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허허벌판 같아 보여도 영기는 용문비경 못지않게 짙었다. 최서준은 바로 자리에 앉아서 수련 상태로 돌입했다. 이곳의 영기를 흡입한다고 해도 효과는 미미하지만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 나으니까 말이다. 그러던 중, 최서준은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정신을 차린 최서준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별다른 특이점은 없었다.하지만 텐트 뒤쪽을 보니 하얗게 질린 얼굴을 반쯤 드러내고 빨간 입술을 한 여자가 보였다.황무지 위에 놓인 텐트 뒤에 서 있는 여자의 모습은 눈치 채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최서준이 여자를 쳐다보자 그 여자도 최서준을 노려보면서 눈알을 굴렸다. 마치 최서준을 시험하듯 말이다.최서준은 그 여자를 무시한 채 몸을 일으켰다.텐트 안의 다른 남자들을 깨우려고 할 때, 최서준은 그제야 자기 밑에 있던 침낭이 모두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그리고 그 자리를 대체한 것은 새빨간 핏물이었다.핏물 속에서 해골들이 천천히 올라왔다. 이내 해골의 상반신까지 드러났다. 녹이 쓴 철갑옷을 입은 그들은 핏물 웅덩이에서 걸어나와 최서준 앞에 섰다. 눈으로 세어보니 대충 열 명은 넘는 것 같았다.최서준은 바로 날아올라 가장 앞에 선 해골의 어깨를 밟았다. 그러자 해골은 바로 부서져서 먼지로 사라졌다.이윽고 최서준이 손을 휘휘 내젓자 해골들은 전부 먼지로 날아가 버렸다.다시 텐트 뒤쪽을 쳐다보자 반쪽 얼굴만 드러냈던 여자는 텐트 뒤에 숨어서 입을 가린 채 웃고 있었다.하지만 웃음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최서준이 웃으면서 물었다.“이 주변에 야수나 괴물들이 나오나요?”그 여자는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천천히 팔을 들어 자기를 가리켰다.최서준은 또 웃으면서 얘기했다.“한 방에 죽지 않는 그런 것들 말이야.”잠시 흠칫한 여자는 이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하얀 피부 위로 새빨간 혈관이 솟아났다. 그녀는 바로 한 손으로 장풍을 만들어냈다.남자들이 열심히 만든 텐트는 여자의 손에 가볍게 날아가 버렸고 그대로 최서준을 향해 날아갔다.최
그러자 여자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최서준을 쳐다보기만 했다. 이내 핏물 웅덩이가 점점 커지더니 핏빛 안개가 최서준을 덮어버렸다.“최서준, 절대 방심하면 안 돼! 저 여자는 이곳의 왕과도 같은 ‘흡혈 인형’이야! 전에는 어떤 높으신 분의 첩이었는데 나중에 배신당하고 고문당해 죽었다고 들었어! 그래서 한이 깊게 서려서 죽은 후에 귀신이 되어 이 황무지에서 홀로 낙오된 사람을 찾아 양기를 빨아먹는다고 해. 하지만 전에 이 길로 오갈 때는 전혀 만나지 못했는데 갑자기 나오다니, 이상한 일이야!”텐트가 날아가자 남자들도 어느새 깨어났다. 통맥경의 남자가 최서준에게 알려주었다.최서준은 어깨를 약간 움직였다. 그리고 최서준이 기운을 내뿜자 안개가 순식간에 걷혔다.여자는 바로 이상함을 눈치채고 핏물 웅덩이로 사라지려고 했다. 하지만 최서준이 빠르게 여자를 잡아 그녀의 목덜미를 잡고 억지로 끌어내 바닥에 내팽겨쳤다.여자는 몸을 웅크리고 두려움 가득한 모습으로 최서준을 쳐다보았다.최서준은 한숨을 내쉬었다.“자꾸만 이러면 정말 진심으로 상대하는 수가 있어.”최서준은 이 여자의 기운을 대충 읽어낼 수 있었다. 