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에서, 이유영과 강이한 두 사람만 남았을 때, 이유영은 한순간도 빠짐없이 눈앞에 있는 남자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그녀는 강이한의 표정을 읽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이때 그녀는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었다.유독 강이한에게서 냉랭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는 것만 느낄 수 있었다.탁탁! 라이터를 켜는 소리가 들리더니 뒤이어서 짙은 가솔린 냄새가 뿜어져 나와 이유영은 눈을 꾹 감았다.그리고 한순간 그녀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얘졌다.이유영은 강이한이 줄곧 이런 라이터를 쓰기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괴이한 고요함 속에서 이유영은 전생의 가솔린 냄새가 떠올랐다... 그건 그녀가 이 남자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었다.강이한은 세게 담배 연기를 두 모금 들이켜더니 입을 열었다.“그 애는 아무것도 몰라.”그 애는 이온유를 말하는 것이었다.“뭘 모른다고?”“기억이 있고부터 한지음은 단 한 번도 아이를 만나준 적이 없었어. 애는 줄곧 박연준의 손에 공제 당하고 있었어.”“...”‘박연준!?’강이한은 마치 고의로 이 이름을 이유영에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강이한의 뜻대로 이유영은 그 이름을 듣자마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그 순간, 이유영은 박연준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마치 자신의 멍청했던 과거를 일깨워주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당신 지금 나한테 우쭐대는 거야?”이유영은 콧방귀를 뀌었다.박연준이 도대체 왜 이유영의 세상에 나타나게 되었는지 따지고 보면 다 눈앞의 이 남자 때문이었다.강이한의 눈빛은 더욱 차가워졌다.“이유영.”“당신도 그 사람처럼 좋은 놈이 아니잖아. 모든 책임을 다 그 사람한테 떠넘길 필요는 없어...”“너...”강이한은 입가까지 나온 말을 도로 삼켰다.이유영의 눈빛을 보며 원래 싸늘했던 그의 태도는 후에 몇 푼 사그라들었다.그는 입가에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당신 말이 맞아. 나도 그 사람과 마찬가지로 좋은 놈은 아니야!!”만약 진짜 상처를 준 정도만 따지고 보면 강이한이 이유
“...”“내가 그 애의 마음속에서 어머니 같은 존재라고? 왜 어머니 같은 존재인데!?”‘왜? 그게 진짜 아이의 마음속 생각일까?’“유영아, 아직 아이잖아. 우리가 지금 얘기하는 건...”“당신 지금 얘기를 하는 거 맞아? 지금 날 비난하는 거잖아!”강이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유영은 바로 그의 말을 끊어먹었다.그랬다. 이건 얘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비난이었다.이곳에 들어오고부터, 강이한은 먼저 이유영이 그 애의 마음속에서 어떤 존재인지, 그다음은 보육원 얘기였다.‘이것들이 다 비난이 아니고 뭐야?’“당신은 무슨 자격으로 날 비난해?”이유영은 자리에서 슉 일어나 바로 몸을 돌려 나갔다.강이한은 제자리에 앉은 채 온몸은 얼음처럼 굳어버렸다!그랬다. 이유영의 말이 맞았다....!강이한은... 그녀를 비난할 자격이 없었다.문 앞까지 걸어간 이유영은 발걸음을 세우더니 고개를 돌려 말했다.“강이한, 다시 한번 경고하는데 우리 이혼했어!”“...”“그래서 내 인생에서 내가 뭘 하든 무슨 잘못된 선택을 하든, 그건 다 내 일이야. 당신이랑 상관이 없어!”예를 들어 아이의 일에서도 그렇다.‘내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내 행동이 한 아이에게 너무나도 잔혹하다고? 강이한... 당신이 그렇게 말할 자격이나 돼? 고작 당신과 한지음의 관계 때문에?’이유영이 다시 발걸음을 떼서 나간 지 두 발짝 안 되었을 때, 뒤에서 강이한의 인내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한지음이 당신을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 알기나 해?”“...”‘한지음이 날 위해서?’ 이유영이 아니꼬운 말을 꺼내기도 전에 강이한은 계속 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한지음이 죽었잖아. 당신은 그렇게 걔 아이를 대해서는 안 돼.”강이한의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이유영이 반응을 하기도 전에, 그녀는 강이한의 품에 들어갔다. 강이한은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이유영의 눈가를 살랑살랑 어루만졌다.아주 부드러우면서 가슴을 아프게 하는 그런 세기였다.전생에 이유영은
