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두 사람으로 부족해?”전연우는 곧 송시아까지 만날지도 모른다.그때도 장소월을 위해 한 일이라는 말을 입에 올릴 수 있을까?그는 늘 장소월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라고 여기며 달콤한 말로 그녀를 속여왔다.전연우가 진지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지금 이 오빠는 소월이를 갖고 싶은데 어떻게 하지?”장소월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쳐다보았다.그가 돌연 손을 뻗고 그녀를 끌어당겼다. 안전벨트는 언제 풀었는지 몸을 기울여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 눈빛은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있었다.깜짝 놀라 당황하는 장소월을 보니 저번 호텔에서 처음 잠자리를 한 후 나른하고 가엾었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그건 전연우에게도 처음이었다.결계를 한 번 풀어헤치고 남녀 간의 뜨거운 뒤엉킴을 맛보고 나니 그녀를 안고 싶은 욕망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원하는 여자를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조건은 권력과 부와 지위를 갖는 것이다. 서울에서 높은 자리 하나 꿰차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은 데에는 모두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알아둬. 난 돌아오기 전 이미 영수에게 연락했어. 감히 내 몸에 손을 댄다면 영수가 널 가만히 놔두지 않을 거야.”전연우는 장소월의 당황스러움에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순간 또 다른 욕심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꿈틀거렸다.예전엔 장소월의 몸을 소유하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다면, 지금은... 시간을 좀 들여서라도 그녀의 마음을 얻고 싶었다.그럼 언제 어디서든 그녀를 안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싫다고 발버둥 치는 그녀를 억지로 눕히는 것보단, 눈앞 이 소녀가 예전처럼 기꺼이 자신에게 마음을 바쳐주길 바랐다.“그럼 어디 한 번 해봐. 나도 어떻게 날 가만히 놔두지 않을지 궁금하니까.”그가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전연우가 그녀의 머리카락 속으로 손을 집어넣고는 뜨거운 입술로 그녀의 입술을 틀어막았다. 장소월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가 없었다.손에서 반지
장소월은 거의 끌려가다시피 남원 별장에 돌아갔다.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말이다.집에 도착한 뒤 전연우는 곧바로 문을 잠갔다.강만옥은 거실 소파에 앉아 유유자적 과일 말랭이를 먹고 있었다.“왔어?”그녀가 인기척을 듣고 소파에서 일어섰다.장소월은 전연우의 손을 뿌리치고는 밖으로 나가려 했다. 하지만 문 앞 경호원에게 막혀버리고 말았다.강만옥이 웃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왜 그래? 두 사람 싸웠어? 연우 도련님, 오빠로서 동생을 보듬어줘야죠. 소월아, 넌 동생이니 오빠한테 양보해야 해.”장소월은 도망칠 수 있는 가망이 보이지 않자 포기하며 눈물을 닦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몸을 돌렸다.“전 아버지 보러 위층에 올라갈게요.”강만옥의 눈빛은 냉담하고도 낯설었다. 그녀가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그래. 네 아버지는 아직 의식은 있으시니 반응을 하지는 못할 뿐 네 말을 들을 수 있을 거야. 되도록 얘기 많이 해. 그럼 빨리 회복하실지도 모르니.”장소월은 고개도 들리지 않고 계단을 올랐다. 등 뒤에서 강만옥의 요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오느라 수고했어. 내가 삼계탕 만들어놨어. 내가 먹여줄까?”“아이가 뱃속에서 귀찮게 하는 바람에 만드는데 오래 걸렸어.”급히 올라가는 장소월을 보는 강만옥의 얼굴에 장난기가 피어올랐다.“재밌어?”전연우가 그녀를 밀쳤다.“장소월이 돌아오니 정신이 온통 장소월에게 팔려버렸네. 너 계속 이러면 나 질투나.”강만옥이 유혹적인 눈빛으로 그의 가슴팍을 어루만지며 또다시 가까이 다가갔다.장소월은 그들이 있는 곳에서 조금도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두 사람의 관계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강만옥이 자신 앞에서 연기하고 있다는 것을 장소월은 똑똑히 알고 있었다. 이제 그녀는 강만옥 배 속의 아이가 아버지의 아이는 맞는지까지 의심되었다.설마... 전연우의 아이는 아니겠지?말도 안 되는 소리다.그들이 아버지 몰래 침대에서 그 짓을 했을 거란 생각이 드니 뱃속 깊은 곳에서 역겨움이 치솟아 올랐다.2층 침
