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파, 마늘, 식초, 그리고 매운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전연우는 이 모든 것들을 기억하고 있었다.하지만 도우미가 실수로 만둣국에 파를 넣었다.“정말 죄송합니다, 사모님. 제가 정신이 나갔나 봐요. 파를 안 드신다는 걸 깜빡했어요. 지금 바로 다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장소월은 차려놓은 만둣국에 초록색 파가 둥둥 떠다니는 것을 보고는 말했다.“괜찮아요. 제가 걸러내면 돼요.”전연우가 말했다.“다음엔 조심해요.”“대표님, 다음번엔 꼭 조심하겠습니다.”도우미는 거실에서 나가 그들에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전연우가 장소월의 그릇 안에 있는 파를 집어 자신의 그릇에 넣었다.장소월이 물었다.“네가 직접 빚은 거야?”“응.”장소월은 이루 말 못 할 감정이 피어올랐다. 전생에서 그와 결혼해 함께 살았던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녀는 전연우를 위해 빨래, 요리, 집 청소 모든 것들을 새롭게 익혔었다. 이번 생엔 도리어 전연우가 그녀를 위해 만두 빚는 방법을 배웠다고 한다.“언제 배웠어?”“마음만 먹으면 뭔가를 새로 익히는 건 어렵지 않아.”장소월은 한 입 베어 물자마자 오 아주머니의 손맛이 느껴졌다. 순간 그녀가 떠올라 코끝이 시큰거렸다. 그녀는 애써 감정을 짓눌러 눈에 고였던 눈물을 거두어들였다.“맛은 괜찮네. 앞으로... 날 위해 이런 거 해줄 필요 없어. 난 너한테 고마워하지 않아.”전연우는 만둣국에 손도 대지 않고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네가 처음이야. 윤서와 보육원에서 자랄 때 내가 줄곧 윤서를 챙겨줬었어. 의부님한테 입양된 이후엔 단 한 번도 음식이라는 거 만들어본 적 없어. 시간이 많이 지나서 이제 많은 일들을 잊어버렸어. 소월아,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그래서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 걸까?그녀가 자신한테 특별한 존재라는 거?수많은 여자들이 그에게 구애했으나, 결국 전연우가 선택한 건 원수의 딸이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기뻐해야 하는 걸까? 넓은 아량을 베풀어 죽이지 않았을뿐더러 사랑까지 해주면서 최고의
“너 오늘 종일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 일단 이거 먹어. 입에 안 맞으면 도우미한테 새로 만들어달라고 할게.”장소월이 차갑게 내뱉었다.“너 혼자 먹어.”인씨 가문은 왜 아직도 전연우와 연락을 이어가고 있는 걸까. 인정아는 전연우를 극도로 증오해야 마땅한데 말이다.다시 고민해보니 어쩌면 그에게 또 어떤 국회의원 딸을 소개해주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얼마 전, 전연우가 파티에 참석한 다음 날부터 서울시 시장이 자신의 딸을 그에게 소개해주었다는 소문이 전해졌다.그날 밤 두 사람은 함께 저녁 식사를 즐겼다...그런 강력한 권력에 전연우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장소월은 결코 믿지 않았다.전연우가 파티에서 돌아온 이후 장소월은 각종 방법을 동원해 그가 자신의 몸을 만지지 못하게 했다. 생각만 해도 역겹기 그지없었다.장소월은 벽에 걸린 엄마의 초상화를 보고 있으니 마음속 모든 부정적인 감정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창가에 앉아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아래층 주방에서 전연우는 만둣국 두 그릇을 모두 혼자 비웠다.전연우는 어떤 물건은 완전히 소유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예전의 전연우는 살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었다. 지금 그녀에겐...그는 자신이 원하는 건 단지 그녀의 몸이 아니라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그녀의 마음까지 포함된 그녀의 모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전연우는 인내심이 두둑한 사냥꾼과도 같았다.전연우는 직접 국수 요리를 만들어 작업실에 올려갔다.그가 장소월이 손에 쥐고 있는 붓을 빼앗아 내려놓고는 딸을 달래듯 젓가락을 그녀의 손에 쥐여주었다.“...너무 화내면 몸이 상해. 일단 빨리 밥 먹어. 서재에 갔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 내 눈에 국 한 방울이라도 보이게 하지 마.”듣기엔 협박 같은 말이었지만, 그녀는 전혀 위협적이라고 느끼지 않았다.먹음직한 냄새가 코로 흘러들어왔다. 국수 위에 계란 후라이가 얹어져 있었는데 거기에 간장까지 뿌려져 있어 향긋한 냄새가 올라
