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안은 자조적으로 웃으며 얘기했다.“그런 편이죠. 그럭저럭 잘살고 있어요.”“시간 돼요? 같이 식사라도...”심지안은 입술을 말더니 대답했다.“죄송해요. 시간이 없어요. 다음에 저랑 연신 씨가 같이 식사를 대접할게요.”진현수는 어색해하며 물었다.“전에 제가 지안 씨를 속인 것 때문에 그래요?”“아니요. 다 지나간 일이잖아요. 전 임신한 몸이라 다른 남자와 단둘이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에는...”심지안이 진지하게 대답했다.“성연신 씨가 질투해요?”심지안은 그저 웃어넘기며 대답하지 않았다.성연신이 질투할까 봐 걱정되는 게 아니었다. 그냥 성연신에게 해명하는 것이 귀찮았다.어차피 해명해도 듣지도 않을 것이 아닌가.진현수는 억지를 부리지 않았다.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하더니 물었다.“아직 퇴근할 시간이 아니죠?”“네, 왜요?”“줄 선물이 있어요. 이따가 가져올게요.”“괜찮아요. 오늘 이미 절 도와주셨잖아요. 아직 식사 대접도 못했는데 또 선물이라뇨...”심지안은 몸 둘 바를 몰랐다.“너무 귀한 물건도 아니에요. 일단 일부터 처리해요. 선물은 프런트에 놓을게요. 퇴근하고 와서 가져가요.”손을 뻗어 심지안의 어깨를 두드린 진현수는 말을 마치고 떠났다.심지안이 입을 열어 진현수를 부르려고 했지만 그는 이미 멀리 떠난 후였다. 그러다 난장판이 된 홀을 보니 화가 나서 송준을 다시 데려와 흠씬 패고 싶었다.일단은 청소부 아주머니한테 정리를 맡기고 전체 직원회의를 열었다.사무실은 옮겨야 했다. 오늘 송준이 그들한테 옮겨가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다음 달이면 임대계약도 만료되고 재계약은 힘들 것 같았다.송준의 오만한 얼굴을 떠올리면 메스꺼워서 계약을 진행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송준도 계약을 해줄 생각이 없을 것이다.보광 중신 주변에 있는 빌딩이 마음에 들었지만 가격이 조금 비쌌다.저녁, 심지안을 데리러 온 성연신은 송준이 깽판을 치고 갔다는 것을 알았다.성연신의 얼굴은 바로 차갑게 굳었다. 감히 심지안을 건드리다니. 사는 게
심지안은 그 순간 의아해했다. 믿지 못하겠다는 듯 물었다.“진심이에요?”성연신은 웃으며 심지안의 코를 가볍게 꼬집더니 얘기했다.“내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어요?”심지안은 눈을 흘기며 말했다.“거짓말한 적은 없는 거 같네요. 매일 당당하게 명령만 내렸죠.”성연신은 살짝 눈썹을 찡그렸다.기나긴 30년 동안 그에게는 공부와 사업뿐이었다. 그 생활이 길어지다 보니 이렇게 사람을 대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빠르고 직접적이니 효율이 높지 않은가.심지안은 고개를 들어 성연신을 쳐다보았다.“그러면 임시연의 아이는 어떡해요.”“오지석네 부부가 둘째를 갖고 싶어 하는데 개인 사정으로 인해서 가질 수 없는 상태예요.”심지안은 알아들었다. 오지석네 부부한테 입양 보내도 괜찮았다. 조건이 나쁜 것도 아니고 성연신과 임시연이 연락하는 것도 방지할 수 있으니까.성연신은 심지안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조심스레 심지안을 품에 안으며 물었다.“이 방법도 싫어요?”“아니요, 연신 씨 말이 맞아요. 임시연이 임신한 지 6개월이 되어가니 지우는 건 불가능하죠. 게다가 몸도 안 좋잖아요.”성연신은 무거웠던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심지안을 더욱 꽉 껴안으며 말했다.“앞으로 우리 다시는 헤어지지 말아요.”“쳇, 우리 며칠 전에 헤어졌잖아요. 나한테 떠나라고 하던 사람은 어디 갔나 모르겠네요.”“...그건 그냥 위협 같은 거였어요. 하지만 지안 씨는 바로 고청민이랑 붙어있었잖아요.”그 일을 떠올리자 성연신의 검은 눈동자에 원망스러움이 담겼다.성연신은 자기가 이미 매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심지안이 더 매정할 줄은 몰랐다.성연신의 아이를 임신한 채 다른 남자와 데이트를 하다니. 얼마나 매정한 사람인가.“누가 연신 씨더러 나를 집에 가두라고 했어요? 고청민 씨가 나를 꺼내줘서 다행이지.”심지안은 컴퓨터 전원을 끄고 당당하게 가방을 성연신에게 건네주었다.“가방 좀 들어줘요.”성연신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앞으로 잡혀 살고 싶지 않았던