전연우가 성큼 앞으로 걸어가 강제로 그녀를 어깨에 메고 3층으로 올라갔다.“너 뭐 하는 거야. 이거 놔! 내 몸에 손대지 마!”전연우는 그녀가 소리치든 말든 발로 문을 열어젖히고는 벽을 더듬어 조명을 켜고 그녀를 침대에 던져버렸다. 이 침대는 예전 것보다 더 부드럽고 탄성이 있어 몸이 높이 다시 튀어 올랐다. 그녀는 순간 정신이 혼미해져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그 바람에 전원이 꺼져버렸다.새로 산 이 핸드폰은 몇 번을 떨어뜨려도, 물에 들어갔어도 멀쩡히 쓸 수 있었다.전연우가 바닥에서 핸드폰을 줍고는 전원을 켰다.“넌 아직 결혼한 건 아니니 장씨 집안 사람이라는 걸 잊으면 안 돼. 또다시 다른 사람 집에 간다거나,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네 자유를 제한할 수도 있어. 그 중엔 네 파리행도 포함이야.”“전연우, 이 나쁜 자식. 그럼 난 신고할 거야.”장소월은 손쉽게 그의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았다.신고라는 말이 그녀의 입에서 나오니 우습기 그지없었다.전연우가 애써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소월이가 말만 잘 들으면 오빤 그렇게 하지 않을 거야.”남자가 한 손으로 그녀를 끌어안고 한 손으로 그녀의 턱을 잡아 올리고는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일찍 자.”“꺼져!”장소월이 그가 키스했던 곳을 힘껏 문지르고는 그를 방에서 밀어낸 뒤 쾅 하고 문을 닫아버렸다.그가 밤중에 몰래 기어들어 와 파렴치한 일을 저지를까 봐 화장대를 옮겨 문을 단단히 막아두었다.전연우가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그의 얼굴에 번진 미소가 강만옥에겐 심장을 파고드는 가시와도 같았다.“장소월이 돌아온 게 그렇게 좋아?”강만옥은 전연우의 그런 모습을 종래로 본 적이 없다.“내가 장소월에게 무슨 짓을 저지를까 봐 두렵지도 않아?”장소월과 강만옥을 대할 때 전연우의 태도는 확연히 달랐다.전연우는 줄곧 그녀를 더러운 쓰레기 취급하며 조금도 가까이하지 않았다.반면 원수의 자식인 장소월을 위해 자신의 계획을 바꾸었다. 심지어 모든 것을 걸고 그녀를 돌아오게까지 만들었다
장소월은 밤새 제대로 자지 못하고 6시에 깨어났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려고 몸을 일으키니 머리가 터질 듯 아팠다. 요즘 일교차가 큰 데다 어젯밤 창문을 열고 잔 탓에 감기에 걸린 듯하다.거실에 내려가 보니 도우미들이 주방을 청소하고 있었다.금방 청소하기 시작했는지 바닥엔 온통 깨진 유리 조각들로 가득했다.“어떻게 된 거예요?”“아가씨.”도우미가 설명했다.“어젯밤 쥐가 휘젓고 간 것 같아요. 연우 도련님께서 세균에 감염될 위험이 있으니 그릇과 접시 모두를 새로 바꾸라고 하셨어요.”장소월이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은경애 아주머니는요?”“후원 쪽으로 갔습니다. 아마 지금은 채소를 씻고 있는 중일 겁니다. 아가씨, 무슨 일 있으세요? 제가 불러올까요?”“괜찮아요.”장소월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고는 선반 안에서 약상자를 찾아 두통약 두 알을 먹었다.그녀가 냉장고를 열고 들여다보고는 말했다.“예전 제가 마시던 주스는요?”도우미가 말했다.“도련님께서 주스엔 색소가 첨가되어 있으니 자주 마시면 건강에 해롭다고 하셨습니다. 하여 모두 우유로 바꿨어요. 어떤 주스를 마시고 싶으세요? 제가 지금 바로 만들어드릴게요.”장소월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컵에 따뜻한 물을 따랐다. 회사에서 잘리고 너무 심심한 나머지 이런 것까지 관여하는 건가?정말 오지랖도 넓다.아침 8시 반, 장소월은 위층에 올라가 옷을 갈아입었다. 이어 혼자 아침밥을 먹으며 색채 이론에 관한 책을 읽었다.그때, 문밖에서 차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장소월이 고개를 돌려 살펴보니 전연우가 들어오고 있었다. 백윤서와 오랜만에 보는 오 아주머니도 그의 뒤를 따라 걷고 있었다.장소월의 낯빛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그녀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돌리고 계속 아침을 먹었다.오 아주머니를 장씨 저택에 돌아오게 한 건 아마 전연우의 결정일 것이다. 아버지가 앓아누우셨으니 집안 대소사 모두 전연우 뜻대로 진행된다. 장씨 집안 큰딸은 그저 허울뿐인 이름에 불과하다.장소월은 자신과 상관없는 일
