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전에요. 지금 나가시면 만날 수 있을 거예요.”“네, 감사합니다.”강영수는 의자 등받이의 양복을 집어 들고 곧바로 쫓아갔다.입구에는 오가는 차량만 있을 뿐,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휴대폰을 들고 전화를 걸었지만, 전원이 꺼졌다는 알림음만 돌아왔다.강영수는 몇 번이나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통하지 않았다.사실, 강영수가 뒤돌아본다면, 장소월이 그의 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다는 것을 한눈에 볼 수 있을 것이다.그는 장소월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집에 도착하면 전화해 줘.」「진봉에게 파리로 가는 티켓 예약하라고 할게. 진봉이 널 공항으로 데려다줄 거야.」메시지를 보낸 그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차에 올라 액셀을 밟고 떠났다.휴대폰을 들고 있는 장소월의 손에 조금씩 힘이 들어가더니 손끝이 하얗게 변했고, 가슴의 통증이 일파만파 퍼졌다.사실 강영수가 전화를 받으러 갔을 때, 장소월은 그를 몰래 따라갔고, 통화내용을 모두 들었다.지금 그와 약혼을 한 사이지만, 장소월은 자신이야말로 다른 사람의 감정에 개입한 제삼자 같았다.김남주의 등장과, 그들 사이의 과거는 전부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었다.하지만 그 아이는?장소월은 더 이상 자신을 속일 수 없었다.어쩐지, 전연우가 그녀가 끼고 있던 약혼반지를 버리더라니, 사실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장소월은 마치 바늘에 찔린 것 같은 가슴을 움켜쥐고 초췌한 모습으로 떠났다.‘아버지가 깨어나면, 마지막으로 도와달라고 해야겠어. 그럼 앞으로... 영수와 인연을 끊을 수 있어.’장소월은 매점에서 맥주 몇 캔을 사서 들고는 강가로 향했다.이 시간에 산책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장소월은 허이준에게 전화를 걸었다.작업실에 있던 그는 하던 일을 멈추고 전화를 받았다.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술기운이 섞인 목소리가 천천히 울려 퍼졌다.“이준아, 너 티켓 예매할 줄 알아?”그녀의 말투는 조금 이상했다.“무슨 일 있어?”“아니, 아버지는 이미 영수가 병원으로 모시고 가서 보살펴주고
봄바람이 불자, 소녀의 체향과 술 냄새가 뒤엉켜 스며들었다.남자는 강한 힘으로 땅바닥의 여자를 잡아당겼다. 장소월이 똑바로 서지 못하고 넘어지려 하자, 남자가 그녀의 허리를 잡아주었다. 얇은 옷감 사이로 그녀의 체온을 느낄 수 있었다.전연우는 그녀가 들고 있는 맥주를 빼앗아 보더니 말했다.“한 캔 마시고 이렇게 취한 거야? 주량도 그대로고, 머리도 여전히 둔하네.”나지막한 그의 목소리에는 아무런 감정도 깃들지 않았다.“쓸데없는 일에 참견하지 마. 원한다면 줄게. 좋게 말하면 될 것을 왜 욕하고 난리야?”장소월은 술에 취해 그를 밀치고,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몸을 돌려 한쪽 팔걸이를 짚으며 계단을 올랐고, 나무 의자에 앉아 두 발을 웅크리고는 치마를 정리했다. 다리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여전히 무슨 일이든 마음속에 담아두는 스타일이었다. 술에 취했어도 묵묵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가로등 아래, 짙은 색 캐주얼 차림의 전연우의 큰 그림자가 여자의 연약한 몸을 감쌌다.“언제까지 여기 앉아 있을 거야? 집에 안 가?”한참 후에야, 장소월의 우울한 목소리가 들렸다.“나 집이 없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 엄마가 살아 계셨다면 얼마나 좋을까. 절대 날 내버려 두지 않으실 텐데...”전연우는 그녀와 함께 의자에 앉았다. 보기 드물게 인내심이 강한 모습이었다. 장소월은 남은 맥주를 마시고 나니 제대로 취기가 올랐다.지금 벌써 11시가 되어가고 있으니, 공원 호수 주변은 이미 텅텅 비었다.전연우는 그녀를 안고 조수석에 앉혔다. 만취한 장소월은 절대 술주정을 부리지 않았고 조용히 잠을 잤다.예전의 장소월은 아무리 오만방자하게 굴었어도,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절대 밖에서 취하는 일이 없었다. 두 번의 인생을 통틀어 밖에서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마신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전연우가 손을 빼려는데, 여자가 갑자기 그의 옷 소매를 잡았다. 장소월은 갑자기 고개를 돌
