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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나는 엄마만 무사하면 돼요.”

이 말을 들은 아빠가 나를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생일은 무슨 생일이야. 눈에 거슬리게 하지 말고 얼른 방으로 꺼져.”

그 잔치 국수는 아빠가 쓰레기통에 버리는 바람에 한 입도 먹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왜 그리 빨리 죽었는지 알 것 같았다.

언니는 일부러 내 방으로 들어와 내 마음을 후벼파는 말들을 스스름없이 내뱉었다.

“엄마가 만든 면을 먹겠다고? 정말 염치가 없어도 너무 없네.”

“너처럼 재수 없는 년은 왜 죽지도 않는 거야.”

나는 화가 치밀어 올라 언니를 밀쳤고 언니는 마침 머리를 문에 부딪쳤다.

그날 밤 아빠는 처음으로 나를 지하실에 가뒀다. 이게 내 명을 재촉하는 화근이 되었다.

너무 어두워서 숨이 올라오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를 부를 엄두가 나지 않아 그저 미친 듯이 문만 두드렸다.

악몽이 나를 삼켜버렸고 귓가에는 옷이 찢기는 소리만 들렸다.

나는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온몸을 웅크리고 외할머니를 부르며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어둠에 갇힌 나는 공포에 휩싸였다. 다시 눈을 떠보니 엄마가 병원에서 나를 안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엄마를 보자마자 놀라서 구석으로 숨어들며 중얼거렸다.

“나는 엄마 싫어요. 엄마 싫어요.”

하지만 나는 잊었다. 그날 엄마가 처음으로 나를 먼저 안으려 했다는 걸 말이다.

엄마가 내민 손은 허공에서 굳어버렸고 표정도 점점 싸늘해졌다.

“머리 검은 짐승 맞네.”

나는 어둠 공포증을 진단받았지만 엄마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바로 병원을 나섰다.

그날 밤, 나는 후회에 휩싸였다. 손톱이 살을 파고 들어갈 정도로 주먹을 꽉 움켜쥐었지만 나의 절망과 초조함을 해소할 수는 없었다.

그날을 기점으로 엄마와 내 사이는 점점 더 멀어졌다.

내가 대학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언니가 서재를 갖고 싶다고 하자 엄마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 물건을 빼버리고 내 방을 서재로 만들었다.

정말 한시라도 빨리 나를 집에서 쫓아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괜찮았다. 나는 죽었으니 이제 다시는 집으로 돌아갈 일이 없었다.

다음날.

신이한은 언니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언니 손에 신혼집 열쇠를 들려줬다. 신난 언니가 가족들을 데리고 구경하러 갔고 나도 묵묵히 아빠, 엄마와 신이한을 뒤따라갔다.

새집에 도착하자 아빠, 엄마는 피곤한 몸을 소파에서 기대며 내 뒷담화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라희 너무 막 나가는 거 아니야? 어떻게 지금까지 전화 한 통이 없어.”

“내가 너무 헛살았어요. 어떻게 내 배에서 이런 딸이 나왔지...”

엄마가 핸드폰을 확인했다. 통화 기록을 뒤져봐도 발신 기록밖에 없었다.

“라희가 매정한 거지. 거둔 은혜도 모르는 년. 앞으로 영원히 돌아오지 말라지.”

아빠가 엄마의 손을 꼭 잡아줬다.

나는 가까운 거리에서 그들의 표정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 표정은 증오로 가득했고 걱정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었다.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결론은 변하지 않았다.

아빠가 미간을 주물렀다. 내 얘기만 들어도 기분이 나쁜 것 같았다.

엄마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가 사라진 지도 꽤 되었는데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 아닌지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엄마, 내가 도대체 얼마나 못났으면 나를 이 정도로 미워하는 거예요?”

나는 엄마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가는 차에서 이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엄마, 이렇게 늦게 찾아왔다는 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거겠죠?”

엄마는 머리를 창문에 기댄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두 사람은 자리를 하나 사이에 두고 양쪽에 앉아 있었다.

외할머니는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다고 말했지만 나는 외할머니가 거짓말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죽고 나서야 엄마는 그냥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거라는 걸 깨달았다.

화가 치밀어올라 그 자리를 떠나고 싶었지만 신비한 힘에 이끌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엄마, 내가 다시 전화해 볼 테니까 급해하지 마요.”

임준수가 핸드폰을 눌렀다.

뚜. 뚜. 뚜.

연결음 세 번 만에 드디어 전화를 받았다.

“라희야, 너 너무 막 나가는 거 아니야? 양심이라는 게 있으면 전화를 받아야 할 거 아니야.”

“일부러 우리 엿먹이려고 이러는 거지.”

수화기 너머에 잠깐 침묵이 흐르더니 갈라진 목소리가 들렸다.

“죽었어요. 살려달라더니 죽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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