장소월이 장해진의 방으로 가보니 간병인이 장해진에게 약을 먹이고 있었다.“뭘 드시게 하는 거예요?”도우미가 장소월을 보며 말했다.“중풍을 치료하는 약입니다.”장해진은 잠에서 깨어난 듯 보였으나 눈만 뜬 채 아무런 움직임도, 아무런 반응도 없이 멍하니 천장을 응시하며 누워있었다. 그때 돌연 온몸에 경련이 일더니 먹었던 약을 전부 토해냈다.도우미가 급히 약숟가락을 내려놓고는 손수건으로 그의 입가를 닦아주었다. 장소월의 눈에 짜증스러움이 묻어나온 도우미의 얼굴 표정이 들어왔다. 약만 토해낸 것이 아니라 전에 먹었던 토사물까지 있었다. 머지않은 거리에 있었던 장소월의 코에도 악취가 흘러들어왔다. 그녀가 손을 뻗어 이불을 거둬보니 침대 시트에 선명한 오줌 자국이 그려져 있었다.도우미가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아가씨는 나가 계세요. 제가 어르신에게 옷을 갈아입혀 드리겠습니다.”“제가 할게요. 아주머니는 가서 한약 한 그릇 더 달여오세요. 약자재 목록도 제게 주시고요.”추미연이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아가씨, 이건 도련님께서 저에게 시키신 일입니다. 아가씨의 말씀에 따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장소월의 목소리가 순간 차가워졌다.“여긴 전씨의 집이 아니에요. 아주머니는 지금부터 해고예요.”“아가씨에겐 절 해고시킬 이유가 없습니다. 계약서에 따르면 마음대로 절 해고시킨다면 3배의 위약금을 지급하셔야 합니다.”“이곳은 당신을 필요로 하지 않아요. 그 돈은 아주머니가 일한 시간을 체크해 이체해 줄게요. 지금 당장 나가세요.”추미연은 갑작스러운 해고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아가씨, 전 도련님께서 데려온 사람이에요. 그분을 제외하곤 아무도 절 쫓아내지 못해요.”“그럼 내가 오빠한테 얘기할게요. 하지만 잘 생각해보세요. 오빠가 쫓아내면 한 푼도 받지 못할 거예요.”추미연이 씩씩거리며 방에서 나갔다. 장소월은 추미연이 전문 간병인이 아닐 거라는 걸 어제 한눈에 알아챘다.전연우가 데려온 사람은 절대 안심하고 둘 수 없다.장소월은 안방 창문을 열고 환
전연우는 위층으로 올라가 안방 문을 열었다.장소월이 샤워를 마친 장해진을 부축해 욕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장해진을 휠체어에 앉힌 뒤 드라이기로 그의 젖은 머리카락을 말려주었다. 바닥엔 그가 입었던 더럽혀진 옷과 침대 시트가 놓여있었다.머리카락이 다 마르자 장소월은 빗으로 그의 머리카락을 빗겨주었다. 오늘 날씨가 화창해 아버지에게 햇볕 쪼임을 해드릴 생각이었다. 그녀가 몸을 돌렸을 때 어느새 문 앞에 전연우가 와있었다. 장소월은 무덤덤한 얼굴로 그에게서 시선을 돌리고는 장롱에서 담요 하나를 꺼내 아버지의 다리에 덮어주었다.어찌 됐든 그녀는 장해진이 물려준 피가 흐르고 있는 그의 딸이다. 이 점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 비록 줄곧 그녀를 계약 결혼의 도구로만 생각했지만 적어도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녀를 함부로 대하진 않았다.이 가문은 이미 풍비박산해 두 부녀만 남아 서로 의지하고 살고 있다.만약 아버지가 정말 돌아가신다면 전연우의 타깃은 그녀가 될 것이다.중풍이 좋아졌는지 악화되었는지, 담요 속에 놓여있는 손과 발이 약간 경련했다. 장소월은 바닥에 널브러진 빨랫감을 한곳에 모아두었다. 잠시 후 도우미가 가져가 세척할 것이다.전연우의 시선이 그녀를 따라 움직였다. 그녀는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하면 멈추지 않는 타입이었다. 빨랫감을 치운 뒤 다른 곳을 청소하고 침대 시트를 갈았다. 그녀의 행동은 몇십 차례 반복했던 것처럼 능숙했다.전연우가 방 안으로 걸어들어왔다.“너한텐 귀한 집 아가씨보다 도우미가 더 어울리는 것 같네. 소월아, 집엔 도우미가 있어. 이런 일은 네가 직접 하지 않아도 돼.”장소월이 침대를 정리하고는 차분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난 어디에서 왔는지 출신도 불분명한 도우미는 믿지 못하겠어. 이제 아버지 간호는 내가 맡을 테니 오빤 신경 쓸 필요 없어.”전연우의 야심과 검은 속내를 모를 리 없는 장소월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또 현혹하려 하다니.“소월이가 효심이 깊구나. 오빠가 이제야 마음이 놓이네.”전연우는 장
전연우가 덤덤히 말했다.“기성은, 눈앞의 것보단 먼 미래의 이익이 더 중요한 거야. 지금 이 결정도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함이야.”“다 생각이 있어서 그러니까 내 지시대로 해.”전연우가 서랍에서 서류 봉투 하나를 꺼내 그의 앞으로 밀었다.“네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어.”“이겁니까?”봉투를 열어본 기성은이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회사 설립 신청서요?”전연우가 말했다.“맞아. 남천이 내 손에 있으면 언젠가는 망가지고 말아. 누군가 날 대신해 해줬으니 오히려 고마운 일이야. 넌 해고된 남천 그룹 직원을 다시 모아. 우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야.”“돌아오길 원하는 직원한테는 원래 월급의 20퍼센트를 인상해줘.”기성은이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하지만 자금은 어떻게 해결합니까?”“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돼.”