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가는 최서준의 냉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틀렸어. 2000억이야!”“뭐라고?”서주연은 깜짝 놀랐다.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정신을 차리고 욕을 퍼부으려던 때 최서준의 모습이 이미 보이지 않았다. 서주연은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아 절망적인 울음을 쏟아냈다. 서장호가 걸어와서 위로했다.“우리 딸, 아빠는 이미 마음을 다 놓았어...”“서주연 씨, 제가 한마디 하죠.”함께 따라 나온 손지명이 차갑게 얘기했다.“당신은 너무 교만하고 안하무인입니다.”“서씨 가문이 명문이고 가업이 방대하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압박하고 이익만으로 사람을 유혹하려고 하는 것은 아주 큰 잘못입니다.”“저의 사부님 같은 분은 속세의 재부와 권세를 뜬구름처럼 여기는 분인데 서씨 가문이 아니라 전체 남양 시도 눈에 담지 않는 분입니다.”“당신은 제일 잘못된 방식으로 서 선생한테 사형선고를 한 거나 마찬가지예요!”손지명의 사정없는 말들은 서주연의 마음속 교만함을 철저하게 부숴버렸다. 서주연은 눈물을 펑펑 쏟으며 말했다.“손 신의, 저는...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저의... 저의 아빠한테 절대로 무슨 일이 생기면 안 돼요. 엉엉...”손지명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방법은 하나뿐이에요. 바로 당신의 자태를 낮추고 가서 사부님한테 빌어요. 사부님의 마음이 약해질 때까지 싹싹 빌어요!”...최서준은 골라온 약재를 들고 주씨 일가로 향했다. 회장님 주동필은 직접 나와서 그를 마중했다. 최서준은 주동필의 낯빛을 보더니 은은하게 웃으며 말했다.“회장님 회복이 잘 된 듯하네요.”“하하하, 다 최 신의 덕분이지요. 만약 그때 신의 님이 나서서 구해주지 않았다면 이 노인네는 아마도 이미 저세상으로 갔을 겁니다.”주동필은 감격스러워서 웃으며 말했다. 주하은은 직접 최서준을 위해 차를 내렸다.“최서준 씨, 차 드시죠.”“감사합니다, 주하은 씨.”최서준은 건네받고 한 모금 홀짝였다.“별... 별말씀을요.”주하은은 다급하게 손을 흔들며 곁에 앉아서 살그머니 최서준의 잘
그녀의 시선을 마주한 최서준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하은 씨는 친구도 많을 텐데 왜 굳이 저를 초대하셨어요?”“다르잖아요. 비록 친구가 많기는 하지만, 최서준 씨만큼 진중한 사람은 없으니까요. 게다가 서준 씨는 우리 주씨 가문의 은인이기도 하잖아요. 그러니 서준 씨가 저의 생일파티에 참석하신다면 저는 물론이고 할아버지도 매우 기뻐하실 거예요.”“하은 씨가 이토록 말씀하시니 더 이상 거절할 수도 없네요.”최서준이 웃으며 말하자, 주하은도 달콤하게 웃었다.“좋아요. 그럼, 시간 맞춰서 모시러 올게요.”날이 점차 어두워졌고 최서준이 도씨 집안에 돌아왔을 때 오민욱이 무언가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하은숙과 도연우를 비롯한 사람들이 모두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도현수가 최서준을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서준아, 잘 왔어. 오늘 민욱이와 연우가 파티에 가는데 너도 같이 가.”“무슨 파티인데요?”최서준이 물었다.“민욱이네 고객이 생일파티를 하는데 민욱이가 연우를 데려가는 거야.”도연우는 곧바로 불만을 토로했다.“아빠, 왜 제가 가는 곳마다 서준이를 같이 보내려고 해요?”“서준이가 네 옆에서 보호해 줘야 내가 시름을 놓을 수 있어.”“어쨌든 안 돼요. 