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혁은 수술을 마치고 의식을 되찾은 뒤 곧바로 강씨 저택에 옮겨졌다.아이는 깨어나자마자 울며불며 엄마를 찾아댔다. 태어났을 때부터 김남주의 곁을 떠난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도우미가 아무리 달래도 소용없었다. 약은 물론이고 먹은 음식물까지 모두 토해냈고 어느 날 밤엔 피를 토하기까지 했다.이 일을 알게 된 노부인은 강영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남주를 데려왔다.그제야 아이는 안정을 되찾았다.강씨 집안의 혈통을 이어받은 아이가 괴로워하니, 노부인이 어찌 마음이 아프지 않겠는가.의사가 집에 와 살펴보니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그저 스트레스 때문에 너무 울어 입안에 염증이 생겨 피가 난 탓에 피를 토했다고 오해한 것이다.아이의 회복능력은 아주 빨랐다. 며칠이 지나니 침대에서도 내려올 수 있었다. 김남주도 최근 며칠 동안은 편안히 강씨 저택에서 아이를 보살폈다.강혁은 잔뜩 신나 거실에서 비행기 장난감을 갖고 놀고 있었고 김남주는 약 그릇을 든 채 그의 엉덩이를 따라다니고 있었다.도우미가 과일을 썰어놓은 접시를 들고 소파로 다가왔다. 그때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을 발견했고 언뜻 보니 아직 통화 중이었다. 도우미가 허리를 굽혀 핸드폰을 주웠을 땐 이미 전화가 꺼져 있었다. 하지만 도우미는 상대방의 이름을 보았다.“도련님, 핸드폰이 떨어졌어요. 제가 보니...”“아!”김남주가 소리를 지르며 도우미의 말을 끊어버렸다.강영수는 바닥에 넘어진 강혁을 살피고 있었다. 김남주는 아이를 안고 잔소리를 했다.“엄마가 말했잖아. 바닥이 미끄러우니 뛰지 말라고. 수술을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다치면 어쩌려고.”“어디 봐. 아픈 곳 없어?”김남주는 넘어지는 바람에 벌겋게 부어오른 강혁의 손바닥을 호호 불어주었다.“혁이는 조금도 아프지 않아요.”그가 배시시 웃으며 강영수에게로 달려가 무릎에 앉았다.“아빠, 뭘 보시는 거예요?”강영수는 조금 전 도우미가 주워준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깊은 고민에 빠져있는 듯했다.그때 오부연이 들어왔다
그들 사이의 일은 이제 매듭을 지어야 할 때가 되었다. 만약 강영수가 장소월을 선택한다면, 두 사람 사이의 아이를 잃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만약 아이를 선택한다면, 장소월이 아이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감남주는 당연히 장소월이 자발적으로 물러서기를 원했다. 강영수와 장소월 사이에 아무리 깊은 감정이 있다고 해도, 그녀가 낳은 아이보다 못할 것이다.강영수가 다시 전화를 걸자, 통화는 이내 연결되었다.하지만 그는 침묵을 지켰다.“영수야? 무슨 일 있어?”장소월의 목소리에는 이상한 낌새가 없었고, 강영수는 그제야 머뭇거리며 떠보듯 입을 열었다.“방금 실수로 너한테 전화를 걸었어...”“알아. 그런데 아무 소리도 안 나서 그냥 끊었어. 안 그래도 너한테 다시 전화하려던 참이었어. 나 서울로 돌아왔어. 아버지가 아프셔서, 내가 집에서 며칠 돌봐야 할 것 같아. 미안해, 너한테 미리 얘기 못했어!”강영수는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래, 내가 지금 너한테 갈게. 아버님 많이 아프셔? 내가 의사 불러줄게.”장소월은 덤덤하게 말했다.“아직은 잘 몰라. 이미 한의사 불렀어, 내일 오기로 했으니까 괜찮아. 나 일 있어서 먼저 끊을게.”“그래, 내일 봐.”휴대폰 속에서는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장소월은 비로소 대답했다.“응.”그녀는 전화를 끊었다.장소월은 하루 종일 장해진의 곁을 지키며, 한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고 보살폈다. 오늘 방을 정리하던 중, 아버지의 옷장 서랍 아래에서 사진첩을 발견했다.그녀가 사진첩을 열어보니 낯이 익지만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전부 자애로운 면상을 가졌지만, 사실 모두 한때 조직원이었던 지하 세계 거물들이었다. 평소에 외톨이처럼 보이던 장해진이 이렇게 많은 사람을 알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두툼한 사진첩 속에서 어머니의 그림자도 보지 못한 장소월은 조금 실망했다.이때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소월 아가씨... 저녁 식사 하세요.”장소월은 차가운 눈빛으로 오 아주머니를
