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세 그룹 사내 단톡방.몇 마디 문자와 함께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소민아 씨 보기엔 얌전한 것 같은데 뒤로는 정말 꼬리 아홉 개 달린 구미호가 따로 없네요. 기 비서님과 사귄다고 하지 않았어요? 오늘은 사람들 앞에서 떡하니 다른 남자의 손을 잡고 다니네요.]몇 초 뒤 다른 직원들이 아래에 말을 올렸다.[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민아 씨는 성세 그룹 안주인이라는 든든한 뒷배를 두고 있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관심 두지 말아요.][그러니까요! 나도 상관하지 않을래요. 민아 씨 심기를 건드렸다가 대표님이 바로 해고해버리면 어떻게 해요. 전 그냥... 멀리 떨어져 있을래요.][우리한테 빽이 없는 걸 누굴 탓하겠어요. 매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치는 데도 종일 놀고먹는 민아 씨보다 월급도 낮잖아요. 정말 억울해 미치겠어요.]소민아는 뒤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의논하고 있을 줄은 모르고 있었다. 단톡방 대화 내용은 캡처되어 빠르게 각 부서 단톡방에 뿌려졌다.그렇게 그 사진은 회사 전체에 일파만파 퍼져나갔다...소민아는 여전히 이 일에 대해 금시초문이었다.소민아는 그와 함께 병원으로 갔다. 진찰을 마친 뒤 흉부 CT를 찍어보니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약을 받으러 가려고 의사 사무실에서 나왔을 때, 소민아의 맞은 편으로 헐렁한 원피스를 입고 모자를 꾹 눌러쓴 누군가가 다가왔다. 옆으로 스쳐 지나가며 반쯤 가려진 그녀의 얼굴을 본 순간 소민아는 소스라치게 놀랐다.“세상에. 어떻게 사람 얼굴이 저렇게 타버릴 수가 있지!”신이랑이 걸어왔다.“뭘 봤길래 그래요?”소민아는 차마 손가락으로 가리키지 못해 그녀 쪽으로 눈동자를 돌렸다.“방금 지나간 사람 얼굴이 완전히 타버렸더라고요. 그런데 그 사람 언젠가 본 적이 있는 것처럼 뭔가 낯익어요.”소민아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고급 브랜드 옷차림에 선글라스를 건 40대 여자가 뒤에 경호원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소민아는 순간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인하 그룹 대표 인정아?저 사람이 왜 이
“인시윤 씨가 예전에 절 찾아왔었어요.”“무슨 뜻이에요?”신이랑은 그녀에게 전혀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얘기했다.“4년 전 인시윤이 이랑 씨한테 찾아와 소월 언니를 찾아달라고 했다고요? 왜요?”“4년 전이면 이랑 씨도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잖아요. 왜 이랑 씨를 찾아간 거예요? 이랑 씨... 대체 누구예요?”신이랑은 덤덤한 얼굴로 머지않은 곳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그냥 보통 사람일 뿐이에요. 이 일은... 비밀로 해줘요.”“걱정 말아요. 이랑 씨, 절대 말 안 할게요.”“집에 가요. 아직 할 일이 남았어요.”“그래요.”“이랑 씨, 오늘 몇 화 올릴 거예요?”“얼마나 보고 싶어요?”“저야 빨리 결말을 보고 싶죠. 300만 자나 썼는데 아직 완결이 안 났어요?”“글자 수가 많다고 해서 꼭 끝나야 하는 건 아니죠. 나한텐 아직 시작일 뿐이에요.”“인시윤이 아직 살아있다는 거 소월 언니는 아는지 모르겠네요. 지금 저런 흉측한 모습을 하고 있으니 소월 언니한테 좋은 일은 아니에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여자의 질투라는 말이 있잖아요. 이성을 잃고 소월 언니한테 해코지할까 봐 걱정되네요.”“걱정하지 말아요. 민아 씨가 소월 씨에게 아무 일도 없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될 거예요.”“그러길 바라야죠.”...남원 별장 화원.장소월은 돌연 마음이 어지러워져 정신을 집중하지 못하는 바람에 장미꽃을 다듬던 날카로운 가위로 네 번째 손가락을 찔러버렸다. 피부에서 새빨간 피가 흘러나와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도우미가 소리쳤다.“사모님, 손이!”“제가 지금 바로 의약 상자 가져올게요.”장소월이 덤덤히 말했다.“조금 베었을 뿐이에요. 호들갑 떨 필요 없어요.”그때 마침 일을 마치고 온 전연우가 다친 그녀의 손을 보고는 어두워진 얼굴로 소리쳤다.“대체 당신들 뭐 하는 인간들이야! 똑바로 지켜보라고 했더니!”장소월은 물로 흐르는 피를 씻겨냈다.“내가 조심하지 않아서 다친 거야. 도우미들한테 화낼 것 없어.”“이렇게 하면 안 돼