이유영은 자기가 어떻게 도원산에서 빠져나왔는지도 몰랐다. 이시욱이 차를 몰고 그녀를 바래다주었다.차 안에서 이유영은 강제적으로 이온유가 자기를 안고 있던 장면을 머릿속에서 떨쳐내고는 루이스와 소은지에게 연락을 시도하였다.하지만 전화는 끝내 통하지 않았다.결국 이유영은 전화를 엔데스 명우에게 걸었다. 생각 밖에도 엔데스 명우는 순조롭게 연락이 닿았다...현재 두 사람 모두 파리에 있다.전에 그렇게 골치 아픈 매달림은 결국 이유영의 한 수에 물리쳐졌다. 그 후로 두 사람이 연락 안 한 지 거의 3, 4개월이 되었다.하지만 다시 연락하는 건 결국 여전히 소은지 때문이었다.“여보세요.”“저예요.”“오호?”전화 반대편에서는 그윽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유영이 자기를 연락할 거라는 것을 미리 짐작한 것이 분명했다!“당신이 은지를 찾아냈어요?”“나랑 당신의 약속은 단지 우리 둘 사이에 결혼이 정해졌을 때잖아요. 지금은 결혼도 취소되었으니 나도 당연히 그 약속을 지킬 필요가 없잖아요.”무슨 약속? 그건 이유영이 엔데스 명우와 결혼을 해주면 그는 자기 주변의 모든 여자를 다 풀어주겠다고 한 약속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소은지도 포함되어 있었다.이유영은 이런 방법으로 소은지를 구해냈던 것이었다.“만나서 얘기하죠!”전화로는 도저히 제대로 얘기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하지만 전화 반대편에서는 엔데스 명우의 경쾌한 웃음소리가 들렸다.“이렇게 늦은 밤에 남자를 만나러 나오는 것에 강 도련님이 동의해요?”‘강 도련님?’강이한 얘기를 안 하면 모를까, 이 남자 얘기가 나오자마자 이유영은 어디서부터 화를 내야 할지 몰랐다.이혼을 한 후로, 두 사람은 원래 두 개의 평행 직선처럼 서로 아무런 접점이 없어야 했다.하지만 강이한 이 남자, 전에는 한지음 때문에 이유영을 놔두지 않았고 지금은 또 한지음의 딸 때문에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아무리 성질이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이 정도로 당하면 짜증을 내는 것도 정상이었다.이유영은 이 일에 있어서
전에도 엔데스 명우가 소은지를 아주 막 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엔데스 명우가 소은지에게 손을 댈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지금 이게 뭐야?’이 순간 이유영은 도무지 무슨 말로 설명을 해야 할지 전혀 몰랐다.“아니야. 네가 오바하는 거야. 이건 때린 게 아니야!”“그럼 이건...”순간 이유영은 무언가가 떠올랐다.소은지의 눈에 드리운 굳건함과 교만함을 보며, 이 순간 이유영은 정말 무슨 말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아이는?”이유영은 소은지의 평평한 아랫배를 보며 물었다.시간을 계산해 보면 만약 지금 아이를 뱄다면 어느 정도 배가 나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소은지의 배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이 말에 소은지는 고개를 떨구었다.그녀는 유달리 평온한 말투로, 심지어 아무런 감정도 없이 말을 내뱉었다.“지웠어!”이유영은 침묵했다.이건 이미 예상한 결과였다.이유영은 계속해서 물었다.“그럼, 그 사람 아이를 지운 것 때문에 너한테 무슨 짓을 하진 않았지?”“그놈이 원했던 일이라 걔가 제일 좋아할걸!”이유영은 다시 침묵했다.그리고 그녀는 가슴이 조금 막혔다.소은지는 아주 평온해 보였다. 특히 이유영 앞이라, 이유영은 소은지가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은지야, 내가 알아서 안배...”“유영아.”이유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소은지는 그녀의 말을 끊어버렸다.“...”소은지는 고개를 들어 이유영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앙상한 작은 손으로 살랑살랑 이유영의 정교하게 파마한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의 손은 그토록 차가웠다.소은지는 그저 입을 열고 말했다.“나랑 그 사람 사이의 원한은 내가 잘 정리하지 못하면 평생 나를 따라다니는 그림자가 될 거야. 그 누구도 날 도와줄 수 없어.”이 말에 이유영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녀는 소은지의 말뜻을 잘 알아들었다.그리고 소은지의 말도 다 사실이었다!전에 이유영이 루이스더러 소은지를 데리고 도망치라고 안배했건만 결국 그들은 이유영이 모르는 사이에 엔데
