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강의 안주인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강이한은 평생이라는 단어를 뱉고 갑자기 갑갑함을 느꼈다.이유영에게 평생을 약속하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그들은 서로를 따스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평생을 약속했었다.그런데 고작 10년이 지났을 뿐인데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될 줄을 누가 알았을까?“평생은 너무 무거워요. 지금이야 괜찮아 보이지만 어쨌든 난 시각 장애인이고 오빠는 대기업 수장이잖아요. 결국 난 오빠한테 짐만 될 거예요.”한지음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강이한은 짐이라는 소리에 다시 이성이 돌아왔다.‘젠장! 또 그 여자를 떠올려 버리다니!’“이한 오빠, 언니랑 화해해요. 난 오빠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지음아!”“진심이에요. 어쨌든 언니랑 오빠 사이에는 10년이라는 세월이 있잖아요.”그 말은 강이한의 분노만 더 가중시킬 뿐이었다.그는 10년 동안 자신이 온순하고 순진한 얼굴에 속아 본모습을 보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수치스러웠다.할 수만 있다면 당장 이유영을 지옥으로 던져 버리고 싶었다.“지음아.”“네?”“약혼식 준비할 거야.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아.”“누구랑요?”“너랑 나.”한지음은 속으로 크나큰 희열을 느꼈다.하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오빠 이미지에 타격이 클 거예요. 언니랑 내 관계를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요.”“내가 알아서 처리할 수 있어.”“하지만….”“내 말 듣고 그렇게 하자. 응?”강이한은 단호하게 그녀의 말을 끊었다.여전히 주저하는 한지음을 보며 그는 속으로 결심을 굳혔다.한지석은 그를 위해 목숨을 잃었는데 그의 하나뿐인 여동생은 이유영의 이기심과 질투 때문에 평생 광명을 잃었다.그러니 그가 옆에서 돌봐주는 건 당연했다.게다가 진영숙도 호시탐탐 한지음을 보내버릴 생각을 하고 있으니 누구에게 맡겨도 안심할 것 같지 않았다.한지음은 아직 어리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었다. 그리고 그 길을 그는 그녀와 함께 걸어갈 것이다.그는 이제 더 이상 이유영에게
진영숙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씩씩거리며 밖으로 향했다.“어딜 그렇게 가는 거니?”유혜정이 음침한 목소리로 진영숙을 불렀다.“홍문동이요!”진영숙은 이 한마디만 남기고 문을 나섰다.유혜정은 옆에서 멍하니 서 있는 강서희를 노려보며 말했다.“멍하니 있지 말고 빨리 따라가 봐!”유혜정도 조바심이 나는 건 마찬가지였다. 이유영 때문에 안 그래도 강이한은 가족들과 사이가 별로 좋지 못했다.그런데 난데없는 한지음 때문에 또 서로 얼굴을 붉혀야 한다니 머리가 지끈거렸다.강서희는 착잡한 표정을 하고 진영숙을 따라갔다.한편, 조민정은 늦은 밤 병실을 방문했다.“이미 준비가 끝났습니다. 대표님 건강 상태가 별로 좋지 못하니 아마 병원에서 며칠 휴양하다가 대략 2주 뒤에 수술을 진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이때, 이유영의 핸드폰이 울렸다.그녀는 멍하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화면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고개를 돌려 화면을 확인한 조민정의 표정도 착잡해졌다.그녀는 손을 뻗어 이유영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하지만 현재의 이유영에게는 아무런 위로도 되지 못했다.강이한 때문에 하마터면 자연유산이 될 뻔하고 병원에 있는데 하필이면 이 시기에 한지음과 그의 약혼 소식을 접하다니! 머리가 멍하고 어지러웠다.그는 대놓고 한지음의 남은 생을 책임지겠다고 공표한 거나 다름없었다.동시에 대놓고 이유영과 세강의 얼굴에 먹칠한 것과 같았다.“나 괜찮아요.”이유영은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이미 이렇게 될 줄을 예상은 하고 있었기에 사실 타격은 그리 크지는 않았다.“수술 날짜를 조금만 앞당길 수는 없을까요?”그녀는 강이한의 약혼식과 비슷한 날짜에 수술을 한다고 생각하니 구역질이 올라왔다.“의사 선생님이 제안한 거예요. 대표님 건강 상 문제도 있고 하니….”“내일 오전으로 수술 잡아주세요.”“대표님!”“내 말 듣고 그렇게 해요.”“하지만….”조민정은 여전히 머뭇거렸지만 이유영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단호했다.결