그녀는 파, 마늘, 식초, 그리고 매운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전연우는 이 모든 것들을 기억하고 있었다.하지만 도우미가 실수로 만둣국에 파를 넣었다.“정말 죄송합니다, 사모님. 제가 정신이 나갔나 봐요. 파를 안 드신다는 걸 깜빡했어요. 지금 바로 다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장소월은 차려놓은 만둣국에 초록색 파가 둥둥 떠다니는 것을 보고는 말했다.“괜찮아요. 제가 걸러내면 돼요.”전연우가 말했다.“다음엔 조심해요.”“대표님, 다음번엔 꼭 조심하겠습니다.”도우미는 거실에서 나가 그들에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전연우가 장소월의 그릇 안에 있는 파를 집어 자신의 그릇에 넣었다.장소월이 물었다.“네가 직접 빚은 거야?”“응.”장소월은 이루 말 못 할 감정이 피어올랐다. 전생에서 그와 결혼해 함께 살았던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녀는 전연우를 위해 빨래, 요리, 집 청소 모든 것들을 새롭게 익혔었다. 이번 생엔 도리어 전연우가 그녀를 위해 만두 빚는 방법을 배웠다고 한다.“언제 배웠어?”“마음만 먹으면 뭔가를 새로 익히는 건 어렵지 않아.”장소월은 한 입 베어 물자마자 오 아주머니의 손맛이 느껴졌다. 순간 그녀가 떠올라 코끝이 시큰거렸다. 그녀는 애써 감정을 짓눌러 눈에 고였던 눈물을 거두어들였다.“맛은 괜찮네. 앞으로... 날 위해 이런 거 해줄 필요 없어. 난 너한테 고마워하지 않아.”전연우는 만둣국에 손도 대지 않고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네가 처음이야. 윤서와 보육원에서 자랄 때 내가 줄곧 윤서를 챙겨줬었어. 의부님한테 입양된 이후엔 단 한 번도 음식이라는 거 만들어본 적 없어. 시간이 많이 지나서 이제 많은 일들을 잊어버렸어. 소월아,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그래서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 걸까?그녀가 자신한테 특별한 존재라는 거?수많은 여자들이 그에게 구애했으나, 결국 전연우가 선택한 건 원수의 딸이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기뻐해야 하는 걸까? 넓은 아량을 베풀어 죽이지 않았을뿐더러 사랑까지 해주면서 최고의
“너 오늘 종일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 일단 이거 먹어. 입에 안 맞으면 도우미한테 새로 만들어달라고 할게.”장소월이 차갑게 내뱉었다.“너 혼자 먹어.”인씨 가문은 왜 아직도 전연우와 연락을 이어가고 있는 걸까. 인정아는 전연우를 극도로 증오해야 마땅한데 말이다.다시 고민해보니 어쩌면 그에게 또 어떤 국회의원 딸을 소개해주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얼마 전, 전연우가 파티에 참석한 다음 날부터 서울시 시장이 자신의 딸을 그에게 소개해주었다는 소문이 전해졌다.그날 밤 두 사람은 함께 저녁 식사를 즐겼다...그런 강력한 권력에 전연우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장소월은 결코 믿지 않았다.전연우가 파티에서 돌아온 이후 장소월은 각종 방법을 동원해 그가 자신의 몸을 만지지 못하게 했다. 생각만 해도 역겹기 그지없었다.장소월은 벽에 걸린 엄마의 초상화를 보고 있으니 마음속 모든 부정적인 감정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창가에 앉아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아래층 주방에서 전연우는 만둣국 두 그릇을 모두 혼자 비웠다.전연우는 어떤 물건은 완전히 소유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예전의 전연우는 살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었다. 지금 그녀에겐...그는 자신이 원하는 건 단지 그녀의 몸이 아니라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그녀의 마음까지 포함된 그녀의 모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전연우는 인내심이 두둑한 사냥꾼과도 같았다.전연우는 직접 국수 요리를 만들어 작업실에 올려갔다.그가 장소월이 손에 쥐고 있는 붓을 빼앗아 내려놓고는 딸을 달래듯 젓가락을 그녀의 손에 쥐여주었다.“...너무 화내면 몸이 상해. 일단 빨리 밥 먹어. 서재에 갔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 내 눈에 국 한 방울이라도 보이게 하지 마.”듣기엔 협박 같은 말이었지만, 그녀는 전혀 위협적이라고 느끼지 않았다.먹음직한 냄새가 코로 흘러들어왔다. 국수 위에 계란 후라이가 얹어져 있었는데 거기에 간장까지 뿌려져 있어 향긋한 냄새가 올라
