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영은 자기가 어떻게 별장에서 걸어 나왔는지도 모른다. 소은지는... 지금 엔데스 명우가 그녀의 인신 자유를 제한하지 않았다고 했다.그저 자기가 나오기 싫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그렇긴 하지. 그 남자 곁에서 그렇게 불명예스러운 명분이 씌워졌는데, 심지어 그토록 도도하고 교만하던 은지가 밖으로 나오긴 싫을 수도 있지.’반산월로 돌아온 이유영은 온밤 제대로 자지 못했다. 아침이 되었을 때, 이유영은 임소미의 전화를 받고 머리가 조금 띵해졌다!전화에서 임소미는 바락바락 화를 내며 말했다.“강이한 어디 정신 나간 거 아냐? 그놈이 무슨 자격이 있다고 널 그렇게 대해?”임소미는 화가 단단히 났다!강이한이 이온유를 입양하고도 이유영에게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안 임소미는 화가나 미칠 것만 같았다.“됐어, 외숙모!”자기를 위해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외숙모의 말소리를 들으며 이유영은 마음속이 따뜻해 나는 것만 같았다.하지만 임소미는 정말 화가 많이 났다.“예전에 그 여자가 살아있을 때도 네 인생을 엉망으로 휘저어놓더니 지금 죽어서는 그 딸이 계속해 나가네!”‘이건 젠장 누가 감당할 수 있나!?’임소미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도대체 강이한은 왜 이렇게까지 이유영에게 집착하는 것인가?’“모든 것은 다 그 사람의 선택이에요!”이유영은 깊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전혀 아무렇지 않다는 말투로 말했다.하지만 전화 반대편의 임소미는 이 말을 듣고 갑자기 멈칫했다.그러고는 그저 말했다.“네 말이 맞아. 그건 다 사람의 선택이지!”시작이었던 아니면 지금이었든, 그 사람의 선택은 시종일관 한지음이었다.이유영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자, 임소미는 그제야 조금 마음이 놓였다.어찌 됐든 임소미는 그저 이유영이 무사하게 있으면 되었다!임소미가 전화를 끊고 나서 이유영은 저린 미간을 살짝 주물럭 했다.비록 외숙모 앞에서는 쿨한 척 편하게 얘기했지만 그건 그저 외숙모가 자기를 걱정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사실... 이유영도 마음이 엄청 복잡했다.강이한
아침을 먹고 난 뒤, 이유영은 최익준이 운전한 차를 타고 외출했다.길에서 한 국제 유치원을 지날 때, 이유영은 입을 열고 말했다.“잠시만요!”최익준은 차 속도를 늦추고 차를 길옆에 댔다. 이유영은 웅장한 유치원의 외관을 유심히 눈여겨 보였다. 그동안 이유영은 알게 모르게 자꾸 유치원을 유의하게 되었다.비록 이유영의 아이가 학교에 가려면 아직 한참 멀었지만, 어머니의 마음은 항상 그랬다. 어머니가 되기 전까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어머니가 된 후에는 모든 것들은 다 아이를 위주로 생각하게 되었다.이유영도 이미 차근차근 유치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그녀도 다른 어머니들과 마찬가지로 자기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자기의 아이에게 제일 값진 것을 주고 싶었다.“이 유치원은 파리에서 아주 유명한 유치원이며 파리 중심초등학교 산하의 겁입니다.”“공립인가요?”“안의 시설들은 다 사립 유치원의 표준대로 되어있습니다. 게다가 교사 자원도 일반적인 사립학교보다 좋다고 합니다.”‘그렇다면 이곳이 진짜 파리에서 제일 좋은 공립 유치원이란 말이네.’이 시간대는 마침 아이들이 등원하는 시간이었다.이유영은 아이들이 신나게 차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보면서 머릿속에는 이미 자기의 꼬맹이가 차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이 유치원의 입학 조건을 좀 알아봐 주세요.”“걱정하지 마십시오. 만약 작은 아가씨께서 여기로 돌아와서 학교에 다니면 무조건 이곳에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최익준은 웃으며 대답했다.이유영은 고개를 끄덕이었다.그리 급한 건 아니었다. 필경 아이가 아직 많이 어리니까...이유영은 오히려 아이가 좋은 어린 시절을 보냈으면 했다. 왜냐하면 일단 학교에 들어가는 이상 미래의 오랜 시간은 다 학교에서 학업을 위주로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코너를 돌아 들어가면 바로 이 유치원과 연결된 초등학교였다.아니나 다를까, 역시 파리에서 제일 좋은 학교다웠다...아이들이 고급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며 이유영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역시, 세상에는 부자들이..