“윤서 넌 일단 나가 있어.”장소월도 차갑게 입을 열었다.“모두 나가세요. 아버지 휴식하셔야 하니 여기서 방해하지 마세요.”장소월은 몸을 돌려 외면했고, 그들의 연기를 지켜볼 기분도 아니었다.“소월 아가씨!”오 아주머니는 말끝을 흐렸다. 애틋한 눈빛에는 슬픔이 잠겼다. 마치 장소월이 그녀에게 잘못하여, 자신이 악랄한 악당으로 변한 듯이 말이다.“나가요!”장소월은 그들을 보고 싶지 않아 돌아섰다.백윤서는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말했다.“아주머니, 일단 나가세요.”오 아주머니는 백윤서의 부축을 받으며 방을 나갔고, 전연우가 문을 닫았다. 백윤서는 장소월과 오 아주머니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줄곧 가족처럼 서로 의지하던 두 사람은 이제 원수에 가까웠다.“오빠, 두 사람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백윤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물었다.남자는 차갑고 음산한 눈빛으로 오 아주머니를 주시했다.“앞으로 제 허락 없이 함부로 소월이 찾아오지 마세요. 이 집안에 계속 남고 싶다면 아주머니가 해야 할 일만 하세요.”오 아주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고, 초췌한 얼굴로 말했다.“도련님, 전 남은 평생 소월 아가씨에게 속죄하기 위해서라도 장씨 가문에 남을 거예요.”백윤서는 허리를 잔뜩 구부린 아주머니가 떠나는 뒷모습을 보며 물었다.“오빠, 소월이랑 아주머니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예요?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있어요?”오 아주머니가 입원해서부터 백윤서는 이상함을 느꼈다. 오 아주머니가 그렇게 오랫동안 입원해있으면서 장소월은 한 번도 병문안을 오지 않았고, 그날 병원 복도에서도 장소월은 차가운 눈빛으로 아주머니를 외면하고 떠났다.“윤서야, 이건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 시간이 늦었어. 내가 아파트로 데려다줄게.”“나 안 가요. 오빠가 여기 있으면 나도 여기 있을래요. 오빠... 나 혼자 두지 마요.”백윤서는 가련한 얼굴로 전연우의 팔을 잡고 말했다.하지만 이번에는 아주 단호한 전연우였다.“지금 상황에서 네가 여기
장소월은 그의 손을 뿌리쳤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그녀는 미간을 찡그리더니 시종일관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아직도 볼 일이 남았어?”“장씨 가문에는 하인이 많아. 너만 아버지를 돌봐줄 수 있는 건 아니야.”“맞아, 모두 네 사람이잖아. 아버지가 왜 이렇게 됐는지, 네가 나보다 더 잘 알 거 아니야? 이 상황에서 내가 널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장소월은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이번에 아버지가 버틸 수 있든 없든 간에, 난 내가 해야 할 일을 다 할 거야. 아무도 너랑 장씨 가문 안 뺏어, 곧 네 것이 되겠지.”장소월은 힘껏 그의 손에서 벗어났고, 돌아보지도 않고 장해진의 방으로 들어갔다. 한 발짝 들어서자 장소월의 허리춤에 그의 손이 나타났다.손에 들고 있던 물건은 모두 땅에 떨어졌고, 전연우는 그녀를 메고 위층으로 올라갔다.전연우의 동작은 거칠었고 또 신속했다.“그러니 이제 소월이는 오빠 말 더 잘 들어야겠지?”장소월은 그에 의해 벽에 밀쳐졌다. 그는 당장이라도 사람을 잡아먹을 맹수처럼 뜨거운 눈빛으로 천천히 여자에게 다가갔다. 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남자의 몸에서는 강한 호르몬 냄새가 났다. 장소월은 뜨거운 불길이 자신을 태우려고 에워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전연우의 입술이 다가오자, 장소월은 고개를 홱 돌렸다.“너 미워하게 만들지 마.”“오빠가 동생 몸을 탐했다는 소문이 나면 서울에서 계속 얼굴 들고 살 수 있겠어?”“난 영수의 여자라는 거 잊지 마.”전연우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이제 오빠를 협박할 줄도 아네?”그녀를 바라보는 남자의 눈빛에는 파도가 일렁였다.“네가 그렇게 만든 거야.”그와 한 공간에 있으면 장소월은 언제나 기가 죽었고, 목소리도 떨렸다.남자는 그녀의 턱을 치켜올리더니, 섬뜩할 정도로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소월이는 아직 오빠를 몰라.”그는 갑자기 포악해지더니, 손으로 여자의 얼굴을 조르고 눈빛도 무서워졌다.“난 내가
