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철의 흰 눈썹이 찌푸려졌다. 그는 한숨을 쉬고 부정하지는 않았다.“중요한 건, 심지안은 성연신의 아내라는 거야.”“할아버지, 두 사람은 진작 이혼했어요. 21세기인데 좋아하는 여자한테 매달리는 게 잘못된 거예요?”물론 고청민도 심지안이 성연신의 아이를 임신한 채 시집오기를 바란 건 아니었다.하지만 더 이상 심지안에게 미안한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그런 모습으로 성씨 가문에 들일 수는 없다. 네 할애비 걱정은 안 하는 거냐?”고청민은 성동철 절친의 손자다. 십여 년 전에 성동철에게 맡겼다. 그러니 성동철은 고청민을 잘 키우고 바르게 키워야 했다. 결혼은 소꿉놀이가 아니다. 성동철은 고청민이 어린 나이에 아직 뭘 몰라서 이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웃어른으로서 심지안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조금 불쌍하게 여겨졌다.하지만 심지안이 고청민에게 시집오는 것은 두 손 두 발 들고 반대할 것이다.고청민은 성동철을 보면서 정색하고 얘기했다.“만약 지안 씨가 할아버지의 외손녀라면요? 그래도 창피합니까?”성동철은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았다. 만약 자기 외손녀가 애를 가진 상태로 이혼까지 했다면 정말 가슴이 찢어질 것이다.그런 외손녀가 창피하다는 사람이 있다면 성동철은 바로 참지 않고 이 세상에서 치워버릴 것이다.내로남불이지만, 누가 자기 자식을 소중히 여기지 않겠는가.하지만 심지안은 그의 손녀가 아니다. 고청민이야말로 친손자에 가까운 아이다.성동철은 쓸데없는 질문에 대답하고 싶지 않아 손을 저으며 얘기했다.“사당에서 3일 동안 나오지 마. 그 안에서 잘 생각하고 나와.”고청민은 웃으면서 얘기했다.“그럼 할아버지께서 다시 세움으로 돌아와 주셔야겠네요. 사당에 오랫동안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중정원.심지안은 거실에 앉아 조용히 성연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성연신은 원래 병원으로 가려고 했지만 잠깐 고민하다가 운전 중인 정욱에게 얘기했다.“먼저 중정원으로 간다.”“네.”오후 여섯 시.”심지안은 주차 소리를 듣고
심지안은 성연신이 만족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서 입술을 달싹이다가 얘기했다.“인터넷에 공개 사과도 할 수 있어요. 우리의 사이는 모두 내 탓이라고요. 연신 씨와 임시연 씨와는 아무 관계도 없고, 그냥 다 제 탓이라고 할게요. 그러면 되나요?”성연신이 심지안을 놓아줄 수만 있다면 심지안은 뭐든지 다 할 수 있었다. 바람을 피웠다고 인정할 수도 있었다.심지안은 이제 시비를 가릴 힘도 남지 않았다. 모든 일이 힘들었다.이번 관계에서, 심지안은 결국 졌다.성연신은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부드럽기만 하던 심지안의 입술에서 비수 같은 말이 날아와 그의 가슴에 박혔다.이젠 반항도 하지 않다니.그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뜨며 심지안의 턱을 잡고 자기를 보게 만들었다.“나랑 헤어지기 위해서 이미지가 추실 되어도 괜찮다는 건가요?”심지안은 고개를 들고 자조적으로 웃으면서 얘기했다.“내가 스스로를 버리려고 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내가 어쩔 수 없는 일들은 흘러가게 내버려둬야죠.”솔직히 악플이 하나 달리는 건 괜찮았다. 하지만 수많은 악플은 곧 그녀를 죽일 것이다.성연신은 멈칫하더니 고민하는 눈빛으로 얘기했다.“아직 생각을 정리하지 못했어요. 시간을 좀 줘요.”사랑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다. 아무리 강한 남자도 이 충격적인 사실 앞에서는 힘들어할 것이다. “됐어요. 억지로 그럴 필요 없어요.”심지안은 그의 손을 뿌리치고 힘겹게 얘기했다.사랑은 절대적이어야 한다. 심지안은 임시연의 아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성연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지안 씨.”성연신은 우울한 말투로 말하며 조금 화가 난 듯 심지안을 쳐다보았다. “날 떠나지 마요. 이번 생에는 불가능할 테니까.”심지안의 눈빛이 약간 떨렸다.“날 잡으려는 거예요?”성연신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심지안의 어깨를 잡고 그녀의 눈을 보면서 물었다.“그렇다고 하면요?”“하지만 난 잡혀 주지 않을 거예요.”심지안은 망설임 없이 담담하게 얘기했다.깨진 컵은 다시 붙일
