오늘 짐이 말한 것은 다섯째와 잘 의논해 보거라.” 명원제가 말했다.

원경릉은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명원제의 말을 곱씹을수록 그녀의 마음속엔 의심의 싹이 올라왔다.

그날 저녁, 원경릉과 우문호는 부부로서 침전에서 해야 할 일은 제쳐두고 명원제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분석하기 시작했다.

“부황은 왜 내가 자식을 낳는데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야?” 원경릉이 물었다.

우문호는 그녀를 두 팔로 안고서 손가락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돌돌 말았다.

“왜 그런 것 같은데?”

“부황이 너를 태자로 책봉하려는 거 아니야?” 원경릉이 추측했다.

우문호는 고개를 저으며 “그럴 리 없어. 부황께서는 올해 내게 실망도 많이 하셨고, 나에겐 늘 냉담하신거 너도 잘 알잖아.”라고 말했다.

“그 공주부 사건은 나 때문에 그런 거잖아……. 그 사건 이전엔 부황께서 너를 중시하지 않았어?”

“음……. 태자로 책봉되려면, 장남이거나 황후가 낳은 아들이어야 해.”우문호가 말했다.

“현비가 낳은게 뭐 어때서?”원경릉이 물었다.

우문호는 빙그레 웃으며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너는 내가 어질고 선한 재목이라고 생각해?”

“아니!” 원경릉은 그의 말을 단칼에 부인했다. “선한건 모르겠고! 네 충성심과 용맹함은 내가 인정하지!”

우문호는 두 손으로 뒤통수를 감싸고는 생각했다.‘정말 부황이 나를 염두에 두고 있는 걸까?’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태자가 되고 싶어?”원경릉이 물었다.

우문호는 웃으며 “싫다고 말하는 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태자가 되면 그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라고 말했다.

원경릉은 침상에 엎드려 팔꿈치에 턱을 괴고 그를 보았다.

“내 생각엔 말이야, 부황께서 태상황님의 마음을 캐고 계신 것 같아. 아무래도 태상황님께서는 너를 많이 아끼시잖아. 게다가 초왕비인 내가 태상황님의 마음을 얻기도 했고…….”

이 말을 들은 우문호가 그녀를 쳐다보며 “그럼 네 말은 부황이 나를 태자로 책봉하려는 게, 어쩔 수 없이 태상황의 뜻에 순종해서
잠긴 챕터
GoodNovel에서 계속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관련 챕터

  • 명의 왕비   제 292화

    “그건 너 혼자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지, 그건 우리와 아이가 연이 닿아야 하는 거야.”그가 장막을 치자, 바람에 촛불이 꺼졌다.“오늘은 좀 쉬면 안 될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원경릉이 우문호에게 말했다.“쉬는 건 죽어서 쉬면 돼.”우문호는 그녀가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달려들었다.침전이 한순간에 달아올랐다.다음 날, 손왕 부부가 초왕부를 방문했다. 우문호는 일을 마치고 돌아와 손왕과 거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원경릉은 손왕비와 뜰에서 산책하고 있었다.손왕비의 얼굴이 어딘가 모르게 근심이 있는 것 같았다.“손왕비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원경릉이 손으로 자신의 허리를 두드리며 손왕비를 쳐다보았다.“별일 아닙니다.”손왕비가 그녀를 보며“그나저나 허리는 괜찮습니까? 왜 두드립니까?”라고 물었다.“괜찮습니다.”원경릉은 손을 거두며 대답했다.손왕비는 원경릉이 왜 그런지 알겠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아, 지금 좋을 때죠. 저도 다 겪어봤습니다.”“손왕비님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저는 그저 피곤할 뿐입니다!”원경릉이 멋쩍은 표정으로 대답했다.“어휴, 알겠어요!”손왕비는 손가락을 뻗어 앞에 있는 돌의자를 가리켰다.“저기 앉죠! 힘드니 좀 쉽시다.”원경릉은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자리에 앉자 손왕비는 갑자기 원경릉에게 “듣자 하니, 초왕비가 다섯째가 주명양(周明陽)과 혼인을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하던데.”라고 말했다.“예, 제가 들이지 말라고 했습니다.”손왕비는 깜짝 놀라서 “감히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손왕비는 제손으로 직접 손왕의 첩을 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래도 그럴 수는 없습니다. 왜 제 부군(夫君)을 다른 여인과 나눠가져야 합니까?”“다 그렇게 합니다.”손왕비가 조용히 말했다.“아무리 그래도 저는 싫습니다.”“초왕비가 싫다고 하는 게 무슨 소용 있습니까? 초왕비가 나서지 않는다면 다른 누군가가 나서서 다섯째의 첩을 준비할 것입니다. 차리리 부인인 내가 직접 고르는 게 낫지!”“그