다가오는 여자를 거절하지 않는 전연우가, 장소월의 몸에 손대기 전에 얼마나 많은 여자와 침대에 올랐는지는 모르는 일이다.그런 전연우을 하찮게 여기면서, 장소월은 자기 자신도 더럽다고 생각했다.두 사람은 애초에 모르는 사이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아래층에서도 인기척이 들렸어. 연우 또 소월이 괴롭히는 거야?”강만옥의 하늘하늘한 목소리가 문밖에서 울려 퍼졌다. 그녀가 문 앞에 다다랐을 때, 눈앞의 광경을 보고도 전혀 놀란 기색 없이 웃으며 전연우 곁으로 걸어갔다.“왜 어린 애를 이 지경까지 몰아세워?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찾아오지.”남자를 바라보는 강만옥의 눈빛에는 애틋함과 끈적함이 가득했다. 바보라도 둘 사이에 은밀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나가! 미안하지만 여기는 내 방이야. 두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든 이 방에서 나가줘.”장소월은 손에 있던 커터칼을 내려놓았지만 하얀 목에는 안타깝게도 상처가 났고, 피가 새어 나왔다. 그녀의 눈에는 혐오감이 가득했다. 이미 극도로 뒤틀린 관계들은 불분명하고 서로 얽혀 있었다. 이 집은 이미 썩어빠진 늪지였다. 모두가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늪지.“소월아, 이 칼 함부로 갖고 놀면 안 돼. 그러다 다치면 어떡해?”강만옥은 일부러 그녀를 자극하려는 듯, 떠날 생각이 전혀 없었다.“두 사람이 안 나가면, 내가 나가. 이 방에서 둘이 뭘 하든 마음대로 해.”두 사람만 보지 않을 수 있다면, 장소월은 어디에 있든 상관없었다.장소월이 전연우의 곁을 지날 때, 남자가 손을 뻗어 잡으려 하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칼로 방어했다. 장소월이 진짜 자신을 공격할 거라 예상하지 못한 전연우는 손등을 긁히고 말았다.장소월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겉으로는 담담한 척 그를 쳐다보았다. 마치, 진짜 내 몸에 손대면 죽여버리겠다는 눈빛이었다.전연우는 눈빛이 차가워졌고, 이미 멀리 도망친 장소월을 보며 눈동자가 더욱 짙어졌다.그리고, 강만옥의 뺨을 짝 때렸다!그녀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그
장소월은 아침 8시 30분에 일어났고, 경호원들은 밖에서 들어오는 그녀를 보고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거실에서 하인은 이미 아침 식사를 마쳤다. 장소월이 현관에 들어갔을 때, 위층에서 쨍그랑하고 뭐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전연우는 소파에 앉아 경제신문을 보고 있었다. 그는 등을 돌린 채 고개도 돌리지 않고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거기 서, 아침 먹고 올라가.”부엌에서 바삐 돌아치던 오 아주머니도 장소월이 온 것을 눈치챘다. 식탁의 음식들은 확실히 풍부했다. 모두 장소월이 전에 즐겨 먹던 음식들이었다.“고맙지만, 난 이미 옆집에서 국수 먹고 왔어.”탁하는 소리와 함께, 전연우는 신문을 덮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강한 기세를 풍기며 그녀에게 다가갔다.“앞으로 저녁에 함부로 돌아다니지 마.”장소월은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위층으로 올라갔다.복도의 손잡이를 잡고 걸어 올라가더니 다시 멈춰 서서 말했다.“앞으로 음식은 제가 직접 할 테니 따로 준비하지 말아 주세요. 음식에 더러운 약이라도 있을까 봐 무서워요.”쨍그랑, 주방에서 식판을 준비하던 오귀화는 실수로 손에 쥔 물건을 바닥에 떨어뜨렸고, 그대로 두 동강이 나버렸다.30분 후, 예약한 한의사가 제시간에 별장에 도착했다.장소월은 전화를 받고 직접 내려갔다.상대방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80대 노인이었다. 손에 의료 상자를 들고 있었고, 장소월이 손을 내밀어 받으려 하자, 노인은 거절했다.“이 약상자는 십 킬로가 넘어요. 젊은 아가씨가 들기 어려워요. 어서 환자분에게 안내해주시죠.”“네.”장소월은 의사를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의사가 장해진에게 진맥을 보고, 또 침을 놓아주니, 손발 경련 증상이 많이 호전되었다.“선생님, 아버지 어떠세요? 언제쯤 좋아지실까요?”“기혈이 약하고, 간과 신장도 많이 쇠약해요. 이건 평소 식습관 때문이에요. 게다가 경맥폐색 증상도 있어 방금 침을 놓았어요. 제 처방에 따라 약을 마시는 것 외에, 따로 제가 혈자리 지도를 드리죠. 환자의 몇몇 혈자리를
