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민아는 체리가 하마터면 목구멍에 걸릴 뻔했다. 한참을 용을 쓴 뒤에야 간신히 뱉어냈다.촬영팀 직원은 종래로 나타나지 않던 사람의 등장에 너무 놀라 말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옆에 있던 직원이 조심스레 그녀에게 말했다.“이 옷은 기 비서님이 대표님의 결혼식에 참석할 때 입으려고 맞춘 정장입니다. 그런 옷을...”소민아는 곧바로 꼬리를 내리고는 웃는 얼굴로 기성은의 손을 잡았다.“고작 옷 한 벌일 뿐이에요! 정 싫으면 지금 제가 나가서 사 올게요.”“기 비서님 이렇게 속 좁은 분 아니잖아요. 얼마 전엔 지갑 통째로 저한테 줬으면서.”기성은은 고개를 숙이고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차이나는 키의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간절함이 담긴 그녀의 눈동자에 그는 더는 따져 묻지 않았다.“한 시간 뒤 지하주차장에서 날 기다려요.”소민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오케이 수신호를 보냈다.“알겠어요.”기성은은 대표님에 버금가는 차가운 분위기를 내뿜고 있어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그는 걸음을 옮기다가 돌연 문 앞에서 멈춰 섰다.“지금은 근무 시간인데 자리에 앉아있지 않으니 회사 방침대로 2만 원 벌금이에요.”“밴댕이 소갈딱지.”“상사를 모욕했으니 벌금 2만 원 추가.”그녀는 지금까지 이런 사람은 종래로 본 적이 없다.신이랑이 흰색 정장을 갈아입고 나왔다. 소민아는 몇 초간 멍하니 쳐다보다가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이랑 씨는 글도 잘 쓰고 옷발도 잘 받네요. 진짜 멋있어요!”“민아 씨 마음에 들면 됐어요.”신이랑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지어졌다.소민아는 그 말을 그다지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저 신이랑이 옷을 잘 골라주었다고 칭찬하는 거로 여겼다.소민아는 신이랑의 촬영이 언제 끝나는지 알 수 없었다. 조금 쉬다가 가서 살펴보면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시간을 보니 여덟 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지금까지도 그녀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소민아가 멍하니 앉아있을 때 기성은이 문자를 보내왔다.[지하 주차장으로 와요.]한창 촬영 중이라 소민아는 인사를
기성은이 설명했다.“주가은 씨는 서울시 시장 딸이에요. 회사 몇몇 프로젝트들은 시장 승인을 받아야 하고요.”젠장!소민아는 기성은에게 억지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손에 들고 있는 물을 반병 들이키고 기성은의 몸에 던져버렸다.“죄송해요. 지금은 퇴근 이후라 혼자 가셔야겠네요. 전 두 분 오붓한 시간 방해하지 않고 가볼게요.”바로 옆에 엘리트 개인 병원이라 이 부근에서 식사를 해결하면 될 것이다. 이곳에서 집까지 걸어가려면 20분 정도 걸린다. 소민아는 호주머니에서 4천 원을 꺼내 기성은의 손에 꾸겨 넣었다.“차비예요.”이어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린 뒤 다시 문을 닫았다. 일련의 깔끔한 동작을 마치고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걸어갔다.배고파 미치겠는데 밥도 먹지 못하고 기성은을 따라 이딴 곳에 오다니.소민아는 길거리 끝자락에 있는 중식당에 들어가 가방을 내려놓았다. 종업원이 서빙하러 오자 그녀는 음식을 가득 시켰다.기성은은 머지않은 거리의 식당에서 주문하고 있는 그녀를 지켜보았다.몇 분 뒤, 소민아가 다시 시선을 돌렸을 때 차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민아는 분노가 차올라 젓가락을 반으로 끊어버렸다.아직도 뭘 기대한단 말인가!신이랑의 촬영이 끝났을 때, 소민아가 주문한 음식도 모두 올랐다.신이랑은 누군가를 찾는 듯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여우림이 물 한 병을 가져다주었다.“고생했어요. 이제 다 끝났어요. 이랑 씨가 좋아하는 식당 예약해뒀어요.”신이랑이 물었다.“그 사람은요?”여우림이 대답했다.“아까 갔어요. 민아 씨에게 할 말 있어요?”신이랑은 소민아가 놓고 간 약을 보고는 여우림에게 말했다.“먼저 가세요.”신이랑은 소민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혼자예요?”“네. 저 혼자예요. 이랑 씨도 올 거예요?”“그래요.”소민아가 보내온 주소를 받은 신이랑의 입가에 빙그레 미소가 걸렸다.“저 먼저 갈게요.”“하지만...”신이랑은 바로 몸을 돌려 가버린 탓에 여우림의 굳은 얼굴을 보지 못했다.소민아는 음식이 식을까 봐 종업원에게