이유영이 사무실로 돌아오자, 안민은 서류를 한 아름 안고 들어왔다. 산더미같이 쌓인 서류들을 보니 이유영은 그제야 갑자기 월초라는 것이 떠올랐다!매달 월초가 되면 처리해야 할 서류가 태산이었다.“안민 씨.”“네, 대표님!”“3일 후의 비행기표를 예약해 주세요. 퀘벡으로 가는 거, 비밀스럽게!”이유영은 안민에게 일을 맡겼다.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는 강이한이 이온유를 데리고 학교 문 앞에 나타난 장면이 떠올랐다. 이 개같은 자식이 당분간은 파리를 떠날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이뿐이 아니라 그는 이온유를 이곳에서 학교를 다릴 수 있게 하였다.그럼, 이유영은 당연히... 자기의 아이를 파리로 데려오지 않을 생각이었다.아이가 없을 때도 강이한은 영문도 모르게 자꾸 이유영에게 집착하는데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강이한이 더욱 난리를 피울 게 뻔했다.“네!”안민은 고개를 끄덕이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이유영이 마음 아팠다.왜냐하면 이 3일 동안 이유영은 무조건 회사에서 밤낮으로 야근해야 할 게 분명했다.이유영은 머리를 박고 열심히 일을 했다. 오전에 소군리가 왔지만, 이유영은 너무 바쁜 나머지 대접할 시간도 없었다!소군리는 아주 유명한 정형외과 의사 한 분이 지금 파리에 와 계시는데 이유영이 시간을 내서 한번 만났으면 한다고 했다!이유영은 여전히 같은 대답이었다.“옷을 입고 있으니 다른 사람이 볼까 두렵지도 않아요.”아주 대수롭지 않은 태도였다.그리고 정말 그 흉터들은 수술로 지울 생각이 없어 보였다,‘그래도 이 말은 너무 거친 거 아닌가?’“당신이란 여자 정말 약도 없네!”소군리는 지금 도무지 이유영에게 뭐라 얘기해야 할지 몰랐다.“됐고 지금 제가 한창 바쁜 거 안 보여요?”퀘벡으로 가려는 계획 때문에 이유영은 지금 손에 쌓인 일들은 다 처리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랐기에 소군리를 대접할 시간이 전혀 없었다.소군리는 사리 구분 못하는 이유영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이후에 정 회장님께서 또 나더러 당신에게 의사 선생님을
사실 열 살짜리 아이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유영이 보기엔, 이 순수함은... 깨끗하지 않았다.왜냐하면 10살짜리 한지음은 마음속에 아마 이유영에 대한 미움으로 가득 차서 어떻게 하면 이유영에게 복수를 할까 계산 중이었을 것이었다.쿵 소리와 함께 도시락통은 카펫 위에 떨어져 둔탁한 소리를 냈다.그리고 도시락통의 뚜껑이 떨어지면서 열려 안에 든 음식들이 데구루루 굴러 나왔다. 음식에서는 모락모락 김도 나고 있었다.순간 사무실 내 분위기는 쥐 죽은 듯 조용해지더니 뒤이어 싸늘해졌다!이온유는 바닥에 떨어진 도시락통을 보고는 또다시 이유영을 보더니 순간 눈에는 눈물이 글썽해졌다. 그리고 뒤돌아 강이한에게 달려갔다.강이한은 아이를 와락 품속에 안았다.이유영은 강이한의 싸늘한 얼굴색에 두피가 저렸다.이유영의 실수였다...그녀는 서류를 꺼내던 중 실수로! 자기를 싸늘한 눈빛으로 보고 있는 강이한을 보니 이유영은 미안하다는 말이 목구멍에 막힌 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싸늘한 침묵으로 변했다.‘뭐라고 설명해?’강이한과 이유영 사이의 오해가 적지 않았다.강이한은 냉랭하게 이유영을 한눈 보고는 아이를 데리고 뒤도 안 돌아보고 밖으로 나갔다... 차가운 발걸음 소리는 마치 이유영에게 실망을 말하는 것만 같았다.“쳇!”이유영은 콧방귀를 뀌었다.얼굴에는 더할 나위 없이 짜증으로 가득했다.안민이 들어올 때 지저분한 바닥을 보면서 말했다.“대표님!”‘아니, 이건... 아까 꼬맹이 품속에 도시락통을 안고 있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왜 다 바닥에 떨어진 거지!?’“앞으로 이런 상관없는 사람들은 들여보내지 마세요.”이유영은 차갑게 말했다.여기서 강이한과 이온유를 만난 것에 대해 엄청나게 불쾌해하는 게 분명했다.안민은 잠시 멈칫하더니 입을 열고 대답했다.“하지만 회장님께서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앞으로 강 도련님 오시면 막지 말라고 했습니다!”“외삼촌이요?”“네.”“그래도 그건 이온유가 없을 때 얘기죠.”이유영은 버럭 화를
그 후로 3일간, 이유영은 거의 일에만 매진했다. 그리고 기적같이, 전에 매일 아침 시간 맞춰서 전화해 반 시간 넘게 강이한의 욕설을 퍼붓던 임소미는 3일 동안 기적처럼 잠잠했다.이에 이유영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필경 자기도 너무 바빴으니까...이 3일 동안, 강이한과 한지음의 딸이 그녀의 눈앞에 나타나지 않아서 이유영은 업무 외에 다른 것들은 그나마 조용했다.내일이면 퀘벡으로 떠난다.퇴근한 후, 이유영은 먼저 최익준더러 로열 글로벌 산하의 백화점으로 가달라고 했다.백화점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유아용품 구역으로 갔다.“아가씨, 안경을 쓰십시오.”최익준은 이유영에게 그녀의 특제안경을 건네주었다.“네!”백화점 안의 불빛은 너무 눈부셨다.이유영은 이런 곳에서 오랫동안 있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평소에 그녀는 이런 곳에 별로 오지 않았지만, 내일에 퀘벡으로 가니까 아이에게 물건 좀 사주고 싶어서 들른 것이었다.