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안은 하품을 하며 얼버무렸다.“알았어. 잘자.”성우주가 대답했다.“네. 내일 늦지 말아요.”통화를 끝낸 심지안은 안대를 쓰고 잠을 청했다.성연신이 변요석과 헤어지기 바쁘게 경찰차 한 대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성연신 씨, 음주운전 혐의로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조사에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그는 미간을 찌푸렸다.“누가 그래요?”그는 오늘 와인 한잔을 마셨다. 하지만 한잔으로는 취하기가 어려웠고 누구도 알아볼 수가 없었다.“성연신 씨, 저희를 난처하게…”“좋아요. 그럼 국장님한테 물어보세요.”“아닙니다. 한 여성분이 익명으로 신고를 하셨습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언론에도 소식이 퍼졌습니다.”이때 여러 명의 파파라치가 은밀한 곳에 쪼그리고 앉아 몰래 촬영했다. 솔직히 그들도 이 일을 맡으려 하지 않았다.성연신은 한바탕 화를 내며 웃었다.깊게 파지 않아도 누가 신고를 했는지 알 수 있었다.결국 성연신은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쪽 경찰국 지도자는 몇 마디 말로 교통경찰 2명을 다른 임무를 수행한다는 이유로 보냈다.어두운 곳에 있던 파파라치들은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고는 흥취를 잃고 자리를 떠났다.마지막 버스를 탄 파파라치는 인터넷에서 심지안이 쓴 SNS를 보게 됐다. 이때는 열기가 높지 않았다. 하지만 이 소식을 보게 된 파파라치에게는 수확이었다.중정원.성연신은 차를 세우고 집으로 들어갔다.그는 세수를 마치고 성우주가 얌전히 자려는지 보려고 했다. 이때, 임시연이 갑자기 차를 몰고 정원으로 들어왔다.성연신은 성채연의 방을 보고 몸을 돌려 가벼운 발걸음으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연신아 우주는 잠들었어?”임시연은 자연스럽게 현관에 가서 슬리퍼를 갈아 신었다.“아마 자고 있을 거야. 우주 방해하지 마.”“그래. 그럼 내일 말하지 뭐. 배고프지 않아? 내가 야식 만들어 줄게.”임시연이 말하면서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그녀는 레이스가 달린 누드 스타일의 타이트한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넥은 U자 형태로
순식간에 임시연은 목덜미 뒤의 솜털이 곤두섰다. 갑작스러운 그의 질문에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평소에 총명하던 사람이라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연신아, 나... 나는 심지안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어. 나는 간호사인 줄 알았어.""허."성연신은 당황한 그녀를 쳐다보며 계속 핍박했다."심지안이 죽기를 기다렸다가 네가 그녀의 자리를 대신하려고 했던 건 아니고?"임시연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변명하려고 머리를 들었다가 번쩍이는 성연신의 눈빛을 보고는 몸서리를 쳤다. 요 몇 년 동안 왜 자신이 성연신에게 점점 대접을 받지 못했는지 이유를 알게 됐다. 그는 이미 CCTV를 복원한 거였다.그녀를 이렇게 오래 참아 줄 수 있었던 것도 성우주 때문이었다.유일한 행운은 당시 그 화재에 그녀가 참여하지 않았다는 거였다.임시연은 숨을 크게 들이쉬며 필사적으로 마음을 가다듬었다."넌 나를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돼. 만약 내가 너와 심지안 사이에 끼어들려고 했다면 나에게는 많은 기회가 있었어. 하지만 난 그렇게 하지 않았어.""이제 더는 우주의 일에 상관하지 않아도 돼.""안돼, 우주는 내 아들이야. 그에게는 내가 필요해."임시연은 급한 나머지 성연신의 옷자락을 덥석 잡았다.성우주가 없다면 그들 사이의 유대는 완전히 끊어질 것이다."두 번 말하고 싶지 않아. 나가."성연신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의 얼굴은 마치 염라대왕처럼 어두웠다. 마지막 인내심도 거의 사라져갔다.임시연은 감히 그를 건드리지 못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정말 조급했다.5년이 지났지만 조금도 진전이 없었다. 그는 송준에게 쓸모없는 바둑으로 버림받고 싶지 않아 입을 열고 말했다."연신아, 우리 잘 얘기 나눠 볼 수 있을까? 난 너의 곁에 오래 있었어. 솔직히 말해서 나보다 너에게 더 적합하고 너의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난 심지안처럼 너를 버리지 않을 거야.""그리고 우주에게도 엄마가 필요해. 우리야말로 진정한 가족이야."성연신의 눈이 세게 몇 번 뛰었다
