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 타월을 두르고 욕실에서 걸어 나오는 민도준을 보는 순간 권하윤은 눈앞의 상황이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예전까지만 해도 낯선 환경에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는데 지금 민도준이라는 사람이 본인의 생활에 덜컥 나타나 점점 예전의 삶을 흐트러뜨리고 있는 게 뭔가 미묘했다.같은 세상에 속하지 않던 사람이 본인의 세상 속에 점차 비집고 들어와 버린 이 상황에 운명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동이 틀 무렵 불조차 켜지 않은 검은 방안에 희미한 빛이 흘러들어 점차 어둠을 감쌌다.여성용 목욕 타월이라 그런지 민도준에게는 많이 작은 모양이었다. 허리에 대충 두른다고 둘렀지만 그의 허리와 배를 타고 내려가는 근육의 곡선은 그대로 눈앞에 드러났다.그 모습을 보는 순간 아직 사라지지 않았던 열기가 권하윤의 몸을 다시 뜨겁게 달궜다.그녀의 시선을 느낀 민도준은 침대 옆으로 다가가더니 허리를 숙여 빨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을 톡톡 쳤다.“얼른 씻고 나와, 밥 먹으러 가게.”남자의 말을 분명히 들었지만 권하윤은 여전히 침대에 엎드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 순간 그녀는 손가락 하나도 까딱이고 싶지 않았다.“저 배 안 고파요. 졸려요.”금방 관계를 끝낸 그녀는 나른한 모습 속에 야릇함이 묻어 있었다. 그걸 본 민도준의 눈빛은 순간 어두워졌다.그는 이불 속으로 손을 쑥 넣고 이리저리 만져댔다.“어디 봐봐. 뼈가 녹아 없어지기라도 했어? 왜 이렇게 맥을 못 춰? 아니면 게을러진 건가?”“뭐 하는 거예요? 방금…… 했잖아요.”몸을 움직이며 피하는 권하윤의 모습에 민도준은 눈썹을 치켜떴다.“애인 하자며? 그러면 애인답게 굴어야지.”“?”‘민도준한테서 이득을 볼 수 없다는 걸 진작에 알았어야 했는데!’손해를 봤다는 생각에 권하윤은 자신을 꽁꽁 싸매며 콧방귀를 뀌었다.“저 오늘 파업이에요!”하지만 민도준은 이불을 사이에 두고 권하윤의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됐어, 그만하고 일어나.”“민도준 씨, 귀가 안 좋아요? 저 배고프지 않다고요, 졸리다고요. 밥 드
“돈은 이미 준비했어. 이 카드에 있어.”200억이 들어있는 은행 카드가 강민정의 손에 전해지는 순간 그녀는 약간의 감동을 받았다.민승현이 아무리 민씨 집안 다섯째라고 해도 실권이 없었기에 이 돈은 아마 그의 모든 재산을 긁어모은 것일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오빠, 정말 고마워. 오빠가 없었으면 나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 거야.”자기를 숭배의 눈길로 바라봐 주는 강민정의 모습에 민승현은 오후 내내 달아다닌 게 헛수고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강민정의 생각대로 그는 돈이 부족하지는 않지만 매일 집에서 용돈을 받아쓰기에 수중에 큰돈은 없었다.게다가 이 일은 다른 사람에게 쉽게 말하기도 어려운 일인지라 민승훈은 본인이 갖고 있던 물건을 팔고 친구한테 돈을 빌려 가며 겨우 돈을 마련했다.그것도 모자라 돈 때문에 권하윤에게 모욕까지 당했다.‘내 환심을 사기 위해 내 앞에서 옷까지 벗어던지고 유혹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내 손길마저 피하는 것도 모자라 발로 차버리기까지 해? 빌어먹을 년…….’“오빠?”한참 동안이나 떠들어댔는데 민승현이 넋이 나간 모습으로 서있자 강민정은 겁에 질린 듯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오빠, 왜 그래? 