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월은 그의 손을 뿌리쳤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그녀는 미간을 찡그리더니 시종일관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아직도 볼 일이 남았어?”“장씨 가문에는 하인이 많아. 너만 아버지를 돌봐줄 수 있는 건 아니야.”“맞아, 모두 네 사람이잖아. 아버지가 왜 이렇게 됐는지, 네가 나보다 더 잘 알 거 아니야? 이 상황에서 내가 널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장소월은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이번에 아버지가 버틸 수 있든 없든 간에, 난 내가 해야 할 일을 다 할 거야. 아무도 너랑 장씨 가문 안 뺏어, 곧 네 것이 되겠지.”장소월은 힘껏 그의 손에서 벗어났고, 돌아보지도 않고 장해진의 방으로 들어갔다. 한 발짝 들어서자 장소월의 허리춤에 그의 손이 나타났다.손에 들고 있던 물건은 모두 땅에 떨어졌고, 전연우는 그녀를 메고 위층으로 올라갔다.전연우의 동작은 거칠었고 또 신속했다.“그러니 이제 소월이는 오빠 말 더 잘 들어야겠지?”장소월은 그에 의해 벽에 밀쳐졌다. 그는 당장이라도 사람을 잡아먹을 맹수처럼 뜨거운 눈빛으로 천천히 여자에게 다가갔다. 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남자의 몸에서는 강한 호르몬 냄새가 났다. 장소월은 뜨거운 불길이 자신을 태우려고 에워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전연우의 입술이 다가오자, 장소월은 고개를 홱 돌렸다.“너 미워하게 만들지 마.”“오빠가 동생 몸을 탐했다는 소문이 나면 서울에서 계속 얼굴 들고 살 수 있겠어?”“난 영수의 여자라는 거 잊지 마.”전연우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이제 오빠를 협박할 줄도 아네?”그녀를 바라보는 남자의 눈빛에는 파도가 일렁였다.“네가 그렇게 만든 거야.”그와 한 공간에 있으면 장소월은 언제나 기가 죽었고, 목소리도 떨렸다.남자는 그녀의 턱을 치켜올리더니, 섬뜩할 정도로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소월이는 아직 오빠를 몰라.”그는 갑자기 포악해지더니, 손으로 여자의 얼굴을 조르고 눈빛도 무서워졌다.“난 내가
다가오는 여자를 거절하지 않는 전연우가, 장소월의 몸에 손대기 전에 얼마나 많은 여자와 침대에 올랐는지는 모르는 일이다.그런 전연우을 하찮게 여기면서, 장소월은 자기 자신도 더럽다고 생각했다.두 사람은 애초에 모르는 사이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아래층에서도 인기척이 들렸어. 연우 또 소월이 괴롭히는 거야?”강만옥의 하늘하늘한 목소리가 문밖에서 울려 퍼졌다. 그녀가 문 앞에 다다랐을 때, 눈앞의 광경을 보고도 전혀 놀란 기색 없이 웃으며 전연우 곁으로 걸어갔다.“왜 어린 애를 이 지경까지 몰아세워?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찾아오지.”남자를 바라보는 강만옥의 눈빛에는 애틋함과 끈적함이 가득했다. 바보라도 둘 사이에 은밀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나가! 미안하지만 여기는 내 방이야. 두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든 이 방에서 나가줘.”장소월은 손에 있던 커터칼을 내려놓았지만 하얀 목에는 안타깝게도 상처가 났고, 피가 새어 나왔다. 그녀의 눈에는 혐오감이 가득했다. 이미 극도로 뒤틀린 관계들은 불분명하고 서로 얽혀 있었다. 이 집은 이미 썩어빠진 늪지였다. 모두가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늪지.“소월아, 이 칼 함부로 갖고 놀면 안 돼. 그러다 다치면 어떡해?”강만옥은 일부러 그녀를 자극하려는 듯, 떠날 생각이 전혀 없었다.“두 사람이 안 나가면, 내가 나가. 이 방에서 둘이 뭘 하든 마음대로 해.”두 사람만 보지 않을 수 있다면, 장소월은 어디에 있든 상관없었다.장소월이 전연우의 곁을 지날 때, 남자가 손을 뻗어 잡으려 하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칼로 방어했다. 장소월이 진짜 자신을 공격할 거라 예상하지 못한 전연우는 손등을 긁히고 말았다.장소월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겉으로는 담담한 척 그를 쳐다보았다. 마치, 진짜 내 몸에 손대면 죽여버리겠다는 눈빛이었다.전연우는 눈빛이 차가워졌고, 이미 멀리 도망친 장소월을 보며 눈동자가 더욱 짙어졌다.그리고, 강만옥의 뺨을 짝 때렸다!그녀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그
