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호수 밖에 SUV 한 대가 길가에 멈췄다.“아가씨, 대구호수에 도착했습니다.”운전기사가 뒷좌석 문을 열고 말했다.김지유는 차에서 내려 아무 생각 없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고마움을 표했다.“정말 고마워요. 조심해서 돌아가세요. 이제부터 저 혼자서 찾아볼게요.”“아가씨, 저와 같이 찾아요. 홍 선생님께서 아가씨가 최 대가님을 만나기 전까지 안전하게 모시라고 하셨습니다.”운전기사가 말했다.“괜찮아요. 여기까지 함께 와주신 것만 해도 너무 감사해요. 이제 정말 괜찮아요.”김지유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경주시에서 출발하여 여기까지 오는 동안 이 사람의 보호가 없었다면 어떻게 왔을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어찌 보면 이 사람은 그녀와 아무런 관련이 없으면서 홍만세의 지시로 여기까지 동행해 주었기에 더 이상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알았어요. 아가씨, 그럼 꼭 몸조심하세요.”기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고 차를 타고 출발했다.차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던 김지유는 구슬이 두 개 남은 팔찌를 다시 꺼내보며 결연한 눈빛을 보였다.대구호수는 그녀가 신농각에서의 첫 코스로 찾은 곳이다. 비록 도담이 동생이 여기에 있을지는 모르지만 대구호수에서 우선 찾아보고 없으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고 했다. 그녀가 대구호수에 막 들어섰을 때 많은 사람이 겁에 질린 얼굴로 뛰어나오는 것을 보았는데 어떤 사람은 어찌나 긴장했는지 쓰러지기도 했다.최서준과 김천성의 결투를 끝까지 지켜볼 용기가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전투 중에 혹여라도 본인들까지 다칠까 봐 걱정되는 사람들은 황급히 도망을 갔던 것이다.김지유의 옆을 지나가다가 쓰러진 한 청년이 일어서며 충고했다.“저 안에 싸움이 벌어졌으니 들어가지 말고 얼른 돌아가세요.”“싸움이요?”김지유는 놀랐다.‘여기는 관광구가 아닌가? 왜 싸움이 일어난 거지?’청년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네. 게다가 보통 싸움이 아니라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무술 고수들이 죽기 내기로 싸우고 있어요.
많은 구경꾼은 최서준의 상황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한숨을 쉬며 아쉬워했다.우영원도 조급한 표정으로 말했다.“부용 씨, 이제 어떡해?”비록 최서준을 못마땅해했지만, 어찌 됐든 후지이 이츠키를 잡을 때 최서준이 몰래 도와줬기 때문에 그가 김천성의 손에 죽는 걸 지켜볼 수가 없었다.염부용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방법이 없어. 이건 무술 종사들의 싸움이야. 우리 둘은 일반 무술인이라 끼어들 수 없어. 그리고 우리가 현무의 신분을 밝혀봤자 김천성은 현무의 체면을 봐주지도 않을 거야.”우영원은 염부용의 말을 듣고 절망의 표정을 지었다.옆에 있던 오윤정과 곽도훈도 불안감에 휩싸였고 오윤정은 호수 위에 있는 최서준을 바라보며 두 손을 가슴 앞에 꼭 잡았다.“최서준 씨, 제발 이겨요. 비록 친한 사이도 아니고 오해도 있었지만 그래도 당신이 이기길 바라요!”“하하하!”모든 사람의 주목을 받으며 김천성은 꽁꽁 묶여있는 최서준을 비웃었다.“최 대가는 무슨. 이게 바로 나한테 도발한 결과야. 지금 기분 어때?”최서준은 이제 독 안에 든 쥐라는 생각에 김천성은 기쁨을 금치 못했다. 이 또한 그가 철문전에 대한 자신감에서 나오는 거였다. 아무리 무술 종사라고 해도 철문전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고 최후의 결과는 원기가 소진되면서 폐인이 될 것이다.김천성은 최서준을 잡으면 곧바로 죽이지 않고 경주로 데려가서 많은 거물이 보는 앞에서 처형하겠다고 맹세했고 그래야만 자신의 위엄을 다시 세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그런데 갑자기 김천성의 표정이 굳어버렸는데 최서준이 그가 보는 앞에서 아주 쉽게 철문전을 부숴버리고 그가 반응할 틈도 없이 눈 깜짝할 사이에 김천성의 눈앞에 나타났다.“펑!”최서준은 망설임 없이 김천성의 얼굴을 주먹으로 세차게 내리쳤다.김천성이 반응했을 때는 이미 늦었는데 그의 몸은 폭탄처럼 공중으로 튕겨 나가 수십 미터 떨어진 곳에서 추락했다.순식간에 대구호수 전체가 고요해졌다. 구경꾼들은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에 너무 놀라서 잠시 아
