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온유의 일이 해결된 뒤에도 강이한은 소월이가 눈물인지 콧물인지 알아볼 수도 없는 액체들을 흘리며 울던 모습이 자꾸 떠올라 전혀 기쁘지 않았다.어쨌든 자신의 딸은 소월이었으니 강이한도 신경이 쓰이는 게 당연했다.“네, 다 보냈습니다.”강이한이 파리에 있던 모든 재산을 이소월 명의로 돌려놓은 걸 의아하게 생각하던 이시욱은 이내 자신의 핏줄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파리 병원에서의 일반 생각하면 온 세상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강이한이었다.다들 강이한이 제 딸을 사지로 내몬다고 손가락질했지만 그 누구도 강이한의 어려움은 알아주지 않고 있었다.이온유가 강이한한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병원 사람들과 강이한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유영은 그걸 모르니 그 난리를 피웠던 거지만 당시 치료 중이었던 이온유는 그 혼란 속에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애는 어때?”“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점점 좋아지고 있대요.”서주로 돌아온 뒤로 강이한은 바로 아이를 강씨 집안 전용 병원에 입원시켰는데 그 뒤로 점차 좋아지고 있다는 이 소식은 강이한이 정말 오랜만에 들은 희소식이었다.그에 강이한도 마침내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이온유를 보고 병원에서 나오는 강이한의 뒤에는 당연히 이시욱이 따르고 있었는데 아까 전화를 받은 뒤로 그의 표정이 영 밝아지지 않고 있었다.“도련님, 사모님이...”“말해.”이유영 얘기만 꺼내면 마음이 아파오는 강이한이었기에 아까까지만 해도 평온하던 심장이 갑자기 긴장이라도 한 듯 빨리 뛰기 시작했다.그날 병원에서 처참히 무너지던 이유영의 모습은 아직도 강이한의 머릿속을 맴돌며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이유영이 그토록 상처를 받을 거라고는 생각 못 하고 저지른 일이었지만 어쨌든 그녀의 고통은 자신의 책임이었기에 강이한은 늘 미안했다.“사모님이 박연준 씨와 같이 서주에 온답니다.”“...”이시욱의 말에 원래도 좋지 않았던 분위기가 빠르게 가라앉았다.서주가 어떤 상황인지 알긴 하는지 이 혼란스러운 와중에
이유영이 저에게 복수를 하려고 선택한 길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지만 그래도 이런 방법을 선택했다는 건 강이한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차에 올라탄 강이한은 한숨만 쉬고 있어 좁은 공간의 분위기마저 침울하기 그지없었다.이시욱은 그런 제 상사를 보다가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듯 고개를 돌렸지만 그 심란한 마음을 또 어지럽히기는 싫어서 결국 입을 다물었다.강이한은 지금 당장이라도 미쳐버릴 것만 같아서 끝내 이유영에게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수화기 너머에서 익숙하고도 야속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강이한은 다급히 말을 꺼냈다.“꼭 이렇게까지 했어야 하는 거야?”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묻는 강이한에 이유영의 호흡도 무거워졌다.핸드폰 하나를 사이 두고 들려오는 불안정한 호흡은 강이한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둘 사이에는 늘 그렇듯 팽팽한 긴장감이 오가고 있었다.“들었나 보네 이미.”“다 알았으면서 왜 또 박연준 그 자식이랑 같이 다니는 거야?”한 사람의 인생을 직접 계획하고 10년 동안이나 이용한 사람과 다시 손을 잡는 이유영을 강이한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어낼 수도 없어 더 어려운 사람이 바로 박연준이었고 10년의 계획도 성공시킨 그가 또 무슨 짓을 꾸미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그래서 강이한은 이유영을 그에게서 떼어놓고 싶었다.“내가 누구랑 손을 잡든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이유영!”강이한은 숨을 몰아쉬며 언성을 높였다.이유영이라는 이름 세글자뿐이었지만 강이한이 지금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 또 이유영에 대해 얼마나 실망했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는 말투였다.“네가 보낸 물건들은 다 버렸어. 그리고 우리 월이 앞으로 보낸 자산들은 진우 시켜서 처리하고 있으니까 곧 다시 너한테 돌아갈 거야.”여전히 냉기가 서려 있는 이유영의 말에 숨이 막혀오던 강이한은 이제는 심장 언저리까지 아파왔다.“그거 월이한테 주는 거야.”“네 딸 아니니까 잊어.”강이한이 무슨 말을 해도 이유영의 태도는 변함없이 차가웠