성연신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매력적인 목소리로 차갑게 얘기했다.“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송준은 기분 나쁘게 웃으며 얘기했다. “다른 뜻이 아니라 그냥 귀띔해 주는 거야. 오늘 오후에 네 아내를 찾아온 남자가 하는 얘기를 들었거든. ‘우리’의 아이를 위한 옷을 준비했다던데, ‘우리’라는 단어가 너무 잘 들려서 말이야.”그 말을 들은 성연신은 바로 통화를 끊었다.그리고 차갑게 회사 문 앞의 쓰레기통을 쳐다보았다.심지안은 성연신의 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자 멈춰서서 몸을 돌렸다.노을 아래서, 성연신의 몸에는 주황색 빛이 쏟아졌다. 곧게 뻗은 코에는 그늘이 졌고 깊은 눈은 감정을 알 수 없었으며 얇은 입술을 꽉 다물고 있었다.옆에서 보면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비주얼이었다.심지안이 물었다.“무슨 생각 해요?”진현수의 선물을 던져버린 것으로 풀리지 않은 건가? 다시 곱씹는 건가?성연신이 드디어 시선을 심지안에게로 돌렸다. 빛을 등지고 선 성연신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진현수랑 마지막으로 언제 만났어요?”고개를 갸웃거리던 심지안이 대답했다. “아마도 4, 5개월 전에요. 갑자기 그건 왜요?”성연신은 말을 하지 않더니 긴 다리로 성큼성큼 다가와 얘기했다.“아니에요. 얼른 가요. 저녁에 뭐 먹을래요? 요리사한테 얘기해 놓을게요.”“연어 먹고 싶어요.”“알겠어요.”돌아가는 길, 심지안은 연습할 겸 운전을 하겠다고 했다.신호등 앞에 멈춰서니 오픈카를 탄 한 노란 머리 남자가 성연신을 향해 중지를 내밀며 얘기했다.“호스트바 놈.”성연신은 바로 차갑게 물었다.“뭐라고?”“여자한테 빌붙는 놈!”남자는 여전히 성연신을 보며 멸시했다. 하지만 심지안을 보며 부드러운 시선을 보냈다.“돈 많은 누나. 이런 자식 스폰하지마요. 관상을 딱 보니까 누나 돈 때문에 빌붙는 놈이에요.”심지안은 재미있어서 웃음을 터뜨렸다.“왜 이 사람이 빌붙는다고 생각해요?”“누나가 돈이 많으니까.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비싼 차를 몰 수 없죠.”노란 머리 남
심지안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이젠 그 이름이 지겨울 정도다.점심을 정욱에게 건넨 심지안이 짜증스레 발로 사무실 문을 박찼다.임시연은 놀라서 비명을 잠깐 지르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막고 성연신 뒤에 숨었다.김슬비는 심지안을 훑어보더니 얘기했다.“왜 노크도 안 해요? 깜짝 놀라게.”“내가 내 남편 찾으러 오는데 왜 노크를 해요? 뭐 이상한 일이라도 하고 있었어요?”“하... 아니요!”김슬비는 몰래 성연신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성연신과 이상한 일이 생기길 바라고 있었다. 성연신만 넘어와준다면...그렇게 되면 그녀도 심지안처럼 막 나갈 수 있을 텐데, 얼마나 짜릿할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같이 점심 먹으러 온 거예요?”성연신이 꿀 떨어지는 눈으로 심지안을 보며 물었다.심지안은 차갑게 성연신 뒤의 임시연을 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얼굴은 왜 가려요? 뱀파이어가 해를 무서워하는 것도 아니고.”김슬비가 화를 내며 얘기했다.“우리 시연이 충분히 불쌍한 애예요. 말조심해요.”“불쌍?”성연신이 낮은 소리로 얘기했다.“얼굴이 심하게 부어서 흉이 남을 수도 있대요.”심지안이 멈칫했다.“무슨 일이래요?”“고청민 씨가 때렸대요.”“무슨 소리예요.”고청민과 임시연은 엮일 일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고청민은 항상 부드럽고 예의 있는 사람인데, 갑자기 임시연을 때릴 사람이 아니었다.“거짓말이 아니에요! 고청민이 때렸다니까요!”임시연이 화가 난 듯 나서서 얘기했다.그제야 심지안은 임시연의 얼굴을 확인했다.양 볼이 붉게 부어올랐는데 예전의 청순가련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만두처럼 부어오른 볼만 보일 뿐이었다.살짝 웃기기도 한 게 드라마에서 나오는 특수분장 같기도 했다.하지만 가까이 가서 보니 피부가 찢어진 흔적이 보였다.손톱에 긁혀서 찢긴 게 아닌, 정말 힘 때문에 찢긴 흔적이었다.심지안의 머릿속에는 임시연이 피부가 찢길 정도로 맞는 장면이 상상되었다. 그러자 괜히 자기 뺨도 아파지는 기분에 저도 모르게 얼굴을 매만졌다.“지안 씨,
심지안은 비웃듯이 웃었다. 고청민의 집안이 두려운지 묻는 건 성연신을 자극하기 위해서다.팔짱을 낀 심지안은 위협하는 듯한 시선으로 성연신을 쳐다보았다.성연신은 그런 심지안의 시선을 보고 마음이 씁쓸해졌다.솔직히 얘기하면 그는 고청민을 불러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이참에 그 자식을 손봐주고 싶은 생각이었다.임시연의 일과는 별개로 말이다.“고청민을 불러올게.”성연신이 입을 열었다.임시연의 눈에는 기쁨의 눈물이 엿보였다. “고마워, 연신아. 날 위해서 이렇게까지 하다니.”심지안은 화가 치밀어 올라 얘기했다.“오늘 고청민 씨를 찾아가기만 해봐요. 오늘 밤 내 방에 들어올 생각도 하지 마요!”성연신은 심지안의 손을 잡고 한쪽으로 가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얘기했다.“임시연 편을 드는 게 아니에요. 고청민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거예요.”임시연이 대면할 수 있다고 얘기한 걸 보면 고청민은 꼭 문제가 있는 것이었다. 심지안에게 위선의 가면을 벗어던진 고청민의 얼굴을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고청민 씨가 때린 거라고 해도 뭐 어때요. 날 위한 거잖아요. 연신 씨는요? 지금 임시연 씨를 도와주고 있는 거예요!”심지안은 불쾌한 듯 도리 있게 성연신의 말을 반박했다. 