장소월은 의사가 알려준 대로 뒤뜰에서 한 시간 넘게 약을 달이느라 바빴다.이때, 하인이 다가왔다.“아가씨, 저희가 할게요. 이런 일은 아랫것들이 해야죠, 어떻게 아가씨가 직접 나서요?”“전 괜찮으니까, 다들 가서 일 보세요.”또다른 하인이 다가오더니 장소월에게 말했다.“아가씨, 강 대표님 오셨습니다. 도련님께서 맞이하고 계세요.”“알겠어요. 바로 갈게요.”약을 다 달인 후, 장소월은 약을 들고 아래층이 아닌 위층으로 향했다. 하인을 불러 강영수를 자기 방으로 불렀다.방 탁자 위에는 그들이 약혼할 때 찍은 사진들이 놓여 있었고, 한쪽의 이젤은 흰 천으로 덮여 있었는데, 이것은 그녀가 원래 강영수에게 주려고 했던 선물이었다. 하지만 그날 약혼연회에 강영수가 없어서 장소월은 도로 가져왔다.강영수는 그녀의 방에 들어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장소월을 뒤에서 와락 껴안았다.장소월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는 여자의 체향을 맡았다.“미안해, 회사에 일이 있어서 너한테 못 갔어. 이번에는 언제 돌아갈 거야? 내가 곁에 있어 줄게.”장소월은 몸을 돌려 그의 품에서 나오더니,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앞으로 파리 못 갈 것 같아. 아버지가 아프셔서 집에서 돌봐야 해. 의사 선생님이 3개월 안에 회복하실 거라 그랬어.”강영수는 미간을 찌푸렸다.“장씨 가문에 하인이 이렇게 많은데, 네가 왜 이런 일에 시간을 낭비해? 그림 배우는 건 네가 늘 꿈꾸던 일이잖아? 그래도 걱정된다면 아버님을 병원에 보내고, 강씨 가문 사람들이 돌봐도 돼.”장소월은 조용히 그를 보더니 갑자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의 눈빛에는 약간의 당황함이 비쳤다.강영수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왜 그렇게 쳐다봐? 왜 그래? 혹시 무슨 일 있어?”장소월은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그럼 부탁할게.”“바보야, 우리는 이제 한 가족이야. 나한테 그런 말 할 필요 없어. 네 아버지는 곧 내 아버지니까, 내가 당연히 돌봐야지.”강영수는 곧 사람을 불러 장해진을 강씨 가문이 투자한
“조금 전에요. 지금 나가시면 만날 수 있을 거예요.”“네, 감사합니다.”강영수는 의자 등받이의 양복을 집어 들고 곧바로 쫓아갔다.입구에는 오가는 차량만 있을 뿐,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휴대폰을 들고 전화를 걸었지만, 전원이 꺼졌다는 알림음만 돌아왔다.강영수는 몇 번이나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통하지 않았다.사실, 강영수가 뒤돌아본다면, 장소월이 그의 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다는 것을 한눈에 볼 수 있을 것이다.그는 장소월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집에 도착하면 전화해 줘.」「진봉에게 파리로 가는 티켓 예약하라고 할게. 진봉이 널 공항으로 데려다줄 거야.」메시지를 보낸 그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차에 올라 액셀을 밟고 떠났다.휴대폰을 들고 있는 장소월의 손에 조금씩 힘이 들어가더니 손끝이 하얗게 변했고, 가슴의 통증이 일파만파 퍼졌다.사실 강영수가 전화를 받으러 갔을 때, 장소월은 그를 몰래 따라갔고, 통화내용을 모두 들었다.지금 그와 약혼을 한 사이지만, 장소월은 자신이야말로 다른 사람의 감정에 개입한 제삼자 같았다.김남주의 등장과, 그들 사이의 과거는 전부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었다.하지만 그 아이는?장소월은 더 이상 자신을 속일 수 없었다.어쩐지, 전연우가 그녀가 끼고 있던 약혼반지를 버리더라니, 사실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장소월은 마치 바늘에 찔린 것 같은 가슴을 움켜쥐고 초췌한 모습으로 떠났다.‘아버지가 깨어나면, 마지막으로 도와달라고 해야겠어. 그럼 앞으로... 영수와 인연을 끊을 수 있어.’장소월은 매점에서 맥주 몇 캔을 사서 들고는 강가로 향했다.이 시간에 산책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장소월은 허이준에게 전화를 걸었다.작업실에 있던 그는 하던 일을 멈추고 전화를 받았다.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술기운이 섞인 목소리가 천천히 울려 퍼졌다.“이준아, 너 티켓 예매할 줄 알아?”그녀의 말투는 조금 이상했다.“무슨 일 있어?”“아니, 아버지는 이미 영수가 병원으로 모시고 가서 보살펴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