“이만 가요. 내가 얘기한 것도 잘 생각해 봐요. 나는 맞춰줄 생각이 있으니까요.”심지안은 성연신이 뭐라고 하기 전에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쓰고 웅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잠에 든 것 같았다.성연신은 침실 밖에 서서 그녀의 뒷모습만 계속 바라보았다.그저, 한 번도 심지안을 버리려고 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었다.전에는 그저 정말 화가 났을 뿐이다.정말 심지안에게 상처 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사실 심지안도 성연신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사랑은 서로의 의심과 선택 속에서 닳아 사라진 것이라고.두 사람의 사랑에는 원래 제삼자가 끼어들면 안 되는 법이었다....장학수는 성원 그룹의 사건을 받고 중정원에 와서 성연신과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다가 성연신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얘기나 들을 겸, 또 문제를 해결해 줄 겸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하지만 다 듣고 나니 장학수가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그래서 그는 연애 고수인 손남영을 불러왔다.“아, 지안 씨와의 일을 아직도 해결 못한 거예요?”바로 앉은 손남영은 바로 귤을 들고 까먹었다.성연신은 미간을 매만지며 얘기했다.“결정을 번복하려고 했는데 그것도 싫대.”“형이 결정을 번복한다고요?”손남영은 놀라서 귤을 뱉어냈다. 그 덕분에 맞은편에 앉은 장학수가 봉변을 당해 얼굴이 귤즙으로 가득했다.그는 티슈를 뽑아 얼굴을 닦으며 짜증을 내고 얘기했다.“입에 있는 건 다 먹고 얘기하지. 더럽게.”손남영은 그를 상관하지 않고 성연신 옆으로 와서 물었다.“정말 양아버지가 되려고요?”성연신은 담배를 깊게 들이빨았다. 자욱한 연기가 그의 얼굴을 가려 표정을 볼 수는 없었지만 목소리는 매우 진중했다.“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원칙은 다 쓸모없는 거더라고.”죽기 직전에서야, 성연신은 자기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손남영이 멍해서 물었다.“무슨 일이에요?”장학수가 손남영을 노려보며 얘기했다.“비밀 조직의 사람이 나섰대. 몰랐어?”“난 요즘 바빠서
이튿날 일어나보니 세 사람은 모두 떠났다.거대한 방에는 심지안, 한 사람만이 남았다.전과 같이 그녀의 자유를 구속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심지안은 가고 싶은 곳에 마음대로 갈 수 있었다. 다만 보디가드가 반드시 따라붙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심지안은 성연신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갑자기 다른 사람처럼 변한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이제는 핸드폰을 쓸 수 있으니 진유진은 심지안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대화를 조금 나눴다.“내가 놀러 갈까? 어차피 휴가라서 할 일도 없어.”심지안은 잠깐 멈칫하더니 물었다.“중정원에 오게?”“응. 너 혼자서 심심하잖아. 밖에서 만나면 보디가드들이 많이 따라붙을 거고.”한번 나가는 데 이렇게 많은 보디가드들을 데리고 다니면 모르는 사람이 보고 조직 보스의 애인이라도 되는 줄 알 것이다. “그래. 와.”심지안은 시간을 대충 계산해 보았다. 성연신은 잠시 오지 않을 것이다.40분 후, 진유진이 많은 음식을 들고 들어왔다. 그리고 심지안을 보며 턱을 치켜들고 의기양양하게 얘기했다.“과자 좀 샀어. 임산부가 먹어도 된대.”심지안은 눈을 깜빡였다. 눈물이 차올라 진유진을 꽉 껴안고 얘기했다.“역시 네가 최고야.”“으이구, 됐어. 안 속아. 이거 들고 있는 내 팔이 다 아파.”“내려놔도 괜찮아.”심지안은 그녀를 감시하는 가정부에게 얘기했다.“이걸 2층에 있는 제 방으로 가져가 주세요.”가정부는 조금 짜증이 났지만 그저 짐을 들고 작게 중얼거렸다.“난 집안일을 하러 온 거지 이런 일을 하러 온 게 아닌데...”“그럼 맡은 일만 해요. 보디가드처럼 저를 하루 종일 감시해도 월급은 안 오를 테니까요.”“...”중얼거리는 것까지 보아내다니. 게다가 바로 말대꾸까지 하다니.도대체 성 대표님이 왜 이런 여자를 마음에 두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진유진이 와주어서, 심지안의 기분은 많이 나아졌다.두 사람은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동창들의 얘기부터 회사 상사까지, 모두 두 사람의 화