이유영은 자기가 어떻게 별장에서 걸어 나왔는지도 모른다. 소은지는... 지금 엔데스 명우가 그녀의 인신 자유를 제한하지 않았다고 했다.그저 자기가 나오기 싫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그렇긴 하지. 그 남자 곁에서 그렇게 불명예스러운 명분이 씌워졌는데, 심지어 그토록 도도하고 교만하던 은지가 밖으로 나오긴 싫을 수도 있지.’반산월로 돌아온 이유영은 온밤 제대로 자지 못했다. 아침이 되었을 때, 이유영은 임소미의 전화를 받고 머리가 조금 띵해졌다!전화에서 임소미는 바락바락 화를 내며 말했다.“강이한 어디 정신 나간 거 아냐? 그놈이 무슨 자격이 있다고 널 그렇게 대해?”임소미는 화가 단단히 났다!강이한이 이온유를 입양하고도 이유영에게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안 임소미는 화가나 미칠 것만 같았다.“됐어, 외숙모!”자기를 위해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외숙모의 말소리를 들으며 이유영은 마음속이 따뜻해 나는 것만 같았다.하지만 임소미는 정말 화가 많이 났다.“예전에 그 여자가 살아있을 때도 네 인생을 엉망으로 휘저어놓더니 지금 죽어서는 그 딸이 계속해 나가네!”‘이건 젠장 누가 감당할 수 있나!?’임소미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도대체 강이한은 왜 이렇게까지 이유영에게 집착하는 것인가?’“모든 것은 다 그 사람의 선택이에요!”이유영은 깊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전혀 아무렇지 않다는 말투로 말했다.하지만 전화 반대편의 임소미는 이 말을 듣고 갑자기 멈칫했다.그러고는 그저 말했다.“네 말이 맞아. 그건 다 사람의 선택이지!”시작이었던 아니면 지금이었든, 그 사람의 선택은 시종일관 한지음이었다.이유영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자, 임소미는 그제야 조금 마음이 놓였다.어찌 됐든 임소미는 그저 이유영이 무사하게 있으면 되었다!임소미가 전화를 끊고 나서 이유영은 저린 미간을 살짝 주물럭 했다.비록 외숙모 앞에서는 쿨한 척 편하게 얘기했지만 그건 그저 외숙모가 자기를 걱정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사실... 이유영도 마음이 엄청 복잡했다.강이한
아침을 먹고 난 뒤, 이유영은 최익준이 운전한 차를 타고 외출했다.길에서 한 국제 유치원을 지날 때, 이유영은 입을 열고 말했다.“잠시만요!”최익준은 차 속도를 늦추고 차를 길옆에 댔다. 이유영은 웅장한 유치원의 외관을 유심히 눈여겨 보였다. 그동안 이유영은 알게 모르게 자꾸 유치원을 유의하게 되었다.비록 이유영의 아이가 학교에 가려면 아직 한참 멀었지만, 어머니의 마음은 항상 그랬다. 어머니가 되기 전까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어머니가 된 후에는 모든 것들은 다 아이를 위주로 생각하게 되었다.이유영도 이미 차근차근 유치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그녀도 다른 어머니들과 마찬가지로 자기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자기의 아이에게 제일 값진 것을 주고 싶었다.“이 유치원은 파리에서 아주 유명한 유치원이며 파리 중심초등학교 산하의 겁입니다.”“공립인가요?”“안의 시설들은 다 사립 유치원의 표준대로 되어있습니다. 게다가 교사 자원도 일반적인 사립학교보다 좋다고 합니다.”‘그렇다면 이곳이 진짜 파리에서 제일 좋은 공립 유치원이란 말이네.’이 시간대는 마침 아이들이 등원하는 시간이었다.이유영은 아이들이 신나게 차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보면서 머릿속에는 이미 자기의 꼬맹이가 차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이 유치원의 입학 조건을 좀 알아봐 주세요.”“걱정하지 마십시오. 만약 작은 아가씨께서 여기로 돌아와서 학교에 다니면 무조건 이곳에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최익준은 웃으며 대답했다.이유영은 고개를 끄덕이었다.그리 급한 건 아니었다. 필경 아이가 아직 많이 어리니까...이유영은 오히려 아이가 좋은 어린 시절을 보냈으면 했다. 왜냐하면 일단 학교에 들어가는 이상 미래의 오랜 시간은 다 학교에서 학업을 위주로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코너를 돌아 들어가면 바로 이 유치원과 연결된 초등학교였다.아니나 다를까, 역시 파리에서 제일 좋은 학교다웠다...아이들이 고급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며 이유영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역시, 세상에는 부자들이..