화났어?”강민정의 말에 정신을 차린 민승현은 곧바로 그녀를 달랬다.“왜 이렇게 불쌍한 표정을 짓는 거야? 내가 너한테 화낼 리가 있어? 넌 너무 단순해서 탈이야. 어떻게 그렇게 쉽게 남을 믿어? 앞으로 조심해, 알겠지?”“응, 오빠 말이 맞아. 앞으로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며 오빠만 내조할게.”“그래야지, 여자가 무슨 투자야? 집에서 얌전히 있는 게 잘하는 거야. 권하윤처럼 여성미 없게 굴지 마.”민승현이 방금 전 권하윤에게 달려들다가 된통 거절당한 것 때문에 화나있다는 걸 알리 없는 강민정은 그가 단순히 권하윤을 미워한다는 생각에 더욱 애교 부렸다.“내가 새언니도 아니고 오빠랑 싸울 리가 없지. 오빠랑 같이 있는 일분일초가 소중한데 어떻게 오빠한테 화를 내?”“역시 오빠 마음에 들게 행동하는 건 너밖에 없어
‘저 상자…… 한매도를 넣던 그 상자잖아!’길 건너편 사람이 차에 오르려고 하자 강민정은 이미지고 뭐고 생각할 새도 없이 소리 지르며 달려갔다.“잠깐만요! 잠깐만요! 가지 마세요!”상대는 강민정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차에 올라탔고 어느새 뒤쫓아온 강민정은 다급하게 차 문을 두드렸다.“문 열어요!”차에 앉은 털보남은 그제야 강민정을 발견했는지 차창을 내리더니 귀찮은 어조로 투덜거렸다.“뭐예요?”하지만 강민정은 상대의 태도도 무시한 채 조수석에 놓인 상자를 가리켰다.“이 안에 있는 거 르테시떼에서 구입한 한매도 맞죠?”“누구시죠?”갑자기 경계하는 상대의 표정에 강민정은 본인의 생각이 맞다고 확신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이 그림 저도 엄청 좋아해서 사려고 했던 건데 저한테 팔 수 있어요?”상대는 강민정을 위아래로 훑었다.“얼마 줄 건데요?”“200억이죠. 원래 이 가격이었잖아요.”“본전에 넘겨 달라? 그럼 굳이 그쪽한테 팔 이유 없죠.”말을 마친 남자는 운전대를 다시 잡았고 그 모습을 본 강민정은 다급하게 상대를 막았다.“그러면 얼마 원해요?”“적어도 40억은 더 줘야죠.”“40억이요? 그쪽도 이 그림 200억에 샀는데 왜 제가 그쪽한테 40억이나 더 줘야 하는데요?”“이봐요 아가씨. 이 바닥 룰 좀 지킵시다. 물건이 손을 떠나면 이전 사람과는 상관없죠. 전에 사람이 얼마 불렀는지가 뭐가 중요해요? 지금 그림은 제 것이니 제가 얼마에 팔고 싶으면 얼마에 파는 거죠.”“아니!”털보남은 다시 한번 강민정을 훑어봤다.“그쪽이 여자이기도 하고 진심으로 이 그림을 갖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 20억만 더 받을게요. 싫으면 말고.”“20억…….”강민정은 차 옆에서 지갑을 만지작거리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그 시각, 르네시떼.권하윤은 망원경으로 마침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때 아침을 다 먹은 최수인이 입을 닦으며 말했다.“아유, 그만 봐요. 털보가 사람 속이는 것 하난 기가 막혀요. 그러니 걱정 마요. 저 여자
돈을 받은 권하윤은 곧바로 문태훈과 약속을 잡았다.“돈은 계좌로 보냈어요.”그 말에 문태훈은 곧바로 핸드폰을 확인했다. 하지만 계좌에 182억만 들어왔다는 걸 확인한 순간 불만스럽게 입을 열었다.“왜 이것밖에 안 돼요? 나머지는요?”“지금은 그것밖에 없어요.”권하윤은 일부러 이렇게 말했다.만약 그녀가 200억을 바로 내놓으면 문태훈은 그녀에게 돈이 더 있는 줄 알고 계속 뜯어내려고 할 게 틀림 없다.그렇다고 또 너무 많이 차이 나면 욕심 많은 문태훈이 절대로 동의할 수 없었다. 때문에 182억은 딱 적당한 금액이었다.역시나 돈을 받은 문태훈은 권하윤에게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서두르지 않아도 돼요. 나머지는 천천히 줘요. 