다음날, 아침.장소월은 최근 며칠간 가슴 통증이 더해지는 것 같았다. 그녀가 얼굴을 찌푸리고 가슴에 손을 얹었다.전연우가 물었다.“몸이 불편해? 서철용 부를까?”장소월은 창밖을 쳐다보며 고개를 저었다.“요즘 자꾸 누군가 날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아. 하지만 매번 아주머니가 내려가 봤을 땐 아무도 없었어.”전연우가 그녀의 손을 잡고 손바닥을 어루만져주었다.“그런 생각하지 마. 경호원들이 있으니까 별장을 나가지만 않으면 안전해. 설사 위험해진다고 해도 내가 곧바로 달려올 거야.”“저번에 분명 검은 그림자가 정원에서 나왔다가 사라지는 거 봤단 말이야. 진짜 이상해.”“괜찮아. 내가 옆에 있는 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전연우는 확실히 그녀를 철저히 보호하고 있다. 장소월의 안전을 위해 서울시 전체 치한에 힘을 쏟고 있으니 말이다.“내려와. 국수 만들어줄게.”장소월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그의 손을 뿌리쳤다.“안 먹어. 요즘 며칠 동안 계속 그 국수 먹었잖아. 오늘은 다른 거 먹을래.”“그래.”전연우는 그녀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자마자 창밖 어딘가를 보고는 몸 전체에서 차가운 한기를 뿜어내며 말했다.“너 먼저 가. 나도 곧 갈게.”장소월이 나가자 전연우는 바깥을 내다보며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기다리다가 끊으려고 한 순간 통화가 연결되었다.상대방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전연우가 서늘한 목소리로 경고했다.“아직도 장난 안 끝났어? 마지막이야. 내가 직접 움직이게 만들지 마.”얼마 후, 전연우가 그 한 마디를 남기고 떠나자 어둠 속에서 검은 모자를 눌러쓴 그림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형체를 알아볼 수조차 없을 정도로 화상을 입은 얼굴 위, 혼탁한 눈동자가 괴로움으로 충만된 채 그가 사라진 자리를 쳐다보고 있었다.며칠 동안 인시윤은 그녀의 남편이 다른 여자와 다정히 함께 살고 있는 모습을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전연우는 어디에 가든 그녀를 데려갔고, 또 직접 음식을 만들어주기도 했다.하지만 그의 아내였을 때... 또 그의
“아무도 없었어. 네가 잘못 본 거야.”그때, 검은색 정장을 입은 경호원이 걸어왔다.“사모님! 조금 전 보셨다는 사람 아마 저일 겁니다.”장소월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당신이라고요?”경호원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이쪽에서 경호를 서다가 갑자기 문밖에 일이 생겨 다녀왔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본의 아니게 사모님을 놀라게 했습니다.”전연우가 손을 휘젓자 경호원이 자리를 떴다.“이제 됐지? 요즘 내가 별장에 경호원들을 많이 배치해서 네가 그런 착각을 했을 거야.”“이제 밥 먹자, 응?”장소월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아 고개를 돌려 다시 살펴보았다. 정말 그녀가 잘못 본 걸까?장소월이 현관까지 걸어갔을 때 별이가 돌연 손에 비행기 장난감을 들고 뒤뚱거리며 불안하게 뛰어왔다. “엄마...”장소월이 아이를 안으려고 할 때 은경애가 먼저 껴안았다.“아가씨, 제가 할게요.”장소월은 자신의 손을 힐끗 보고는 다시 거두어들였다.“그래요.”전연우는 그녀의 손을 잡고 다시 식탁으로 갔다.그녀의 손에 관해선 두 사람 모두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모두 예전에 생겼던 상처다.지금 장소월은 무거운 물건을 들지 못한다. 시간이 조금만 길어지면 손에 힘이 빠지고 부들부들 떨린다.은경애는 그녀가 아이를 안고 있는 걸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돌연 손에 힘이 풀렸고, 그 바람에 하마터면 아이를 바닥에 떨어뜨릴 뻔했었다. 두 사람 모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은경애가 빠르게 아이를 받아 안지 않았다면 어쩌면 별이는 지금 병원에 누워있었을지도 모른다.장소월은 의자에 앉아있을 때만 겨우 별이를 안아줄 수 있었다.장소월의 몸에 남은 상처는 천천히 옅어지고 있었다. 전연우가 저녁마다 그녀가 잠든 사이에 상처에 연고를 발라준 덕분이었다.장소월은 아직 자신의 상처가 옅어지기 시작했다는 걸 알지 못했다.밥을 먹고 있을 때 도우미가 초대장 하나를 들고 다가왔다.“대표님, 저번 탁자 위에 있던 것입니다. 중요한 물건 같아서 서랍 안에 넣어뒀
