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투기장 2층 난간 앞조병호는 노출이 심한 옷차림을 한 여인의 허리에 손을 두르고는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1번, 너 씨발 밥도 안 처먹었냐? 죽을 때까지 때려, 9번을 아예 때려죽여 버려!”조병호는 욕설을 퍼부으며 손을 그녀의 가슴에 갖다 댔다.그의 힘이 셌는지 그녀는 갑자기 “앗”하고 소리를 질렀다.찰싹-조병호는 그녀의 뺨을 내리쳤다. 그녀는 그만 땅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썅년이, 소리 지르고 지랄이야? 따먹어달라는 거야?”“셋째 도련님, 잘...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이내 여자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애원했다.“썅년이, 나 지금 너무 열받거든? 열 좀 식혀야겠다.”조병호는 욕설을 퍼부으며 벨트를 풀어 헤치더니 여자의 머리를 거칠게 잡아당겼다.바로 이때, 정장 차림의 사내가 빠른 걸음으로 들어왔다.“셋째 도련님, 가주께서 바꾸시라고 합니다.”조병호는 기분이 순식간에 망쳤지만 그래도 전화를 건네받았다. 다소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형님, 무슨 일이에요?”“셋째야, 오늘 벌써 둘째 날이다. 아마 그 새끼가 또 사람을 죽일 것이다. 조심해라. 죽으면 내가 알려주지 않았다고 탓하지 말고.”조병호는 전화 너머 당부했다.“네, 알겠어요.”조병호는 전화를 끊고는 시큰둥하게 웃었다.“형님이 나이가 들더니 겁이 많아지나 봐. 보육원 따위 새끼가 세면 얼마나 세다고?”“더군다나 이 지하 격투기장에 손에 피를 묻혔던 복서가 이렇게나 많은데 그놈이 감히 오기만 해봐, 죽여버릴 거야!”이쯤 되자, 조병호의 입가에 기대가 어렸다.“오히려 나를 죽이러 왔으면 좋겠네.”“그러면 난 조씨 가문의 큰 공신이 되겠네. 나아가 노조의 인정도 받을 수 있고, 어쩌면 형님을 대신해 우리 조씨 가문의 가주가 될 수도 있겠는데.”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복싱클럽 대문에서 갑자기 큰 소리가 들려왔다.순간, 건장한 경호원 세 명이 비명을 지르며 거꾸로 나가떨어졌다.뭇사람들이 반응하기 전에 청동 가면을 쓰고 검은색 옷을
그들이 급히 올려다보니, 조병호가 2층 난간에 기대고 있었다.“셋째 도련님이십니다!”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순간 멍해 있었다.조병호는 시가에 불을 붙이고, 위에서 최서준을 게슴츠레 내려다보고 있었다.“건방진 새끼가, 혼자 와서 날 죽이려고 할 줄은 몰랐네.”“너 설마 모르는 거냐? 조씨 가문의 모든 사람 중에서 나 조병호의 부하가 제일 많고, 제일 만만치 않다는걸?”“널 무식하다고 하면 좋을까, 아니면 제 주제를 모른다고 하면 좋을까?”최서준 얼굴의 청동 가면을 바라보는 조병호의 눈빛은 마치 피에 굶주린 야수 같았다.‘그 아이다!’‘한성 보육원의 잔당!’조병호는 한편으로 놀라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기뻐하기도 했다.‘병신, 널 찾지 못할까 봐 되려 걱정했건만 제 발로 걸어 찾아오다니!’‘하하하!’최서준은 고개를 들고 2층에 있는 조병호를 쳐다봤다. 가면 속에 감춰진 두 눈은 마치 활활 타오르는 불꽃 같았다.“사람이 많으면 뭐 해? 