유명한 아동복 가게를 지날 때, 이유영의 눈빛은 순간 가게에 휘말려 들었다. 정말...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이유영은 이쁜 공주 치마를 입어보며 강이한에게 보여주고 있는 이온유를 보았다.강이한의 눈빛에는 부드러움이 넘쳐날 것만 같았다.최익준도 이유영의 눈길 따라 고개를 돌리고는 바로 숨을 한 모금 들이마셨다.‘참 정말로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최익준 씨.”“네.”“한 남자가 여자를 엄청나게 사랑해야 그 여자가 낳은 아이에게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는 거죠?”“이론적으로 따지면 맞습니다!”이건 아주 골치 아픈 질문이었다. 필경 최익준도 자식이 있는 아버지가 아니라서 좋은 아버지라는 것이 어떤 걸 말하는지 몰랐다.이유영은 입가에 냉소를 지었다.‘그렇긴 하지. 한 여자를 극치에 이르도록 사랑해야만 좋은 아버지가 되는 거지.’이유영은... 처음부터 너무 자신을 높이 봤다.‘서주! 만약 박연준은 강이한 때문에 나를 접근한 거라면 그럼 강이한은... 서주 때문에 나를 접근한 거겠지?’일이 이미 다 끝난
하지만 그런 강이한이...진짜 지금의 그는 좋은 아버지가 아닐 수 없었다. 한지음의 아이를 정말 지극히 부드럽게 대했다.“엄마.”이온유는 강이한의 곁에 서 있었으며 예전처럼 바로 이유영의 품속으로 달려들지 않고 그저 가볍게 그녀를 불렀다.그 소리는 아주 작으면서 조심스러웠다.마치 꼬맹이도 이유영이 자기를 싫어한다는 것을 제대로 느낀 것처럼, 비록 앞으로 다가오긴 두려워했지만, 눈빛 속에는 그녀와 친해지고 싶은 갈망이 보였다.이유영은 꼬맹이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바로 최익준을 데리고 자리를 뜨려고 했다.“이유영.”강이한이 그녀를 불러서 이유영은 관자놀이가 도르르 뛰었다.이유영은 대꾸하지 않고 바로 발길을 돌려 떠났다.하지만 그녀의 손목에는 힘이 느껴지더니 분위기는... 일촉즉발의 상황에 놓였다.“이시욱!”“네, 도련님.”“작은 아가씨를 데리고 가.”“네.”이시욱은 앞으로 나와 이온유를 품속에 끌어안았다.이유영이 채 반응을 하기도 전에 그녀는 강이한에게 끌려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최익준은 앞으로 나서서 막으려고 했지만, 순간 오후에 회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당부한 말이 떠올라 그저 안절부절못하며 이유영 쪽을 향해 보면서 바짝 긴장했다.“최익준 씨, 이놈을 죽도록 때려요!”이유영은 화가 나서 노호했다.“...”‘죽도록 때리라고요?’이 말을 들은 최익준은 더욱 골치가 아팠다.결국 최익준은 이유영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하지만 앞으로 나서자마자 강이한의 매서운 눈빛과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모든 것을 부숴버릴 것만 같은 위험한 기운에 최익준은 크게 숨을 한번 들이마셨다.“강 도련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우리 아가씨가 같이 가길 원하지 않습니다.”:“잔말 말고 때려요!”이유영은 화가나 폭발할 지경이었다.“...”이렇게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결국 강이한 몸의 기운은 더욱 쌀쌀해졌고 그는 손에 있는 이유영을 매섭게 째려보고는 덥석 그녀를 등에 메가 가려고 했다.“... 강이한 이 뻔뻔한 놈!”장면은 폭발하기 일보 직
우지는 이렇게 많은 유아용품을 산 이유영을 보고, 게다가 얼굴색이 안 좋은 걸 보고 대충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하였다.“아가씨, 사모님께서 끓이라고 시킨 약입니다. 얼른 드십시오.”“네.”이유영은 고개를 끄덕이었다.어쨌든 임소미가 안배한 것이었으면 이유영은 종래로 거절하지 않았다.그제야 이유영은 자기가 강이한 때문에 화가 나서 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지금도 별로 배고프지는 않았다.이유영은 정말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이때 이유영은 정말 외삼촌에게 가짜 얘기를 진짜로 만들고 싶었다. 그녀는 정말 로열 글로벌에서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왜냐하면 강이한이 파리에 있는 한, 두 사람 앙숙의 인연에 의하면 이유영은 하루하루가 숨 막히게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이것들은 다 작은 아가씨를 위해 구매하신 겁니까?”우지는 이유영 손에 든 것들을 보며 물었다.이유영은 고개를 끄덕이었다.“네. 조금 있다가 최익준이 올 겁니다. 그 사람이 갖고 온 것들까지 전부 잘 정리해 주세요. 제가 내일 다 갖고 갈 거예요.”“네.”우지는 고개를 끄덕이었다.우지도 이미 이런 상황에 습관 되었다. 왜냐하면 이유영은 매번 퀘벡으로 갈 때마다 아이에게 물건을 한 무더기 사서 가져가기 때문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최익준이 왔다.이유영의 안색은 별로 안 좋았다...최익준은 이유영의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앞으로 공공장소에서는 최대한 그 사람이랑 충돌하지 않으시는 게 좋습니다.”특히 오늘 저녁같이 큰 난리는 더욱 피해야 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유영과 엔데스 명우의 일로 온 파리가 들끓었었다.하지만 그 후 그 일은 흐지부지되었다.지금 또 강이한과의 일이 소문이라도 나면 또 뜨거운 열의를 불러일으킬 게 뻔했다. 비록 로열 글로벌에 엄청나게 훌륭한 홍보팀이 있다지만 입은 결국 말을 하는 사람에게 달렸다.이유영은 최익준의 말을 듣고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현장에서 사람들에게 찍혔나요?”“네. 근데 걱정하지 마십시오.