“이름이 강소월이었지?”한참 만에 입을 연 강이한은 착잡한 마음으로 마음속에만 담아두었던 질문을 했다.강이한이 소월이와 가장 오래 같이 있어 본 건 바로 그 병원에서였다.하지만 그때는 이온유의 상황이 좋지 않아 아이의 수술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생각뿐이라서 소월이가 어떤 분유를 먹는지 어떤 이유식을 먹는지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았다.그리고 강이한은 이유식이 무엇인지도 사실은 몰랐었다.어린아이들이 먹는 음식이라는 말만 들어봤지 그게 실제로 어떤 건지는 본적도 없었다.“네.”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이시욱에 강이한은 흔들리는 눈동자로 창밖을 바라보았다.“월이... 이쁜 이름이네.”이유영이 낳아준 예쁜 딸이라 그런지 이름도 아이처럼 예쁘기만 했다.하지만 강이한이 아무리 깊게 숨을 들이마셔 봐도 답답한 마음만은 가시지 않았다.아니, 오히려 더 힘들고 아파오기까지 했다.“그럼 사모님 쪽은 어떻게 할까요?”이시욱 또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강이한을 향해 물었다.자신에게 닥칠 일을 걱정하지도 않고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이유영의 불안정한 상태를 알기에 이시욱도 걱정이 되긴 매한가지였다.이시욱의 질문에 강이한은 한숨을 앞세우며 말했다.“이미 오기로 했으니까... 그냥 내버려 둬.”사실 이유영이 강이한과 결혼할 때부터 그녀의 서주행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그저 강이한이 이유영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아 비밀로 해왔었는데 이젠 그마저도 헛수고가 되어버린 것이다.이유영은 결국 다른 방식으로 기어코 서주에 오고야 말았다.“월이도 데리고 온대?”아이 얘기를 꺼내자 그래도 핏줄이라 이건지 강이한의 마음은 아이를 보고 싶은 생각에 다시금 들끓기 시작했다.하지만 아이를 데리고 온다고 해도 이유영이 자신에게 보여줄 것 같지는 않았다.“그건 잘 모르겠는데... 제가 아는 사모님이시라면 혼자 오실 겁니다.”이유영이 위험을 무릅쓰고 서주로 왔다는 건 앞으로 일어날 일이 얼마나 험할지 각오가 되어있다는 뜻인데 이런 곳에 아이를 데리고 오는 것도 말이 안 되긴
후회라는 단어를 들은 이유영은 조롱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연준 씨 그런 조언도 할 줄 아는 사람이었어?”“...”옛일을 상기시키는 이유영의 말에 박연준은 머리가 아파왔다.살면서 부끄러운 짓은 하지 않았던 박연준이었지만 이유영한테 했던 짓만은 후회스러웠다.“근데 조언 필요 없어. 나도 충분히 많이 생각하고 결정한 일이야. 서주에 가서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난 괜찮아. 그러니까... 후회도 안 해.”마지막 한마디를 하기 전 이유영은 잠시 뜸을 들였지만 결국 말을 마무리 지었다.피하는 것 만으론 일을 해결할 수 없다면 그것의 근본이 되는 것부터 처리하면 될 일이었다.그러니까 이미 결심한 일에 대해 더 이상의 후회는 하지 않기로 했다.“유영아, 난 네 생각처럼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야.”이유영이 내뱉었던 첫마디에 대한 답을 이제야 한 박연준이었지만 이유영은 새콤한 레몬주스를 마시고는 박연준의 말을 듣지 못한 사람처럼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아무 말도 없이 구름만 바라보고 있는 이유영에 박연준은 못 말린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비행기에 타자마자 이유영은 월이가 보고 싶었다.강이한이 아이를 데리고 갔던 그 며칠을 떠올리자 이유영은 강이한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또다시 차오르는 것 같았다....그 시각 반산월에 있던 소은지는 정말 오랜만에 엔데스 현우를 만나게 되었다.엔데스 현우가 코트를 벗는 것을 본 소은지는 옷을 받아들려고 손을 내밀었지만 엔데스 현우는 소은지의 두 손을 보더니 바로 표정을 굳히며 코트를 소파 위로 던져버리고는 소은지의 허리를 감싸 안고 말했다.“왜...”“이런 일 안 해도 돼요.”무거운 엔데스 현우의 말투에 감정을 알 수 없는 표정까지 더 해지니 한없이 차가워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소은지는 이상하게 가슴이 뛰었다.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뛰는 심장에 소은지의 얼굴도 점점 달아오르고 있었다.옷을 받아드는 것 따위는 엔데스 명우에게 잡혀있을 때 가장 하기 싫어했던 일이었다.직장에서 인정받는 변호사였던 소은지는
