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안은 어깨를 으쓱했다.“지금으로써는 임시연의 혈육인지 확신할 수 없어요. 가능성이 크긴 하죠.”두 번째 결혼인지 아닌지는, 김민수도 명확하게 알고 있을 것이다. 어쨌든 첫번째 결혼은 성연신과 한 것이 아니다.“가능성이 크다뇨! 자세히 몇 번 보기만 해도 알겠던데요? 생긴 게 아주 붕어빵이더구만!”눈이 멀지만 않으면 다 보아낼 수 있다.변혜영은 생각할수록 화가 끓어올랐다. 그녀는 재빨리 심지안의 핸드폰을 빼앗았다.“저 못 기다리겠어요. 지금 당장 오빠한테 임시연의 본 모습을 밝혀야겠어요!”무방비 상태였던 심지안은 변혜영이 멀리 간 뒤에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반응했다.그녀는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하다가 다시 표정을 폈다.그 시각, 변혜영은 변석환을 아무도 없는 방으로 끌고 와 심지안의 핸드폰을 그의 눈앞에 들이밀었다.“똑똑히 봐. 오빠가 그렇게 사랑하는 임시연의 아이야! 오빠는 아직 모르지?”변석환은 사진을 눈여겨보았다. 조금은 익숙한 얼굴과 그때 김민수의 이상했던 행동이 떠올랐다.“무슨 뜻이야?”변혜영은 허리에 손을 올리고 조소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말 그대로야. 임시연은 순한 토끼 같은 여자가 아니라고. 꾸며낸 모습에 속지 마. 성연신은 그냥 그중 한 남자일 뿐이야. 얼마나 많은 남자의 아이를 낳았는지 몰라. 수치심 없는 걸레 같은 년. 오빠 같은 순진한 남자나 속지.”“변혜영.”“왜?”그녀는 말을 멈추고 변석환의 화로 휩싸인 눈을 마주치고 깜짝 놀랐다.“시연이는 이미 내 아이를 임신했어. 지금부터 우리 가족의 일원이야. 네 새언니고. 네가 시연이를 존중하고 잘 대해줬으면 좋겠어. 수단 방법 안 가리고 시연이를 괴롭히지 마. 이러면 나 너한테 실망할 거니까. 그리고, 이거 심지안 핸드폰이지. 넌 심지안이 한 말을 믿어?”변혜영은 입술을 뻐끔거렸다. 눈에는 슬픈 기색이 보였다.“오빠, 난 오빠 가족이야. 왜 나한테 그러는 거야?”“넌 내 가족 맞지. 시연이도야. 자꾸 선 넘지 마.”말을 마치고 변석환은 핸드폰을 테이블
고청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심지안을 쳐다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물어보고 싶다면서요? 안 가요?”심지안은 마른침을 삼키고 담담한 척 얘기했다.“가요.”민채린은 두 사람을 보다가 먼저 앞장 섰다.“가죠.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일 한 건지 보여줄 겸.”심지안은 눈을 깜빡이며 떠보았다.“제경을 떠날 생각이에요?”“모르겠네요. 일단 이쪽의 일은 거의 끝나니까 다음에 어디를 갈지 고민 중이에요.”홍지윤의 병은 평범하지 않았고 또 만성이라 오랫동안 치료해야 한다.완전히 나으려면 3년이 필요한데 3년 동안 꾸준히 약물을 복용하고 다른 문제가 없으면 된다.모든 환자를 끝까지 지켜보는 건 민채린의 역할이 아니었다. 그건 간병인이 해야 하는 일이니까.심지안은 민채린을 바라보았다. 스크린에는 송준이 투자한 새 영화가 상영해서 송준과 배우, 그리고 스태프들이 함께 찍은 사진이 나타났다.들어보니 요즘 2년간 송준이 투자한 영화들이 대박 나서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한다.홍지윤은 눈이 새빨개졌다. 그는 송준과 같은 자리에 설 수 있었지만 지금은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다.“감정 좀 추슬러요. 우리는 은인이지 원수가 아니니까요.”민채린은 여유로운 말투로 얘기했다. 그녀의 예쁘장한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홍지윤은 고개를 돌려 그들이 온 것을 확인했다. 가늘게 뜬 눈에 놀란 기색이 약간 어렸다. 그리고 고청민을 보면서 그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고청민의 하얀 얼굴에는 담담한 표정뿐이었다.“당신의 목숨은 지안 씨가 준 거예요. 지금 지안 씨가 물어볼 게 있어서 왔으니 솔직하게 대답해요.”홍지윤은 몸을 살짝 떨었다.고청민은 홍지윤에게 부드럽게 얘기했지만 홍지윤은 그의 눈에서 이게 협박이라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마치 심장 앞에 칼이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언제 심장을 찌를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치솟았다.얼굴은 순진무구한 대학생 같지만 사실은 극악무도한 사람이다.홍지윤은 정신을 차리고 얘기했다.“애는 죽었어요.”고청민은 시선을 내렸다
