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병상에서 미동도 없는 남자를 보자 시윤은 이내 풀이 죽었다.“하, 됐어요. 도망 안 칠게요. 아들인데 도준 씨를 닮았으면 나 혼자 절대 감당 못 해요. 나만 괴로울 순 없지.”한참 동안 말하던 그때, 얼굴에 느껴지는 한기에 손을 대보니 저도 모르는 새에 이미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도준을 빤히 응시하던 시윤은 끝내 참지 못하고 도준의 몸 위에 고개를 파묻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제발 일어나요. 깨어나면 가짜 피임약 먹은 것도 탓하지 않을게요. 네? 어떻게 저 혼자 둘 수 있어요? 우리 아이 태어나자마자 아빠 없는 애 만들 거예요? 그러니 제발 일어나요.”너무 흐느끼다 못해 시윤은 숨이 가빴다.“천하의 민 사장님 아니었어요? 못하는 게 없었잖아요. 그런데 왜 이렇게 됐어요.”도준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이 ‘지금껏 한 번도 사랑한 적 없다’는 말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질 것만 같았다.결국 시윤은 눈을 꾹 감으며 고통스러운 어조로 중얼거렸다.“다 나 때문이야...”만약 그녀라는 약점만 없었으면, 도준은 이런 함정에 절대 빠질 리 없다.그런데 지금껏 항상 도준이 저에 대한 사랑을 의심만 해왔으니.너무 총명한 사람이라 누구를 사랑하는 것도 절대 이성을 유지할 것이라고 믿어왔기에, 시윤은 항상 도준을 의심해 왔다. 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게 맞는지, 또 일종의 목적으로 사랑하는 척하는 건 아닌지.그러다 그날, 하늘을 찌르는 불길 속의 그를 본 순간, 시윤은 도준이 저를 생각보다 더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그러다 갑자기 고개를 들어 멍하니 도준을 바라봤다.“그날 그게 꿈이 아니었어...”시윤이 술에 취한 그날 들었던 도준의 고백은 모두 진짜였다.하지만 하필 그걸 이제야 알아차리다니.시윤은 도준의 손을 들어 올렸다. 의료 기기를 연결한 탓에 도준의 손은 기억 속에서처럼 뜨거운 열기를 띠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얼음장처럼 차갑기만 했다.시윤은 도준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문질렀다.“도준 씨가 이렇게
잠시 뒤, 시윤은 도준의 주치의를 만났다.예순이 다 돼 가는 노정숙은 인자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환자분 가족 되시죠? 임신했다고 들었는데, 축하해요.”“감사합니다.”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선생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전에 도준 씨가 뇌사 판정 받을 수 있다고 한 게 무슨 뜻이죠?”“현재 상태로 봤을 때 민도준 환자분의 대뇌는 정상적인 활력징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일반적으로 식물인간이라고 하죠.” “보통 식물인간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하는 건데, 민도준 환자분 같은 경우는 좀 특이합니다. 대량의 유독가스를 들이마신 탓에 체내에 아직 독소의 일부분이 남아 대뇌가 계속 무의식 상태거든요. 독소는 점차 대뇌와 신장에 퍼지면서 결국엔 뇌사를 초래할 수 있어요.”시윤은 들으면 들을수록 믿을 수 없었다.“그럼 열흘이라고 했던가요?”“네, 저희가 민도준 환자분의 상태로 유추한 기한입니다. 만약 열흘 뒤에도 의식이 없다면, 뇌사 판정을 내려야 할 거고, 뇌사 상태로 24시간이 지나면 사망 선고를 할 수 있습니다.”