잠시 침묵하던 성연신은 진지한 말투로 얘기했다.“고청민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한 사람이 아니에요. 임시연을 저렇게 심하게 대한 걸 봐요. 앞으로 지안 씨가 고청민과 사이가 틀어지기라도 하면 똑같은 처지가 될 수도 있어요.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거예요. 난 지안 씨가 걱정돼서 그러는 거예요. 그리고 그냥 고청민을 불러오는 것만 할 거예요. 더는 끼어들지 않을게요.”성동철의 체면도 생각해 줘야 했다. 심지안은 눈을 깜빡이며 반신반의했다.“정말요? 사심 없는 거 확실해요?”성연신은 큰손으로 심지안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얘기했다.“하늘에 맹세해요. 사심은 없어요. 오직 당신뿐이에요.”“됐어요. 말 몇 마디로 날 유혹하려
고청민은 손을 뻗어 안경을 벗더니 눈을 열심히 비비고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임시연을 쳐다보았다.“실례지만... 누구세요?”화가 치민 임시연은 바로 고청민의 얼굴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성연신 앞에서 이미지를 챙겨야 했기에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날 모르는 척하는 거예요?”“죄송합니다만 그런 뜻이 아니에요.”고청민은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가볍게 가리키더니 웃으며 얘기했다.“얼굴이 너무 부어서 누구인지 알아볼 수가 없네요.”“풉...”심지안은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 내 웃어버렸다.고청민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임시연의 자존심을 갉아버리고 있었다.임시연은 원래도 얼굴에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이었는데 지금 고청민의 말까지 듣고 나니 화가 나서 죽을 지경이었다. “어제 누구를 때린 건지 기억도 안 나요?”임시연은 이를 꽉 깨물고 고청민에게 물었다.“다른 사람을 불러와서 알려줄까요? 어차피 어제 지나가는 행인이 다 봤어요. 증인을 불러와요?”성연신을 찾아온 임시연은 준비성이 철저했다.이제는 웃을 수가 없어 심지안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설마 임시연의 말이 진짜인가.김슬비는 의기양양해져서 얘기했다.“증인이 바로 아래에 있어요. 지금 당장 불러올 수 있어요.”고청민은 당황하지 않고 깨달았다는 표정으로 얘기했다.“성 대표님이 오늘 절 부른 이유가 임시연 씨의 복수를 해주기 위해서예요?”그 말을 들은 심지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성연신은 심지안을 위한 것이라고 얘기했지만 사실은 고청민의 말이 맞았다.고청민을 불러온 건 임시연의 편을 들어주겠다는 뜻이니까.성연신은 손에 든 펜을 규칙적으로 돌리며 사회자처럼 중앙에 앉아있었다.“이유는 궁금해할 것 없어요. 일단 해명부터 해요.”“저는 해명할 게 없어요. 한 게 없으니까요. 증인을 불러요.”임시연은 고청민이 이렇게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김슬비를 향해 눈짓했다.김슬비는 바로 내려가서 사람을 데려오려고 했다.김슬비가 떠나자마자 고청민은 코를 매만지더니 재채기를 하고 사람들 앞에서
성연신의 얇은 입술이 굳게 닫혔다. 심지안의 말에 동의한다는 뜻이었다.김슬비는 어이가 없었다.“시연아, 너는 피해자야. 무서워할 필요 없어.”오기 전에 두 사람은 이미 얘기를 마친 상태였다. 임시연은 불쌍한 척하고, 김슬비는 강하게 심지안을 상대하는 것으로.하지만 생각하지 못한 상황에 임시연은 더는 연기를 이어가기 힘들었다.고청민이 앰배서더로 김슬비를 뽑아주지 않은 일 때문에 복수하고 싶은 마음에 임시연과 함께 오게 된 것이었다.임시연은 김슬비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녀는 고청민을 향해 허리를 숙이며 사과했다.“죄송해요. 제가 눈이 잘못된 모양이에요. 청민 씨와 연신이 시간만 낭비하게 했네요.”고청민은 그녀의 사과를 받아주며 물었다.“괜찮습니다. 또 다른 일이 있나요?”“없어요.”임시연은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긴 머리카락이 엉켜서 흐트러져 귀신 같아 보였다.입꼬리를 끌어올린 고청민이 성연신을 보면서 장난스레 얘기했다.“성 대표님, 임시연 씨 대신 복수하는 건 물거품이 되었네요. 안타깝겠어요.”“정말 잘못 봤어?”성연신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의심스레 물었다.“어, 정말이야. 미안해, 연신아. 다 내 잘못이야. 내가 너무 흥분했어.”눈에 맺힌 눈물이 툭툭 떨어져 임시연은 더욱 불쌍해 보였다.성연신은 손가락으로 김민수를 가리키며 차갑게 물었다.“저 사람은? 아는 사람이야?”갑자기 바뀐 화제에 임시연은 숨이 턱 막히고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기분이었다. 고청민은 흥미진진하다는 듯 눈썹을 움찔거렸다. 혹시 뭔가를 눈치챈 건가?하긴, 아까 고청민이 암시했으니까.심지안은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냈다.그 순간, 모든 사람의 시선이 김민수에게로 향했다.키는 170에서 180 정도 되고 얼굴은 깨끗했다.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꽤 잘난 남자였다.임시연은 성연신의 시선을 느끼고 그 압박감에 숨이 막혀왔다. 주먹을 너무 꽉 쥐어서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애써 진정하고 대답했다.“모르는 사람이
