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석환이 말했다.“혜영아. 아빠도 나 이해 못 해주시는데 너도 내 편 안 들어주는 거야?”“오빠는 왜 기어코 소문 시끄러운 여자랑 결혼 하겠다는 거야?”일반적인 사람들도 재혼은 꺼린다. 게다가 딴따라이기까지 하니 좀 예쁜 것만 빼면 다른 우점은 없었다.비슷한 수준끼리 엮여야지, 임시연은 어디 내놓기 창피한 사람이었다.“소문이 시끄러운 건 사람들이 질투해서야. 시연 씨가 대단하지 않으면 어떻게 사람들이 그녀에 대해서 떠들겠어?”변석환은 쓰게 타일렀다.“넌 아직 어려서 이런 거 몰라.”변혜영은 원래는 아빠 때문에 화가 났는데 지금은 오빠 때문에 화나는거로 바뀌었다. 그녀는 바보를 보는 눈길로 변석환을 바라봤다.“여자에 눈이 멀다니. 생각도 못 했어.”“... 혜영아. 어느 동생이 오빠를 이렇게 말하니. 네가 연애 할 때 나는 다른 말 안 했다.”송준을 싫어하기는 했지만, 동생을 반대하지는 않았다.근데 왜 아무도 그를 이해해 주지 않는단 말인가.변혜영은 조리 정연하게 분석했다.“나는 그냥 송준이 좀 괜찮게 생겨서 데이트 하는거 동의한 거야. 그냥 시간 때우기 좋으니까. 진짜 결혼할 사람은 아니라고.”왕실의 남자들은 너무 정직하고 고리타분해서 재미가 없었다.송준은 말도 잘하고 잘생긴데다가 여자를 잘 달래기까지 하니 갖고 놀기 딱 좋았다.변석환은 진지하게 말했다.“혜영아. 다른 사람 감정 갖고 장난 치지 마. 그건 몹쓸 짓이야.”“쳇. 오빠랑 말 안할래. 오빠랑 내연녀가 만나는 게 틀린 거야. 난 쇼핑하러 갈 거니까 상관하지 마.”변혜영은 듣기도 귀찮아서 안전띠를 풀고 힘껏 차 문을 박차고 멀지 않은 쇼핑몰로 향했다.변석환은 멀어지는 변혜영의 뒷모습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때 임시연의 전화가 걸려 왔다.“바빠요? 집에 전등이 고장나서 그러는데, 혹시 와서 고쳐줄 수 있어요?”...고청민은 한참을 고생하고 나서야 하객들을 모두 돌려보냈다. 이미 밤 11시였다.하객을 상대하는 일은 상상보다 더 힘들었지만 기분은 좋았
고청민은 잠깐 웃고는 조금 쉰 목소리로 얘기했다.“고작 그 사람을 위해서 저를 탓하는 거예요? 만약에 성연신이었다면 저랑 약혼 깨려고 했겠네요?”심지안은 입을 꾹 다물었다.“누구인지랑은 상관없어요. 일을 따지는 거지, 사람을 따지는 게 아니에요. 이미 당신이랑 결혼하기로 했으니, 앞으로 성연신 말은 하지 마요.”“그러면, 몰래 찾아가려고요?”심지안은 놀라서 고개를 들고 고청민을 바라봤다. 마침 화를 참지 못하고 있는 그의 눈을 마주했다.고청민은 긴 다리로 성큼성큼 다가왔다.“진유진 씨랑 같이 있다고 했으면서 사실은 성연신이랑 밤을 보냈죠. 그래도 당신을 용서했어요. 아무 일도 안 일어난 것처럼 넘어갔다고요. 하지만 성연신에 대해서 고작 몇 마디 했다고 당신은 지금 저를 뭐라고 하네요? 지안 씨. 당신 눈에는 제가 잘해주는 건 하나도 안 보이나 봐요? 누가 누구한테 따져야 하는데요?”심지안은 마음속에 거대한 파도가 일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그날 밤 일을 알았군요...”고청민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잘생긴 얼굴에 약간의 원한이 서렸다. 동시에 자조적인 웃음이 걸렸다.“온 밤. 성씨 가문 저택 문밖에서 당신을 기다렸어요. 순진하게 당신이 그곳에서 나오지 않길 바라면서, 당신이 여기 있지 않을 거라고, 전 당신이 저를 속이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마음속으로 그렇게 많은 준비를 했지만, 그녀는 그 모든 걸 짓밟았다.