아침 회의에서 고청민은 여러 임원에게 소개했다."이분은 심지안 씨입니다. 외국에 있는 제 파트너입니다. 오늘부터 그녀를 정식으로 세움 그룹에 입사시켜 잠시 판매 매니저직을 맡겼습니다."심지안은 정장을 입고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안녕하세요. 여러분들이 저에 대해 의문이 있다고 믿습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시간을 주십시오. 제가 회사에 희소식을 가져다줄 것입니다."판매 매니저직은 그가 고청민과 상의한 것이다. 첫째, 쥬얼리로 발전하는 회사는 핵심기술 외에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바로 판매액이었다.세움 그룹은 대형 그룹으로서 디자인 이념이 뿌리 깊기 때문에 그녀는 마음대로 개입하려 하지 않았다.성적을 좀 낸 후에 그녀는 다시 더 높은 자리에 앉을 것을 고려했다."그쪽이라면 일찍이 프랑스 쪽에서 발전하는 게 좋다고 들었어요. 우리와 동료가 되어주어 영광이에요.""맞아요. 우리 함께 세움 그룹에 가치를 창조할 수 있기를 바라요.""판매부에는 지안 씨처럼 능력 있는 젊은 인재가 부족해요.""네. 오늘 퇴근하면 우리 같이 회식해요. 그룹 구성원을 소개해 드릴게요."임원진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총명한 사람들이었다. 사람을 보면 사람 말을 하고 귀신을 보면 귀신 말을 했다.고청민이 하루 전에 외국에 있는 창업자가 오늘 입사한다고 밝혔기에 모두 잘 알고 있었다. 오늘 심지안을 보고 의아함이 들었지만 모두 침착하게 있었다.회의가 끝난 후 고청민은 심지안과 함께 판매부로 향했다. 그는 심지안의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판매부에는 못된 사람이 몇 명 있어요. 억울한 일을 당했다면 참지 말고 잘라버려도 돼요."심지안은 눈을 깜박였다."못된 사람이 판매왕인가요?""당신을 괴롭히는 사람이 합작사 갑이라도 엎어버릴 수 있어요. 우리에겐 돈이 부족하지 않아요."고청민은 목소리가 부드럽고 깨끗한 얼굴에 긴 속눈썹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를 보호하는 말을 대놓고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이상한 느낌 없이 말과 행동이 자연스러
심지안은 입꼬리를 치켜세우며 말했다."그런 일은 임시연이나 할 수 있는 일이야."말하기 바쁘게 그녀는 눈앞의 아이가 임시연의 자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분위기가 약간 미묘하고 어색해졌다.성우주가 맑은 눈으로 심지안을 쳐다봤다."빈틈을 타서 들어가고 싶지 않다며 왜 어제 인터넷에 그런 글을 올렸어요?""농담이지? 네 뜻은 내가 이미 5년이나 참아 줬는데 계속 참아야 한다는 거야?""아니요. 고모가 증거를 내놓지 않았으니 모두 일방적인 말이잖아요.""난 증거가 필요 없어. 진실 여부는 네 엄마가 누구보다 더 잘 알 거야. 반대로 말하면 내 말이진실이기 때문에 네 엄마가 나를 반박할 증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니겠어?"성우주는 말없이 작은 얼굴을 찡그렸다.심지안은 자신이 임시연의 험담을 했다고 불쾌한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리 불쾌하다고 해도 자신이 피해자였다.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옆에 있는 남자아이를 상대하려 하지 않았다.성우주는 조용히 창밖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심지안은 성수광과 함께 프로그램을 다 본 지 이미 한 시간이 지났다.그녀는 태블릿을 가방에 넣고 성우주에게 인사하지 않은 채 의자에서 일어나 입구로 걸어갔다."고모 말이 맞는 것 같아요."성우주가 심지안이 곧 병실 문을 나서려 할 때 갑자기 입을 열었다.그가 기억이 있을 때부터 그의 어머니라는 사람은 확실히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그는 나이는 어리지만 다른 사람의 선과 악을 느낄 수 있었다.그렇지 않으면 왜 아버지조차도 어머니를 좋아하지 않겠는가?진실은 정말 눈앞에 있는 이 여자가 말한 것처럼 그런 것 같았다.물론 또 다른 원인도 있었다. 그는 심지안과 처음 만날 때부터 그녀의 친절함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느꼈다.구체적으로 무엇이 다른지 말할 수는 없었다.심지안은 돌아서서 성우주를 보며 손을 들어 그의 이마를 만졌다."열나지 않는 것 같은데. 왜 헛소리를 하지?"자신의 어머니를 믿지 않고 남을 믿는 아이가 어디 있겠는가.