“네.”전연우는 이미 황준엽의 손에서 제2의 남천을 일으킬 자금을 확보했다.예전 전연우는 확실히 걱정했었다. 남천이 그의 손에서 무너진다면 장소월은 목숨을 걸고 그에게 맞설 테니 말이다. 전연우도 그녀에게 강제적인 방법을 쓰고 싶진 않았다.이제 그의 목표는 명확하다. 어떤 일은 그가 직접 할 필요가 없다.기성은은 서재에서 나간 뒤 복도에서 장소월과 마주쳤다.장소월은 그를 무시해버린 채 물 한 잔을 들고 안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장해진이 잠들자 그녀는 옆에 앉아 중풍 환자를 간호하는 법에 대한 서적을 읽었다.그의 현재 상태로 보아 빠른 시일 내에 파리에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다.그녀도 별다른 수가 없었다. 이대로 방치하고 떠난다면 그녀가 다시 돌아왔을 때 유일한 피붙이인 아버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만약 장해진마저 떠난다면 그녀는 정말 엄마, 아빠가 없는 고아가 된다.허이준은 교수님으로부터 그녀의 귀국 사실을 들었다. 그는 장소월에게 장해진과 비슷한 환자를 치료하는 한의사를 알고 있으니 연락을 해보라는 문자를 보냈다.장소월은 거절하지 않았다.「그래. 고마워. 수고해줘.」「고맙
강혁은 수술을 마치고 의식을 되찾은 뒤 곧바로 강씨 저택에 옮겨졌다.아이는 깨어나자마자 울며불며 엄마를 찾아댔다. 태어났을 때부터 김남주의 곁을 떠난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도우미가 아무리 달래도 소용없었다. 약은 물론이고 먹은 음식물까지 모두 토해냈고 어느 날 밤엔 피를 토하기까지 했다.이 일을 알게 된 노부인은 강영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남주를 데려왔다.그제야 아이는 안정을 되찾았다.강씨 집안의 혈통을 이어받은 아이가 괴로워하니, 노부인이 어찌 마음이 아프지 않겠는가.의사가 집에 와 살펴보니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그저 스트레스 때문에 너무 울어 입안에 염증이 생겨 피가 난 탓에 피를 토했다고 오해한 것이다.아이의 회복능력은 아주 빨랐다. 며칠이 지나니 침대에서도 내려올 수 있었다. 김남주도 최근 며칠 동안은 편안히 강씨 저택에서 아이를 보살폈다.강혁은 잔뜩 신나 거실에서 비행기 장난감을 갖고 놀고 있었고 김남주는 약 그릇을 든 채 그의 엉덩이를 따라다니고 있었다.도우미가 과일을 썰어놓은 접시를 들고 소파로 다가왔다. 그때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을 발견했고 언뜻 보니 아직 통화 중이었다. 도우미가 허리를 굽혀 핸드폰을 주웠을 땐 이미 전화가 꺼져 있었다. 하지만 도우미는 상대방의 이름을 보았다.“도련님, 핸드폰이 떨어졌어요. 제가 보니...”“아!”김남주가 소리를 지르며 도우미의 말을 끊어버렸다.강영수는 바닥에 넘어진 강혁을 살피고 있었다. 김남주는 아이를 안고 잔소리를 했다.“엄마가 말했잖아. 바닥이 미끄러우니 뛰지 말라고. 수술을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다치면 어쩌려고.”“어디 봐. 아픈 곳 없어?”김남주는 넘어지는 바람에 벌겋게 부어오른 강혁의 손바닥을 호호 불어주었다.“혁이는 조금도 아프지 않아요.”그가 배시시 웃으며 강영수에게로 달려가 무릎에 앉았다.“아빠, 뭘 보시는 거예요?”강영수는 조금 전 도우미가 주워준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깊은 고민에 빠져있는 듯했다.그때 오부연이 들어왔다
전연우가 걱정하던 일이 벌어졌다.리샬이 태블릿을 들고 전연우의 병실 침대로 다가와 말했다. “보스, 큰일 났습니다. 사모님께서 그 지역에 들어가신 후 신호가 사라졌습니다.”전연우는 눈을 감고 침대에 기대앉았다.“오늘은 그만하면 됐어. 나가봐.”“알겠습니다.”그가 가까이 쫓아가면 쫓아갈수록 그녀는 더 깊숙이 몸을 숨길 것이다. 그녀가 시내로 발을 디딘 순간, 즉시 그녀의 소식을 알 수 있을 테니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소월아, 7일 줄 테니까 잘 생각해 봐.’‘시간이 되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와 함께 떠나야 할 거야.’강지훈은 전연우가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병원에 나타났다. 침대에 누워 있는 그를 본 순간, 서늘했던 그의 눈동자에 웃음기가 감돌았다. 강지훈은 흥미로운 듯 의자에 앉았고, 뒤따라온 사람들은 모두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오랫동안 알아 왔지만, 이렇게 엉망인 모습은 처음 보네요. 어때요? 버림받은 기분이?”“아, 참. 그 여자 찾았다고 들었는데... 그래도 소용없을 거예요. 내 생각에는 그 여자 당신과 함께 돌아가려고 하지 않을 것 같네요. 설사 돌아간다 해도, 아이도 낳을 수 없는 여자를 옆에 둔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 많은 돈을 생판 남에게 물려줄 리는 없을 테고.”“당신한테 어울리는 여자 소개해 줄까요? 당신한테 아기를 낳아줄 여자 말이에요.”강지훈은 사람을 약 올리는 데도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바보 하나랑 노는 게 그렇게 즐거워?”강지훈이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그 시원한 웃음소리가 병실에 울려 퍼졌다.밖에 있던 간호사가 안에서 들려오는 큰 소리를 듣고 제지하러 들어가려 했지만, 문밖의 경호원들이 그녀를 제지했다. 그들의 허리에 찬 총을 본 그녀는 감히 한마디도 꺼내지 못하고 바로 자리를 떴다.강지훈은 다시 반격했다. “내 여자는 내 아이를 둘이나 가졌어요. 전연우 씨... 당신 여자는 어때요?”전연우의 몸에서 위험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눈으로 강지훈을 쏘아보고