장소월은 몸을 비틀며 울음소리를 냈다.전연우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쇠사슬에서 빠져나온 짐승처럼 하체의 금속 지퍼를 내리고, 다른 손으로 그녀의 긴 다리를 들어 올려 미친 듯이 입을 맞추었다.장소월은 아랫도리에 뭔가가 밀려 들어오는 것을 느꼈고, 순간 눈이 맑아지더니, 괴로워서 아랫배를 쭉 내밀었다.‘전연우? 왜 이 인간이?’“윽!”그 따끔거리는 느낌은 곧 사라졌고, 장소월은 숨 막히는 키스에 질식할 지경이었다. 숨이 차오르고, 알코올은 뇌를 마비시켰고, 그녀는 정신이 혼미했다. 온몸이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가벼웠다.끈적끈적한 물소리, 거친 동작에 차 전체가 흔들리고 있었다...“그만해!”장소월은 무언가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지만 헛수고였다. 마치 차가운 물 위에 뜬 것처럼 오르락내리락하다가 익사할 것 같았다.마지막 물결이 밀려오자 장소월은 기절했다.다시 깨어났을 때는 이미 낯선 환경이었다.그녀의 앞에는 남자의 잘생긴 옆모습이 보였다. 고개를 들어보니, 그녀는 남자의 품에 안겨 있었다. 남자의 목에는 몇 가닥의 스크래치 자국이 있었고, 그는 주름진 옷을 입고 있었다. 눈을 질끈 감은 채 잠을 설친 듯했다.장소월은 뒤늦게 깨닫고 깜짝 놀라 그를 밀쳐냈다.“어떻게...”그녀가 허전한 앞가슴을 만져보니 속옷의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였다. 눈앞의 남자를 몇 초 동안 멍하니 바라보다가, 손바닥을 들어 전연우의 얼굴을 때렸다.“전연우 이 짐승 같은 놈. 변태!”“어떻게 나한테 이런 짓을 해? 난 네 동생이잖아!”전연우는 옷 단추를 천천히 잠그며 말했다.“어젯밤에는 네가 원한 거야. 기억 안 나?”장소월은 미친 듯이 그의 멱살을 잡았고, 붉어진 눈가에는 눈물이 넘쳐 흘렀다. 눈앞의 사람을 당장이라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럴 리가... 분명 네가 강요한 거야.”“내가 어떻게...”전연우는 단추를 잠그고 나서, 그녀의 손을 잡고는 한 곳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저기 카메라도 있어. 어젯밤에 누가 간절히 원했는지 한번
언제 사라졌는지 모르는 신발도 없이, 발바닥이 날카로운 돌에 찢겨도 그녀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그가 있는 곳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이곳은 남원별장 외곽에 있는 우뚝 솟은 산봉우리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주위에 나무 외에 황량한 땅 밖에 없었고, 차가 지나갈 수 없는 넓은 도로가 있었다.산봉우리의 끝에 있는 절벽에는 울타리를 만들지 않아, 전연우는 차를 절벽 끝에 세워놓았다. 이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출을 볼 수 있었다.아침 햇살이 장소월을 비추었지만, 그녀는 전혀 따듯함을 느끼지 못했고 온몸이 얼음처럼 차가웠다. 발밑의 상처도 놀라울 정도였다.“이렇게 된 이상 그냥 받아들여. 소월아, 이제 오빠 곁에 있어.”언제부터인지, 전연우도 그녀의 뒤를 한발짝 한발짝 따라오고 있었다.“아니야. 틀렸어! 모든 게 엉망진창이야!”장소월은 머리를 움켜쥐고 멘탈이 나간 모습이었다. 그녀는 돌아서서 빨갛게 달아오른 두 눈으로 남자를 보며 말했다.“우리는 이러면 안 돼.”그녀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네 주위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있잖아. 네 복수의 발정 도구로 쓰이고 싶지 않아. 너랑 엮이지 않으려고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전생에 내가 널 그렇게 사랑했지만, 넌 그저 날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존재로 여겼어. 그럼 이번 생에는 대체 왜 이러는 건데? 널 사랑하지도 않는데! 그저 조용히 살고 싶을 뿐인데, 나한테 꼭 이래야만 했어? 대체 왜!”전연우는 그녀가 미친 듯이 내뱉는 말을 듣고, 어리둥절했지만 조금은 알아들은 눈치였다. 그의 눈동자가 짙어지더니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누가 너한테 뭐라고 했어?”현재로서는 두 사람 말고 그들의 관계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누군가 뭐라고 하지 않았다면 장소월은 이런 말을 할 리가 없다.장소월은 그의 말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갑자기 그녀는 현기증을 느끼더니, 눈앞이 캄캄해지며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얼마나 지났을까, 장소월은 흐리멍덩해서 몇 번이나 깨어났고, 매번