성연신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어린이는 어른 일에 상관하지 마.""내가 아빠를 도와줄게요.""숙제가 적은가 봐?"성연신은 평범하지 않은 성우주의 마인드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그는 별다른 감정 기복 없이 전화를 걸어 밑에 있는 사람보고 올라고라고 했다.성우주는 입을 삐죽거리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지금 고모가 나는 만나주지만, 아빠는 만나주지 않잖아요. 왜 제 실력을 의심하세요?"속상한 친아들이 내뱉은 말은 치명적이었다.성연신은 이마 양쪽을 질끈 누르며 그를 상대하지 않기로 했다.흰색 가운을 입은 몇 명의 사람들이 곧 병실로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이 병원 의사들이 아니었다.성연신은 침대에 누운 채 혼수상태에 빠진 노인을 바라보며 눈에 알 수 없는 빛을 띠며 말했다."데려가."심지안은 성씨 가문에 도착하자마자 고청민은 무거운 표정으로 그녀를 찾아왔다."감옥에서 전화가 왔어요."심지안은 잠시 멍하니 있었다."감옥이요?""네. 심전웅 씨를 가둔 곳이요.""왜요?"5년 전에 그녀는 심전웅에게 완전히 실망했다. 5년 후의 지금도 말할 것도 없었다. 일부러 말하지 않으면 그녀는 자신에게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심전웅 씨가 암에 걸렸대요. 한 달밖에 살 수 있는 시간이 없대요."고청민은 그녀가 슬퍼할까 봐 걱정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심전웅 씨가 지안씨를 마지막으로 보고 싶대요."심지안이 멈칫하다가 말했다."전 만나고 싶지 않아요."'만나서 뭐해? 잘못을 뉘우치고 잘못을 인정하는 연극이라도 하게?'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무의미하다고 느꼈다."감옥 쪽에서는 그러는데, 심전웅 씨가 지안 씨에게 중요하게 할 말이 있대요."이 말을 들은 심지안은 눈썹을 찌푸렸다. 심전웅이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할지 짚이는 곳이 없었다.그녀가 망설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고청민이 웃으며 제안했다."가봐요. 기껏해야 한 시간 낭비할 뿐이에요. 겸사겸사 지웅 씨에게 지안 씨가 지금 얼마나 잘 지내고 있는지도 얘기해 줘요.
심전웅은 얼굴에 멍이 들고 퉁퉁 부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교도관이 두 사람을 떼어놓았다."난 너희들을 속이지 않았어. 집 별장에 그 남자가 놓고 간 시계가 있어. 아마 지하실 잡동사니를 넣은 공간에 있을 거야."이 말을 들은 심지안은 마음이 복잡했다. 마치 목구멍에 솜뭉치가 끼어 있는 것처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고청민은 약간의 이성을 회복하고는 냉랭한 눈빛으로 말했다."우리가 전웅 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죠?""친자 확인을 하면 되지."심전웅은 또 기침하기 시작했고 호흡이 갈수록 가빠져 갔다. 그는 힘들게 말을 내뱉었다."나에게는 시간이 얼마 없어. 그래서 진실을 너에게 알려주려고 했어."그는 자신이 바람을 피운 것이 먼저라는 것을 인정했지만 그가 심지안을 귀여워하지 않는 것도 이 이유가 절대적이라고 말했다.감옥에 들어가기 전, 그는 줄곧 심지안의 몸에 흐르는 피가 자신의 피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그녀가 더럽다고 생각했다.어쩌면 사람이 죽을 때가 돼서야 깨달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그는 일생 자신의 아이가 한 명도 없었지만, 심지안은 예전에 그를 줄곧 아버지로 대했다. 하지만 그는 그 시절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었다.교도관이 심전웅을 데려갔다.심지안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그의 말을 진실로 여기지 않으려 했지만, 별장으로 향하는 그녀의 발 결음은 그녀의 진실한 생각을 말해주고 있었다.고청민도 막지 않았다. 그는 그녀와 마찬가지로 심전웅의 말을 의심했다.두 사람은 차를 몰고 심씨 가문의 별장에 도착했다. 그들은 심전웅이 말한 대로 창고에서 낡은 시계를 하나 찾았다.고청민은 그 시계를 자세히 보고 곧 이 시계의 가치가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을 눈치챘다."이 시계는 20년 동안 전 세계를 풍미한 브랜드 시계예요. 이 제품은 전 세계에 세 개밖에 없는 시계예요. 심전웅 씨의 그때 당시 경제 수준으로는 아마 살 수 없는 시계일 거예요."심지안은 숨을 푹 내쉬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고청민은 그녀의
