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내기 전에 꺼져요. 당신 아빠 쪽팔리게 하지 말고요.”심지안은 차가운 얼굴로 말투도 거침없었다.변혜영은 입을 가리고 깔깔 웃더니 도발했다.“정말 순진하네요. 저야말로 아빠가 이십 년 동안 애지중지 키운 딸인데, 당연히 제 편을 들지 당신 편을 들 거라고 생각해요?”심지안은 이를 악물고 바로 테이블 위에 있던 와인을 그녀에게 쏟았다.변혜영은 잠깐 멈칫하고는 고개를 숙여 값비싼 치마를 보고 그녀를 노려봤다.“감히 나한테 와인을 부어?”모두 집 밖의 평민들은 그들 앞에서 설설 긴다고 하지 않았는가?왜 이 여자는 이렇게 당당한 거지?아빠가 뒤에서 편을 들어준 걸까?“그럼요? 참아줘야 하나요?”심지안은 비굴해하지 않고 마른 몸으로 꼿꼿하게 서서 굽히지 않고 얘기했다.“제 약혼식에서 난동을 피우는 게 당신들의 품격인가요?”그 말에 변혜영은 순간 말문이 막혀서 반박하지 못했지만, 고개를 숙이지는 않았다.“당신 엄마가 먼저 불륜 저질렀는데 이제 와서 저를 탓해요?”약혼식은 일생에 단 한 번이다. 그렇기에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변혜영은 이런 말까지 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이 사람은 내연녀의 딸인 심지안이었다. “아마 제가 그쪽보다 두 살 많을걸요? 당신 아빠가 우리 엄마를 알았을 때 그쪽은 태어나지도 않았어요. 당신 엄마야말로 내연녀일 수도 있죠.”“헛소리 마요. 우리 엄마는 고귀한 귀족이라고요. 그딴 짓을 했을 리가!”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심지안은 악독한 말만 골라서 했다.“사실이 이런데 뭐라 말해도 소용없어요. 서열로는 저한테 언니라고 불러야 한다고요.”변혜영은 완전히 무너져서 엉엉 울었다. 마치 심지안을 언니라고 부르는 게 엄청난 모욕인 듯이 더 이상 비웃지도 않았고 더 비아냥거리지도 못했다.심지안의 말이 더 일리가 있었다.“무슨 일이야. 심지안 당신 설마 내 동생 괴롭혔어?”소리를 들은 변요석과 변석환이 급하게 변혜영한테 걸어오더니 변혜영의 옷에 묻은 와인 자국을 발견했다. 변요석의 표정이 약간 변했지만 뭐라 말하지
화면에는 홍지윤 혼자만 있었다. 그녀는 며칠 전보다 상태가 괜찮아 보였다. 행동은 여전히 자유롭지 못했지만, 도우미에게 의지해 밥을 먹고 물을 마실 수는 있었다.몸 상태는 좋아 보였다. 눈빛이 더 이상 허공에서 응시하지 않았다.심지안은 책상 모서리에 방매향이 놓고 간 바나나를 집어 먹으며 관찰했다.도우미가 홍지윤에게 점심을 먹인 후에 그녀는 침대에 누워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시간은 1분 1초 흘러갔다. 오늘은 다락방에 가지 않았나 하고 생각이 들 때 수척하고 긴 그림자가 갑자기 화면에 나타났다.심지안은 바나나 껍질을 버리고 정신을 집중해 화면을 쳐다봤다.홍지윤은 고청민이 오는 것을 보고는 눈을 크게 뜨며 침대에 웅크린 채 죽어라 그를 노려보았다."왜 이렇게 긴장해요? 성연신에게 평생 갇혀 지내야 했을 홍지윤 씨를 내가 데리고 나왔잖아요. 홍지윤 씨는 나에게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고... 고청민."홍지윤은 몇 번 반복하며 입술을 움직였다. 마치 눈앞의 사람이 무슨 맹수인 것처럼 홍지윤은 계속 웅크린 상태로 뒤로 물러났다.고청민은 웃으며 그녀를 신경 쓰지 않고 침대에 걸터앉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왜 그래요?""너너너..."