고청민은 진작에 그녀가 진유진과 함께 있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그녀가 거짓말을 하는 걸 알면서도 할아버지 앞에서 뭐라 하지 않고 조용히 참았다.“그날 밤, 정말 들어가서 당신을 데리고 나오고 싶었어요. 근데 내가 보면 안 되는 장면을 볼까 봐, 받아들이지 못할까 봐 무서웠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라서 그냥 그렇게 차에서 온 밤 동안 앉아있었어요. 근데 이튿날 아침, 지안 씨가 그 집에서 나오는 걸 두 눈으로 봐버렸어요.” 그의 목소리는 한없이 낮았고 차가웠다. 시선도 죽일 듯이 무서워졌다.이렇게 며칠 동안 참고
고청민은 눈이 붉어져서는 미친듯이 웃었다.“아뇨. 우리야말로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에요. 당신과 성연신은 그냥 실수고요.”실수는 지워야한다.심지안은 눈이 떨리고 마음이 복잡해졌다.“피곤해요. 가서 자요.”고청민은 다시 냉정을 되찾고 다정한 손길로 그녀의 얼굴을 감쌌다.“앞으로는 성연신이랑 만나지 말아요. 알겠죠? 아무도 우리 사이를 방해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아직 안 돼요.”심지안이 진지하게 말했다.“홍지윤이 아직 살아있어요. 제 아이가 살아있을 수도 있고요. 비밀 조직에서 빼돌렸을 수 있잖아요.”사실 그 가능성은 미미했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얼마나 무수한 밤을 자책으로 울다 잠에서 깼는가. 차라리 아이가 아닌 본인에게 사고가 났으면 했다. 고청민은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성연신이 당신을 속인 거예요. 홍지윤은 비밀 조직에 핵심 인원이에요. 만약 정말 성연신 손에 있다고 해도 비밀 조직은 홍지윤의 입을 막을 방법이 많아요.”“뭐가 어쨌든 다 시도해 보고 싶어요. 당신 Z의사 알죠? 저 도와서 홍지윤 치료 도와줄 수 있어요?”“싫어요.”고청민은 무의식적으로 거절하고는 심지안의 의아한 눈길을 보고 멈칫해서 말했다.“홍지윤을 만나 봤어요?”“아뇨. 성연신이 내일 저 데리고 간댔어요.”그는 조용히 있다가 말했다.“마음이 안 놓여서 당신이랑 같이 가야겠어요.”심지안은 망설이다가 말했다.“그래요. 대신 먼저 약속해요. 성연신이랑 싸우지 않겠다고.”고청민이 그녀를 도와 Z의사를 모셔 오기 위해서는 먼저 홍지윤이 살아있는지 확인해야 했다.그 밤은 한없이 고요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잠들지 못했다.심지안은 온종일 뒤척이면서 새벽이 되어서야 잠들었다.고청민은 오랜만에 밤에 업무를 처리했다. 그는 임시연에게 연락하려고 시도했지만 계속 전화를 받지 않았다.눈빛이 어두워진 고청민은 핸드폰을 땅에 내쳤다....이른 아침, 심지안은 일어나서 씻고 팩을 붙인 채로 아침 먹으러 내려왔다.고용인이 한복을 한 벌
성연신은 두 사람한테 눈길을 돌렸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차갑게 웃었다.“쟤는 심지안의 ‘약혼남’이에요.”“네?”안철수는 한참 동안 반응하지 못하다가 동정 어린 눈빛으로 성연신을 쳐다보았다.“형님, 슬퍼하지 마세요. 세상에 반이 여자인데, 보란 듯이 더 좋은 사람 만나면 되죠!”“입 다물어요!”“...”쯧, 차여서 화났나 보네.그렇긴 하지, 성연신은 자존심이 센 사람이다. 심지안이 면전에 새 남자를 데리고 오면 보통 사람도 불편할 텐데 성연신 같은 사람은 오죽하겠어.안철수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라 성연신과 안전거리를 5미터 유지하며 떨어졌다.