음기가 짙긴 하지만 피의 기운이 얼마 없는 것으로 보아하니 낙오된 사람만 골라서 죽인다는 소문이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그래서 최서준은 여자를 봐준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고작 종사밖에 되지 않는 여자를 손쉽게 죽일 수 있었다.최서준의 말을 들은 여자는 그제야 고개를 쳐들었다. 반쪽만 남아있는 얼굴로 입술을 열었다. 그녀는 최서준의 주변을 맴돌면서 아름다움 목소리로 마음을 홀렸다.“날 죽이려고? 정말 그럴 마음이 있긴 해? 차라리 나와 한 몸이 되어 양기와 영기를 조금 나눠주면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마음대로 잘 수 있어. 어때?”“죽고 싶어?”최서준은 그 여자가 뻔뻔하게 자기를 홀리려는 것을 보고 기운을 내뿜어 그 여자를 압박했다. 귓가의 속삭이는 소리는 어느새 사라지고 여자는 그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최서준이 기운을 내뿜자 여
“헛소리하지 마! 내가 언제 천만 명이나 되는 사람을 죽였다고 그래!”자기를 모함하는 말을 들은 여자가 즉시 반박했다.“최서준, 저 귀신의 말을 들으면 안 돼!”“그러게요, 우리를 도와줘요! 이번에는 최서준 씨가 있어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으면 다음에는 우리를 죽이려고 할 겁니다.”최서준이 움직이지 않자 다른 남자 두세 명이 동시에 얘기했다.그들은 듣기만 한 소문을 그대로 믿는 모양이었다.“이 여자 귀신이 사람을 죽이는 것을 직접 본 적 있나요?”최서준은 남자들을 설득해서 말리고 싶었다. 전에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으니 괜히 얼굴 붉힐 일을 만들기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여자는 최서준이 자기편을 들어주자 진정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그건 없습니다. 소문을 들었죠.”남자들은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럼 됐네요. 직접 본 것도 아니고 소문을 들었을 뿐이잖아요. 소문은 원래 허황하게 퍼지는 겁니다. 하여튼 제가 봤을 때 이 여자는 당신들을 해치려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저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을 뿐이지 직접 죽일 생각은 없었습니다.”최서준이 인내심을 갖고 천천히 설명했다.“하지만, 하지만 오늘은 그냥 이렇게 끝내고 다음에 우리를 죽이러 올지도 모르잖아요!남자는 여전히 자기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아닙니다. 전 이 여자한테서 피 냄새를 전혀 맡지 못했습니다. 우리한테 피 웅덩이와 핏빛 안개를 환각으로 보여줬다고는 하나 그건 이 귀신이 죽을 때 비참하게 죽어서 그런 겁니다. 그냥 놔주죠, 어떻습니까?”최서준이 천천히 설득하면서 얘기했다.남자들은 서로를 번갈아 보면서 머뭇거렸다.그러다가 통맥경의 남자가 얘기했다.“자네 마음대로 해.”보아하니 생각을 고쳐먹은 것은 아니고, 그저 최서준의 압도적인 실력이 두려워 최서준의 뜻을 따르는 것 같았다.“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면 제가 이 여자 귀신을 데리고 떠나겠습니다.”최서준은 딱히 묘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이 여자를 데리고 떠나는 수밖에 없었다.“최서