이유영이 사무실로 돌아오자, 안민은 서류를 한 아름 안고 들어왔다. 산더미같이 쌓인 서류들을 보니 이유영은 그제야 갑자기 월초라는 것이 떠올랐다!매달 월초가 되면 처리해야 할 서류가 태산이었다.“안민 씨.”“네, 대표님!”“3일 후의 비행기표를 예약해 주세요. 퀘벡으로 가는 거, 비밀스럽게!”이유영은 안민에게 일을 맡겼다.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는 강이한이 이온유를 데리고 학교 문 앞에 나타난 장면이 떠올랐다. 이 개같은 자식이 당분간은 파리를 떠날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이뿐이 아니라 그는 이온유를 이곳에서 학교를 다릴 수 있게 하였다.그럼, 이유영은 당연히... 자기의 아이를 파리로 데려오지 않을 생각이었다.아이가 없을 때도 강이한은 영문도 모르게 자꾸 이유영에게 집착하는데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강이한이 더욱 난리를 피울 게 뻔했다.“네!”안민은 고개를 끄덕이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이유영이 마음 아팠다.왜냐하면 이 3일 동안 이유영은 무조건 회사에서 밤낮으로 야근해야 할 게 분명했다.이유영은 머리를 박고 열심히 일을 했다. 오전에 소군리가 왔지만, 이유영은 너무 바쁜 나머지 대접할 시간도 없었다!소군리는 아주 유명한 정형외과 의사 한 분이 지금 파리에 와 계시는데 이유영이 시간을 내서 한번 만났으면 한다고 했다!이유영은 여전히 같은 대답이었다.“옷을 입고 있으니 다른 사람이 볼까 두렵지도 않아요.”아주 대수롭지 않은 태도였다.그리고 정말 그 흉터들은 수술로 지울 생각이 없어 보였다,‘그래도 이 말은 너무 거친 거 아닌가?’“당신이란 여자 정말 약도 없네!”소군리는 지금 도무지 이유영에게 뭐라 얘기해야 할지 몰랐다.“됐고 지금 제가 한창 바쁜 거 안 보여요?”퀘벡으로 가려는 계획 때문에 이유영은 지금 손에 쌓인 일들은 다 처리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랐기에 소군리를 대접할 시간이 전혀 없었다.소군리는 사리 구분 못하는 이유영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이후에 정 회장님께서 또 나더러 당신에게 의사 선생님을
사실 열 살짜리 아이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유영이 보기엔, 이 순수함은... 깨끗하지 않았다.왜냐하면 10살짜리 한지음은 마음속에 아마 이유영에 대한 미움으로 가득 차서 어떻게 하면 이유영에게 복수를 할까 계산 중이었을 것이었다.쿵 소리와 함께 도시락통은 카펫 위에 떨어져 둔탁한 소리를 냈다.그리고 도시락통의 뚜껑이 떨어지면서 열려 안에 든 음식들이 데구루루 굴러 나왔다. 음식에서는 모락모락 김도 나고 있었다.순간 사무실 내 분위기는 쥐 죽은 듯 조용해지더니 뒤이어 싸늘해졌다!이온유는 바닥에 떨어진 도시락통을 보고는 또다시 이유영을 보더니 순간 눈에는 눈물이 글썽해졌다. 그리고 뒤돌아 강이한에게 달려갔다.강이한은 아이를 와락 품속에 안았다.이유영은 강이한의 싸늘한 얼굴색에 두피가 저렸다.이유영의 실수였다...그녀는 서류를 꺼내던 중 실수로! 자기를 싸늘한 눈빛으로 보고 있는 강이한을 보니 이유영은 미안하다는 말이 목구멍에 막힌 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싸늘한 침묵으로 변했다.‘뭐라고 설명해?’강이한과 이유영 사이의 오해가 적지 않았다.강이한은 냉랭하게 이유영을 한눈 보고는 아이를 데리고 뒤도 안 돌아보고 밖으로 나갔다... 차가운 발걸음 소리는 마치 이유영에게 실망을 말하는 것만 같았다.“쳇!”이유영은 콧방귀를 뀌었다.얼굴에는 더할 나위 없이 짜증으로 가득했다.안민이 들어올 때 지저분한 바닥을 보면서 말했다.“대표님!”‘아니, 이건... 아까 꼬맹이 품속에 도시락통을 안고 있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왜 다 바닥에 떨어진 거지!?’“앞으로 이런 상관없는 사람들은 들여보내지 마세요.”이유영은 차갑게 말했다.여기서 강이한과 이온유를 만난 것에 대해 엄청나게 불쾌해하는 게 분명했다.안민은 잠시 멈칫하더니 입을 열고 대답했다.“하지만 회장님께서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앞으로 강 도련님 오시면 막지 말라고 했습니다!”“외삼촌이요?”“네.”“그래도 그건 이온유가 없을 때 얘기죠.”이유영은 버럭 화를
강이한 때문에 이유영은 이미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는데, 박연준 역시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였다.특히 소은지가 연서의 존재를 알게 된 후부터는 더욱 그렇다. 박연준과 강이한이 이유영에게 어떤 보호를 해주었는지와 상관없이 이유영은 그 둘에게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원했다.그 이유는 그들이 이유영에게 접근한 이유가 처음부터 너무나도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이유영이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는가?자존심 강한 이유영은 진영숙의 억압 속에서도 강이한을 위해 참았지만, 이제 더는 참을 이유가 없었다.이유영의 현재 모습이 바로 그 고통스러운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다.…소은지가 부엌으로 간 사이, 박연준은 이유영의 손을 거칠게 잡아끌었다. 이유영은 손을 빼려 했지만 박연준은 더욱 힘을 주었다.“박연준!”이유영은 눈살을 찌푸리며 목소리를 높였다.박연준은 이유영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답답한 듯 말했다.