다음날, 아침.장소월은 최근 며칠간 가슴 통증이 더해지는 것 같았다. 그녀가 얼굴을 찌푸리고 가슴에 손을 얹었다.전연우가 물었다.“몸이 불편해? 서철용 부를까?”장소월은 창밖을 쳐다보며 고개를 저었다.“요즘 자꾸 누군가 날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아. 하지만 매번 아주머니가 내려가 봤을 땐 아무도 없었어.”전연우가 그녀의 손을 잡고 손바닥을 어루만져주었다.“그런 생각하지 마. 경호원들이 있으니까 별장을 나가지만 않으면 안전해. 설사 위험해진다고 해도 내가 곧바로 달려올 거야.”“저번에 분명 검은 그림자가 정원에서 나왔다가 사라지는 거 봤단 말이야. 진짜 이상해.”“괜찮아. 내가 옆에 있는 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전연우는 확실히 그녀를 철저히 보호하고 있다. 장소월의 안전을 위해 서울시 전체 치한에 힘을 쏟고 있으니 말이다.“내려와. 국수 만들어줄게.”장소월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그의 손을 뿌리쳤다.“안 먹어. 요즘 며칠 동안 계속 그 국수 먹었잖아. 오늘은 다른 거 먹을래.”“그래.”전연우는 그녀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자마자 창밖 어딘가를 보고는 몸 전체에서 차가운 한기를 뿜어내며 말했다.“너 먼저 가. 나도 곧 갈게.”장소월이 나가자 전연우는 바깥을 내다보며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기다리다가 끊으려고 한 순간 통화가 연결되었다.상대방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전연우가 서늘한 목소리로 경고했다.“아직도 장난 안 끝났어? 마지막이야. 내가 직접 움직이게 만들지 마.”얼마 후, 전연우가 그 한 마디를 남기고 떠나자 어둠 속에서 검은 모자를 눌러쓴 그림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형체를 알아볼 수조차 없을 정도로 화상을 입은 얼굴 위, 혼탁한 눈동자가 괴로움으로 충만된 채 그가 사라진 자리를 쳐다보고 있었다.며칠 동안 인시윤은 그녀의 남편이 다른 여자와 다정히 함께 살고 있는 모습을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전연우는 어디에 가든 그녀를 데려갔고, 또 직접 음식을 만들어주기도 했다.하지만 그의 아내였을 때... 또 그의
“아무도 없었어. 네가 잘못 본 거야.”그때, 검은색 정장을 입은 경호원이 걸어왔다.“사모님! 조금 전 보셨다는 사람 아마 저일 겁니다.”장소월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당신이라고요?”경호원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이쪽에서 경호를 서다가 갑자기 문밖에 일이 생겨 다녀왔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본의 아니게 사모님을 놀라게 했습니다.”전연우가 손을 휘젓자 경호원이 자리를 떴다.“이제 됐지? 요즘 내가 별장에 경호원들을 많이 배치해서 네가 그런 착각을 했을 거야.”“이제 밥 먹자, 응?”장소월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아 고개를 돌려 다시 살펴보았다. 정말 그녀가 잘못 본 걸까?장소월이 현관까지 걸어갔을 때 별이가 돌연 손에 비행기 장난감을 들고 뒤뚱거리며 불안하게 뛰어왔다. “엄마...”장소월이 아이를 안으려고 할 때 은경애가 먼저 껴안았다.“아가씨, 제가 할게요.”장소월은 자신의 손을 힐끗 보고는 다시 거두어들였다.“그래요.”전연우는 그녀의 손을 잡고 다시 식탁으로 갔다.그녀의 손에 관해선 두 사람 모두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모두 예전에 생겼던 상처다.지금 장소월은 무거운 물건을 들지 못한다. 시간이 조금만 길어지면 손에 힘이 빠지고 부들부들 떨린다.은경애는 그녀가 아이를 안고 있는 걸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돌연 손에 힘이 풀렸고, 그 바람에 하마터면 아이를 바닥에 떨어뜨릴 뻔했었다. 두 사람 모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은경애가 빠르게 아이를 받아 안지 않았다면 어쩌면 별이는 지금 병원에 누워있었을지도 모른다.장소월은 의자에 앉아있을 때만 겨우 별이를 안아줄 수 있었다.장소월의 몸에 남은 상처는 천천히 옅어지고 있었다. 전연우가 저녁마다 그녀가 잠든 사이에 상처에 연고를 발라준 덕분이었다.장소월은 아직 자신의 상처가 옅어지기 시작했다는 걸 알지 못했다.밥을 먹고 있을 때 도우미가 초대장 하나를 들고 다가왔다.“대표님, 저번 탁자 위에 있던 것입니다. 중요한 물건 같아서 서랍 안에 넣어뒀