남양시.해성 그룹 대표이사 사무실.김지유는 두 눈을 부릅뜨고 연신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눈앞의 젊은 남자를 바라봤다.“뭐라고? 그쪽이 내 약혼자란 말이야?”“맞아. 3년 전에 당신 할아버지가 우리의 혼약을 맺어주셨어. 이건 혼약서야. 못 믿겠으면 봐봐.”젊은 남자의 이름은 최서준이다. 그는 말하면서 옷 주머니에 넣어둔 혼약서를 꺼냈다.김지유는 혼약서를 확인한 후 죽고 싶은 충동까지 생겨났다.이 혼약서는 의심할 여지 없는 진짜였다. 위에 할아버지 김호석의 글씨체가 있고 심지어 인감까지 찍혀져 있었다.김지유는 숨을 깊게 몰아쉬고 차가운 표정으로 되물었다.“그쪽 이름이 최서준이야?”“맞아.”최서준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곤 그녀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또렷한 이목구비에 뽀얗고 탄력 있는 피부까지 더하니 아무리 인상을 찡그려도 남심을 자극하기엔 충분했다.타이트한 정장은 화끈한 몸매를 고스란히 드러냈는데 그중에서도 한 줌 되는 개미허리가 유난히 인상적이라 프로 모델이 와도 무색해질 따름이었다.그가 야릇한 눈길로 빤히 쳐다보자 김지유는 사납게 쏘아붙였다.“지금 어딜 쳐다봐?”다만 이어진 최서준의 한마디에 그녀는 어이가 없어 실소를 터트렸다.“얼굴은 90점, 몸매는 100점, 내 와이프가 되기엔 뭐 그럭저럭 봐줄 만 해.”“뭐라고...”김지유는 피를 토할 것만 같았다.그녀는 무려 재벌 가문 김씨 일가의 따님이자 해성 그룹 대표직을 맡은 하늘의 선택을 받은 완벽한 여자다.가문의 힘을 빌리지 않은 전제하에 자수성가하여 시가총액 2천억이 넘는 회사를 설립했다.그 외에도 남양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인으로 불려 얼마나 많은 훌륭한 남자들이 그녀에게 푹 빠져들었는지 모른다.다만 눈앞의 이 촌놈은 검은 민소매에 헐렁한 바지, 거기에 지저분한 조리 한 켤레를 신고 있다. 잘생긴 얼굴만 빼면 아예 대놓고 촌스럽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이런 촌뜨기가 감히 김지유한테 와이프로 봐줄 만 하다고 망언을 내뱉다니?그녀는 차오르는 분노를 꾹 참았다.“말해
김지유는 최서준을 빤히 쳐다보며 얼굴에 거만함이 가득 차 있었다.그녀의 옆에 있던 비서 반윤정도 시큰둥한 눈길로 최서준을 흘겨봤다. 거지 따위가 어딜 감히 대표님을 넘보려고?“그렇게 해.”최서준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하지만 네 말은 소용없어. 이 혼약은 너희 할아버지가 정해주신 거니 내가 할아버님 병 치료를 다 마치거든 친히 혼약을 해지하셔야 해. 걱정 마, 할아버님만 동의해주신다면 나 절대 집착 안 해.”“아니.”김지유는 그가 미련을 못 버리는 줄 알고 점점 더 야유 어린 눈길로 돌변했다.“이건 내 결혼에 관련된 일이야. 내가 알아서 해. 우리 할아버지 병도 내가 방법 구해볼 테니까 넌 신경 쓸 필요 없어.”그녀는 냉큼 수표 한 장 건넸다.“이건 10억이야. 나랑 이 혼약 해지해주겠다면 이 돈 너 줄게. 나한테 10억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너 같은 최하층 서민들에겐 아마 평생 먹고 놀 수 있을 테니 거절하지 않을 거라고 믿어.”김지유는 비난 섞인 미소를 날렸다. 마치 거지에게 돈 주듯이 그를 깔봤다.최서준이 담담하게 말했다.“됐어. 내가 아무리 가난해도 이런 거지 취급 당할 정도는 아니야. 아까도 말했다시피 이 결혼 무르겠으면 김호석 씨더러 직접 찾아와서 얘기하라고 해.”말을 마친 최서준은 문을 박차고 뒤도 안 돌아본 채 자리를 떠났다.