“대체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박연준의 질문은 이유영의 마음을 더욱 흔들었다.어떻게 하면 좋을까?이미 다 설명했는데, 왜 이유영은 서로 힘들게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아무것도 할 필요 없어!”이유영의 차가운 대답은 박연준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요즘 이유영은 박연준이 무슨 말을 하든, 무슨 행동을 하든 항상 차가웠다. 마치 높은 벽을 쌓아놓은 듯, 넘어설 수 없을 만큼 차가운 태도였다. 박연준은 이유영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괴로워했다.이유영은 냉담한 시선으로 박연준을 바라보며 말했다.“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어.”박연준은 말없이 이유영을 바라보았다.이유영의 차가운 말에 박연준의 끈기와 노력은 무너져 내렸고 결국 그는 답답한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섰다.“오늘, 약 먹고 어땠어?”박연준은 다시 물었다. 하지만 이유영이 대답하기 전에 박연준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유영아, 진심으로 대답해 줘. 네 건강과 관련된 문제야.”박연준은 이유영이 진심으로 이야기해 주기를 바랐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아무런 느
현우에 대한 생각은 소은지와는 달랐다.그들 사이의 관계는 처음부터 그런 방식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강제로 바꿀 수는 없었다.또한 그녀와 엔데스 명우의 관계는 그녀의 인생에서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치욕이었다.온몸이 더럽혀진 자신이 어떻게 그런 아름다운 남자, 현우와 어울릴 수 있겠는가?그는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존재였고, 그녀는 그에게 손을 내밀 자격도 없었다....소은지는 이유영의 곁으로 다가갔다.파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이유영에게는 그것이 마치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정확히 일주일이 지났고 소은지는 우천시의 날씨가 생각보다 불편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여기는 정말 비가 자주 오네.”소은지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지는 비 오는 느낌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 기분은 정말 좋지 않았다.이유영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시간이 지나면 마음도 답답해지곤 해.”처음 이곳에 왔을 때, 밤에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는 게 좋았다. 이런 곳에서 자면 꽤 편안함을 느꼈었다.하지만 밤이 되자, 소은지는 바로 이유영의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여기 밤에 정말 추워!”소은지는 이불을 두 겹 덮어도 여전히 추웠다.사람들은 우천시가 살기 좋은 곳이라고 했지만, 소은지는 이곳이 춥기만 했다. 여름밤에도 이불을 덮고 자야 한다니. 겨울이 오면 이곳 날씨는 정말 아무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소은지는 이곳이 벌써 싫어졌다.이유영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넌 정말!”그 목소리에는 살짝 애정 어린 톤이 담겨 있었다. 소은지는 이유영을 보며 말했다.“요즘 너 기분이 훨씬 좋아진 것 같아.”소은지는 이유영의 세상이 정말 간단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도 그녀의 부모님이 그녀를 그렇게 보호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그리고 박연준과 강이한 덕분에, 그녀는 비록 눈은 보이지 않지만 서주나 파리 어디에서도 그녀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이 없었다.이유영은 대답했다.“네가 왔으니까, 당연히 행복하지.”“그렇구나.”소은지
소은지는 이유영이 어둠 속에서 익숙하게 그릇을 들고 숟가락을 집어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며, 마음속에서 더 깊은 안타까움과 아픔을 느꼈다.“그 사람은... 떠났어?”그는 강이한을 말한 거였다.박연준은 아침에 이유영과 불편한 대화를 나눈 후, 일 보러 밖으로 나갔다.게다가 엔데스 회장의 별세는 서주에 상당한 충격을 주었고, 박연준은 이유영 곁에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를 둘러싼 일이 정말 많았다.“응.”이유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소은지는 말없이 이유영을 바라보았고 눈빛은 더욱 깊어져 갔다.여기에 오고 나서, 현우의 사람들은 이곳 주변이 아주 평온하다고 했다. 확실히 이곳은 아무도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안전한 곳이었다.소은지는 송연미의 말을 떠올렸다. 