장소월은 아침 8시 30분에 일어났고, 경호원들은 밖에서 들어오는 그녀를 보고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거실에서 하인은 이미 아침 식사를 마쳤다. 장소월이 현관에 들어갔을 때, 위층에서 쨍그랑하고 뭐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전연우는 소파에 앉아 경제신문을 보고 있었다. 그는 등을 돌린 채 고개도 돌리지 않고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거기 서, 아침 먹고 올라가.”부엌에서 바삐 돌아치던 오 아주머니도 장소월이 온 것을 눈치챘다. 식탁의 음식들은 확실히 풍부했다. 모두 장소월이 전에 즐겨 먹던 음식들이었다.“고맙지만, 난 이미 옆집에서 국수 먹고 왔어.”탁하는 소리와 함께, 전연우는 신문을 덮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강한 기세를 풍기며 그녀에게 다가갔다.“앞으로 저녁에 함부로 돌아다니지 마.”장소월은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위층으로 올라갔다.복도의 손잡이를 잡고 걸어 올라가더니 다시 멈춰 서서 말했다.“앞으로 음식은 제가 직접 할 테니 따로 준비하지 말아 주세요. 음식에 더러운 약이라도 있을까 봐 무서워요.”쨍그랑, 주방에서 식판을 준비하던 오귀화는 실수로 손에 쥔 물건을 바닥에 떨어뜨렸고, 그대로 두 동강이 나버렸다.30분 후, 예약한 한의사가 제시간에 별장에 도착했다.장소월은 전화를 받고 직접 내려갔다.상대방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80대 노인이었다. 손에 의료 상자를 들고 있었고, 장소월이 손을 내밀어 받으려 하자, 노인은 거절했다.“이 약상자는 십 킬로가 넘어요. 젊은 아가씨가 들기 어려워요. 어서 환자분에게 안내해주시죠.”“네.”장소월은 의사를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의사가 장해진에게 진맥을 보고, 또 침을 놓아주니, 손발 경련 증상이 많이 호전되었다.“선생님, 아버지 어떠세요? 언제쯤 좋아지실까요?”“기혈이 약하고, 간과 신장도 많이 쇠약해요. 이건 평소 식습관 때문이에요. 게다가 경맥폐색 증상도 있어 방금 침을 놓았어요. 제 처방에 따라 약을 마시는 것 외에, 따로 제가 혈자리 지도를 드리죠. 환자의 몇몇 혈자리를
장소월은 의사가 알려준 대로 뒤뜰에서 한 시간 넘게 약을 달이느라 바빴다.이때, 하인이 다가왔다.“아가씨, 저희가 할게요. 이런 일은 아랫것들이 해야죠, 어떻게 아가씨가 직접 나서요?”“전 괜찮으니까, 다들 가서 일 보세요.”또다른 하인이 다가오더니 장소월에게 말했다.“아가씨, 강 대표님 오셨습니다. 도련님께서 맞이하고 계세요.”“알겠어요. 바로 갈게요.”약을 다 달인 후, 장소월은 약을 들고 아래층이 아닌 위층으로 향했다. 하인을 불러 강영수를 자기 방으로 불렀다.방 탁자 위에는 그들이 약혼할 때 찍은 사진들이 놓여 있었고, 한쪽의 이젤은 흰 천으로 덮여 있었는데, 이것은 그녀가 원래 강영수에게 주려고 했던 선물이었다. 하지만 그날 약혼연회에 강영수가 없어서 장소월은 도로 가져왔다.강영수는 그녀의 방에 들어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장소월을 뒤에서 와락 껴안았다.장소월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는 여자의 체향을 맡았다.“미안해, 회사에 일이 있어서 너한테 못 갔어. 이번에는 언제 돌아갈 거야? 내가 곁에 있어 줄게.”장소월은 몸을 돌려 그의 품에서 나오더니,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앞으로 파리 못 갈 것 같아. 아버지가 아프셔서 집에서 돌봐야 해. 의사 선생님이 3개월 안에 회복하실 거라 그랬어.”강영수는 미간을 찌푸렸다.“장씨 가문에 하인이 이렇게 많은데, 네가 왜 이런 일에 시간을 낭비해? 그림 배우는 건 네가 늘 꿈꾸던 일이잖아? 그래도 걱정된다면 아버님을 병원에 보내고, 강씨 가문 사람들이 돌봐도 돼.”장소월은 조용히 그를 보더니 갑자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의 눈빛에는 약간의 당황함이 비쳤다.강영수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왜 그렇게 쳐다봐? 왜 그래? 혹시 무슨 일 있어?”장소월은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그럼 부탁할게.”“바보야, 우리는 이제 한 가족이야. 나한테 그런 말 할 필요 없어. 네 아버지는 곧 내 아버지니까, 내가 당연히 돌봐야지.”강영수는 곧 사람을 불러 장해진을 강씨 가문이 투자한
“조금 전에요. 지금 나가시면 만날 수 있을 거예요.”“네, 감사합니다.”강영수는 의자 등받이의 양복을 집어 들고 곧바로 쫓아갔다.입구에는 오가는 차량만 있을 뿐,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휴대폰을 들고 전화를 걸었지만, 전원이 꺼졌다는 알림음만 돌아왔다.강영수는 몇 번이나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통하지 않았다.사실, 강영수가 뒤돌아본다면, 장소월이 그의 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다는 것을 한눈에 볼 수 있을 것이다.그는 장소월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집에 도착하면 전화해 줘.」「진봉에게 파리로 가는 티켓 예약하라고 할게. 진봉이 널 공항으로 데려다줄 거야.」