진유진은 굳어버린 채 귀를 의심하며 물었다.“뭐라고요?”갑자기 성연신이 이렇게 착하게 나온다니.“장홍수의 작품이 마음에 들면 다 가져가요. 여기에서는 자리만 차지하는 것들이라.”그러더니 뒤에 있는 정욱에게 얘기했다.“도와서 옮겨줘.”정욱은 고개를 끄덕이고 지하실로 가서 옮겨주었다.성연신은 현관에서 신발을 갈아신고 놀라서 굳어버린 진유진을 보다가 얘기했다.“저번 주, 병원에서는 내가 충동적이었어요.”진유진은 성연신이 사과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조각상을 몰래 가져다려던 것이 들통나서 성연신과 대들 용기도 없었다.“네... 알겠어요...”성연신은 침실 쪽을 바라보더니 얘기했다.“시간이 되면 지안 씨를 보러 자주 와줘요. 혼자 이곳에서 머무르면 답답할 테니까.”진유진은 그 얘기가 싫었다.“그럼 놓아주면 되잖아요.”“지금은 안 돼요.”비밀 조직은 위험한 사람들이었다. 성연신이 한눈을 팔면 언제든지 심지안을 공격해 올 수도 있다. “나중에는 놓아줄 거예요?”진유진이 비웃듯이 얘기했다.“나중에도 안 돼요.”성연신의 목소리에는 고집스러움이 묻어있었다.진유진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말을 아꼈다. 쳇, 하고 코웃음을 치고 정욱을 찾으러 갔다. 그리고 작은 조각상을 돌려주며 얘기했다.“전 쓰레기가 주는 물건은 안 받아요!”조각을 받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성연신이 그녀를 업신여기게 할 수는 없었다.정욱은 사람만큼 큰 조각 두 개를 겨우 옮겨 나왔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는 진유진을 보고 바로 그녀의 입을 막았다.“제발 가져가요. 내가 어떻게 꺼낸 건데. 이미 충분히 힘들어요.”진유진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정욱이 진유진을 끌고 사라졌다. ...샤워를 마친 성연신은 가정부가 한약을 데워서 가려는 것을 보고 얘기했다.“이리 줘요.”“제가 할게요. 아가씨가 한약만 보면 진정하시지 못해서, 성 대표님이 가시면 더욱 안 좋을 수 있어요.”“괜찮습니다.”가정부는 굳게 닫힌 침실의 문을 보며 어쩔 수 없이 한약을 성연신에
심지안은 이상한 표정으로 성연신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성연신은 그녀가 감동한 줄 알고 얘기했다.“좋아하는 것 같아서 그 브랜드에 투자했어요. 선진 그룹 바로 옆에 개업했을 거예요.”그와 동시에 심지안의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해 보니 진유진이 보낸 것이었다.「미친, 내가 뭘 봤는지 알아? 성연신이 너를 위해 프렌차이즈를 열었어. 이름도 S&S라고, 네 성에서 따온 거야.」“...”성연신은 가볍게 기침하고 얘기했다.“이건 그쪽 브랜드에서 감사의 의미로 적은 겁니다.”“연신 씨, 이렇게 힘 빼지 말아요.”성연신은 마음이 무거워졌다.“왜요?”“전 연신 씨를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심지안은 꾹 눌러뒀던 말을 꺼냈다. 차가운 눈은 이미 빛을 잃어 고요한 늪 같았다. 엎어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심지안은 이제 성연신을 믿을 수 없었다.결혼은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일이다. 결혼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별로 좋지 않았다.그렇다면 2년 후, 10년 후는 더욱 힘들 것이다.서로의 콩깍지가 벗겨지면 심지안에게 어떤 일이 들이닥칠지, 상상하기도 무서웠다.인생은 길다. 심지안은 인생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성연신의 입꼬리는 그대로 굳어버렸다.“그럼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내가 뭘 더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성연신은 심지안과 진현수의 일도 받아들였고 그녀의 아이도 받아들였다.심지안을 위해, 모든 것을 감수했다.그런데 왜 심지안은 여전히 불만스러워하는 것일까.“당신이 잘해준 건, 나에게 입힌 상처의 1%나 될까 말까예요.”병 주고 약 주고.심지안은 이미 지쳤다.성연신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가슴 아파하는 표정이 그대로 드러났다.“그럼 지안 씨는요? 나한테 상처 준 적이 없어요? 우리는 다 서로에게 상처를 줬어요. 왜 서로를 용서할 수 없는 거예요?”심지안은 고개를 쳐들고 소리를 질렀다.“나는 잘못한 거 없어요! 항상 당신이 나한테 잘못한 거죠!”성연신의 시선은 심지안의 동그란 배에