최익준이 간 후, 이유영은 오랫동안 정신을 가다듬지 못했다.틀림없는 건... 강이한은 당분간 파리를 떠나진 않을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이유영이 전에 생각해 두었던 계획들은 다 틀어지게 되었다.이튿날 아침, 강이한은 이온유를 학교에 데려다주었다. 꼬맹이는 차에서 내릴 때 가방을 챙기는 것을 까먹어서 강이한이 가방을 들어줄 때, 좌석 아래에 널브러진 유아용 젖병을 보았다.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젖병을 들고 보니 다 아주 작은 아이들, 1살쯤 되는 어린아이에게 쓰는 규격이었다. 그리고 장난감들도 아주 유치해 보였다.‘이것들은 다 어제 유영이가 차에 두고 내린 것들인가? 정씨 가문에는 어린애가 없는데 얘는 이것들을 사서 뭐에 쓰려는 거지?’순간, 강이한의 머릿속에는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그 순간, 강이한의 동공은 움츠러들었다!...다른 한편, 반산월에서 이유영은 아이를 만날 생각에 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우지는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이유영에게 말했다.“아가씨, 사모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제대로 자지 못하면 아가씨 몸에 미치는 영향이 아주 크답니다.”“네. 저도 알아요.”이유영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녀를 잠들지 못하게 만든 요인들은 정말 예방이 불가능할 정도로 너무나도 많았다. 이유영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이후에는 저녁에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는 것들을 좀 준비해 주세요.”“네.”하지만 그것도 이유영이 돌아온 뒤의 얘기였다.이번에 이유영은 적어도 일주일 뒤에야 다시 돌아올 것이었다. 그쪽에서 아이의 학교도 알아봐야 하고 일도 좀 보고 해야 했다.왜냐하면 이유영이 퀘벡으로 시간은 기한이 정해져 있기에 매번 갈 때면 조금씩 일을 잘 처리해 두어야 했다.학교 문제는 큰일이었다!그래도 비교를 빼놓을 수 없었다....이유영은 바로 퀘벡으로 갔다. 그녀의 행적은 자연스럽게 비밀로 했고 안민 외에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그래서 안민은 사무실에 나타난 강이한을 보았을 때, 순간 심장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강
언제 조건을 말했다는 건데?도대체 언제였다는 걸까?눈 내리던 날, 설선비의 추락 사건과 자신은 무관하다며 반복적으로 항변했던 그때를 말하는 걸까?‘넌 나를 이렇게 대할 자격이 없어.’라고 했었던 말을 가리키는 걸까?그 모든 말 속에는 소은지가 엔데스 명우에게 내건 조건들이 담겨 있었다.하지만 결과는?결과는 뻔했다.소은지는 똑똑히 보았다. 그가 청하시 사업을 하나씩 무너뜨리며 소은지의 명성을 어떻게 철저히 짓밟았는지.청하시에서는 패배를 모르는 전설적인 변호사 소은지의 진짜 얼굴에 대한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떠들썩했지만, 그 기사를 본 소은지의 마음은 고통과 분노로 폭발 직전이었다.“과거에 나를 파멸로 몰아넣을 때 그토록 신속하고 냉혹하더니, 여섯째 도련님도 감정에 얽매일 때가 있다니 놀랍군.”소은지의 말은 점점 더 얼음처럼 차갑고 날카로워졌다.그랬다.그날, 소은지는 엔데스 명우에게 모든 진실과 자신의 요구를 분명히 전했다.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소은지의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조건을 듣겠다니! 소은지의 삶에는 더 이상 조건이라는 것이 남아 있지 않았다.설령 소은지가 내건 모든 조건이 하나하나 충족된다고 해도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그건 소은지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나는 항상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며 나아가는 사람이야.”소은지는 엔데스 명우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네가 나한테 주는 보상들이 지금 와서 무슨 의미가 있겠어?”설령 같은 사회적 위치를 되찾아준다 해도 그것은 소은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자신의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이 모든 것을 소은지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그 어떤 보상도 소은지에게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그게 지금의 소은지였다.“정말 잘난 척하는군. 스스로 대단하다고 착각하지 마. 사실 너도...”“맞아, 난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해. 하지만 예전에 내 대단함은 절대 착각이 아니었어
