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현은 얼마 전에 생식기를 잃었기에 이렇게 빨리 대중들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분명 그를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볼 테니 그건 치욕을 자초하는 일이나 다름없었다.“나는 아니고, 변요석이에요.”왕실에 대한 조사는 어려웠다. 성연신은 가능한 방법이 있었지만 시간이 부족했다.심지안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더 말하지 않았다.변요석이 왜 그녀에게 잘해주는지 그녀는 지금 분석할 생각이 없었다.과연 진심인지 아니면 그냥 연기에 불과한지 시간이 지나면 진실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연회장에 돌아가기 전에 심지안은 메이크업을 수정했다.특히 립스틱은 번질 대로 번졌다.고청민과 송준은 아직도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심지안이 나타나자 송준은 곧바로 얘기를 멈췄다.고청민은 별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가시 발린 생선을 그녀 앞에 놓으며 물었다.“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요?”“길을 잃었어요.”심지안이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고청민이 잠깐 멈칫하더니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밖에 10미터 떨어진 곳에서 경호원이 지키고 있어요. 일부러 사람 없는 휴식 구역으로 가지 않는 이상 길 잃을 일이 없겠는데요?”심지안은 미간을 구기더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지금 나 의심하는 거예요?”솔직히 그녀는 휴식 구역이 있는지도 몰랐다.어쩐지 정아현이 거기에 있더라니, 안전할 뿐만 아니라 시선을 피하기도 쉬우니 말이다.“아니요, 그냥 물어본 거였어요.”고청민이 덤덤한 목소리로 말하고는 심지안을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했다.“지안 씨, 무슨 일 있었어요? 왜 이렇게 흥분한 거 같죠?”“도둑이 제 발 저리겠죠.”송준이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심지안은 긴장했는지 주먹을 꽉 쥐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콧방귀를 뀌더니 그의 말에 대답했다.“쳇, 내가 오니까 두 사람 얘기를 멈췄던데. 이상한 건 내가 아니라 당신들 아니에요?”송준은 고청민과 눈을 마주쳤다.고청민은 그저 차를 마시며 송준이 대답하기를 기다렸다.송준이 그에게 부탁하
민채린은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고는 임시연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말했다.“그러니까 저 사람이 첫사랑일 뿐이지, 전처는 아니라는 거죠?”전처 얘기에 심지안은 어색한 얼굴로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대답했다.“어떤 여자가 성연신 씨의 마음을 빼앗았는지 궁금해했잖아요. 성연신 씨는 첫사랑과 5년도 넘게 얽혀있었어요, 전처와 얽힌 시간보다도 더 길죠.”“일리가 있네요.”민채린은 별 의심을 하지 않았다.“참, 초대장이 없는데 어떻게 들어왔어요?”“송준 씨가 주던데요?”“송준 씨요?”심지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그 사람이 왜 채린 씨에게 초대장을 줘요?”왕실의 초대장은 구하기 쉬운 게 아니었다. 게다가 두 사람은 한 번 만난 사이였다.민채린이 립스틱을 꺼내서 매혹적인 표정으로 입술에 바르기 시작했다.“나에게 부탁을 청한 사람은 지안 씨만 있는 게 아니에요. 나 엄청 바쁜 사람이거든요?”“그 사람이 무엇을 부탁하던가요? 혹시 병을 봐달라고 하던가요?”“안 알려줄 건데요.”심지안이 한숨을 푹 쉬고는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저랑만 사이가 좋은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과도 사이가 좋으시네요.”“됐어요, 나 그런다고 넘어갈 사람이 아니에요.”민채린이 손가락을 굽히더니 심지안의 뽀얀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그리고 씩 웃더니 매혹적인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지안 씨가 잘생긴 남자였다면 넘어갔을 텐데요.”심지안은 입을 삐죽 내밀고는 더는 물어보지 않았다.어차피 민채린이 얘기를 안 할 것이니 더 물어도 소용없는 짓이었다.그런데 송준이는 민채린을 찾았으면서 왜 고청민도 찾아간 것일까?연회가 거의 끝날 무렵.변요석이 스테이지 위로 올라가서 말했다.