누가 알았을까, 심지안이 이유를 설명하자, 성연신은 표정 변화 없이 고청민을 받아들였다. 그는 웃을락 말락 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온 김에 같이 가죠.”심지안은 눈을 깜빡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이 싸우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고청민도 생각보다 평온했다. 그는 자연스럽게 심지안의 손을 잡았다.“우릴 데리고 홍지윤을 만나게 해주세요. 밖이 추워서 지안 씨가 감기에 걸릴까 걱정돼요.”낯선 촉감에 심지안은 얼어붙었지만 거절하지 않았다.성연신은 두 사람의 깍지 낀 손을 쳐다보고 얇은 입술을 말고 비웃었다.“이렇게 얇게 입었으니 당연히 춥죠.”“웃어른이 정해주신 거라 거절하기 어려웠어요. 제가 외투를 가지고 나온다는 걸 깜빡해서요.”고청민은 인내심 있게 담담히 해명했다.심지안은 할 말이 없었다. ‘나 안 춥거든?’그리고 이 두 남정네가 옷을 왜 신경 쓰는지도 이해가 안 됐다.홍지윤의 방은 가장 안쪽에 있었다. 심지안은 이번에 처음으로 여기에 온 것이었다. 그녀는 안에 적지 않은 사람이 있고 다 성연신을 각별히 공손히 대한다는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성연신이 악랄한 자본가의 신분 말고 다른 신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뭔지 구체적으로는 알지 못했다.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그녀는 이것이 대략 비밀조직 같은 존재라는 것을 인식했다.이와 동시에 고청민도 주
민채린은 ‘어머’하고 놀랐다가 웃으며 물었다.“네가 전에 데리고 다니던 그 여자애?”고청민은 옆에 있는 심지안을 돌아보고 다정하게 대답했다.“맞아.”“제법이네, 너도 이제 원하는 바를 다 이뤘구나. 결혼식은 갈게.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지는 구체적으로 만나봐야 해. 자료 메일로 보내줘, 내가 일단 봐 볼게.”“알았어.”심지안은 대화 내용을 듣지 못했다. 그녀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어떻게 됐어요? Z가 동의했어요?”“거의 확답입니다.”“정말 고마워요. 당신이 Z의사를 알지 못했으면 홍지윤이라는 실마리가 끊길 뻔했어요. 홍지윤은 죽을 수밖에 없었겠죠.”고청민의 눈썹이 치켜 올려졌다. 한줄기의 차가운 빛이 눈에 서렸다.하수구에서만 살던 쥐가 어떻게 빛을 보겠는가? 그렇게 많은 비밀을 숨겼으니, 홍지윤한테는 죽음만이 답이다.힘겹게 연명하면서 동아줄을 찾다니.그것이, 썩은 동아줄인지도 모르고....오후의 햇빛이 유리창을 넘어 침대 위의 두 사람을 비췄다.변석환은 품속에서 자고 있는 나체의 여인을 보며 뜨거운 어젯밤을 회상했다. 어젯밤 그와 시연이는...변석환은 얼굴이 빨개졌다. 그는 후회하고 자책했다.그는 아직 그녀와 결혼하지 않았는데, 참지 못하고 그녀를 안았다.전등을 고치러 온 것뿐이었는데, 색마에 씐 것처럼...그렇게 해서는 안 됐었다.변석환은 어떻게 하면 부모님을 설득해 임시연을 받아들여 그들 사이의 진도를 빨리 뺄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테이블 위에 놓인 핸드폰이 울렸다.그는 이불을 걷고 휘청휘청 걸어가 핸드폰을 끄려 했다.“음, 누가 건거예요?”거의 다 도착했을 때, 임시연은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나른하게 물었다.변석환은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이불 아래의 섹시한 몸매에 눈이 가자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불타올랐다.“제가 봐 볼게요. 이름 대신 영어로 MS라고 되어있어요.”임시연은 벌떡 일어나 휴대폰을 빼앗았다.임시연이 옷을 입고 있지 않았기에 변석환은 눈을 돌리고 있었다. 그래