이정은 그제야 깨달았다. 강이한이 내리는 모든 결정이 결코 그에게도 쉽지 않았다는 사실을.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선택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적어도 이유영은 끝내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이번에 우천으로 간다면, 최소 반년은 걸립니다.”이정은 무거운 목소리로 강이한에게 말했다.반년.평소라면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지금처럼 서주가 긴박한 상황에서는 반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현재 상황을 고려할 때, 이정은 강하게 반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하지만 강이한의 태도를 보니 이미 마음을 굳힌 듯했다.여진우의 말이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중요한 것, 그리고 포기.삶에는 지켜야 할 것이 많지만, 때로는 과감히 선택하고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강이한은 이유영에게 너무 많은 것을 빚지고 있었다. 전생에서도, 그리고 이번 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유영이 지금 이 상황에 처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결국 자신 때문이었다.“알겠습니다.”이정은 고개를 끄덕였다.강이한의 눈빛은 단호했다. 이 순간, 이정이 강이한에 대한 모든 의문과 흔들림이 경외심으로 바뀌었다.이 남자는 냉혹한 사람이 아니었다.강이한의 삶에는 지키고자 하는 소중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주위 사람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결코 눈을 감고 지나칠 수 없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한편.서주의 상황은 점점 더 긴박해지고 있었다. 엔데스 가문 역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엔데스 명우가 서주에 나타났다. 최근 들어 그는 반산월을 드나드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그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소은지.”남자는 커피잔을 우아하게 들어 올리는 여자를 바라보았다.엔데스 명우의 눈빛은 깊고 차가웠다.하지만 소은지는 그를 비웃듯 바라보며 그의 이가 갈릴 정도로 억눌린 분노를 아무렇지 않게 감상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 여자, 곧 죽어?”소은지의 입가에 비웃음이 떠올랐다.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남자의 차가운 기운은
서주가 이런 상황인데도 강이한은 굳이 파리로 찾아갔다.이유영 때문만은 아니었다. 또 다른 이유는 아마도 아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난번 사건 이후, 아이의 마음속에서 강이한은 어떤 존재로 비치고 있을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이정은 깊게 숨을 고르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아가씨를 보셨습니까?”소월이...강이한의 머릿속에는 자신을 보자마자 이유영 품으로 달려갔던 작은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월이는 두려움에 가득 찬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강이한의 가슴은 답답함으로 꽉 찼다.아무리 숨을 고르려 해도 가슴 깊은 곳의 통증은 가라앉지 않았다.소파에 몸을 기댄 채 담배를 하나 피워 물며 무겁게 말했다.“그 사람... 소식은 들었어?”강이한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그 사람에 관해 묻기 시작하자 이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강이한 가까이 다가가서 말했다.“염 선생님은 지금 우천에 머물고 있습니다.”“우천?”“네, 주소는 이미 알아냈습니다. 몇 년간 그곳에서 은거하며 지내고 계셨습니다.”염 선생님은 명망 높은 의학자였다. 그는 70세에 서주 국제병원에서 은퇴한 후 행방을 감추었는데 그의 진료는 항상 예약이 어려웠으며 그의 손을 거친 환자는 어떤 이유로 실명을 겪더라도 결국 시력을 회복했다는 소문이 있었다.강이한은 이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과거 그는 한지음을 데려가려 했었다. 하지만 그때는 염 선생님이 이미 은퇴한 후라, 아무리 애를 써도 그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그런데 지금, 드디어 찾아내게 되었다. 강이한은 이유영과 함께 전생을 경험했기에, 이유영이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유영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어둠이었다. 수술을 계속 미뤄왔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차라리 흐릿하게나마 보이는 것을 선택했다.수술이 실패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무서웠기 때문이다. 만약 수술이 실패한다면, 평생 어둠 속에 갇히게 될 터였다.이유영은 이미 한 번 어둠 속에서 그 모든 고통과 무력함을