“...”이건 그에게 있어서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었을 것이다.“아, 맞다. 하나 더 있어요.”“뭔데요?”“유영이가 말했는데, 나머지 서류는 확실히 강이한 손에 있대요.”소은지가 지현우를 보면서 얘기했다.말이 끝나자 지현우가 심상치 않은 반응을 보였다. “확실해요?”“네, 확신해요.”지현우의 눈빛이 더더욱 어두워졌다.그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소파 손잡이를 가볍게 두드렸다.온몸의 기운이 말라붙는 것만 같았다. 이윽고 지현우는 입꼬리를 올려서 웃더니 얘기했다.“지금 강이한과 서로 죽고 죽이는 사이가 된 모양이네요.”“그러게요.”소은지도 똑같은 생각이었다. 감정이 도대체 뭐길래, 사람을 이렇게 만드는지...처음에 이유영과 강이한의 사이는 아주 좋았다. 하지만 그때 소은지는 두 사람이 오래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여자의 촉은 무서운 경향이 있다.그때 강씨 가문의 사람들은 아주 무서워 보였다. 그러니 착하고 여린 이유영이 어떻게 그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소은지가 걱정했던 일은 실제로 일어났다. 이유영은 강씨 가문 사람들한테 괴롭힘을 받고 지금 이 모양이 되었다. 이유영과 강이한의 감정은 결국 이런 방식으로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지금의 이유영은 변했다.소은지는 현재의 이유영에게서 차가움을 느꼈다. 그녀의 두 눈에는 더 이상 온기가 없었다.소은지도 마찬가지였다.두 사람이 얘기를 나누는데, 집사가 갑자기 들어왔다.“일곱째 도련님, 사모님.”“무슨 일이죠?”“여섯째 도련님이 오셨습니다.”집사는 신중한 표정으로 얘기했다.요즘 들어 반산월의 사람들은 모두 엔데스 명우와 소은지의 사이를 알았다.두 사람은 매번 죽기 살기로 싸웠으니까 말이다.지현우는 소은지를 보면서 어두운 눈빛으로 물었다.“또 뭘 한 겁니까?”“아무것도 안 했어요."게다가 지금 소은지가 뭘 하든지 엔데스 명우는 곱게 보지 않을 것이다.“일단 올라가요.”지현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소은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은지도 명우를 보고 싶지
“우리 이혼해요.”격렬한 사랑이 끝난 뒤, 유영은 아직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달뜬 목소리로 덤덤히 말했다.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탐스럽게 상기된 볼을 살짝 가렸다. 그녀의 두 눈은 더 이상 빛나지 않았고 표정은 처량했다.남자가 옷을 갈아입는 소리가 들렸다. 술을 잔뜩 마시고 돌아와서 씻지도 않고 그대로 침대에 몸을 던지고 욕구를 방출시킨 남자, 그 어디에도 유영에 대한 존중은 없었다.10년을 사랑했지만 이제 더 이상의 미련은 남지 않았다.단추를 잠그던 강이한의 손이 움찔하더니 날카로운 시선으로 유영을 노려보았다.“갑자기?”“네.”유영의 말투는 단호했다.말을 마친 그녀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기억을 더듬어 화장실로 향했다.강이한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다가 천천히 다가가서 그녀를 부축했다.“손 이리 줘봐.”탁!유영은 매몰차게 그 손길을 뿌리쳤다.하지만 힘 조절을 잘못해서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저리 치워요. 당신 도움은 이제 필요 없어. 더러워.”이 남자와 같은 지붕 아래 숨 쉬고 있는 것 자체가 거북하고 불쾌했다.강이한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그는 허공에 손을 내민 채, 신경질적으로 유영을 노려보았다.지금 나한테 더럽다고 한 건가?유영은 바닥을 더듬으며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샤워기를 틀고 뜨거운 물로 몸에 남은 그의 흔적을 씻어냈다.할 수만 있다면 그의 손길이 닿았던 피부를 모두 도려내고 싶었다.욕실에서 나온 그녀는 벽을 더듬으며 옷장으로 향했다. 시력을 잃게 된 시간이 길지 않아서 암흑 같은 이 세상이 아직 적응이 되지 않았다.유영은 손끝에 닿은 느낌을 따라 옷 한 벌을 꺼내 입고는 호적 등본을 챙기고 그에게 말했다.“지금 법원으로 가요.”“이유영.”강이한이 이를 갈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그는 벌떡 일어나서 여자에게 다가가 그녀의 멱살을 잡았다.“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야? 이런 모습으로 나랑 이혼하면 어떻게 살려고 그래?”그녀는 가진 게 없었다