연이은 패배로 김천성은 완전히 이성을 잃었다. 지금의 그는 최서준을 죽여서 체면을 되찾을 생각뿐이다.“용천둥!”김천성은 포효하며 온몸의 기운을 모두 오른쪽 손바닥에 모아 푸른 빛을 보이더니 마치 손에 천둥을 잡은 듯한 기세로 최서준을 향해 후려쳤다. 일반 사람들 눈에는 한 방 때린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이미 수십 번 휘둘렀고 매번 손바닥의 힘은 강력하고 번개같이 빨라 천둥이 요동치는 듯했다.“용천둥은 김천성의 또 하나의 필살기인데 정말 조급했나 보네.”염부용의 동공이 격렬하게 수축하였다.“김천성을 이 정도까지 몰아붙였다는 건 오늘의 결과와 상관없이 최 대가는 이미 이긴 거야!”염부용은 심호흡하더니 눈에서 끝없는 감탄과 열광이 흘렀다.“오늘 이후 최 대가는 세상에 명성을 날리는 건 물론이고 최 대가는 이름만으로도 세상을 뒤흔들 거야!”우영원은 염부용의 말을 듣고 다시 한번 최서준을 바라봤는데 눈에는 무한한 존경심이 가득했다.순식간에 수많은 강력한 힘을 실은 손바닥이 최서준을 삼켜버릴 듯 다가왔는데 호수 표면이 그 위력에 부글부글 끓는 가마솥 같았다.최서준은 물 위를 밟고 꿋꿋이 선 채 매서운 눈빛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김천성, 이것이 당신의 마지막 몸부림인가요? 제가 당신의 용천둥을 어떻게 부숴버리는지 똑똑히 봐요!”최서준이 말을 마치고 한 손을 뻗어 허공에서 주먹을 쥐자 물속에서 한 줄기의 물기둥이 솟아올랐다. 물기둥은 최서준의 손에서 물검으로 변했고 겉보기에는 부드러웠지만 실제로는 하늘을 찌를 듯한 힘을 갖고 있었다.“이 검의 이름은 단악검! 모든 귀신과 악을 없앨 거라는 뜻이지! 김천성 나 오늘 이 검으로 당신을 베어 도를 깨끗하게 할 것이야.”순간 검은 최서준의 손에서 한 마리의 용맹한 용처럼 뻗어나가더니 근처 100미터 이내에 검의 기운을 폭발시켰다.“쿵쿵쿵!”검의 기운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파괴되었는데 김천성의 수많은 용천둥도 모두 산산조각 나버렸다.절망에 빠진 김청성은 검이 번개처럼 멀리에서부
만약 언젠가 김천성이 그들을 찾아가서 복수를 한다면 아무리 최서준이라 해도 매번 막을 수 없었기에 오늘 김천성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김천성은 최서준이 이토록 냉정하게 거절할 줄은 몰랐던지 순식간에 포효했다.“감히 나를 죽이겠다고? 어디 그런 실력이 있는지 보자고.”“쓱!”김천성은 갑자기 자기의 가슴을 힘차게 내리치고 입에서 피를 토하더니 아까보다 2배는 더 빠른 속도로 멀리 도망갔다.“혈둔술?”최서준의 눈빛이 번쩍하더니 발을 들어 우주 위를 밟는 듯 여운을 남기며 쫓아갔다.구천탑보라고 아주 심오한 발걸음이었다.“김천성이 도망쳤어요?”싸움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서로를 마주 봤다.“빨리 따라가 보자.”염부용과 우영원은 빠른 속도로 최서준을 쫓아 질주했다.그들은 상부에 보고하기 위해서라도 결투의 결과를 꼭 알아야 했다....10여 분 후, 대구호수 남쪽에 있는 싱크홀 근처.김천성은 최서준의 주먹에 맞아 바닥에 떨어졌는데 심지어 커다란 구덩이를 만들어냈다.“최 대가, 정말 오늘 한 사람은 죽어야 하는 거야?”김청성이 피투성이가 되어 힘겹게 일어서며 물었다.“내가 죽이려는 사람은 아무도 도망가지 못했어요.”최서준이 천천히 그의 앞에 내려왔다.“그래, 좋아!”김천성의 눈에는 분노의 광기가 이글거렸다.“그렇게 죽고 싶다면 어디 한번 해보자고.”그는 갑자기 복부를 깊게 움츠리고 입을 크게 벌려 격렬하게 빨아들이더니 큰 고래가 세상을 삼킨 듯 복부와 가슴이 급속히 부풀어 올랐고 마치 공기를 가득 채운 풍선 같았다.“젠장!”최서준은 얼굴을 찡그리며 뒤로 후퇴하려 했다.“하하하, 우리 같이 죽자!”김천성의 웃음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폭발했고 폭발하면서 뿜어져 나온 격렬한 기운이 최서준을 덮쳤다. 멀리에서 봤을 때 수십 개의 폭탄이 땅에 떨어지면서 폭발하는 것 같았고 폭발과 함께 땅이 진동하며 수많은 낙석이 싱크홀에 굴러떨어졌다.겨우 쫓아온 염부용이 다급하게 외쳤다.“최서준 씨!”염부용과 우영원이 현장에 도착했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우영원이 잽싸게 쓰러지는 김지유를 붙잡으며 염부용에게 물었다.“이 여자는 누구야?”“나도 몰라.”염부용은 김지유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최서준 씨를 걱정하는 걸 봐서는 최서준 씨의 여자 친구 같은데.”‘최서준의 여자 친구?’우영원은 여자 친구라는 말에 김지유를 몇 번 더 쳐다보더니 자기보다 더 예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우영원의 시선이 김지유의 두 손에 닿는 순간 놀라서 소리쳤다.“부용 씨, 이 여자 손을 봐.”