    최신 업데이트 : 2022-09-17
  • 명의 왕비   제 293화

    “허나 지금은 초왕비가 너무 좋습니다. 비록 내가 초왕비 말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초왕비가 그렇게 말해주니 마음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습니다.”손왕비가 웃으며 말했다.원경릉은 그녀를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손왕 내외를 배웅한 후, 우문호는 원경릉을 데리고 회왕부로 향했다. 원경릉은 늘 그래왔듯 회왕의 상태를 확인하고 약을 주고 안부 인사를 마친 후 밖으로 나왔다.“우리 바깥으로 구경나가자!” 원경릉은 이곳에 온 뒤, 한 번도 바깥 구경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우문호는 그녀의 손을 잡고 한가로이 걸었다.녹주와 서일이 그들의 뒤를 느릿느릿 따라왔다.원경릉은 북당(北唐)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이렇게 밖에 나와보니 북당은 번화했던 시기임에 틀림없다. 그 둘은 길모퉁이 구멍가게부터 시작해서 정미소, 보석가게, 비단가게, 의관을 파는 곳, 심지어 수의를 파는 가게까지 들여다보았다. 녹주는 왕비가 제정신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하다 하다 죽은 사람의 옷을 파는 곳까지 들여다보다니!하지만 원경릉은 처음으로 밖에 나와 실제 북당 사람도 보고 구경을 하는 것이 매우 기뻤다. 수의를 만드는 곳에 들르니 겉과는 다르게 안에는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원경릉이 하나를 집어 가격을 보니 그녀의 예상을 뛰어넘는 비싼 가격이었다.“이렇게 팔면 누가 사? 평범한 사람은 살 엄두도 안 나겠어!”“이건 부자들한테만 파는 거야. 살아있을 때 못해준걸 죽어서라도 해주려고 하는거지.”이 말을 듣고 원경릉이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비싼 비단 옷을 입고 있었다.“경중(京中)은 정말 번화하구나. 가난해 보이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우문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거리에 물건을 사러 온 사람들은 모두 부유한 집안의 사람들이야.”“아 그래? 그럼 다른 곳으로 가보자.”“가지 마, 이 근처나 걷다가 들어가자.”“나는 다른 곳도 가볼래!”원경릉이 말했다.그러자 서일이 원경릉에게 “왕비님, 이곳이 경중에서 가장 번화한 곳입니다. 여기 외에는 구경할 만

    최신 업데이트 : 2022-09-17
  • 명의 왕비   제 294화

    우문호의 얼굴에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왜 그래?” 그녀가 물었다.우문호는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그냥 기운이 없는 것 같아.”사실 우문호는 황실의 사람으로서 백성들이 잘 보살펴야 하는 의무가 있다. 하지만 그의 역량은 아직 이에 미치지 못했다. 원경릉은 그가 말하지 않아도 그의 눈빛에서 백성들을 불쌍하게 여기는 그의 진심이 느껴져 안타까웠다.길의 끝에는 의료관이 있었다. 그 입구에는 줄이 길게 서있었으며, 누추한 옷차림으로 거리에 드러누워있는 환자들이 여기저기에서 보였다. 그들이 풍기는 악취 때문에 파리들이 들끓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어? 다른 의료관으로 가면 되잖아.”원경릉이 물었다.서일은 웃으며 “왕비님, 다른 의료관을 이들이 감히 어떻게 갑니까.”라고 말했다.“감히라니? 정부에서…… 운영하는 그런 의료관이 없나?”“있어, 혜민서의(惠民署醫)라고.”우문호가 답했다.“혜민서의도 비싸?”“경중에는 혜민서의가 딱 두 곳밖에 없어. 운 좋으면 서너 달, 어떤 이들은 진료를 받기 위해 1년도 줄을 서서 기다린다.”우문호의 말에 원경릉은 깜짝 놀랐다.“혜민서의가 두 곳밖에 없다고? 경도(京都)가 이러게 큰데 두 곳에서 이 많은 환자를 어떻게 처리해?”“경중에는 시내 곳곳에 개인 의료관이 있어. 하지만 비싸서 일반 사람들은 못 가지.”우문호가 말했다.“도대체 무슨 이유로 조정(朝廷)에서는 의료관을 더 세우지 않는 거야?”“의사가 없다.”우문호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인파 속을 빠져나와 그녀에게 천천히 설명했다.“어렵게 의술을 배웠으니 다들 직접 의료관을 차려 큰돈을 벌고 싶어 하지, 누가 혜민서의에서 돈 없는 사람들을 치료하고 싶어 하겠는가?”“그럼 중병을 앓고 있어서 밖에서 줄도 못 서고, 돈이 없어서 의료관도 못 가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일이 원경릉을 보며 “어쩔 수 없죠. 민간요법이라도 해보고, 안되면 죽는 수밖에 없죠.”라고 말했다.서일의 말을 들은 그녀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그녀도