“대표님, 저 자식 너무 경솔한 거 아닙니까? 뭣 하러 저런 놈한테 예의 갖추세요?”비서 반윤정이 씩씩대며 물었다.“새파랗게 어린 녀석이 가여운 자존심을 내세우는 것뿐이야.”김지유는 입술을 꼭 깨물고 분노 조로 쏘아붙였다.“돈 없으면 남양에서 살아남기도 힘들어. 감히 장담하는데 저 녀석 사흘을 못 버티고 내게 돌아와 구걸할 거야. 에이 됐다, 쟤 얘긴 그만해.”김지유가 머리를 내저었다.“아참, 윤정아, 나 대신 남양 실세 최우빈이랑 약속 좀 잡아줘. 5년 전에 간경화 말기로 병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던데 천재 의사라고 불리는 신의의 치료를 받고 다 나았대. 그 의사를 모실 수만 있다
30분 후 최서준은 어르신이 알려주신 주소대로 도씨 일가에 도착했다.거실에서 50대로 보이는 도현수가 수중의 편지를 보더니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맞아, 그 명인의 필적이 틀림없어.”“아저씨, 이젠 드디어 제 신분을 믿어주시는 거죠?”최서준이 물었다.“사부님은 죽음을 앞두고 아저씨가 도움을 청했다면서 저더러 아저씨네 가족을 보호하라고 하셨어요.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도현수가 한숨을 내쉬었다.“서준아, 그게 실은 나의 비즈니스 상대 중 한 명이 익명으로 메일을 보내와서 우리 딸을 납치하겠다고 했고 난 그 즉시로 딸애에게 경호원 다섯 명을 붙였어. 그런데 그 녀석이 어릴 때부터 응석받이로 커오다 보니 다섯 경호원 모두 도망가버리게 만든 거야. 난 고민하다 못해 너희 사부님께 도움을 요청했어.”도현수는 눈웃음을 지으며 최서준을 바라봤다.“너희 사부님도 방금 네가 갖고 온 편지에 해결방안을 써주셨는데 바로 널 내 사위로 들이라데. 그렇게 하면 네가 정정당당하게 우리 딸을 보호할 수 있으니까.”최서준은 저절로 미간이 구겨졌다.“아저씨, 그건 좀 아니지 않나요?”“아니긴 뭐가 아니야. 너 사부님 명령 거역하는 거야?”도현수는 계속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난 널 사위로 정했어. 이 일은 그냥 이렇게 해.”최서준은 어이가 없었다.“좋아요, 하지만 저는 딱 3개월만 아저씨네 따님을 지켜줄 겁니다.”그는 속으로 연신 머리를 내저었다.‘이 영감탱이가 정말 살아서도 애를 먹이더니 죽어서까지 제자를 괴롭히는 거야. 진작 날 해칠 걸 알았다면 ‘러브스토리’ OST도 불에 태워주지 않았을 텐데.’바로 이때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아빠, 내가 허락 못 해요!”한 여자가 기세등등하게 이쪽으로 뛰어왔는데 화장기 없이 눈부시게 예쁜 얼굴과 긴 생머리가 아주 인상적이고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늘씬하게 쭉 뻗은 새하얀 다리였다.그녀 뒤에 관리를 잘 받은 중년 부인도 서 있었는데 나이는 40대 초반으로 보였다.도연우는 두 눈에
“그래? 그럼 혼자 가서 물건 사.”도연우가 싸늘하게 한마디 내뱉고 머리를 홱 돌렸다.최서준은 어깨를 들썩거리다가 홀로 길옆에 나가 택시를 잡았다.“기사님, 지오 그룹으로 가주세요.”도연우는 스타벅스에 들어가 자리에 앉은 후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화났다.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직장 동료들 단톡방에 문자를 보냈다.「짜증 나 죽겠어.」이 단톡방엔 멤버가 고작 5명이다. 다들 도연우와 아주 친한 동료들이다.곧이어 진아영이 답장을 보냈다.「연우 왜 그래? 누가 또 우리 연우 기분 잡치게 했어?」「아빠가 어디서 되지도 않는 촌놈을 데려와서 나보고 기어코 결혼하래.」