홍지윤은 어렵게 발음하며 무엇인가 말하려 했지만, 성대가 상한 그녀는 억양도 분명하지 않았다.하지만 눈치 빠른 사람은 그녀가 매우 두려워하고 있음을 알아볼 수 있었다.성연신과 고청민 둘 다 진실을 알고 싶어 했다.둘 중에서 그녀는 한 사람만 선택할 수 있었다. 다른 한 사람은 틀림없이 그녀의 목숨을 앗아갈 것이다.고청민은 머리를 기웃거리며 순수한 눈빛으로 쳐다봤다."말을 똑똑히 할 수 없다?"'민채린 속도가 좀 느린데.'홍지윤은 무언가 생각났는지 두 손을 모으다가 이내 손을 흔들며 애원하는 듯했다.마치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말을 잘 듣겠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고청민은 음산한 웃음을 지었다."내가 지윤 씨를 믿는다고 생각해요? 성연신이 지윤 씨를 구해 줬는데 지윤 씨가 그에게 아
그 말을 들은 심지안은 잠시 조용히 있었다.“저는 아직 비밀 조직 못 이겨요.”그 사람들은 너무 위험해서 그 사람들의 목적을 알아도 함부로 건드릴 수는 없었다.“제가 있잖아요.”성연신은 잠깐 멈칫하고는 말했다.“홍지윤이 살아있어요.”머릿속에서 여우 가면을 쓴 화면이 떠올라서 심지안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목덜미의 솜털이 바짝 섰다.“무슨 뜻이에요?”성연신은 그때 홍지윤을 잡아서 송석훈과 거래한 일을 짧게 말해줬다.심지안은 그 여자가 몇 년동안이나 성연신에게 갇혀 있을 줄 몰랐고 송씨 가문이 홍지윤을 버렸을 거라고는 더더욱 생각지도 못했다.송씨 가문은 정말 악독한 사람들이다.“뭘 할 필요는 없어요. 이미 계획이 있거든요. 예전에 진 빚, 어떻게든 갚게 만들어야죠.”성연신은 씁쓸한 시선으로 얘기했다. 심지안은 그의 평온한 말투에서 깊은 원한을 들어냈다.그녀는 입술을 달싹였다.“홍지윤, 쓸 데가 많아요?”“네. 비밀 조직의 비밀을 대부분 알고 있으니까요.”“그럼, 말하게 해야죠.”“송석훈이 그 사람한테 장기간 만성 독약을 써서 지금 위독해서 혼수상태일 때가 많아요. 치료하려면 무조건 외국에 있는 Z의사를 모셔와야 해요.”하지만 Z의사는 한 국가만을 위해서 힘을 쓰지 않아서 행방이 묘연했다. 극소수의 사람만 그의 진짜 신분을 알았고 모셔 오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Z의사?”심지안의 눈이 반짝였다.“제가 치료해달라고 부탁드려 볼게요.”그녀는 쭉 아이의 죽음이 미심쩍었다. 분명히 평안하게 태어났는데 갑자기 죽어버려서 비밀 조직이 손을 썼는지 알 수가 없었다.성연신은 눈썹을 올리면서 경악한 눈길로 물었다.“당신이 Z의사를 알아요?”“알긴 알아요. 모셔 올 수 있을지는 장담 못 해요. 대신 미리 말하는데 홍지윤을 한 번 봐야겠어요.”심지안은 단번에 승낙하지 않았다. 속으로 이 일이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다.죽 쒀서 개 주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성연신은 차가운 표정이었지만 목소리만은 다정했다.“좋아요. 내일 오후 세 시