“여러분, 방은 이미 준비되었으니 피곤하시면 일찍 돌아가서 쉬셔도 됩니다. 아직 체력이 더 남은 청년들은 저녁 캠프파이어에 참가하셔도 좋고요.”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하인이 성연신에게 다가가며 물었다.“성 대표님, 대표님의 방은 01번입니다. 제가 모셔다드릴까요?”“이따가 갈 테니까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그 하인에게 집중되었다.변요석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왜 그렇게 호들갑이야. 무슨 일이 일어났어?”“방에 사람이 있어요...”하인은 애써 감정을 추슬렀지만 그녀의 얼굴은 새빨개졌다.“정아현 씨와 태현 도련님이 안에 계세요...”“헛소리 그만해! 어딜 감히 손님 방에 들이닥쳐? 당장 나오라고 해!”변요석은 전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 그저 단순히 두 사람이 주제 파악을 못 하고 손님 방에 들어가 호사를 누렸다고 생각했다.하인은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하얗게 질린 얼굴로 우물쭈물 대답했다.“저는 감히 들어가지 못하겠습니다... 어르신께서 직접 들어가 보세요.”사람들이 아직 손님 방에 이르지도 못했는데 멀리서 신음과 함께 남자의 비명이 은은하게 들려왔다.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난 것 같지만 또 그렇지 않은 것 같다.잠자리를 가질 때 이렇게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는 남자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변요석은 하인더러 문을 열게 했다.문이 열린 그 순간, 몰려온 사람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했고 이내 장내에는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사람들은 저마다 놀라움과 경악의 기색이 역력했다.일찌감치 반응한 여인들은 보기 민망한 장면 때문에 다급하게 눈을 가리더니 몸을 돌려 섰다.심지안도 무심코 뒤로 몇 발짝 물러섰지만 부끄러운 것보다 놀란 감정이 앞섰다.머리가 헝클어진 여자가 발가벗은 채로 미친 듯이 다른 한 남자를 쫓아다니고 있었는데 마치 언제든지 사람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귀신과도 같았다.임태현의 옷은 모두 벗겨졌고 온몸에 달랑 속옷 하나 남아 있었다. 여자에게 잔뜩 긁혔는지 붉은 자국이 가득한 그는 필사적으로 방 안을 뛰어다니면서 존재하지도 않은 가랑이 밑을 양손으로 꼭 감쌌다.절로 미간이 찌푸려지는 상황 때문에 분위기는 점점 더 해괴망측해졌다.“뭘 계속 봐요? 안 민망해요?”성연신이 어금니를 깨물고는 심지안의 가는 허리를 몰래 꼬집었다.“뭐가 민망해요?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처녀도 아니고.”심지안은 당연하
“씁...”심지안은 깊은숨을 들이마시더니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정아현이 임시연의 편이 아니었어? 역시 겉과 속이 다른 인간이네.’임시연은 큰 충격을 받은 듯 몸을 휘청거리더니 언제라도 곧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그녀는 다른 걸 고려할 여유도 없이 문을 박차고 도망치듯이 나가버렸다.구경꾼들이 워낙 많았으니 심지안은 갑자기 좋은 방법이 떠올라 슬그머니 팔꿈치로 민채린을 건드렸다.민채린은 바로 그녀의 뜻을 알아채고 임시연이 달려올 때 무심코 발을 내밀었다.워낙 화가 치밀어 올라 민채린의 움직임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임시연은 발이 삐어서 하마터면 걸려 넘어질 뻔했다.민채린이 마침 그녀의 손목을 잡고는 걱정하는 얼굴로 말했다.“어머, 괜찮으시죠? 좀 조심하시지.”임시연은 단 1초도 이곳에 더 머무르고 싶지 않아 민채린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그녀의 손을 뿌리치더니 계속 뛰어나갔다.“맥박 짚었어요? 시간이 너무 짧은 거 아니에요?”심지안이 다급하게 물었다.그녀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두 사람이 부딪힌 시간은 5초도 되지 않았다.민채린은 경멸이 담긴 눈빛으로 심지안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랑 보통 한의사랑 비교하지 마세요. 그리고 이게 뭐 대수라고.”‘문외한들이야 대단하다고 생각하겠지.’“그럼 어때요? 결론이 났어요?”심지안이 목소리를 낮추고는 두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임신했어요? 아니면 안 했어요?”“다른 사람 좀 존중해줘요. 지금 홀딱 벗고 있잖아요, 구경을 마저 해야죠.”민채린은 방 안에 있는 정아현을 보더니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변요석은 안색이 어두워진 채로 옆에 있는 경호원에게 명령했다.“멍하니 서 있기만 해? 당장 안 내보내지 않고 뭐해?”경호원도 이런 일은 처음이라 떡 벌어진 입을 다물고는 대답했다.“네, 알겠습니다.”여인이 임태현을 뒤로 보호하면서 아무도 그를 건들지 못하게 했다.경호원은 달리 방법이 없어 먼저 하인더러 옷을 한 벌 가져와 정아현에게 입히라고 하고는 그녀를 기절시킨 후