저 어린애도 아닌데 절대 데리고 가지 않을 거예요.”도연우는 강력하게 반대하며 최서준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현수 씨, 대체 왜 그래요.”하은숙이 한마디 참견했다.“민욱이랑 오늘은 고급 파티에 갈 건데 시골 촌놈을 데리고 가면 어떡해요?”오민욱도 한마디 했다.“맞아요, 아저씨, 우리가 연우를 보호하면 돼요. 그래도 마음이 안 놓이세요?”“민욱이 말이 맞아요.”진아영과 곽정원은 곧바로 맞장구쳤다.“그리고 오늘 생일파티의 주인은 민욱이의 큰 고객인데 너무 많은 사람을 데리고 가면 그쪽에서 굶은 사람들이 밥 얻어먹으러 간 줄 알겠어요.”말이 오가는 사이에 세 명은 모두 최서준에게 경멸의 눈빛을 보냈다. 얼마 전에 킹스 레스토랑에서 체면이 구겨졌던 일 이후로 그들은 최서준을 못마땅
10여 분 후, 차량은 남양시의 대표적 고풍 건물인 화이트 팰리스에 도착했다. 팰리스 입구 앞에는 온갖 고급 승용차들이 가득했는데 벤츠도 BMW도 여기에서는 명함도 내밀 수가 없었다. 그 위에는 람보르기니, 벤틀리, 심지어 롤스로이스까지 있었기 때문이다.주하은은 막강한 주씨 가문의 장녀로서 그녀의 생일 파티에는 남양에서 잘나가는 상류층의 수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서준 씨, 도착했어요.”주하은은 주차한 후, 직접 내려서 최서준 쪽의 차 문을 열어주었다. 그때 두 사람 옆에 마세라티 한 대가 멈춰서더니 두 명의 여성이 차에서 내렸다. 주하은은 곧바로 그중 한 명을 껴안으며 말했다.“지유야, 안 오는 줄 알았어.”“네 친한 친구로서 네 생일에 내가 빠져서 되겠어?”김지유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더니 옆에 있는 최서준을 보고는 표정이 차갑게 변했다.“당신도 왔어?”김지유 옆에 있던 반윤정은 미간을 찌푸렸는데 최서준도 여기에서 두 사람과 마주칠 줄은 몰랐다.“지유야, 소개할게. 이분은 내 친구 최서준 씨야.”주하은이 웃으며 최서준을 소개하자, 김지유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뭐라고? 이 자식이 네 친구라고?”“그래. 서로 아는 사이야?”주하은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묻자, 최서준이 담담하게 대답했다.“하은 씨 소개 하지 않으셔도 돼요. 김지유 씨는 제 명의상 약혼자입니다.”“네?”주하은은 두 눈을 부릅뜨고 자기가 잘못들은 건 아닌지 의심했다.“허튼소리 하지 마!”김지유는 너무 화가 나서 소리쳤다.“그건 할아버지가 당신에게 속아서 그런 거지, 난 당신을 약혼자로 인정한 적이 없어.”“나도 마찬가지로 인정한 적은 없어. 당신은 그런 자격이 없으니까.”최서준이 장난스럽게 웃었다.그의 말을 들은 김지유는 분노가 치밀어 죽을 것 같았다. 김지유는 김씨 가문의 아가씨이고 해성그룹의 대표로서 집안 배경도 외모도 뛰어났기에 그녀를 쫓는 사람들이 줄을 서면 지구를 한 바퀴 돌 수 있는데 자격이 없다고 하니 어이
최서준이 고개를 돌려보니 낯익은 인물 몇 명이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는데 오민욱과 도연우 일행이었다. 도연우는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최서준, 네가 왜 여기 있어?”“연우야, 뭘 물어? 분명 이 자식이 오고 싶어서 조용히 우리 뒤를 따라왔겠지.”오민욱이 앞으로 나아가 최서준을 경멸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도연우는 차가운 눈빛으로 최서준을 혐오하며 말했다.“최서준, 껌딱지처럼 자꾸 나를 따라다니지 마. 그러면 네가 점점 더 역겹고 싫어져. 알아?”“너희들 따라온 거 아니야. 사실 너희들이 참가한다는 파티가 내 친구의 생일 파티인 줄 몰랐어. 알았으면 오지 않았을 거야.”“네 친구라고? 네가 말하는 친구가 누군데?”