오늘은 대외에 공개하는 전시회였기에 적지 않은 사람이 왔다. 송준은 갈색의 외투를 입고 자리에 도착했다. 이국적인 얼굴과 빼어난 몸매는 사람들 사이에서 눈에 띌 정도였다.심지안은 그가 일부러 이번 프로젝트 발표회의 합작사 옆에 앉는 것을 목격하고는 성연신의 손을 꼭 잡고 물었다.“이상한 소리를 하면 어떡해요?”“무서워할 것 없어요.”성연신은 웃을락 말락 하며 위로하듯 그녀를 토닥여주었다.“무서워하지 마요. 오늘은 우리가 반격할 때니까.”심지안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믿을게요!”성연신이 무대에 오른 후, 진현수가 정문으로 들어와 심지안 뒤에 앉았다.5분 정도가 지난 후, 심지안은 그제야 자기 뒤의 사람을 확인했다. 하지만 별로 놀라지는 않은 듯 얘기했다.“해외로 다시 나간 줄 알았어요.”진현수는 금융업계에서 성연신만큼 유명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젊은 성공한 사업가라고 할 수 있었다.이런 대형 발표회에는 꼭 참석할 사람이다. “아니요, 잠시 금관성에 있으려고요.”그는 우아하게 웃으며 담담하게 얘기했다.”“장 대표님, 오 대표님, 동 대표님. 오랜만입니다. 다들 대단하신 분들이네요.”합작사의 세 사람이 송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예의를 차려 얘기했다.“듣자 하니 요즘 금호 그룹이 상승세라면서요? 산 땅이 많이 개발되었다면서요? 우리보다는 송 대표님이 더 대단하죠. 그런데 우리의 체면을 세워주다니, 고맙군요.”“우리의 체면을 세워주는 게 아니라 성 대표님의 체면을 세워주는 거겠죠.”“아, 그러네요. 제가 말을 잘못했습니다. 제 문제예요.”“우리는 그저 돈을 투자할 뿐이지, 기술적인 부분은 역시 성 대표님이 하시는 거죠.”송준은 손을 저으며 얘기했다.“운이 좋았을 뿐이니 별것 아니에요.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 발표회에 관해서 들은 얘기가 있는데 해도 되는지 모르겠군요.”“무슨 얘기요? 해보세요.”“성형찬 씨가 감옥에 간 거, 알아요?”장 대표가 놀라서 물었다.“이사회에서 쫓겨난 건 알지만, 감옥에는
흥분을 가라앉힌 후, 심지안은 자신이 5년 전 해외에서 살았던 작은 별장과 흡사한 곳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외부 경관이 달라 의아해하며 말했다.“5년 전과 똑같은 별장을 지었어요?”고청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다가 기침을 몇 번 하며 대답했다.“맞아요. 거의 차이가 없죠?”심지안은 방 안의 모든 물건을 둘러보며 고청민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조금 부드러워졌고, 마치 그를 가족으로 생각했던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어떻게 하지원을 설득했어요?”그녀는 고청민이 하지원을 이용하여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든 것에 의아함을 감추지못했다.“한마디 했더니 바로 승낙했어요.”고청민은 미소를 지었다.하지원은 이처럼 온 마음을 다해 고청민을 따랐다.심지안은 복잡한 마음으로 물었다.“하지원 씨에게 미안하지 않아요?”고청민은 아무런 감정 없이 말했다.“보상해 줄 거예요.”‘보상? 어떻게 보상할 건데? 여자의 청춘을 어떻게 보상할 건데...’심지안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반박하지 않았다.하지원에게는 그저 사랑이었으니까...“밤새 아무것도 안 먹어서 배고프죠? 지안 씨가 좋아하는 비빔면을 준비해 뒀어요. 게살 비빔면이요.”고청민은 웃으며 심지안에게 말했다.“지안 씨가 분명 좋아할 거예요.”심지안은 배가 고파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식탁에 다가가기 전, 그녀는 게살 비빔면의 향긋한 냄새를 맡았다.고청민은 게살 비빔면을 그녀 앞에 놓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먹어요. 제철 대게는 정말 맛있거든요.”심지안은 망설임 없이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그의 말대로 정말 맛있었다. 커다란 게살이 면과 어우러져 입안 가득 풍미를 더했다.고청민의 뜨거운 시선에 심지안은 불편해하며 말했다.“청민 씨도 먹어요. 나만 보지 말고...”고청민은 미소를 지으며 젓가락을 들어 면을 집어 먹으려 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기침이 그를 멈추게 했다.연달아 몇 번의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점차 그의 가냘프고 쇠약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기침이 점점 심해지자 그