메시지를 보낸 그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차에 올라 액셀을 밟고 떠났다.휴대폰을 들고 있는 장소월의 손에 조금씩 힘이 들어가더니 손끝이 하얗게 변했고, 가슴의 통증이 일파만파 퍼졌다.사실 강영수가 전화를 받으러 갔을 때, 장소월은 그를 몰래 따라갔고, 통화내용을 모두 들었다.지금 그와 약혼을 한 사이지만, 장소월은 자신이야말로 다른 사람의 감정에 개입한 제삼자 같았다.김남주의 등장과, 그들 사이의 과거는 전부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었다.하지만 그 아이는?장소월은 더 이상 자신을 속일 수 없었다.어쩐지, 전연우가 그녀가 끼고 있던 약혼반지를 버리더라니, 사실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장소월은 마치 바늘에 찔린 것 같은 가슴을 움켜쥐고 초췌한 모습으로 떠났다.‘아버지가 깨어나면, 마지막으로 도와달라고 해야겠어. 그럼 앞으로... 영수와 인연을 끊을 수 있어.’장소월은 매점에서 맥주 몇 캔을 사서 들고는 강가로 향했다.이 시간에 산책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장소월은 허이준에게 전화를 걸었다.작업실에 있던 그는 하던 일을 멈추고 전화를 받았다.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술기운이 섞인 목소리가 천천히 울려 퍼졌다.“이준아, 너 티켓 예매할 줄 알아?”그녀의 말투는 조금 이상했다.“무슨 일 있어?”“아니, 아버지는 이미 영수가 병원으로 모시고 가서 보살펴주고
봄바람이 불자, 소녀의 체향과 술 냄새가 뒤엉켜 스며들었다.남자는 강한 힘으로 땅바닥의 여자를 잡아당겼다. 장소월이 똑바로 서지 못하고 넘어지려 하자, 남자가 그녀의 허리를 잡아주었다. 얇은 옷감 사이로 그녀의 체온을 느낄 수 있었다.전연우는 그녀가 들고 있는 맥주를 빼앗아 보더니 말했다.“한 캔 마시고 이렇게 취한 거야? 주량도 그대로고, 머리도 여전히 둔하네.”나지막한 그의 목소리에는 아무런 감정도 깃들지 않았다.“쓸데없는 일에 참견하지 마. 원한다면 줄게. 좋게 말하면 될 것을 왜 욕하고 난리야?”장소월은 술에 취해 그를 밀치고,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몸을 돌려 한쪽 팔걸이를 짚으며 계단을 올랐고, 나무 의자에 앉아 두 발을 웅크리고는 치마를 정리했다. 다리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여전히 무슨 일이든 마음속에 담아두는 스타일이었다. 술에 취했어도 묵묵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가로등 아래, 짙은 색 캐주얼 차림의 전연우의 큰 그림자가 여자의 연약한 몸을 감쌌다.“언제까지 여기 앉아 있을 거야? 집에 안 가?”한참 후에야, 장소월의 우울한 목소리가 들렸다.“나 집이 없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 엄마가 살아 계셨다면 얼마나 좋을까. 절대 날 내버려 두지 않으실 텐데...”전연우는 그녀와 함께 의자에 앉았다. 보기 드물게 인내심이 강한 모습이었다. 장소월은 남은 맥주를 마시고 나니 제대로 취기가 올랐다.지금 벌써 11시가 되어가고 있으니, 공원 호수 주변은 이미 텅텅 비었다.전연우는 그녀를 안고 조수석에 앉혔다. 만취한 장소월은 절대 술주정을 부리지 않았고 조용히 잠을 잤다.예전의 장소월은 아무리 오만방자하게 굴었어도,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절대 밖에서 취하는 일이 없었다. 두 번의 인생을 통틀어 밖에서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마신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전연우가 손을 빼려는데, 여자가 갑자기 그의 옷 소매를 잡았다. 장소월은 갑자기 고개를 돌
장소월은 몸을 비틀며 울음소리를 냈다.전연우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쇠사슬에서 빠져나온 짐승처럼 하체의 금속 지퍼를 내리고, 다른 손으로 그녀의 긴 다리를 들어 올려 미친 듯이 입을 맞추었다.장소월은 아랫도리에 뭔가가 밀려 들어오는 것을 느꼈고, 순간 눈이 맑아지더니, 괴로워서 아랫배를 쭉 내밀었다.‘전연우? 왜 이 인간이?’“윽!”그 따끔거리는 느낌은 곧 사라졌고, 장소월은 숨 막히는 키스에 질식할 지경이었다. 숨이 차오르고, 알코올은 뇌를 마비시켰고, 그녀는 정신이 혼미했다. 온몸이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가벼웠다.끈적끈적한 물소리, 거친 동작에 차 전체가 흔들리고 있었다...“그만해!”장소월은 무언가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지만 헛수고였다. 마치 차가운 물 위에 뜬 것처럼 오르락내리락하다가 익사할 것 같았다.마지막 물결이 밀려오자 장소월은 기절했다.다시 깨어났을 때는 이미 낯선 환경이었다.그녀의 앞에는 남자의 잘생긴 옆모습이 보였다. 고개를 들어보니, 그녀는 남자의 품에 안겨 있었다. 남자의 목에는 몇 가닥의 스크래치 자국이 있었고, 그는 주름진 옷을 입고 있었다. 눈을 질끈 감은 채 잠을 설친 듯했다.장소월은 뒤늦게 깨닫고 깜짝 놀라 그를 밀쳐냈다.“어떻게...”