    최신 업데이트 : 2022-09-18
  • 명의 왕비   제 295화

    “조모님의 건강은 어때?”원경릉이 동생에게 물었다.“그냥 여전하시지, 좋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았습니다.”원경병이 말했다.“이틀 후에 조모님을 뵈러 가야겠다.”자매는 마차에 올라탔다. “왕비님 어디로 가십니까?” 마부가 물었다.원경릉은 녹주를 바라보며 “녹주, 어제 우리가 갔던 곳은 어디였죠?”라고 물었다.“흥평거리입니다.”녹주가 대답했다.“흥평거리로 갑시다.” 원경릉이 마부에게 말했다.마차는 청석판으로 된 길을 지나 왕부거리를 빠져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가 멈추었다.“왕비님, 도착했습니다.”마부가 말했다.원경릉은 장막을 걷고 밖을 보았다. ‘내가 행선지를 잘 못 말했구나…….’거리에는 부유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원경릉은 가난한 사람들이 있는 거리에 가려고 했는데, 자신이 행선지를 잘 못 말했다는 것을 깨달았다.“언니, 여기 연지를 파는 가게가 있습니까? 저 오늘 탕진할겁니다!”원경병이 원경릉의 손을 이끌었다. 원경릉은 하는 수없이 동생과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원경병은 오랜만에 외출인지 들떠 보였다.자매는 향훈(香薰)을 파는 가게에 들러 향훈 몇 개를 사고 화장품 가게로 향했다. 그곳에 들어가니 주명취와 두 명의 소녀가 연지를 고르고 있었다. 그들은 뒤에는 나이가 지긋한 노복(僕婦)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모습이 굉장히 위엄 있어 보였다.주명취는 가게에 들어오는 원경릉을 보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미소를 지으며“초왕비, 여기서 뵙네요!”라고 인사를 했다.“그러게요. 제왕비” 원경릉이 답했다.주명취가 초왕비라고 부르는 소리에 옆에 있던 두 소녀가 모두 고개를 들어 원경릉을 보았다. 주명취의 왼쪽에 서있던 소녀는 백합이 수놓인 주름치마를 입고 있었다. 양 갈래로 땋은 머리에 옥으로 된 비녀를 꽂고 있는 소녀는 피부가 도화지처럼 하얗고, 입술을 붉은 장미와 같은 것이 멀리서 봐도 아름다움이 뿜어져 나왔다.오른쪽에 있는 소녀는 걸친 옷이나 장신구가 왼쪽에 있는 소녀보다는 고급스럽지는 못 했지만, 야

    최신 업데이트 : 2022-09-18
  • 명의 왕비   제 296화

    원경병 성격에 뺨을 맞고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그래! 쳤다 이거지? 내가 오늘 널 찢어발길것이야!”원경병이 고함을 치며 주명봉의 뺨을 후려갈겼다. 주명봉이 반격하려고 하자 주명취의 성난 목소리가 들렸다.“당장 멈추거라!”주명봉은 큰 언니의 호령에 깜짝 놀라 뒷걸음질은 쳤지만,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원경병을 노려보았다.주명취는 원경병을 째려보더니 시선을 옮겨 원경릉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초왕비, 우리 둘은 동서지간으로 한 집안사람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초왕비께서는 부디 제 동생의 말을 흘려들어주세요. 초왕비도 장녀로서 동생이 이런 소란을 피우면 알아서 제지를 해주셨어야죠. 보아하니 아직 시집도 안 간 처녀 같은데 오늘 이 일이 소문이라도 나면 그거야말로 큰일 아니겠습니까?”주명취의 교활함에 원경릉은 치가 떨렸다.“제왕비의 뜻을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제왕비의 동생이 먼저 초왕비인 나를 모욕하고, 제 누이동생에게 손찌검을 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나서서 훈계를 하고 싶지만, 저 아이는 제왕비의 배다른 동생이니 내가 뭐라 훈계할 수가 없네요. 제왕비가 저와 제 동생을 대신해서 저 아이를 잘 훈계해 주시지요.”주명취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알겠습니다. 초왕비께서도 누이동생 관리를 잘 하셔야겠습니다. 본심은 착하나 자칫 잘못해 소문이라도 돌면 혼삿길이 막힐까 걱정입니다.”이 말을 들은 원경병이 참지 못하고 나서려고 하자 원경릉이 그녀를 가로막았다.“제왕비, 그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 듯싶네요. 제왕비같은 사람도 좋은 집안으로 시집가지 않았습니까? 제 누이동생이 제왕비보다는 잘난 것 같으니, 제왕비께서는 배다른 동생이나 신경 쓰시지요.”이 말을 들은 주명취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초왕비는 어쩜 그리 저를 미워하십니까.”“제가요? 방금 제왕비께서 우리는 한 집안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제 말이 귀에 거슬리더라도 가족이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세요.” 원경릉은 부드러운 얼굴로 주명취를 보았다.이 상황을 지켜보단

    최신 업데이트 : 2022-09-18
  • 명의 왕비   제 297화

    “밖에 나가자고 한 게 누군데, 지갑도 안 가지고 나옵니까?” 원경병이 화를 냈다.원경릉이 화장품 가게 주인을 보며 “외상 되나요……?” 라고 물었다.“예, 예, 당연히 됩니다. 초왕비 맞으시죠? 얼마든 외상으로 해드리겠습니다.”가게 주인이 두 손을 삭삭 비벼가며 원경릉에게 말했다.이 말을 들은 원경병은 신이 나서 연지 두 개와 눈썹먹을 집어 들었다. 가게에서 나온 원경릉은 마차를 타고 어제 우문호와 갔던 허름한 거리를 찾아갔다. 민생은 그녀가 관여할 바가 아니나, 열악한 의료를 보니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그녀는 생로병사는 누구나 겪게 되는 것이기에 나라가 잘 굴러가려면 의료의 기강이 잘 잡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우문호가 말하길, 의학을 배운 후에 모두 돈이 되는 개인 의료관을 차린다고 하는데, 이는 당연한 일이다.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먼저 자신과 그 가족이 잘 먹고 잘 살아야 남을 돌볼 여유가 생긴다. 그렇다면 조정에도 현대(现代)처럼 전문적으로 의학을 가르치는 교육 기관을 두고 매년 각지로 의사를 보내면 되지 않을까?하지만 조정에서 돈을 들여 교육 기관을 운영하지 않을 것이다. 교육 기관을 만들려면 건물을 짓고, 의학을 가르칠 교수를 구하는데 큰돈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기껏 돈을 들여서 의학을 가르쳐 놨더니 졸업 후에 혜민서의에 가기 싫다고 하면? 지금까지 들인 공이 모두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의학이라는 어려운 학문을 배우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니, 아니다. 배우려고 하는 사람은 분명 있을 것이다. 의학을 배우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유한 집의 자제들이다. 의학을 배우려면 돈도 시간도 많이 들기 때문에, 평범한 집안에서는 이를 감당할 수 없다.‘만약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도 의학을 배울 수 있다면?’순간 그녀의 머릿속에는 어린 거지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가난한 아이들에게는 의학이 한줄기의 빛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간단히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 아이들은 대부분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 의학을 배우기 전에 일