내가 널 죽이려고 작정하면 넌 살아남을 수가 없는데.”순간 모두 멍해져서는 제자리에 굳어있었다.‘미쳤네!’‘혼자서 이 많은 복서를 대상으로 큰소리 치다니.’‘제정신이 아니네!’조병호는 얼굴빛이 싸늘해졌다.“병신새끼야, 오늘 너한테 죽지 죽는 게 사는 것보다 못한 게 무슨 느낌인지 알게 해줄게.”“다들 덮쳐!”“목숨줄은 간신히 남겨둬라, 조씨 가문의 모든 사람 앞에서 저 새끼로 등불을 켤 거야.”조병호는 피에 굶주린 웃음을 지으며 명령을 내렸다.퍽.많은 복서가 즉시 칼을 휘두르며 최서준을 향해 우르르 달려들었다.그들의 눈에는 차가운 살의를 내뿜었다. 정확히 말하면 피비린내가 나는 살의였다.그들은 몇 년 동안 조병호를 따라다니며 많은 사람을 죽이다 보니 자연히 사람을 삼대 배듯 죽이는 성격을 띠게 되었다.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수십 자루의 칼이 최서준을 향해 빗발치듯 내리치는 것을 보고 고개를 흔들었다.그들은 마치 죽지는 않아도 기껏해야 숨만 간신히 붙어있는 처참한 최후를 본 듯했다.이를 본
피를 부르는 최서준의 눈빛에 조병호는 온몸의 털마저 다 서버렸다.그는 마침내 두려워졌다. 그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지금 그의 얼굴에는 믿을 수 없는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결정적인 순간, 그는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남은 부하들에게 소리쳤다.“어서 모든 쇠창살을 열고, 사람을 다 풀어버려!" 쾅쾅쾅!철장이 열리자, 맹수 같은 열여덟 명의 건장한 체격의 사내들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키가 190cm는 훌쩍 넘고 팔뚝은 최서준의 허벅지보다 더 굵은 것이 마치 거인 같은 사내들이었다.그들은 모두 조병호가 수년간 모은 일등 싸움꾼들로서, 그 누구든 1대10으로 이길 수 있다.“저 새끼를 죽이는 자에게 자유를 돌려주겠다, 그리고 현금 20만 원까지”조병호의 지시하에 현금으로 가득 찬 박스들은 이 열여덟 명의 건장한 사내 앞에 놓였다.“죽여버려!”열여덟 명의 사내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최서준을 향해 덮쳤다.‘이 자식 이번엔 안 되겠지?’모두가 황급히 최서준을 바라보며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최서준은 시종일관 변함없이 한 손은 뒤로 짊어지고 한 걸음 내디뎠다. 그러고는 가볍게 내뱉었다.“남아호걸은 적 앞에 겁내지 않는다!”“두려움 모르는 열혈남아의 피를 보라!”“남아의 호기가 가슴을 파고든다.!”“사나이는 일과 인을 양립할 수 없다!”그들은 이 상황을 보고 놀란 나머지 턱이 덜덜 떨렸다.‘지금이 어느 때인데, 이 녀석이 아직도 시를 읊다니.’“죽기 직전인데 시를 읊을 기분이 나냐?”조병호는 최서준을 한사코 바라보며 씩 웃었다.누군가 엉겁결에 비명을 질렀다.“아니, 이건 구성이가 쓴 '살인의 노래'잖아!”“세상에, 살기가 느껴져!”모두 놀라서 소리를 지르는 가운데, 한 건장한 몸집의 사내가 앞장서서 최서준의 명치를 향해 모래주머니만 한 주먹을 휘두르며 달려갔다.“인마, 죽어!”최서준은 당황하지 않고 그저 가볍게 손을 뻗어서는 상대의 머리로 내리쳤다.순간 그의 머리는 그대로 가슴팍에