그녀가 허전한 앞가슴을 만져보니 속옷의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였다. 눈앞의 남자를 몇 초 동안 멍하니 바라보다가, 손바닥을 들어 전연우의 얼굴을 때렸다.“전연우 이 짐승 같은 놈. 변태!”“어떻게 나한테 이런 짓을 해? 난 네 동생이잖아!”전연우는 옷 단추를 천천히 잠그며 말했다.“어젯밤에는 네가 원한 거야. 기억 안 나?”장소월은 미친 듯이 그의 멱살을 잡았고, 붉어진 눈가에는 눈물이 넘쳐 흘렀다. 눈앞의 사람을 당장이라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럴 리가... 분명 네가 강요한 거야.”“내가 어떻게...”전연우는 단추를 잠그고 나서, 그녀의 손을 잡고는 한 곳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저기 카메라도 있어. 어젯밤에 누가 간절히 원했는지 한번
언제 사라졌는지 모르는 신발도 없이, 발바닥이 날카로운 돌에 찢겨도 그녀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그가 있는 곳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이곳은 남원별장 외곽에 있는 우뚝 솟은 산봉우리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주위에 나무 외에 황량한 땅 밖에 없었고, 차가 지나갈 수 없는 넓은 도로가 있었다.산봉우리의 끝에 있는 절벽에는 울타리를 만들지 않아, 전연우는 차를 절벽 끝에 세워놓았다. 이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출을 볼 수 있었다.아침 햇살이 장소월을 비추었지만, 그녀는 전혀 따듯함을 느끼지 못했고 온몸이 얼음처럼 차가웠다. 발밑의 상처도 놀라울 정도였다.“이렇게 된 이상 그냥 받아들여. 소월아, 이제 오빠 곁에 있어.”언제부터인지, 전연우도 그녀의 뒤를 한발짝 한발짝 따라오고 있었다.“아니야. 틀렸어! 모든 게 엉망진창이야!”장소월은 머리를 움켜쥐고 멘탈이 나간 모습이었다. 그녀는 돌아서서 빨갛게 달아오른 두 눈으로 남자를 보며 말했다.“우리는 이러면 안 돼.”그녀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네 주위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있잖아. 네 복수의 발정 도구로 쓰이고 싶지 않아. 너랑 엮이지 않으려고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전생에 내가 널 그렇게 사랑했지만, 넌 그저 날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존재로 여겼어. 그럼 이번 생에는 대체 왜 이러는 건데? 널 사랑하지도 않는데! 그저 조용히 살고 싶을 뿐인데, 나한테 꼭 이래야만 했어? 대체 왜!”전연우는 그녀가 미친 듯이 내뱉는 말을 듣고, 어리둥절했지만 조금은 알아들은 눈치였다. 그의 눈동자가 짙어지더니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누가 너한테 뭐라고 했어?”현재로서는 두 사람 말고 그들의 관계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누군가 뭐라고 하지 않았다면 장소월은 이런 말을 할 리가 없다.장소월은 그의 말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갑자기 그녀는 현기증을 느끼더니, 눈앞이 캄캄해지며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얼마나 지났을까, 장소월은 흐리멍덩해서 몇 번이나 깨어났고, 매번
전연우가 걱정하던 일이 벌어졌다.리샬이 태블릿을 들고 전연우의 병실 침대로 다가와 말했다. “보스, 큰일 났습니다. 사모님께서 그 지역에 들어가신 후 신호가 사라졌습니다.”전연우는 눈을 감고 침대에 기대앉았다.“오늘은 그만하면 됐어. 나가봐.”“알겠습니다.”그가 가까이 쫓아가면 쫓아갈수록 그녀는 더 깊숙이 몸을 숨길 것이다. 그녀가 시내로 발을 디딘 순간, 즉시 그녀의 소식을 알 수 있을 테니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소월아, 7일 줄 테니까 잘 생각해 봐.’‘시간이 되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와 함께 떠나야 할 거야.’강지훈은 전연우가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병원에 나타났다. 침대에 누워 있는 그를 본 순간, 서늘했던 그의 눈동자에 웃음기가 감돌았다. 강지훈은 흥미로운 듯 의자에 앉았고, 뒤따라온 사람들은 모두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오랫동안 알아 왔지만, 이렇게 엉망인 모습은 처음 보네요. 어때요? 버림받은 기분이?”“아, 참. 그 여자 찾았다고 들었는데... 그래도 소용없을 거예요. 내 생각에는 그 여자 당신과 함께 돌아가려고 하지 않을 것 같네요. 설사 돌아간다 해도, 아이도 낳을 수 없는 여자를 옆에 둔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 많은 돈을 생판 남에게 물려줄 리는 없을 테고.”“당신한테 어울리는 여자 소개해 줄까요? 당신한테 아기를 낳아줄 여자 말이에요.”강지훈은 사람을 약 올리는 데도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바보 하나랑 노는 게 그렇게 즐거워?”강지훈이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그 시원한 웃음소리가 병실에 울려 퍼졌다.밖에 있던 간호사가 안에서 들려오는 큰 소리를 듣고 제지하러 들어가려 했지만, 문밖의 경호원들이 그녀를 제지했다. 그들의 허리에 찬 총을 본 그녀는 감히 한마디도 꺼내지 못하고 바로 자리를 떴다.강지훈은 다시 반격했다. “내 여자는 내 아이를 둘이나 가졌어요. 전연우 씨... 당신 여자는 어때요?”전연우의 몸에서 위험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눈으로 강지훈을 쏘아보고