방을 나선 민채린은 처방전을 남기고 떠났다. 3일 후에는 마지막으로 와볼 것이다. 심지안은 그쪽을 쳐다보았다. 고청민은 처방전을 약을 달이는 고용인에게 넘기지 않고 아무렇게나 옆에 던져놓았다.그리고 심지안을 안고 위로하며 부드러운 손으로 토닥여주었다. 그러다가 따뜻한 시선으로 그녀를 보며 얘기했다.“같이 영화나 보면서 기분 전환이나 할까요?”심지안은 고청민이 기분이 좋다는 것을 보아냈다.심지안은 고청민의 부드러운 말투에 똑같이 대답했다.“아니요. 요즘 회사를 안 가봐서... 실적이 어떤지 봐야겠어요.”“그것도 기분 전환으로 괜찮겠네요.”“네. 저 혼자 갈게요. 청민 씨는 할아버지를 보러 가요. 두 사람이 바둑을 안 둔 지 오래됐잖아요. 할아버지 말동무도 해드려야죠.”“그래요. 마침 다음 기자회견 내용도 정해야죠.”심지안이 성동철의 외손녀라는 것을 밝힐 기자회견은 바로 다음 주에 진행된다. 결혼식 3일 전이었다.결혼식은 다다음 주 수요일이다.그러니 당당하게 결혼을 할 수 있다.고청민이 아깝다는 말이 나오지 않게 말이다. 심지안의 예쁜 얼굴에 복잡한 감정이 어렸다. 그때 가서 고청민과 결혼하지 않겠다고 하면 성동철은 엄청나게 화를 낼 것이다.설마 그녀의 엄마처럼... 쫓겨나는 건 아니겠지?그녀의 엄마는 양보하지 않았다. 심지안도 그럴 예정이다.심지안은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농담을 건넸다. “그래요.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줘요. 청민 씨가 데릴사위로 들어오는 거라고요. 절대로 내가 몸으로 청민 씨를 꼬신게 아니라고요.”“사실 지안 씨가 가만히 있어도 넘어갈 텐데.”고청민의 갈색 눈동자에는 환한 웃음이 드러났다.“어떻게든 지안 씨한테 넘어갔을 거예요.”...심지안은 꾸미기 싫었다. 그저 잠옷을 벗고 카키색의 긴 드레스를 입고 세움으로 갔다.그러면서 그녀는 성연신에게 음성메시지를 보냈다. 홍지윤이 위험할 수 있으니 얼른 홍지윤을 데려가라는 말이었다.세움에 와서 주차한 후, 심지안은 핸드폰을 꺼내 보았다. 성연신이 문자를
성연신의 차가운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그는 먼 곳을 바라보면서 얘기했다.“내가 그 사실을 알았을 때도 이런 표정을 지었겠죠.”10여 년간 못 본 어머니는 새 얼굴과 새 신분으로 다시 그와 만나게 되었다. 반가움과 낯섦, 그리고 놀라움... 심지안은 방매향의 행동들을 떠올렸다. 자세히 보면 확실히 일반인과 달랐다.사치품에 대해 잘 알지만 사치품에 눈이 멀지 않고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브랜드만 입는다. 수수한 얼굴이지만 우아한 기품이 있었다. 기품이라는 것은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시간과 돈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심지안은 그저 고귀한 사모님이 파산해서 일하러 나온 줄 알았다.심지안 같은 일반인에게 이건 너무 신기한 일이었다. 마치 영화나 드라마 같았다.“왜 세움에서 일하고 있는 거예요? 보광 중신이나 성원 그룹으로 가도 괜찮잖아요.”“너무 가까이에 있으면 비밀 조직에서 눈치채기 쉬우니까요.”눈을 깜빡이던 심지안은 갑자기 벅차오르는 기분이 들었다.다행이었다...송석훈과 거래를 하지 않아서.방매향은 그렇게 오랜 시간 갇혀서 이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왔다. 도망쳐 나와도 매사에 신경 쓰며 조심해야 했다.성연신은 심지안이 미간을 찌푸리다가 다시 또 웃는 것을 보고 그녀가 하는 생각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송석훈은 다시 연락하지 않았어요?”심지안은 약간 멍해 있다가 다시 침착하게 얘기했다.“송석훈이 누구예요? 왜 저랑 연락해요?”“연기 그만 해요.”성연신은 그녀의 코를 아프지 않게 꼬집었다.“그날 제 어머니를 만나보겠다 한 건 송석훈 때문이죠? 그런데 갑자기 후회됐나봐요?”“...알고 있었어요?”“당연하죠.”심지안은 귀가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부끄러워서 아무 곳에나 숨고 싶었다.하지만 심지안은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이미 알았다면 어쩔 수 없죠. 저도 아무 말 안 할게요. 어차피 연신 씨를 판 건 아니니까요.”심지안은 고개를 쳐들고 그를 보면서 당당하게 얘기했다.“탓하는 게 아니에요. 걱정하는 거지.