“날 걱정하는 거야?”전연우가 장소월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없이 손을 빼냈다. 전연우는 그녀의 눈빛만 봐도 답을 알 수 있었다.그럼에도 전연우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그가 원하는 건 장소월이 자신의 곁에 머물러 있는 것이니 말이다.“그런 장소는 너와 어울리지 않아. 밖에 나가 놀고 싶으면 다른 사모님들과 피부과 다니거나 카드나 쳐.”“여자들이 그런 걸 좋아한다는 건 언제부터 알게 된 거야?”장소월은 가끔씩 기분이 좋을 때면 사모님들과 만나 카드나 화투를 치거나 피부과에서 관리를 받았었다.전연우는 그녀가 오해할까 봐 다급히 설명했다.“매번 경호원들이 네 일정을 나한테 보고하잖아. 네가 나가서 뭘 하는지 난 빠짐없이 다 알고 있어.”전연우는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하자 화를 낼 겨를을 주지 않고 바로 화제를 돌렸다.“소민아 씨 일은 이미 내가 해결했어...”전연우가 장소월의 손을 덥석 잡아 그녀를 무릎에 앉히고는 두 팔로 허리를 감쌌다.“어떻게 나한테 감사 인사를 할 거야?”장소월은 그의 어깨를 애써 밀어냈으나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그건 네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어.”도우미는 다정한 두 사람의 모습을 보자마자 바로 조용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은경애도 별이를 안아 들고 급히 위층으로 올라갔다.전연우는 손가락을 장소월의 검고 반짝이는 머리카락 안으로 집어넣었다. 많이 자라긴 했지만 아직은 좀 짧았다. 예전만큼 자라려면 아직도 몇 년은 더 걸려야 할 것이다.전연우가 그녀의 머리를 자신과 가까이 가져가자 장소월은 그가 뭘 하려는지 예상할 수 있었다. 결코 그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지 않았다.“착하지. 키스하자.”야릇한 분위기가 점점 더 농후해졌다. 지금 도망치기엔 이미 늦어버렸다.오늘 키스는 그야말로 짙고 길었다. 장소월은 온몸에 힘이 빠져버린 채 그에게 안겨 있었다.전연우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내가 없을 땐 밖에 나가지 마. 집은 경호원들이 있어서 안전하잖아. 내가 보고 싶으면 전화해.
“전 대표님, 혹시 저와 손잡고 일하지 않으실래요?”전연우가 다리를 꼬고 앉아 손을 무릎 위에 올렸다.“말해봐요.”데니안이 손을 휘젓자 어둠 속에서 경호원 몇 명이 나와 10개 돈 가방을 탁자 위에 놓아두었다. 열어보니 달러로 가득 차 있었다.“이건 첫인사로 대표님에게 드리는 겁니다.”“저와 마음을 합쳐 일한다면 아마 더 많은 돈을 벌게 될 겁니다. 제가 알기로 전 대표님은 국내외에서 제일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분입니다. 서울, 아니 화국 전체에서 대표님의 말 한마디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하더군요.”전연우가 말했다.“과찬이에요.”“대표님에게 넓은 인맥이 있다면, 저에겐 최고 품질의 물건이 있습니다... 저 강지훈 씨와도 오랫동안 일해왔어요. 제 최고의 파트너라고 할 수 있죠.”“오늘 이렇게 전 대표님까지 만나 뵐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인정아가 말을 보탰다.“위험할까 봐 망설인다면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네. 데니안 씨한테 안전하게 자금을 옮길 수 방법이 있네. 며칠만 지나면 이 돈이 모두 한화로 환산되어 자네 계좌에 들어갈 걸세. 함께 일하겠다고 결정만 하면 이 돈은 아무것도 아니네. 하루에 몇십억 달러도 거뜬히 벌 수 있을 걸세.”“아마 성세 그룹이 가져다주는 수익보다도 훨씬 더 크겠지.”“잠시 손을 놓았을 뿐이지, 이런 일은 자네한테 별로 어렵지도 않지 않은가.”전연우는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한참을 고민했다. 이후 천천히 얇은 입술을 움직였다.“내 인맥은 확실히 상상을 초월하는 수익을 가져다줄 수 있어요.”“하지만 사모님께서 잘못 생각하셨어요. 오늘 일은 못 들은 걸로 할게요.”전연우가 일어서자 인정아는 그의 반응을 예상한 듯 바로 그를 잡았다.“이렇게 성급하게 결정하지 말게. 이대로 가면 그 후과를 감당하지 못할지도 모르네.”전연우는 성큼성큼 걸어가 룸을 나섰다.“Fuck.”룸 안에서 남자의 유창한 영어 욕설이 흘러나왔다. 그는 상 위에 있는 돈 가방들을 모조리 바닥에 뒤엎어버렸다