“알겠습니다.”이미 정체가 드러난 이상 더 이상 위장할 필요가 없으니, 전연우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옆에 있던 경호원이 울고 있는 별이를 전연우 곁으로 데려왔다. 별이는 얼굴 분장을 지웠지만, 분홍색 드레스는 여전히 입고 있었다.“네가 여자아이였다면, 엄마가 떠나는 게 더 어려웠을까?”별이는 순수한 눈빛으로 전연우를 빤히 바라보며 옹알이를 했다.“엄... 엄마...”전연우는 보기 드문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이의 말에 답했다. “걱정하지 마. 엄마는 언젠가 우리 곁으로 돌아올 거야.”별이는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전연우의 품에 안겨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강용은 주변 길에 꽤 익숙했던지라 어렵지 않게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무인 구역에 도착했다. 액셀을 끝까지 밟고 미친 듯이 내달렸지만, 뒷좌석에 앉은 두 사람 중 그 누구도 강용에게 속도를 늦추라고 하지 않았다. 돌아가면 다시는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소현아는 가슴을 움켜쥐고 토할 것 같은 충동을 참았다. 괴로워하는 그녀의 모습을 본 장소월이 말했다. “현아야, 힘들면 나한테 기대서 좀 자.”“괜찮아. 하나도 안 힘들어.”“흐어엉... 소월아, 나 강지훈한테 잡혀가기 싫어.”장소월은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했다. “괜찮아. 우리 이제 안전해.”강지훈에게 이 지역의 경찰을 움직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총기와 탄약을 합법적으로 휴대할 수 있는 곳에는 강지훈만의 인맥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하여 소현아가 어느 도시에 있는지 알기만 하면 즉시 도시 전체를 포위하여 그녀를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쉽게 놓치고 말았다.봉쇄 직전, 강용이 모는 차가 딱 30초, 간발의 차이로 그곳을 빠져나왔던 것이다.강지훈은 소현아가 묵었던 호텔을 찾아갔다. 스위트룸 안, 침대에 던져진 임부복 드레스와 머리맡에 놓인 소현아의 사진이 보였다. “멍청한 년, 그깟 사람 하나 못 잡고, 뭐 하는
소현아는 규영과 마주친 순간 화들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는 급히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말했다. “그런 사람 아니에요. 아니에요. 잘못 보셨어요.”“제 이름은 김소단이에요.”규영은 즉시 소현아가 떠나지 못하도록 붙잡았다. “미경아, 빨리 주인님 모셔와. 현아 아가씨 찾았어.”소현아는 비명을 지르며 그녀의 손을 뿌리치려 했다.“아아아... 나쁜 사람. 빨리 이거 놔요.”“살려주세요! 임신부를 납치하려고 해요!”“미경아, 빨리 와... 아가씨, 더는 도망가지 마세요. 주인님께서 아가씨를 찾으러 오셨단 말이에요. 주인님은 아가씨를 잊지 않으셨어요.”“난 당신 몰라요. 놔줘요!”아무리 용을 써도 규영을 뿌리칠 수 없자, 소현아는 그녀의 팔을 있는 힘껏 깨물었다. 갑작스러운 통증에 규영은 바로 손에 힘을 풀었다.“현아 아가씨...”소현아는 작은 주먹을 꽉 말아쥐고 재빨리 도망쳤다.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병원으로 달려갔고, 마침 강용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오고 있는 장소월과 마주쳤다. 장소월이 말했다. “현아야, 조심해. 뛰지 마.”“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급해?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소현아는 체형이 약간 통통한 데다 평소에 운동도 부족했던지라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뭔가 안 좋은 일이 있는 게 분명하다.소현아가 다급히 말했다.“큰일 났어... 소월아, 강지훈이 나 찾으러 왔어. 방금 쇼핑몰에서 규영이랑 마주쳤어.”“흐흑... 소월아, 강지훈에게 잡혀가고 싶지 않아.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현아는 너희랑 같이 있고 싶단 말이야.”전연우 하나로도 모자라 이제 강지훈까지 나타나다니. 장소월은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다행히 전연우는 강용이 풀어놓은 수면제를 먹고 기절한 상태라 당분간은 위협이 되지 않겠지만, 문제는 강지훈도 이곳에 왔다는 것이다. 게다가 전연우보다 상대하기 훨씬 어려운 인물이었다. 장소월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강용을 바라보았다. “이제 우리 어떻게 해야 해?”강용이 말했다.“지