“조심해요.”신이랑이 호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는 그녀의 허리를 잡았다. 조심하지 않아 그녀와 부딪힌 사람이 바로 사과했다.그때 녹색 신호등이 깜빡이자 신이랑은 저도 모르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소민아는 깜짝 놀라 꼭 맞잡은 두 손을 쳐다보고는 길을 다 건너고 난 뒤 당황스러운 얼굴로 손을 빼냈다.“고마워요. 또 말만 하느라 길을 제대로 보지 못했네요. 다음엔... 꼭 조심할게요.”신이랑이 손을 다시 호주머니에 넣고 담담히 입을 열었다.“괜찮아요. 민아 씨 손... 좀 차갑네요.”소민아가 말했다.“저 원래 이래요. 태어났을 때부터 겨울만 되면 손발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요. 하지만 이미 익숙해졌으니까 괜찮아요.”신이랑은 더는 말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그렇게 한참을 침묵 속에서 걸어갔다. 얼마 후 소민아가 무언가 떠오른 듯 말했다.“이랑 씨 집은 저랑 반대 방향 아니에요?”신이랑이 눈동자를 반짝이며 대답했다.“저 이사했어요.”“어디로요?”“곧 알게 될 거예요.”검은색 승용차 안, 주가은이 넋이 빠진 듯한 기성은을 보고는 말했다.“기성은 씨, 경매 곧 시작될 거예요.”기성은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액셀을 밟았다.소민아는 줄곧 시선 하나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방향에 따라 고개를 돌린 순간, 주가은의 맑은 눈동자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익숙한 번호판을 달고 있는 차가 그녀 옆을 스쳐 지나갔다.소민아는 조금의 불편함 외에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기성은이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은 데엔 이유가 있었다... 그에겐 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상대는 시장의 따님이자 단아하고 아름다운 외모의 소유자다. 말투까지 부드럽고 친절하니 어떤 남자가 마다하겠는가.그녀가 줄곧 혼자 김칫국을 마신 것이다.됐다. 이제 그녀는 완전히 마음을 접었다.지금 그녀는 소월 언니를 위해 그와 연극을 하고 있다. 아니면... 그와 회사에서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다.“신이랑 씨, 선봤던 거...
신이랑이 비밀번호를 입력하자 띠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신이랑은 벽을 더듬어 조명을 켰다. 거실 바닥은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했고 책상 위 책들은 정연하게 놓여 있었다. 현관에 놓인 물건들도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이곳과 비교하면 그녀의 집은 돼지우리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소민아가 물었다.“약 어디에 뒀어요? 제가 가져올 테니까 이랑 씨는 소파에 앉아서 쉬어요.”대답이 들리지 않아 고개를 돌려보니 신이랑은 어느새 소파에 앉아 잠들어 있었다.소민아는 어쩔 수 없이 혼자 그의 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한참을 찾아서야 드디어 약을 발견했지만,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다시 넣어두었다. 그리고는 거실에 나가 뜨거운 물을 끓인 뒤 그가 잠에서 깨면 바로 따뜻하게 마실 수 있게 보온 버튼을 눌렀다.소민아는 앞으로 다가가 그의 신발을 벗긴 뒤 조심스레 소파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옆에 앉아 조용하게 잠들어 있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니 마치 귀엽고 순종적인 대형견 같았다.“잘 자요. 이랑 씨.”그 말을 남기고 소민아는 조용히 문을 닫고 떠났다.너무 이른 시간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 10시도 채 되지 않았다. 이렇게 일찍 자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정말이지 어르신들과 똑같은 생활패턴이다.소민아도 잠이 솔솔 몰려왔다. 어제 밤새 한숨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이다. 그녀가 시큰거리는 목을 두드리며 샤워하러 화장실에 들어가려 할 때였다.돌연 핸드폰이 울렸다. 보지 않아도 누가 전화를 걸었는지 알 수 있었다.소민아는 무시해버린 채 샤워를 마치고 나오고는 피곤한 얼굴로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문자 하나와 부재중 통화 하나가 와 있었다. 기성은이었다.[나와요.][저 잘 거예요. 할 얘기 있으면 내일 해요. 기성은 씨, 사람은 좀 쉬어야 하는 법이에요. 지금은 당신과 연기할 시간 없어요.]소민아는 문자를 보낸 뒤 침대 옆 탁자 위에 올려놓고 충전 선을 꽂고는 무음으로 전환해버렸다. 아파트 단지엔 아직 라이트가 켜져 있는 차 한 대가 정차되어 있었다.조