성연신은 시선을 내려 심지안의 눈시울이 토끼처럼 붉어진 것을 발견했다. 물기에 젖은 눈동자와 속눈썹에 맺힌 물방울은 어떤 남자도 당해내지 못하고 심지안을 위로해 줄 것이다. “왜 울어요.”성연신은 마음이 아파 재빨리 심지안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성연신이 심지안을 괴롭힌 것도 아닌데. 왜 갑자기 우는 것인지.“손대지 마요.”심지안은 성연신의 손을 밀어내고 눈물을 훔치며 성연신을 무시해 버렸다.성연신도 어쩔 수 없었다. 커다란 손으로 심지안의 등을 두드려주며 위로를 전했다.어느 정도 진정이 된 심지안은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으니 졸음이 몰려왔다.눈을 감자 바로 잠이 쏟아졌다.성연신은 떠나지 않고 심지안을 안고 잠에 들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안철수가 전화를 걸어왔다. 홍지윤이 죽어도 입을 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성연신은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사람 몇 명을 데리고 홍지윤을 끌고 부두로 와요. 이따가 도착할 테니.”안철수가 머뭇거리며 얘기했다.“정말 물고기 밥으로 던져줄 건가요? 비실비실해서 물고기 밥이 될 수 있겠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렇다고 물고기가 뼈를 씹어먹을 것도 아니고...”“쓸데없는 말이 많네요.”“알겠습니다. 이따가 봬요.”전화를 끊은 성연신은 송준의 연락처를 찾아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그리고 바로 차에 탔다.송준은 문자를 받은 후 바로 송석훈을 찾아가 물은 후 대답을 받았다. 송준은 한참이나 멍하니 있으며 송석훈이 보내온 문자를 보고도 믿지 못했다.부두로 향하는 길. 송준은 임시연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한바탕 욕설을 퍼부었다.“홍지윤을 구해오라고 했는데 왜 계속 가만히 있어요?!”임시연은 억울하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홍지윤이 어디 갇혀있는지도 모르는데 제가 어떻게 구해요. 성연신이 눈치가 얼마나 빠른데. 연신이 앞에서 잔머리 굴리는 게 쉽지 않아요.”“쓸모없는 사람. 할 줄 아는 일이 없어.”임시연이 성연신을 유혹한 지 오래되었지만 임신은 결국 심지안이 했다.“그렇
홍지윤을 본 송준은 놀랐다. 홍지윤은 다리 하나가 부러져 있었고 얼굴은 흙빛에, 온몸에 성한 곳이 없었다. 원래도 마른 몸이었는데 지금은 거의 살가죽이 뼈에 붙을 만큼 살이 빠져있었다.홍지윤은 송준을 보고 표정이 약간 환해졌다.송준은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하며 홍지윤을 바라보지 못했다.안철수가 의자를 가져와 성연신 옆에 놓았다.검은색 코트를 입은 성연신은 저승사자 같은 차가운 얼굴로 도도하게 송준을 내려보고 있었는데 권력자의 포스는 여전했다.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패딩을 입은 안철수는 몸집이 더욱 거대해졌다. 그리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송준을 보며 물었다.“돈은? 4천억을 가져오라고 했을 텐데.”“아버지가 홍지윤을 너한테 넘기기로 했어. 쓸모없는 사람이니 이제 비밀 조직에서도 큰 가치가 없어.”말이 끝나기 무섭게 홍지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홱 들었다. 오랜 시간 동안 물을 마시지 못해 갈라진 목소리로 힘겹게 입을 열었다.“그럴 리가 없어! 송석훈 님이 나를 버릴 리 없어!”송준은 홍지윤을 무시하며 성연신을 보고 얘기했다.“치워버려.”“앞으로 송석훈이 너한테 똑같은 말을 할 것 같지 않아?”웃을락 말락 하는 성연신은 이런 결과를 예상한 듯했다.송준은 여전히 똑같은 말을 내뱉었다.“그럴 리 없어. 난 아들이야. 홍지윤과는 달라.”“네가 무슨 친아들도 아니고.”“죽일 거야, 말 거야? 내가 도와줘?”송준은 짜증스레 얘기했다. 이 짜증은 홍지윤에 대한 죄책감과 이해할 수 없는 매정한 선택을 한 송석훈한테서 비롯된 것이었다.송석훈이 잔인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홍지윤은 비밀 조직에서 10년을 일했다.10년 동안 같이 산다면, 키우던 개한테도 감정이 생길 것이다.성연신은 나른하게 의자에 기대어 앉아 눈썹을 까딱였다.“안철수 씨.”“네.”안철수는 고양이를 들어 올리듯이 홍지윤의 멱살을 잡고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홍지윤의 아래에는 차갑고 깊은 바닷물이었다.묶여있지 않고, 다리가 부러지지 않아도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