또각또각.익숙한 하이힐 소리가 코를 찌르는 향수 냄새와 함께 가까워지고 있었다.한지음!강이한의 첫사랑이자 그녀의 망막을 가져간 여자.유영은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그여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고용인 부를 필요 없어. 내가 이미 불렀으니까.”자기가 뭐라도 되는 양, 의기양양한 말투.“여긴 왜 왔어?”유영이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이미 모든 걸 잃은 그녀에게 또 뭘 바라고 온 것일까?한지음은 그녀의 싸늘한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벼운 말투로 그녀에게 말했다.“전해줄 말이 있어서 왔어. 좋은 소식이랑, 나쁜 소식이 있는데 어느 것부터 들을래?”유영은 고개를 돌려버렸다.“너 임신했더라.”유영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한지음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물론 이한 씨는 이 아이를 낳으라고 하지 않을 거야. 나도 임신했거든.”쿵!차분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던 유영의 얼굴에 금이 갔다.‘강이한, 이런 거였어?’혈색을 잃은 그녀의 얼굴은 파리하게 질렸고 휠체어 손잡이를 잡은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유영은 치미는 분노를 꾹 참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 여자는 자랑하러 온 것이다. 이미 모든 걸 잃었는데 마지막 자존심은 지켜내고 싶었다.그녀는 길게 심호흡하고 애써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그래? 어제 그 사람한테 내가 이혼하자고 했는데 싫다고 하더라?”그 말을 들은 한지음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유영도 그녀의 기분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비틀어 올리고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내 망막까지 빼앗아 가고 임신까지 했는데 그래서 뭐? 그이는 네가 이 집의 안주인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나 봐.”강이한을 좋아해서 한지음을 미워하는 건 아니었다. 단지 이 여자에게 더 이상 짓밟히고 싶지 않은 자존심이었다.강이한과는 이미 끝내기로 했지만 집까지 찾아와서 자신을 도발하는 여자에게 가만히 당하고 싶지도 않았다.“하, 그래서 이한 씨가 널 사랑한다고 말하고
“악!”유영은 비명을 지르며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마에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고 있었다.피부에서 아직도 뜨거운 작열감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남자의 거친 손이 다가와서 그녀의 허리를 껴안았다. 익숙한 향기가 코끝에 전해졌다.“꿈꿨어? 조금만 더 자자.”유영은 움찔하며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고개를 돌려 보니 강이한의 준수한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유영은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머릿속이 하얘지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앞이 보여? 이게 어떻게 된 거지?’눈을 다시 감았다 뜨니 햇살이 비쳐 들어오는 창문이 보였다.천장, 커튼, 그리고 익숙한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왔다.설마?그녀는 남자의 손길을 뿌리치고 몸을 일으켜 핸드폰을 찾았다. 날짜와 시간을 확인해 보니 화재가 일어나기 몇 개월 전으로 돌아와 있었다.회귀… 한 건가?강이한은 뒤척이는 소리에 불만스럽게 눈을 떴다.“아침부터 왜 이래?”그러거나 말거나 유영은 핸드폰에 찍힌 날짜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 여자가 납치하기 전 날로 돌아와 있었다.“당신 왜 그래?”그녀의 이상한 반응에 남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재차 물었다.유영은 남자를 내버려두고 욕실로 들어가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젖살이 채 빠지지 않은 통통한 볼이 눈에 들어왔다.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손을 뻗어 자신의 얼굴을 매만졌다.화상 자국이 있어야 할 팔뚝도 말끔했다.아직도 불길이 자신을 덮친 그날의 느낌이 생생한데 그녀는 그 사고가 있기 전으로 돌아와 있었다.유영은 바닥에 앉아 양팔로 자신을 껴안고 중얼거렸다.“유영아, 하늘이 널 불쌍히 여겨 기회를 준 거야.”욕실을 나선 유영은 침대로 다가가서 남자를 내려다보았다.“우리 이혼해.”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싸늘한 목소리에 강이한이 벌떡 일어나며 그녀를 노려보았다.“지금 뭐라고 했어?”“은지한테 부탁해서 이혼 서류 준비시킬 거야. 못 믿겠으면 당신도 변호사 불러.”“대체 아침부터 왜 이러는 거야?”강이한은 이 상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