성연신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바로 심지안 곁으로 와 물었다.“왜요?”심지안은 난감해서 입술을 꽉 깨물었다.“방매향 씨... 좀 불러줄래요?”“어디 아파요?”놀란 성연신이 배를 그러안은 심지안을 쳐다보았다.“배가 아파요? 같이 병원 가요.”“아니에요. 그저 방매향 씨만 좀 불러달라니까요!”조급해진 심지안이 재촉했다.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았다.“안 돼요. 무슨 일인지 알아야겠어요.”성연신은 물러나지 않았다. 차가운 얼굴에는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걱정되어 심장은 빨리 뛰고 있었다.“잠깐, 알았어요! 그러니까... 생리가... 터졌어요.”심지안은 급하게 얘기하며 창피함 때문인지 화가 나서인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굳이 이렇게 난감하게 만들어야 해?’정말 쓰레기...성연신이 대답하기도 전에 배가 아파와서 심지안은 얼굴이 파리하게 질려 입술을 꽉 깨물었다.생리 첫날은 너무 아파서 약을 먹어야 했다. 성연신은 흠칫하더니 다른 생각은 하지 못하고 외투를 벗어 그녀의 허리에 매주고 바로 그녀를 안았다.“뭐 하는 거예요!”심지안은 움직이지 못했다. 하지만 눈에 반항심은 가득했다. 커다란 남자의 품에 안기니 심지안은 더욱 자그마해 보였다.“일단 차에 데려가 줄게요. 이렇게 직원들 앞에 설 건 아니죠?”심지안은 저도 모르게 손을 가져가 만져보았다.“설마 치마에 이미...”사실 아직은 아니었다. 하지만 더 움직인다면 붉은 피로 물들 것이다. 그래서 성연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네. 아주 잘 알려요.”그 말에 심지안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리고 성연신이 방매향에게 연락해 생리대를 챙겨오라고 하기를 기다렸다.차 안의 온도는 딱 적합했다. 정욱은 운전석에서 두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설렜다.‘재결합 한 건가? 너무 갑작스러운데...’성연신이 정욱을 보며 입술을 열었다. 아직 말하기도 전에 정욱이 먼저 얘기했다.“제가 내리면 되죠?”성연신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얘기했다.“응.”
따듯한 손바닥이 적당한 강도로 복부를 문질러 심지안의 통증을 완화했다.그녀는 얼굴이 불그스름해졌는데 삭신이 쑤시고 손발까지 차가웠다.지금 이 순간에도 심지안은 그가 가져다준 편안함을 탐닉하고 싶어 그를 밀어내기 싫었다.‘쪽팔려!’심지안은 이런 자신이 너무 못났다고 생각했다.그래서 반박하지도 않고 입을 삐죽 내밀더니 단호하게 말했다.“옷이랑 차는 제가 물어줄게요.”성연신은 손으로 계속 그녀의 배를 어루만져주면서도 부끄러워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 그의 눈빛에는 따듯함과 부드러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성연신이 한참 배를 어루만져줬고, 또 차 안의 온도가 맞춤하게 조절되었기에 심지안은 한결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성연신이 차에서 내리면서 말했다.“먼저 옷 갈아입어요. 무슨 일이 있으면 나 부르고요. 속옷도 샀으니까 부끄러워하지 말고 갈아입어요. 차에 묻어도 상관없으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심지안은 부끄러운 마음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거절하지도 않고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사소한 배려를 해준 그에게 고마움을 느꼈던 것이었다.성연신은 손에 잡힌 대로 산 속옷이라도 했지만 사이즈고 스타일이고 그녀의 마음에 쏙 들었다.심지안은 속옷의 사이즈를 살폈는데 역시 그녀가 평소에 입던 사이즈였다.그리고 생리대도 그녀가 자주 사용하는 브랜드였다. 5년이 지났어도 성연신이 이 모든 걸 기억하고 있다니...심지안은 마음속에 따뜻한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다. 그녀에 관한 사소한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으니 말이다....성연신은 근처에 약국이 있는 걸 발견했다. 그리고 회사 여직원들이 생리 때문에 많이 고통스러워하면 진통제를 먹었던 기억이 떠올라 빠르게 약국으로 걸음을 옮겼다.약은 독성 있고, 너무 진통제에 의존해도 안 되었지만 성연신은 심지안이 고통스러워하는 걸 차마 지켜볼 수는 없었다.그는 그윽한 눈빛으로 진열대를 훑어보면서 진통제를 찾았다.약을 정리하던 직원이 훤칠한 남자를 발견하고는 눈이