변석환은 영문도 모른 채 그를 상대하지 않고 차를 타고 떠났다.5분 후, 임시연은 잠옷을 입고 나왔다. 그는 자기 딸은 보지도 않은 채 김민수한테 화를 크게 냈다.“전화를 왜 그렇게 쳐대는 거야? 바쁜 일 끝나면 받겠지, 재촉하지 마!”“남자랑 자느라 바빠?”김민수는 굳은 표정이었다. 눈에는 생기라곤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 여자한테 실망할 대로 실망했다.임시연은 살풋이 웃었다.“너랑은 안 자. 질투하지 마.”“홍지윤이 살아있어.”김민수는 그녀와 말을 더 섞고 싶지 않았다. 말을 섞기만 해도 기분이 더러웠다.“무슨 헛소리야?”“돌아가서 비밀조직 사람한테 말해. 고청민도 성연신 어머니의 행방을 알고 있어.”이 말을 내뱉은 후, 김민수는 딸을 안고 성큼성큼 떠났다.임시연은 놀라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그녀의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녀는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송석훈을 찾아갔다....세움 그룹, 기획부.“와, 그날 지안 씨 정말 예뻤어요. 피부는 어찌나 하얀지, 동화 속의 공주님 같았어요.”“저도 봤어요, 진짜 아름답더라고요!”“저는 계속 먹기만 해서 못 봤네요. 역시 고급 레스토랑이라 그런지 맛이 예술이더군요!”“어? 방매향 언니는 그날 왜 안 왔어요?”방매향은 고개를 숙이고 고객 자료를 펼쳐보고 있었다. 그녀는 담담히 입을 열었다.“일이 있어 못 갔어요.”“참 아쉽네요.”심지안이 걸어 나와 농담을 던졌다.“방매향 언니는 프로젝트 때문에 고객 만나느라 바빴겠죠. 수석이 그렇게 쉽게 되나요?”방매향은 멈칫하고 그녀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고객 만나러 간 게 아니라 집에 일이 있었어요. 가족이 제일 중요하죠. 일은 2순위고요.”심지안은 공감하고 일어나 사무실로 갔다.똑같은 일상의 반복이었다. 심지안은 집과 회사만 오가며 바쁘게 지냈다.3일 후, 민채린의 답장이 왔다. 오늘 저녁 비행기로 동남아에서 돌아오는데, 옷을 들고 오지 않아 고청민더러 두꺼운 외투를 가져오라고 하는 메일
심지안은 팔짱을 끼고 가죽 재킷을 보며 직원에게 눈짓했다.직원은 바로 그녀의 말을 알아듣고 재킷을 가져다주었다.“잠깐만요.”임시연이 갑자기 입을 열고 직원을 멈춰 세웠다.“이 옷을 산 사람이 있어요?”직원은 머뭇거렸다.“아직이요. 하지만...”“그럼 제가 살게요. 카드로요.”“그...”직원은 어찌해야할지 몰랐다.심지안은 어깨를 으쓱거리고 물었다.“제가 고른 걸 꼭 빼앗아야겠어요?”“웃기지도 않네요. 제가 마침 이 옷이 마음에 들어서요. 게다가 심지안 씨는 이 옷이 안 어울릴 것 같네요.”임시연이 허리를 곧게 펴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됐어요. 그럼 가져가요. 내가 주는 거라고 생각해요.”심지안은 어깨를 으쓱거리고 임시연을 깔보면서 나른한 어투로 얘기했다. 임시연은 표정이 굳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정아현은 큰 소리로 싸우기 시작했다.“무슨 소리예요? 임시연 씨는 곧 우리 왕실로 시집올 사람이에요. 당신은 시연 씨와 싸울 자격도 없어요!”“누구시죠?”정아현은 턱을 치켜들고 소리쳤다.