의사가 들어와 손이준을 진찰했다.장소월은 걱정되는 마음에 물었다. “어때요? 괜찮은가요?”의사가 대답했다.“상처 회복은 잘 되고 있습니다. 휴식만 잘 취하면 됩니다.”“네, 알겠습니다.”의사가 떠나자, 장소월은 다가가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때 갑자기 강용이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이, 전 씨, 그 총알 맞고 왜 안 죽은 거요.”“무... 무슨 소리야?” 이불을 덮어주던 장소월의 손이 경직되어 멈춰 섰다. 그녀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강용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가 손을 거두려던 순간, 돌연 그의 손에 잡혀버렸다.“언제 알아차린 거야? 눈썰미 꽤 쓸만하네.”정... 정말 그 사람이었다!장소월은 충격에 휩싸여 병상에 누워 있는 낯선 얼굴을 바라봤다. 그녀는 잠시 저항하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강용은 재빨리 그들을 떼어놓았다. 전연우가 일어나려고 하자 강용은 순식간에 그의 어깨를 내리눌렀다. “접근하려고 정말 애썼네요.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 날 죽이려고 했던 사람 누구예요?”강용의 손은 전연우의 상처 부위를 누르고 있었다. 그는 고통스러웠지만,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전연우 씨, 내 손에 잡히는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죠?”장소월은 여전히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가... 전연우였다니.그를 본 순간 도망쳤어야 했지만, 그녀의 발은 납덩이라도 매달린 듯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네가 어디에 있든, 찾아낼 거라고 했었잖아.”“소월아, 넌 내 아내야.”그 애절한 말에 장소월은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고, 순식간에 공포에 휩싸였다.“아... 아니에요. 당신이 전연우일 리 없어요...”장소월은 뒷걸음질 치며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악마와 마주치기라도 한 듯, 강력한 충격이 그녀의 머리를 강타했다.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통증에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급기야 그녀는 의식을 잃고 쓰러져 버렸다...“소월아...”강용이 그녀를 재빨리 붙잡았다.전연우는 애타게 그리고 그리던 아내가 다른 사람의 품에 안기
강지훈이 명령했다.“말해.”부관은 손에 든 정보를 강지훈에게 건넸다. “최근 근처 도시에 세 명이 함께 거주하고 있다는 정보입니다. 현재 저희가 일차적으로 걸러낸 상태이고, 곧 시스템으로 소현아 씨의 사진을 인식할 겁니다. 30분 안에 결과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강지훈은 옆에 있는 사람에게 권총을 건네며 말했다.“지금 호텔로 간다.”“알겠습니다, 주인님.”거꾸로 매달려 있던 흑인 남자는 그야말로 숨이 넘어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곳은 사막과 가까운지라 지면에서 뜨거운 열기까지 올라오고 있었다.“가지 마세요! 형님!”“저 혼자 여기 두지 마세요. 무서워요, 아빠!”옆에 있던 규영이 입을 열었다. “주인님, 저 사람 풀어주는 게 어떠십니까.”“현아 아가씨 배 속에 있는 아기를 위해 덕을 쌓는 셈 치는 거죠.”“제가 옛날 어르신께 듣기로는...” 그 순간 규영은 자기도 모르게 실언했다는 것을 깨닫고 급히 말을 바꾸었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어르신의 말을 꺼내는 게 아니었는데...”강지훈이 미간을 찌푸렸다.“뭐라고? 계속해!”규영은 조심스레 말을 이어갔다.“집안에 임신한 사람이 있을 때는 피를 보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배 속에 있는 아기에게 재앙이 닥친다고요.”강지훈은 그 말을 듣고 황당하고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미신은 대체 어디에서 주워들은 거야? 북경 감옥에서 매일같이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데, 그럼 배 속에 있는 아이를 지키지 못한다는 거야?”“주인님, 그런 말씀은 함부로 하시면 안 됩니다. 