송연미는 그 이유를 말하길, 이유영 뒤에 있는 박연준과 강이한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그들이 엔데스 가문이 원하는 중요한 것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엔데스 가문 사람들은 이유영을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그와의 관계는 정말 끝난 거야?”소은지가 이유영에게 물었다.“응.”이유영은 아주 간단하게 답했다. 마치 그들 사이에 깊은 감정이 전혀 없었던 것처럼.그녀의 한마디는 그렇게 단호했다. 그 말은 마치 그들 사이에 애초에 아무 감정도 없었다는 듯이, 끝났다는 말조차 아무 감정 없이 무덤덤하게 말하는 듯했다.소은지는 웃었다.“예전부터 난 네가 행복하기만 바랐어, 강이한과 멀리해.”“맞아, 그때 넌 모든 걸 다 알고 있었지.”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유영은 그 가운데서 무엇도 보지 못했다.소은지는 여러 번 말했었다. 여자가 감정에 휘둘리면 이성이 사라진다고.그러나 그때의 이유영은 소은지의 조언을 듣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강이한에게 큰 상처를 받게 되었다.만약 그때 소은지의 말을 들었더라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처럼 이렇게 고통스러운 결말을 겪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은지야.”“응?”“엔데스 가문의 남자들, 조심해.”이유영은 소은지를 향해 깊고
박연준은 어둠 속 이유영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꼭 괜찮아져야 해...”그 말은 깊고 아픈 감정이 담겨 있었다.마치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듯한 말이었다.이유영은 비 내리는 소리에 집중하며 박연준의 어떤 질문에도 답하지 않았다. 강이한이 떠난 이후, 그들 사이의 관계는 언제나 이렇게 차가웠다.“탁탁탁!”하이힐 소리와 바퀴 소리가 뜰에서 울려 퍼지자 이유영은 미간을 찡그리며 일어섰다.“소은지 씨입니다.”이유영의 얼굴에 당황함이 스쳐 지나자 우지는 급히 이유영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누구도 알지 못했다.하이힐 소리가 들렸을 때, 이유영의 마음속에 느껴진 감정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괴로웠다.홍문동이 불타던 그날도 이유영은 그 하이힐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후로 어둠 속에서 그런 소리를 듣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그것은 차가움의 상징처럼 느껴졌고 이유영에게 공포로 다가왔다.우지가 소은지라는 이름을 언급했을 때, 이유영은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소은지가 왜 여기에 온 건지 의문이었다.“유영아.”소은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은지야.”이유영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맞아, 나야.”“왜 갑자기...”소은지의 예고 없는 방문에 이유영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지금 이유영에게 가장 답답한 일이 바로 소은지에게 일어난 일이었다. 그녀는 소은지를 돕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 답답한 마음이 이유영을 괴롭게 했다.“현우 씨가 너한테 가라고 해서 왔어.”소은지가 말했다.그 말이 끝나자, 소은지는 이유영의 곁으로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차가운 손은 약간의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이유영은 소은지의 손을 반대로 잡으며, 현우가 소은지를 보낸 것이라면, 아마 엔데스 명우는 이 시점에서 매우 바쁜 상황일 것임을 짐작했다.이유영은 소은지가 안쓰러웠다.소은지 역시 이유영의 텅 빈 눈을 보며 가슴 속에서 숨 막히는 고통이 퍼졌다. 현우가 이유영의 시력이 거의 없다고 말했을 때는 그저 듣기만 했지만, 이유영이 정말로 보
시간이 지나면서 이유영의 마음속에는 어쩔 수 없이 우울함이 서려 있었다. 이유영은 이런 기분이 싫었다.“오늘은 어때?”한 남자가 그녀의 옆에 나타나 덩굴 의자에 앉았다.이유영은 이미 이 의자의 냄새에 익숙해졌다.익숙함, 그건 정말 무서운 것이었다. 처음 여기 왔을 때는 모든 것이 낯설었고 의자나 의자에 앉을 때마다 딱딱한 느낌만 들곤 했다.강이한이 이유영을 위해 덩굴 의자를 가져다주었고 그 위에 부드러운 쿠션을 깔아 주었다. 이유영은 덩굴 의자에서 나는 냄새가 좋았다.화려한 소파는 아니지만 그 자리는 이유영에게 편안함을 주었다.그러나 박연준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그녀의 얼굴은 차가워졌다.“아니.”이 대답은 언제나 같았다. 그는 매일 아침 마치 일과처럼 그녀에게 묻곤 했지만 여전히 같은 대답만 했다.이유영은 남자의 기운이 조금 더 강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염 선생은 의술이 뛰어난 분이시니 걱정하지 마. 스트레스를 받으면 오히려 몸 상태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까.”박연준은 사람을 위로하는 거에 익숙하지 않았다. 이유영이 이렇게 오랜 시간 약을 복용했음에도 전혀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자 마음이 조금 다급해졌다.남자의 말을 듣고 이유영은 깊은숨을 들이쉬며 말했다.“이제 바로 네가 보고 싶었던 거 아니야?”“...”