민채린이 입꼬리를 씩 올리고는 물었다.“임신한 거면 좋겠어요? 아니면 안 한 거면 좋겠어요?”“했으면 좋겠네요. 임시연 씨와 변석환 씨가 워낙 서로 잘 어울려서요.”무엇보다 임시연이 임신했다고 해도 변요석은 절대 그녀를 왕실에 들이지 않을 것이다.민채린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추측에 영 소질이 없네요.”“임신 안 했어요?”“네.”심지안이 고개를 푹 숙이고는 혼잣말을 했다.“그럼 어떻게 모두를 속인 거죠?”왕실은 전문적인 의료진과 의료기기가 있었다. 그리고 변석환은 분명 임시연을 데리고 왕실에서 검사를 진행했을 것이다.임시연이 짧은 한 달 동안 왕실의 의료진과 결탁할 가능성은 아주 낮았다.민채린이 두 손을 내밀고는 말했다.“그건 나도 모르죠. 하지만 절대 임신한 사람의 맥박은 아니었어요.”게다가 방금 생리를 끝낸 듯했다.“의료진과 결탁했을 가능성은 작지만, 다른 사람과 결탁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죠.”고청민이 배가 부른 어떤 하인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갑자기 말했다.심지안이 그의 시선을 따라 보더니 바로 그의 뜻을 알아챘다.“그럼 다른 사람의 검사 결과로 어물쩍 넘겼다는 말이에요?”“아마도 왕실에서 이미 임신한 다른 사람의 소변으로 검사를 진행한 것 같아요.”왕실의 하인을 설득하면 어렵지 않게 결과를 조작할 수 있으니 말이다.심지안은 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청민 씨 말에 일리가 있네요. 변혜영 씨더러 지금 왕실에서 이미 임신한 하인이 몇 명이 있는지, 그들 중 최근에 임시연과 접촉한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라고 할게요.”고청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임시연 씨를 해결하면 안심하고 나와 결혼할 수 있죠?”심지안이 멈칫했다.애써 그의 말에 맞장구를 치려고 했지만 저도 모르게 가장 진실한 반응을 보였다.“먼저 그 얘기는 하지 말죠.”“왜요?”고청민의 맑고 초롱초롱한 눈은 술을 마셔서 그런지 약간 빨개졌고 불쌍한 느낌을 줬다.“처음부터 나랑 결혼하기 싫었죠?”심지안이 저도 모르게 눈을 피하고는 덤덤한
심지안은 그녀의 말이 사실이었기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그녀는 더는 순수하고 누구에게도 경계심이 없는 바보가 아니었다. 자기가 속느니 차라리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심지안은 정말 이게 그렇게 큰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만약 민채린이 이렇게 신경 쓸 줄 알았다면 그녀는 진작 솔직하게 털어놨을 것이다.민채린은 설명도 하지 않으려는 그녀를 보고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전에 성연신 씨와 어떤 사이였는지는 모르지만 청민이는 내 친구예요. 지금 청민이랑 약혼했으니 절대 청민이에게 미안한 짓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네요. 아니면 내가 당신을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아니...”“됐어요, 난 잘생긴 남자나 보러 가겠어요.”“캠프파이어 보러 갈 거예요? 아니면 집에 갈 거예요?”고청민은 멀어져 가는 민채린의 뒷모습을 보면서 일말의 감정이 담기지 않은 덤덤한 목소리로 물었다.심지안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더니 피곤함이 묻어난 목소리로 대답했다.“캠프파이어 보러 가죠.”임시연이 가짜 임신했단 소식을 아직 변혜영에게 알리지 못했으니 말이다.“캠프파이어를 보러 가려는 거예요? 아니면 성연신을 만나려는 거예요?”“저는 그런 생각이 없어요. 청민 씨도 쓸데없는 생각 그만 해요.”심지안이 깊은숨을 들이마시고는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지안 씨의 행동 때문에 나는 지안 씨를 완전히 믿을 수 없게 되었어요.”고청민은 희고 고운 손가락으로 천천히 심지안의 목을 쓰다듬더니 붉은 자국을 힘껏 문지르기 시작했다. 가냘픈 피부가 순식간에 벗겨져 상처가 났다.“아파요.”심지안의 고운 얼굴이 일그러졌다.“아픈 걸 알면서 왜 내 말을 거슬러요? 지안 씨는 항상 내 말을 귓등으로 듣잖아요.”고청민은 웃고 있었지만 눈가가 빨개져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섬뜩한 기분이 들게 했다.심지안이 그의 손등을 ‘탁’ 쳐내고는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고청민이 눈을 꼭 감고는 침을 몇 번이나 목구멍에 넘기면서
