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서준이 입을 열었다.“저 대신 두 물건의 행방만 알아 와주시면 됩니다. 하나는 백년혈삼, 또 하나는 천영꽃입니다.”일전, 홍도 누나가 천영꽃과 백년혈삼과 관련된 정보가 경주시에서 들렸다는 말을 해주긴 했지만, 구체적인 정보는 그녀도 잘 모르는 듯했다.하지만 홍만세라면 경주시의 터줏대감으로서 관련 정보를 얻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 일 것이다.최서준의 말에 잠시 흠칫한 홍만세가 물었다.“최 대가님도 백년혈삼 때문에 여기까지 오신 겁니까?”“그 물건의 행방을 알고 계십니까?”홍만세의 말에 최서준의 눈빛이 반짝였다.홍만세는 저도 모르게 옆에 있던 손 대가와 짧게 시선을 주고받은 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최 대가님께서 찾으시는 그 백년혈삼은 내일 경주시에서 열릴 약재 경매에 등장할 겁니다. 오전 10시, 장소는 고전약방입니다.”“고전약방이요?”최서준이 미간을 좁히며 되물었다.“네, 틀림없습니다.”홍만세가 계속 말을 이었다.“고전약방은 우리 경주시 약재 시장의 우두머리 같은 존재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곳의 주인은 구백호라고 하는 인물로, 경주시에선 약재의 왕이라고 불리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 밑으로 전문 약초꾼들만 몇천 명은 족히 될 겁니다. 약초만 캐는 게 아니라 사람 목숨도 캐더군요. 경주시 약재 시장은 그 사람이 독점했다고 볼 수 있죠.”최서준이 알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홍만세는 무어라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무슨 말이 하고 싶으신 겁니까?”최서준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최 대가님, 만약 최 대가님께서 얻으려고 하시는 게 백년혈삼이라면... 정말 쉽지 않으실 겁니다.”홍만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백년혈삼에 관한 정보는 이미 퍼질 대로 다 퍼졌다고 알고 있습니다. 경주시의 문벌들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모든 무인이 그 백년혈삼을 갖기 위해 다들 혈안이 되어있을 겁니다.”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손 대가도 덩달아 입을 열었다.“홍 선생 말이 맞습니다. 백년혈삼은 무인들 공력을 키우는 데
홍만세의 말에 손 대가의 표정 역시 굳어졌다. 그는 곧이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렇지요. 김씨 가문이라면 경주시에서 알아주는 무인 가문이잖습니까. 저 같은 건 손바닥 내려보듯 다 간파하는 신적인 존재이니까요. 소문에 의하면 김씨 가문 큰 어른이 무술 종사라고는 하던데, 그런 김씨 가문이 손을 쓰기 시작하면 제아무리 최 대가님이라고 해도 빈손으로 돌아가셔야 할 겁니다.”“어찌 됐든 이건 우리한테는 기회입니다. 최 대가님께서 정말 듣던 대로 대단한 인물이기를 바라야겠죠.”홍만세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한편, 남양시 나인원 크라운 별장으로 도착한 주하은과 김지유가 차에서 내렸다.“지유야, 여기가 바로 최서준 씨가 사는 곳이야.”주하은은 미소를 머금은 채 김지유에게 말했다.김지유는 고개를 들어 복잡한 표정으로 자신의 눈앞에 있는 남양시에서 제일 고급스러운 저택을 바라보았다.과거의 기억들이 다시 떠오르며 김지유의 머릿속을 채웠다.최서준을 처음 만난 날, 최서준은 혼인신고서를 들고 직접 그녀의 집 앞까지 찾아갔더랬다.이 결혼 자체에 반감을 보이던 김지유였기에 말 한마디 한마디에 최서준을 무시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던 기억이 있다.뒤늦게 할아버지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여기저기 수소문하던 김지유는 최우빈에게서 ‘천재 의사’ 가 있다는 말만 전해 듣고 눈앞에 있는 이 별장까지 왔었던 기억도 여전했다.반윤정과 함께 이곳까지 오던 중 또 한 번 최서준을 마주쳤었다. 그게 두 사람의 두 번째 만남이었다. 최서준의 입에서 이 저택이 자신의 소유라는 말이 나왔음에도 김지유는 죽어도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었다. 오히려 쓸데없이 허세만 부린다며 실컷 비웃었다.지금 돌이켜보니 김지유는 자신이 정말 멍청하게만 느껴졌다.왜 진작에 최서준의 말을 믿으려 들지 않았을까? 진작에 믿었더라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일도 없었을 테고 최서준과도 일찍 알고 지냈을 터였다.여기까지 달려오며 김지유는 진심으로 최서준을 다시 한번 만나고 싶었다. 최서준이 바