    최신 업데이트 : 2022-09-18
  • 명의 왕비   제 298화

    원경병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원경릉에게 바깥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내일 주명취가 성 밖에 막사를 펴고 거지들에게 죽을 끓여 나눠준다고 합니다. 그저께는 기왕비는 아픈 몸을 이끌고 청화사(清華寺)에 가서 밤새 수해를 입은 백성들의 명복을 빌었습니다.”“기왕비가 아픈 몸을 이끌고 거기까지 갔다고? 하루 종일 무릎을 꿇고 있었으면 병이 더 악화됐을 텐데?”원경릉이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원경병에게 물었다.“그렇다니까요, 그래서 황제께서 기왕비에게 약까지 달여 보냈다고 하던데…….”원경병이 말을 잠시 멈추고 원경릉을 바라보며 “아니! 저도 알고 있는 소식을 초왕비는 하나도 몰랐던 겁니까?”라고 말했다.원경릉은 쓴웃음을 지으며 “내가 소식이 좀 느려.”라고 말했다.그녀는 원경병이 말해주지 않았다면, 수해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것이다.“수해가 난 곳이 어디야?” 원경릉이 물었다.“그것도 모른단 말이에요? 듣자하니 외곽의 작은 마을이라고 해요.”“나중에 우문호에게 물어봐야겠다.” 원경릉이 말했다.원경병은 흠칫 놀라 그녀를 보더니 눈썹을 치켜세우며 “왕비. 초왕의 존함을 그냥 부릅니까?”라고 물었다.“응, 그게 왜?” 원경릉은 동생의 물음에 대충 대답을 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온통 수재를 입은 마을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만약 부친께서 들으셨으면, 언니는 맞아 죽었을 수도 있어요.”원경병이 말했다.원경릉은 웃으며 “못 듣지, 내가 부친을 왜 만나.”라고 말했다.“그래도, 지금은 언니를 때리지는 못할 겁니다.”원경병은 어깨를 으쓱하며 “요즘 부친께서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매번 손님을 데리고 집으로 오시는데, 그때마다 저를 불러서 인사를 시킵니다.”라고 말했다.“무슨 손님? 이전에 만난 적이 있는 사람들이야?” 원경릉이 물었다.“만난 적이 있겠습니까? 근데 대충 짐작은 갑니다.” 원경병은 귀찮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원경릉은 휙 고개를 돌려 원경병을 보았다.“설마 네 혼인 때문인가?”원경병은 하늘을 보며 “그 이유 말고

    최신 업데이트 : 2022-09-18
  • 명의 왕비   제 299화

    원경릉은 웃으며 동생을 보았다.“나랑은 상관없지만, 백성들에게 좋은 일이라면 그것만으로도 기뻐할 가치가 있지 않아?”“초왕비가 말하는 게 무슨 가치인지는 모르겠네요. 내가 이득 볼 것도 없는데”원경병은 언니의 가치관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뭐가 좋다는 거지.“그것이 민생(民生)이다.”원경릉이 말했다. 원경병은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무언가 낌새를 챈 듯 눈을 반짝이며 언니를 바라보았다.“초왕비는 황태자비가 되고 싶군요! 그게 아니라면 이럴 이유가 있겠습니까?”원경릉은 그런 동생을 보고 웃음이 터졌다.태자비가 되는 것은 원경릉이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우문호가 태자 책봉을 받는다면 모를까. 만약 우문호가 태자가 되지 않거나, 태자에 관심조차 없다면 원경릉에게도 딱히 관심없었다.다음날, 원경릉은 동생을 데리고 성문 밖으로 나갔다.성문 밖 넓은 공터에는 천막이 쳐져 있었고, 큰 가마솥 아래에는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쌀이 익어가는 향기에 오랫동안 흰쌀죽을 먹지 못한 가난한 백성들과 걸인들이 순식간에 모여들었다.주명취가 아직 도착하지 않아서 그런지 가마솥 뚜껑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배고픈 사람들이 가마솥 주위를 둘러쌌고, 멀리 사는 사람들도 소문을 듣고 찾아와 순식간에 공터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하지만, 가마솥 개수를 보아하니 모인 사람들이 다 먹을 수 있을 만한 양이 안될 것 같았다.‘사람이 많아질수록 나눠주는 쌀죽의 양은 점점 줄어들텐데.’ 배가 고파서 쓰러질 것 같은 걸인들이 죽을 쑤고 있는 사람에게 다가갔다.“나으리, 언제쯤 죽을 먹을 수 있습니까?”“뭐가 그렇게 급해? 다들 기다리고 있는 거 안 보여? 한 시간 더 기다려!”죽을 쑤는 사람이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한 시간이나 더 기다려야 한다고요? 그럼 쌀이 더 뭉그러져 미음이 될 텐데”사람들은 웅성거렸다. 죽 쑤는 사람은 그들의 말을 무시하고는 장작을 몇 개 뱄다. 그러자 불길이 약해지더니 죽이 끓던 것이 서서히 멈췄다.이 상황을 본 원경릉은 의아