집에 돌아온 후, 성연신은 성우주를 재우고 나서 긴급한 회사 업무를 처리했다. 일을 마치고 나니, 이미 새벽 3시가 넘어 있었다.성연신은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어 고청민의 상황을 물어볼까 했지만, 숙면을 방해할까 봐 포기했다.다음 날 아침, 성연신은 일찍 깨어났다. 시계를 보니 6시 30분이었다. 그는 심지안이 오늘 세움의 신제품 출시 준비로 일찍 출근할 거로 생각하고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으려 했다.이때 손이 미끄러져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렸고, 주어 보니 액정이 나가 있었다.갑작스러운 실수에 그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깨진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불안감이 스며들었다.성연신은 다른 휴대폰으로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결국 부재중으로 받지 않았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성씨 가문으로 출발했다.성씨 가문에 도착했을 때, 성동철은 막 깨어나서 정원에서 산책 중이었다.성연신으로부터 두 사람이 지난밤 함께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성동철은 고청민이 출발 직전에 했던 말이 떠올라 이마를 찡그렸다.‘그 녀석이 설마...’성연신은 성동철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급하게 물었다.“어르신, 혹시 지안 씨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어디죠?”“해외에 있을 가능성이 크네.”성연신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무슨 말씀입니까?”성동철은 고청민이 출발 전에 했던 특별한 부탁을 성연신에게 말해주고, 동시에 고청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성연신은 주먹을 꽉 쥐고 심지안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다. 한참의 신호음 끝에 전화가 연결되었다.“지안 씨, 어디에 있어요?”“성연신 대표님, 접니다.”고청민의 평온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고, 성연신의 신경을 자극했다.성연신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이 자식아, 지안 씨를 어디로 데려간 거야?”“우리는 해외에 있어요. 안전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고청민은 계속해서 말했다.“지안 씨를 며칠만 빌리는 셈이에요. 너무 무리한 일은 하지 않을 테니, 흥분하지 마세요
“네. 할아버지, 그러니 제발 막지 말아 주세요.”“지금 나와 상의하는 게 아니라 통보하는 거구나!”“할아버지, 용서해 주세요.”성동철은 입을 열었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한순간에 십 년은 늙은 것처럼 보였고, 무력한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한참 후에야 그는 천천히 말했다.“해외 전문가와 이미 연락을 취했으니, 너는 안심하고 치료에 전념해라. 우리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청민은 그의 고집을 읽고 눈을 깜빡였다. 긴 속눈썹이 갑자기 젖어 들었다.사실, 그도 할아버지와 몇 년 더 함께하고 싶었다.집에 돌아오니, 성동철이 연락한 해외 전문가로부터 답변이 도착해 있었다. 그들은 신의라 불리는 의사가 이미 고청민을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자신들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고청민은 낙담하지 않고 오히려 성동철을 안심시키며 주제를 돌렸다.“할아버지, 해외로 며칠 다녀오고 싶어요. 오랫동안 여행을 못 갔어요.”“안 돼. 네 몸 상태로는 그렇게 멀리 갈 수 없어!”성동철은 단호히 거절했다. 그는 아직 민채린의 스승에게 도움을 청해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그러나 고청민은 말했다.“민채린이 해외에 있어요. 그녀가 옆에 있으면 할아버지도 안심하실 거예요.”“민채린?”성동철의 얼굴에 희미한 희망의 빛이 떠올랐다.“그렇다면 민채린의 스승에게 직접 찾아갈 수 있는 거니?”“제 병에 대해 이미 채린이의 스승님께 여쭤봤어요.”“결과는 어땠니?”“스승님께서 알려줄 수 있는 것은 모두 알려 주셨어요. 하지만 정말 치료하기 어려운 병이래요.”성동철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실망을 느꼈다.결국, 그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그래. 가고 싶다면 가도 좋아. 다른 환경에서 지내는 것이 네 몸에도 좋을 거다.”게다가 민채린이 옆에 있으니, 문제가 생기더라도 신속히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오늘 바로 떠나려고 해요.”“이렇게 갑자기?”“그냥 즉흥적으로 생각한 거예요. 가고 싶을 때 가야죠.”고청민은 말하며 눈치를 보지 않았다