아마 지난 생에는 강이한과의 아이를 원했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는 피임에 딱히 신경 쓰는 개념이 없었다.“지금 어디예요? 내가 그쪽으로 갈게요.”그녀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부드러운 말투로 그에게 말했다.“순정동이요.”“알았어요. 지금 갈게요.”전화를 끊은 이유영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아랫배에서 여전히 통증이 느껴졌다.하지만 세강그룹에서 나올 때만큼 괴롭지는 않았기에 옷을 갈아입고 외출 준비를 했다. 의사를 만나고 돌아온 조민정이 그녀를 보고 놀란 얼굴로 물었다.“외출하시려고요?”“맞아요.”“아직 퇴원하시면 안 돼요. 의사랑 상의해 봤는데 내일 수술하는 건 위험하고 일주일 뒤에나 가능하대요. 지금 대표님 몸 상태가 어떤지 잘 아시잖아요!”최근 이유영은 죽자 살자 일에만 몰두했기에 피로가 잔뜩 쌓인 상태였다.조민정의 손에는 피로회복제와 각종 보신에 좋은 약들이 잔뜩 들려 있었다.이유영은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그 인간과 엮이니 몸까지 고생하네요.”자칫 잘못해서 목숨까지 잃을 뻔한 그녀였다.그녀는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강이한에게만큼은 절대 흔들리지 않을 거라며 속으로 다짐했다.그에게 마음을 주었던 여자들은 대부분 좋은 결과를 맞지 못했다.“그런데 왜….”조민정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이유영은 시간을 확인하고 말했다.“잠깐만 나갔다 오는 거예요. 루이스에게 연락할까요? 아니면 저랑 같이 갈래요?”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조민정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서류뭉치를 살폈다.이유영은 자신이 입원하면서 자신이 해야 할 모든 업무가 조민정에게 돌아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루이스 불러주세요.”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조민정이 오늘 자신을 홀로 내보내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사실 지금 상황을 놓고 봐도 루이스와 동행하는 게 차라리 안전했다.그 시각.진영숙과 강서희는 기세등등하게 홍문동에 도착했다. 강이한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두 사람을 보고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너 미쳤
전에 이유영 때문에 당한 게 있기 때문에 진영숙은 절대로 한지음을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이유영이 정국진의 조카가 아니고 평범한 신분이었어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지석이한테는 유일한 여동생이에요.”“그럼 다른 방법으로 보답하면 되지 굳이 네가 직접 돌봐야 할 이유가 뭐 있어!”진영숙도 지지 않고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한지석의 여동생이라는 신분은 마치 사라지지 않는 주문처럼 그들 사이에 존재했다.‘하! 쩍하면 그 놈의 여동생!’“어머니는 이번 일을 겪고도 그렇게 느끼는 바가 없으세요?”강이한이 비웃음을 지으며 진영숙에게 말했다.진영숙은 불쾌함이 가득 담긴 그 눈빛에 화가 치밀었다.“어미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니?”사실 그가 전하고 싶은 말은 이유영을 완전히 떠나 보내기로 한 후로 남녀 사이의 사랑에 대해 혐오감이 생겼다는 거였다.10년을 함께한 이유영에게마저 배신을 당했는데 어찌 사랑을 믿을 수 있을까?‘그러니까 이제 더 이상 재혼도 생각이 없으니까 아예 평생 한지음이나 보살피며 산다고?’이유영과 있었던 일로 하여 강이한 역시 사랑이라는 것에 환멸을 느꼈다. 한지음과 약혼하겠다고 한 이유는 책임감 때문이었다.“이한아!”진영숙이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조금 전의 기세등등한 목소리와는 달리 안타까움이 담긴 말투였다.“어쩌면 유영이랑 우리 사이에 뭔가 오해가 생겼을 수도 있어. 그러니까….”“대체 언제부터 그렇게까지 이유영을 감싸기로 하신 겁니까!”강이한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진영숙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아들을 바라보았다.전에 그가 그토록 바라던 게 아니었나?진영숙은 당황스럽기도 하고 후회가 몰려왔다.만약 이유영이 있을 때 그녀를 가족으로 받아줬더라면 어쩌면 한지음이 그들 사이에 끼어들 틈이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늦었지만 진영숙은 여전히 아들이 이유영과 잘되기를 바랐다. 그랬기에 한지음의 존재가 너무도 거슬렸다.‘그년 그거 처음부터 작정했던 거였어!’“지음이는 내가 돌봐줄 수 있어!”진영숙이
