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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엄살

목욕 타월을 두르고 욕실에서 걸어 나오는 민도준을 보는 순간 권하윤은 눈앞의 상황이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예전까지만 해도 낯선 환경에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는데 지금 민도준이라는 사람이 본인의 생활에 덜컥 나타나 점점 예전의 삶을 흐트러뜨리고 있는 게 뭔가 미묘했다.

같은 세상에 속하지 않던 사람이 본인의 세상 속에 점차 비집고 들어와 버린 이 상황에 운명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동이 틀 무렵 불조차 켜지 않은 검은 방안에 희미한 빛이 흘러들어 점차 어둠을 감쌌다.

여성용 목욕 타월이라 그런지 민도준에게는 많이 작은 모양이었다. 허리에 대충 두른다고 둘렀지만 그의 허리와 배를 타고 내려가는 근육의 곡선은 그대로 눈앞에 드러났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아직 사라지지 않았던 열기가 권하윤의 몸을 다시 뜨겁게 달궜다.

그녀의 시선을 느낀 민도준은 침대 옆으로 다가가더니 허리를 숙여 빨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을 톡톡 쳤다.

“얼른 씻고 나와, 밥 먹으러 가게.”

남자의 말을 분명히 들었지만 권하윤은 여전히 침대에 엎드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 순간 그녀는 손가락 하나도 까딱이고 싶지 않았다.

“저 배 안 고파요. 졸려요.”

금방 관계를 끝낸 그녀는 나른한 모습 속에 야릇함이 묻어 있었다. 그걸 본 민도준의 눈빛은 순간 어두워졌다.

그는 이불 속으로 손을 쑥 넣고 이리저리 만져댔다.

“어디 봐봐. 뼈가 녹아 없어지기라도 했어? 왜 이렇게 맥을 못 춰? 아니면 게을러진 건가?”

“뭐 하는 거예요? 방금…… 했잖아요.”

몸을 움직이며 피하는 권하윤의 모습에 민도준은 눈썹을 치켜떴다.

“애인 하자며? 그러면 애인답게 굴어야지.”

“?”

‘민도준한테서 이득을 볼 수 없다는 걸 진작에 알았어야 했는데!’

손해를 봤다는 생각에 권하윤은 자신을 꽁꽁 싸매며 콧방귀를 뀌었다.

“저 오늘 파업이에요!”

하지만 민도준은 이불을 사이에 두고 권하윤의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됐어, 그만하고 일어나.”

“민도준 씨, 귀가 안 좋아요? 저 배고프지 않다고요, 졸리다고요. 밥 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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