김지유의 말에 허란희가 깜짝 놀라 몸을 흠칫 떨었다. 그녀는 다급하게 김지유의 왼쪽 소매를 걷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왼쪽 손목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팥알 정도 크기의 모반이 보였다.곧이어 허란희는 김지유를 품에 꼭 끌어안고 벅차오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지유야, 정말 너구나, 정말 너야...”그 아이가 맞았어!허란희가 김지유를 못 알아볼 리 없었다.강가의 있던 나무통에 담겨 버려져 있던 김지유를 발견하고 데려왔던 게 바로 허란희였으니까. 김지유의 손목에 있는 모반을 제일 처음 확인 한 사람 역시 허란희였다.“란희 이모, 죄송해요. 여태껏 이모를 찾으려는 노력조차 안 했어요... 저 진짜 한심하죠...”“울지 마, 아가. 이모는 잘 지내고 있었어. 이렇게 지유도 오랜만에 만나고, 이모 너무 기쁘다.”두 사람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뒤늦게 따라 들어온 주하은과 진미연까지 눈시울이 붉어졌다.최아현의 경호를 맡고 있던 홍도가 아래층의 소란에 이끌려 2층에서 걸어 내려오며 물었다.“무슨 일이에요?”홍도의 질문에 정신을 차린 허란희가 김지유를 품에서 떼어내 촉촉한 눈망울로 지유를 바라보며 말했다.“지유야, 얼... 얼른 여섯째 언니도 봐야지. 너희... 너희 언니 죽기 전에 얼굴은 봐야지.”허란희의 말에 김지유는 다급하게 몸을 일으켜 위층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곧이어 홍도에 의해 제지당했지만 그런 홍도를 바라보며 허란희가 말했다.“홍도야, 쟤 아현이 여동생이야. 들어가서 얼굴이라도 볼 수 있게 해줘. 이게 마지막 만남일지도 모르는데...”말을 꺼낸 허란희가 또다시 눈물을 훔쳤다.허란희의 말에 홍도가 자리를 내어주자 다급하게 위층으로 달려간 김지유는 드디어 최아현이 있는 곳의 방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었다. 방 안에는 최아현이 침대에 반듯하게 누워있었다.침대 위에 누워있는 최아현은 마치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평온하게 누워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오직 가녀린 그녀의 숨소리만이 그녀가 아직 죽지 않고
“맞아.”“도담이 혼자 너무 많은 걸 짊어졌어. 내가... 내가 도와주고 싶어, 이제.”“게다가 여섯째 언니가 저렇게 아픈데, 여동생으로서 책임은 져야지.”굳은 결심을 한 듯한 표정의 김지유가 말했다.주하은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지금 경주시는 엄청 혼란스러운 상황이라고 들었어. 그렇게 큰 곳에서 최서준 씨가 정확히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판에 가서 뭘 어쩌겠다는 건데?”“게다가 여자 혼자 가서 무슨 위험한 일이라도 생기면, 그땐 또 어떡하려고?”주하은의 말에 김지유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나도 알아, 그... 그러니까 네 팔찌 좀 빌리겠다는 거잖아.”“걱정하지 마, 아무것도 안 건드리고 돌아오는 대로 바로 돌려줄 테니까.”김지유가 간절한 표정으로 애원했다.주하은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손목에 감긴 3개의 구슬만 남아버린 팔찌를 바라보았다. 어딘가 망설이는 듯한 기색이 보였다.그 팔찌는 최서준이 주하은에게 준 생일선물로 주하은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목숨까지 구해줬던 아주 소중한 팔찌였다.그런 팔찌였기에 그 아무에게도 주고 싶지 않았다.주하은의 행동으로 대충 눈치를 챈 김지유가 체념한 듯 웃으며 말했다.“싫으면 됐어, 굳이 안 줘도 돼.”김지유가 포기하고 돌아서려던 그 순간이었다.“지유야, 잠깐만.”주하은이 갑자기 그녀를 불러세웠다. 가볍게 이를 악문 주하은이 자신의 손목에 감겨있던 팔찌를 빼더니 김지유의 손에 쥐여주었다.“너... 이거.. 너 가져.”“고마워, 하은아. 이건 우리만의 비밀로 해줄래? 절대 란희 이모한테는 얘기하지 말아줘. 내가 도담이 찾으러 가는 거 알면 분명 또 걱정하실 거야.”김지유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주하은에게 진심 어린 감사 인사를 올렸다.“그 정도는 나도 알아. 너야말로 조심히 가.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 무슨 일 없어도 연락 자주 해줘야 해. 알겠지?”주하은은 여러 번이나 당부하며 김지유에게 손을 흔들었다.주하은의 당부에 김지유가 빠르게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김지유가 떠나