“날 걱정하는 거야?”전연우가 장소월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없이 손을 빼냈다. 전연우는 그녀의 눈빛만 봐도 답을 알 수 있었다.그럼에도 전연우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그가 원하는 건 장소월이 자신의 곁에 머물러 있는 것이니 말이다.“그런 장소는 너와 어울리지 않아. 밖에 나가 놀고 싶으면 다른 사모님들과 피부과 다니거나 카드나 쳐.”“여자들이 그런 걸 좋아한다는 건 언제부터 알게 된 거야?”장소월은 가끔씩 기분이 좋을 때면 사모님들과 만나 카드나 화투를 치거나 피부과에서 관리를 받았었다.전연우는 그녀가 오해할까 봐 다급히 설명했다.“매번 경호원들이 네 일정을 나한테 보고하잖아. 네가 나가서 뭘 하는지 난 빠짐없이 다 알고 있어.”전연우는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하자 화를 낼 겨를을 주지 않고 바로 화제를 돌렸다.“소민아 씨 일은 이미 내가 해결했어...”전연우가 장소월의 손을 덥석 잡아 그녀를 무릎에 앉히고는 두 팔로 허리를 감쌌다.“어떻게 나한테 감사 인사를 할 거야?”장소월은 그의 어깨를 애써 밀어냈으나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그건 네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어.”도우미는 다정한 두 사람의 모습을 보자마자 바로 조용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은경애도 별이를 안아 들고 급히 위층으로 올라갔다.전연우는 손가락을 장소월의 검고 반짝이는 머리카락 안으로 집어넣었다. 많이 자라긴 했지만 아직은 좀 짧았다. 예전만큼 자라려면 아직도 몇 년은 더 걸려야 할 것이다.전연우가 그녀의 머리를 자신과 가까이 가져가자 장소월은 그가 뭘 하려는지 예상할 수 있었다. 결코 그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지 않았다.“착하지. 키스하자.”야릇한 분위기가 점점 더 농후해졌다. 지금 도망치기엔 이미 늦어버렸다.오늘 키스는 그야말로 짙고 길었다. 장소월은 온몸에 힘이 빠져버린 채 그에게 안겨 있었다.전연우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내가 없을 땐 밖에 나가지 마. 집은 경호원들이 있어서 안전하잖아. 내가 보고 싶으면 전화해.
“전 대표님, 혹시 저와 손잡고 일하지 않으실래요?”전연우가 다리를 꼬고 앉아 손을 무릎 위에 올렸다.“말해봐요.”데니안이 손을 휘젓자 어둠 속에서 경호원 몇 명이 나와 10개 돈 가방을 탁자 위에 놓아두었다. 열어보니 달러로 가득 차 있었다.“이건 첫인사로 대표님에게 드리는 겁니다.”“저와 마음을 합쳐 일한다면 아마 더 많은 돈을 벌게 될 겁니다. 제가 알기로 전 대표님은 국내외에서 제일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분입니다. 서울, 아니 화국 전체에서 대표님의 말 한마디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하더군요.”전연우가 말했다.“과찬이에요.”“대표님에게 넓은 인맥이 있다면, 저에겐 최고 품질의 물건이 있습니다... 저 강지훈 씨와도 오랫동안 일해왔어요. 제 최고의 파트너라고 할 수 있죠.”“오늘 이렇게 전 대표님까지 만나 뵐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인정아가 말을 보탰다.“위험할까 봐 망설인다면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네. 데니안 씨한테 안전하게 자금을 옮길 수 방법이 있네. 며칠만 지나면 이 돈이 모두 한화로 환산되어 자네 계좌에 들어갈 걸세. 함께 일하겠다고 결정만 하면 이 돈은 아무것도 아니네. 하루에 몇십억 달러도 거뜬히 벌 수 있을 걸세.”“아마 성세 그룹이 가져다주는 수익보다도 훨씬 더 크겠지.”“잠시 손을 놓았을 뿐이지, 이런 일은 자네한테 별로 어렵지도 않지 않은가.”전연우는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한참을 고민했다. 이후 천천히 얇은 입술을 움직였다.“내 인맥은 확실히 상상을 초월하는 수익을 가져다줄 수 있어요.”“하지만 사모님께서 잘못 생각하셨어요. 오늘 일은 못 들은 걸로 할게요.”전연우가 일어서자 인정아는 그의 반응을 예상한 듯 바로 그를 잡았다.“이렇게 성급하게 결정하지 말게. 이대로 가면 그 후과를 감당하지 못할지도 모르네.”전연우는 성큼성큼 걸어가 룸을 나섰다.“Fuck.”룸 안에서 남자의 유창한 영어 욕설이 흘러나왔다. 그는 상 위에 있는 돈 가방들을 모조리 바닥에 뒤엎어버렸다
