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요, 아주버님이 못 하시는 게 있을 리가 없잖아요. 워낙 선이란 게 없는 분이라.”숨이 막혀와 창백해진 얼굴을 하고서도 전혀 두렵지 않다는 듯 오히려 더 짙은 웃음을 내보였다.전에는 그런 소은지의 반항이 귀여워 보였지만 지금의 엔데스 명우는 그 눈만 보며 파버리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다.소은지가 저에게 굴복하는 모습을 누구보다 보고 싶어 했던 엔데스 명우인데 치밀한 소은지는 엔데스 명우가 손을 쓸 새도 없이 그의 동생인 엔데스 현우에게 가버린 것이다.엔데스 현우가 그렇게 소은지와 결혼하는 바람에 엔데스 명우와 소은지는 정반대의 위치에서 서로를 바라보게 된 것이다.소은지가 제 손아귀를 벗어나게 되고 게다가 제 동생의 여자로 마주치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엔데스 명우라 지금 이 상황이 아주 거슬렸지만 그는 더는 소은지와 노닥거릴 시간이 없었다.“이쯤 하면 됐잖아. 그만해 이제.”“이제 내 신장은 필요 없어요?”소은지는 비아냥거리며 웃어 보였다.전에는 그렇게 자신을 몰아붙이며 자신의 신장으로 설유나를 살리겠다고 애를 쓰던 엔데스 명우의 갑자기 바뀌어버린 태도가 소은지는 우습기만 했다.그녀는 침대 위에 곤히 잠들어있는 설유나를 보며 물었다.“저렇게 누워있은 지도 오래됐는데, 일어나는 거 볼 수는 있겠어요?”소은지의 말이 끝나자 목을 조여오던 엔데스 명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엔데스 명우가 자극을 받을 때마다 소은지는 복수에 성공한 것만 같은 쾌감이 들었다.소은지는 사실 그 누구의 편도 아니었다.설유나를 괴롭히는 건 그저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버린 엔데스 명우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였다.엔데스 명우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인 지금 시도 때도 없이 그의 멘탈을 흔들어놓고 그를 물어뜯는 게 바로 소은지의 목적이었다.엔데스 명우도 요즘 정말 죽기 살기로 달려드는 소은지를 보며 죽을 때까지 용서할 리 없다던 그녀의 말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소은지는 엔데스 명우를 죽이지는 못해도 그에게 그만큼의 고통은 선사해줄 생각이었다.살얼음판을
일부러 여섯째 아주버님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며 말하는 소은지에 엔데스 명우의 표정은 바로 굳어졌다.이상하리만치 거슬리는 두 단어에 그는 소은지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네가 감히 부를 수 있는 호칭이 아닐 텐데.”“난 이미 일곱째 도련님의 와이프가 된 몸이에요. 예의를 갖춰서 부르면 여섯째 아주버님이라는 호칭이 당연한 거죠.”“그런데요 아주버님, 한 사람한테 가장 소중했던 걸 망가뜨리고 또 똑같은 걸 보상이라고 주는 건 좀 아니지 않아요?”“그래서?”거절의 의사를 비치는 소은지에 엔데스 명우가 못마땅한 듯 묻자 소은지가 자신의 말을 이어나갔다.“전에 내가 파트너 변호사의 자리에 앉은 건 다른 사람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자리여서예요. 그거랑 아주버님이 준 게 어떻게 같겠어요?”소은지가 본인의 힘으로 올라간 파트너 변호사라는 자리는 단순히 지위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그녀에 대한 사람들의 신임을 나타내고 있었다.무패의 변호사 소은지와 엔데스 명우가 만들어 준 변호사 소은지는 전혀 다른 의미였다.엔데스 명우가 아무리 높은 자리를 준다 해도 자신의 노력으로 쌓아 올린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생각보다 강경한 소은지의 태도에 머리가 아파온 엔데스 명우는 말을 하려고 입을 벌렸지만 그의 말이 뱉어지기도 전에 소은지가 그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갑작스레 느껴지는 온기에 순간 긴장해버린 엔데스 명우는 아무것도 못 하고 소은지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내가 가진 것들을 빼앗을 때, 이렇게 다시 보상하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겠지 너도.”감히 제 앞에서 이딴 도발을 해오는 소은지에 엔데스 명우는 화가 치밀어올랐다.지금의 그녀는 어떤 제안에도 넘어가지 않을 듯했다.그래서 당장이라도 죽여버리고 싶은 충동에 엔데스 명우는 손을 뻗어봤지만 그때는 비웃음만을 남겨놓은 소은지가 이미 등을 돌려버린 뒤였다.그녀가 떠난 뒤에도 귓가에 맴도는 치욕스러운 조롱에 엔데스 명우는 주먹을 들어 벽을 그녀의 머리라 생각하고 힘껏 내리찍었다.이성