그들은 겁에 잔뜩 질린 얼굴로 눈앞에서 무자비하게 벌어지고 있는 살인 현장을 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놀라움과 충격, 심지어는 전율이 있었다. 그의 한걸음에 한 명씩 죽어 나갔다.진짜로 한걸음에 한 명씩 죽어 나갔다. 살신!이는 희대의 살신이었다.조씨 가문은 어쩌다가 이처럼 공포스러운 존재를 건드린 거지!조병호는 너무 놀란 나머지 바지에 소변을 지릴 지경이였다. 이 순간에야 그는 이 따위 녀석이 형님을 그토록 긴장하게 하는 이유를 알아챘다. 심지어 조씨 가문의 노조에서까지 특별히 사람을 보내 그를 상대했다.“아니야, 난 죽을 수 없어. 죽을 수 없단 말이야!”조병호는 속으로 미친 듯이 부르짖었다.“내가 바로 명성이 자자한 조씨 가문의 셋째야. 무상의 권력과 재부를 갖고 있다고! 난 아직 충분히 누리지도 못했는데, 절대 죽을 수 없어!”“문산!”“어서 문산을 풀어라!”갑자기 그는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탕!”마지막 하나의 커다란 쇠창살이 열리며 발목에 무거운 족쇄를 찬 남자가 걸어 나왔다. “문산!”“문산!”그 순간 몰려섰던 사람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문산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더 없는 경외와 숭배로 가득 차 있었다. 문산은 이 지하 격투기장의 격투 왕으로서 데뷔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져본 적 없이 백전백승이었다. 그의 손에 죽은 사람만 해도 백 명은 아니여도 팔십 명 정도는 되였다. 그가 나선다는 것은 곧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때문에 조병호는 거금을 들여 쇠사슬을 만들어 그의 팔다리를 묶었으며 견고하기 그지없는 쇠창살에 그를 가두었다. 조병호는 손을 뻗어 최서준을 가리키며 문산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문산, 저 새끼를 죽여버려. 무슨 조건이든 들어주마.”“난 이백만 원 더.”문산은 웃통을 벗은 채 느긋하게 말했다. “좋아, 이백만 원. 바로 계좌로 보낼게.”조병호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딜!”곧 문산의 팔다리에 묶여있던 쇠사슬이 풀렸다. “탕.”문산이 발을 내디디자 땅 전
“왜 다들 죽기 전에 똑같은 얘기를 하는 거지? 좀 신선한 건 없어?”그의 앞에 선 최서준은 고개를 젓더니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억지로 비틀어 뽑았다.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더니 봉투 하나를 꺼내 그 안에 조병호의 머리를 넣은 뒤 훌쩍 떠났다.뒤늦게 정신을 차린 장내의 사람들은 머리가 사라진 조병호의 시체와 피로 물든 바닥을 보았다.더는 참지 못한 그들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사람들을 밀치며 도망치려 했고 어떤 이들은 벽을 붙잡고 토했다.격투기장 밖에서는 경찰차 한 대가 사이렌을 울리며 도착했다.“빨리, 빨리빨리!”제복을 입은 윤희은이 차에서 내려 두 명의 부하를 데리고 격투기장 안으로 들이닥쳤다.그러다 문득 10걸음 정도 되는 거리 밖에 한 사람이 봉투 하나를 들고 걸어가는 걸 보았다.그가 들고 있는 봉투에서 핏물이 뚝뚝 흘러 아주 섬뜩했다.“탕!”윤희은은 서둘러 총을 꺼내 들어 하늘을 향해 공포탄을 쐈다. 윤희은이 큰 소리로 외쳤다.“거기 너! 