혹시 모르니 믿는 게 좋습니다. 설령 사실이 아니더라도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현아 아가씨 배 속에 있는 작은 주인님을 위해서라도요.”“주인님께서 좋은 일을 하시면 자연히 작은 주인님에게 복이 쌓일 겁니다. 또한 현아 아가씨께서 순산도 하실 수 있을 거고요.”강지훈의 눈동자가 가라앉았다. 예전에는 본 적 없는 눈빛이었다.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왠지 모르게 가슴속에서 미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우리 둘 다 옷도 입고 있었어. 그냥 너무 추워서 그랬어. 강용 몸은 뜨겁고 따뜻하더라고.”당황스러운 표정으로 횡설수설 변명하는 소현아의 모습이 귀여워 장소월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아. 나는 단지 강용의 안전을 걱정하는 거야. 그 강지훈이라는 사람은 아주 나쁜 놈이거든. 혹시 그 사람이 강용에 대해 물어보면 모른다고 해야 해. 강용과 모르는 사이인 척, 전혀 개의치 않는 척해야 해. 알았지?”“그럼 소월이랑도 모르는 사이라고 해야 해?”장소월은 소현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난 괜찮아. 내가 방법을 알려줄게. 나중에 돌아가서 강지훈의 입에서 남자 이름이 나오면 무조건 모른다고 해야 해. 여자는 괜찮아.”“그리고... 혹시 다른 사람이 널 괴롭히면 울면서 그 사람이 너를 때렸다고, 욕했다고 말해야 해. 강지훈한테 전부 고자질해.”소현아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눈물이 안 나오면 어떡해? 꼭 울어야 해?”장소월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현아야, 넌 왜 이렇게 귀여운 거야! 나중에 나한테도 딸이 생기면 너처럼 귀엽고 천진난만하게 자라줬으면 좋겠어.”그녀에게는 아무런 걱정도 근심도 없다.사실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는 것이 많을수록 자신을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하는 감옥에 가두기 십상이니까.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치다가 결국 그녀처럼 되어버리고 만다.소현아는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누릴 자격이 있다.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소현아는 장소월의 손을 잡고 북경 감옥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이야기했다. 장소월은 강지훈이 소현아를 강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만 그는 아직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사랑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피어오르는 감정이다.왜 하필 강지훈이란 말인가!장소월은 잠들어 있는 소현아를 보며 조용히 이불을 덮어주었다.강지훈 같은 사람은 무해하고 천진난만한 소현아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그들이 사는 세상은... 그야말로 상상하기도 꺼려질
수술실 문밖에 돌아와 보니, 강용은 여전히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장소월은 그에게 음식을 챙겨주었다.“수고했어. 먼저 가서 쉬어. 나랑 현아가 근처에 방 두 개 잡아놨어. 현아는 당분간 나랑 같이 잘 거고, 이건 네 방 카드야. 현아랑 같이 먼저 가 있어.”“됐어, 너도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았잖아. 이 정도는 버틸 수 있어.”“나중에 그 사람이 나오면 내가 도와야할 일이 있을 거야. 여자인 너 혼자서는 불편해.”장소월은 화장실에서 꾸물거리며 나오는 소현아를 바라보았다. 손에는 간식 두 봉지도 들려 있었다. “그래... 알았어. 나는 옷이라도 좀 사러 가야겠다. 너무 급하게 나오느라 옷을 많이 못 챙겨왔거든.”“그래, 갔다 와.” 강용은 정말 배가 고팠는지, 게눈 감추듯 순식간에 모두 비웠다.장소월이 물었다. “옷 말고 또 필요한 거 있어?”“아무거나, 네 맘대로 해.”강용은 주머니에서 은행 카드 하나를 꺼냈다. “여기에 돈 좀 있어. 내 걸로 결제해.”“됐어. 이 돈은 나중에 쓸 데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네가 가지고 있어.”“너는 남자니까, 나중에 뭐라도 하려면 돈이 좀 있어야지”무거워진 장소월의 말투를 눈치챈 강용은 장난스럽게 말했다. “쳇, 네 그림 한 점이 몇천만 원이나 된다고 지금 날 비웃는 거지? 어휴. 아가씨, 절 키워주시는 건 어때요?“계속 아가씨의 개가 될게요.”장소월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됐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개는 무슨.”장소월은 소현아와 함께 쇼핑몰에 가서 옷을 몇 벌 구매한 뒤 호텔로 돌아왔다. 신분증을 등록하려고 프런트에 선 순간, 장소월은 왠지 모르게 불안한 느낌이 엄습했다. 하여 새로운 신분증을 꺼내 등록 정보로 사용했다.“미카엘 씨, 여기 객실 카드입니다. 즐거운 여행 되세요.”“감사합니다.”원래는 저렴한 호텔에 묵을 생각이었지만, 소현아가 불편해할까 봐 걱정되어 이곳으로 결정했다. 10층에 위치한 방에 들어가 커튼을 열어보니 아름다운 강 풍경이 눈