오민욱 뒤에 있던 곽정원이 물었다.“주하은!”최서준이 담담하게 말했다.그의 말에 몇 사람은 순간 침묵했다. 오민욱이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리고 웃었다.“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감히 주하은 씨가 네 친구라고?”“하하하.”“연우야, 이 자식이 허풍 치는 게 버릇인가 봐.”그는 재미있는 농담을 들은 듯 입을 벌리고 웃음을 터뜨렸다.“최서준, 너 주하은이 누구인지 알기나 해? 그녀는 대가문 주씨 집안의 큰아가씨이고 우리 회사의 큰 고객이야. 신분이 얼마나 고귀한데 어떻게 너 같은 촌놈이랑 친구 하겠어?”곽정원과 진아영은 크게 웃으며 다시 한번 최서준을 바보 보듯이 바라보았다. 도연우의 얼굴은 점점 더 추해졌는데 현장에 상류층 사람들이 많이 있었기에 화끈하게 험한 욕을 해주고 싶은 걸 꾹 참았다.“믿거나 말거나 너희들 마음대로 해.”최서준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어깨를 으쓱하더니 옆으로 걸어가서 앉았다.진아영은 경멸의 눈빛으로 최서준을 힐끗 보고는 오민욱을 향해 말했다.“민욱아, 그만해. 저 자식은 그냥 여기에 두고 우리는 큰 인물들을 만나러 가.”오민욱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행을 데리고 인맥을 넓히기 위해 소개하며 명함을 돌렸다.2층에서.잘생긴 얼굴의 정장 차림을 한
“민욱아, 저 사람은 누구야?”진아영은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의 방향으로 걸어오는 박재풍을 바라보았다.“저 사람 누군지도 몰라?”오민욱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이름은 박재풍이고 남양 박씨 가문의 도련님이야. 박씨 가문의 진정한 황태자이고 누구도 감히 건드리지 못하는 인물이지.”세 사람은 섬뜩해하며 순간 숨 쉬는 것조차 잊고 있었는데 그때 곽정원이 놀라며 소리쳤다.“봐, 저 사람이 최서준을 향해 가는 것 같아.”모두 곽정원의 말을 듣고 황급히 쳐다봤는데 박재풍이 확실히 천천히 최서준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설마 최서준이 박재풍을 알아?”오민욱의 표정이 순간 변했는데 그뿐만 아니라 현장의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어김없이 최서준에게로 향했다.“저 친구 누구예요?”“몰라요. 우리 쪽 사람 아닌 것 같아요.”“그럼, 설마 박재풍 씨가 아는 사람인가요? 그럴 리는 없는 것 같은데요. 저 사람 옷차림을 봐요, 온몸을 통틀어 20만 원도 안 되는 것 같은데 어떻게 박재풍 씨를 알 수가 있겠어요?”모두의 시선 속에 박재풍이 최서준 앞에 도착해서 물었다.“당신이 최서준이야?”“나 맞는데, 왜?”최서준은 여전히 태연하게 자리에 앉아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하하하, 자기소개를 하지. 내 이름은 박재풍이야.”박재풍이 호탕하게 웃는 모습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섬뜩하게 만들었다.“얼마 전에 당신한테 맞은 박재형이 내 동생이야.”그의 말이 끝나자, 순간 홀 내는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박재풍과 최서준은 아는 사이가 아니라 복수하러 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곧바로 모두의 시선은 차갑게 변했고 죽은 사람을 보는 표정을 지었다.‘어이구. 어떻게 감히 박재형을 때릴 수 있어!’‘어마어마한 배경이 없으면 오늘 죽겠네.’오민욱 일행은 박재형의 말을 듣는 순간 일제히 안색이 바뀌었다.“세상에, 최서준이 박재형을 때렸다고?”오민욱은 순간 식은땀을 흘렸다.“어떻게 감히 박씨 가문을 건드렸지? 연우야, 쟤 오늘 죽겠는데? 제발 우리한테까지 불통이