소민아는 순간 그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해 한동안 멍하니 고민하다가 말했다.“그럼 저 대신 소피아 씨를 정직원으로 전환해 주세요. 여기 남는 건 의미 없으니 3일 뒤에 떠날게요. 소월 언니를 위해 받아들인 건데, 끝났다니까 저도 그만두면 되겠네요.”기성은은 흔치 않게 감정이 가득 실린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화가 난 듯한 모습이었다.기성은이 말했다.“성세 그룹이 민아 씨가 들어오고 싶으면 들어오고, 나가고 싶으면 나가는 곳인 것 같아요?”소민아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손으로 기성은의 책상을 짚고 그를 내려다보았다.“기 비서님... 설마 절 보내기 싫은 건 아니죠?”기성은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이는 화를 낼 징조라는 걸 소민아는 알고 있었다. 아무튼 기성은은 그녀에게 부드럽게 대했던 적이 없으니 별로 겁먹을 것도 없었다.웃음을 거둔 뒤, 소민아가 몸을 펴고 진지한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기 비서님, 이번엔 저 진심이에요. 처음엔 비서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덤볐어요. 하지만 이제 이 일이 저한테 맞지 않다는 걸 알았어요. 아까운 정직원 자리 저한테 낭비하지 마세요.”기성은이 말했다.“공고가 이미 내려왔기 때문에 수정 못 해요. 회사 규정에 대해 민아 씨도 잘 알 거예요. 일방적으로 회사 방침을 어기면 1억 손해배상 해야 한다는 걸요. 이미 소피아 씨한테 민아 씨 계약서 가져오라고 했어요. 사인하든 말든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에요. 나가세요!”“1억이라고요? 어떻게 이런 극악무도한 회사가 있을 수가 있어요? 차라리 그냥 강도질을 하지 그래요!”“지금은 근무 시간이에요. 언행 조심해요.”소민아는 잔뜩 화가 나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그녀는 자리에 앉아 서랍 안 직원 수첩을 펼쳐보았다. 회사 결정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는 조항이 확실히 쓰여 있었다. 회사가 어려워져 문을 닫아야만 퇴사할 수 있다고 한다.성세 그룹은 일반적으로 직원들과 정직원 계약을 맺는다. 인재의 유실로 인한 손해를 막기 위함이었다.소민아는 계
옆에 있던 여우람이 말했다.“이랑 씨, 우리가 기다리는 사람 곧 도착한대요. 어서 들어가요.”신이랑은 그녀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계속 소민아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점심에 같이 밥 먹어요.”소민아는 신이 나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좋아요.”“내가 데리러 갈게요.”“네.”소민아는 사무실에 돌아간 뒤 계약서를 서랍에 집어넣고 빈둥거리는 생활을 이어갔다.백혜진이 옆에서 부러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난 민아 씨가 너무 부러워요! 아무 일도 하지 않고도 월급은 꼬박꼬박 받잖아요. 매일매일 서류에 파묻혀 있는 우릴 봐요...”소민아는 땅콩 한 알을 입안에 집어넣었다.“전 송 부대표님의 비서니까요. 그분이 회사에 안 계시면 저도 일할 방법이 없거든요. 기 비서님의 눈앞에서 일하고 있으니 혜진 씨를 돕기도 쉽지 않아요.”백혜진이 손가락으로 안경을 올리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소민아는 이어폰을 켜고 드라마를 시청했다.그렇게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다.그녀가 자고 있을 때, 기성은은 그녀 옆을 몇 번이나 지나쳤는지 모른다.신이랑이 나타나자 사람들은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어머, 저번 로비에서 봤던 그분 아니에요? 여긴 무슨 일로 왔을까요?”“저분 요즘 인기 엄청 많아요. 베스트셀러 작가인 데다가 연예인 뺨치는 훌륭한 외모도 갖고 있잖아요!”기성은은 웅성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고 쳐다보았다가 1초 뒤 바로 다시 서류에 시선을 떨구었다.신이랑은 사무실을 한 바퀴 둘러본 끝에 소민아를 발견하고는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입에 간식을 물고 있는 것을 보고는 부드럽게 손을 뻗어 음식을 빼냈다.소민아는 아직 그의 손길을 느끼지 못하고 눈을 감은 채 입술을 한 번 핥고는 계속 잠이 들었다...그 모습을 본 신이랑의 얼굴에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다.“민아 씨.”“네?”그녀가 꿈을 꾸는지 잠든 상태로 대답했다.결국 백혜진이 그녀의 등을 두드려 깨웠다...회사 구내식당에 가는 길에서도 소민아는 아직 잠이 덜 깬 상태였다.신이랑