김민수는 버럭 화를 내며 임시연의 손목을 잡고 밖으로 잡아당겼다.두 사람이 아파트 아래층에 있는 자동차 앞으로 갈 때까지 임시연이 아무리 반항하고 발버둥 쳤지만, 그는 무관심했다.김민수는 임시연을 놓아주고 자동차 조수석에 있는 소녀를 안았다.어린 소녀는 생기발랄하고 피부가 하얗고 부드러웠으며 눈이 동그랗고 컸다. 활력이 넘치는 양 갈래를 묶고 있었다. 다만 눈빛이 좀 멍청해 보였다. 정상적인 나이의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미희야, 엄마라고 해봐."김민수는 온화한 목소리로 소녀를 인도했다.소녀는 아는 듯 모르는 듯 임시연을 바라보며 작은 입을 살짝 벌렸다."엄마.""아아악!"임시연이 비명을 질렀다. 마치 큰 자극을 받은 듯 손바닥으로 소녀의 뺨을 때렸다."꺼져!"어린 소녀는 맞아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듯 멍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이런 상황은 시시각각 임시연에게 눈앞의 아이는 지력결함이 있는 아이라는 것을 일깨워줬고 이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는 것을 알려줬다.임시연은 얼굴을 비틀며 화가 풀리지 않는 듯 다시 손을 들어 어린아이의 뺨을 때렸다.한 번, 두 번, 공기 속에 '짝짝' 하고 뺨을 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구체적으로 어떤 소리인지 표현할 수는 없지만 맑은 소리였다.김민수는 충격에서 벗어난 뒤 임시연을 밀치고 어린 여자아이를 품에 안고 욕설을 퍼부었다."너 미쳤어!? 네가 사람이야? 얜 네 딸이야!""걘 내 딸이 아니야! 난 너희들을 몰라. 그러니 더는 나를 귀찮게 하지 마!"임시연은 독설을 퍼붓고 재빨리 현장을 빠져나갔다.김민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임시연에 대한 마지막 기대도 사라졌다.어떤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회개하지 않는다.고청민이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 회색 하늘 아래 그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앞길이 창창한데 왜 굳이 뒤로 물러나려 해요?"임시연에게 있어서 아이는 결코 그의 양심과 모성애를 불러일으킬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럴 마음이 없었다. 그녀의
어렴풋이 심지안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너무 빨라서 그녀도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다만 이 순간, 그녀는 방매향과 만난 적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심지안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몸을 기댄 채 교활한 눈빛으로 말했다."몇 가지 성공 방안만으로는 부족해요. 나는 매향 씨가 나를 도와 함께 다음 마케팅 기획을 완성하기를 바라요."옆에 있던 고청민이 이 말을 듣고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방매향도 시원스럽게 대답했다."네. 그러도록 하죠."그녀가 떠난 뒤 고청민은 책상 위의 만년필을 들고 손가락 사이에 끼운 채 돌리며 놀았다."방매향을 떠보는 거예요?"심지안은 머리를 흔들었다."반은 맞아요. 그녀가 판매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반드시 남다른 점이 있었을 거예요. 난 그녀가 어딘가 좀 익숙하게 느껴졌어요. 이를 통해 거리를 좁혀 추억을 잘 회상해 보려고요."고청민의 눈빛이 깊어졌다. 방매향이 회사에 들어온 지 몇 년이 되었다. 당시 면접관은 방매향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비록 이력서에 공백이 있었지만 방매향은 드랜드 업종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특히 부자들의 쇼핑심리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입사를 시켰다.방매향은 집에 돌아간 후 예전에 자신이 성공한 사례를 심지안의 메일에 보낸 뒤 또 새로운 기획방안에 대한 자신의 사고방식을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초청장을 잊지 말 것을 적어 보냈다.메일을 받은 심지안은 재빨리 초청장을 그녀에게 택배로 보내줬다.연구회 당일, 방매향은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초청장을 실수로 잃어버렸으니 한 장 더 보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심지안은 보내주고 싶지 않아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그러자 방매향은 바로 이어 말했다."다음 달 실적이 10% 향상될 것을 보장할게요.""위치 보내요. 제가 직접 가져다드릴게요."그녀가 정말 초대장을 가져다주러 간다고? 방매향이 그렇게 믿을 만한 사람인 걸가?방매향, 한 사람의 업적은 부서의 다른 사람들을 합친 것의 두 배였다.돈을 벌
흥분을 가라앉힌 후, 심지안은 자신이 5년 전 해외에서 살았던 작은 별장과 흡사한 곳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외부 경관이 달라 의아해하며 말했다.“5년 전과 똑같은 별장을 지었어요?”고청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다가 기침을 몇 번 하며 대답했다.“맞아요. 거의 차이가 없죠?”심지안은 방 안의 모든 물건을 둘러보며 고청민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조금 부드러워졌고, 마치 그를 가족으로 생각했던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어떻게 하지원을 설득했어요?”그녀는 고청민이 하지원을 이용하여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든 것에 의아함을 감추지못했다.“한마디 했더니 바로 승낙했어요.”고청민은 미소를 지었다.하지원은 이처럼 온 마음을 다해 고청민을 따랐다.심지안은 복잡한 마음으로 물었다.“하지원 씨에게 미안하지 않아요?”