그 말을 들은 박연준의 마음은 점점 더 조여왔다.“유영아, 내가 너한테 무엇을 원하는지 너도 알잖아. 왜 이렇게 날 비꼬는 거야?”맞다, 이유영은 알고 있었다.이유영이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강이한과의 관계가 그렇게 엉망이 되어 버린 사람도 결국 중요한 순간에는 한 편에 서 있었다.그들이 이유영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녀는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우리 이러지 말자, 응?”박연준의 목소리는 씁쓸했다.박연준은 한때 이유영과의 관계가 이렇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박연준의 마음은 점점 더 조여오고 있었다.이유영은 차갑게 대답했다.“괴롭다면 떠나도 좋아.”이유영의 분위기와 태도는 박연준의 마음을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한쪽은 날카롭고 잔인했고 다른 한쪽은 두려움 없는 조롱을 던졌다.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소은지가 딱 그랬다.엔데스 명우가 아무리 강압적이고 위압적인 인물이라 해도 소은지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소은지의 눈빛에 비친 두려움 없는 모습이 그의 마음을 더욱 자극했다. 차라리 그녀의 눈을 빼버리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야만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여섯째 도련님!”여섯째 도련님이라니.엔데스 명우는 처음으로 이런 모욕감을 느꼈다. 그전에는 감히 아무도 그러지 못했다.특히 여자들은 그에게 끊임없이 구애했지, 감히 이렇게 대들지 못했다. 소은지는 정말 대단했다.남자는 소은지의 뺨을 찰싹찰싹 때리더니, 돌아서며 말했다.“소은지, 기다리고 있겠어.”“...”“현우가 너를 버리는 날을 기다리고 있을게.”남자의 목소리에는 즐거움이 묻어났다.마치 그 일이 눈앞에서 곧 벌어질 것처럼.남자가 더 말하지 않아도 소은지는 알 수 있었다. 일단 현우가 그녀를 버리면,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엔데스 명우의 무자비한 복수뿐이었다.그들의 앙숙 관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오히려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하지만 소은지는 이 사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고 마치 두려움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남자가 문까지 가다가 발을 멈추고 살짝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넌 엔데스 가문 남자들을 너무 쉽게 생각해!”심지어 너무 착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하지만 그들은 늑대들이었다...마지막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남자들. 소은지는 그들 사이에 갇혀 이제 더 이상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소은지는 그 자리에 서서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엔데스 명우가 떠나고 소은지의 얼굴에는 짙은 어둠만 남아 있었다......파리는 지금 가장 중요한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엔데스 현우는 사람을 보내 소은지를 전용기를 태웠다.비행기가 밤하늘로 날아오르는 순간, 소은지는 파리
“가고 싶어?”“가면 안 돼?”소은지는 차갑고 비꼬는 표정으로 엔데스 명우를 바라보았다.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남자는 빠르게 다가와 그녀의 목을 강하게 움켜잡았다. 목이 부서질 듯한 압력이 느껴졌다.소은지의 등이 차가운 벽에 밀쳐졌고 집사와 하인들이 다가가려 하자 남자가 고함쳤다.“다 꺼져!”집사와 하인들은 그 자리를 떠날 용기가 나지 않아 얼어붙어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두려운 것이었다.“나가세요.”이 남자가 미친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소은지의 눈빛에는 오히려 두려움이 없었다.집사와 하인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머뭇거렸다. 나갈 수도, 안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소은지는 목소리를 높여 다시 말했다.“다들 나가세요!”“...”사모님의 엄한 명령에 마음이 조여왔지만 결국 모두 급히 자리를 떠났다.엔데스 명우와 소은지만 남았을 때, 소은지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증인들은 다 나갔어. 네 마음대로 해.”소은지는 아무런 두려움 없이 엔데스 명우를 바라보았다.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 표정은 예전에 그와 함께 있을 때와 똑같았다. 그가 아무리 고문해도 그녀는 항상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었다.명우가 소은지를 가장 아프게 해도, 소은지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행동했다.마치 그녀의 세계에는 고통도 두려움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소은지에게는 약점이 없었다.한때 엔데스 명우는 이런 여자가 길들여지면 엄청난 성취감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녀의 교만한 뼈 구조마저 너무 미워서 하나하나 뜯어내고 싶을 정도였다.그녀의 오만함은 뼈와 피에서부터 자라 세포로 뻗어 나온 듯했다. 그렇게 끈질기게 자라 아무리 짓밟고 억눌러도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엔데스 명우는 소은지의 두 눈을 직접 도려내고 싶을 정도로 그녀의 눈빛이 싫었다.그녀는 항상 무관심하고 두려움 없는 눈빛으로 명우를 바라봤기 때문이다.“왜? 안 때릴 거야?”“그렇게 쉽게 내 손에 죽고 싶어?”“흥!”하긴, 이렇게 쉽게 그녀를 보내줄 순 없었