휴대전화를 꺼내든 변태남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더니 대충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을 몇 마디 내뱉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경박해 보이는 중년의 여자가 입에 담배 한 대를 물고 나타났다.변태남은 그 중년의 여인에게 귓속말로 작게 무어라 속삭이며 수시로 손가락을 들어 멀리 있는 김지유를 가리켰다.둘의 실랑이가 한바탕 벌어지는가 싶더니 중년의 여인은 변태남으로부터 20만 원 가량의 돈을 건네받았다. 돈을 건네받은 중년의 여인은 그제야 담배를 비벼 끄고는 김지유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자리에 앉아 멍하니 찐빵을 우걱우걱 씹고 있던 김지유의 뒤로 누군가가 다가와 어깨를 툭툭 치는 인기척이 느껴졌다.낯선 인기척에 김지유가 뒤를 돌아보았다. 돌아본 곳에는 한 중년의 여인이 싱글벙글 웃으며 김지유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어머, 얘. 너 설화네 연이 아니니?”“죄송한데, 사람 잘못 보신 것 같습니다.”김지유가 미간을 좁히며 대답했다.“아닌데, 그럴 리가 없는데? 분명히 내가 너 어디서 봤는데, 네 이름 서지연 아니니?”중년의 여인이 낮게 속삭이며 물었다.“죄송하지만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제 성씨부터 서씨가 아니라서요.”중년 여인의 끈질긴 질문에 김지유가 성가신 듯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거짓말하지 마, 내가 그걸 어떻게 믿니? 신분증이라도 내밀어 보든가.”중년 여인은 끝까지 제 뜻을 굽히지 않았다.김지유는 끓어오르는 화를 간신히 참으며 가방에서 신분증을 꺼내 중년 여인에게 내밀어 보여주고는 도로 집어넣으며 물었다.“이제 됐어요?”짝!그 순간, 중년의 여인은 힘껏 김지유의 뺨을 내리치며 분노에 가득 찬듯한 목소리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이런 빌어먹을 년이, 내가 오늘 너 가만두나 봐라!”“이게 지금 무슨 짓이에요?”순식간에 뺨을 얻어맞은 김지유는 얼얼한 뺨을 붙잡고 잔뜩 당황한 듯한 표정으로 그 여인을 바라보았다.하지만 그 순간, 중년의 여인에게서 또 한 번의 싸대기가 날아와 김지유의 얼굴에 내리꽂혔다. 얼마나 세게 때렸던 건지 김지
다음 날 오전 9시 반, 최서준이 묵고 있는 호텔 로비에 홍만세의 차가 도착했다. 행인들은 홍만세를 알아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그것보다 홍만세 같은 거물이 누구를 기다리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곧, 그들은 평범한 옷차림에 범상치 않은 분위기의 청년이 호텔 안에서 걸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최 대가님!”홍만세 일행은 얼른 몸을 살짝 숙였고 경외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갑시다.”최서준은 어안이 벙벙한 행인들을 한번 쳐다보고는 바로 홍만세의 차에 올라탔다.홍만세 일행이 떠나자 구경꾼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세상에, 어엿한 경주시의 거물 홍만세가 젊은이를 직접 영접하다니.”“그뿐만이 아니라 홍 어르신이 그 젊은이에게 엄청 공손한 것 같아.”“믿을 수 없어, 믿을 수 없어...”“...”많은 행인이 끊임없이 의논했다....차량은 도로 위를 평온하게 달리고 있었다. 적지 않은 고급 차가 홍만세의 전용 10000 번호판을 보고 놀라 줄줄이 길을 비켰다.차 안에서 홍만세는 공손하게 최서준을 보며 말했다. “최 대가님, 어젯밤에 또 사람을 시켜 천영꽃에 관해 알아보았으나 여전히 소식이 없습니다.”“괜찮습니다.”최서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백년혈삼을 얻은 후 천영꽃을 찾으러 갈 계획입니다.”홍만세는 그가 탓하는 기색이 없자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때, 운전기사가 갑자기 핸들을 세게 꺾자 홍만세의 몸이 휘청거렸다.“혁수야, 왜 그래?”홍만세는 불쾌한 듯 운전기사를 향해 말했다.혁수라는 운전기사는 연신 사과했다.“홍 어르신, 죄송합니다. 김 도령의 차가 끼어들어서 잠시 당황했습니다. 놀라시게 해서 죄송합니다.”말하고 있는데 20억짜리 애스턴 마틴 스포츠카가 뒤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려오더니 어느새 홍만세의 차와 나란히 달렸다.홍만세가 창문을 내렸다.그러자 맞은편 스포츠카에서 선글라스를 낀 청년이 도발하듯 휘파람을 불었다.“홍 씨, 당신 기사 운전 실력이 별로네. 살짝 놀라게 하니까 바로 당황하는