한지음만 언급하지 않으면 강이한은 이유영에게도 나름 진심이었는데 한지음에 관련된 일에서는 늘 이성을 잃으니 여진우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전에 소은지도 이유영에게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이유영은 그때 중요하지 않다고 대답을 했었다.그래서 이유영은 여진우의 질문에도 똑같은 대답을 했다.한지음과 강이한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강이한이 한지음한테 이토록 정성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도 않았고 궁금하지도 않았다.강이한한테 한지음이 얼마나 큰 존재든지 상관없이 소월이를 건드리기만 한다면 이유영은 절대 참지 않을 것이다.강이한 얘기만 하면 진저리를 치는 이유영에 여진우도 턱 끝까지 올라온 말을 삼켜내며 말을 돌렸다.“최익준 씨도 같이 가는 거야?”“아니.”“그럼 루이스는? 루이스 바로 저기 있는데.”“필요 없어.”“너...”여진우는 전부 다 마다하는 이유영을 의아하다는 듯 쳐다봤다.“내가 알아서 할게.”서주의 일은 아주 복잡하고 위험한 일이었기에 그 일에 연루된 사람들은 모두 화를 피해갈 수 없을 텐데 이유영이 따로 알아본 바로는 루이스와 최익준 모두 가정을 책임져야 했기에 아무리 공적인 일이라 해도 데려가고 싶지 않았다.원래 이런 일에는 엮이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은 법이니 이유영은 홀로 부딪혀보기로 했다.“거기 가면 장혜주라는 사람이 너 데리러 나갈 거야. 필요한 거 있으면 그 사람한테 부탁해.”“여자야?”“응.”고개를 끄덕이는 여진우의 마음이 정확히 어떤지는 몰랐지만 이유영은 그가 소개해주는 사람은 믿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고 서주에서 만약이라도 위험한 일이 생긴다면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이번에는 거절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언제 가?”“박연준 일정에 맞추기로 했어.”강이한과 이온유가 이미 서주에 도착했으니 박연준도 곧 출발할 것 같아 이유영은 딱히 서두르지 않았다.박연준과 같이 간다는 걸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는 이유영의 말에 여진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당부했다.“항상 조심해, 걔 믿지 말
아침을 먹을 때에도 이유영은 소월이만 신경 쓰고 있었다.“월아, 아 해봐.”엄마의 다정하고도 장난스러운 말에 환하게 웃으며 이빨을 드러내고 작은 입을 벌리는 월이는 누가 봐도 사랑스러운 아이인데 어떻게 친아빠라는 사람이 돼서 아이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는지, 정말 강이한은 인간이길 포기한 것 같았다.강이한 생각에 또다시 눈에 냉기가 서렸던 이유영이었지만 소월이 앞이라 그녀는 이내 표정을 감추고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한 가족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무언가를 들고 뛰어 들어오는 도우미 탓에 그 분위기는 순식간에 깨져버렸다.“회장님, 사모님!”“뭔데 그래?”도우미의 손에 잔뜩 들려있는 아이 물건에 임소미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고급진 박스에 담겨있었지만 아이의 물건을 자주 보러 다니는 이유영과 임소미는 꽤 비싼 브랜드의 물건임을 한눈에 알아보았다.“강이한 도련님 쪽 직원이 이거 소월 아가씨 거라고 가져오셨어요...”그 얘기를 들은 가족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버리자 도우미는 안절부절못하며 말을 이어나갔다.“그냥 이것만 저한테 안겨주고 가버리셔서...”다 멀쩡한 물건들이라 그저 받았다는 도우미의 말에 이유영은 표정을 굳히며 차갑게 소리쳤다.“당장 내다 버려!”강이한이 보낸 게 아무리 명품 브랜드라 해도 이유영은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강이한이 소월이를 병원에 데려가서 그런 결정을 내렸을 때 소월이는 이미 아빠를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이기에 그런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일을 저질러놓고 고작 이딴 물건들로 용서받으려 하는 강이한이 어이가 없었다.“버려!”임소미도 똑같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이 정도 물건은 그들도 충분히 사줄 수 있었기에 남이 주는 걸 받을 이유가 없었다.그리고 소월이의 방은 이미 장난감들로 가득 차 있었기에 이걸 들여놓는다면 그저 자리만 차지하는 꼴이었으니 이 물건들이 향할 곳은 쓰레기통뿐이었다.“네!”주인님이 버리라고 하니 감히 토를 달 수 없었던 도우미는 바로 그것들을 한 아