소은지는 누군가를 한 번도 깊이 사랑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송연미의 눈 속에서 마치 그런 깊은 사랑을 보는 것 같았다. 상대를 위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만큼의 사랑이었다.송연미의 눈에 담긴 감정은 차분하고 억제된 것이었으며 심지어 극단적이고 날카롭게 느껴졌다.모두 그 한 사람만을 위한 감정이었다.처음 송연미를 봤을 때, 엔데스 가문의 여자들 사이에서 송연미는 유난히 고독하고 차가운 아름다움으로 돋보였다.엔데스 가문에 변화가 생기자 송연미는 반산월에서 그녀는 네 번째 사모님과 송씨 가문의 아가씨답지 않은 태도를 보였고 미친 듯이 화를 냈었다.아버지가 사촌 여동생을 양녀로 삼으려는 얘기를 했을 때, 송연미는 절망적이면서도 차분한 모습이었다.이유영에게서 보았던 것, 즉 결혼의 끝을 생각하면 소은지는 감정에 대해 믿음을 가질 수가 없었다.누군가를 이렇게까지 사랑한다는 것은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하지만 그런 사랑이 송연미에게서 보인 것이다. '그가 좋다면 나는 뭐든지 괜찮다'는 그런 사랑을.그 사랑은 소은지가 감정에 대해 가지고 있던 모든 생각을 뒤엎어 버렸다. 송연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소은지는 이제 송연미가 불쌍하고 애석하게 느껴졌다.엔데스 운빈과 송씨 가문과의 관계를 깨면서까지 현우에게 분노를 표출했고 송연미를 파리에서 떠나게 한 이유도 현우 때문이었다.그리고 지금, 아버지가 사촌을 입양한 사실을 참고 있는 이유도 현우 때문이었다.이런 여자가 감정적으로 더 이상 할 수 없는 일이 있을까?“난 오늘 밤 떠나.”잠시 후 소은지는 송연미에게 이렇게 말했다."..."송연미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눈 속에 기쁨이 스쳤다.“진짜로 떠날 거야?”“응.”소은지는 고개를 끄덕였다.소은지는 진심이었다.송연미가 한숨을 돌린 듯했다. 마치 그 전까지의 모든 계획이 소은지에게 걸려 있었던 것처럼.이제 소은지가 입을 열었으니 그들도 다음 단계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소은지는 송연미의 반응을 보며 송연미의 눈 속에서 깊고 날카
대체 무슨 상황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이 큰 압박감을 주었고 그 느낌이 너무나도 무겁고 답답했다.송연미는 단호하게 말했다.“왜냐하면 현우는 가문의 마지막 후계자이기 때문이야.”그 말은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왜?”송연미의 아버지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이 일은 거의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엔데스 가문의 회장은 현우에게 무언가를 남겼을 거야. 그분이 가장 아끼던 사람은 바로 현우였으니까.”가장 아끼던 사람이 현우라고? 그렇다면 이렇게 복잡한 상황을 남겨둔 것 자체가 이상했다. 그 회장이 정말로 자신의 사람을 아꼈다면 이런 일들이 벌어졌을 리가 없었다.“내 아버지가 쥐고 있었던 것은 바로 이 파리에서의 권력이었어. 네 좋은 친구인 이유영에게 물어보면, 내 아버지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거야.”송연미도 소은지를 오랫동안 지켜보며 소은지는 강압적인 방식보다는 부드러운 접근이 더 효과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동안 써왔던 여러 방법이 소은지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결국, 이 모든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소은지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일이 너무 복잡하고 방대하기도 했고 현우가 이 사건에 소은지를 전혀 끌어들이지 않아서 이 복잡한 관계를 파악하기 힘들었다.“정씨 가문은 이 일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거야?”소은지는 문득 그렇게 물었다.정씨 가문은 매우 큰 상업 제국이었다. 정국진은 언제나 무사히 지나갔고 그만큼 이 사람이 능숙하다는 뜻일 것이다.정씨 가문에 대해 이야기할 때 송연미는 이렇게 말했다.“만약 이유영 옆에 강이한과 박연준이 없었더라면, 엔데스 가문이 정국진을 그냥 놔뒀을 리가 없어.”하지만 아쉽게도 정씨 가문의 유일한 딸 이유영은 강이한과 박연준과 관계가 있었고,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손에 쥐고 있었다.따라서 이유영을 함부로 다룰 수 없다는 것이었다.사실 송연미가 가장 부러워한 사람은 바로 이유영이었다.왜냐하면 이유영이 이 파리에서 보았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