30분 후, 성동철과 고청민이 병실에서 나왔다. 성동철은 걱정스럽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의사가 병원에 며칠 더 있으라 했잖니? 왜 말을 안 들어? 적어도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이렇게 급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되잖아. 치료 시간을 늦출 수도 있다고...”고청민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창백한 얼굴은 햇살처럼 부드러워 보였다.“괜찮아요. 집에 있는 의료 장비로도 충분해요.”성동철은 한숨을 쉬며 더 이상 고집하지 않았다.‘집에 있는 것도 나쁘지 않지. 집에 있으면 이 녀석을 더 볼 수 있잖아...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일이고...’성동철은 운전기사에게 차를 병원 앞에 대라고 지시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그는 병원 입구의 벤치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주변을 둘러보며 의아해했다.“지안이 여기 앉아 있지 않았니? 어디 갔지?”고청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고운 속눈썹은 한껏 아래로 드리워 있었다. 눈에 감춰진 복잡한 감정이 보이지 않게 덮여 있는 것 같았다.“그리고 지원이도 보이지 않네. 네가 전화를 걸어 연락해 봐. 이제 집에 가야 한다고...”성동철은 난처한 표정으로 고청민에게 말하며,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는 계속 부재중이었다.고청민은 하지원에게 전화를 걸지 않고 바로 말했다.“지원이 오빠가 찾으러 왔어요. 아마도 지안 씨는 갑자기 일이 생겨서 간 것 같아요. 저희 먼저 집에 가죠.”성동철은 방금 의사가 자신에게 따로 했던 말들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빨리 집에 가서 외국의 의료 전문가들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그래. 우리라도 먼저 가자.”‘성연신이 지안이를 데려갔을 수도 있어. 어쨌든 지안이는 다 큰 어른이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야.’넓은 승용차 안에서, 고청민이 갑자기 성동철에게 말했다.“할아버지, 제가 죽으면 제 심장을 지원이에게 주세요.”어차피 죽으면 남겨둘 이유가 없으니,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덕을 쌓는 일일 것이다.성동철은 얼굴빛이 변하며 호통쳤다.“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심지안은 차가운 눈빛으로 하지원을 바라보며 말했다.“모든 사람이 자기를 좋아하지도 않는 상대방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인생을 바칠 수 있는 것은 아니야.”심지안은 사랑의 위대함에 감탄했지만, 그런 희생정신을 가질 수는 없었다.하지원은 심지안의 말을 정확하게 알아듣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왜냐하면 난 인간미가 있고, 지안 씨는 없으니까요. 임시연이 당신 앞에서 죽었을 때, 살아있던 한 생명이 죽었는데도 지안 씨는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인 것처럼 무관심했잖아요.”심지안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지금까지의 무심한 태도를 거두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하지원을 쳐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맞아요. 임시연은 내 아이를 훔치고, 내 남자를 빼앗고, 내 결혼을 망쳤어요. 게다가 여러 번 나를 죽이려고 했었죠. 이번에 죽은 사람이 임시연이 아니었다면, 다음번에 죽을 사람은 나일 수도 있어요. 지금 임시연이 죽어서 폭죽이라도 터뜨리고 싶은 마음이니까, 자기 일 아니라고 그런 쉬운 소리 하지 마세요!”처음에는 임시연의 죽음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곧 심지안은 깨달았다. 임시연의 죽음은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으며, 그녀는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임시연은 살아서 더 많은 사람을 해치려 했기에 어쩌면 이렇게 죽는 것이 더 나은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원은 심지안의 큰 목소리에 깜짝 놀라 얼굴이 창백해졌고, 잠시 말을 잃었다.“지원 씨는 사랑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난 아니에요. 날 냉정하다고 생각해도 좋아요.”심지안은 하지원과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하지원도 불쌍한 사람일 뿐이었다. 심지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로 들어가려 했다. 한 발을 내딛자, 하지원이 다시 말을 걸었다.“정말로 청민 선배를 도와줄 생각이 없는 거예요? 사람 하나 구한다고 생각해 줘요... 평생 고마워할게요.”심지안은 잠시 멈칫했지만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그건 도움을 청하는 게 아니라 도덕적 강요에요.”심지안은 친구로