“알겠습니다.”이미 정체가 드러난 이상 더 이상 위장할 필요가 없으니, 전연우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옆에 있던 경호원이 울고 있는 별이를 전연우 곁으로 데려왔다. 별이는 얼굴 분장을 지웠지만, 분홍색 드레스는 여전히 입고 있었다.“네가 여자아이였다면, 엄마가 떠나는 게 더 어려웠을까?”별이는 순수한 눈빛으로 전연우를 빤히 바라보며 옹알이를 했다.“엄... 엄마...”전연우는 보기 드문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이의 말에 답했다. “걱정하지 마. 엄마는 언젠가 우리 곁으로 돌아올 거야.”별이는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전연우의 품에 안겨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강용은 주변 길에 꽤 익숙했던지라 어렵지 않게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무인 구역에 도착했다. 액셀을 끝까지 밟고 미친 듯이 내달렸지만, 뒷좌석에 앉은 두 사람 중 그 누구도 강용에게 속도를 늦추라고 하지 않았다. 돌아가면 다시는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소현아는 가슴을 움켜쥐고 토할 것 같은 충동을 참았다. 괴로워하는 그녀의 모습을 본 장소월이 말했다. “현아야, 힘들면 나한테 기대서 좀 자.”“괜찮아. 하나도 안 힘들어.”“흐어엉... 소월아, 나 강지훈한테 잡혀가기 싫어.”장소월은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했다. “괜찮아. 우리 이제 안전해.”강지훈에게 이 지역의 경찰을 움직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총기와 탄약을 합법적으로 휴대할 수 있는 곳에는 강지훈만의 인맥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하여 소현아가 어느 도시에 있는지 알기만 하면 즉시 도시 전체를 포위하여 그녀를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쉽게 놓치고 말았다.봉쇄 직전, 강용이 모는 차가 딱 30초, 간발의 차이로 그곳을 빠져나왔던 것이다.강지훈은 소현아가 묵었던 호텔을 찾아갔다. 스위트룸 안, 침대에 던져진 임부복 드레스와 머리맡에 놓인 소현아의 사진이 보였다. “멍청한 년, 그깟 사람 하나 못 잡고, 뭐 하는
소현아는 규영과 마주친 순간 화들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는 급히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말했다. “그런 사람 아니에요. 아니에요. 잘못 보셨어요.”“제 이름은 김소단이에요.”규영은 즉시 소현아가 떠나지 못하도록 붙잡았다. “미경아, 빨리 주인님 모셔와. 현아 아가씨 찾았어.”소현아는 비명을 지르며 그녀의 손을 뿌리치려 했다.“아아아... 나쁜 사람. 빨리 이거 놔요.”“살려주세요! 임신부를 납치하려고 해요!”“미경아, 빨리 와... 아가씨, 더는 도망가지 마세요. 주인님께서 아가씨를 찾으러 오셨단 말이에요. 주인님은 아가씨를 잊지 않으셨어요.”“난 당신 몰라요. 놔줘요!”아무리 용을 써도 규영을 뿌리칠 수 없자, 소현아는 그녀의 팔을 있는 힘껏 깨물었다. 갑작스러운 통증에 규영은 바로 손에 힘을 풀었다.“현아 아가씨...”소현아는 작은 주먹을 꽉 말아쥐고 재빨리 도망쳤다.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병원으로 달려갔고, 마침 강용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오고 있는 장소월과 마주쳤다. 장소월이 말했다. “현아야, 조심해. 뛰지 마.”“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급해?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소현아는 체형이 약간 통통한 데다 평소에 운동도 부족했던지라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뭔가 안 좋은 일이 있는 게 분명하다.소현아가 다급히 말했다.“큰일 났어... 소월아, 강지훈이 나 찾으러 왔어. 방금 쇼핑몰에서 규영이랑 마주쳤어.”“흐흑... 소월아, 강지훈에게 잡혀가고 싶지 않아.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현아는 너희랑 같이 있고 싶단 말이야.”전연우 하나로도 모자라 이제 강지훈까지 나타나다니. 장소월은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다행히 전연우는 강용이 풀어놓은 수면제를 먹고 기절한 상태라 당분간은 위협이 되지 않겠지만, 문제는 강지훈도 이곳에 왔다는 것이다. 게다가 전연우보다 상대하기 훨씬 어려운 인물이었다. 장소월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강용을 바라보았다. “이제 우리 어떻게 해야 해?”강용이 말했다.“지