아이...지금 세 사람은 확실히 아이를 키울 여유가 없다.전 부인이 말했다. “절대 월이 돌려주지 않을 테니까 내 아이 뺏어갈 생각은 하지도 말아요.”강용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됐어요. 우리 셋 다 당신 아이 봐줄 시간 없어요. 당신이 준다고 해도 우리가 싫어요.”“참, 그리고 전 남편 치료비도 잊지 말고 내줘요.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한때 부부였는데 너무 매정하게 굴지는 말아야죠.”그녀는 화가 난 듯 씩씩거리며 에르메스 한정판 가방에서 돈다발을 꺼내 던졌다. “그동안 아이를 키워준 양육비와 예전 나한테 줬던 돈 전부 갚았어요. 이제 각자 갈 길 가고 다시는 얼굴 보지 말자고요.”별이는 얼굴이 엉망이 된 채 서럽게 엉엉 울고 있었다. 장소월은 차마 볼 수 없어 시선을 돌렸다. 필경 다른 사람의 사생활이니 왈가왈부할 수가 없었다.그녀는 아이의 엄마다. 엄마가 데려가겠다고 하면 아무에게도 막을 권리가 없다.그들이 위풍당당하게 떠난 후, 강용은 돈을 세어보았다. 몇백 달러 정도였다. “제기랄, 몇만 달러짜리 가방을 들고 다니면서 전 남편에게는 쥐꼬리만큼도 안 주다니. 빨리 죽으라고 고사라도 지내는 건가. 이 돈으로는 수술도 못 하겠네.”장소월이 말했다. “됐어, 강용. 사람 목숨은 하늘에 달려 있는 거야. 일단 이준 씨 어떻게 됐는지부터 알아보자.”“그래.”소현아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소월아, 아기가 배고픈 것 같아. 들어봐... 얘네 둘이 소리치고 있어.”강용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배고픈 거면서 무슨 엉뚱한 소리야. 밥 먹을 시간이긴 하네. 넌 소현아 데리고 근처 식당에 가서 밥 먹어. 이준 씨한테는 내가 가볼게.”며칠 동안 강용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는 생각에 장소월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했다.“빨리 먹고 포장해서 갖다 줄게.”“그래.”식사를 마친 뒤 장소월은 소현아를 데리고 검사를 받으러 산부인과로 향했다. 30분 후, 결과가 나왔고 예상외로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의사는 검사
바로 맞은편 길에서 또 한 무리의 차량이 웅장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규영이 돌연 즉시 차를 세우라며 소리쳤다. “...저... 현아 아가씨 목소리 들은 것 같아요.”강지훈은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다가 그 말에 번쩍 눈을 떴다. “확실해?”규영은 확신할 수는 없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목소리가 정말 현아 아가씨 같았어요. 소월이라는 이름을 부르기도 했고요. 현아 아가씨 친구분이 장소월 씨잖아요. 그냥 우연인 걸까요?”강지훈은 마지막 남은 인내심까지 바닥난 듯 말했다. “얼마나 남았지?”운전석에 묶여 있던 남자는 강지훈이 꽤 많은 힘을 들여서 찾아낸 인물이었다. 소현아의 행방을 쫓다가 드디어 실마리를 찾았다. 바로 이 남자가 소현아에게 가짜 신분증을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그동안 강지훈의 정보 조직이 오랫동안 소현아의 소식을 찾지 못했던 이유였다.강지훈은 항공편 정보를 토대로 소현아의 사진을 일일이 대조한 결과, 그녀가 다른 두 사람과 함께 이곳 사막으로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이곳에서 얼마 전 폭동이 일어났고, 소현아는 무사하다는 사실까지 확인했다.흑인 남자가 한 민박집 앞에 차를 세웠다. “여깁니다, 바로 여기예요.” 사투리가 가득 섞여 있는 목소리였다.강지훈이 차에서 내리자, 곧이어 뒤따라오던 몇 대의 검은색 승용차에서도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잠겨 있는 대문을 본 강지훈은 그대로 발로 쾅 하고 걷어찼다. 몇몇 사람들이 신속하게 위층으로 올라갔고, 강지훈도 천천히 소파 옆으로 걸어갔다. 규영과 미경은 주방으로 향했다.2분 후, 위층으로 올라갔던 흑인 남자가 보고했다. “위층에는 세 명이 살고 있고, 옷가지도 좀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물건들은 없는 것으로 보아 이미 떠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규영이 말했다.“주인님, 냉장고에 현아 아가씨가 좋아하는 방울토마토와 포도가 있습니다... 방금 전까지 아궁이에 불을 지폈던 흔적도 있습니다. 나간 지 얼마 안 된 것 같습니다.”강지훈은 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