그렇다는 건, 더 이상 깨어날 거라는 희망도 가질 수 없다는 뜻이었다.지금은 그나마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져 체온을 느낄 수 있고 말도 할 수 있는데, 만약 도준이 정말 죽어 얼음장 같은 시체가 된다면...시윤은 생각할수록 눈앞이 아찔했다.의사로서 수많은 생이별을 본 노정숙은 그저 너무 슬퍼 말라는 위로의 말을 건넬 수밖에 없었다.“아니요, 그럴 순 없어요.”시윤은 갑자기 흥분한 듯 노정숙의 팔을 잡았다.“선생님, 뇌사를 막을 방법은 없어요? 제가 뭘 하면 될까요?”노정숙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지금 환자분의 진단 결과는 외부에 아무 반응도 없는 거로 나오지만 가끔 의학적으로도 설명하지 못하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어요. 죽어가던 사람이 자식의 목소리에 다시 살아나거나, 심장이 멎은 지 십몇 분이 지난 할머니가 손자의 목소리에 다시 심장이 뛰는 경우도 있으니까요.”“만약 포기하고 싶지
다음날, 시윤은 과거가 아닌 미래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도준 씨, 사실 도준 씨가 아이 낳자고 했을 때 엄청 싫었거든요. 처음에는 비밀이 알려질까 봐 무서웠고, 그다음엔 공은채의 일이 해결되지 않아서, 그리고 나중엔... 아빠의 죽음 때문에...”“분명 공은채의 계획을 알았으면서 우리 가족이 희생양이 되는 걸 지켜보고, 마지막엔 아빠를 뛰어내리게 만들었잖아요.”“그때 저 정말 도준 씨 많이 미워했어요. 그런데 피어섬에서 벌어지는 잔인한 상황을 목격하고 나니 도준 씨를 미워할 수가 없었어요. 내가 그런 상황을 겪었다면 아마 도준 씨보다 더 잔인하게 변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미워하지 않는다고 쉽게 용서가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아빠 때문에.”여기까지 말한 시윤은 한참 동안 눈물을 글썽거렸다.“그런데 엄마가 뭐라는 줄 알아요? 도준 씨가 목숨을 바쳐 저를 구했으니 아빠의 목숨을 갚은 거나 마찬가지래요. 그래서 없던 일로 하자고.”“도준 씨, 용서할게요. 그러니 도준 씨도 저 용서해 주면 안 돼요? 일어나 봐요, 우리 다시 시작해요. 이제 도준 씨 애도 낳고 싶어요. 몇 명을 낳든 상관없어요.”“도준 씨는 아들이 좋아요? 딸이 좋아요? 도준 씨, 제발 말 좀 해봐요. 제발 대답해 줘요, 네?”“...”그 시각, 시윤이 도준의 몸에 엎드려 통곡하는 걸 본 승우는 눈빛이 점점 복잡해졌다.지난 이틀동안 시윤은 항상 이랬다. 무덤덤하다가도 뭔가를 그리워하고, 갑자기 무너졌다가 다시 냉정을 되찾기를 반복했으니.그리고 승우 역시 편지를 꺼내 들었다가 다시 밀어 넣기를 수없이 반복했다.도준이 뇌사 판정을 받을 수 있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승우는 시윤에게 아무런 후회도 남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시윤이 편지를 보면 또다시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두려웠다.시윤이 꼬박 이틀동안 괴로워하고 있는 사이, 승우 역시 온갖 생각으로 괴로워했다.그리고 이 순간 역시, 시윤이 몸을 떨면서 우는 걸 보자 승우는 꺼냈던 편지를 도로 집어