의사가 들어와 손이준을 진찰했다.장소월은 걱정되는 마음에 물었다. “어때요? 괜찮은가요?”의사가 대답했다.“상처 회복은 잘 되고 있습니다. 휴식만 잘 취하면 됩니다.”“네, 알겠습니다.”의사가 떠나자, 장소월은 다가가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때 갑자기 강용이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이, 전 씨, 그 총알 맞고 왜 안 죽은 거요.”“무... 무슨 소리야?” 이불을 덮어주던 장소월의 손이 경직되어 멈춰 섰다. 그녀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강용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가 손을 거두려던 순간, 돌연 그의 손에 잡혀버렸다.“언제 알아차린 거야? 눈썰미 꽤 쓸만하네.”정... 정말 그 사람이었다!장소월은 충격에 휩싸여 병상에 누워 있는 낯선 얼굴을 바라봤다. 그녀는 잠시 저항하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강용은 재빨리 그들을 떼어놓았다. 전연우가 일어나려고 하자 강용은 순식간에 그의 어깨를 내리눌렀다. “접근하려고 정말 애썼네요.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 날 죽이려고 했던 사람 누구예요?”강용의 손은 전연우의 상처 부위를 누르고 있었다. 그는 고통스러웠지만,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전연우 씨, 내 손에 잡히는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죠?”장소월은 여전히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가... 전연우였다니.그를 본 순간 도망쳤어야 했지만, 그녀의 발은 납덩이라도 매달린 듯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네가 어디에 있든, 찾아낼 거라고 했었잖아.”“소월아, 넌 내 아내야.”그 애절한 말에 장소월은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고, 순식간에 공포에 휩싸였다.“아... 아니에요. 당신이 전연우일 리 없어요...”장소월은 뒷걸음질 치며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악마와 마주치기라도 한 듯, 강력한 충격이 그녀의 머리를 강타했다.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통증에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급기야 그녀는 의식을 잃고 쓰러져 버렸다...“소월아...”강용이 그녀를 재빨리 붙잡았다.전연우는 애타게 그리고 그리던 아내가 다른 사람의 품에 안기
강지훈이 명령했다.“말해.”부관은 손에 든 정보를 강지훈에게 건넸다. “최근 근처 도시에 세 명이 함께 거주하고 있다는 정보입니다. 현재 저희가 일차적으로 걸러낸 상태이고, 곧 시스템으로 소현아 씨의 사진을 인식할 겁니다. 30분 안에 결과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강지훈은 옆에 있는 사람에게 권총을 건네며 말했다.“지금 호텔로 간다.”“알겠습니다, 주인님.”거꾸로 매달려 있던 흑인 남자는 그야말로 숨이 넘어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곳은 사막과 가까운지라 지면에서 뜨거운 열기까지 올라오고 있었다.“가지 마세요! 형님!”“저 혼자 여기 두지 마세요. 무서워요, 아빠!”옆에 있던 규영이 입을 열었다. “주인님, 저 사람 풀어주는 게 어떠십니까.”“현아 아가씨 배 속에 있는 아기를 위해 덕을 쌓는 셈 치는 거죠.”“제가 옛날 어르신께 듣기로는...” 그 순간 규영은 자기도 모르게 실언했다는 것을 깨닫고 급히 말을 바꾸었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어르신의 말을 꺼내는 게 아니었는데...”강지훈이 미간을 찌푸렸다.“뭐라고? 계속해!”규영은 조심스레 말을 이어갔다.“집안에 임신한 사람이 있을 때는 피를 보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배 속에 있는 아기에게 재앙이 닥친다고요.”강지훈은 그 말을 듣고 황당하고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미신은 대체 어디에서 주워들은 거야? 북경 감옥에서 매일같이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데, 그럼 배 속에 있는 아이를 지키지 못한다는 거야?”“주인님, 그런 말씀은 함부로 하시면 안 됩니다. 