변석환이 말했다.“혜영아. 아빠도 나 이해 못 해주시는데 너도 내 편 안 들어주는 거야?”“오빠는 왜 기어코 소문 시끄러운 여자랑 결혼 하겠다는 거야?”일반적인 사람들도 재혼은 꺼린다. 게다가 딴따라이기까지 하니 좀 예쁜 것만 빼면 다른 우점은 없었다.비슷한 수준끼리 엮여야지, 임시연은 어디 내놓기 창피한 사람이었다.“소문이 시끄러운 건 사람들이 질투해서야. 시연 씨가 대단하지 않으면 어떻게 사람들이 그녀에 대해서 떠들겠어?”변석환은 쓰게 타일렀다.“넌 아직 어려서 이런 거 몰라.”변혜영은 원래는 아빠 때문에 화가 났는데 지금은 오빠 때문에 화나는거로 바뀌었다. 그녀는 바보를 보는 눈길로 변석환을 바라봤다.“여자에 눈이 멀다니. 생각도 못 했어.”“... 혜영아. 어느 동생이 오빠를 이렇게 말하니. 네가 연애 할 때 나는 다른 말 안 했다.”송준을 싫어하기는 했지만, 동생을 반대하지는 않았다.근데 왜 아무도 그를 이해해 주지 않는단 말인가.변혜영은 조리 정연하게 분석했다.“나는 그냥 송준이 좀 괜찮게 생겨서 데이트 하는거 동의한 거야. 그냥 시간 때우기 좋으니까. 진짜 결혼할 사람은 아니라고.”왕실의 남자들은 너무 정직하고 고리타분해서 재미가 없었다.송준은 말도 잘하고 잘생긴데다가 여자를 잘 달래기까지 하니 갖고 놀기 딱 좋았다.변석환은 진지하게 말했다.“혜영아. 다른 사람 감정 갖고 장난 치지 마. 그건 몹쓸 짓이야.”“쳇. 오빠랑 말 안할래. 오빠랑 내연녀가 만나는 게 틀린 거야. 난 쇼핑하러 갈 거니까 상관하지 마.”변혜영은 듣기도 귀찮아서 안전띠를 풀고 힘껏 차 문을 박차고 멀지 않은 쇼핑몰로 향했다.변석환은 멀어지는 변혜영의 뒷모습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때 임시연의 전화가 걸려 왔다.“바빠요? 집에 전등이 고장나서 그러는데, 혹시 와서 고쳐줄 수 있어요?”...고청민은 한참을 고생하고 나서야 하객들을 모두 돌려보냈다. 이미 밤 11시였다.하객을 상대하는 일은 상상보다 더 힘들었지만 기분은 좋았
고청민은 잠깐 웃고는 조금 쉰 목소리로 얘기했다.“고작 그 사람을 위해서 저를 탓하는 거예요? 만약에 성연신이었다면 저랑 약혼 깨려고 했겠네요?”심지안은 입을 꾹 다물었다.“누구인지랑은 상관없어요. 일을 따지는 거지, 사람을 따지는 게 아니에요. 이미 당신이랑 결혼하기로 했으니, 앞으로 성연신 말은 하지 마요.”“그러면, 몰래 찾아가려고요?”심지안은 놀라서 고개를 들고 고청민을 바라봤다. 마침 화를 참지 못하고 있는 그의 눈을 마주했다.고청민은 긴 다리로 성큼성큼 다가왔다.“진유진 씨랑 같이 있다고 했으면서 사실은 성연신이랑 밤을 보냈죠. 그래도 당신을 용서했어요. 아무 일도 안 일어난 것처럼 넘어갔다고요. 하지만 성연신에 대해서 고작 몇 마디 했다고 당신은 지금 저를 뭐라고 하네요? 지안 씨. 당신 눈에는 제가 잘해주는 건 하나도 안 보이나 봐요? 누가 누구한테 따져야 하는데요?”심지안은 마음속에 거대한 파도가 일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그날 밤 일을 알았군요...”고청민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잘생긴 얼굴에 약간의 원한이 서렸다. 동시에 자조적인 웃음이 걸렸다.“온 밤. 성씨 가문 저택 문밖에서 당신을 기다렸어요. 순진하게 당신이 그곳에서 나오지 않길 바라면서, 당신이 여기 있지 않을 거라고, 전 당신이 저를 속이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마음속으로 그렇게 많은 준비를 했지만, 그녀는 그 모든 걸 짓밟았다.고청민은 진작에 그녀가 진유진과 함께 있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그녀가 거짓말을 하는 걸 알면서도 할아버지 앞에서 뭐라 하지 않고 조용히 참았다.“그날 밤, 정말 들어가서 당신을 데리고 나오고 싶었어요. 근데 내가 보면 안 되는 장면을 볼까 봐, 받아들이지 못할까 봐 무서웠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라서 그냥 그렇게 차에서 온 밤 동안 앉아있었어요. 근데 이튿날 아침, 지안 씨가 그 집에서 나오는 걸 두 눈으로 봐버렸어요.” 그의 목소리는 한없이 낮았고 차가웠다. 시선도 죽일 듯이 무서워졌다.이렇게 며칠 동안 참고