    최신 업데이트 : 2022-09-19

최신 챕터

  • 명의 왕비   제3129화

    우문호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확 어두워지며 깜짝 놀랐다.“청혼? 누가 청혼을 한 것이오? 미친 것이오? 겨우 여덟 살인데! 대체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이런 짓을……”그는 너무 충격을 받아 분노가 치밀었다. 겨우 여덟 살인 딸을 누군가 눈독을 들이고, 심지어 청혼까지 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그는 그자가 누구인지 알게 되면 반드시 혼쭐을 내겠다고 마음먹었다.원경릉이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이미 택란의 비밀을 다 털어놨으니, 이제 더 이상 나한테 화내면 안 되오.”“말하시오. 용서할 테니 더 말하시오!”우문호는 더 이상 원경릉에게 화를 낼 힘도 없었다. 사실 처음부터 그렇게 심하게 화가 난 것도 아니었고, 복잡한 감정만이 뒤섞여 답답할 뿐이었다.하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들도 모두 사라지고, 이 터무니없는 사건이 더 중요해졌다.원경릉은 택란이 금나라에 가서 10만 냥을 얻은 전말을 설명했다. 특히 금나라의 어린 황제가 그녀에게 청혼했다는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고 전부 털어놓았다. 단 한 글자도 숨기지 않고 진실만 말했다.우문호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그건 너무 대담하잖소! 금나라에서 10만 냥을 빼앗았다니? 어찌 이야기가 이렇게 익숙한 것이오? 그래, 기화요! 어찌 스승이 이런 짓을 가르친 것이오? 그리고 그 금나라의 어린 황제는 이제 몇 살이오? 듣자 하니 겨우 열 살이라고……”“열셋이오. 금나라의 진국왕이 그의 권력을 누르려, 일부러 열 살이라고 소문낸 것이오.”우문호는 벌떡 일어나 뒷짐을 지고 방을 빙빙 돌며 어쩔줄 몰라했다. “열다섯이라도 안 되네! 금나라가 북당의 경성에서 얼마나 먼지 알고 있소? 아이가 그곳에 시집가면 1년에 한 번도 못 돌아올 것이네. 북당의 진국 공주를 부인으로 삼겠다니? 허망 된 꿈이요! 꿈!”“아이들의 농일 뿐이요.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안 되네.”원경릉이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농담이라도 안 되네. 황위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서 우리 귀한 딸을 부인으로 삼겠다니? 이런 녀석은 앞

  • 명의 왕비   제3128화

    목여 태감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우문호에게 말했다.“폐하, 공주를 너무 꾸짖지 마십시오. 공주께서는 단지 세상을 경험하고 싶어 한 것 뿐입니다. 큰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안왕과 위왕도 그곳에 있었고,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았잖습니까?”우문호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그래. 택란이 자네에게는 과자 한 조각을 주었지만, 나한테는 안 주더군.”택란은 그 말을 듣고 재빨리 과자 한 조각을 가져와 아버지의 입가에 가져다 대며 환심을 사려는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 드셔 보세요. 이건 그렇게 달지 않은 생강 과자인데, 정말 맛있습니다!”생강 과자의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딸의 귀엽고 앙증맞은 얼굴을 보니 어떻게 밀쳐낼 수 있겠는가? 화가 난 상태였지만 결국 한입 물었고 생강과 설탕의 맛이 입안에 퍼졌고, 딸의 사랑스러운 미소를 보니 얼굴에 굳었던 표정이 풀어졌다.“나도 먹고 싶은데.”원경릉이 가볍게 웃으며 그의 옆에 앉아 턱을 괴고 물었다.“다섯째야, 맛있느냐?”우문호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무시했다. 그녀가 스스로 만든 규정을 어겼으니, 좋은 표정을 지을 마음이 없었다.원경릉이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택란아, 나한테도 한 조각 줘 보거라!”택란은 다시 과자 한 조각을 가져와 엄마의 입가에 가져다주며 더 큰 죄책감을 느꼈다. 이번엔 자신의 엄마까지 곤란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원경릉은 과자를 먹고 나서 웃으며 말했다.“정말 맛있구나. 다 먹었으니 나가서 좀 자거라. 돌아오는 길에 제대로 못 잤으니.”“예!”택란은 얌전히 대답하고 나머지 과자를 빨리 먹어 치운 뒤 아버지에게 다가가 그를 한 번 안아주었다.“아바마마, 저 먼저 자러 가겠습니다. 깨고 나면 다리 주물러 드릴게요!”우문호는 더 이상 화를 내지 않고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그래, 어서 가거라.”택란은 목여 태감의 손을 잡고 방을 나섰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엄마를 한 번 돌아보며 아버지가 너무 오래 화를 내지 않기를 바랐다.원경릉은 문을 닫고 탁자 옆에