고청민은 아무런 감정 없이 말했다.“보상해 줄 거예요.”‘보상? 어떻게 보상할 건데? 여자의 청춘을 어떻게 보상할 건데...’심지안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반박하지 않았다.하지원에게는 그저 사랑이었으니까...“밤새 아무것도 안 먹어서 배고프죠? 지안 씨가 좋아하는 비빔면을 준비해 뒀어요. 게살 비빔면이요.”고청민은 웃으며 심지안에게 말했다.“지안 씨가 분명 좋아할 거예요.”심지안은 배가 고파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식탁에 다가가기 전, 그녀는 게살 비빔면의 향긋한 냄새를 맡았다.고청민은 게살 비빔면을 그녀 앞에 놓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먹어요. 제철 대게는 정말 맛있거든요.”심지안은 망설임 없이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그의 말대로 정말 맛있었다. 커다란 게살이 면과 어우러져 입안 가득 풍미를 더했다.고청민의 뜨거운 시선에 심지안은 불편해하며 말했다.“청민 씨도 먹어요. 나만 보지 말고...”고청민은 미소를 지으며 젓가락을 들어 면을 집어 먹으려 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기침이 그를 멈추게 했다.연달아 몇 번의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점차 그의 가냘프고 쇠약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기침이 점점 심해지자 그
집에 돌아온 후, 성연신은 성우주를 재우고 나서 긴급한 회사 업무를 처리했다. 일을 마치고 나니, 이미 새벽 3시가 넘어 있었다.성연신은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어 고청민의 상황을 물어볼까 했지만, 숙면을 방해할까 봐 포기했다.다음 날 아침, 성연신은 일찍 깨어났다. 시계를 보니 6시 30분이었다. 그는 심지안이 오늘 세움의 신제품 출시 준비로 일찍 출근할 거로 생각하고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으려 했다.이때 손이 미끄러져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렸고, 주어 보니 액정이 나가 있었다.갑작스러운 실수에 그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깨진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불안감이 스며들었다.성연신은 다른 휴대폰으로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결국 부재중으로 받지 않았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성씨 가문으로 출발했다.성씨 가문에 도착했을 때, 성동철은 막 깨어나서 정원에서 산책 중이었다.성연신으로부터 두 사람이 지난밤 함께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성동철은 고청민이 출발 직전에 했던 말이 떠올라 이마를 찡그렸다.‘그 녀석이 설마...’성연신은 성동철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급하게 물었다.“어르신, 혹시 지안 씨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어디죠?”“해외에 있을 가능성이 크네.”성연신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무슨 말씀입니까?”성동철은 고청민이 출발 전에 했던 특별한 부탁을 성연신에게 말해주고, 동시에 고청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성연신은 주먹을 꽉 쥐고 심지안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다. 한참의 신호음 끝에 전화가 연결되었다.“지안 씨, 어디에 있어요?”“성연신 대표님, 접니다.”고청민의 평온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고, 성연신의 신경을 자극했다.성연신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이 자식아, 지안 씨를 어디로 데려간 거야?”“우리는 해외에 있어요. 안전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고청민은 계속해서 말했다.“지안 씨를 며칠만 빌리는 셈이에요. 너무 무리한 일은 하지 않을 테니, 흥분하지 마세요
“네. 할아버지, 그러니 제발 막지 말아 주세요.”“지금 나와 상의하는 게 아니라 통보하는 거구나!”“할아버지, 용서해 주세요.”성동철은 입을 열었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한순간에 십 년은 늙은 것처럼 보였고, 무력한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한참 후에야 그는 천천히 말했다.“해외 전문가와 이미 연락을 취했으니, 너는 안심하고 치료에 전념해라. 우리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청민은 그의 고집을 읽고 눈을 깜빡였다. 긴 속눈썹이 갑자기 젖어 들었다.사실, 그도 할아버지와 몇 년 더 함께하고 싶었다.집에 돌아오니, 성동철이 연락한 해외 전문가로부터 답변이 도착해 있었다. 그들은 신의라 불리는 의사가 이미 고청민을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자신들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고청민은 낙담하지 않고 오히려 성동철을 안심시키며 주제를 돌렸다.