혹시 모르니 믿는 게 좋습니다. 설령 사실이 아니더라도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현아 아가씨 배 속에 있는 작은 주인님을 위해서라도요.”“주인님께서 좋은 일을 하시면 자연히 작은 주인님에게 복이 쌓일 겁니다. 또한 현아 아가씨께서 순산도 하실 수 있을 거고요.”강지훈의 눈동자가 가라앉았다. 예전에는 본 적 없는 눈빛이었다.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왠지 모르게 가슴속에서 미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우리 둘 다 옷도 입고 있었어. 그냥 너무 추워서 그랬어. 강용 몸은 뜨겁고 따뜻하더라고.”당황스러운 표정으로 횡설수설 변명하는 소현아의 모습이 귀여워 장소월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아. 나는 단지 강용의 안전을 걱정하는 거야. 그 강지훈이라는 사람은 아주 나쁜 놈이거든. 혹시 그 사람이 강용에 대해 물어보면 모른다고 해야 해. 강용과 모르는 사이인 척, 전혀 개의치 않는 척해야 해. 알았지?”“그럼 소월이랑도 모르는 사이라고 해야 해?”장소월은 소현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난 괜찮아. 내가 방법을 알려줄게. 나중에 돌아가서 강지훈의 입에서 남자 이름이 나오면 무조건 모른다고 해야 해. 여자는 괜찮아.”“그리고... 혹시 다른 사람이 널 괴롭히면 울면서 그 사람이 너를 때렸다고, 욕했다고 말해야 해. 강지훈한테 전부 고자질해.”소현아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눈물이 안 나오면 어떡해? 꼭 울어야 해?”장소월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현아야, 넌 왜 이렇게 귀여운 거야! 나중에 나한테도 딸이 생기면 너처럼 귀엽고 천진난만하게 자라줬으면 좋겠어.”그녀에게는 아무런 걱정도 근심도 없다.사실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는 것이 많을수록 자신을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하는 감옥에 가두기 십상이니까.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치다가 결국 그녀처럼 되어버리고 만다.소현아는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누릴 자격이 있다.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소현아는 장소월의 손을 잡고 북경 감옥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이야기했다. 장소월은 강지훈이 소현아를 강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만 그는 아직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사랑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피어오르는 감정이다.왜 하필 강지훈이란 말인가!장소월은 잠들어 있는 소현아를 보며 조용히 이불을 덮어주었다.강지훈 같은 사람은 무해하고 천진난만한 소현아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그들이 사는 세상은... 그야말로 상상하기도 꺼려질
수술실 문밖에 돌아와 보니, 강용은 여전히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장소월은 그에게 음식을 챙겨주었다.“수고했어. 먼저 가서 쉬어. 나랑 현아가 근처에 방 두 개 잡아놨어. 현아는 당분간 나랑 같이 잘 거고, 이건 네 방 카드야. 현아랑 같이 먼저 가 있어.”“됐어, 너도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았잖아. 이 정도는 버틸 수 있어.”“나중에 그 사람이 나오면 내가 도와야할 일이 있을 거야. 여자인 너 혼자서는 불편해.”장소월은 화장실에서 꾸물거리며 나오는 소현아를 바라보았다. 손에는 간식 두 봉지도 들려 있었다. “그래... 알았어. 나는 옷이라도 좀 사러 가야겠다. 너무 급하게 나오느라 옷을 많이 못 챙겨왔거든.”“그래, 갔다 와.” 강용은 정말 배가 고팠는지, 게눈 감추듯 순식간에 모두 비웠다.장소월이 물었다. “옷 말고 또 필요한 거 있어?”“아무거나, 네 맘대로 해.”강용은 주머니에서 은행 카드 하나를 꺼냈다. “여기에 돈 좀 있어. 내 걸로 결제해.”“됐어. 이 돈은 나중에 쓸 데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네가 가지고 있어.”“너는 남자니까, 나중에 뭐라도 하려면 돈이 좀 있어야지”무거워진 장소월의 말투를 눈치챈 강용은 장난스럽게 말했다. “쳇, 네 그림 한 점이 몇천만 원이나 된다고 지금 날 비웃는 거지? 어휴. 아가씨, 절 키워주시는 건 어때요?“계속 아가씨의 개가 될게요.”장소월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됐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개는 무슨.”장소월은 소현아와 함께 쇼핑몰에 가서 옷을 몇 벌 구매한 뒤 호텔로 돌아왔다. 신분증을 등록하려고 프런트에 선 순간, 장소월은 왠지 모르게 불안한 느낌이 엄습했다. 하여 새로운 신분증을 꺼내 등록 정보로 사용했다.“미카엘 씨, 여기 객실 카드입니다. 즐거운 여행 되세요.”“감사합니다.”원래는 저렴한 호텔에 묵을 생각이었지만, 소현아가 불편해할까 봐 걱정되어 이곳으로 결정했다. 10층에 위치한 방에 들어가 커튼을 열어보니 아름다운 강 풍경이 눈