어쨌든 권하윤 씨가 지금 민 사장님이랑 붙어먹었으니 신분을 들키지 않는 이상 좋은 일만 있을 거잖아요. 안 그래요?”문태훈의 말을 들어보니 앞으로도 이 일을 빌미로 그녀에게서 돈을 뜯어내려고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여기서 매듭을 짓지 않은다면 그녀는 영원히 문태훈이 하라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이에 권하윤은 심호흡을 하고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오늘 문태훈 씨를 불러낸 건 저한테 돈이 이것뿐이라는 걸 알려주기 위함이었어요.”그 말에 문태훈의 미소는 얼굴에 굳어버렸다.“무슨 뜻이에요?”“무슨 뜻이긴요. 앞으로 일전 한 푼도 그쪽한테 더 줄 수 없다는 뜻이죠.”권하윤의 말에 잠시 멍해있던 문태훈은 곧바로 냉소를 지었다.“뭔가 잊었나 본데, 권하윤 씨 진짜 권씨 집안 넷째 아가씨가 아니잖아요, 게다가…….”“문태훈 씨도 잊었나 보죠?”권하윤은 문태훈의 말을 가로챘다.“애초에 저 해원에서 빼돌려 준 거 문태훈 씨잖아요. 만약 문태훈 씨가 제 신분 공씨 가문 가주한테 알려주면 문태훈 씨 본인도 좋은 꼴 못 볼 거예요.”“그게 무슨 헛소리예요! 권하윤 씨가 해원에서 도망친 게 저랑 무슨 상관인데요?”“상관없나요?”권하윤은 테이블 위에 사진 몇 장을 올려놨다.“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제가 그 돈을 문태
‘설마 그림이 가짜라는 걸 알아차렸나?’‘아닐 거야. 최수인 씨도 그 털보가 이 바닥에서는 알아줄 정도라고 했잖아. 게다가 구별하기도 힘들 테고. 아무리 발견한다 해도 이렇게 빨리 발견하지는 않았을 거야.’‘아닌가? 강민정이 사람을 찾아 감별해 봤나?’짧은 시간 동안 별의별 생각을 다 하던 권하윤은 그나마 담담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너 어디야!”귀에 거슬리는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자 권하윤은 핸드폰을 귀에 멀리 가져갔다.“무슨 일로 전화했는지나 말해.”권하윤에게 사과할 기회를 주기 위해 전화를 한 거였는데 상대의 냉담한 태도에 민승현은 울컥해서 버럭 화를 냈다.“누군 뭐 너한테 전화하고 싶어서 한 줄 알아? 셋째 누나가 돌아왔어. 할아버지가 본가에 모이라니까 너도 빨리 와!”민씨 집안 셋째 민시영에 관한 얘기는 권하윤도 들은 적이 있었다. 모든 사람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자란 부잣집 아가씨.민씨 집안 어르신부터 숙부, 숙모, 언니, 동생 할 것 없이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그렇게 사랑을 받고자란 민씨 가문 아가씨라면 도도하고 싸가지 없을 수도 있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잘해주는 그녀의 성격 때문에 메이드들조차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는 소문도 자자하다.게다가 민시영은 민씨 가문에서 민도준과 가까이 지내는 유일한 가족이다.-민씨 저택권하윤이 저택 본관 거실에 도착했을 때 안에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얌전한 규수의 웃음소리가 아니라 가족들과 화목하게 앉아 있을 때 나오는 거침없는 웃음소리였다.그 소리를 듣고 있으니 권하윤마저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권하윤이 도착했을 때 거실에는 이미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었다. 그리고 그중 맨 가운데 자리에 민시영이 앉아있었다.권하윤이 도착한 것을 보자 붉은색 드레스를 입은 민시영이 몸을 일으키더니 그녀를 안았다.“승현의 약혼녀 권하윤 씨 맞죠? 드디어 만났네요. 전에는 제가 해외에 있는 바람에 두 사람 약혼식 축하주도 못 마셔