종이 위의 글씨체를 본 시윤은 일순 멍해졌다.“아빠? 아빠 편지잖아?”승우는 시윤에게 편지를 들키는 상상을 수도 없이 해왔지만 그게 하필 이런 혼란 속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비밀이 곧 들킨다는 공포가 덮쳐와 승우는 얼굴이 하얗게 지린 채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대로 굳어버려 빼앗아 와야 한다는 것조차 잊어버렸다.민혁은 안에 든 편지를 본 순간 상대를 오해했다는 머쓱함에 헛웃음을 지었다.“하하, 정말 편지었네. 그러게 진작 말하지 그랬어요.”하지만 민혁이 이내 놓아주었음에도 승우는 그 자리에 굳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윤아, 내 말 들어 봐...”그 순간 불안한 예감이 닥친 시윤은 눈살을 구겼다.“아빠가 엄마한테 주는 편지가 왜 오빠한테 있어?”“그게 그러니까...”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걸 인지한 승우는 눈을 질끈 감으며 씁쓸함을 삼켰다.“이건 아버지가 뛰어내린 날 집에 두고 갔던 편지야. 내가 그동안 숨겼어.”“왜?”아버지가 뛰어내린 것과 관련이 있다는 말에 시윤은 고민도 없이 편지를 확인했다.하지만 몇 줄을 읽고 나서 숨이 턱 막혀왔다.[사랑하는 여보.]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을 이렇게 편지로 전하네. 요 며칠 나에 관한 뉴스 많이 봤을 거야. 당신이 그 말 다 믿지 않을 거라는 거 알아. 내 명예를 회복하려고 애타하는 것도 알아.그런데 정말 부끄럽지만 나 정말 그런 쓰레기 같은 인간이야. 술에 취해 내 제자인 공은채한테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어. 나도 알아, 술은 그저 내가 지은 죄에 대한 핑계에 불과하다는 거. 이런 걸 핑계라고 대는 게 얼마나 비겁한 행동인지도. 나 변명하려는 거 아니야. 그저 당신이 사실을 알았으면 해서 그래.당신한테 모두 털어놓은 뒤 자수하고 교수 자리에서도 물러나려고 했어. 그런데 공은채가 아직 어려서 나한테 품지 말아야 하는 마음을 품은 것 같아. 제 목숨으로 우리 혼인에 끼어들려고 해. 어린 생명이 내 잘못 때문에 꺼져가는 걸 볼 수 없어서 설득하려고도 하고 포기하
만약 본인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미리 알았다면 승우는 절대 그 편지를 숨기지 않았을 거다.승우는 편지에 적힌 시간보다 1시간 일찍 GH빌딩에 도착했다. 그날 옥상에서 본 이성호는 원래보다 열 살은 늙어 있었다.이제 막 공은채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데다, 도준이 보복할 거라는 생각에 큰 공포와 불안에 휩싸인 탓이었다.하지만 기척을 들은 순간 그의 눈은 반짝 빛났었다. “네 엄마는? 혹시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어?”승우는 아버지에게 본인이 시윤에게 느끼는 감정을 영원히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옆에만 있을 거라고 말하고 싶었다.하지만 그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아버지 앞에서 친동생을 좋아한다는 말을 도저히 내뱉을 수 없었다. 천륜을 배반하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니까.때문에 이성호의 물음에 승우는 그저 고개를 저었다.“안 왔어요.”그 순간 이성호의 눈에 있던 마지막 희망이 사라졌다....얘기를 이어나가는 승우의 눈에는 고통과 회한이 가득했다.“그 한마디 때문에 아버지가 살아갈 희망을 잃어버릴 줄 알았다면 절대 그 말을 하지 않았을 거야.”시윤은 더 이상 들을 수 없어 고개를 마구 저으며 뒷걸음쳤다.“그러니까 아빠는 도준 씨 때문에 돌아가신 게 아니라 가족에게 용서받지 못했다고 생각해서, 우리가 아빠를 버렸다고 생각해서 속죄하려고 했던 거야?”“왜...”시윤은 고개를 번쩍 들어 승우를 바라봤다.“왜 그랬어? 왜 편지를 숨겼어?”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승우는 시윤을 보며 갈라진 목소리로 겨우 말했다.“내가 너 좋아하니까. 우리가 친남매인 줄 알고 그 마음이 드러날까 봐 두려웠어. 미안해, 윤아...”