  • 명의 왕비   제3127화

    기다리고 기다리던 택란이 드디어 경성으로 돌아왔다. 우문호는 소월궁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옆에서 목여 태감이 계속해서 설득했다. 그는 공주가 아직 어리니, 노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 하며, 그저 택란이 다른 어린아이들이 저지를 수 있는 잘못을 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목여 태감은 혹시라도 황제가 공주를 꾸짖을까 봐 걱정되어 공주를 감쌌다. 그의 약한 마음은 그런 걸 감당하지 못했다.마침내 택란과 원경릉이 도착했다.우문호는 작은딸이 원경릉의 뒤에 숨어 겁먹은 얼굴로 머리를 살짝 내밀고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았다.원경릉이 딸의 손을 꽉 잡고 말했다.“가봐라, 아버지께서 기다리신다.”택란은 고개를 숙이고 아버지 앞으로 다가갔다. 우문호 앞에 서서 조심스럽게 자기 손을 그의 손 위에 올려놓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바마마, 저 돌아왔습니다.”그러자 우문호는 딸의 손을 잡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뿌리치지도 않았다. 앞에 서 있는 그녀를 보는 눈빛엔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약도성에 얼마나 있었느냐?”택란은 거짓말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솔직히 대답했다.“지난번 여름방학 때 집에 돌아온 후 바로 약도성으로 갔어요.”우문호는 큰 충격을 받았다.“모두가 알고 있었으면서, 나만 속였단 말이냐?”택란은 미안한 마음에 아버지를 껴안으며 말했다.“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안 그러겠습니다!”우문호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원경릉이 다가가 말했다.“아이가 자네 선물을 많이 샀소. 한번 보시게.”“필요 없소!”우문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딸을 뿌리칠 마음은 없지만, 그는 여전히 속았다는 사실에 너무 힘들었다.원경릉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 텐데,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다. 서로 비밀이 없기로 약속했건만, 그 약속이 깨진 것 같아 화가 났다.원경릉은 그의 표정을 보고 더 걱정해야 할 사람이 자기라는 것을 깨달았다.오는 길 내내 택란만 걱정하며 우문호에게 딸을 변호해 주려 했지만, 정작 자신이 그를 속인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

  • 명의 왕비   제3126화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이 한 일을 이야기하며 원경릉을 기쁘게 했다.다섯째는 이전에 다섯 개의 성을 위해 적어도 30년이나 50년의 계획이 필요하다고 했었는데, 지금 상황을 보니, 20년이 채 되지 않아 조정에 대한 충성심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나아가 국경 방어뿐만 아니라 조정에 세금을 납부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보였다. 아이들이 현대의 경험을 참고하며 지내는 것이 다섯째의 큰 걱정을 해결해 준 것이었다. 약도성은 이번 지진으로 국고의 돈과 주변 주현의 자원을 사용했다. 북당과 약도성의 백성들의 마음이 끈끈히 묶여 있어 불행 중 다행이었다.중증 환자들이 회복된 후, 원경릉은 택란과 함께 경성으로 돌아갔다.출발하기 전에 비둘기를 통해 다섯째에게 소식을 전하며 심리적 준비를 하도록 시간을 주었다. 이렇게 하면 다섯째가 택란을 보았을 때 마음을 가라앉혀 덜 화를 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택란은 아버지가 화를 내거나 슬퍼할까 봐 사실 마음속으로 몹시 두려웠다. 아버지가 자신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그녀또한 잘 알고 있었다.돌아가던 중 택란은 아버지에게 줄 선물을 사자고 제안했다. 원경릉은 딸의 강한 생존 본능에 웃음을 터뜨렸다. 딸이 아버지를 소중히 여기고 있었으니, 다섯째가 딸을 그렇게 아끼는 것이 헛된 일이 아님을 느꼈다.“너희 아버지께서는 특별한 취미가 없으시고, 그저 술 한잔하는 걸 좋아하시니까 좋은 술 몇 병 사 가는건 어떠냐?”그러자 원경릉이 먼저 제안했다.“좋습니다! 사요! 많이 사서 마차에 싣고 가겠습니다!”택란이 급히 대답하자 원경릉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 다섯째가 아이들에게 그렇게 자상한데도 아이들이 그를 무서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물론 이는 두려움이 아니라 존경이고 사랑이지만 말이다.경성에서 우문호는 원경릉의 서신을 받자마자 열어보았다. 편지를 읽는 순간 그는 멍해졌다.“계란이가 약도성에 갔다니? 그게 어떻게 가능한 것이냐? 그렇게 얌전하던 딸아이가 몰래 약도성에 갔을 리가 없어.”더구나, 셋째와 넷째는