장소월은 손목에 찬 옥팔찌를 풀어 유월의 손목에 걸어주었다. “잘 어울리네요.”“이게 뭐예요! 이런 거 준다고 해서 내가 해이를 당신에게 넘겨줄 것 같아요?”장소월은 팔찌를 벗으려는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 “하고 있어요. 이건 원래 그 사람의 것이었어요. 내가 잠시 보관하고 있었을 뿐이에요. 지금 유월 씨에게 이걸 주는 건, 유월 씨를 인정한다는 뜻이에요. 그 사람의 과거에 대해 말하지 않을게요.”“다만 단 하나 확실히 알려주고 싶은 건, 그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이라는 거예요.”“진심으로 두 사람이 행복하게 백년해로하길 바라요.”유월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정말이에요? 정말로 해이를 뺏어가려고 온 거 아니에요?”“설령 이 여자가 날 데려가려 한다고 해도, 내가 따라가지 않아.” 해이가 된 남자가 유월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일주일 뒤 우리 결혼할 거예요. 송 선생님 바쁘실 텐데 청첩장은 안 보낼게요.”“팔찌 돌려줘. 과거의 물건은 지금 가져와 봐야 아무 의미 없어.”유월은 그의 말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이 말이 맞아요. 진심으로 우리를 축복하든 아니든, 이 팔찌는 받지 않겠어요. 과거의 일은 이제 해이와 아무 상관없어요.”장소월은 받지 않았다. “이건 애초에 네 것이었어. 난 그저 원래 주인에게 돌려줬을 뿐이야.”강영수는 유월의 손에서 팔찌를 가져와 바다에 던져 버렸다. “그럼 버려야겠네요.”장소월이 말했다, “마음대로 해. 네 물건이니까.”‘강영수, 네가 잘 지내는 모습 봤으니까 난 이제 충분히 만족해. 우리 이제 여기서 작별하자.’장소월은 여전히 바닷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밤이 되면 견디질 못할 습기와 한기에 온몸이 아파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할 때도 있었다.그녀는 또 감기에 걸린 것 같았다.밤 8시, 침대 옆에 놓아둔 휴대폰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발신자 이름을 확인한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 전화를 받았다.서철용이 전화기 너머 그녀의 기침 소리를 듣고 물었다. “감기 걸렸
한 어린 소년이 그림 종이를 들고 장소월 앞에 다가왔다. “송 선생님, 제가 그린 것 좀 봐주세요.”장소월은 소년이 건네준 그림을 보고는 그를 안아 자신의 자리에 앉혔다. 그 후 소년의 손을 잡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가르쳐줄게.”“감사합니다, 송 선생님.”4시 30분이 되자, 장소월은 학생들을 학교로 데려다주고, 허름한 사무실로 돌아왔다.이곳의 교장은 강영수 외할아버지의 제자이자, 장소월의 선배인 박원근이었다.세상에 이런 우연이 있다니, 박원근이 이곳에 있을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박원근이 물었다. “정말 돌아가지 않을 거야?”장소월은 고개를 저었다. “네, 여기도 친구를 찾으러 온 거였어요. 이제 그 사람이 잘 지내는 걸 봤으니, 곧 떠날 생각이에요. 여기에 오래 있을 이유도 없으니까요.”박원근은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간다고? 어디로 가려고? 혹시 내가 있는 게 불편해서 그래?”“선배님, 어쩌면 그렇게 한결같을 수가 있어요? 예전 외국에 있을 때, 선배님이 절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예요. 스승님께도 잘 말씀드릴게요. 실망시키지 않을 거예요.”“너랑 좀 더 오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떠나겠다고 할 줄이야! 어디에 갈 생각이야?”“아직 결정 못 했어요. 사실 지금 삶 마음에 들어요. 자유롭고, 어디든 가고 싶으면 갈 수 있으니까요.”어차피 그녀에겐 이제 집도 없고, 그리워할 가족도 없다.혼자의 몸이라면 어디든 똑같을 것이다.“오늘 저녁 우리 집에서 밥 먹을래? 내 여자 친구가 서울 음식을 엄청 많이 보내줬어. 너도 좋아할 거야.”장소월은 잠시 망설이다가 거절했다. “아니에요. 오늘은 가봐야 할 곳이 있어서요.” 그녀가 가방을 메고 일어섰다. 박원근은 그녀가 자신을 피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더는 붙잡지 않았다. 장소월이 사무실에서 나선 순간, 증오와 원망으로 가득 찬 얼굴이 그녀 앞에 나타났다.유화의 언니, 유월이었다.그녀의 눈은 시뻘