승우는 점점 무너져가는 시윤의 머리를 만지려 했지만, 시윤이 차갑게 뿌리쳐 버렸다.심지어 낯선 사람을 보는 듯 차가운 눈빛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오빠는 이제부터 내 오빠 아니야. 나한테 아빠를 해친 오빠는 없어!”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등 뒤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병상에서 산소호흡기를 하고 있는 어머니를 보자 시윤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윤아...”승우는 그런 시윤을 위로 하고 시었지만, 손이 닿으려는 순간 시윤은 그의 손을 뿌리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뛰쳐나갔다.그 길로 비틀거리며 도준의 병실에 도착한 시윤은 그의 가슴에 고개를 파묻고 엉엉 울어댔다.“아빠를 죽게 만든 게 도준 씨가 아니었어요. 오빠였어요.”“도준 씨, 도준 씨는 우리 아빠 죽게 만든 적 없어요. 목숨으로 갚을 필요도 없어요. 그러니까 빨리 일어나요. 제발 정신 차려 봐요! 더 이상 정신 차리지 못하면 영영 깨어나지 못한대요.”“엄마도 쓰러졌어요. 상황이 많이 심각하대요.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 우리 가족이 본인을 용서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나 봐요, 본인을 미워한다고 생각해서...”“아빠가 얼마나 좋은 분이셨는데, 왜 하필 그런 일이 아빠한테 일어났을까요?”시윤은 전보다 몇 배는 더 세게 울어댔다. 이제 그녀의 세상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그동안 살아왔던 삶이 모두 거짓말 같아서 그 껍질을 벗기고 벗기며 진실을 찾으려 한 것뿐인데, 결국 저를 보호하던 껍질까지 벗겨내 마음에 비수가 꽂혔고.공은채의 가식적인 사랑.주림의 가식적인 의리.모든 걸 알면서 외면했던 도준...이와 같은 진실을 하나 하나 알아가면서 이제야 모든 걸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하필 피맺힌 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아버지가 후회 속에서 세상을 등지게 만든 장본인이 하필이면 지금껏 믿고 따르고 영원히 저를 배신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오빠라니. 그것도 저에게 기형적인 감정을 품었다는 이유로.심지어 이제 더 이상 잃을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하늘은 하필 가장 중요한 걸 뻬앗아가버렸다.오빠와 엄마뿐만 아니라 아직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도준까지...만약 도준이 내일까지 깨어나지 않으면 시윤은 영영 사랑하는 사람이자 제 아이의 아빠를 잃게 된다.너무 큰 고통에 몸을 한껏 움츠린 시윤은 더 이상 울음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그저 침대에 몸
상황을 살피러 달려온 노정숙은 여러 가지 검사를 마친 뒤 도준을 힐끗 바라보더니 싱긋 웃었다.“환자분 의지가 대단하네요. 정말 의식을 회복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이제 막 샤워를 마친 터라 도준은 머리가 젖어 있었다. 그는 뻐근한 팔을 돌리더니 아직도 멍하니 앉아 있는 시윤을 바라봤다.“누가 하도 같이 죽네 마네 난리를 피워대서 시름을 놓을 수가 있어야죠.”그 말에 노정숙은 고개를 끄덕이며 상냥하게 웃었다.“가족분도 이제 한시름 놨겠네요.”의사가 떠나자 시윤은 그제야 도준이 깨어났다는 걸 실감했다.도준이 침대에 앉아 아직도 문 앞에 서 있는 시윤을 보며 눈썹을 치켜 올렸다.