성동철은 깜짝 놀라 지팡이도 잊은 채 급히 움직였다. 카펫에 걸려 넘어질 뻔했지만, 한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휘청거리며 2층으로 올라갔다.집사는 구급차를 부르기 위해 전화를 걸었고, 남은 하인들은 손님들을 휴식 공간으로 안내했다. 연회 내내 활기찼던 분위기가 갑자기 혼란스럽고 긴장된 분위기로 바뀌었다.심지안은 찡그린 얼굴로 성동철의 뒤를 따라 고청민의 방으로 들어갔다.커튼은 빛 한 줄기도 들어오지 못하게 꽉 닫혀 있었지만, 문을 열자 짙은 피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하인이 먼저 한 발 앞으로 나서서 전원 스위치를 켜자, 방 안은 갑자기 밝아졌다.우드톤 가구들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옷들도 정리되어 소파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심지안은 방 안을 둘러보았지만, 고청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심지안은 약간 열려 있는 화장실 문을 바라보며, 눈빛이 어두워졌다.이때, 하지원이 화장실을 가리키며 말했다.“안에 있어요.”성동철은 떨리는 손으로 화장실 문을 열었다. 안은 엉망진창이었다. 바닥에는 붉은 핏자국이 가득했다.고청민은 욕조 안에 누워 있었다. 옷은 물에 젖어 축축하게 몸에 붙어 있었고, 두 손은 욕조 가장자리에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머리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입가에는 피가 묻어 있어 원래 창백한 피부가 더욱 하얗게 보였다.고청민은 말라비틀어진 채 생기가 전혀 없는 모습이었다.성동철은 이마에 땀을 흘리며 손가락을 고청민의 코 밑에 대어 보았다. 그는 길게 숨을 내쉬며 하인들에게 소리쳤다.“구급차가 일찍 도착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 빨리 차에 태워서 병원으로 데리고 가!”하인들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고청민을 욕조에서 꺼냈다.심지안은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겁에 질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심장이 빨리 뛰었다. 그녀는 혼이 나간 하지원을 바라보았다.“청민 씨... 어쩌다 이렇게 된 거죠? 왜 이렇게 피를 많이 흘린 건가요?”이 상황이 마치 자살을 암시하는 것 같았지만, 하지원은 그 말을 입 밖에
심지안은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했다.“말 좀 해봐요. 정말 시연 씨가 죽길 바란 거예요? 시연 씨가 죽으면 속 시원할 것 같았냐고요!”변석환은 심지안에게 소리쳤다. 울부짖는 변석환의 두 눈은 심하게 충혈되어 무섭게 보였다. 그리고 그의 큰 목소리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변요석과 성연신이 먼저 달려왔다. 성연신은 심지안을 보호하며 변석환을 몇 걸음 뒤로 밀어냈다. 성연신의 행동은 냉담하면서도 약간의 분노가 섞여 있었다.“지안 씨 앞에서 임시연 그 여자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마. 다시 한번 실수하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하하하! 살인범을 감싸고 도는 건가요?”변석환이 큰 소리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맞아요. 시연 씨의 죽음에는 당신과 심지안 씨도 책임이 있어요.”“퍽!”변요석은 변석환의 얼굴을 한 대 때렸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정신 차려. 임시연은 원래 죽어 마땅한 여자야! 더 이상 나를 창피하게 만들지 마!”변석환은 변요석을 바라보며, 맞은 얼굴을 손으로 문지르며 중얼거렸다.“원래 죽어야 했고... 맞아... 나를 속이고 이용했어... 죽어 마땅한 여자야...”하지만 변석환은 스스로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잠을 잘 수도, 밥을 먹을 수 없었다.임시연이 죄를 지었음을 알고 있었지만, 변석환은 여전히 너무나도 힘들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녀를 미워하면서도 그녀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변요석은 주변에 지켜보는 눈이 많다는 것을 의식하며 분노를 억누르고 변석환에게 경고했다.“지금 당장 성씨 가문을 떠나. 네가 정신 차리고 지안 씨에게 사과할 준비가 되면... 그때 돌아와.”변석환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비틀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순간, 사람들 사이로 문득 익숙한 그림자를 본 것 같았다.변석환은 그 그림자를 쫓아갔지만,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변석환은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고, 그제야 그것이 자신의 착각임을 깨달았다.살아 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보다 더 큰 고통을 겪는다. 임시