김남주인가...장소월은 거세게 몰아치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나도 혼란스러웠다.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자신조차 알 수 없었다...유화는 그림 왼쪽 아래에 있는 검은색 사인을 보고 의아한 듯 말했다. “장소월... 선생님 성함 송민영 아니었어요? 장소월은 누구예요? 신기하네요! 언니 이름에도 ‘월’ 자가 들어가요. 언니 이름은 유월이고, 저는 유화예요. 엄마가 지어주셨어요.”유월이 나뭇가지를 치켜들고 달려왔다. “그런 수업을 왜 해! 당장 돌아와, 유화!”멀리서부터 유월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유화는 겁에 질려 몸을 바들바들 떨며 말했다.“송 선생님, 밥이 다 됐나 봐요. 같이 밥 먹으러 가요.”장소월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소녀를 바라보며 귀 뒤로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 “너 먼저 가봐. 선생님은 조금만 더 있다 갈게.”장소월은 조금 전 그린 그림을 소녀에게 건네주었다. “얼른 조심히 집에 돌아가.”“네, 선생님.”유화는 그림을 안고 조심스럽게 집으로 뛰어갔다.유월은 동생이 들고 있는 물건을 보고는 짜증스럽게 말했다. “아무거나 집에 가져오지 마. 보기만 해도 짜증 나.”유화는 그녀를 향해 혀를 삐쭉 내밀었다. “무섭게 왜 그래요. 언니는 송 선생님보다 착하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아요. 송 선생님이 내 언니였으면 좋겠어요.”“한 번만 더 말해봐.” 유월이 그녀를 때리려고 하자, 유화는 재빨리 엄마 뒤로 숨었다.“됐어, 그만 좀 싸워. 조용히 좀 살면 안 돼? 우리 이 작은 국경 마을에 선생님이 와서 가르쳐주시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데. 게다가 그분은 대도시에서 오신 분이야. 선생님한테 자꾸 시비 걸지 마. 너한테 빚진 것도 없잖아.”유화가 말했다. “맞아요. 송 선생님은 아는 것이 정말 많은 똑똑한 분이에요. 전 송 선생님이 제일 좋아요.”“송 선생님, 송 선생님, 말끝마다 송 선생님, 지겨워 죽겠어. 그렇게 좋으면 쫓아나가서 같이 살아. 여기서 나 귀찮게 하지 말고.”“어머
러시아의 국경과 맞닿아 있는 그곳에서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화국 사람들이었다. 오랜 시간 바다 위에 머물렀다 보니 남자의 얼굴에는 거뭇한 수염이 자라나 있었다. 손에선 낯선 까칠함이 느껴졌지만, 그 익숙한 얼굴은 틀림이 없었다. 그의 몸에 새겨진 문신 또한 그대로였다. 그는 살아 숨 쉬고 있는 강영수다. 그가... 정말 살아있었다.기억 속 강영수는 온화하고 부드럽고 헌앙하기까지 한 선비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예전과 완전히 달라 보였다.몸에선 바다에서 갓 나온 듯 비린내가 진동했고, 머리도 빗질하지 않아 잔뜩 헝클어져 있었다.장소월은 눈물을 글썽이며 떨리는 손을 허공에 들어 올렸다가 다시 거두어들였다. “나... 나 네가 이렇게 망가진 거 처음 봐.”“뭐 하는 거예요! 우리 해이한테 수작 부리지 말아요!”검은 피부에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를 가진 스무 살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다가와 해이라고 불리는 남자를 자신의 등 뒤로 숨겼다.장소월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강영수는 이제 그녀를 기억하지 못했다.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 것이다.“당신 정말 수상해요. 여기 와서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해서 내가 좋게 봐줄 것 같아요? 해이에게 수작 부리면 가만 안 둘 거예요.”그때 장소월 옆에 있던 유화가 입을 열었다. “언니, 송 선생님은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그저 친구를 찾으려는 거예요.” 유화가 장소월을 바라보며 말했다. “선생님이 찾던 친구 맞아요?”송민영은 장소월이 이곳에서 사용하는 이름이었다.“해이야, 가자.”장소월은 가슴이 짓눌리는 듯한 답답함에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유화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선생님, 어디 편찮으세요?”장소월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그녀는 모두의 의심스러운 시선 속에서 뒤돌아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예전 전연우는 강영수와 관련된 모든 것을 없앴었다. 심지어 강씨 집안의 저택도 지금은 빈껍데기만 남아 있을 뿐이다.그녀는 강씨 집안에 큰 빚을 지고 있다.