남자의 따뜻한 손끝이 이유영의 눈가를 살며시 스쳤다.아주 조심스럽게...이유영은 마치 그 온기가 자신을 태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무거웠다.여진우가 부드럽게 말했다.“의사 말로는 상황이 심각하대. 이번엔 제발 말 좀 들어줘, 응?”“응.”그동안 가족들은 계속해서 이유영이 빨리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이유영은 전생에 겪었던 어둠 속에서의 공포가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어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이유영은 다시 과거의 어둠 속으로 빠지기 싫었기에 항상 핑계를 대며 수술을 미뤘다.사실은... 두려움 때문이었다.눈 수술은 본래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다. 실패라도 한다면 이유영에게 남는 것은 끝없는 어둠뿐이었다.그 고통은 전생에 이미 충분히 겪었다.그렇기에 이유영은 다시는 그런 어둠 속에서 단 한 순간도 살고 싶지 않았다.그 어둠은.마치 악마의 동굴과 같았다. 그곳에서는 어떤 출구도 찾을 수 없었다. 그 고통이 얼마나 깊은지, 그것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일이었다.“유영아.”“응?”“수술 전까지는 최대한 마음을 가볍게 가져봐. 그러면 수술에도 좋을 거야.”여진우의 말은 단호하고도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그는 마치 곧 기증자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말투였다.여진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이유영이 갑자기 그의 손을 붙잡았다.“왜?”여진우가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이유영이 조용히 말했다.“모든 건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기자, 알겠지?”이유영의 목소리는 단호했다.여진우는 잠시 멈칫하며 이유영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유영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정씨 가문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최상의 수술 환경을 준비하는 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하지만 이유영이 지금까지 고집을 꺾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이유영은 너무 많은 고난을 겪었다.강이한, 한지음, 이온유... 이들은 모두 이유영의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고통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유영은 이런 고
여진우가 돌아왔을 때, 강이한은 여전히 정원 한가운데 서 있었고 떠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여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무심코 집 안쪽을 힐끗 보았다.여진우는 주먹을 가볍게 쥔 채 천천히 강이한에게 걸어갔다. 두 사람이 마주 선 순간, 공기는 팽팽하게 얼어붙었다.“지금 상황에 여기까지 올 여유가 있다니, 놀라운 일이군.”여진우가 말했다.서주의 상황은 어떠한가? 정국진이 발을 뗀 이후 이유영은 서주와 거리를 두었지만 여진우만큼은 그곳의 변화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지금 서주는 강이한과 박연준에게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지.서주의 혼란 속에서도 강이한은 이곳까지 올 결심을 한 것이다.강이한은 여진우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이유영을 떠올리게 할 만큼 닮아 있었다. 그 얼굴을 보며 강이한의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이 스쳤다.전생에, 강이한은 이유영과 여진우가 남매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사실 조금만 더 주의 깊게 봤더라면 그들의 닮은 점을 쉽게 알아차렸을 것이다.그랬다면 서주에서 여진우를 만났을 때 이유영이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바로 알았을지도 모른다.“널 과소평가했어. 이렇게 빠져나올 줄이야!”강이한은 서주를 언급하며 말했다.여진우가 만약 능력이 없었다면, 이번 서주 사태는 여진우에게도 큰 위기가 되었을 것이다.하지만... 여진우는 담담히 말했다.“인생은 많은 선택지로 이루어져 있지만 때로는 중요한 것 중 일부를 포기해야 해!”여진우의 말은 깊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강이한은 여진우의 말을 곱씹으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중요한데 포기한다고?여진우는 강이한이 말할 틈을 주지 않고 이어갔다.“하지만 너한텐 포기라는 건 없어 보이네.”“...”“예를 들면, 이온유...”이온유. 그렇다.강이한과 이유영 사이의 핵심 갈등은 연서였고 그 문제를 가로막는 가장 큰 존재는 바로 이온유였다.강이한은 여진우를 바라보며 입술을 다물었다.여진우는 더는 말을 덧붙이지 않고 등을 돌려 집 안으로 걸어가며 조용히 말했다.“서주로