박재풍의 말이 끝나자 홀 내는 차가운 정적이 흘렀고 모두 날카로운 한기를 느꼈다.“하하하, 최서준은 정말 바보 맞나 봐. 웃겨 죽겠네, 넌 오늘 반드시 죽었어.”오민욱은 원래 최서준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최서준이 죽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극도로 흥분되었다. 지금 그의 눈에는 최서준이 이미 죽은 사람처럼 보였다.진아영과 곽정원 역시 오민욱과 같은 생각이었다. 특히 진아영은 고개를 돌려 도연우를 보며 말했다.“연우야, 내가 진작에 말했지. 저 촌놈은 사고뭉치이고 언젠가는 목숨을 잃을 거라고 했잖아. 이제 내 말이 현실로 되겠어.”반면 도연우는 마음이 복잡하고 두려웠다.“정말 사고뭉치가 맞는 것 같아. 내가 저 자식한테 감정이 생기지 않아서 다행이야. 잘못했다가는 나도 같이 당할 뻔했잖아.”박재풍은 입꼬리를 올리더니 최서준을 보는 눈빛에는 살인의 기운이 솟구쳤다.“축하해, 넌 나를 성공적으로 도발시켰어. 나 8살부터 해외 용병군에 들어가서 훈련받았는데 15살에 용병군에서 무적이 되어 용병의 왕이라는 칭호를 받았어. 그리고 18살부터 전쟁에 나갔는데 지금까지 내 손에 죽은 사람이 50명이야. 오늘 네가 51명이 될 거야.”쏴!현장에 있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박재풍의 말 속에 담긴 살기는 모두를 소름 돋게 만들었는데 그가 그런 끔찍한 경험을 했다는 건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죽어!”박재풍이 갑자기 뛰어오르더니 최서준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렸다.“조심해!”도연우가 무의식적으로 최서준에게 경고하듯 외쳤다. 하지만 박재풍의 속도가 얼마나 빨랐는지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최서준 옆에 다가가서는 한 손으로 최서준의 오른팔을 잡았다. 최서준의 팔을 부러뜨려서 그의 비참한 비명소리를 마음껏 즐기고 싶었다.그와 동시에 최서준이 움직였는데 그는 당황하지 않고 천천히 손을 들어 따귀를 쳤는데 연로하신 아버지가 아들을 때리듯이 부드러웠다.그 순간 모두는 최서준의 비참한 최후를 본 듯 무의식적으로 눈을 감았다.“쾅!”청량한 귀뺨 소리와 함께 한
그중에서도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다름 아닌 도연우였는데, 그녀는 방금 참지 못하고 눈을 뜨고 봤었는데 박재풍이 최서준의 따귀 한 방에 날라갔었다. 뺨 한 대로 사람을 수십 미터 밖으로 날려 보내다니, 그 힘은 너무 강력했다. 그녀는 자기가 줄곧 엄청나게 혐오했던 최서준의 얼굴을 다시 한번 바라보며 문득 자기가 그동안 최서준을 너무 과소평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생각처럼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었네...’모든 사람의 주목하에 박재풍이 천천히 일어났는데 그는 입가에 묻은 피를 닦으며 분개한 표정으로 최서준을 바라보았다.“내가 너 같은 쓰레기에게 상대가 안 되다니! 이건 말도 안 돼! 있을 수 없는 일이야!”“용병의 왕이라고? 별거 아니네!”최서준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박재형의 멘탈을 흔들었고 그 말에 박재풍은 가슴속으로부터 큰 수치심을 느끼더니 순식간이 눈이 빨갛게 달아올랐다.“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어! 너 죽어!”