“설마 오빠한테 가서 내가 이유영을 나락으로 보내기 위해 내 눈을 자해했다고 말할 거야?”강서희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녀 역시 비열하고 잔인한 사람이었지만 한지음은 그보다 더 위에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한지음은 자신에게마저 칼을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이었다.‘그러니까 지금 자기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으니 오빠한테 들러붙겠다?’“말했잖아. 평생 먹고 살 돈을 주겠다고. 왜 하필이면 오빠야?”강서희가 분노를 참으며 물었다.가능하다면 저 요망한 얼굴을 찢어버리고 싶었다.그들이 손을 잡은 이유는 아무리 괴롭혀도 그 자리에 가만히 버티고 있는 이유영 때문이었다.전에 강서희는 갖은 수단으로 강이한 신변에 나타났던 여자들을 해치웠지만 유독 이유영만큼은 견고한 성처럼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유영을 강이한의 신변에서 멀어지게 하려고 한지음을 끌어들였던 것이다.그녀의 바람대로 이유영은 떠났지만 어쩐지 더 상대하기 힘든 한지음이 그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게 되었다.한지음은 입가에 비웃음을 살짝 머금고 말했다.“강서희, 그 여자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나 다 알아. 너에 비하면 네 오빠가 더 믿음직하다고 판단해서 말이지!”강이한의 옆에 있으면 평생 그 남자가 가져다주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그리고 부귀영화까지 누릴 수 있으니 이만한 상대가 어디 있을까?“이유영은 굳이 우리가 뭘 하지 않아도 네 오빠가 알아서 지옥으로 보낼 거야.”“그래서 우리가 했던 약속을 어기겠다는 거야?”분노한 강서희가 앙칼진 목소리로 물었다.“너에 비하면 난 아무것도 아니지. 네가 한 짓이 나보다 덜하다고 말할 수 있어?”“뭐라고?”“너랑 나 사이에서 네 오빠는 누구 말을 믿을 것 같아?”“그게 무슨 소리야?”“자신 있으면 해보자고!”강서희는 처음으로 한지음이라는 여자가 얼마나 무서운지 느끼게 되었다.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지만 그녀의 눈에 한지음은 지옥에서 돌아온 저승사자로 보였다.한편 진영숙은 어떻게든 강이한을
그녀는 문밖에 서서 초인종을 눌렀지만 아무도 나와서 문을 열어주지 않았고 저택 내부는 어둡고 고요했다.이유영은 박연준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며 밖에서 조금 더 기다리기로 했다. 밤바람이 차서 저도 모르게 오한이 느껴졌다.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박연준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어쩐 일인지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이유영은 추위에 떨며 외투를 여몄다.이때, 어깨에서 묵직한 무언가가 느껴졌다.어느새 다가온 루이스가 검은 외투를 그녀의 어깨에 걸쳐주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이유영도 거절하지 않고 감사하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건강 상태가 좋지 못해서 그런지 춥고 온몸이 떨려왔다.지난 생에서 임신사실을 금방 알았을 때는 홍문동에서 화재를 당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여자는 임신했을 때 유난히 취약했던 것 같았다.임신 반응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유영은 갑자기 피로감이 몰려왔다.계속해서 박연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여전히 연락이 닿지 않았다.이유영은 박연준의 저택 앞에서 두 시간을 기다렸지만 남자는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루이스는 추위에 떠는 그녀를 조용히 지켜보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그녀에게 다가가서 말했다.“그만 돌아가요.”“루이스.”“네, 대표님.”“박 대표 어디 있는지 좀 알아봐 줘요.”이유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박연준은 약속시간을 어기는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그녀와 이미 만나기로 약속해 놓고 아무 이유 없이 사라졌을 리가 없었다.루이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대략 5분쯤 지나 소식이 도착했다.루이스는 핸드폰을 확인하고는 무거운 얼굴로 이유영을 바라보며 말했다.“30분 전에 박 대표님은 박 회장 측 사람들에 의해 강제로 비행기에 태워졌답니다.”이유영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그녀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온몸에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았다. 그녀는 한참 루이스를 바라보다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일단 알겠어요.”어쩌면 이게 박연준에게는 오히려 더 나은 일일지도 모른다.강