고청민은 눈이 붉어져서는 미친듯이 웃었다.“아뇨. 우리야말로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에요. 당신과 성연신은 그냥 실수고요.”실수는 지워야한다.심지안은 눈이 떨리고 마음이 복잡해졌다.“피곤해요. 가서 자요.”고청민은 다시 냉정을 되찾고 다정한 손길로 그녀의 얼굴을 감쌌다.“앞으로는 성연신이랑 만나지 말아요. 알겠죠? 아무도 우리 사이를 방해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아직 안 돼요.”심지안이 진지하게 말했다.“홍지윤이 아직 살아있어요. 제 아이가 살아있을 수도 있고요. 비밀 조직에서 빼돌렸을 수 있잖아요.”사실 그 가능성은 미미했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얼마나 무수한 밤을 자책으로 울다 잠에서 깼는가. 차라리 아이가 아닌 본인에게 사고가 났으면 했다. 고청민은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성연신이 당신을 속인 거예요. 홍지윤은 비밀 조직에 핵심 인원이에요. 만약 정말 성연신 손에 있다고 해도 비밀 조직은 홍지윤의 입을 막을 방법이 많아요.”“뭐가 어쨌든 다 시도해 보고 싶어요. 당신 Z의사 알죠? 저 도와서 홍지윤 치료 도와줄 수 있어요?”“싫어요.”고청민은 무의식적으로 거절하고는 심지안의 의아한 눈길을 보고 멈칫해서 말했다.“홍지윤을 만나 봤어요?”“아뇨. 성연신이 내일 저 데리고 간댔어요.”그는 조용히 있다가 말했다.“마음이 안 놓여서 당신이랑 같이 가야겠어요.”심지안은 망설이다가 말했다.“그래요. 대신 먼저 약속해요. 성연신이랑 싸우지 않겠다고.”고청민이 그녀를 도와 Z의사를 모셔 오기 위해서는 먼저 홍지윤이 살아있는지 확인해야 했다.그 밤은 한없이 고요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잠들지 못했다.심지안은 온종일 뒤척이면서 새벽이 되어서야 잠들었다.고청민은 오랜만에 밤에 업무를 처리했다. 그는 임시연에게 연락하려고 시도했지만 계속 전화를 받지 않았다.눈빛이 어두워진 고청민은 핸드폰을 땅에 내쳤다....이른 아침, 심지안은 일어나서 씻고 팩을 붙인 채로 아침 먹으러 내려왔다.고용인이 한복을 한 벌
성연신은 두 사람한테 눈길을 돌렸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차갑게 웃었다.“쟤는 심지안의 ‘약혼남’이에요.”“네?”안철수는 한참 동안 반응하지 못하다가 동정 어린 눈빛으로 성연신을 쳐다보았다.“형님, 슬퍼하지 마세요. 세상에 반이 여자인데, 보란 듯이 더 좋은 사람 만나면 되죠!”“입 다물어요!”“...”쯧, 차여서 화났나 보네.그렇긴 하지, 성연신은 자존심이 센 사람이다. 심지안이 면전에 새 남자를 데리고 오면 보통 사람도 불편할 텐데 성연신 같은 사람은 오죽하겠어.안철수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라 성연신과 안전거리를 5미터 유지하며 떨어졌다.누가 알았을까, 심지안이 이유를 설명하자, 성연신은 표정 변화 없이 고청민을 받아들였다. 그는 웃을락 말락 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온 김에 같이 가죠.”심지안은 눈을 깜빡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이 싸우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고청민도 생각보다 평온했다. 