심지안은 어금니를 깨물면서 미소를 지어 보였다.“네, 잘 맞아요. 하지만 이제는 레이스를 안 좋아하거든요. 어쨌든 순면보다는 편하지 않으니까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 걸로 사주세요. 아, 아니다. 나이도 있으신데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있는 걸로 사면 직원들이 특이한 취향이 있는 걸로 오해하겠어요.”성연신의 얼굴색이 한껏 어두워졌다.‘독설이 갈수록 심해지네.’심지안은 어두워진 그의 얼굴색을 보더니 기분이 좋아져 풀숲에 쪼그리고 앉아 용변을 보고 있는 듯한 정욱에게도 인사를 건넸다.정욱이 잠깐 멈칫하고는 활짝 미소를 지었다.‘헤헤, 이번에는 화해했겠지?’마침 정욱의 어머니는 요즘 자꾸 옆 동네 여자를 소개해 주겠다며 맞선을 주선했는데 상대와 똑바로 얘기를 하고 서로 시간을 지체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내일 휴가를 낼 참이었다.정욱이 차로 돌아가고는 휴가 얘기를 꺼내려고 했는데 백미러로 한껏 어두워진 성연신의 얼굴을 발견한 후 곧바로 하려던 얘기를 꿀꺽 삼켜버렸다.“대표님, 지금 회사로 돌아갈까요?”성연신은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차갑게 말했다.“아니면? 너희 집에 갈래?”“... 네, 알겠습니다.”“내가 많이 늙어 보여?”“아니요, 한창 나이신지라 엄청 매력적으로 보이는데요?”정욱이 거짓말 없이 솔직하게 말했다.성연신도 30대였다. 고청민처럼 소년미가 넘치는 건 아니었지만 성숙한 남자의 분위기도 충분히 매력적으로 느껴질 만했다.구겨진 성연신의 미간을 살짝 펴졌다.하지만 그는 이내 짜증이 섞인 말투로 물었다.“지금 여자들은 다 젊은 남자들을 좋아하는 거야?”아니면 심지안은 왜 자꾸 나이를 들먹이겠는가?“아니요, 각자 취향이 다르죠. 지안 씨가 농담하신 건 아니에요?”성연신은 입을 삐죽 내밀더니 도도한 얼굴로 말했다.“무조건 농담이어야 해.”그는 젊은이들만큼 청량한 소년미를 뿜어내지는 못했지만 그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는 완벽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날씨가 흐려지고
심지안은 주먹을 꼭 쥐더니 애써 진정한 척하며 대답했다.“전에도 몇 번 전화 온 적이 있어서 기억에 남아요.”고청민이 시선을 거두고는 핸들을 돌렸다.“부동산 번호는 아닌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이 급한 일로 찾은 거면 어떻게 해요. 그래도 전화해 보는 게 낫지 않아요?”“아니요, 급한 일이 있으면 다시 전화하겠죠.”하지만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심지안의 핸드폰은 다시 울렸다.그 순간, 심지안은 어찌할 바를 몰라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고청민 앞에서 송석훈의 전화를 받으면 모든 게 탄로 날 것이다. 하지만 전화를 거절할 다른 이유가 없었다.진동 소리는 마치 사람의 목숨을 재촉하는 영혼의 울음소리처럼 끊임없이 귓가에 울려 퍼졌다.고청민이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천천히 차를 길가에 세웠다.그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받아요, 무슨 급한 일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심지안은 더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전화가 스스로 끊어지길 바라며 천천히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냈다.하지만 아쉽게도 그녀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핸드폰을 손에 들었는데도 윙윙거리는 진동 소리는 끊이지 않았다.화면에는 여전히 똑같은 전화번호가 표시되었다.고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심지안은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받고는 기선제압으로 먼저 차갑게 물었다.“안녕하세요, 누굴 찾으시는 거죠?”상대는 대답하지 않았는데 알 수 없는 숨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심지안은 등골이 오싹했다.송석훈은 분명 일부러 전화했을 것이다.그는 어둠 속에 숨어 사냥감을 놀리듯 그녀의 이성을 무너뜨리려고 했다.길게 늘어진 고청민의 속눈썹은 약간 처지더니 그는 몸을 심지안에게 기울였다. 그래서 상대가 어떤 말을 해도 그는 똑똑히 들을 수 있을 것이다.비좁은 공간은 어디 도망갈 데라도 없었다.심지안은 심장이 멎는 듯했는데 짧은 순간에도 두뇌를 풀가동했다.바로 그때, 전화기 너머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안녕하세요, 저는 인화 별장의 스티븐인데요, 혹시 집 구하시려는 의향 있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