지금 당장 멈춰 서!”윤희은의 등 뒤에 있던 두 사람은 그제야 최서준을 발견하고 총을 꺼내 그를 겨눴다.최서준은 담배를 문 채로 천천히 몸을 돌렸다. 가면 아래 숨겨진 그의 날카로운 눈빛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가면을 쓰고 있군. 또 너야?”윤희은은 안색이 달라지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들고 있는 건 뭐지?”“알고 싶어? 이걸 보면 겁을 먹을까 봐 걱정되는데.”최서준이 웃음을 터뜨리면서 봉투를 흔들거렸다.“움직이지 마!”윤희은은 그의 행동에 깜짝 놀라서 다급히 호통을 쳤다.“지금 손에 들고 있는 거 당장 내려놓고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린 뒤 무릎 꿇고 앉아!”그러나 최서준은 가만히 있었다.윤희은은 깊이 숨을 들이마신 뒤 말했다.“말 반복하지 않을 거야. 감히 멋대로 움직이려 한다면 당장 총으로 쏴 죽이겠어!”말을 마친 뒤 윤희은은 조금 부드러워진 어조로 말했다.“우리는 12년 전 한성 보육원 사건에 대해 알게 되었어. 네가 그들을 위해 복
윤희은이 말을 마치자마자 담배꽁초 하나가 아주 빠른 속도로 그녀를 향해 날아왔다.윤희은은 본능적으로 옆으로 피했고 뒤이어 귓가에서 총소리가 두 번 들렸다.그녀가 중심을 잡고 고개를 들었을 때, 최서준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빌어먹을, 그 자식 또 도망쳤어!”윤희은은 최서준이 서 있던 곳으로 걸어가서 발을 쿵쿵 굴렀다.그녀는 두 부하에게 다가가서 말했다.“조금 전에 총 쐈었지? 맞춘 것 같아?”두 사람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저희도 모르겠습니다. 속도가 너무 빨라서요.”윤희은은 경악했다.조금 전 그들은 최서준과 기껏해야 10걸음 정도 되는 거리에 있었다.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도 탄환을 피해 도망칠 수 있다니, 얼마나 무시무시한 실력인가?윤희은은 갑자기 조금 전의 그 담배꽁초를 들었다. 그녀의 입가에 의기양양한 미소가 걸렸다.“결국엔 증거를 남기고 갔네!”“감식반으로 가져가서 여기에 남겨진 DNA를 검사해 보라고 해. 최대한 빨리!”윤희은은 봉투를 하나 꺼내 그것을 담은 뒤 조심스럽게 부하에게 건넸다.뒤이어 그녀는 남은 부하 한 명을 데리고 함께 지하 격투기장으로 들어갔다.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마주했을 때, 강한 멘탈을 가진 두 사람도 등골이 오싹했다.윤희은은 울렁거림을 참으며 중얼거렸다.“조씨 집안도 참, 저런 미치광이를 건드렸으니 이제 곧 멸문당하겠네.”그녀는 피바다가 된 조씨 집안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하지만 윤희은은 직책이 있었고, 또 김지유라는 좋은 친구를 고려해야 했기에 최대한 빨리 최서준을 잡아야 했다.30분 뒤, 김지유는 잠결에 다급히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라서 깼다.“지유야, 얼른 문 열어. 나 윤희은이야!”김지유는 서둘러 문을 열었다.“희은 언니, 무슨 일이에요?”살짝 창백해진 얼굴을 보니 뭔가 짐작 가는 바가 있는 듯했다.윤희은은 솔직히 얘기했다.“네가 그렇게 아끼던 도담이가 또 사람을 죽였어. 이번에는 조씨 집안의 셋째 조병호를 죽이고 그의 머리를 뜯어서 가져갔어.”