그는 자연스럽게 심지안의 손을 잡았다.“우릴 데리고 홍지윤을 만나게 해주세요. 밖이 추워서 지안 씨가 감기에 걸릴까 걱정돼요.”낯선 촉감에 심지안은 얼어붙었지만 거절하지 않았다.성연신은 두 사람의 깍지 낀 손을 쳐다보고 얇은 입술을 말고 비웃었다.“이렇게 얇게 입었으니 당연히 춥죠.”“웃어른이 정해주신 거라 거절하기 어려웠어요. 제가 외투를 가지고 나온다는 걸 깜빡해서요.”고청민은 인내심 있게 담담히 해명했다.심지안은 할 말이 없었다. ‘나 안 춥거든?’그리고 이 두 남정네가 옷을 왜 신경 쓰는지도 이해가 안 됐다.홍지윤의 방은 가장 안쪽에 있었다. 심지안은 이번에 처음으로 여기에 온 것이었다. 그녀는 안에 적지 않은 사람이 있고 다 성연신을 각별히 공손히 대한다는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성연신이 악랄한 자본가의 신분 말고 다른 신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뭔지 구체적으로는 알지 못했다.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그녀는 이것이 대략 비밀조직 같은 존재라는 것을 인식했다.이와 동시에 고청민도 주
민채린은 ‘어머’하고 놀랐다가 웃으며 물었다.“네가 전에 데리고 다니던 그 여자애?”고청민은 옆에 있는 심지안을 돌아보고 다정하게 대답했다.“맞아.”“제법이네, 너도 이제 원하는 바를 다 이뤘구나. 결혼식은 갈게.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지는 구체적으로 만나봐야 해. 자료 메일로 보내줘, 내가 일단 봐 볼게.”“알았어.”심지안은 대화 내용을 듣지 못했다. 그녀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어떻게 됐어요? Z가 동의했어요?”“거의 확답입니다.”“정말 고마워요. 당신이 Z의사를 알지 못했으면 홍지윤이라는 실마리가 끊길 뻔했어요. 홍지윤은 죽을 수밖에 없었겠죠.”고청민의 눈썹이 치켜 올려졌다. 한줄기의 차가운 빛이 눈에 서렸다.하수구에서만 살던 쥐가 어떻게 빛을 보겠는가? 그렇게 많은 비밀을 숨겼으니, 홍지윤한테는 죽음만이 답이다.힘겹게 연명하면서 동아줄을 찾다니.그것이, 썩은 동아줄인지도 모르고....오후의 햇빛이 유리창을 넘어 침대 위의 두 사람을 비췄다.변석환은 품속에서 자고 있는 나체의 여인을 보며 뜨거운 어젯밤을 회상했다. 어젯밤 그와 시연이는...변석환은 얼굴이 빨개졌다. 그는 후회하고 자책했다.그는 아직 그녀와 결혼하지 않았는데, 참지 못하고 그녀를 안았다.전등을 고치러 온 것뿐이었는데, 색마에 씐 것처럼...그렇게 해서는 안 됐었다.변석환은 어떻게 하면 부모님을 설득해 임시연을 받아들여 그들 사이의 진도를 빨리 뺄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테이블 위에 놓인 핸드폰이 울렸다.그는 이불을 걷고 휘청휘청 걸어가 핸드폰을 끄려 했다.“음, 누가 건거예요?”거의 다 도착했을 때, 임시연은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나른하게 물었다.변석환은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이불 아래의 섹시한 몸매에 눈이 가자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불타올랐다.“제가 봐 볼게요. 이름 대신 영어로 MS라고 되어있어요.”임시연은 벌떡 일어나 휴대폰을 빼앗았다.임시연이 옷을 입고 있지 않았기에 변석환은 눈을 돌리고 있었다.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