“왜 그래? 나 모르겠어?”시윤은 눈시울이 시큰거려 곧장 도준의 품으로 달려가려 했다.그때, 웬 그림자 하나가 시윤보다 한발 먼저 도준에게 쌩하고 달려갔다.“흑흑, 도준 형. 놀랐잖아. 형이 죽은 줄 알고 내가 얼마나 놀랐는 줄 알아?”도준은 민혁이 제 몸에 달라붙기 전에 발로 차버리며 귀찮은 듯 말했다.“울긴 뭘 울어? 내가 죽은 것도 아니고.”“맞아. 도준 형은 100살까지 오래오래 살아야 해.”민혁은 눈물을 쓱쓱 닦으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이윽고 옆에 있는 시윤을 보자 제가 방해꾼이라는 걸 바로 눈치챈 듯 이내 자리를 비켜 주었다.“그럼 둘이서 얘기해, 난 나가볼게.”‘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자 시윤은 침대와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 눈시울을 붉힌 채 도준을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때 도준은 등 뒤로 숨긴 시윤의 손을 잡아끌었다.“왜 그래? 입에 기름칠한 것처럼 쉴 새 없이 말하더니, 내가 깨어니까 또 기분 안 좋아졌어?”“저 도준 씨 애 임신했어요. 도준 씨 곧 아빠 돼요.”한참 대답이 없다가 입을 삐죽거리며 울어버리는 시윤을 보자 도준은 피식 웃었다.“그럼, 내 애 아니면 누구 애겠어?”“진자 나빴어! 날 속여서 임신하게 했으면서 왜 그렇게 오랫동안 깨어나지 않았는데요?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진짜 걱정돼서 죽을
“잠깐만. 나도 금방 옷 갈아입을 테니까 같이 가.”“아니에요, 이제 막 깨어났는데 휴식해요.”“뭐야? 지금 나더러 자기한테 딴맘 품고 있는 오빠 만나러 가는 걸 지켜만 보라는 거야?”도준은 시윤의 머리를 꾹 눌렀다.“얌전히 기다려.”사실 시윤도 도준과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특히 그 폭발 사고를 겪고 나니 시시각각 도준의 곁에 꼭 붙어 있고 싶어 결국 얌전히 침대에 앉아 발을 흔들며 도준을 기다렸다.도준은 채 마르지 않은 머리를 한 채로 대충 옷 하나를 집어 들었다. 곧이어 옷을 들어 올리는 동작에 따라 그의 탄탄한 근육이 여과 없이 눈앞에 드러났다.시윤은 곁에서 그걸 말없이 훔쳐봤다.하지만 도준이 뒤돌아서자, 시윤의 눈에는 점차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도준의 등에 난 상처는 모두 그녀를 보호하다가 생긴 거다.물론 이미 딱지가 앉아 있었지만 여전히 보기만 해도 아찔했다.도준이 옷을 미처 입기도 전에, 시윤은 그를 등 뒤에서 와락 끌어안더니 제 고개를 파묻었다.“도준 씨.”도준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제 허리를 감싸고 있는 시윤의 손목을 문질러댔다.“왜? 갑자기 하고 싶어?”장난기 섞인 도준의 말에, 가슴까지 차올랐던 슬픔이 순간 사라지자 시윤은 불만 섞인 투로 투덜댔다.“좀 진지할 수 없어요?”도준은 이내 뒤돌아서 코끝이 빨개진 시윤을 지그시 응시했다.“그러게 누가 옷 갈아입는 데 갑자기 덮치래? 자기가 먼저 시작했으면서 나더러 진지해지라고?”시윤은 콧방귀를 뀌더니 이내 도준의 등에 난 흉터에 제 손을 갖다 대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많이 아프죠?”도준은 고개를 살짝 돌리며 대답했다.“괜찮아.”시윤을 다시 돌아오게만 할 수 있다면 이깟 상처쯤은 아무것도 아니다.하지만 시윤은 도준처럼 아무렇지 않다는 태도를 취할 수 없어 가슴 아픈 말투로 조심스럽게 물었다.“그곳이 화학 공장인 줄 몰랐어요?”“알았어.”“알면서 왜 걸려들어요?”도준은 시윤의 볼을 한 손으로 감싸며 나지막하게 말했다.“미끼가 마침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