이온유의 일이 해결된 뒤에도 강이한은 소월이가 눈물인지 콧물인지 알아볼 수도 없는 액체들을 흘리며 울던 모습이 자꾸 떠올라 전혀 기쁘지 않았다.어쨌든 자신의 딸은 소월이었으니 강이한도 신경이 쓰이는 게 당연했다.“네, 다 보냈습니다.”강이한이 파리에 있던 모든 재산을 이소월 명의로 돌려놓은 걸 의아하게 생각하던 이시욱은 이내 자신의 핏줄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파리 병원에서의 일반 생각하면 온 세상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강이한이었다.다들 강이한이 제 딸을 사지로 내몬다고 손가락질했지만 그 누구도 강이한의 어려움은 알아주지 않고 있었다.이온유가 강이한한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병원 사람들과 강이한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유영은 그걸 모르니 그 난리를 피웠던 거지만 당시 치료 중이었던 이온유는 그 혼란 속에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애는 어때?”“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점점 좋아지고 있대요.”서주로 돌아온 뒤로 강이한은 바로 아이를 강씨 집안 전용 병원에 입원시켰는데 그 뒤로 점차 좋아지고 있다는 이 소식은 강이한이 정말 오랜만에 들은 희소식이었다.그에 강이한도 마침내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이온유를 보고 병원에서 나오는 강이한의 뒤에는 당연히 이시욱이 따르고 있었는데 아까 전화를 받은 뒤로 그의 표정이 영 밝아지지 않고 있었다.“도련님, 사모님이...”“말해.”이유영 얘기만 꺼내면 마음이 아파오는 강이한이었기에 아까까지만 해도 평온하던 심장이 갑자기 긴장이라도 한 듯 빨리 뛰기 시작했다.그날 병원에서 처참히 무너지던 이유영의 모습은 아직도 강이한의 머릿속을 맴돌며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이유영이 그토록 상처를 받을 거라고는 생각 못 하고 저지른 일이었지만 어쨌든 그녀의 고통은 자신의 책임이었기에 강이한은 늘 미안했다.“사모님이 박연준 씨와 같이 서주에 온답니다.”“...”이시욱의 말에 원래도 좋지 않았던 분위기가 빠르게 가라앉았다.서주가 어떤 상황인지 알긴 하는지 이 혼란스러운 와중에
이유영이 저에게 복수를 하려고 선택한 길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지만 그래도 이런 방법을 선택했다는 건 강이한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차에 올라탄 강이한은 한숨만 쉬고 있어 좁은 공간의 분위기마저 침울하기 그지없었다.이시욱은 그런 제 상사를 보다가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듯 고개를 돌렸지만 그 심란한 마음을 또 어지럽히기는 싫어서 결국 입을 다물었다.강이한은 지금 당장이라도 미쳐버릴 것만 같아서 끝내 이유영에게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수화기 너머에서 익숙하고도 야속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강이한은 다급히 말을 꺼냈다.“꼭 이렇게까지 했어야 하는 거야?”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묻는 강이한에 이유영의 호흡도 무거워졌다.핸드폰 하나를 사이 두고 들려오는 불안정한 호흡은 강이한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둘 사이에는 늘 그렇듯 팽팽한 긴장감이 오가고 있었다.“들었나 보네 이미.”“다 알았으면서 왜 또 박연준 그 자식이랑 같이 다니는 거야?”한 사람의 인생을 직접 계획하고 10년 동안이나 이용한 사람과 다시 손을 잡는 이유영을 강이한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어낼 수도 없어 더 어려운 사람이 바로 박연준이었고 10년의 계획도 성공시킨 그가 또 무슨 짓을 꾸미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그래서 강이한은 이유영을 그에게서 떼어놓고 싶었다.“내가 누구랑 손을 잡든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이유영!”강이한은 숨을 몰아쉬며 언성을 높였다.이유영이라는 이름 세글자뿐이었지만 강이한이 지금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 또 이유영에 대해 얼마나 실망했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는 말투였다.“네가 보낸 물건들은 다 버렸어. 그리고 우리 월이 앞으로 보낸 자산들은 진우 시켜서 처리하고 있으니까 곧 다시 너한테 돌아갈 거야.”여전히 냉기가 서려 있는 이유영의 말에 숨이 막혀오던 강이한은 이제는 심장 언저리까지 아파왔다.“그거 월이한테 주는 거야.”“네 딸 아니니까 잊어.”강이한이 무슨 말을 해도 이유영의 태도는 변함없이 차가웠