전생에서 전연우가 가장 좋아했던 음식은 장소월이 끓여준 국수였다.하여 송시아는 장소월에게 국수 끓이는 법을 특별히 배웠었다. 전연우가 누구의 솜씨인지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완벽히 익혔다.어쩌면 오랫동안 의식을 잃고 있었던 탓에 예전 맛을 잊어버린 것일 수도 있다...전연우는 손목을 주무르며 문밖으로 나갔다. “여보...”송시아의 손이 남자의 몸에 닿은 순간, 돌연 강한 힘이 그녀의 손목을 잡아 문에 짓눌렀다. “내가 기억을 되찾기 전까지는, 멀리 떨어져 있으라고 말했을 텐데?”“오늘 밤엔 옆방에서 잘게.”전연우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여보!”송시아가 아무리 불러도 전연우는 결코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맞은편 방으로 들어가 매정히 문을 닫았다.송시아는 불안한 마음에 방으로 돌아가 전화를 걸었다. “당신이 나한테 준 약, 정말 문제없는 거 맞죠?”“아가씨, 그 약은 복용자로 하여금 기억 상실에 빠지게 하거나, 기존 기억을 뒤죽박죽 섞어놓을 수 있습니다. 지금 그 사람에게 이상한 모습이 보인다면, 약효가 나타났다는 뜻입니다.”“그 환자가 아가씨를 받아들이게 될지는, 모두 아가씨 본인에게 달렸습니다.”송시아는 차가운 눈으로 어둠이 내려앉은 바깥을 바라보았다. “그 사람이 정말 기억을 잃은 게 맞는지 어떻게 알 수 있죠?”“직접 확인해 보셔야 합니다. 아니면 그분이 약을 드시는 장면을 직접 보셔도 됩니다. 그 약은 비타민C와 맛이 비슷해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겁니다.”“만약 약효가 없거나, 다른 사람과 짜고 나를 속이는 거라면, 당신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당신 딸도 마찬가지예요.”“아니에요, 그럴 리 없습니다. 그 약은 최고입니다. 불안하시면 부작용이 조금 더 크고 정신과 기억을 통제할 수 있는 약을 사용해도 됩니다. 하지만 생식기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사용이 금지되어 있어 있는 약이라 구하기가 쉽지는 않을 겁니다.”송시아가 말했다. “무슨 수를 쓰든 그 약 구해와요. 내가 원하는 건 그 사람의 몸뚱어리니
“이런 게 당신이 생각하는 부부야?” 전연우가 손을 들어 올리자 손목에 채워진 쇠사슬이 침대에 부딪히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여전히 거짓말만 늘어놓는다.송시아는 전연우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여보, 의사 선생님께서 기억을 되찾으려면 자극이 필요하다고 하셨어요.”“풀어!” 전연우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자, 송시아는 곧바로 침대 옆에서 열쇠를 가져와 쇠사슬을 풀었다.전연우는 이불을 걷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상반신을 모두 드러내고 하반신에는 얇은 회색 줄무늬 잠옷 바지만 걸치고 있는 그는 남성 호르몬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그는 방을 나가 복도로 걸어갔다.1층 거실에 들어서니 도우미들이 모두 고개를 숙여 깍듯하게 인사했다. “대표님...”넓은 거실을 둘러보니 벽에 걸려 있는 고풍스러운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그의 눈은 마치 야생의 밤처럼 칠흑같이 어두웠다.20XX년, 그가... 돌아온 건가?꿈이 아니었다.이것이 하늘이 그에게 준 두 번째 기회인가?장소월...그의 아내!그리고 우리의 아이, 그 아이도 살아있다...그렇다. 전연우는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자신이 다시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을 실감했다.이것은 하늘이 그에게 준 두 번째 기회가 확실하다.등 뒤로 송시아가 다가와 남자의 단단한 허리를 감싸 안았다. “여보, 기억나요? 여긴 당신이 날 위해 지어준 별장이에요. 결혼하면 나랑 같이 이곳에서 행복하게 살자고 했었잖아요. 하지만 당신은 결혼식 날 날 데리러 오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그동안 당신이 깨어나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송시아는 가까이 다가가 그의 손을 자신의 볼에 대고는 그의 온기를 느꼈다.“연우 씨, 우리 이제야 드디어 함께 살 수 있겠어요.”전연우는 깊은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송시아는 행복한 여자의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여보, 배고프지 않아요?”“내가 맛있는 거 만들어 줄게요.”“당신 예전에 내가 끓여준 국수 제일 좋아했잖아요.”송시아가 까치발을 들고 그에게
“...” 기성은은 들고 있던 도시락을 내려놓고는 뒤돌아 그녀를 바라보았다.“아가씨, 그동안 도움을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일이 끝나면, 약속대로 주씨 집안의 안전을 책임지겠습니다.”“하지만, 아버지에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요...”기성은이 말했다. “제가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더이상 대화를 이어나갈 여지가 전혀 없는 칼 같은 말이었다.주가은의 눈동자에 실망감이 어렸다.“그래요 알겠어요. 그럼 난 이만 가볼게요. 밥 꼭 챙겨 먹어요.”기성은은 도시락에 손도 대지 않고 백혜진에게 가져다주었다. 그 순간 비서실 직원들 모두 일제히 똑같은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백혜진은 너무 당황스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인사부에선 이미 기성은이 성세 그룹의 대리 대표가 되었다는 공고를 발표했다.기성은은 사무실로 돌아와 휴대폰을 확인했다.[소민아 씨의 전부 일정입니다. 이건 두 사람이 묵을 호텔 이름과 주소입니다.]