“할아버지, 해외로 며칠 다녀오고 싶어요. 오랫동안 여행을 못 갔어요.”“안 돼. 네 몸 상태로는 그렇게 멀리 갈 수 없어!”성동철은 단호히 거절했다. 그는 아직 민채린의 스승에게 도움을 청해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그러나 고청민은 말했다.“민채린이 해외에 있어요. 그녀가 옆에 있으면 할아버지도 안심하실 거예요.”“민채린?”성동철의 얼굴에 희미한 희망의 빛이 떠올랐다.“그렇다면 민채린의 스승에게 직접 찾아갈 수 있는 거니?”“제 병에 대해 이미 채린이의 스승님께 여쭤봤어요.”“결과는 어땠니?”“스승님께서 알려줄 수 있는 것은 모두 알려 주셨어요. 하지만 정말 치료하기 어려운 병이래요.”성동철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실망을 느꼈다.결국, 그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그래. 가고 싶다면 가도 좋아. 다른 환경에서 지내는 것이 네 몸에도 좋을 거다.”게다가 민채린이 옆에 있으니, 문제가 생기더라도 신속히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오늘 바로 떠나려고 해요.”“이렇게 갑자기?”“그냥 즉흥적으로 생각한 거예요. 가고 싶을 때 가야죠.”고청민은 말하며 눈치를 보지 않았다
30분 후, 성동철과 고청민이 병실에서 나왔다. 성동철은 걱정스럽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의사가 병원에 며칠 더 있으라 했잖니? 왜 말을 안 들어? 적어도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이렇게 급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되잖아. 치료 시간을 늦출 수도 있다고...”고청민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창백한 얼굴은 햇살처럼 부드러워 보였다.“괜찮아요. 집에 있는 의료 장비로도 충분해요.”성동철은 한숨을 쉬며 더 이상 고집하지 않았다.‘집에 있는 것도 나쁘지 않지. 집에 있으면 이 녀석을 더 볼 수 있잖아...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일이고...’성동철은 운전기사에게 차를 병원 앞에 대라고 지시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그는 병원 입구의 벤치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주변을 둘러보며 의아해했다.“지안이 여기 앉아 있지 않았니? 어디 갔지?”고청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고운 속눈썹은 한껏 아래로 드리워 있었다. 눈에 감춰진 복잡한 감정이 보이지 않게 덮여 있는 것 같았다.“그리고 지원이도 보이지 않네. 네가 전화를 걸어 연락해 봐. 이제 집에 가야 한다고...”성동철은 난처한 표정으로 고청민에게 말하며,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는 계속 부재중이었다.고청민은 하지원에게 전화를 걸지 않고 바로 말했다.“지원이 오빠가 찾으러 왔어요. 아마도 지안 씨는 갑자기 일이 생겨서 간 것 같아요. 저희 먼저 집에 가죠.”성동철은 방금 의사가 자신에게 따로 했던 말들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빨리 집에 가서 외국의 의료 전문가들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그래. 우리라도 먼저 가자.”‘성연신이 지안이를 데려갔을 수도 있어. 어쨌든 지안이는 다 큰 어른이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야.’넓은 승용차 안에서, 고청민이 갑자기 성동철에게 말했다.“할아버지, 제가 죽으면 제 심장을 지원이에게 주세요.”어차피 죽으면 남겨둘 이유가 없으니,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덕을 쌓는 일일 것이다.성동철은 얼굴빛이 변하며 호통쳤다.“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심지안은 차가운 눈빛으로 하지원을 바라보며 말했다.“모든 사람이 자기를 좋아하지도 않는 상대방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인생을 바칠 수 있는 것은 아니야.”심지안은 사랑의 위대함에 감탄했지만, 그런 희생정신을 가질 수는 없었다.하지원은 심지안의 말을 정확하게 알아듣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왜냐하면 난 인간미가 있고, 지안 씨는 없으니까요. 임시연이 당신 앞에서 죽었을 때, 살아있던 한 생명이 죽었는데도 지안 씨는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인 것처럼 무관심했잖아요.”심지안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지금까지의 무심한 태도를 거두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하지원을 쳐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맞아요. 임시연은 내 아이를 훔치고, 내 남자를 빼앗고, 내 결혼을 망쳤어요. 게다가 여러 번 나를 죽이려고 했었죠. 이번에 죽은 사람이 임시연이 아니었다면, 다음번에 죽을 사람은 나일 수도 있어요. 지금 임시연이 죽어서 폭죽이라도 터뜨리고 싶은 마음이니까, 자기 일 아니라고 그런 쉬운 소리 하지 마세요!”처음에는 임시연의 죽음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곧 심지안은 깨달았다. 