“정 선생임...”강이한은 믿기 어렵다는 듯 정국진을 바라보았다.강이한이 정국진의 입에서 그런 말을 들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정국진은 냉정하게 말했다.“설마 또 ‘그저 아이일 뿐’이라는 말을 꺼내려는 건 아니겠지?”과거에.강이한은 이유영 앞에서 여러 차례 그저 아이일 뿐이라는 말을 강조해 왔다.그저 아이일 뿐이니까 이유영이 모든 걸 감당해야 한다는 뜻인가? 월이가 희생해도 괜찮다는 의미였던 걸까?그 순간.정국진의 한 마디 한 마디는 강이한의 가슴에 무거운 돌처럼 내려앉았고, 날카로운 칼날처럼 그의 마음을 깊이 찔러 들어왔다.누구나 이성적으로는 옳고 그름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 일이 되면 감정은 편애를 피할 수 없다.그리고 강이한의 편애는 분명히 한지음과 한지음의 딸에게 쏠려 있었다.그는 당시 상황에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자기 입장에서만 내린 판단이었을 뿐이었다. 이유영과 아이에게는 그의 모든 행동이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었다.“강이한, 이번이 마지막이다.”정국진은 강경하고도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장 여기서 떠나!”그의 말투에는 명백한 경고와 위협이 담겨 있었다.정국진은 말을 마치고 자리를 떠났다.강이한은 그 자리에서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정국진이 이렇게 많은 말을 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긴 대화 속에서 드러난 결론은 단 하나였다.강이한에게 소중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이유영과 월이가 그들을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처음부터 끝까지.한지음도, 한지음의 딸도 그저 강이한에게 중요한 존재일 뿐이었다.월이와 이유영은 어떤 의무도 없었고 받아들일 이유도 없었다.하지만 강이한은?그는 도대체 왜 그랬던 걸까? 강이한과 이유영의 관계는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백산 별장.임소미는 아이를 안고 집 안을 천천히 걸으며 달래고 있었다. 아이의 감정은 이제서야 조금씩 진정되고 있었다.월이는 강이한의 딸이었다. 그러나 그를 본
강이한은 눈썹을 찌푸린 채, 여전히 이유영과 임소미가 사라진 방향을 응시하고 있었다.“그만 쳐다봐!”정국진이 말했다.정국진의 목소리는 예전보다 훨씬 날카롭고 단호했다. 외조카와 친딸의 무게는 결코 같을 수 없었다.많은 일이 있었다. 비록 이유영이 서주에서 돌아온 후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더라도 정국진은 여진우를 통해 모든 상황을 알고 있었다.그렇기에 지금 정국진의 태도는 과거와는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었다.강이한은 정국진을 쳐다보며 조용히 말했다.“방금...”“네가 본 대로다. 유영이의 시력은 급격히 악화했고 의사 말로는 수술하지 않으면 시력을 잃는 건 시간문제라고 하더군.”정국진의 차가운 말이 강이한을 가로막았다.강이한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과 숨 막히는 답답함에 사로잡혔다.이유영이...“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유영이 엄마 말로는, 박연준이 유영이를 알프산으로 데려갔다더군.”알프산? 강이한의 표정이 굳었다.“...”박연준이 이유영을 알프산으로 데려갔다는 사실을 들은 순간, 강이한의 마음은 불안과 긴장으로 가득했었다.이유영의 몸 상태로는 그런 추운 지역이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그는 본능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예상하지 못했다. 문제가 단순히 추위뿐만 아니라 두 눈까지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는.“눈부신 설원과 강한 햇빛이 유영이의 눈에 치명적인 자극과 손상을 남겼어. 지금 시력이 이렇게 된 것도 그 탓이지.”정국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강이한은 이미 느끼고 있던 가슴속 고통이 정국진의 이 말로 인해 더욱 심해졌다.결국... 박연준이 이유영을 알프산으로 데려간 탓에 그녀의 시력이 이렇게 빠르게 악화한 것인가? 이 사실을 깨달은 순간, 강이한은 마치 폭풍우가 휘몰아치듯 혼란스러웠다. 얼어붙은 광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정국진은 강이한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다시 찾아오지 마라.”기회는 이미 넘칠 만큼 주어졌다. 강이한은 그 소중한 기회를 스스로 놓치고 말았을