  • 명의 왕비   제3125화

    약도성의 건물 대부분이 무너져 백성들은 임시로 지은 오두막과 초가집에 머물게 되었는데, 폐허로 변한 도성은 눈에 보이는 곳마다 온통 엉망진창이었다. 원경릉은 마음속 깊이 안타까움을 느꼈다.택란의 뜻으로 중증 환자들은 모두 저택으로 옮겨졌다. 원경릉은 계란이의 결정이 매우 옳다고 생각했다. 중증 환자들은 그녀와 몇몇 의원이 책임지고 돌보았고, 나머지 의원은 경증 치료를 맡았다.택란은 엄마 곁에 머물며 환자를 돌보는 것을 도왔는데, 기본적인 의술을 알고 있어서 소독과 붕대 감는 일을 도왔다. 부상자들은 대부분 통증이 심해 참기 어려웠고, 진통제를 먹이거나 진통 주사를 놓았다. 택란도 주사를 놓을 수 있었는데, 어린 나이에 쉬지 않고 바쁜 모습을 보였다. 그런 그녀를 본 환자들은 눈물을 참지 못했다.그들은 궁에서 자신들의 생사를 진정으로 걱정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황후마저 직접 왔으니, 예전의 대립과 적대감은 유치한 웃음거리로 느껴졌다.저녁 무렵, 아이들이 엄마를 찾아왔지만, 이야기를 나눌 여유도 없이 서로 포옹한 뒤 다시 각자 사람들을 구하러 나섰다.백성 중 자발적으로 음식을 만들고 약을 끓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저택 내 물자는 부족했으나 주변의 도움이 끊이질 않았다. 호명은 사람들을 조직해 식량과 의복을 나누어 주었다. 지금의 약도성엔 인간의 이기심이 한순간에 사라진 듯했다.황후가 직접 약도성에 온 덕분에 서북 지역의 신하들도 직접 의원과 물자를 이끌고 약도성에 와서 돕기 시작했다.약도성은 전례 없는 관심을 받았고, 이는 약도성 백성들이 다섯 도시 중 가장 빠르게 조정을 인정하게 된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사람들을 구하고 재난 이전의 상태로 빠르게 회복하는 데만 집중했다.재난이 발생한 지 반달이 지나면서 발견된 것은 모두 희생자뿐이었다. 인원을 파악한 후 한곳에 모아 장례를 치렀다.이번 지진으로 약도성은 5만여 명의 백성이 목숨을 잃었다. 이 숫자는 매우 끔찍했지만, 택란의 사전

  • 명의 왕비   제3124화

    북당의 황후가 의원을 이끌고 직접 약도성으로 향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이들이 믿지 않았다. 약도성의 백성들조차 믿을 수 없었고, 감히 믿을 엄두도 없었다.우문택란이 이미 약도성에 왔지만, 고작 여덟 살짜리 아이에 불과했다. 다들 그저 그녀가 약도성에 놀러 왔고 수천 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왔다고 생각했다. 이후 어린아이답지 않은 그녀의 비범한 능력이 증명되었다. 그녀는 약도성의 성주로서 약도성에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그러나 이번 지진으로 약도성은 초토화되었고, 재건하려면 조정이 막대한 인력과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북당의 조정이 약도성을 방치하고 자연적으로 멸망하도록 내버려두어도 어쩔 수 없었다. 약도성 백성들은 줄곧 조정을 적대시하였기 때문에, 조정이 이들을 구할 이유가 없었다.그런데 황후가 직접 약도성으로 향한다는 것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약도성은 조정이 이렇게까지 신경 쓸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지 않았다.지진 발생 열흘째 되던 날, 원경릉 황후가 이끄는 의원들이 약도성에 도착했다. 그들은 밤낮없이 말을 갈아타며 전력으로 달려왔다. 약도성의 백성들은 이 소식을 듣고 흥분하며 황후께서 약도성에 오신다고 얘기를 전했다.사람들의 생각은 한순간에 뒤바뀌었다. 지진 이전까지만 해도 조정을 적대시하고 북당을 적국으로 여겼던 약도성 백성들이, 이제는 원경릉을 환영하며 열광적으로 맞이했다. 이는 택란이 지진을 미리 알아차린 것과 구조 활동 덕분이었다.원경릉은 백성들의 뜨거운 환영을 예상하지 못했다. 말을 타고 앞을 바라보니 사람들이 계속 모여들고 있었고, 그녀의 눈시울이 촉촉해졌다.“어머니!”군중 속에서 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경릉은 단번에 딸을 찾아내고 말에서 내려 달려갔다. 택란은 엄마 품에 안기자마자 눈물을 참지 못하고 터뜨렸다."어머니,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너무 많아요!"택란이 흐느끼며 말했다.원경릉은 딸이 이렇게 슬프게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가슴이 미어지듯 아팠다. 원경릉은 딸을 품에 꼭 안

  • 명의 왕비   제3123화

    택란은 어릴 적부터 화염을 다루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감정을 표정에 드러내지 않았다. 겉으로는 담담해 보였지만, 그녀는 내면의 감정을 철저히 억눌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화염을 제어하지 못할 위험이 있었다. 스승님을 따른 후, 스승이 계속해서 그녀에게 약점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정의 틈새가 생기면 많은 것을 통제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녀는 항상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며, 모든 일을 담담히 대하려고 노력했다. 자신의 진심 어린 감정을 흔들지 않으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그녀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꼬마 봉황이 날개를 펼쳐 그녀를 품에 안고 위로해 주었다.그들은 수년간 서로를 지지하며 함께 성장해 왔고, 서로를 위로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잠시 후, 택란은 다시 구조 현장으로 나갔고, 여전히 평온하고 흔들림 없는 얼굴로 사람들 앞에 섰다.위왕과 안왕은 어린 조카의 침착함에 깜짝 놀랐다. 겨우 여덟 살짜리 아이가 어떻게 이런 모습을 보일 수 있단 말인가? 아이의 천성은 어디로 간 것인가?그들은 택란이 애초에 아이로서의 천성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태어난 후, 조금이라도 세상을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녀는 빠르게 세상을 이해하며, 지혜롭고 노련한 어른처럼 모든 것을 맞서야 했다.사실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있는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아버지는 지금까지도 그녀를 한두 살짜리 어린아이처럼 사랑하고 아껴주었다. 그에게는 아무런 기대나 요구가 없었으며, 능력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어머니처럼 그녀의 모든 행동을 걱정하고 감시하지 않았다.아버지 앞에서 그녀는 가면을 쓸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약도성의 일이 안정된 후, 그녀는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돌아갈 계획이었다. 이번 약도성 방문은 그녀에게 있어 단순한 놀이가 아닌 실습이었다. 이곳은 그녀의 의지와 감정을 단련할 수 있는 장소였고, 실제로 그녀는 이곳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했다.구조 작업은 계속되었고, 지진이 발

