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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엄마가 죄책감을 느꼈는지 며칠은 잘해줬다. 하지만 고작 그 며칠이었다.

저녁이 되어서야 약혼식은 원만하게 막을 내렸다. 오늘이 나의 생일이라는 걸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손님들을 보내고 나니 아버지의 표정도 따라서 굳어졌고 임준수더러 내게 전화해 보라고 했다.

꺼져있던 전화가 켜지긴 했지만 여전히 받는 사람은 없었다.

언니가 폭주하려는 오빠를 말리며 말했다.

“오빠, 됐어. 라희는 내가 보기 싫겠지. 괜찮아.”

언니는 늘 그렇듯 사려가 깊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런 언니의 모습에 아빠가 마음 아파했다.

“안 오는 것도 좋지. 외할머니도 죽게 만든 년인데 오면 재수 없어질 수도 있어.”

“태어날 때부터 골칫덩어리였어.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졸라 죽이는 건데.”

이 말에 둥둥 떠 있던 내 몸이 파르르 떨렸다. 아빠는 외할머니를 입에 담을 자격이 없었다.

엄마는 나를 낳을 때 출혈이 너무 커 하마터면 수술대에서 내려오지 못할 뻔했다. 언니는 태어날 때 산소가 부족해 바로 인큐베이터로 옮겨졌지만 나만 얼굴에 윤기가 돌았다.

그러다 아빠의 사업이 안 좋아지기 시작하자 모든 불행을 내 탓으로 돌렸다. 내가 재수 없는 년이라 나쁜 운만 가져온다고 말이다.

아빠는 나를 집에서 내보내려고 했지만 외할머니가 미신을 믿지 말라며 억지로 나를 남겼다.

나는 여덟 살이 되기 전까지 할머니가 온갖 정성을 다해 길러주셨다. 나의 이름도 외할머니가 지어준 것이었는데 영원히 즐겁고 행복해지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내가 7살이 되던 해 엄마가 외할머니를 보러 왔지만 나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나는 왜 나를 보려조차 하지 않는지 묻고 싶어 엄마가 탄 차를 울며 뒤쫓아갔다.

그렇게 악몽도 찾아왔다. 나는 어둡고 허름한 집에 갇혀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그런 나를 발견한 외할머니는 나를 끌어안고 한참 동안 울기만 했다. 엄마에게 전화해 내가 아프니 빨리 돌아오라고 했지만 아무리 타일러도 엄마는 나를 보러 오는 걸 거절했다.

그 뒤로 나는 더는 엄마를 찾을 생각을 하지 않았고 외할머니도 점점 조심스럽게 변해갔다. 굳이 절까지 찾아가 불상을 하나 구해오더니 나를 지켜줄 거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내가 8살이 되던 해 할머니는 나를 다치게 한 사람을 쫓다가 바닥에 쓰러졌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외할머니가 나 때문에 죽고 말았다. 내게 남은 거라고는 외할머니가 남겨준 불상밖에 없었다.

엄마가 데리러 왔을 때 나는 너무 울어서 말을 내뱉지 못할 정도로 목이 쉰 상태였다.

아빠는 어쩔 수 없이 내가 돌아가는 걸 허락했지만 임씨 성을 쓰지 않고 라희라는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고 했다. 호적도 아직 외할머니와 함께였다.

하지만 그 악몽을 꾸게 된 후로 나는 어두운 곳에만 가면 너무 무서웠다.

지금 언니가 나를 가둔 지하실도 마찬가지였다.

임서연은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부모님을 위로하며 효도하는 척은 다 했다. 그런 언니를 달래주기 위해 엄마는 특별히 잔치국수 한 그릇을 끓여줬다.

“우리 딸, 오늘 고생 많았어.”

“잔치 국수까지 먹으면 백 세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거야.”

언니가 애교를 부리며 엄마 품에 안기더니 이번 생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라희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언니는 내 이야기를 꺼내며 입술을 꽉 깨물더니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임준수가 짜증이 났는지 입술을 삐쭉거리며 말했다.

“서연아, 너는 너무 착해서 문제야. 그러니까 이렇게 당하고만 살지.”

그 광경을 보고 있노라니 너무 아이러니했다.

가족들 모두 언니를 편애하고 있었지만 언니는 만족할 줄을 몰랐다.

언니는 내가 존재하는 것조차 증오하는 것 같았다.

사실 엄마도 처음에 나를 이렇게까지 홀대하지는 않았다. 생일이면 내게도 잔치국수를 끓여주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너무 기뻐 폴짝폴짝 뛰었다.

내가 고맙다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엄마가 우리 때문에 고생한 것만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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