아이...지금 세 사람은 확실히 아이를 키울 여유가 없다.전 부인이 말했다. “절대 월이 돌려주지 않을 테니까 내 아이 뺏어갈 생각은 하지도 말아요.”강용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됐어요. 우리 셋 다 당신 아이 봐줄 시간 없어요. 당신이 준다고 해도 우리가 싫어요.”“참, 그리고 전 남편 치료비도 잊지 말고 내줘요.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한때 부부였는데 너무 매정하게 굴지는 말아야죠.”그녀는 화가 난 듯 씩씩거리며 에르메스 한정판 가방에서 돈다발을 꺼내 던졌다. “그동안 아이를 키워준 양육비와 예전 나한테 줬던 돈 전부 갚았어요. 이제 각자 갈 길 가고 다시는 얼굴 보지 말자고요.”별이는 얼굴이 엉망이 된 채 서럽게 엉엉 울고 있었다. 장소월은 차마 볼 수 없어 시선을 돌렸다. 필경 다른 사람의 사생활이니 왈가왈부할 수가 없었다.그녀는 아이의 엄마다. 엄마가 데려가겠다고 하면 아무에게도 막을 권리가 없다.그들이 위풍당당하게 떠난 후, 강용은 돈을 세어보았다. 몇백 달러 정도였다. “제기랄, 몇만 달러짜리 가방을 들고 다니면서 전 남편에게는 쥐꼬리만큼도 안 주다니. 빨리 죽으라고 고사라도 지내는 건가. 이 돈으로는 수술도 못 하겠네.”장소월이 말했다. “됐어, 강용. 사람 목숨은 하늘에 달려 있는 거야. 일단 이준 씨 어떻게 됐는지부터 알아보자.”“그래.”소현아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소월아, 아기가 배고픈 것 같아. 들어봐... 얘네 둘이 소리치고 있어.”강용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배고픈 거면서 무슨 엉뚱한 소리야. 밥 먹을 시간이긴 하네. 넌 소현아 데리고 근처 식당에 가서 밥 먹어. 이준 씨한테는 내가 가볼게.”며칠 동안 강용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는 생각에 장소월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했다.“빨리 먹고 포장해서 갖다 줄게.”“그래.”식사를 마친 뒤 장소월은 소현아를 데리고 검사를 받으러 산부인과로 향했다. 30분 후, 결과가 나왔고 예상외로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의사는 검사
바로 맞은편 길에서 또 한 무리의 차량이 웅장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규영이 돌연 즉시 차를 세우라며 소리쳤다. “...저... 현아 아가씨 목소리 들은 것 같아요.”강지훈은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다가 그 말에 번쩍 눈을 떴다. “확실해?”규영은 확신할 수는 없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목소리가 정말 현아 아가씨 같았어요. 소월이라는 이름을 부르기도 했고요. 현아 아가씨 친구분이 장소월 씨잖아요. 그냥 우연인 걸까요?”강지훈은 마지막 남은 인내심까지 바닥난 듯 말했다. “얼마나 남았지?”운전석에 묶여 있던 남자는 강지훈이 꽤 많은 힘을 들여서 찾아낸 인물이었다. 소현아의 행방을 쫓다가 드디어 실마리를 찾았다. 바로 이 남자가 소현아에게 가짜 신분증을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그동안 강지훈의 정보 조직이 오랫동안 소현아의 소식을 찾지 못했던 이유였다.강지훈은 항공편 정보를 토대로 소현아의 사진을 일일이 대조한 결과, 그녀가 다른 두 사람과 함께 이곳 사막으로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이곳에서 얼마 전 폭동이 일어났고, 소현아는 무사하다는 사실까지 확인했다.흑인 남자가 한 민박집 앞에 차를 세웠다. “여깁니다, 바로 여기예요.” 사투리가 가득 섞여 있는 목소리였다.강지훈이 차에서 내리자, 곧이어 뒤따라오던 몇 대의 검은색 승용차에서도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잠겨 있는 대문을 본 강지훈은 그대로 발로 쾅 하고 걷어찼다. 몇몇 사람들이 신속하게 위층으로 올라갔고, 강지훈도 천천히 소파 옆으로 걸어갔다. 규영과 미경은 주방으로 향했다.2분 후, 위층으로 올라갔던 흑인 남자가 보고했다. “위층에는 세 명이 살고 있고, 옷가지도 좀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물건들은 없는 것으로 보아 이미 떠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규영이 말했다.“주인님, 냉장고에 현아 아가씨가 좋아하는 방울토마토와 포도가 있습니다... 방금 전까지 아궁이에 불을 지폈던 흔적도 있습니다. 나간 지 얼마 안 된 것 같습니다.”강지훈은 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