이유영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고 그대로 넘어질 것만 같았다. 그 순간, 허리에 전해진 강한 힘이 이유영을 단단히 붙잡아주었다.익숙한 기운이 스며들며 이유영을 감싸안았다.중심을 되찾는 순간, 이유영은 본능적으로 그를 밀쳐냈다. 그 사람은... 바로 강이한이었다. 자신이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남자.“와아아...”멀지 않은 곳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순간, 이유영의 차가운 눈빛은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이유영은 당황한 듯한 모습으로 서둘러 아이에게 달려갔다.“월이야, 월이야.”이유영은 아이를 품에 꼭 안았다.“엄마, 무서워요!”“괜찮아. 엄마가 여기 있잖아.”“나쁜 사람! 나쁜 사람이에요...”작은 아이는 두려운 목소리로 강이한을 보고 외쳤다.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강이한은 아이의 입에서 '나쁜 사람'이라는 말이 터져 나오는 순간,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나쁜 사람... 이의 기억 속 자신은 그저 그런 존재일 뿐이었다.그래, 이게 바로 그가 아이에게 남긴 흔적이었다.이것이 바로 그의 존재가 남긴 기억이었다.“그래, 맞아.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야. 하지만 괜찮아. 엄마가 있으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어떤 나쁜 사람도 월이의 머리카락 한 올조차 다치지 않게 막아낼 수 있었다.이유영은 속으로 조용히 다짐했다.강이한은 멀리서 그들을 바라보며, 그 고요한 광경이 가슴을 날카롭게 찢어놓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숨조차 쉴 수 없을 만큼의 고통이 밀려왔다. 그때, 소란을 들은 하인들과 집사들이 급히 현장으로 달려왔다. 그들 역시 강이한을 보자 긴장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이내 임소미와 정국진도 급히 현장에 도착했다.임소미는 강이한을 보자마자 적대감이 가득 묻어나는 목소리로 쏘아붙였다.“여긴 왜 온 거야?”임소미의 말투는 한 치의 호의도 담겨 있지 않았다.“유영이를 좀 봐.”정국진이 임소미에게 말했다.임소미는 강이한에 대한 불만이 아무리 많아도 이유영의 이름이 언급되자 그 감정을
임소미는 이유영이 백산 별장을 단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도록 했다. 심지어 반산월로 돌아가는 것도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결국 이유영은 무력감 속에 남겨질 수밖에 없었다.서재에서 정국진은 이유영을 바라보며 말했다.“네 두 눈은 지금...”정국진의 목소리에는 멈춘 말 속에 깊은 안타까움이 묻어났고, 이유영은 그 감정을 생생히 느꼈다.“아빠...”“수술은 빨리 받는 게 좋겠다. 그래야 네 엄마도 마음이 놓일 테니까.”“하지만 저는...”“걱정할 필요 없다. 네게 가장 뛰어난 의사를 붙여줄 테니.”정국진은 이유영의 마음을 꿰뚫어 본 듯 이유영을 달래며 말했다.사실 정국진과 임소미는 누구보다도 긴장하고 걱정하고 있었다. 수술이 실패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모든 준비를 더 철저하게 하고 있었다.“아빠...”“응?”“아빠... 저, 너무 무서워요.”그동안 가족들이 자신을 얼마나 걱정하는지 알면서도 지금 이 순간, 이유영은 두려움을 참지 못하고 가족들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냈다.이유영은 정말로 무서웠다.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그 고통을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지금까지 그토록 자신의 두 눈을 지켜 왔건만 결국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마음속에서 숨 막히는 듯한 답답함이 밀려왔다.전생에서 눈을 떴을 때, 이유영을 감싼 건 끝없는 어둠뿐이었다. 그 공포와 혼란은 그녀를 미치게 할 지경이었다.지난 생에서 이유영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그 어둠 속에 적응하려고 애쓰는 것뿐이었다.하지만 이번 생은 달랐다. 한순간에 어둠 속으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서서히 시야가 어두워져 가는 과정을 느껴야 했다.그 느린 과정이 그녀에게는 더욱 고통스러웠다.“무서워하지 마라. 우리 모두 네 곁에서 함께할 거야.”“네...”이유영은 고개를 숙였고 눈물이 주르르 떨어졌다.그래, 두려워하지 말자. 이번 생은 전생과는 다르니까. 비록 전생의 운명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더라도 이번에는 가족들이 곁에 있어.전생에는 어둠 속에서 이유영 곁에는 강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