임시연의 죽음은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으며, 그녀는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임시연은 살아서 더 많은 사람을 해치려 했기에 어쩌면 이렇게 죽는 것이 더 나은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원은 심지안의 큰 목소리에 깜짝 놀라 얼굴이 창백해졌고, 잠시 말을 잃었다.“지원 씨는 사랑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난 아니에요. 날 냉정하다고 생각해도 좋아요.”심지안은 하지원과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하지원도 불쌍한 사람일 뿐이었다. 심지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로 들어가려 했다. 한 발을 내딛자, 하지원이 다시 말을 걸었다.“정말로 청민 선배를 도와줄 생각이 없는 거예요? 사람 하나 구한다고 생각해 줘요... 평생 고마워할게요.”심지안은 잠시 멈칫했지만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그건 도움을 청하는 게 아니라 도덕적 강요에요.”심지안은 친구로
성동철은 깜짝 놀라 지팡이도 잊은 채 급히 움직였다. 카펫에 걸려 넘어질 뻔했지만, 한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휘청거리며 2층으로 올라갔다.집사는 구급차를 부르기 위해 전화를 걸었고, 남은 하인들은 손님들을 휴식 공간으로 안내했다. 연회 내내 활기찼던 분위기가 갑자기 혼란스럽고 긴장된 분위기로 바뀌었다.심지안은 찡그린 얼굴로 성동철의 뒤를 따라 고청민의 방으로 들어갔다.커튼은 빛 한 줄기도 들어오지 못하게 꽉 닫혀 있었지만, 문을 열자 짙은 피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하인이 먼저 한 발 앞으로 나서서 전원 스위치를 켜자, 방 안은 갑자기 밝아졌다.우드톤 가구들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옷들도 정리되어 소파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심지안은 방 안을 둘러보았지만, 고청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심지안은 약간 열려 있는 화장실 문을 바라보며, 눈빛이 어두워졌다.이때, 하지원이 화장실을 가리키며 말했다.“안에 있어요.”성동철은 떨리는 손으로 화장실 문을 열었다. 안은 엉망진창이었다. 바닥에는 붉은 핏자국이 가득했다.고청민은 욕조 안에 누워 있었다. 옷은 물에 젖어 축축하게 몸에 붙어 있었고, 두 손은 욕조 가장자리에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머리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입가에는 피가 묻어 있어 원래 창백한 피부가 더욱 하얗게 보였다.고청민은 말라비틀어진 채 생기가 전혀 없는 모습이었다.성동철은 이마에 땀을 흘리며 손가락을 고청민의 코 밑에 대어 보았다. 그는 길게 숨을 내쉬며 하인들에게 소리쳤다.“구급차가 일찍 도착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 빨리 차에 태워서 병원으로 데리고 가!”하인들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고청민을 욕조에서 꺼냈다.심지안은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겁에 질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심장이 빨리 뛰었다. 그녀는 혼이 나간 하지원을 바라보았다.“청민 씨... 어쩌다 이렇게 된 거죠? 왜 이렇게 피를 많이 흘린 건가요?”이 상황이 마치 자살을 암시하는 것 같았지만, 하지원은 그 말을 입 밖에
심지안은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했다.“말 좀 해봐요. 정말 시연 씨가 죽길 바란 거예요? 시연 씨가 죽으면 속 시원할 것 같았냐고요!”변석환은 심지안에게 소리쳤다. 울부짖는 변석환의 두 눈은 심하게 충혈되어 무섭게 보였다. 그리고 그의 큰 목소리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변요석과 성연신이 먼저 달려왔다. 성연신은 심지안을 보호하며 변석환을 몇 걸음 뒤로 밀어냈다. 성연신의 행동은 냉담하면서도 약간의 분노가 섞여 있었다.“지안 씨 앞에서 임시연 그 여자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마. 다시 한번 실수하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하하하! 살인범을 감싸고 도는 건가요?”변석환이 큰 소리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맞아요. 시연 씨의 죽음에는 당신과 심지안 씨도 책임이 있어요.”“퍽!”변요석은 변석환의 얼굴을 한 대 때렸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정신 차려. 임시연은 원래 죽어 마땅한 여자야! 더 이상 나를 창피하게 만들지 마!”변석환은 변요석을 바라보며, 맞은 얼굴을 손으로 문지르며 중얼거렸다.“원래 죽어야 했고... 맞아... 나를 속이고 이용했어... 죽어 마땅한 여자야...”하지만 변석환은 스스로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잠을 잘 수도, 밥을 먹을 수 없었다.