  • 명의 왕비   제3122화

    한 마을 주민이 눈물을 닦으며 원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지원 같은 건 절대 없을 것이오. 조정은 우리를 모조리 죽이길 바라오. 우리가 죽어야 조정은, 이 약도성을 완전히 삼킬 수 있소. 아무도 우리를 구하러 오지 않소.”택란은 화가 나서 말했다.“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인가? 내가 여기에 왔잖냐! 빨리 계속 파시게!”주민이 그녀를 힐끔 보며 물었다.“웬 꼬마가, 넌 누구냐?”택란을 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게다가 어둠 속이라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어린아이가 여기 있는 걸 보고 다들 의아해했다.“약도성의 성주, 우문택란이다!”그녀는 단호하게 말한 뒤, 산사태가 난 지역을 향해 다시 걸어갔다. 작은 몸집이 시선에서 멀어질수록 더욱 작아 보였다.황실의 공주라는 말에 사람들은 모두 놀라 얼어붙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공주가 이런 곳에 직접 올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공주는 저택 안에서 잘 보호받고 있어야 할 존재다.그녀는 알 수 없는 힘을 사용해 접근한 곳의 흙을 한 겹씩 옮겨내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울부짖는 소리와 구조 요청이 들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그녀를 따라가 급히 구조 작업에 참여했다.약도성의 지진은 강북부에서도 뚜렷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낡은 집도 무너졌지만, 심각한 피해는 없었다. 약도성에 지진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위왕과 안왕은 신속히 구조 병사를 파견했다. 그들은 택란이 약도성에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들 여태껏 택란이 스승과 함께 떠났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녀의 네 오빠들은 바로 병사를 데리고 약도성으로 향했다. 지진 발생 12 시진 후 약도성에는 8천 명 이상의 병사가 합류했다.약도성의 백성은 조정이 지원군을 보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조정이 약도성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든 관심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과거에도 가뭄, 메뚜기 떼, 산사태 등의 재난이 일어났지만, 북막조정은 몇 포대의 쌀만 보내며 형식적인 구조를 했을 뿐이다.약도성

  • 명의 왕비   제3121화

    지진이 발생하기 전, 호명과 주 아가씨는 약도성 중심부에서 백성들을 대피시키고 있었다.새벽녘은 사람들이 가장 피곤할 시간이다. 억지로 잠에서 깨어난 백성들은 분노했다. 그중 한 집안은 도축업을 하는 홀아비가 어린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새벽 무렵에야 돼지를 잡고 고기를 나눠주고 돌아와 잠자리에 든 참이었다. 그런데 또다시 잠에서 깨어난 데다 아이까지 깨우니, 그는 화를 참지 못하고 욕설을 퍼부었다.옆집 사람은 칼을 들고 나가 저들을 쫓아내면 다시 잘 수 있다고 부추겼다. 남자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던 상황이라 아들을 방으로 데려다 놓고, 즉시 칼을 들고 나가 주 아가씨와 맞섰다.그가 칼을 휘두르며 집안 식구들과 함께 밖으로 나온 그 순간, 지진이 발생했다. 그들은 자기 집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을 똑똑히 목격했다. 먼지가 자욱했고, 곁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옆집 역시 무너졌고, 그 안에 갇힌 사람들이 집 처마 아래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깔려 있었다.“아들! 아들아!”홀아비는 그제야 안으로 데려다 놓았던 아들을 떠올라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집은 이미 완전히 무너졌다. 겨우 세 살밖에 안 되는 아들은, 살아있을 가능성이 희박했다.그는 미친 듯이 벽돌과 흙더미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주 아가씨와 호명도 서둘러 도왔다.지진은 단 몇 초 만에 일어났다. 이미 수많은 사람이 집으로 돌아갔고, 그 결과 무너진 집에 깔린 백성들이 매우 많았다. 약도성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사방에서 울부짖음과 비명이 들려왔다. 평소 조정과 맞서던 이들은 너무나 나약하고 무력해 보였다. 그들의 처절한 울음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을 찢어지게 했다.홀아비의 아들을 구하기 위해 다들 함께 벽돌을 치우고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도구가 없어서 맨손으로 작업해야 했다. 주 아가씨의 손은 금세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고 계속 흙벽을 밀어내고 벽돌을 옮겼다.반 시진 후, 주 아가씨가 마침내 아이를 안고 왔다. 아이는 다리를 크게 다쳐 엉엉 울고 있었다. 홀아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