“전 왕실의 사람입니다. 변석환 왕자님이 임시연 씨를 보호하라고 보낸 사람입니다. 그러니 임시연 씨를 괴롭힐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마세요.”심지안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아... 왕실의 고용인이군요?”“이... 이...”정아현은 화가 나서 심지안을 노려보며 소리쳤다.“고용인 따위가 아니에요! 우리 아버지는 왕자님의 운전기사로 10여 년을 일했어요. 거의 가족이라고요.”“쯧, 그저 시녀라고 하면 되잖아요.”심지안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김슬비보다도 못한 사람이었다.임시연은 쇼핑몰 입구를 훑어보더니 눈이 반짝였다. 그리고 시간을 맞춰 심지안에게 얘기했다.“지안 씨. 그런 말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지 말아요. 지금 사회에는 계급의 비천이 없으니까요.”정아현은 감동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임시연 씨, 저를 위해 나서주다니 감사합니다! 이런 사람과 같이 어울리지 말아요. 얼른 직원에게 얘기해 가죽 재킷을 달라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변석환이 쏜살같이 임시연 곁으로 달려왔다.“심지안, 당신 무슨 짓을 한 겁니까!”심지안은 억울했다. 그래서 솔직히 얘기했다.“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바닥에 뭐, 걸려 넘어질 만한 것도 없는데요.”“이래도 변명을 해요? 그럼 시연 씨가 혼자서 넘어진 거라는 소리예요?”“네.”“정말 뻔뻔하군요. 얼른 시연 씨한테 사과해요!”“괜찮아요, 지안 씨 탓이 아니에요...”임시연은 변석환을 보면서 고개를 젓고 조심스레 말을 이어갔다.“우리가 같은 옷을 마음에 들어 했어요. 그저 이 스타일은 지안 씨한테 어울리지 않을 거라고 얘기했을 뿐인데 제 말에 지안 씨가 화가 난 모양이에요.”그 말에 정아현이 바로 옆에서 거들었다.“그러게 말이에요. 그저 귀띔해 줬을 뿐인데 손을 대다니. 정말 성질이 더럽네요.”변석환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어쩌고 싶은 거예요? 돈을 원해요, 아니면 권력이에요. 다 줄 테니까 이만 제경에서 사라져요!”계속해서 임시연을 괴롭히는걸, 참을 수 없었다.이런 사람이 왕실에 들어온다니? 게다가 그의 가족이 된다니.심지안은 흠칫하더니 얘기했다.“난 원하는 게 없어요. 화가 나면 신고해요.”변요석에게 이런 바보 같은 아들이 있다는 건 불운이었다. 서른 살 넘게 먹어서 여우짓도 구분하지 못하다니.“당신은 정말 구제불능이네요! 제 아버지가 당신을 지켜주고 있다고 해서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말아요.”“그래요? 나는 이 대우가 마음에 드는데, 어떻게 할 건데요?”심지안은 화를 내는 변석환을 보면서 그에게 반박할 기회도 주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임시연 좀 잘 데리고 다녀요. 쩍하면 넘어지다니. 이런 몸으로는 애를 낳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임신으로 결혼하려던 계획이 물거품으로 되면 안 되잖아요? 안 되면 병원에 가서 시험관이라도 해봐요. 겨우 임신했는데 나이도 많고 몸이 망가져서 버림받으면 어떡해요? 아, 암도 걸렸었죠? 어휴, 그때까지 살 수는 있겠어요?”임시연의 안색은 파리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