임시연이 죄를 지었음을 알고 있었지만, 변석환은 여전히 너무나도 힘들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녀를 미워하면서도 그녀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변요석은 주변에 지켜보는 눈이 많다는 것을 의식하며 분노를 억누르고 변석환에게 경고했다.“지금 당장 성씨 가문을 떠나. 네가 정신 차리고 지안 씨에게 사과할 준비가 되면... 그때 돌아와.”변석환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비틀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순간, 사람들 사이로 문득 익숙한 그림자를 본 것 같았다.변석환은 그 그림자를 쫓아갔지만,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변석환은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고, 그제야 그것이 자신의 착각임을 깨달았다.살아 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보다 더 큰 고통을 겪는다. 임시
자책하는 심지안을 보는 성연신은 가슴이 아픈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당연히 아니죠. 임시연의 죽음은 지안 씨와 아무 상관없어요. 그러니까 혼자 그런 생각 하지 마요.”심지안도, 성연신도, 그 누구도 임시연이 거기서 뛰어내릴 거라고는 생각 못 했을 것이다.임시연이 심지안 앞에서 그리고 성원 그룹에서 죽은 건 심지안과 성연신에게 트라우마를 남겨주기 위해서였다.만약 제가 잘못되어 죽는다 해도 살아있는 사람들도 마음이 편하진 않을 테니까 그걸 노리고 뛰어내렸던 것 같다.성연신도 놀라긴 했지만 직접 본 게 아니니 그리 큰 충격은 받지 않았는데 문제는 심지안이었다.물론 임시연도 죽을 줄은 모르고 뛰어내렸겠지. 그냥 크게 다쳐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게 감옥에 있는 것보단 나으니까 뛰어내린 걸 텐데 이렇게 죽어버려서 심지안만 힘들어하고 있었다.심지안은 공허한 눈으로 성연신을 보며 웃어보려 했지만 표정이 잔뜩 굳어있어서 웃는 게 우는 것보다 더 이상했다.“당신 말이 맞아요. 임시연은 천벌 받아서 죽은 건데 내가 기뻐하는 게 맞죠.”“그래요, 안 뛰어내렸어도 경찰한테 잡혀서 자유롭진 못했을 거예요.”성연신은 심지안의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내가 지안 씨더러 임시연 잡아놓으라고 한 거잖아요. 귀신이 되어도 날 찾아올 거니까 지안 씨는 아무 걱정 하지 마요.”그때 오지석이 사실은 사람들을 데리고 올라오려 했지만 임시연이 미리 눈치를 채고 송준에게 도움을 청할까 봐 성연신이 말렸었는데 임시연이 이렇게 극단적인 사람인 줄 알았더라면 심지안을 절대 혼자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알겠어요.”긴장이 풀렸는지 심지안이 눈을 살짝 감으며 말했다.“나 아까 제대로 못 쉬어서 좀 잘래요.”“그래요, 내가 옆에 있을게요.”“네, 할아버지랑 우주한테는 나 병원에 있단 말 하지 마요.”“네.”가족들이 괜히 걱정할까 봐 신신당부를 하고서야 심지안은 침대에 누웠다.제 앞에 앉아있는 듬직한 성연신을 보니 안심이 되는지 그렇게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한편 성연신은
그렇게 회의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누구는 임시연을 구하겠다고 1층으로 달려 내려가고 누구는 창가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아직 살아있어요!"그 모습을 보고 있던 심지안은 사람들의 인영이 환영처럼 눈 앞을 스쳐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머리도 어지럽고 귀에 까지 이명이 들려 온 세상이 흐릿하게 보였다.임시연이 뛰어내리는 결말을 예상해본적은 없었는데, 3층이 아주 높진 않지만 그렇다고 낮은 층수도 아니었다.조금 정신을 차린 심지안은 사람들의 질책이 담긴 시선을 느꼈다. 그들은 저들끼리 수군대며 심지안을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사모님도 너무 하시지, 어떻게 사람을 뛰어내릴 때까지 몰아붙여? 저러면 밤에 악몽 안 꾸나?""그리고 왜 자꾸 연다빈 씨한테 임시연이라고 하는 거야? 너무 간 거 아니야?""다빈 씨가 죽기라도 하면 어떡해? 그럼 사모님이 살인자 되는 거야?""다빈 씨가 귀신 돼서 사모님한테 복수하겠다고 찾아올 것 같아요."그 말을 듣고 있던 심지안은 이마에 힘을 주며 소리질렀다."내가 몰아붙인 거 아니고 본인이 뛰어내린 거야. 나랑 상관 없다고."심지안의 호통에 수군거림은 사라졌지만 그녀를 보는 시선은 여전히 매정했다.다들 "연다빈"에게 일이 생기면 심지안 책임으로 돌릴 준비가 되어있는 듯 싶었다.심지안은 애써 심호흡을 하며 현기증을 이겨내려 했다. 그리고 구급차를 부르려고 뒤를 돌 때 마침 이곳으로 뛰어오는 성연신과 오지석을 발견했다.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는 성연신이 빠르게 다가와 심지안의 어깨를 잡으며 주드럽게 다독였다."괜찮아, 내가 왔잖아. 내가 알아서 할게."속눈썹이 떨릴 정도로 긴장하고 있던 심지안은 마침 다가오는 성연신을 보고 무슨 말이 라도 하려고 입을 벌렸지만 말을 채 내뱉기도 전에 다리에 힘이 풀리며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시간이 조금 흘러 심지안이 눈을 뜬 곳은 병원이었다.흰 벽과 소독약 냄새, 그리고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성원 그룹 직원 자살 사건은 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