기성은은 메시지를 한 번 훑어보고는 핸드폰을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백혜진은 자신에게 이런 엄청난 행운이 찾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녀가 대리 대표님의 비서가 된 것이다.백혜진은 대표 사무실로 들어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기 비서님, 아니 대표님, 정말 저더러 대표님 비서로 일하라는 거예요? 하지만... 아시겠지만, 제 업무 능력은 소민아 씨랑 비슷해요. 분명 대표님에게 폐를 끼칠 텐데... 다른 사람을 찾아보시는 게....”기성은은 손에 든 서류에 시선을 고정한 채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머리 쓸 필요 없어요. 말만 할 줄 알면 돼요.”“최근 몇 개월 사이 모든 재무 보고서를 출력해 가져다줘요. 그리고 오후 2시 30분 임원진들 회의 소집하고요.”백혜진이 대답했다. “네, 네, 알겠습니다.”반산 별장.송시아는 드레스를 움켜쥐고, 급하게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남자가 상반신을 벗고 탄탄한 몸과 매끄러운 근육 라인을 드러내며 두 손이 묶인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네. 최대한 빨리 사모님의 행방을 찾겠습니다.”전화를 끊은 뒤.기성은은 휴대폰 속 두 번째 연락처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하지만 없는 번호라는 신호음이 들려왔다.지금 상황이야말로 그가 바라던 것이 아닌가?기성은은 바로 누군가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소민아 연락처 보내줘.]상대방은 3분도 채 되지 않아 전화번호를 보내왔다.소민아는 짐을 챙기며 신이랑과 함께 신혼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공항으로 가는 길, 소민아는 모르는 번호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무슨 일이시죠?”“어디예요?”소민아는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왜 끊었어요?”소민아는 대충 얼버무리며 말했다. “별거 아니에요. 그냥 스팸 전화였어요.”신이랑이 소민아의 손을 잡아 입을 맞추자 그녀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됐어요. 운전에나 집중해요.”이번엔 백혜진이 전화를 걸어왔지만, 소민아는 망설임 없이 바로 전화를 끊었다.그녀의 새 번호는 가족 외에 백혜진에게만 알려주었었다.성세 그룹.백혜진은 연결되기도 전에 끊겨버린 핸드폰을 보며 곤란한 표정으로 기성은에게 말했다.“기 비서님, 전화가 끊겼습니다.”“신혼여행 간다고 했으니까 지금쯤이면 아마 비행기를 탔을 거예요. 지금 가봤자 아무 소용없을 겁니다.”기성은은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려 발걸음을 뗐다. 백혜진은 그런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다가 용기 내어 그를 불렀다. “기 비서님, 저 이미 다 알고 있어요. 기 비서님 마음속에 아직 민아 씨가 남아 있다는 것도요. 하지만 민아 씨는 얼마 전 결혼했어요. 그리고 기 비서님도 곧 약혼하시잖아요. 이제 와 민아 씨의 삶에 끼어든다면...”“민아 씨는 분명 기 비서님을 원망할 거예요!”“겨우 기 비서님을 잊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민아 씨를 부디 흔들지 말아 주세요.”“기성은 씨, 지금 싸우는 거예요?” 복도 끝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한 여자가 그들의 대화를 듣고는 말했다.양옆에 보디가드 두 명을 데리고 나타난 주가은은
“기 비서 자리는 이미 다른 사람이 대신하고 있거든요.”송시아 옆에 서 있던 소피아는 기성은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기성은이 풍기는 분위기는 송시아에게 너무나도 익숙했다. 얼굴만 아니었다면, 전연우가 살아 돌아와 그녀 앞에 서 있다고 해도 믿었을 것이다.기성은의 뒤에는 성세 그룹 법무팀 총책임자이자, 국제 법조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변호사, 엄기준이 서 있었다.엄기준은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송시아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대표님께서 사고를 당하시기 전 저에게 남겨두었던 성세 그룹 대표 직무 대행 계약서입니다. 이제 이 서류의 효력이 발동되는 시간이 되었네요.”“계약서에 명시된 내용에 따라, 지금부터 기성은 씨는 성세 그룹의 임시 대표입니다. 또한 회사 경영에 관한 모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갖습니다.”“말도 안 돼요. 절대 그럴 리가 없어요. 그 사람은 아직 혼수상태인데 어떻게 사인을 할 수가 있어요?”기성은이 말했다. “이 세상에 절대라는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표님께서는 처음부터 오늘을 예상하신 겁니다. 이 계약서는 이미 반년 전에 작성된 겁니다.”“이제 송시아 부대표님은 당신의 사무실로 돌아가 주시기 바랍니다.”송시아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황당한 상황 절대 받아들일 수 없어.”소피아는 서류를 살펴보다가 맨 마지막에 자리 잡고 있는 사인을 본 순간 경악했다.“이... 이건 대표님의 친필 사인이 확실합니다.”송시아는 냉소하며 엄기준을 바라보았다. “당신까지 전연우의 편에 선 거예요?”“아니, 애초부터 전연우의 사람이었죠?”“어쩐지 전연우가 거액을 들여 법무팀을 키우더라니... 그중에 당신까지 포함되어 있었을 줄은 몰랐네요!”송시아는 그 서류를 확인할 필요도 없이, 모든 것이 진실임을 예상할 수 있었다.송시아는 여전히 침착한 얼굴로 기성은의 옆으로 다가갔다. “무언가를 얻으면, 다른 무언가는 잃게 되는 법이에요. 당신은 기꺼이 전연우의 개가 되었지만, 소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