민시영은 정면으로 민도준을 향해 달려갔지만 그녀를 보기 바쁘게 바로 몸을 피하는 민도준 때문에 허공을 안았다.열정적으로 달려갔는데 무시를 당하자 민시영은 손으로 허리를 잡으며 소리쳤다.“오빠! 또 이럴래?”“내가 어쨌는데?”민도준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왜 나 반겨주지 않아?”“더워.”귀찮은 듯 짤막하게 대답한 그가 긴 다리를 내디디며 앞으로 가는 바람에 혼자 덩그러니 남게 된 민시영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하지만 그녀가 뭔가 말하려고 하던 그때, 민도준 뒤에서 따라 들어오던 민지훈이 그녀의 어깨를 안으며 안으로 끌고 갔다.“자자, 누나, 내가 환영해.”“저리 비켜!”그 시각, 민도준이 점점 자기한테로 다가오자 권하윤의 머리는 몇 초간 동작을 멈췄다.특히 민도준이 그녀를 희롱하는 듯 입꼬리를 씩 올리며 “제수씨”라는 호칭을 부를 때는 그대로 넋이 나갔다.‘여기 사람이 이렇게 많이 모여 있는데 설마 엉뚱한 말은 하지 않겠지?’권하윤은 걱정되는 마음에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민도준에게 눈빛을 보냈다.하지만 민도준은 그녀의 표정을 본 체 만 체 하더니 상대가 놀라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자 그제야 여상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좀 비켜주지?”권하윤은 그제야 자기가 길을 막고 있다는 걸 발견했고 적잖이 당황했는지 고개를 떨구며 비켜났다.“죄송해요.”민도준이 나타나자 편안하던 분위기는 어느새 사라졌다.차를 마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개를 숙인 채 핸드폰만 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찻잔은 이내 바닥을 보였고 방안에서는 오직 민시영과 민도준의 목소리만 가끔씩 울려 퍼졌다. 하지만 특이한 점이 있다면 민시영이 7,8 마디를 하면 민도준은 그저 한 마디 대답 정도 하는 게 다였다.다행히 민지훈이 아예 대놓고 전화를 받고 있었던 덕에 분위기는 너무 어색하지 않았다.그런 분위기가 한참 동안 이어졌을 때 민지훈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그 동작에 사람들은 핸드폰을
“아!”놀란 듯한 비명소리가 원혜정의 입에서 흘러나왔다.그녀는 비틀거리며 민재혁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그의 다리에 꽂힌 칼과 점점 흘러나오는 피를 보는 순간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미, 미쳤어요?”부들거리며 소리치는 원혜정의 말은 가볍게 무시한 채 민도준은 민재혁의 창백한 얼굴을 감상했다.“돌려주는 거야.”예전에 본가에서 벌어졌던 암살을 말하는 것임을 눈치챈 원혜정은 순간 찔렸지만 변명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 하지만 민재혁이 그녀를 향해 미세하게 고개를 저었다.“아 참.”자리에서 몇 걸음 뗀 민도준이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최근에 형이 보낸 그 계집애 꽤 재밌더라. 뼈도 어찌나 단단하던지.”이러한 상황에서도 민재혁은 여전히 흔들림 없는 태도로 낮게 한숨을 쉬더니 마치 말 안 듣는 동생을 대하는 듯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도준아, 너 또 뭘 오해했나 보네.”민도준은 그의 설명을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그런데 뼈가 아무리 단단하다 해도 쇠보다는 못하더라.”