“이름이 강소월이었지?”한참 만에 입을 연 강이한은 착잡한 마음으로 마음속에만 담아두었던 질문을 했다.강이한이 소월이와 가장 오래 같이 있어 본 건 바로 그 병원에서였다.하지만 그때는 이온유의 상황이 좋지 않아 아이의 수술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생각뿐이라서 소월이가 어떤 분유를 먹는지 어떤 이유식을 먹는지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았다.그리고 강이한은 이유식이 무엇인지도 사실은 몰랐었다.어린아이들이 먹는 음식이라는 말만 들어봤지 그게 실제로 어떤 건지는 본적도 없었다.“네.”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이시욱에 강이한은 흔들리는 눈동자로 창밖을 바라보았다.“월이... 이쁜 이름이네.”이유영이 낳아준 예쁜 딸이라 그런지 이름도 아이처럼 예쁘기만 했다.하지만 강이한이 아무리 깊게 숨을 들이마셔 봐도 답답한 마음만은 가시지 않았다.아니, 오히려 더 힘들고 아파오기까지 했다.“그럼 사모님 쪽은 어떻게 할까요?”이시욱 또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강이한을 향해 물었다.자신에게 닥칠 일을 걱정하지도 않고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이유영의 불안정한 상태를 알기에 이시욱도 걱정이 되긴 매한가지였다.이시욱의 질문에 강이한은 한숨을 앞세우며 말했다.“이미 오기로 했으니까... 그냥 내버려 둬.”사실 이유영이 강이한과 결혼할 때부터 그녀의 서주행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그저 강이한이 이유영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아 비밀로 해왔었는데 이젠 그마저도 헛수고가 되어버린 것이다.이유영은 결국 다른 방식으로 기어코 서주에 오고야 말았다.“월이도 데리고 온대?”아이 얘기를 꺼내자 그래도 핏줄이라 이건지 강이한의 마음은 아이를 보고 싶은 생각에 다시금 들끓기 시작했다.하지만 아이를 데리고 온다고 해도 이유영이 자신에게 보여줄 것 같지는 않았다.“그건 잘 모르겠는데... 제가 아는 사모님이시라면 혼자 오실 겁니다.”이유영이 위험을 무릅쓰고 서주로 왔다는 건 앞으로 일어날 일이 얼마나 험할지 각오가 되어있다는 뜻인데 이런 곳에 아이를 데리고 오는 것도 말이 안 되긴
후회라는 단어를 들은 이유영은 조롱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연준 씨 그런 조언도 할 줄 아는 사람이었어?”“...”옛일을 상기시키는 이유영의 말에 박연준은 머리가 아파왔다.살면서 부끄러운 짓은 하지 않았던 박연준이었지만 이유영한테 했던 짓만은 후회스러웠다.“근데 조언 필요 없어. 나도 충분히 많이 생각하고 결정한 일이야. 서주에 가서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난 괜찮아. 그러니까... 후회도 안 해.”마지막 한마디를 하기 전 이유영은 잠시 뜸을 들였지만 결국 말을 마무리 지었다.피하는 것 만으론 일을 해결할 수 없다면 그것의 근본이 되는 것부터 처리하면 될 일이었다.그러니까 이미 결심한 일에 대해 더 이상의 후회는 하지 않기로 했다.“유영아, 난 네 생각처럼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야.”이유영이 내뱉었던 첫마디에 대한 답을 이제야 한 박연준이었지만 이유영은 새콤한 레몬주스를 마시고는 박연준의 말을 듣지 못한 사람처럼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아무 말도 없이 구름만 바라보고 있는 이유영에 박연준은 못 말린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비행기에 타자마자 이유영은 월이가 보고 싶었다.강이한이 아이를 데리고 갔던 그 며칠을 떠올리자 이유영은 강이한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또다시 차오르는 것 같았다....그 시각 반산월에 있던 소은지는 정말 오랜만에 엔데스 현우를 만나게 되었다.엔데스 현우가 코트를 벗는 것을 본 소은지는 옷을 받아들려고 손을 내밀었지만 엔데스 현우는 소은지의 두 손을 보더니 바로 표정을 굳히며 코트를 소파 위로 던져버리고는 소은지의 허리를 감싸 안고 말했다.“왜...”“이런 일 안 해도 돼요.”무거운 엔데스 현우의 말투에 감정을 알 수 없는 표정까지 더 해지니 한없이 차가워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소은지는 이상하게 가슴이 뛰었다.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뛰는 심장에 소은지의 얼굴도 점점 달아오르고 있었다.옷을 받아드는 것 따위는 엔데스 명우에게 잡혀있을 때 가장 하기 싫어했던 일이었다.직장에서 인정받는 변호사였던 소은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