도연우는 하소연할 상대라도 찾은 것만 같았다.「뭐라고?」「헐! 진짜야?」순간 단톡방이 발칵 뒤집혔다.「내가 너희들 속여서 뭐 해?」도연우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타자했다.「가장 어이없는 건 아빠가 글쎄 나더러 그 촌놈을 우리 회사에 들어오게 소개해주래. 날 보호해준다나 뭐라나. 거절할 수가 없었다니까.」「괜찮아, 연우야.」오민욱이 답장했다.「이 일은 나한테 맡겨. 내일 바로 그 자식 찍소리도 못하고 멀리 꺼지게 해줄게.」「하하, 민욱이가 이렇게까지 말했으니 그 녀석 내일 큰코다치겠다.」「그럼. 민욱의 외삼촌이 우리 이퓨레 인사팀 매니저잖아. 민욱의 한마디면 그 녀석 우리 회사 발도 못 들여.」「꽤 재미있겠는데.」뭇사람들이 신나게 떠들어댔다.도연우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타자했다.「오민욱, 너무 모질게 굴지 마. 살짝 따끔하게 혼내주면 알아서 물러설 거야.」「걱정 마, 내가 알아서 해.」오민욱이 답장했다.휴대폰을 내려놓은 후 그녀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최서준, 너와 내 차이가 얼마나 큰지 똑똑히 보여줄게.’지오 그룹 안에서.한 정장 차림에 위엄이 넘치는 남자가 최서준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그간 무사하셨습니까 도련님.”만약 누군가가 밖에서 이 장면을 본다면 식겁하여 말을 잇지 못할 것이다.이름 최우빈, 지오 그룹 오너이자 남양 실세로 불리는
“도련님, 12년 전 박씨 일가에서 한성 보육원의 땅에 눈독을 들이고 그 당시 원장 진한성 씨가 갖은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채 결국 불을 질러 보육원을 망가뜨렸어요. 그러고는 그 땅을 가져갔어요... 이 몇 년간 박씨 일가는 그 땅을 빌려 부동산에 뛰어들었고 단숨에 남양 5대 재벌 가문 중 일원으로 거듭났어요! 3일 후에 옥패 하나를 경매에 내놓을 예정이라는데 이 옥패는 한성 보육원에서 그해 남긴 유품이라 아주 신기할 것 같아요.”최서준의 살의를 느낀 최우빈은 보이지 않는 두 손이 자신의 목을 꽉 조르는 것처럼 공포가 밀려왔다.“박씨 일가 참 대단해!”최서준이 입꼬리를 올리고 싸늘하게 웃었다. 그의 미간에 살벌한 한기가 감돌았다.고작 땅 하나를 위해 한성 보육원의 108명 생명을 전부 불바다에 밀어 넣다니.최서준은 즉시 분부했다.“3일 후에 경매에 참여하도록 진행 시켜. 그 옥패는 박씨 일가의 손에 넘어가면 안 돼. 이참에 이자도 좀 더 받고!”그 옥패는 그해 보육원 원장이 길가에서 최서준을 발견했을 때 그의 몸에서 챙겨간 것이다.원장은 이 옥패가 최서준의 신상과 관련이 있다면서 잃어버리는 걸 방지하기 위해 그가 18살이 될 때까지 보관해두었다가 다시 돌려주겠다고 했다.그런데 최서준이 11살 되던 해 보육원에 불이 났고 모든 게 뒤바뀌었다.최우빈이 머리를 끄덕였다.“도련님, 그리고 실은 그해 보육원 화재에서 일곱 명의 여자아이들도 다 살아남았어요...”“뭐라고?”최서준은 몸이 움찔거렸다. 그는 최우빈을 뚫어지라 쳐다봤다.“감히 제 목숨을 걸고 맹세할 수 있어요. 일곱 소녀는 그때 우물 속에 숨어서 살아남았지만 그 뒤론 전부 종적을 감췄어요. 누군가가 일부러 그 소녀들의 흔적을 지운 것 같아요.”“일곱 소녀라...”최서준은 주먹을 불끈 쥐고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일곱 누나일까? 다들 안 죽었다고?”“조사해, 계속 조사해! 알아내는 대로 가장 먼저 나한테 보고해.”그는 숨을 깊게 몰아쉬며 속으로 다짐했다.“누나들, 걱정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