전연우가 차 뒷좌석에 올라탔다.“남원 별장 상황은 어때?”기성은이 대답했다.“모두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아가씨께선 줄곧 별장에 계십니다. 별장을 나서지만 않으면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습니다.”전연우가 눈을 감고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마음속에서 피어오르는 불안감을 좀처럼 떨쳐낼 수가 없었다.“일단 집으로 가.”그녀가 혼자 집에 있으면 전연우는 늘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그는 장소월을 최대한 혼자 밖에 내보내지 않는다. 경호원들이 그녀를 보호한다고 해도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감이 엄습했기 때문이었다.장소월은 화실에서 신이랑 소설 주인공 외모에 대해 핸드폰으로 소민아와 상의하고 있었다.전연우가 나간 지 한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그녀가 핸드폰을 내려놓는 순간 조명이 돌연 꺼져버렸다.뒷이어 모든 조명이 꺼지고 남원 별장은 암흑 속에 갇혀버렸다. 도우미들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장소월이었다.“큰일 났어요. 빨리 사모님한테 가봐야 해요.”“큰일 났어요. 큰일 났어요. 대표님께서 사모님에게 만들어주신 화원에 불이 났어요.”모든 사람들이 불을 끄러 달려나갔다. 그 틈을 타 검은색 그림자가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사납게 번지는 불길을 장소월도 발견했다. 그녀가 그 불빛을 빌려 벽을 더듬으며 문밖으로 나갔을 때 계단을 오르고 있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어렴풋한 윤곽이 그녀 눈앞에 나타났다.“당신 누구예요. 뭘 하려는 거예요?”장소월은 점점 더 다급해지는 발걸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위험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예감이 온몸에 감돌았다.그녀는 바로 몸을 돌려 문을 닫았다.이후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문에 부딪혔다. 상대는 분명 그녀에게 돌진한 것이 틀림없다.문밖에서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너 죽여버릴 거야!”장소월은 등에 소름이 돋아올랐다. 어딘가에서 들어본 목소리 같았다.또 그 순간 머리 위 조명이 켜지고 복도에서 울리던 소리도 사라졌다.이 문은 전연우가 특별히 그녀에게 만들어준 방범문이다
“네, 사모님.”안방.장소월은 아이를 안고 앉아있었고, 은경애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세상에, 세상에. 정말 놀라 죽는 줄 알았어요.”“아주머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뭘 봤길래 이렇게 무서워하는 거예요.”“아가씨, 있잖아요. 저 아가씨 말대로 무슨 일이 생기면 항상 장 어르신의 서재에 들어가 몸을 숨기거든요. 아까 누군가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리길래 서재에서 나왔어요. 전 내려온 사람이 아가씨인 줄 알고 어깨를 두드렸거든요. 그런데 그 사람이 고개를 돌린 순간 심장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어요. 얼굴이 완전히 타버려서 얼마나 흉측하던지, 그냥 사람이 아니라 괴물 그 자체였어요!”“손엔 칼도 하나 들고 있었어요. 전기가 빨리 오지 않았다면 우리 중 누군가는 무사하지 못했을 거예요.”정말 그 사람은 장소월을 죽이려 했던 것이다. 최근 며칠간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고 느낀 건 결코 착각이 아니었다.대체 누구란 말인가!어두운 방 안, 몰래카메라에서 보내온 화면이 실시간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5성급 호텔에서 송시아가 목욕 가운 차림에 손에 와인잔을 든 채 다리를 꼬고 소파에 앉아 영상을 보고 있었다.“인시윤 저 바보 멍청이! 이렇게 좋은 기회에도 장소월을 없애버리지 못하다니!”동시에 영상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 여자 이미 차를 타고 출발했습니다. 따라갈까요?”송시아가 우아하게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됐어. 너도 이제 돌아가... 계속 거기에 있다가 전연우가 돌아오면 도망치고 싶어도 못 쳐.”“네. 알겠습니다.”영상이 꺼지고 송시아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코 푸는 이 상황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장소월은 그녀의 상대가 되지 못하고, 지금의 인시윤은 그저 그녀 손바닥 위 노리개에 불과하다.인시윤을 조종하는 건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탁자 위에 올려두었던 핸드폰 화면이 밝아지고 문자가 도착했다. 살펴보니 네 글자가 와 있었다.[거래 실패.]“젠장, 전연우! 넌 분명 머지않아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