“제발, 아이를 돌려줘...”장소월은 울면서 잠꼬대를 했다.남자는 그녀를 응시하면서 의아해서 물었다.“무슨 아이를 말하는 거야?”“제발, 송시아, 부탁이야... 전연우에게 내 아이를 돌려달라고 해줘. 아이는 죽으면 안 돼.”송시아?전연우는 묵묵히 그 이름을 기억했다.그는 새 회사 일을 처리하면서 의식을 잃은 장소월을 돌봤다.백윤서가 왔을 때, 그는 아주 초췌한 모습이었다.그녀는 어떻게 전연우를 상대해야 할지 몰랐고, 차가운 눈으로 장소월을 바라봤다.“계속 소월이 돌봐줄 생각이에요?”전연우는 손에 있는 서류들을 보며 고개도 들지 않고 물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이미 많이 화가 나 있었다.“어젯밤에 어디 갔었어? 성은이가 너 어젯밤에 아파트로 돌아가지 않았다고 하던데?”“오빠 마음에 아직도 제가 있기는 해요? 제가 어디 가서 죽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잖아요.”“...”전연우는 하던 일을 멈추더니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심리치료가 너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된 것 같군.”요즘 백윤서가 밖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것을 제외하고, 상담소에서 심리치료를 받고 있었다.만만치 않은 상담비용이었지만, 전연우는 그녀에게 돈을 아끼지 않았다.“내 병이 낫기를 바라면서, 한 번도 나랑 병원에 간 적 없잖아요. 내가 이렇게 된 건 전부 오빠 때문이라는 거 뻔히 알면서. 내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은 오빠밖에 없어요.”“윤서야, 오빠는 너에게 뭐든 제일 좋은 것을 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어. 물질적인 것 빼고, 오빠가 줄 수 있는 건 없어.”“다른 건 다 필요 없다고요. 소월이만 없으면 우리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거예요?”전연우는 노트를 덮고, 소파에서 일어났다.“방에 가서 쉬어. 소월이 지금 아파. 돌봐줄 사람이 필요해.”“집에 하인이 이렇게 많은데 왜 하필 오빠가 돌봐줘요? 그리고... 오빠... 소월이만 아픈 게 아니라 나도 아프잖아요...”전연우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를 방에서 끌어냈다.“너 일단 진정하고 다시 얘기해.”
악몽은 계속되었다. 꿈에서 그녀는 전생에 있었던 모든 일을 다시 한번 완전히 경험하게 되었다.온몸이 땀범벅이었고, 잠옷을 흠뻑 적셨다. 전연우는 해열용 알코올로 그녀의 몸을 계속 닦아줬고, 잠옷도 몇 벌이나 바꿨는지 모른다.서울에서 이보다 더 연약하고 보살피기 어려운 사람은 또 없을 것이다.전연우는 한 번 또 한 번 장소월의 입에서 아이를 지운다는 소리를 들었다. 모든 키워드를 종합해보면, 그녀가 꿈에서 그들의 아이를 낳았다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그녀는 울면서 아이를 살려달라고 애원했다.전연우는 차분히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웠지만, 마음속의 우울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장소월은 그렇게 아이를 원할까?하지만 전연우는 아무리 그녀의 몸을 탐해도, 심지어 그녀의 몸속에 자신의 씨앗을 남겨도, 장소월은 평생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설사 아이가 생겼다 해도, 전연우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왜냐하면... 이 아이는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직접 심은 열매는 반드시 그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 법이다.메일함에서 알림음이 울리고, 도착한 메일을 확인해보니 장소월의 입에서 존재한 송시아라는 사람에 관한 정보였다.뒤이어 기성은이 전화를 걸어왔다.“구체적인 정보는 못 알아냈어요. 전국에 송시아라는 동명 인물만 300명 이상입니다. 그 사람들의 모든 자료는 이미 메일로 보냈습니다만 대표님께서 찾으시는 분이 그 안에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전연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됐어. 급하지 않아. 새 회사 준비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분부하신 대로 진행 중이고, 남천 그룹의 적지 않은 고참직원들도 합류하고 싶어 해요. 대표님만 돌아오시면 됩니다.”“알겠어.”전연우는 다른 일들을 분부한 후 전화를 끊었다.하지만 그가 메일을 확인하기도 전에 강지훈이 메시지를 보냈다.「윤서 씨가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하셨어요. 지금 병원에서 응급수술 중입니다.」메시지를 확인한 전연우는 지체하지 않고 바로 차를 몰고 별장을 떠났다.오귀화에게