주먹을 꽉 쥔 손이 올라가더니 망치로 내리치는 듯한 행동이 이어졌다.“쾅 하고 때리니 바로 부서지던데.”민재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민도훈을 바라봤다.“그런데 형은 별로 신경 안 쓰지? 형이 기르던 개가 죽은 게 한두 번도 아니고, 이제 아무렇지도 않지?”“도준아, 더 이상 죄짓지 마.”민도준은 그 말에 멈칫하더니 마치 우스갯소리라도 들은 듯 크게 웃었다.그리고 마치 눈물을 훔치는 듯 눈가를 닦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아주 보살님 납셨네. 형이 진짜 보살이 되어 나 교화시키길 바랄게.”미친 듯한 웃음소리는 그의 뒷모습과 함께 남쪽 별채에서 사라지자 정원에는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그 시각.“솨-”권하윤은 싱크대에서 찾주전자를 씻고 있었다.옷소매를 걷어올려 새하얀 팔이 훤히 드러났고 그 위로 물방울이 맺혔다가 흘러내리기를 반복했다.그러던 그때 뒤에서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허리를 감싸앉았다.“아!”손에 있던 찻주전자가 손에서 빠져나와 바닥에서 산산조각 나
권하윤과 한참 동안 입을 맞추고도 만족이 되지 않았는지 권하윤 허리에 감고 있던 손은 점차 위로 올라갔다.물기 있는 손이 권하윤의 몸을 타고 올라가며 긴 물 자국을 냈지만 권하윤은 소리를 내지 못하고 그저 몸을 버둥댈 뿐이었다.‘여기서 키스하는 것도 이미 간 떨어지는데 더 하려고 한다고?’순간 드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한 권하윤은 남자를 밀어낼 수 없자 아예 그의 입술을 깨물었다.“습!”그제야 권하윤을 놓아준 민도준의 눈에는 순간 검은 소용돌이가 몰아쳤다.“내가 너무 오냐오냐해줬나 보네? 이제는 사람을 물기까지 해?”“저 정말 차 끓여야 해요. 이렇게 오래 나왔는데 돌아가지 않으면 사람들이 의심할 거예요.”“그래서 뭐?”잔뜩 긴장해서 겨우 말을 내뱉은 권하윤과 다르게 민도준의 말투는 대수롭지 않아 보였다.그 말에 권하윤은 말문이 턱 막혔다.민도준은 뭘 하든 손해 보지 않을 테지만 이 일이 만약 발각되기라도 하면 그녀는 매장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하지만 이 순간 그녀는 감히 화를 낼 수 없었다.민도준이 어디에서 묻혀왔는지 모를 피를 덕지덕지 묻혀온 것도 있지만 지금 그의 상태는 그녀가 보기에도 많이 이상해 보였기 때문이었다.겉보기에는 평온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속에는 마치 당장 사람을 공격하려는 듯한 맹수가 숨어 있는 듯 위험해 보였다.이 순간 그의 화를 돋울 수 없기에 권하윤은 할 수 없이 낮고 간질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들키기라도 하면 저 곧바로 민씨 집안에서 쫓겨날 거예요. 잘못하다간 할아버님께서 민씨 가문 명예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저 죽일 수도 있다고요.”권하윤은 고개를 쳐들며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제가 죽는 건 괜찮은데 그러면 앞으로 민 사장님 보지 못하잖아요. 앞으로 더 같이 있고 싶은데. 혹시 민 사장님은 제가 죽어도 괜찮아요?”민도준은 자기 품에 안긴 권하윤이 살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 걸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마치 태생이 남자 마음을 훔치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어찌나 입에 발린 말만 골라 하는지 감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