염부용이 황급히 달려가 살펴보니 김지유의 손은 온통 피투성이였는데 손톱은 모두 부러지고 지금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그는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여기까지 기어 왔나 봐, 그러니 손톱이 끊어지고 손도 이 정도로 상처 입었지.”우영원이 가슴 아파하며 말했다.“정말 대단한 여자야. 얼마나 절박했으면, 최 대가가 이렇게까지 중요한 거야?”“우선 치료부터 해주자, 아니면 나중에 손을 쓰지 못하게 될 수도 있어.”염부용은 고개를 저으며 옷을 벗어 바닥에 펴고 우영원에게 김지유를 눕히라고 했다. 그러고는 늘 몸에 가지고 다니는 작은 약상자에서 현무에서 비장의 치료 약을 꺼내 김지유를 치료했다. 그리고 일부 은밀한 부위는 등을 돌리고 같은 여자인 우영원에게 맡겼다.얼마 지나지 않아 김지유가 천천히 깨어나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누군가의 손에 잡혔다.“몸에 상처가 있으니 움직이지 말아요.”김지유는 그제야 멋지고 예쁜 여자가 자기와 말하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녀의 기억이 맞는다면 최서준이 사고 났다고 말했던 사람이다. 김지유는 자기의 손가락이 거즈에 감겨 있고 예전처럼 아프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는 고마운 마음을 표했다.“감사합니다.”“별말씀요.”우영원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당신은 이렇게 다쳤으면서 왜 여기까지 온 거예요?”김지유의 아름다운 눈빛이 어두워졌다.“방금 최 대가가 어떻게 됐다고 하셨죠?”우영원과 염부용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염부용이 물었다.“당신은 최 대가와
“그게 가능할까요?”김지유는 눈앞의 바닥이 보이지 않는 싱크홀을 보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최소 수천 미터는 될 것 같은 깊이에 사람은 물론이고 큰 바위가 떨어져도 산산조각이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염부용이 다가와서 말했다.“저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서준 대가님은 일반 사람과 달리 무술 종사잖아요.”그의 말에 김지유는 흠칫하더니 고개를 들고 두 사람을 보았다.“정말요?”그녀의 눈에 희망의 불꽃이 다시 타올랐다.우영원도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마시고 힘내요. 지원 요청을 이미 보냈으니 지원팀이 올 겁니다.”“지원팀은 언제쯤 도착하나요?”김지유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물었다.“그건 잘 모르겠어요.”우영원이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많은 장비를 비행기로 옮길 수 없어서 차로 이동해야 하는데 아마 최소 4시간은 걸릴 거예요.”‘4시간...’김지유의 마음속에 타오르던 희망이 다시 꺼졌다. 4시간이면 짧은 시간이 아닌데 그 사이에 어떤 일이 발생할 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고, 지금과 같은 위급한 시기에 1분이라도 지체하면 더 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만약 최서준이 크게 다쳤는데 조치가 되지 않으면…순간 김지유의 머릿속에 수많은 무서운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그때 문득 염부용 뒤에 짊어진 등산용 로프 다발을 보더니 김지유는 눈을 반짝이면서 결심했다.“그 등산용 로프 다발을 빌려주실 수 있어요?”“내려가시려고요?”염부용은 안색이 급변하더니 단호하게 거절했다.“안 돼요. 그건 너무 위험해요.”“맞아요. 김지유 씨, 싱크홀이 얼마나 깊은지, 그리고 아래가 어떤 상황인지 모르기 때문에 안 돼요. 그리고 이건 일반 암벽 등반에 사용하는 것이기에 이곳에 사용할 수 없어요. 게다가 부상까지 있잖아요.”우영원이 말렸지만 김지유는 여전히 고집을 부렸다.“로프 다발의 길이가 얼마나 되나요?”“약 1,500미터 정도예요.”염부용이 솔직하게 말했다.“그럼 됐어요.”김지유는 잠깐 기뻐하더니 갑자기 콩알만한 눈물