“저를 용서하지 않더라도, 묵묵히 아가씨 곁에 있고 싶어요. 아가씨가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하는 것도 지켜봐야, 제가 죽어도 마음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아요...”“아가씨 깨나면 바로 드시게 제가 가서 죽을 데워 올게요.”조용한 방에서 문을 닫는 소리가 나자, 장소월은 눈을 떴다. 사실 전연우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깨어났다. 장소월은 처음으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아버지의 악행을 들은 것이다. 멍한 눈빛으로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사실 아버지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진작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는지 그 누구도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그녀는 잘못하지 않았지만, 장씨 성을 가진 이상 그 보복들은 그녀에게도 가해질 것이다.그래서, 장해진의 딸이라는 이유로 그녀는 억울하게 이 모든 일을 감당해야 했다.남을 탓할 자격은 더더욱 없었다.그렇다고 해서 오 아주머니가 그녀에게 한 모든 행동을 용서할 수 있는 건 아니다.죽을 데워서 방으로 가져오려던 오 아주머니는 방에 불이 켜진 것을 보고 묵묵히 문 앞에 서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리고 돌아서더니 다른 하인에게 죽을 방으로 들여보내도록 했다.“아가씨... 하루종일 아프셨는데 좀 드세요.”“주세요.”하인이 빈 그릇을 들고 방을 나오는 것을 보자, 오 아주머니는 흡족하게 방으로 돌아갔다.장소월은 밤새도록 생각했지만 도무지 견딜 수 없었다.그녀는 몰래 짐을 싸서 새벽까지 기다렸다가 아버지가 계신 병원으로 갔다.경호원은 장소월을 보자마자 말했다.“아가씨, 큰 도련님께서 아가씨 전화를 받지 못하셔서 걱정하고 계세요.”장소월은 덤덤하게 대답하고 병실로 들어갔다. 간호사를 내보내고 아버지와 단둘이 병실에 남았다.장해진은 이미 깨어났지만 아직 말도 못 하고, 거동도 불편했다.그녀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말을 하려다가 멈추었다. 용기를 내어 말하려 했지만 모두 가슴에 막히고 말았다. 한참 후에야, 그녀는 입을 열었다.“영수와 결혼 취소할 생각이라고 말하러 왔어요.
장소월은 택시를 타고 강가의 본가로 향했다.오늘 날씨는 그 어느 때보다 흐렸다.변덕스러운 날씨에 더욱 우울해졌다.본가에 도착했을 때, 하늘에서 가랑비가 보슬보슬 내렸고, 강영수는 우산을 들고 와서 그녀를 안으로 데려갔다.“추워? 가서 옷 가져올게.”장소월은 현관에서 거실을 훑어보았다. 눈썰미가 좋은 그녀는 소파 밑에 있는 어린이 블록을 확인하고 시선을 한쪽으로 돌렸다.하인이 담요를 가져왔고, 강영수는 그녀의 몸에 둘러주었다.“고마워.”그는 항상 섬세하고 배려심이 깊어 무엇이든 잘 해내는 사람이었다. 결혼하면 분명 좋은 남편이 될 것이라는 걸 장소월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는 장소월의 남자가 아니다.“소월아!”박순옥의 목소리가 입구에서 울렸고 오 집사도 같이 왔다.어르신은 장소월의 옆에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더니 말했다.“왔으면 할머니한테 전화 좀 하지. 안 그래도 영수 보고 널 집에 데려와 식사하려던 참이었어. 네가 갑자기 귀국했다는 소식은 영수가 말해줬어. 우리가 반드시 더 좋은 의사를 찾아 네 아버지를 치료할 테니, 넌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장소월은 치맛자락을 움켜쥐며 말했다.“저는 오늘... 파혼하러 왔어요.”“죄송해요, 며칠 동안 고민했지만 역시나 안 되겠어요.”낙엽처럼 가벼운 그녀의 목소리가 듣는 이의 귀에는 쩌렁쩌렁 울렸다.거실의 하인조차 귀가 솔깃했다.오부연은 진작 장소월이 오늘 찾아온 목적을 예상하고, 하인들에게 흩어지라고 눈짓했다.강영수의 눈빛은 어두웠고, 차디찬 목소리로 거절했다.“난 동의할 수 없어.”박순옥은 그에게 침착하라는 눈빛을 보내고, 부드럽게 말했다.“소월아... 파혼이 어린애 장난도 아니고. 바깥사람들은 모두 네가 미래의 강씨 며느리라는 걸 아는데, 이제와서 파혼이라니?”그들이 사실을 애써 숨길수록, 장소월은 더욱 슬퍼졌다.“나 알고 있어. 그날 통화 내용 다 들었어...”장소월은 평온한 눈빛으로 강영수를 바라보았다.“그리고 그저께... 아이랑 김남주와 함께 쇼핑몰에 들어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