자책하는 심지안을 보는 성연신은 가슴이 아픈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당연히 아니죠. 임시연의 죽음은 지안 씨와 아무 상관없어요. 그러니까 혼자 그런 생각 하지 마요.”심지안도, 성연신도, 그 누구도 임시연이 거기서 뛰어내릴 거라고는 생각 못 했을 것이다.임시연이 심지안 앞에서 그리고 성원 그룹에서 죽은 건 심지안과 성연신에게 트라우마를 남겨주기 위해서였다.만약 제가 잘못되어 죽는다 해도 살아있는 사람들도 마음이 편하진 않을 테니까 그걸 노리고 뛰어내렸던 것 같다.성연신도 놀라긴 했지만 직접 본 게 아니니 그리 큰 충격은 받지 않았는데 문제는 심지안이었다.물론 임시연도 죽을 줄은 모르고 뛰어내렸겠지. 그냥 크게 다쳐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게 감옥에 있는 것보단 나으니까 뛰어내린 걸 텐데 이렇게 죽어버려서 심지안만 힘들어하고 있었다.심지안은 공허한 눈으로 성연신을 보며 웃어보려 했지만 표정이 잔뜩 굳어있어서 웃는 게 우는 것보다 더 이상했다.“당신 말이 맞아요. 임시연은 천벌 받아서 죽은 건데 내가 기뻐하는 게 맞죠.”“그래요, 안 뛰어내렸어도 경찰한테 잡혀서 자유롭진 못했을 거예요.”성연신은 심지안의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내가 지안 씨더러 임시연 잡아놓으라고 한 거잖아요. 귀신이 되어도 날 찾아올 거니까 지안 씨는 아무 걱정 하지 마요.”그때 오지석이 사실은 사람들을 데리고 올라오려 했지만 임시연이 미리 눈치를 채고 송준에게 도움을 청할까 봐 성연신이 말렸었는데 임시연이 이렇게 극단적인 사람인 줄 알았더라면 심지안을 절대 혼자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알겠어요.”긴장이 풀렸는지 심지안이 눈을 살짝 감으며 말했다.“나 아까 제대로 못 쉬어서 좀 잘래요.”“그래요, 내가 옆에 있을게요.”“네, 할아버지랑 우주한테는 나 병원에 있단 말 하지 마요.”“네.”가족들이 괜히 걱정할까 봐 신신당부를 하고서야 심지안은 침대에 누웠다.제 앞에 앉아있는 듬직한 성연신을 보니 안심이 되는지 그렇게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한편 성연신은
그렇게 회의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누구는 임시연을 구하겠다고 1층으로 달려 내려가고 누구는 창가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아직 살아있어요!"그 모습을 보고 있던 심지안은 사람들의 인영이 환영처럼 눈 앞을 스쳐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머리도 어지럽고 귀에 까지 이명이 들려 온 세상이 흐릿하게 보였다.임시연이 뛰어내리는 결말을 예상해본적은 없었는데, 3층이 아주 높진 않지만 그렇다고 낮은 층수도 아니었다.조금 정신을 차린 심지안은 사람들의 질책이 담긴 시선을 느꼈다. 그들은 저들끼리 수군대며 심지안을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사모님도 너무 하시지, 어떻게 사람을 뛰어내릴 때까지 몰아붙여? 저러면 밤에 악몽 안 꾸나?""그리고 왜 자꾸 연다빈 씨한테 임시연이라고 하는 거야? 너무 간 거 아니야?""다빈 씨가 죽기라도 하면 어떡해? 그럼 사모님이 살인자 되는 거야?""다빈 씨가 귀신 돼서 사모님한테 복수하겠다고 찾아올 것 같아요."그 말을 듣고 있던 심지안은 이마에 힘을 주며 소리질렀다."내가 몰아붙인 거 아니고 본인이 뛰어내린 거야. 나랑 상관 없다고."심지안의 호통에 수군거림은 사라졌지만 그녀를 보는 시선은 여전히 매정했다.다들 "연다빈"에게 일이 생기면 심지안 책임으로 돌릴 준비가 되어있는 듯 싶었다.심지안은 애써 심호흡을 하며 현기증을 이겨내려 했다. 그리고 구급차를 부르려고 뒤를 돌 때 마침 이곳으로 뛰어오는 성연신과 오지석을 발견했다.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는 성연신이 빠르게 다가와 심지안의 어깨를 잡으며 주드럽게 다독였다."괜찮아, 내가 왔잖아. 내가 알아서 할게."속눈썹이 떨릴 정도로 긴장하고 있던 심지안은 마침 다가오는 성연신을 보고 무슨 말이 라도 하려고 입을 벌렸지만 말을 채 내뱉기도 전에 다리에 힘이 풀리며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시간이 조금 흘러 심지안이 눈을 뜬 곳은 병원이었다.흰 벽과 소독약 냄새, 그리고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성원 그룹 직원 자살 사건은 임시