박재풍은 분노에 찬 포효를 하며 다시 한번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최서준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최서준은 여전히 꼼짝하지 안고 그 자리에 서 있다가 박재풍이 근처에 다가오자 한 손을 뻗어 그의 옷깃을 잡더니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가 바닥에 세게 내리쳤다.쾅!박재풍의 오른 다리가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부딪혔는데 고통으로 비참한 비명을 질렀다. 단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사나운 짐승에 홀린 듯 최서준은 다시 한번 손을 뻗어 박재풍을 비틀어 바닥에 계속 내리쳤다.펑!펑!펑!몸과 바닥이 격렬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계속 울려 퍼졌고 박재풍의 사지는 모두 부러졌다. 박재풍이 병아리처럼 최서준에게 당하는 광경을 바라 보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는 공포로 가득 찼다.‘이 사람은 어디에서 왔길래 사람을 이 정도로 휘두를 수 있는 거지?’순간 모든 사람은 온몸이 오싹해졌고 마음속으로 누구를 건드리든 눈앞의 최서준이라는 사람을 건드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너의 동생을 때렸고 이제 너도 이 꼴이 됐는데 어때, 인정해? 대답해,
한편, 화이트 팰리스 4층에 있는 매우 따뜻하게 꾸며진 방 안에는 두 사람이 있었는데 넓은 물침대 위에 주하은과 김지유가 반나체로 누워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고 있었다.“지우야, 우리 본 지 며칠 안 되는데 너 피부가 더 부드러워진 것 같아. 어떤 스킨케어를 사용했는지 빨리 말해봐. 그리고 너 좀 커진 것 같은데.”“커지긴 뭐가 커져? 그리고 아무리 커도 너만큼 하겠어?”“아니야, 못 믿어. 한번 만져보자.”“그만해, 장난하지 마.”두 사람은 한바탕 장난을 치다가 헐떡거리며 물침대에 기대어 앉았다.주하은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지유야, 솔직히 말해봐. 최서준 씨 정말로 너의 약혼자야?”“응. 할아버지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혼약을 맺었는지 모르겠어. 그것 때문에 짜증이 나.”김지유는 예쁜 얼굴로 깊은 한숨을 쉬며 우울해했다.“최서준 씨 괜찮은데 왜 그렇게 혐오하는 거야? 사람도 멋있게 생겼고 또...”주하은이 커다란 눈망울을 깜빡거리며 말했는데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김지유가 끼어들었다.“혐오까지는 아니야. 너도 나를 알잖아, 나 이런 식의 혼약은 싫단 말이야.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부모 의견에 따라 결혼한다는 게 말이 돼?”잠시 생각을 하더니 한마디 덧붙였다.“게다가 그 사람 내가 좋아하는 타입도 아니야.”“그래? 그럼 넌 어떤 타입을 좋아하는데? 말해봐, 내가 한번 찾아볼게...”주하은이 웃을 듯 말 듯 하며 말했다.“아니야, 필요 없어.”김지유가 곧바로 고개를 저었는데 주하은은 갑자기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너 좋아하는 사람이 있구나? 누구야? 빨리 말해봐.”김지유의 예쁜 얼굴이 달아올랐는데 머릿속에는 청동 가면을 쓴 한 남자의 모습이 떠올랐다.“흠, 말하기 싫으면 말고.”주하은은 김지유가 쑥스러워서 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장난스럽게 웃었다.“네가 최서준 씨를 좋아하지 않으면 내가 대시할 거야. 나중에 후회하지 마.”“뭐라고? 하은아, 너... 설마 정말로 최서준 그 자식을 좋아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