성세 그룹 사내 단톡방.몇 마디 문자와 함께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소민아 씨 보기엔 얌전한 것 같은데 뒤로는 정말 꼬리 아홉 개 달린 구미호가 따로 없네요. 기 비서님과 사귄다고 하지 않았어요? 오늘은 사람들 앞에서 떡하니 다른 남자의 손을 잡고 다니네요.]몇 초 뒤 다른 직원들이 아래에 말을 올렸다.[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민아 씨는 성세 그룹 안주인이라는 든든한 뒷배를 두고 있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관심 두지 말아요.][그러니까요! 나도 상관하지 않을래요. 민아 씨 심기를 건드렸다가 대표님이 바로 해고해버리면 어떻게 해요. 전 그냥... 멀리 떨어져 있을래요.][우리한테 빽이 없는 걸 누굴 탓하겠어요. 매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치는 데도 종일 놀고먹는 민아 씨보다 월급도 낮잖아요. 정말 억울해 미치겠어요.]소민아는 뒤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의논하고 있을 줄은 모르고 있었다. 단톡방 대화 내용은 캡처되어 빠르게 각 부서 단톡방에 뿌려졌다.그렇게 그 사진은 회사 전체에 일파만파 퍼져나갔다...소민아는 여전히 이 일에 대해 금시초문이었다.소민아는 그와 함께 병원으로 갔다. 진찰을 마친 뒤 흉부 CT를 찍어보니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약을 받으러 가려고 의사 사무실에서 나왔을 때, 소민아의 맞은 편으로 헐렁한 원피스를 입고 모자를 꾹 눌러쓴 누군가가 다가왔다. 옆으로 스쳐 지나가며 반쯤 가려진 그녀의 얼굴을 본 순간 소민아는 소스라치게 놀랐다.“세상에. 어떻게 사람 얼굴이 저렇게 타버릴 수가 있지!”신이랑이 걸어왔다.“뭘 봤길래 그래요?”소민아는 차마 손가락으로 가리키지 못해 그녀 쪽으로 눈동자를 돌렸다.“방금 지나간 사람 얼굴이 완전히 타버렸더라고요. 그런데 그 사람 언젠가 본 적이 있는 것처럼 뭔가 낯익어요.”소민아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고급 브랜드 옷차림에 선글라스를 건 40대 여자가 뒤에 경호원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소민아는 순간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인하 그룹 대표 인정아?저 사람이 왜 이
“인시윤 씨가 예전에 절 찾아왔었어요.”“무슨 뜻이에요?”신이랑은 그녀에게 전혀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얘기했다.“4년 전 인시윤이 이랑 씨한테 찾아와 소월 언니를 찾아달라고 했다고요? 왜요?”“4년 전이면 이랑 씨도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잖아요. 왜 이랑 씨를 찾아간 거예요? 이랑 씨... 대체 누구예요?”신이랑은 덤덤한 얼굴로 머지않은 곳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그냥 보통 사람일 뿐이에요. 이 일은... 비밀로 해줘요.”“걱정 말아요. 이랑 씨, 절대 말 안 할게요.”“집에 가요. 아직 할 일이 남았어요.”“그래요.”“이랑 씨, 오늘 몇 화 올릴 거예요?”“얼마나 보고 싶어요?”“저야 빨리 결말을 보고 싶죠. 300만 자나 썼는데 아직 완결이 안 났어요?”“글자 수가 많다고 해서 꼭 끝나야 하는 건 아니죠. 나한텐 아직 시작일 뿐이에요.”“인시윤이 아직 살아있다는 거 소월 언니는 아는지 모르겠네요. 지금 저런 흉측한 모습을 하고 있으니 소월 언니한테 좋은 일은 아니에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여자의 질투라는 말이 있잖아요. 이성을 잃고 소월 언니한테 해코지할까 봐 걱정되네요.”“걱정하지 말아요. 민아 씨가 소월 씨에게 아무 일도 없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될 거예요.”“그러길 바라야죠.”...남원 별장 화원.장소월은 돌연 마음이 어지러워져 정신을 집중하지 못하는 바람에 장미꽃을 다듬던 날카로운 가위로 네 번째 손가락을 찔러버렸다. 피부에서 새빨간 피가 흘러나와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도우미가 소리쳤다.“사모님, 손이!”“제가 지금 바로 의약 상자 가져올게요.”장소월이 덤덤히 말했다.“조금 베었을 뿐이에요. 호들갑 떨 필요 없어요.”그때 마침 일을 마치고 온 전연우가 다친 그녀의 손을 보고는 어두워진 얼굴로 소리쳤다.“대체 당신들 뭐 하는 인간들이야! 똑바로 지켜보라고 했더니!”장소월은 물로 흐르는 피를 씻겨냈다.“내가 조심하지 않아서 다친 거야. 도우미들한테 화낼 것 없어.”“이렇게 하면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