성연신의 덤덤한 말에 고청민은 화가 났는지 그는 혼신을 다해 다시 성연신에게 공격을 퍼부었다.고청민은 태권도 유단자였기 때문에 계속 숨는 건 전혀 승산이 없어 보였다.성연신은 타이밍을 보고 고청민에게 주먹을 날렸는데 두 사람은 곧이어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심지안은 덜컥 겁이 났다.그래서 고통이 몰려와도 그녀는 절뚝거리며 사람 찾아 두 사람을 떼어놓으려고 했지만 이곳은 인적이 드문 곳이었기에 심지안은 희망을 다른 사람에게 걸 수 없었다.고청민과 성연신은 모두 상처를 입었는데 두 사람 모두 그만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심지안은 눈을 질끈 감더니 두 사람이 약간 떨어진 틈을 타 두 팔을 벌리고는 가운데에 서서 큰 소리로 말했다.“그만 해요!”하지만 성연신은 이미 주먹을 휘두른 상황이었기에 거두기엔 너무 늦었다.그는 겨우 방향을 틀었는데 원래 그녀에게 날아가던 주먹은 옆 정자 기둥을 향했다.그의 뼈와 살이 나무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냈는데 듣기만 해도 아플 정도였다.심지안은 깜짝 놀라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그의 손을 살펴보려고 했다.“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그녀는 단지 두 사람을 떼놓으려는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성연신은 그렇게 아프진 않았지만 심지안의 관심을 받게 되니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미간을 잔뜩 구기며 말했다.“괜찮아요. 조금만 아플 뿐인데요. 별일 없을 거예요.”그 말을 들은 심지안은 주위를 둘러보며 안철수를 찾기 시작했다.“철수 씨는 어디에 있어요? 얼른 병원 가서 붕대를 감아야 할 것 같은데요.”찰과상이면 좋겠지만 뼈를 다치면 큰일이었으니까.‘철수 씨는 어디에 있는 거야? 왜 이런 중요한 때에 나타나지 않고.’성연신은 가까이에 있는 심지안을 바라봤다.그녀의 희고 고운 피부, 오뚝한 코, 그리고 별처럼 빛나는 두 눈에는 그를 향한 걱정이 담겨 있었다.그런 그녀를 보며 성연신은 비겁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계속 날 이렇게 봐준다면 몇 번을 다쳐도
가는 길에 고청민은 조수석에 앉은 심지안을 하염없이 바라봤다.다른 건 모두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은 듯 기계적으로 핸들만 돌리며 운전했는데 머릿속에는 온통 성연신을 걱정하는 심지안의 얼굴이 확대된 사진처럼 번쩍거렸다.그의 심장은 찢어지는 듯이 아팠다.왜 그는 이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도 성연신보다 못한 걸까? 5년 동안이나 그녀에게 향한 마음은 그 어떤 보답도 받을 수 없단 말인가?고청민은 이렇게 마음이 괴로운 적이 없었다. 어려서부터 노력한 일들은 반드시 보상을 받았으니 말이다.공부를 열심히 했더니 전교 1등을 했고, 세움을 열심히 관리했더니 비즈니스가 나날이 발전했고, 또 공부를 열심히 했더니 대학원에 진학했다.그는 심지안에게도 같은 마음이었다. 하루하루 그녀의 옆에 있어주고 그녀가 좋아하는 반찬, 디저트를 챙겨주고, 또 그녀와 함께 회사를 관리하면,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심지안도 그를 좋아하게 될 줄 알았다.하지만 그는 오늘에서야 깨달았다.심지안의 마음은 계속 성연신에게 향해 있었고 그녀는 단 한 번도 그에게 마음을 돌린 적이 없었다.‘그럼 나는? 나는 어떤 존재이지?’고청민은 별말 하지 않고 계속 운전했다.깨끗하고 고운 손은 핸들을 잡고 있었지만 그의 눈동자는 허공을 떠돌아다니고 있었다.여름밤이라 날씨는 춥지 않았고 오히려 온 하늘에 별빛이 쏟아졌다.그가 다시 옆을 돌아보니 조수석은 텅 비어 있었다.심지안은 어느새 벌써 차에서 내렸다.백미러로 비친 그의 얼굴에는 상처가 가득했다. 입가에 핏자국이 말라붙어 딱지가 앉았다.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심지안은 그를 걱정하는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고청민이 잠깐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아이처럼 무고한 표정으로 씁쓸한 웃음을 짔더니 이내 어금니를 깨물고는 눈가가 빨개지며 사지도 부들부들 떨었다.할아버지의 말씀이 맞았다. 부드러운 말과 움직임으로는 절대 여자의 마음을 뺏지 못한다, 반드시 단호하게 구는 게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