늦은 밤, 경찰차 한 대가 아주 빠른 속도로 남원 추모 공원 입구에 도착했다.윤희은과 김지유가 차에서 내려 곧장 추모 공원 안으로 들어갔고 마침내 외딴 묘비 앞에 도착했다. 그중 가운데 있는 묘비 앞에는 아직도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재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역시 제사를 지내러 온 거였어!”윤희은의 시선이 잿더미에 고정되었다. 곧이어 그녀는 주위를 둘러봤다.“지유야, 여기서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거야. 지금 쫓아가도 따라잡을 수 있을 거야.”윤희은은 몰래 손을 허리춤으로 가져가서 총을 빼냈다.그러나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린 윤희은은 김지유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미친 듯이 흙을 파헤치는 걸 보았다.손가락을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김지유는 아랑곳하지 않았다.땅을 파헤치자 피 칠갑이 된 사람 머리가 밖으로 드러났다.“조형우의 머리네!”윤희은은 저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켰다.김지유는 입을 힘껏 틀어막은 채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도담아, 난 알고 있었어. 네가 제일 먼저 원장 할아버지랑 다른 사람들을 보러 올 줄 알았다고.”“왜 날 기다려주지 않은 거야? 내가 널 얼마나 보고 싶어 하는지 모르는 거야?”“왜 이렇게 바보 같아? 왜 혼자 모든 걸 짊어지려고 하는 거야? 왜 모든 사람을 적으로 돌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냐고.”“누나가 별로 도움은 안 돼도, 그래도 난 널 지켜주고 싶어. 너 대신 죽으라고 해도 난 기꺼이 죽을 거야.”김지유는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윤희은은 최서준을 쫓아갈 생각이었지만 김지유의 모습에 마음이 놓이지 않아 그저 멀찍이 떨어진 채로 묵묵히 그녀의 곁을 지켰다.김지유는 눈앞의 외로워 보이는 묘비를 바라보면서 흐느꼈다.“원장 할아버지, 그리고 옛 친구들아. 부디 나와 도담이가 하루빨리 만날 수 있게 도와줘.”윤희은은 김지유가 지나치게 슬퍼할까 봐 그녀를 껴안으며 말했다.“지유야, 내가 약속해. 넌 이제 곧 도담이를 볼 수 있을 거야.”“희은 언니, 나
“아니, 난 돌아가서 사건을 연구해야 해. 넌 일찍 쉬어.”윤희은은 고개를 젓더니 몸을 돌려 차를 타고 떠났다.김지유는 문을 닫은 뒤 최서준의 방 앞에 섰다.그녀는 먼저 문을 두드렸다.“최서준, 자?”아무런 대답도 없자 김지유는 결국 참지 못하고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그러나 방 안은 텅 비어 있었다.그 순간, 김지유는 왠지 모를 실망을 느꼈다.최서준이 돌아오지 않았다.이렇게 늦은 시간인데 말이다.왜 돌아오지 않은 걸까?설마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그런 생각이 들자 김지유는 깜짝 놀라서 최서준에게 전화했다.김지유는 알아채지 못했다. 그동안 최서준과 동거하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말이다.갑자기 그녀의 인생에 나타난 남자는 평소에 말이 좀 안 통해서 그렇지, 김지유는 이미 그의 존재가 익숙해졌다.그녀가 막 통화 버튼을 눌렀을 때 아래층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열렸다.최서준이 돌아온 것이다.김지유는 마음이 한결 놓였다. 아래층으로 내려간 그녀는 최서준을 자세히 살펴보며 물었다.“이렇게 늦은 시간에 어디에 갔다 온 거야?”“친구랑 만나서 술 좀 마셨어. 미안.”최서준은 이미 핑계를 생각해 둔 상태였다.곧이어 그는 정장을 입은 김지유를 바라보며 말했다.“금방 돌아온 거야?”“응, 회사에서 야근하다가 돌아왔어.”김지유는 부자연스러운 표정으로 대꾸했다.그녀는 도담이의 일을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최서준이 놀랄까 봐서 말이다.그 외에도 도담이 일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았다.순간 최서준의 눈동자에 쉽게 알아챌 수 없는 실망이 스쳐 지나갔다.“그래. 얼른 가서 씻고 일찍 쉬어.”최서준은 말을 마친 뒤 김지유가 대꾸하기도 전에 몸을 돌려 위층으로 올라갔다.왠지 모르게 김지유는 오늘 저녁 최서준이 수상했다.어쩐지 그가 자신을 멀리하는 것 같았고 태도도 조금 냉담해진 것 같았다.그러나 김지유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저 최서준이 취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다.김지유는 씻고 나서 침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