최서준은 간단히 대꾸한 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경주시의 부잣집들 사이의 원한은 그와는 무관하며, 최서준은 백년혈삼과 천영꽃에만 관심 있다.홍만세는 갑자기 말을 꺼내려다 말았다.“최 대가님, 제가 얻은 소식에 의하면 김씨 집안도 백년혈삼을 얻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번 일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홍만세는 최서준이 듣고 감정 기복이 조금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그런데 최서준은 담담하게 대답했다.“괜찮습니다. 만약 김씨 집안이 저랑 적이 된다면 김씨 집안을 멸할 것입니다.”이 말을 하는 최서준의 말투는 마치 평범한 일을 서술하는 것처럼 매우 담담했다.홍만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김씨 가문은 무사 가문이고 무술 종사가 지키고 있는 것 같은데 최 대가의 말은 조금 허풍이 아닌가.’20여 분 후, 일행은 넓은 부지의 고풍스러운 장원 입구에 도착했다.홍만세에 의하면, 이곳이 고전 약방의 본부라고 한다.지금 이 순간, 고전 약방문 앞은 이미 많은 사람으로 북적이고 괴상한 차림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최서준이 한바퀴 훑어보니, 그중에는 무사들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내공이 가장 낮은 사람은 암경이고 가장 높은 사람은 통맥경이었다.수많은 사람이 백년혈삼을 위해 올 것을 예상했는데도 눈앞의 광경에 깜짝 놀랐다.홍만세 옆에 있던 손 대가는 걱정스레 먼 곳의 한 사람을 보며 말했다.“홍 선생, 해서의 마풍자도 왔어요.”최서준과 홍만세가 그의 시선을 따라 바라보니 열 걸음쯤 떨어진 곳에 억척스러운 노인이 서 있었다.노인의 관자놀이는 높이 솟아올라 있었다. 그는 분명히 살아있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호흡을 느낄 수 없었다.“손 대가님, 이 마풍자 역시 무인인가요?”홍만세가 눈살을 찌푸렸다.“맞습니다.”손 대가는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마풍자는 해서에서 악명이 자자해요. 소문에 의하면 일찍이 아내와 장인 일가족 13명을 죽이고 줄곧 도피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던데 여기에 나타날 줄 몰랐어요.”그가 말하고 있을 때, 먼 곳
최서준이 소리를 따라가 보니 의외라는 표정으로 남녀 한 쌍이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그들은 오윤정과 곽도훈이었다. 지금 최서준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빛은 불가사의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어젯밤 로얄 노래방에서 최서준이 홍만세의 아들 홍기준을 때렸다.오윤정과 곽도훈이 봤을 때 최서준은 죽을 것이 분명해서 그들은 별다른 생각 없이 일찍 떠났다.하지만 두 사람의 예상과 달리 최서준은 아무 일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멀쩡히 약방에 나타났다.“최서준 씨... 괜찮은 거예요?”오윤정은 입술을 깨물며 믿기지 않는 듯 말했다.사촌 언니가 최서준을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했는데 어젯밤에 최서준을 버리고 곽도훈과 도망친 것 때문에 오윤정은 마음속으로 약간의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괜찮아요. 심려 끼쳐서 죄송해요.”최서준이 담담하게 말했다. 오윤정은 참지 못하고 말했다. “최서준 씨, 홍기준이 어떻게 당신을 놔줬는지 말해줄 수 있어요?”“노코멘트에요.”최서준은 말 한마디를 내던지고는 두 사람을 상대하기 싫은 듯 다른 쪽으로 걸어갔다.오윤정은 기분이 언짢아 미간을 찌푸렸다.오윤정은 원래 최서준에게 관심을 가지려고 했는데 이 녀석이 글쎄 주제를 몰랐다.‘됐어, 네가 죽든 말든 신경 쓰기 귀찮아.’오윤정은 씩씩거리며 고개를 돌렸다.곽도훈은 최서준을 차갑게 쳐다보고는 오윤정을 위로했다.“윤정아, 그걸 꼭 물어봐야 알아? 분명 저 녀석은 우리가 떠난 후에 더 이상 허세를 부리지 못하고 홍 도령에게 무릎꿇고 용서를 빌었을 거야.”오윤정이 생각해도 일리가 있어 다시 최서준을 바라보는 눈빛에 경멸이 가득 찼다.“나는 당신이 얼마나 기개가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다 허세였군요.”“나는 지금 이 자식이 몰래 섞여 들어온 것 같은 의심이 들어. 두고 봐, 이따가 분명히 들켜서 고전약방 사람들한테 반쯤 맞은 뒤 내팽개쳐질 거야.”곽도훈이 냉소를 지었다.둘은 최서준을 그냥 무시했다.경매가 시작되기 10분 전, 최서준은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고전약방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