이유영은 현재 굳이 알아보지 않아도 그들의 집안이 아수라장이 되었을 거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아마 서로 물어뜯으려고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시간이 지나면 결국 꼬리가 잡히기 마련이고 강이한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건 그녀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스스로 그들을 처벌하기 보다는 차라리 강이한이 진실을 알게 되고 지옥으로 추락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나았다.어차피 시간은 많고도 많았다.그녀는 강이한이 그 긴 시간 동안 평탄치 않기를 누구보다 기원했다.그녀가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저녁 열 시가 넘은 시각이었다.루이스가 미리 연락을 해두었기에 집에 도착하자마자 따뜻한 밥상이 기다리고 있었다.소화에 부담되지 않는 따뜻한 죽과 간단한 반찬들이었다.이유영은 죽 한술을 떠먹자마자 속이 뒤집히는 것 같이 울렁거리는 느낌을 받았다.그 모습을 본 집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와서 물었다.“음식이 입에 안 맞으신가요?”“아니에요.”이유영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그녀 역시 왜 이렇게 괴로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난 생에는 임신반응 같은 걸 느껴볼 여유가 없어서 몰랐는데 이번 생에는 생생하게 느껴졌다.억지로 음식을 삼키려고 했지만 더 이상 넘어가지 않았다.결국 그녀는 화장실로 달려가서 연신 구역질을 했다.조금 전에 겨우 먹었던 죽이 그대로 나왔다.그래도 여전히 속이 더부룩하고 울렁거렸다.이 순간이 되어서야 이유영은 엄마가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아이를 낳으려면 엄마가 참 많은 희생을 해야 하는구나.’아마 남자들은 절대 그런 고생을 동감하지 못할 것이다. 그녀마저도 직접 느껴보고 나서야 힘든 것을 알게 되었다.그녀는 갑자기 엄마가 떠올랐다.‘나를 낳으면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감수했을까?’머리가 조금씩 맑아지기 시작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실망도 커져갔다.그리고 한지음의 엄마와 한지음까지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이유영은 비틀거리며 화장실을 나와 루이스를 호출했다.루이스가 공손한 자세로 다가왔다.이유영은
“저한테 맡기십시오.”이유영은 연관 자료를 루이스에게 공유했다. 루이스가 뒤돌아선 순간, 노크소리가 들려왔다.“무슨 일이죠?”“저예요, 아가씨.”집사의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루이스는 이유영과 시선을 교환하고 관련 서류들을 품에 감추었다.“아가씨, 손님이 방문하셨어요. 동교 사건 때문에 온 것 같아요.”이유영과 루이스는 당황한 얼굴로 시선을 교환했다.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제복을 입은 형사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그녀에게까지 조사가 내려온 것이다.박연준은 박 회장에 의해 해외로 떠났으니 결국 그녀가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이유영 씨, 동교 현장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해 상세한 조사가 필요해서 나왔습니다. 저희랑 함께 가주실 수 있을까요?”선두에 선 형사가 그래도 예의 바른 말투로 그녀에게 말했다.하지만 이유영은 오늘 이들을 따라가면 쉽게 나오지 못할 것을 잘 알고 있었다.소식을 접한 조민정이 저택으로 달려왔다.그녀는 거실을 가득 채운 형사들을 보고 얼굴색이 변했다.“대표님!”이유영은 담담한 얼굴로 조민정을 바라보았다.“정 회장님과는 아직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이유영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현재 정국진은 온 신경을 정유라에게 쏟느라 그녀에게 신경 써줄 여력이 없었다.그녀는 결국 길게 심호흡을 하고 형사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대표님.”“어떻게든 회장님과 연락을 취해보도록 해요.”“네, 대표님.”조민정은 안쓰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절대 이유영을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현재 이유영과 연관된 사건은 동교 사고뿐이 아니었다.작업실 쪽에 문제도 문제지만 크리스탈 가든도 문제였다.이유영은 결국 심도 깊은 조사를 시작할 것이고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조민정은 그녀의 건강 상태을 진심으로 걱정했다.루이스는 이유영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아무도 그를 막지 않았다.원칙대로라면 조사를 받는 당사자는 경호원을 대동하지 못하게 하는 게 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