염부용은 조심스럽게 김지유를 싱크홀 아래쪽으로 내려보냈다.우영원은 옆에서 마음을 졸였는데 비록 김지유 몸에 밧줄을 묶긴 했지만 혹시나 떨어질까 봐 걱정되었던 것이다. 끝내 김지유의 모습이 두 사람 눈앞에서 사라졌다. 염부용은 바닥에 주저앉아 한숨을 쉬었다.“이젠 김지유 씨가 안전하게 복귀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네.”염부용이 말을 마치고 고개를 들어보니 우영원이 싱크홀 옆에서 멍하니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영원아, 무슨 생각해?”염부용의 물음에 우영원이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부용 씨, 이 세상에서 사랑의 힘이 정말로 그렇게 대단한 거야?”염부용은 그녀가 왜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하는지 의아했다.우영원이 계속해서 말했다.“김지유 씨의 행동에 놀랐어. 최서준 씨를 찾기 위해 혼자서 그 고생을 하며 여기 대구호수까지 왔다는 게 놀라워. 게다가 손톱까지 다 부러지면서 말이야. 그리고 아무리 최서준 씨가 싱크홀 아래에 있는 걸 알아도 그렇지, 생사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떻게 저렇게 자기의 안전은 생각하지도 않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려가겠다고 할 수가 있지?”우영원의 눈시울이 붉어졌다.“한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를 위하여 이 정도까지 할 수 있다는 게 정말로 놀라워.”이 순간만큼 다혈질이었던 그녀도 깊은 감동을 받았다.염부용 역시 똑같이 감동했다.“그러게 말이야. 수년 동안 많은 일과 사람들을 겪으면서 남녀 사이의 감정은 깨지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아주 쉽게 깨지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김지유 씨를 보고 그 생각이 바뀌었어.”우영원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두 사람 모두 살아서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어.”...싱크홀 800미터 아래.김지유는 밧줄을 꼭 잡고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지면과 점점 멀어지면서 사방이 어두워졌는데 다행히 그녀가 내려올 때 염부용이 그녀의 머리에 채광등을 씌워줘서 주위 환경과 발아래가 잘 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온통 절벽뿐이었고 오랜 세월 동안 굴러내려 온 낙석 때문인
지하의 낮은 온도에 그녀는 떨고 있었는데 마음속 깊은 곳의 최서준에 대한 집념으로 버틸 수 있었다. 몸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김지유는 갈라진 입술을 깨물며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동시에 그녀의 머릿속에 절망이 밀려왔다.“나 정말 서준이를 구할 수 없는 걸까?”그녀의 의식이 희미해질 때 머릿속에 갑자기 최서준과 함께 지낼 때 행복했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김지유는 황급히 눈을 뜨고 입술을 세게 깨물며 정신을 차렸다.“김지유 정신 차려! 절대 여기서 포기하면 안 돼. 최서준이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잖아. 그리고 도담이를 데려가서 목숨이 위태로운 언니도 구해줘야 하잖아.”김지유는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자신에게 말했다. 또 한 시간이 지났는데 이번에는 50미터 정도 내려갔다. 그녀가 아래쪽을 내려다보는 순간 십여 미터 떨어진 절벽에 자란 나무를 발견했다. 김지유는 스스로 기운을 내며 아래쪽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약 30분 후 마지막 남은 체력마저 거의 소진될 무렵 드디어 나무 옆까지 내려왔다.김지유는 나무 쪽으로 이동하여 나무줄기에 몸을 묶은 다음, 최대한 나무에 기대어 숨을 크게 헐떡였다.어느 정도 기운을 되찾은 후, 염부용이 준 물병을 꺼내 마시려고 하더니 무언가 생각난 듯 입술을 적실 정도로만 마셨다. 싱크홀의 바닥에 도착할 때까지 얼마나 더 걸릴지도 모르고 또 도담이에게 줄 것도 남겨야 했다. 그녀에게는 체력을 보충할 다른 먹을 것이 없었다.그때 김지유는 눈앞에 있는 작은 나무를 주의해 보았다. 소나무처럼 생겼지만 잎을 보면 소나무는 아니었다. 나무의 잎은 단풍잎처럼 붉었고 그 위에 비둘기알만 한 열매가 몇 개 달려 있었는데 역시 붉은색이고 아주 좋은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김지유는 손을 뻗어 열매를 따고 싶었지만 이런 나무와 과일은 전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독이 있을까 봐 망설였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손을 뻗어 열매 하나를 따서 입에 넣고 조심스럽게 씹었다. 열매는 당도가 높은 단맛이 아니라 향긋한 단맛으로 너무 달콤했다.“설마 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